三聖記 前
吾桓建國 最古. 有一神 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光明 照宇宙 權化 生萬物.
오환건국 최고. 유일신 재사백력지천 위독화지신광명 조우주 권화 생만물.
우리 한(환, 桓)의 건국은 가장 오래전에 이루어졌다. 한분의 신이(一神) 斯白力의 하늘에 계셨는데 홀로 변화 한 신(獨化之神)과 빛이 되시어, 밝은 빛으로 온 우주를 비추고 권능(權能)과 조화(造化)로서 만물을 낳으셨다.
長生久視 恒得快樂 乘遊至氣 妙契自然 無形而見 無爲而作 無言而行.
장생구시 항득쾌락 승유지기 묘계자연 무형이견 무위이작 무언이행.
오래 오래 살면서 항상 즐거움을 누리셨고,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며, 자연과 오묘하게 어울리시면서, 보이는 형체 없이 행(行)함이 없이 이루시며 말이 없이 행하셨다.
日 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
일 강동녀동남팔백어흑수백산지지.
어느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 백산의 땅에 내려보내셨다.
於是 桓因 亦以監羣 居于天界 掊石發火 始敎熱食 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氏 亦稱安巴堅也 傳七世 年代 不可考也
어시 환인 역이감군 거우천계 부석발화 시교열식 위지환국. 시위천제환인씨 역칭안파견야 전칠세 년대 불가고야
이때에 한인(桓因)께서 또한 감군(監群:감독관)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부딪쳐서 불을 만들어, 처음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가르치시니,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였고, 이 분을 ‘천제 한인씨(天帝桓因氏)’ 또는 ‘안파견(安巴堅)’2)이라고 불렀다. 일곱 대를 전하였는데 그 연대는 가히 알 수가 없다.
일곱 대(七世) : 3301년 (BC 7197 ~ 3897)
제1세 한인 안파견(安巴堅)
제2세 한인 혁서(赫胥)
제3세 한인 고시리(古是利)
제4세 한인 주우양(朱于襄)
제5세 한인 석제임(釋堤壬)
제6세 한인 구을리(邱乙利)
제7세 한인 지위리(智爲利)
後 桓雄氏 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邱.
후 환웅씨 계흥 봉천신지조 강우백산흑수지간 착자정녀정어천평 획정지어청구.
뒤에 한웅씨(桓雄氏)가 한인(桓因)을 계승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 천평(天坪)에 자정과 녀정(子井, 女井)을 파고, 청구(靑邱: 지금의 반도가 아닌)에 井田으로 땅을 구획하셨다.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倍達.
지천부인 주오사 재세리화 홍익인간 립도신시 국칭배달.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오사(五事)를 주관하며, 세상을 이치(진리)대로 다스리고(在世理化), 널리 인간을 이롭게(弘益人間) 하셨다.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셨다.
擇三七日 祭天神 忌愼外物 閉門自修 呪願有功 服藥成仙 劃卦知來 執象運神
택삼칠일 제천신 기신외물 폐문자수 주원유공 복약성선 획괘지래 집상운신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천신(天神)께 제사지내고, 바깥일(外物)을 꺼리고 삼가하여, 문을 닫고 스스로 수련하시며 주문(呪文)을 외우며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약(藥)을 드시고 신선이 되셨으며, 괘(卦)를 정하여 다가올 일을 아셨으며, 상(象)을 잡아 정신(精神)을 가누셨다.
命羣靈諸哲 爲輔 納熊氏女 爲后 定婚嫁之禮 以獸皮 爲幣. 耕種有畜 置市交易 九域 貢賦 鳥獸率舞. 後人 奉之爲地上最高之神 世祀不絶.
명군령제철 위보 납웅씨녀 위후 정혼가지례 이수피 위폐. 경종유축 치시교역 구역 공부 조수솔무. 후인 봉지위지상최고지신 세사부절.
여러 신령한 인물과 철인(哲人)들이 보필 하도록 명하셨다. 웅씨(熊氏)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皇后)로 삼으셨으니, 혼인의 예법을 정하고, 짐승 가죽을 폐물로 하였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가축을 기르게 하시고, 시장을 만들어 서로 교역이 되도록 하시니, 구한(九桓)의 모든 지역에서 조공을 하고 부역을 하였으며, 새와 짐승들도 무리를 지어 춤을 추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그분을 지상(地上) 최고의 신으로 받들고 대대로 제사를 모시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神市之季 有蚩尤天王 恢拓靑邱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신시지계 유치우천왕 회탁청구 전십팔세 역일천오백육십오년
신시(神市) 말기에 치우천왕(蚩尤天王)이 계셨는데, 강역을 넓히고 개척하여 청구(靑邱)라 하였다. 18세(世)를 전하고 역년(曆年)은 1,565년이었다.
後 神人王儉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 其至神之德 兼聖之仁 乃能承詔繼天而建極 巍蕩惟烈.
후 신인왕검 강도우부함지산단목지허. 기지신지덕 겸성지인 내능승조계천이건극 외탕유열.
이후에 신인(神人) 왕검(王儉)이 불함산(不咸山) 단목(檀木)의 터에 내려 오셨다. 그는 신(神)의 덕(德)과 성인의 어짐(仁)을 겸(兼) 하시고,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承詔) 하늘의 뜻을 이어 받아 나라를 세우시니, 지극히 높고 넓으며 밝게 빛을 비추었다.
九桓之民 咸悅誠服 推爲天帝化神而帝之 是爲檀君王儉 復神市舊規 設都阿斯達 開國 號朝鮮
구환지민 함열성복 추위천제화신이제지 시위단군왕검 부신시구규 설도아사달 개국 호조선
구한(九桓)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따르게 되어, 천제의(天帝)이 화신(化神)으로서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곧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신시(神市)의 옛 법도를 다시 복원하고 아사달(阿斯達)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고 하였다.
檀君 端拱無爲 坐定世界 玄妙得道 接化群生
단군 단공무위 좌정세계 현묘득도 접화군생
단군께서 단공(端拱) 무위(無爲)하고 앉아서 세상을 평정하여 잘 다스리셨으며, 현묘(玄妙)한 도를 얻어 여러 생명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命彭虞 闢土地 成造 起宮室 高矢 主種稼 臣智 造書契 奇省 設醫藥 那乙 管版籍 羲典卦筮 尤作兵馬. 納菲西岬河伯女 爲后 治蠶 淳厖之治 熙洽四表
명팽우 벽토지 성조 기궁실 고시 주종가 신지 조서계 기성 설의약 나을 관판적 희전괘서 우작병마. 납비서갑하백녀 위후 치잠 순방지치 희흡사표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주관하도록 하였으며,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하게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하게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 하백의 딸(河伯女)을 황후로 맞아들여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淳厖)의 다스림이 온세상(사방)을 널리 비추었다.
仍設八條 讀書習射 爲課 祭天爲敎 田蠶是務. 山澤無禁 罪不及孥 與民共議 協力成治. 男有常職 女有好逑 家皆蓄積. 山無盜賊 野不見飢 絃歌溢域
잉설팔조 독서습사 위과 제천위교 전잠시무. 산택무금 죄부급노 여민공의 협력성치. 남유상직 녀유호구 가개축적. 산무도적 야부견기 현가일역
이에 팔조(八條)를 제정하여 법으로 삼고, 글을 읽고 쓰는 것과 활쏘기를 익히는 것을 일과로 삼았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행사를 가르침으로 삼고, 밭을 갈고 누에치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산이든 못이든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으며, 죄를 지어도 처와 자식에게 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고, 백성과 더불어서 함께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남자들은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들은 좋은 배필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모두 재물이 쌓여 있었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사람이 없으며, 악기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 흘렀다.
檀君王儉 自戊辰統國 傳四十七世 歷二千九十六年 壬戌秦始時 神人大解慕漱 起於熊心山.
단군왕검 자무진통국 전사십칠세 역이천구십육년 임술진시시 신인대해모수 기어웅심산.
진(秦)나라 시황(BC 246-206) 임술(BC 239)년에 신인(神人)이신 대해모수(大解慕漱)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났다.
丁未漢惠時 燕酋衛滿 竊居西鄙一隅. 番韓準 爲戰不敵 入海而亡 自此三韓所率之衆 殆遷民於漢水之南. 一時羣雄 競兵於遼海之東.
정미한혜시 연추위만 절거서비일우. 번한준 위전부적 입해이망 자차삼한소솔지중 태천민어한수지남. 일시군웅 경병어요해지동.
정미(BC 194)년 한(漢)나라 혜제(惠帝) 때 연(燕)나라 우두머리 였던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하여 거(居) 하였다. 번한(番韓) 왕 준(準)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강 건너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漢水)의 남쪽으로 옮겨갔다. 일시에 여러 영웅들이 요해(遼海=河)의 동쪽에서 다투어 군대를 일으켰다.
至癸酉漢武時 漢 移兵 滅右渠. 西鴨綠人高豆莫汗 倡義興兵 赤稱檀君. 乙未漢昭時 進據夫餘故都 稱國東明 是乃新羅故壤也.
지계유한무시 한 이병 멸우거. 서압록인고두막한 창의흥병 적칭단군. 을미한소시 진거부여고도 칭국동명 시내신라고양야.
계유(BC 108)년 한(韓)나라 무제(武帝)때, 한(漢)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右渠)를 멸망시켰다. 서압록(西鴨綠) 사람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정의를 외치며 군대를 일으켰는데 또한 단군(檀君)이라고 칭하였다. 을미(BC 86)년 한(漢) 소제(昭帝)(BC 87~74)때, 부여(夫餘)의 옛 도읍지에 진출하여 차지하고, 나라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곧 신라(新羅)의 옛 땅이다.
至癸亥春正月 高鄒牟亦以天帝之子 繼北夫餘而興 復檀君舊章 祀解慕漱 爲太祖 始建元 爲多勿 是爲高句麗始組也
지계해춘정월 고추모역이천제지자 계북부여이흥 부단군구장 사해모수 위태조 시건원 위다물 시위고구려시조야
계해(BC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高鄒牟, 고주몽) 역시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하고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 하니 이분이 고구려의 시조이다.
人類之祖曰那般 初與阿曼 相遇之處 曰阿耳斯它 夢得天神之敎 而自成婚禮 則九桓之族 皆其後也.
인류지조왈나반 초여아만 상우지처 왈아이사타 몽득천신지교 이자성혼례 칙구환지족 개기후야.
인류의 시조를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에 아만(阿曼)과 더불어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它)였다. 꿈에 천신(天神)의 가르침을 받고 두분이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九桓)의 종족은 모두가 이 두분의 후손이다.
昔有桓國 衆富且庶焉 初 桓仁居于天山 得道長生 擧身無病 代天宣化 使人無兵 人皆作力 自無飢寒.
석유환국 중부차서언 초 환인거우천산 득도장생 거신무병 대천선화 사인무병 인개작력 자무기한.
옛날 한국(桓國) 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고 또 많았다. 처음 한인(桓仁) 께서 천산(天山) 에 계시면서 도(道)를 얻으시어 오래 오래 사셨으며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펴고 교화(敎化)를 하셨다. 사람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하셨다.
傳赫胥桓仁.古是利桓仁.朱于襄桓仁.釋提任桓仁.邱乙利桓仁 至智爲利桓仁. 或曰檀仁.
전혁서환인.고시리환인.주우양환인.석제임환인.구을리환인 지지위리환인 혹왈단인.
다음에 혁서한인(赫胥桓仁), 고시리한인(古是利桓仁), 주우양한인(朱于襄桓仁), 석제임한인(釋提任桓仁), 구을리한인(邱乙利桓仁)에 전하고 지위리한인(智爲利桓仁)에 이르더라. 혹은 단인(檀仁)이라고 말한다.
古記 云 “波奈留之山下 有桓仁氏之國 天海以東之地 亦稱波奈留之國. 其地 廣 南北 五萬里 東西 二萬餘里 摠言桓國 分言則 卑離國, 養雲國, 寇莫汗國, 句茶川國, 一群國, 虞婁國(一云畢那國), 客賢汗國, 句牟額國, 賣句餘國(一云稷臼多國), 斯納阿國, 鮮稗國(一稱豕韋國 或云 通古斯國) 須密爾國 合十二國也.
고기 운 파내류지산하 유환인씨지국 천해이동지지 역칭파내류지국. 기지 광 남북 오만리 동서 이만여리 총언환국 분언칙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일운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일운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국(일칭시위국 혹운 통고사국) 수밀이국 합십이국야.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파나류산(波奈留山) 아래에 한인씨(桓仁氏)2)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天海) 동쪽의 땅이다. 또한 파나류국(波奈留國)라고도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이다. 통틀어 말하면 한국(桓國)이요 나누어 말하면,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 群國), 우루국(虞婁國 혹은 필나국 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혹은 직구다국 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패국(鮮稗國 혹은 축위국 豕韋國 통고사국 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니 합해서 12국이다.
天海 今曰北海 傳七世 歷年三千三百一年 或云六萬三千一百八十二年 未知孰是.”
천해 금왈북해 전칠세 역년삼천삼백일년 혹운육만삼천일백팔십이년 미지숙시.
천해(天海)는 지금의 북해(北海)이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桓國之末 安巴堅 下視三危太白 “皆可以弘益人間 誰可使之?”
환국지말 안파견 하시삼위태백 “개가이홍익인간 수가사지?”
한국(桓國)말기에 안파견(安巴堅)이 삼위(三危)와 태백(太白)을 굽어 살피시고, “모든 것이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곳이로다. 누구를 보내면 좋겠는가?” 라고 물으시니,
五加-僉曰 “庶子 有桓雄 勇兼仁智 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 可遣太白而理之.”
오가-첨왈 “서자 유환웅 용겸인지 상유의어역세이홍익인간 가견태백이이지.”
오가(五加)가 모두 대답하여 말하기를, “서자(庶子) 한웅(桓雄)이 용맹함과 인자함 그리고 지혜를 함께 갖추고 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그를 태백(太白)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니
乃授天符印三種 仍勅曰 “如今人物 業已造完矣 君 勿惜厥勞 率衆三千而往 開天立敎 在世理化 爲萬世子孫之洪範也
내수천부인삼종 잉칙왈 여금인물 업이조완의 군 물석궐로 솔중삼천이왕 개천입교 재세이화 위만세자손지홍범야
마침내 세 가지의 천부인(天符印)을 주시며 이에 말씀을 하시기를, “이제 사람과 만물의 대업(大業)이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는 그러한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서 하늘의 뜻을 열고(開天), 가르침을 세우고(立敎), 재세이화(在世理化)하고, 만세의 자손들의 큰 모범이 될 하늘의 법도(洪範)를 세우도록 하여라.” 라고 하셨다.
時 有盤固者-好奇術 欲分道而往 請 乃許之. 遂積財寶 率十干十二支之神將 與共工.有巢.有苗.有燧 偕至三危山拉林洞窟 而立爲君 謂之諸畎 是謂盤固可汗也.
시 유반고자-호기술 욕분도이왕 청 내허지. 수적재보 율십간십이지지신장 여공공.유소.유묘.유수 해지삼위산납림동굴 이입위군 위지제견 시위반고가한야.
이때에 반고(盤固)라는 자가 있었는데 괴상한 술법을 즐기며, 하늘의 법도를 나누고자 하여
안파견께 가서 청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마침내 (반고는) 재물과 보물을 꾸리고 10간 12지(十干十二支)의 신장(神將)들을 이끌고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삼위산(三危山)의 라림동굴(拉林洞窟)에 이르러 군주(君主)가 되니 이를 일러 제견(諸畎: 西夷)이라 하고, 반고가한(盤固可汗)이라 하였다.
於是 桓雄 率衆三千 降于太白山頂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어시 환웅 율중삼천 강우태백산정신단수하 위지신시 시위환웅천왕야. 장풍백.우사.운사 이주곡.주명.주형.주병.주선악 범주인간삼백육십여사 재세이화 홍익인간.
이에 한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오시니
이를 신시(神市)라 하고 이분을 한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穀食), 생명(生命), 형벌(刑罰), 질병(疾病), 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재세이화(在世理化)하고 홍익인간(弘益人間)하셨다.
時 有一熊一虎 同隣而居 嘗祈于神壇樹 “願化爲神戒之氓.” 雄 聞之 曰“可敎也.” 乃以呪術 換骨移神 先以神遺靜解 靈其艾一炷 蒜二十枚 戒之 曰“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시 유일웅일호 동린이거 상기우신단수 원화위신계지맹 웅 문지 왈가교야 내이주술 환골이신 선이신유정해 령기애일주 산이십매 계지 왈“이배식지. 부견일광백일 편득인형.”
이때에 한무리의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이 이웃하여 함께 살았는데, 일찍이 이들이 신단수로 가서 “원컨대 신(神)의 계율(戒律)을 지키며 살아가는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하고 빌었다. 한웅(桓雄)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가히 가르칠 수 있겠다”하시고, 마침내 주술(呪術)로써 환골(換骨)케 하고 정신을 개조시킬 때, 먼저 신(神)으로써 영혼을 고요하게 하고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내어 주시면서 이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되리라.”하셨다.
仍戒之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自由成眞 平等濟物 便得化人 踐形之大人者也
잉계지왈 이배식지 불견일광백일 자유성진 평등제물 편득화인 천형지대인자야
이에 이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스스로 참됨을 이루고(自由成眞), 고루 같게 만물을 구제하며(平等濟物), 쉽게 다른 사람을 교화할 수 있으며(便得化人), 천형(踐形)의 대인(大人)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熊虎二族 皆得而食之 忌三七日 熊 能耐飢寒 遵戒而得儀容 虎 則放慢不能忌 而不得善業 是二性之不相若也.
웅호이족 개득이식지 기삼칠일 웅 능내기한 준계이득의용 호 칙방만부능기 이부득선업 시이성지부상약야.
웅호(熊虎) 두 부족은 모두 이를 받아서 먹고 삼칠일(三七日)동안 금기(禁忌)하기로 하여
웅(熊)은 배고프고 추운 것을 견디고 계율을 준수하여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되었지만, 호(虎)는 제멋대로 하고 게을러서 금기(禁忌)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두 무리의 성품이 서로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熊女者-無與爲歸故 每於壇樹下 呪願有孕 乃假化爲桓而使與之爲婚 懷孕生子有帳.
웅녀자-무여위귀고 매어단수하 주원유잉 내가화위환이사여지위혼 회잉생자유장.
웅녀(熊女)가 함께 혼인할 자가 없었으므로 제단(祭壇)의 나무 아래에서 늘 잉태할 수 있기를 빌고 원하니 이에 한웅께서 임시로 변화하여 한(桓)이 되어 그와 더불어 혼인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장부(帳簿)에 실리게 되었다.
桓雄天王 肇自開天 生民施化 演天經 講神誥 大訓于衆.
환웅천왕 조자개천 생민시화 연천경 강신고 대훈우중.
한웅천왕께서 비로소 몸소 하늘을 열어(開天) 백성들을 살 수 있도록 하고 교화를 베풀고
천경(天經)과 신고(神誥)를 강연(講演)하시어 백성들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셨다.
自是以後 蚩尤天王 闢土地 採銅鐵 鍊兵興産.
자시이후 치우천왕 벽토지 채동철 연병흥산
이후에 치우천왕(蚩尤天王)께서 토지(土地)를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사를 조련하고 산업(産業)을 일으켰다.
蚩尤古天子 龍魚河圖云黃帝攝政有蚩尤兄弟八十人 獸身人語銅頭鐵額食沙 造五兵仗刀戟大弩威振天下 誅殺無道萬民.
치우고천자 용어하도운황제섭정유치우형제팔십인 수신인어동두철액식사 조오병장도극대노위진천하 주살무도만민.
치우는 옛 천자 이다. 용어하도에서 황제가 섭정시 치우의 형제 81인이 있었는데, 짐승의 몸으로 사람의 말을 썼으며 머리는 동이고 이마는 철이며 모래를 먹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오병을 양성하고 무기를 만들어 천하를 진동케하고 무도하게 만민을 살해하였다.
時 九桓 皆以三神 爲一源之祖 主蘇塗 主管境 主責禍 與衆議 一歸爲和白.
시 구환 개이삼신 위일원지조 주소도 주관경 주책화 여중의 일귀위화백.
때에 구한(九桓)은 모두 삼신(三神)을 모두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蘇塗)를 주관하고, 관경(管境)을 주관하며, 책화(責禍)를 주관하는 것 등을 모두 백성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하나로 귀결되게 하였는데 이를 화백(和白)이라 하였다.
竝智生雙修 爲居佺. 自是 九桓 悉統于三韓管境之天帝子 乃號曰檀君王儉.
병지생쌍수 위거전. 자시 구환 실통우삼한관경지천제자 내호왈단군왕검.
이에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전(佺: 신선의 경지)에 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구한(九桓)은 모조리 삼한(三韓) 관경(管境)의 천제(天帝)의 아들에 통합이 되니 이를 일컬어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密記 云 “桓國之末 有難治之强族 患之 桓雄 乃以三神設敎 以佺戒爲業 而聚衆作誓 有勸懲善惡之法 自是 密有剪除之志.”
밀기 운 “환국지말 유난치지강족 환지 환웅 내이삼신설교 이전계위업 이취중작서 유권징선악지법 자시 밀유전제지지.”
밀기(密記)에 이르기를, “한국(桓國)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이 있어서 걱정거리였다. 한웅께서 이에 삼신(三神)으로 가르침을 만들고 전계(佺戒)로서 업(業)2)을 삼고 백성들을 모아 서약을 하게하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법(法)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몰래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을) 가지를 치고 제거할 뜻을 품었다.”라고 하였다.
時 族號不一 俗尙漸岐 原住者爲虎 新住者爲熊.
시 족호불일 속상점기 원주자위호 신주자위웅.
이때에 부족들의 호칭은 하나로 되지 않았고 풍속도 오히려 점점 달라졌다. 원래 살던 무리(原住者)는 호족(虎族)이었으며 새로 살기 시작한 무리(新住者)은 웅족(熊族)이었다.
虎性 嗜貪殘忍 專事掠奪 熊性 愚愎自恃 不肯和調 雖居同穴
호성 기탐잔인 전사약탈 웅성 우퍅자시 부긍화조 수거동혈
호족(虎族)의 성질은 잔인한 것을 즐기며 탐욕이 많아서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웅족(熊族)의 성질은 어리석으며 또 자만에 쌓여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久益疎遠 未嘗假貸 不通婚嫁 事每多不服 咸未有一其途也
구익소원 미상가대 부통혼가 사매다부복 함미유일기도야
날로 멀어지기만 해서 일찍이 서로 빌려줄 줄 몰랐고 혼인도 터놓고 한 적이 없었으며 일마다 서로 따르지 않았고 모두가 그 길이 하나로 된 적이 없었다.
至是 熊女君 聞桓雄有神德 乃率衆往見曰“願賜一穴廛 一爲神戒之盟.”
지시 웅여군 문환웅유신덕 내솔중왕견왈“원사일혈전 일위신계지맹.”
이에 이르러 웅녀국의 임금(熊女君)이 한웅께서 신과 같은 덕이 있다함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가 뵙고 “원컨대 한 나라에 함께 살 터전(穴)을 내려주시고 신계의 백성(神戒之盟)의 일원으로 받아 주옵소서.”라고 말을 하였다.
雄乃許之 使之奠接 生子有産 虎 終不能悛 放之四海. 桓族之興 始此焉.
웅내허지 사지전접 생자유산 호 종부능전 방지사해. 환족지흥 시차언.
한웅께서 이를 허락하시고 웅족(熊族)을 받아들여 후손을 낳고 산업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호족(虎族)은 끝내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이를 사해(四海)밖으로 내쫓았다. 한족(桓族)의 일어남이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後 有葛古桓雄 與炎農之國 劃定彊界. 又數傳而有慈烏支桓雄 神勇冠絶 以銅頭鐵額 能作大霧 造九冶而採鑛 鑄鐵作兵 天下大畏之. 世號爲蚩尤天王 蚩尤 俗言“雷雨大作 山河改換之義.”也
후 유갈고환웅 여염농지국 획정강계. 우수전이유자오지환웅 신용관절 이동두철액 능작대무 조구야이채광 주철작병 천하대외지. 세호위치우천왕 치우 속언“뇌우대작 산하개환지의.”야
뒤에 갈고한웅(葛古桓雄)이 계셔서 염제신농(炎帝神農)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했다. 또 몇 대를 전해서 자오지한웅(慈烏支桓雄)이 계셨는데, 신령스런 용맹함이 매우 뛰어나시어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銅頭鐵額)를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아홉 곳의 야금소(冶金所)를 만들어, 광석을 캐고 쇠를 주조하여 병기(兵器)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치우천왕(蚩尤天王)이라고 불렀으니 치우(蚩尤)란 속언(俗言)으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이다.
蚩尤天王 見炎農之衰 遂抱雄圖 屢起天兵於西 又自索度 進兵據有淮岱之間. 及軒侯之立也 直赴涿鹿之野 擒軒轅而臣之 後 遣吳將軍 西擊高辛 有功.
치우천왕 견염농지쇠 수포웅도 루기천병어서 우자색도 진병거유회대지간. 급헌후지입야 직부탁록지야 금헌원이신지 후 견오장군 서격고신 유공.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서쪽에서 천병(天兵)을 일으키셨다. 또 색도(索度)로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淮.岱)사이에 웅거하였다. 헌원(軒轅)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涿鹿)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헌원(軒轅)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으시고, 뒤에 오장군(吳將軍)을 보내 서쪽으로 고신(高辛)을 쳐 공을 세우게 하였다.
時 天下鼎峙 涿之北 有大撓 東有倉頡 西有軒轅 自相以兵 欲專其勝而未也.
시 천하정치 탁지북 유대요 동유창힐 서유헌원 자상이병 욕전기승이미야.
이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涿)의 북쪽에 대요(大撓)1)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倉頡)2)이 있었으며 서쪽엔 헌원(軒轅)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독차지해보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初 軒轅 稍後起於蚩尤 每戰不利. 欲依大撓而未得 又依倉頡而不得 二國 皆蚩尤之徒也. 大撓 嘗學干支之術 倉頡 受符圖之文 當時諸侯-罔不臣事者 亦以此也.
초 헌원 초후기어치우 매전부리. 욕의대요이미득 우의창힐이부득 이국 개치우지도야. 대요 상학간지지술 창힐 수부도지문 당시제후-망부신사자 역이차야.
처음 헌원(軒轅)은 치우천왕(蚩尤天王)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요(大撓)에 의존하려고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倉頡)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천왕(蚩尤天王)을 따르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요(大撓)는 일찍이 간지의 술(干支之術)을 배웠고 창힐(倉頡)은 부도의 글(符圖之文)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또한 이 때문이다.
司馬遷 史記 曰 諸侯咸來賓從 而蚩尤-最爲暴 天下-莫能伐 軒轅 攝政 蚩尤-有兄弟八十一人
竝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 造五丘杖 刀.戟.太弩 威振天下 蚩尤 古天子之號也.
사마천 사기 왈 제후함래빈종 이치우-최위폭 천하-막능벌 헌원 섭정 치우-유형제팔십일인
병수신인어 동두철액 식사 조오구장 도.극.태.노 위진천하 치우 고천자지호야.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으나 치우(蚩尤)가 지극히 횡포하여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었다. 헌원(軒轅)이 섭정할 때에 치우(蚩尤)는 형제가 81인이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獸身人語),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銅頭鐵額)를 하고, 모래를 먹으며(食沙), 오구장(五丘杖), 도극(刀戟), 태노(太弩)를 만드니 그 위세를 천하에 떨쳤다. 치우는 옛 천자(天子)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 참고: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倍達 桓雄 定有天下之號也. 其所都 曰神市. 後 徙靑邱國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배달 환웅 정유천하지호야. 기소도 왈신시. 후 사청구국 전십팔세 역일천오백육십오년.
배달(倍達)은 한웅(桓雄)께서 천하에 나라를 정하고 부른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神市)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겼으며 18세를 전하고 1,565년을 누렸다.
一世曰 桓雄天皇 一云居發桓 在位九十四年 壽一百二十歲
二世曰 居佛理桓雄 在位八十六年 壽一百二歲
三世曰 右耶古桓雄 在位九十九年 壽一百三十五歲
四世曰 慕士羅桓雄 在位一百七年 壽一百二十九歲
五世曰 太虞儀桓雄 在位九十三年 壽一百一十五歲
六世曰 多儀發桓雄 在位九十八年 壽一百十歲
七世曰 居連桓雄 在位八十一年 壽一百四十歲
八世曰 安夫連桓雄 在位七十三年 壽九十四歲
九世曰 養雲桓雄 在位九十六年 壽一百三十九歲
十世曰 葛古桓雄 又曰葛台天王 又曰瀆盧韓 在位一百年 壽一百二十五歲
十一世曰 居耶發桓雄 在位九十二年 壽一百四十九歲
十二世曰 州武愼桓雄 在位一百五年 壽一百二十三歲
十三世曰 斯瓦羅桓雄 在位六十七年 壽一百歲
十四世曰 慈烏支桓雄 世稱蚩尤天王 徙都靑邱國 在位一百九年 壽一百五十一歲
十五世曰 蚩額特桓雄 在位八十九年 壽一百一十八歲
十六世曰 祝多利桓雄 在位五十六年 壽九十九歲
十七世曰 赫多世桓雄 在位七十二年 壽九十七歲
十八世曰 居弗檀桓雄 或云檀雄 在位四十八年 壽八十二歲
1세를 한웅천황(桓雄天皇)이라 하며 또한 거발한(居發桓)이라 하니 재위 94년에 120세까지 사셨다.
2세는 거불리한웅(居佛理桓雄)이니 재위 86년 102세까지 사셨다.
3세는 우야고한웅(右耶古桓雄)이니 재위 99년 135세까지 사셨다.
4세는 모사라한웅(慕士羅桓雄)이니 재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는 태우의한웅(太虞儀桓雄)이니 재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
6세는 다의발한웅(多儀發桓雄)이니 재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
7세는 거련한웅(居連桓雄)이니 재위 81년에 140세까지 사셨다.
8세는 안부련한웅(安夫連桓雄)이니 재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9세는 양운한웅(養雲桓雄)이니 재위 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
10세는 갈고한웅(葛古桓雄) 또는 갈태천왕(葛台天王) 또는 독로한(瀆盧韓)이라 하니 재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
11세는 거야발한웅(居耶發桓雄)이니 재위 92년에 149세까지 사셨다.
12세는 주무신한웅(州武愼桓雄)이니 재위 105년 123세까지 사셨다.
13세는 사와라한웅(斯瓦羅桓雄)이니 재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
14세는 자오지한웅(慈烏支桓雄)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이라 하며
청구국(靑邱國)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 까지 사셨다.
15세는 치액특한웅(蚩額特桓雄)이니 재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
16세는 축다리한웅(祝多利桓雄)이니 재위 56년에 99세까지 사셨다.
17세는 혁다세한웅(赫多世桓雄)이니 재위 72년에 97세까지 사셨다.
18세는 거불단한웅(居弗檀桓雄) 혹은 단웅(檀雄)이라 하는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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