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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 第四 義解 券五- 歸竺諸師

歸竺諸師

 

인도에서 돌아온 여러 승려들

 

廣函求法高僧傳云 釋阿離那[一作耶]跋摩[一作磨] 新羅人也. 初希正敎 早入中華 思覲聖蹤 勇銳彌增. 以貞觀年中 離長安到五天 住那蘭陀寺 多閱律論 抄寫貝莢. 痛矣歸心 所期不遂 忽於寺中無常 齡七十餘.”

광함구법고승전운 석아리나[일작야]발마[일작마] 신라인야. 처희정교 조입중화 사근성종 용예미증. 이정관년중 이장안도오천 주나란타사 다열율론 초사패협. 통의귀심 소기불수 홀어사중무상 영칠십세.”

 

광함(廣函)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는 야()라고도 한다.] 발마(跋摩)[()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 불교에 뜻을 두고 일찍 중국에 들어가서 성인의 자취를 두루 찾아보다가 용기가 더욱 솟아올랐다. 그래서 정관(貞觀) 연간(서기 627~649)에 당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축(五天竺, 인도를 편의상 5등분한 것이다.)에 이르러 나란타사(那爛陀寺)에 머물며 율장과 논장을 많이 열람하고 패협(貝莢, 패엽. 인도에서 종이 대신 사용하는 나뭇잎)에 베껴 썼다. 고국에 너무도 돌아가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나이 70여 세였다.

 

繼此有惠業玄泰求本玄恪惠輪玄遊 復有二亡名法師等 皆忘身順法 觀化中天 而或夭於中途 或生存住彼寺者. 竟未有能復雞貴與唐室者. 唯玄泰師 克返歸唐 亦莫知所終.

계차유혜업현태구본현각혜륜현유 복유이망명법사등 개망신순법 관화중천 이록요어중도 혹생존주피사자. 의미유능복계귀여당실자. 유현태사 극반귀당 역막지소종.

 

그의 뒤를 이어 혜업(惠業)ㆍ현태(玄泰)ㆍ구본(求本)ㆍ현각(玄恪)ㆍ혜륜(惠輪)ㆍ현유(玄遊) 등과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법사가 있었는데, 모두 자신을 잊고 불법을 따라 부처의 교화를 보려고 중천축(中天竺)에 갔지만, 혹은 도중에서 죽기도 하고 혹은 살아남아 그 절에 머문 이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신라와 당나라로 돌아오지는 못하였다. 오직 현태법사(玄泰法師)만 당나라로 돌아왔지만 역시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天竺人呼海東云 矩矩吒䃜說羅’. ‘矩矩吒言雞也 䃜說羅言貴也. 彼土相傳云 其國敬雞神而取尊 故戴翎羽而表飾也.”

천축인호해동운 구구탁예설라. 구구탁언계야. 예설라언귀야. 피사상전운 기국경계신이취존 고재령우이표식야.

 

천축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구구탁예설라(矩矩吒䃜說羅)’라 한다. ‘구구탁은 닭을 말하는 것이고, ‘예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다. 그 땅에서 서로 다음과 같이 전해 말한다. “신라에서는 닭의 신을 받들어 존경하기 때문에 그 깃털을 꽂아서 장식한다.”

 

讚曰 天竺天遙萬疊山 可憐遊士力登攀 幾回月送孤帆去 未見雲隨一杖還.

찬왈 천축천요만첩산 가린유사역등반 기회월송고범거 미견운슈일장환.

 

다음과 같이 기린다.

 

천축 하늘 멀고 먼 첩첩산길을 유학 가는 스님네들 힘들게 넘어가는구나.

몇 번의 달이 지나도록 떠나갔건만 구름속에 지팡이 짚고 돌아오는 이 보지 못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