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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 第二 奇異 券二- 處容郞 望海寺

處容郞 望海寺

 

第四十九 憲康大王之代 自京師至於海內 比屋連墻 無一草屋.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於四時.

제사십구 헌강대왕지대 자경사지어해내 비옥연장 무일초옥. 생가부절도로 풍우조어사시.

 

49대 헌강대왕(憲康大王)의 시대에는 서울부터 전국에 기와집이 즐비하고 담장이 서로 이어져 있었으며, 초가집이 단 한 채도 없었다. 풍악과 노랫소리가 길에서도 끊이질 않았고 계절도 순조로웠다.

 

於是 大王遊開雲浦[在鶴城西南 今蔚州] 王將還駕. 晝歇於汀邊 忽雲霧冥曀 迷失道路. 怪問左右 日官奏云 此東海龍所變也 宜行勝事以解之.”

어시 대왕유개운포[재학성서남 금울주] 왕장환가 주헐어정변 홀운무명예 미실도로.괴문좌우 일관주운 차동해용소변야 의행승사이해지.”

 

이 당시 대왕이 개운포(開雲浦)[학성(鶴城) 서남쪽에 있는데 지금의 울주(蔚州)이다.]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려고 하던 참이었다.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길을 잃어버렸다. 이상하게 여겨 주변 신하들에게 물었더니, 천문을 담당한 관리가 아뢰었다. “이것은 동해 용의 조화입니다.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합니다.”

 

於是勅有司 爲龍刱佛寺近境. 施令已出 雲開霧散. 因名開雲浦. 東海龍喜 乃率七子 現於駕前 讚德獻舞奏樂.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名曰處容. 王以美女妻之 欲留其意 又賜級干職.

어시칙유사 위용창사근경. 시영이출 운개무산. 인명개운포. 동해용희 내솔칠자 현어가전 찬덕헌무주악. 기일자수가입경 보좌왕정 명왈처용. 왕이미녀처지 욕류기의 우사급간직.

 

그래서 신하에게 명해 용을 위하여 이 근처에 절을 지어주도록 하였다. 명을 내리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그래서 이름을 개운포(開雲浦)라고 하였다. 동해의 용이 기뻐하며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서 덕을 찬미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그 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 서울에 들어와서 왕의 정치를 보좌해주었으니, 그 이름을 처용(處容)이라고 하였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아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또 급간(級干)의 벼슬도 내렸다.

 

其妻甚美 疫神欽慕之 變爲人 夜至其家 竊與之宿 處容自外至其家 見寢有二人 乃唱歌作舞而退.

기처심미 역신흠모지 변위인 야지기가 절여지숙 처용자외지기가 견침유이인 내창가작무이퇴.

 

처용의 아내는 너무나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그녀를 흠모하였다. 그래서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중에 처용의 집으로 가서 몰래 그 여자와 잤다. 처용이 밖에서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곧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물러갔다.

 

歌曰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肹隱吾下於叱古 二朕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가왈 동경명기월량 여입이유행여가 입양사침의견곤 각오이사지양라 이흘은오라어질고 이짐은수지하언고. 본의오하시여마어은 탈질양을하여위리고.

 

그 노래는 이러하다.

 

서라벌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여라 둘은 내 것이라 하여지고 누구의 아래에 있는고

본디 내 아래에 있어야 하건만 뺏긴걸 어찌하리있고...

 

時神現形 跪於前曰 吾羨公之妻 今犯之矣 公不見怒 感而美之 誓今已後 見畫公之形容 不入其門矣.” 因此 國人門帖處容之形 以僻邪進慶.

시현현형 궤어전왈 오선공지처 금범지의 공불견노 감이미지 서금이후 견화공지형용 불입기문의.” 인차 국인문첩처용지형 이피사진경.

 

바로 그때 역신이 형체를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범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공이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깁니다. 맹세컨대 지금 이후로 공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모습을 그려 붙여 나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王旣還 乃卜靈鷲山東麓勝地置寺 曰望德寺 亦名新房寺 乃爲龍而置也.

왕기환 내복영취산동록승지치사 왈망덕사 역명신방사 내위용이치야.

 

왕이 서울로 돌아온 뒤에 곧 영취산 동쪽 경치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절을 지었으니 망해사(望德寺) 또는 신방사(新房寺)라고도 하니, 곧 용을 위해 세운 절이다.

 

又幸鮑石亭 南山神現舞於御前 左右不見 王獨見之. 有人現舞於前 王自作舞 以像示之. 神之名 或曰祥審. 故至今國人傳此舞 曰御舞詳審 或曰御舞山神. 或云 旣神出舞審象其貌 命工摹刻 以示後代 故云象審 或云霜髥舞 此乃以其形稱之.

우행포석정 남산신현무어어전 좌우불견 왕독견지. 유인현무어전 왕자작무 이상시지. 신지명 혹왈상심 고지금국인전차무 왈어무상심 혹왈어무산신. 혹운 기신출무심상지모 명공모각 이시후대 고운상심 혹운상염무 차내이기형칭지.

 

왕이 또 포석정(鮑石亭)에 행차하였는데, 남산(南山)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서 춤을 추었다. 주변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였고 왕만이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왕도 몸소 그 춤을 추어서 그 춤의 모습을 신하들에게 보여주었다. 신의 이름이 혹자가 상심(祥審)이라고도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라 사람들이 이 춤을 전해오는데, 어무상심(御舞詳審) 혹은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미 신이 나와서 춤을 출 때 그 모습을 자세히[] 본떠서[]’ 장인에게 명해 똑같이 조각하여 후대에 보여주었기 때문에 상심(象審)’이라 한다고도 하였다. 혹은 상염무(霜髥舞)라고도 하니, 이것은 곧 모습에 따라 부른 이름이다.

 

又幸於金剛嶺時 北岳神呈舞 名玉刀鈴. 又同禮殿宴時 地神出舞 名地伯級干.

우행어금강영시 북악신정무 명옥도령. 우동예전연시 지신출무 명지백급간.

 

왕이 또 금강령(金剛嶺)에 행차했을 때 북악(北岳)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옥도령(玉刀鈐)이라고 한다. 또 동례전(同禮殿)에서 연회를 베풀 때 지신(地神)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를 지백급간(地伯級干)이라고 하였다.

 

語法集云 于時山神獻舞 唱歌云智理多都波都波等者 蓋言以智理國者 知而多逃 都邑將破云謂也.”

어법집운 우시산신헌무 창가운지리다도파도파등자 개언이지리국자 지이다조 도읍장파운위야.”

 

어법집(語法集)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당시 산신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등의 말을 한 것은, 대체로 지혜로 다스리던 많은 도읍들이 쓸어없어지고 없어진다.’라고 말한 것이라 한다.”

 

乃地神山神知國將亡 故作舞以警之 國人不悟 謂爲現瑞 耽樂滋甚 故國終亡.

내지신산신지국장만 고작무이경지 국인불오 위위현서 탐악자심 고국종망.

 

이것은 곧 지신과 산신이 나라가 망할 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춤으로 경고를 한 것이지만 나라 사람들은 이 뜻을 깨닫지 못하고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났다고 여기어서 더욱더 그 가락에만 집중하니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