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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雜志 第六-高句麗


雜志 第六-高句麗

 

按通典云 朱蒙以漢建昭二年 自北扶餘東南行 渡普述水 至紇升骨城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 古記云 朱蒙自扶餘逃難 至卒本 則紇升骨城卒本 似一處也.”

안통전운 주몽이한건소이년 자북부여동남행 도진술수 지흘승골성거언 호왕구려 이고위씨. 고기운 주몽자부여도란 지졸본 득홀승골성졸본 사일처야.

 

통전(通典)에는 주몽(朱蒙)이 한()나라 건소(建昭) 2(기원전 37)에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동남방으로 나와서 보술수(普述水)를 건너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句麗)라 하고 성씨를 ()’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기(古記)에는 주몽이 부여로부터 난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홀승골성과 졸본은 같은 지방인 듯하다.

 

漢書志云 遼東郡距洛陽三千六百里 屬縣有無慮 則周禮北鎭醫巫閭山也 大遼於其下置醫州. 玄菟郡 距洛陽東北四千里 所屬三縣 高句麗是其一焉 則所謂朱蒙所都紇升骨城卒本者 蓋漢玄菟郡之界. 大遼國東京之西 漢志所謂玄菟屬縣 高句麗是歟 昔大遼未亡時 遼帝在燕京 則吾人朝聘者 過東京涉遼水 一兩日行至醫州 以向燕薊 故知其然也. 自朱蒙立都紇升骨城 歷四十年 孺留王二十二年 移都國內城[或云尉那巖城 或云不而城].

한서지운 요동군거낙양삼천육백리 속현유무려 즉주례북진의무려산야 대요어기하치의주. 현토군 거낙양동북사천리 소속삼현 고구려시기일언. 즉소위주몽소도흘승골성졸본자 개한현토군지계. 대요동국동경지서 한지소위현토속현 고구려시여. 석대요미망시 요제재연경 즉오인조빙자 과동경섭요수 일양일지행의주 의향연계 고지기연야. 자주몽립도흘승골성 역사십년 유류왕이십이년 이도국내성[혹운위나암성 혹운불이성].

 

한서지(漢書志)에는 요동군(遼東郡)은 낙양(洛陽)과의 거리가 36백 리이며 이에 속한 현으로써 무려(無慮)현이 있었으니 바로 주례(周禮)에 이른바 북진(北鎭)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이며 대요(大遼) 때는 그 아래쪽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현도군(玄菟郡)은 낙양과 동북으로 4천 리 떨어져 있었고 이에 속한 현은 셋인데 고구려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즉 주몽이 도읍을 정한 곳이라고 하는 흘승골과 졸본이란 지방은 아마도 한나라 현도군의 경내이고 대요국 동경의 서쪽인 듯하며, 한서지에 이른바 현도군의 속현으로써의 고구려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 대요가 멸망하기 이전에 요제가 연경(燕京)에 있었으므로 우리 사신들이 동경(東京)을 지나 요수(遼水)를 건너 하루 이틀 사이에 의주에 당도하여 연계(燕薊)로 향하였기 때문에 한서지의 기록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몽이 흘승골성에 도읍을 정한 때로부터 40년이 지나서 유류왕(孺留王) 22(서기 3)에 도읍을 국내성(國內城)[혹은 위나암성(尉那巖城)이라 하고 혹은 불이성(不而城)이라고도 한다.]로 옮겼다.


* 낙양의 동북 4000리.... 당시 里=400-500m로 본다면????

 

按漢書 樂浪郡屬縣 有不而.” 又總章二年 英國公李勣奉勅 以高句麗諸城 置都督府及州縣. 目錄云 鴨淥以北已降城十一 其一國內城 從平壤至此十七驛 則此城亦在北朝境內 但不知其何所耳.

안한서 낙랑군속현 유불이 우총장이년 영국공이적봉칙 이고구려제성 치도독부금주현. 목록운 압록이북이항성십일 기일국내성 종평양지차십칠역 즉차성역재북조경내 단부지기하소이.

 

한서(漢書)에는 낙랑군(樂浪郡)에 속한 현으로 불이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총장(總章) 2(서기 669)에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이 칙명에 의하여 고구려의 모든 성에 도독부와 주현(州縣)을 설치하였다. 그 목록에는 압록(鴨淥)강 이북에서 이미 항복한 성이 열 하나인데 그 중 하나가 국내성이며, 평양(平壤)으로부터 국내성까지는 17개의 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 성도 역시 북조(北朝) 경내에 있었으나 다만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 17개 驛.... 역간 거리를 몽고처럼 150-250km로 보면???? 언뜻 봐도 500km..... 北朝여기선 중국 북조이니 위나라 영역이 된다.  

 

都國內 歷四百二十五年 長壽王十五年 移都平壤 歷一百五十六年 平原王二十八年 移都長安城 歷八十三年 寶臧王二十七年而滅[古人記錄 自始祖朱蒙至寶臧王 歷年丁寧纖悉若此而或云 故國原王十三年 移居平壤東黃城 城在今西京東木覓山中 不可知其然否] 平壤城似今西京 而浿水則大同江是也 何以知之.

도국내 역사백이십오년 장수왕십오년 이도평양 역일백오십육년 평원왕이십팔년 이도장안성 역팔십삼년 보장왕이십칠년이명[고인기록 자시조주몽지보장왕 역년정령섬실약차이혹운 고국원왕십삼년 이거평양동황성 성재금서경동목멱산중 불가지기연부] 평양성사금서경 이패수즉대동강시야 하이지지.

 

고구려는 국내성에 도읍한 지 425년이 지난 장수왕(長壽王) 15(서기 427)에 평양으로 서울을 옮겼으며, 평양에서 156년이 지난 평원왕(平原王) 28(서기 586)에 장안성(長安城)으로 서울을 옮겼으며, 장안성에서 83년이 지난 보장왕(寶臧王) 27(서기 668)에 멸망하였다.[옛 사람들의 기록에는 시조 주몽으로부터 보장왕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가 이와 같이 분명하고 상세하다. 그러나 혹자는 고국원왕(故國原王) 13(서기 343)에 평양 동쪽 황성(黃城)으로 옮겼는데 그 성은 지금 서경의 동쪽 목멱산(木覓山) 가운데 있었다.”고 말하니 어느 말이 옳은지를 알 수 없다.]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西京)인 듯하고 패수(浿水)는 바로 대동강(大同江)이다. 어떻게 이를 알 수 있는가?

 

唐書云 平壤城 漢樂浪郡也 隨山屈繚爲郛 南涯浿水.” 又志云 登州東北海行 南傍海壖過浿江口椒島 得新羅西北.” 又隋煬帝東征詔曰 滄海道軍 舟艫千里 高帆電逝 巨艦雲飛 橫絶浿江 遙造平壤.” 以此言之 今大同江爲浿水 明矣 則西京之爲平壤 亦可知矣.

당서운 평양성 한낙랑군야 수산굴료위부 남애패수 우지운 등주동북해행 남방해연과패강구초도 득신라서북 우수양제동정조왈 창해도군 주로천리 고범전서 거함운비 횡절패강 요조평양 이차언지 금대동강위패수 명의. 즉서경기위평양 역가지의.


당서(唐書)에는 평양성은 한나라의 낙랑군으로서 산굽이를 따라 성을 둘러쌓았고 남으로 패수가 놓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한지에는 등주(登州)에서 동북쪽 물길로 나서서 남쪽으로 물가를 끼고 패강 어귀에 있는 초도(椒島)를 지나면 신라의 서북 지방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한 수 양제(煬帝)의 동방정벌조서에는 창해 방면 군사는 선박이 천 리에 뻗쳤는데 높직한 돛은 번개같이 달리고 커다란 전함들은 구름같이 날아서 패강을 횡단하여 멀리 평양에 다다랐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렇게 보면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인 것이 명백하며 서경이 평양이라는 것도 또한 알 수 있다.


    


唐書云 平壤城亦謂長安 而古記云 自平壤移長安 則二城同異遠近 則不可知矣 高句麗始居中國北地 則漸東遷于浿水之側. 渤海人武藝曰 昔高麗盛時 士三十萬 抗唐爲敵 則可謂地勝而兵强. 至于季末. 君臣昏虐失道 大唐再出師 新羅援助 討平之. 其地多入渤海靺鞨 新羅亦得其南境 以置漢朔溟三州及其郡縣 以備九州焉.

당서운 평양성역위장안.” 이고기운 자평양이장안.” 즉이성동이원근 즉불가지의. 고구려시거중국북지 즉점동천우패수지측. 발해인무예왈 석고려성기 사삼십만 항당위적.” 즉가위지승이병강. 지우계말 군신혼학실도 대당재출사 신라원조 토평지. 기타다인발해말갈 신라역득기남경 이피한삭명삼주급기군현 이비구주언.

 

당서에는 평양성도 장안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기(古記)에는 평양으로부터 장안으로 옮겼다.”고 되어 있으니 두 성이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고구려는 처음에 중국 북부 지역에 있다가 점점 동방의 패수 옆으로 이동하였다. 발해(渤海) 사람 무예(武藝)옛날 고구려의 전성시대에는 군사 30만으로 당과 대적하였다.”고 말하였으니 고구려의 지세가 유리하고 군사가 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에 이르러 임금과 신하가 우매하고 포악하여 각자가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자, 당이 다시 군사를 출동시키고 신라가 이를 도와 그들을 쳐서 평정했던 것이다. 그 지역의 대부분이 발해와 말갈로 편입되고 신라에서도 그 남쪽 지방을 차지하여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3주와 군현을 두어 아홉 주를 설치하였다.


* 고려시대 쓰인 삼국사기인데 고려 전신인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애매한데 그 이유가 뭘까????

또한.... '초도(椒島)를 지나면 신라의 서북 지방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보면 고구려 동남과 신라의 서북이 연한 것.....

반도 안이라면???? 서,북 두 방향 국경이 될 수 없다. 당시 지금처럼 인공위성으로 지리를 보는게 아니기에 서, 북 두 국경을 가졌다 봐야.... 



漢山州 國原城[一云未乙省 一云託長城] 南川縣[一云南買] 駒城[一云滅烏] 仍斤內郡 述川郡[一云省知買] 骨乃斤縣 楊根縣[一云去斯斬] 今勿內郡[一云萬弩] 道西縣[一云都盆] 仍忽 皆次山郡 奴音竹縣 奈兮忽 沙伏忽 蛇山縣 買忽[一云水城] 唐城郡 上忽[一云車忽] 釜山縣[一云松村活達] 栗木郡[一云冬斯肹] 仍伐奴縣 齊次巴衣縣 買召忽縣[一云彌鄒忽] 獐項口縣[一云古斯也忽次] 主夫吐郡 首尒忽 黔浦縣 童子忽縣[一云仇斯波衣] 平淮押縣[一云別史波衣 淮一作唯] 北漢山郡[一云平壤] 骨衣內縣 王逢縣[一云皆伯 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한산주 국원성[일운미을성 일운탁장성] 남천현[일운남매] 구성[일운멸오] 잉근내현 술천군[일운성지매] 골내근현 양근현[일운거사참] 금물내군[일운만노] 도서현[일운도분] 잉홀개차산군 노음죽현 나혜홀 사복홀 사산현 매홀[일운수성] 당성군 상홀[일운거홀] 부산현[일운송촌활달] 율목군[일운동사힐] 잉벌노현 재차파의현 매소홀현[일운미추홀] 장항구현[일운고사야홀차] 주부토현 수이홀 금포현 동자홀현[일운구사파의] 평회압현[일운별사파의 회일작 유] 북한산군[일운평양] 골의내현 왕봉현[일운개백 한씨미녀영안장왕지지 고명왕봉]

 

 

한산주(漢山州): 국원성(國原城)[미을성(未乙省) 또는 탁장성(託長城)이라고도 한다.] 남천현(南川縣)[남매(南買)라고도 한다.] 구성(駒城)[멸오(滅烏)라고도 한다.] 잉근내현(仍斤內郡) 술천군(述川郡)[성지매(省知買)라고도 한다.] 골내근현(骨乃斤縣) 양근현(楊根縣)[거사참(去斯斬)이라고도 한다.] 금물내군(今勿內郡)[만노(萬弩)라고도 한다.] 도서현(道西縣)[도분(都盆)이라고도 한다.] 잉홀(仍忽) 개차산군(皆次山郡) 노음죽현(奴音竹縣) 나혜홀(奈兮忽) 사복홀(沙伏忽) 사산현(蛇山縣) 매홀(買忽)[수성(水城)이라고도 한다.] 당성군(唐城郡) 상홀(上忽)[차홀(車忽)이라고도 한다.] 부산현(釜山縣)[송촌활달(松村活達)이라고도 한다.] 율목군(栗木郡)[동사힐(冬斯 )이라고도 한다.] 잉벌노현(仍伐奴縣)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 매소홀현(買召忽縣)[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한다.] 장항구현(獐項口縣)[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라고도 한다.] 주부토현(主夫吐郡) 수이홀(首尒忽) 금포현(黔浦縣) 동자홀현(童子忽縣)[구사파의(仇斯波衣)라고도 한다.] 평회압현(平淮押縣)[별사파의(別史波衣)라고도 하며 회()를 유()로도 쓴다.] 북한산군(北漢山郡)[평양(平壤)이라고도 한다.] 골의내현(骨衣內縣) 왕봉현(王逢縣)[개백(皆伯)이라고도 한다. 한씨(漢氏) 미녀가 안장왕(安臧王)을 맞던 곳이라 하여 왕봉으로 불렀다.]

 

買省郡[一云馬忽] 七重縣[一云難隱別] 波害平史縣[一云頟蓬] 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 述尒忽縣[一云首泥忽] 達乙省縣[漢氏美女 於高山頭點烽火 迎安臧王之處 故後名高烽] 臂城郡[一云馬忽] 內乙買[一云內尒米] 鐵圓郡[一云毛乙冬非] 梁骨縣 僧梁縣[一云非勿] 功木達[一云熊閃山] 夫如郡 於斯內縣[一云斧壤] 烏斯含達 阿珍押縣[一云窮嶽] 所邑豆縣 伊珍買縣 牛岑郡[一云牛嶺 一云首知衣] 獐項縣[一云古斯也忽次] 長淺城縣[一云耶耶 一云夜牙] 麻田淺縣[一云泥沙彼忽] 扶蘇岬 若只頭恥縣[一云朔頭 一云衣頭] 屈於押[一云紅西] 冬比忽 德勿縣 津臨城縣[一云烏阿忽]

매성군[일운마홀] 칠중현[일운난은별] 파해평사현[일운액봉] 천정구현[일운어을매곶] 술이홀현[일운수니홀] 달을성현[한씨미녀 어고산두점봉화 영안장왕지처 고후명고봉] 비성군[일운마홀] 내을매[일운내이미] 철원군[일운모지동비] 양골현 승량현[일운비물] 공목달[일운웅섬산] 부여군 어사내현[일운부양] 오사함달 아진압현[일운궁악] 소읍두현 이진매현 우잠군[일운우령 일운수지의] 장항현[일운고사야홀차] 장천성현[일운야야 일운야아] 마전천현[일운니사파홀] 부소압약지두치현[일운삭두 일운의두] 굴어압[일운홍서] 동비홀 덕물현 진림성현[일운오아홀]

 

매성군(買省郡)[마홀(馬忽)이라고도 한다.] 칠중현(七重縣)[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한다.] 파해평사현(波害平史縣)[액봉(頟蓬)이라고도 한다.] 천정구현(泉井口縣)[어을매곶(於乙買串)이라고도 한다.] 술이홀현(述尒忽縣)[수니홀(首泥忽)이라고도 한다.] 달을성현(達乙省縣)[한씨 미녀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놓고 안장왕을 맞던 곳이라 하여 후에 고봉(高烽)이라고 불렀다.] 비성군(臂城郡)[마홀(馬忽)이라고도 한다.] 내을매(內乙買)[내이미(內尒米)라고도 한다.] 철원군(鐵圓郡)[모지동비(毛乙冬非)라고도 한다.] 양골현(梁骨縣) 승량현(僧梁縣)[비물(非勿)이라고도 한다.] 공목달(功木達)[웅섬산(熊閃山)이라고도 한다.] 부여군(夫如郡) 어사내현(於斯內縣)[부양(斧壤)이라고도 한다.] 오사함달(烏斯含達) 아진압현(阿珍押縣)[궁악(窮嶽)이라고도 한다.] 소읍두현(所邑豆縣) 이진매현(伊珍買縣) 우잠군(牛岑郡)[우령(牛嶺) 또는 수지의(首知衣)라고도 한다.] 장항현(獐項縣)[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라고도 한다.] 장천성현(長淺城縣)[야야(耶耶) 또는 야아(夜牙)라고도 한다.] 마전천현(麻田淺縣)[니사파홀(泥沙彼忽)이라고도 한다.] 부소압(扶蘇岬) 약지두치현(若只頭恥縣)[삭두(朔頭) 또는 의두(衣頭)라고도 한다.] 굴어압(屈於押)[홍서(紅西)라고도 한다.] 동비홀(冬比忽) 덕물현(德勿縣) 진림성현(津臨城縣)[오아홀(烏阿忽)이라고도 한다.]

 

穴口郡[一云甲比古次] 冬音奈縣[一云休陰] 高木根縣[一云達乙斬] 首知縣[一云新知] 大谷郡[一云多知忽] 水谷城縣[一云買旦忽] 十谷縣[一云德頓忽] 冬音忽[一云豉鹽城] 刀臘縣[一云雉嶽城] 五谷郡[一云弓次云忽] 內米忽[一云池城 一云長池] 漢城郡[一云漢忽 一云息城 一云乃忽] 鵂鶹城[一云租波衣 一云鵂巖郡] 獐塞懸[一云古所於] 冬忽[一云于冬於忽] 今達[一云薪達 一云息達] 仇乙峴[一云屈遷] 今豊州. 闕口 今儒州. 栗口[一云栗川] 今殷栗縣. 長淵 今因之. 麻耕伊 今靑松縣. 楊岳 今安嶽郡. 板麻串 今嘉禾縣. 熊閑伊 今水寧縣. 甕遷 今甕津縣. 付珍伊 今永康縣. 鵠島 今白嶺鎭. 升山 今信州. 加火押 夫斯波衣縣[一云仇史峴]

혈구군[일운갑비고차] 동음나현[일운휴음] 고목근현[일운달을참] 수지현[일운신지] 대곡군[일운다지홀] 수곡성현[일운매단홀] 십곡현[일운덕둔홀] 동음홀[일운시염성] 도랍현[일운치악성] 오곡군[일운궁차운홀] 내미홀[일운지성장지] 한성군[일운한홀 일운식성 일운내홀] 휴류성[일운조파의 일운휴암군] 장새현[일운고소어] 동홀[일운우동어홀] 금달[일운신달 일운식달] 구을현[일운굴천]는 금풍주. 궐구 금유주. 율구[일운율천]는 금은률현. 장연 금인지. 마경이 금청송현. 양악 금안악군. 판마곶 금가화현. 웅한 금수령현, 옹천 금옹진현. 부진이 금영강현. 곡도 금백령진. 승산 금신주. 가화압 부사파의현[일운구사현]

 

혈구군(穴口郡)[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 동음나현(冬音奈縣)[휴음(休陰)이라고도 한다.] 고목근현(高木根縣)[달을참(達乙斬)이라고도 한다.] 수지현(首知縣)[신지(新知)라고도 한다.] 대곡군(大谷郡)[다지홀(多知忽)이라고도 한다.] 수곡성현(水谷城縣)[매단홀(買旦忽)이라고도 한다.] 십곡현(十谷縣)[덕둔홀(德頓忽)이라고도 한다.] 동음홀(冬音忽)[시염성(豉鹽城)이라고도 한다.] 도랍현(刀臘縣)[치악성(雉嶽城)이라고도 한다.] 오곡군(五谷郡)[궁차운홀(弓次云忽)이라고도 한다.] 내미홀(內米忽)[지성(池城) 또는 장지(長池)라고도 한다.] 한성군(漢城郡)[한홀(漢忽) 또는 식성(息城) 또는 내홀(乃忽)이라고도 한다.] 휴류성(鵂鶹城)[조파의(租波衣) 또는 휴암군(鵂巖郡)이라고도 한다.] 장새현(獐塞懸)[고소어(古所於)라고도 한다.] 동홀(冬忽)[우동어홀(于冬於忽)이라고도 한다.] 금달(今達)[신달(薪達) 또는 식달(息達)이라고도 한다.] 구을현(仇乙峴)[굴천(屈遷)이라고도 한다.]는 지금의 풍주(豊州)이다. 궐구(闕口)는 지금의 유주(儒州)이다. 율구(栗口)[율천(栗川)이라고도 한다.]는 지금의 은률현(殷栗縣)이다. 장연(長淵)은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마경이(麻耕伊)는 지금의 청송현(靑松縣)이다. 양악(楊岳)은 지금의 안악군(安嶽郡)이다. 판마곶(板麻串)은 지금의 가화현(嘉禾縣)이다. 웅한이(熊閑伊)는 지금의 수령현(水寧縣), 옹천(甕遷)은 지금의 옹진현(甕津縣)이다. 부진이(付珍伊)는 지금의 영강현(永康縣)이다. 곡도(鵠島)는 지금의 백령진(白嶺鎭)이다. 승산(升山)은 지금의 신주(信州)이다. 가화압(加火押) 부사파의현(夫斯波衣縣)[구사현(仇史峴)이라고도 한다.]

 

牛首州[首一作頭 一云首次若 一云烏根乃] 伐力川縣 橫川縣[一云於斯買] 砥峴縣 平原郡[北原] 奈吐郡[一云大堤] 沙熱伊縣 赤山縣 斤平郡[一云並平] 深川縣[一云伏斯買] 楊口郡[一云要隱忽次] 猪足縣[一云烏斯廻] 玉岐縣[一云皆次丁] 三峴縣[一云密波兮] 狌川郡[一云也尸買] 大楊管郡[一云馬斤押] 買谷縣 古斯馬縣 及伐山郡 伊伐支縣[一云自伐支] 藪狌川縣[一云藪川] 文峴縣[一云斤尸波兮] 母城郡[一云也次忽] 冬斯忽 水入縣[一云買伊縣] 客連郡[客一作各 一云加兮牙] 赤木縣[一云沙非斤乙] 管述縣 猪闌峴縣[一云烏生波衣 一云猪守] 淺城郡[一云比烈忽] ?谷縣[一云首乙呑] 菁達縣[一云昔達] 薩寒縣 加支達縣 於支呑[一云翼谷] 買尸達 泉井郡[一云於乙買] 夫斯達縣 東墟縣[一云加知斤] 奈生郡 乙阿且縣 于烏縣[一云郁烏] 酒淵縣.

우수주[수일작두 일운수차약 일운오근내] 벌력천현 횡천현[일운어사매] 지현현 평원군[북원] 나토군[일운대제] 사열이현 적산현 근평군[일운병평] 심천현[일운복사매] 양구군[일운요은홀차] 저족현[일운오사회] 옥기현[일운개차정] 삼현현[일운밀파혜] 성천군[일운야시매] 대양관군[일운마근압] 매곡현 고사마현 급벌산군 이벌지현[일운자벌지] 수성천현[일운수] 문현현[일운근시파혜] 모성군[일운야차홀] 동사홀 수입현[일운매이현] 객련군[객일작각 일운가혜아] 적목현[일운사비근을] 관술현 저란현현[일운오생파의 일운저수] 천성군[일운비열홀] 경곡현[일운수을탄] 청달현[일운석달] 살한현 가지달현 어지탄[일운익곡] 매시달 천정군[일운어을매] 부사달현 동허현[일운가지근] 나생군 을아차현 우오현[일운욱오] 주연현.

 

우수주(牛首州)[()를 두()로 쓰기도 하며 수차약(首次若) 또는 오근내(烏根乃)라고도 한다.] 벌력천현(伐力川縣) 횡천현(橫川縣)[어사매(於斯買)라고도 한다.] 지현현(砥峴縣) 평원군(平原郡)[북원(北原)] 나토군(奈吐郡)[대제(大堤)라고도 한다.] 사열이현(沙熱伊縣) 적산현(赤山縣) 근평군(斤平郡)[병평(並平)이라고도 한다.] 심천현(深川縣)[복사매(伏斯買)라고도 한다.] 양구군(楊口郡)[요은홀차(要隱忽次)라고도 한다.] 저족현(猪足縣)[오사회(烏斯廻)라고도 한다.] 옥기현(玉岐縣)[개차정(皆次丁)이라고도 한다.] 삼현현(三峴縣)[밀파혜(密波兮)라고도 한다.] 성천군(狌川郡)[야시매(也尸買)라고도 한다.] 대양관군(大楊管郡)[마근압(馬斤押)이라고도 한다.] 매곡현(買谷縣) 고사마현(古斯馬縣) 급벌산군(及伐山郡) 이벌지현(伊伐支縣)[자벌지(自伐支)라고도 한다.] 수성천현(藪狌川縣)[수천(藪川)이라고도 한다.] 문현현(文峴縣)[근시파혜(斤尸波兮)라고도 한다.] 모성군(母城郡)[야차홀(也次忽)이라고도 한다.] 동사홀(冬斯忽) 수입현(水入縣)[매이현(買伊縣)이라고도 한다.] 객련군(客連郡)[()을 각()이라고도 쓰며 가혜아(加兮牙)라고도 한다.] 적목현(赤木縣)[사비근을(沙非斤乙)이라고도 한다.] 관술현(管述縣) 저란현현(猪闌峴縣)[오생파의(烏生波衣) 또는 저수(猪守)라고도 한다.] 천성군(淺城郡)[비열홀(比烈忽)이라고도 한다.] 경곡현(谷縣)[수을탄(首乙呑)이라고도 한다.] 청달현(菁達縣)[석달(昔達)이라고도 한다.] 살한현(薩寒縣) 가지달현(加支達縣) 어지탄(於支呑)[익곡(翼谷)이라고도 한다.] 매시달(買尸達) 천정군(泉井郡)[어을매(於乙買)라고도 한다.] 부사달현(夫斯達縣) 동허현(東墟縣)[가지근(加知斤)이라고도 한다.] 나생군(奈生郡) 을아차현(乙阿且縣) 우오현(于烏縣)[욱오(郁烏)라고도 한다.] 주연현(酒淵縣)

 

何瑟羅州[一云河西良 一云河西] 乃買縣 東吐縣 支山縣 穴山縣. 䢘城郡[一云加阿忽] 僧山縣[一云所勿達] 翼峴縣[一云伊文縣] 達忽 猪imagefont穴縣[一云烏斯押] 平珍峴縣[一云平珍波衣] 道臨縣[一云助乙浦]. 休壤郡[一云金惱] 習比谷[一作呑] 吐上縣 岐淵縣 鵠浦縣[一云古衣浦] 竹峴縣[一云奈生於] 滿若縣[一云沔兮] 波利縣. 于珍也郡 波且縣[一云波豊] 也尸忽郡 助攬郡[一云才攬] 靑已縣 屈火縣 伊火兮縣 于尸郡 阿兮縣 悉直郡[一云史直] 羽谷縣.

하슬라주[일운하서량 일운하서] 내매현 동토현 지산현 혈산현. 수성군[일운가아홀] 승산현[일운소물달] 익현현[일운이문현] 달홀 저수혈현[일운오사압] 평진현현[일운평진파의] 도림현[일운조을포]. 휴양군[일운금뇌] 습비곡[일운탄] 토상현 기연현 곡포현[일운고의포] 죽현현[일운나생어] 만약현[일운면혜] 파리현. 우진야군 파차현[일운파풍]. 야시홀군 조람군[일운재람] 청이현 굴화현 이화혜현. 우시군 아혜현. 실직군[일운사직] 우곡현.

 

하슬라주(何瑟羅州)[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서(河西)라고도 한다.]: 내매현(乃買縣) 동토현(東吐縣) 지산현(支山縣) 혈산현(穴山縣) 수성군(䢘城郡)[가아홀(加阿忽)이라고도 한다.] 승산현(僧山縣)[소물달(所勿達)이라고도 한다.] 익현현(翼峴縣)[이문현(伊文縣)이라고도 한다.] 달홀(達忽) 저수혈현(imagefont穴縣)[오사압(烏斯押)이라고도 한다.] 평진현현(平珍峴縣)[평진파의(平珍波衣)라고도 한다.] 도림현(道臨縣)[조을포(助乙浦)라고도 한다.] 휴양군(休壤郡)[금뇌(金惱)라고도 한다.] 습비곡(習比谷)[()이라고도 한다.] 토상현(吐上縣) 기연현(岐淵縣) 곡포현(鵠浦縣)[고의포(古衣浦)라고도 한다.] 죽현현(竹峴縣)[나생어(奈生於)라고도 한다.] 만약현(滿若縣)[면혜(沔兮)라고도 한다.] 파리현(波利縣) 우진야군(于珍也郡) 파차현(波且縣)[파풍(波豊)이라고도 한다.] 야시홀군(也尸忽郡) 조람군(助攬郡)[재람(才攬)이라고도 한다.] 청이현(靑已縣) 굴화현(屈火縣) 이화혜현(伊火兮縣) 우시군(于尸郡) 아혜현(阿兮縣) 실직군(悉直郡)[사직(史直)이라고도 한다.] 우곡현(羽谷縣)

 

右高句麗州郡縣 共一百六十四 其新羅改名及今名 見新羅志.

우고구려주군현 공일백육십사 기신라개명급금명 견신라지.

 

이상은 고구려의 주, , 현인데 모두 164개이다. 신라에서 개칭한 것과 지금의 명칭은 신라지(新羅志)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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