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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百濟本紀 第二- 近仇首王


 

近仇首王

 

近仇首王(一云諱須) 近肖古王之子. 先是 高句麗國岡王斯由親來侵 近肖古王遣太子拒之 至半乞壤 將戰. 高句麗人斯紀 本百濟人 誤傷國馬蹄 懼罪奔於彼 至是 還來 告太子曰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已 其驍勇 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근구수왕(일운휘수) 근초고왕지자. 선시 고구려국강왕사유친래침 근초고왕견태자거지 지반걸양 장전. 고구려인사기 본백제인 오상국마제 구죄분어피 지시 환래 고태자왈 피사수다개비수의병이이 기효용 유적기 약선파지 기여불공자궤.”

 

근구수왕(近仇首王 혹은 이름이 수 )은 근초고왕(近肖古王)의 아들이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 국강왕(國岡王, 고국원왕) 사유(斯由)가 직접 와서 침범하므로, 근초고왕은 태자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는데, 그는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싸우려 하였다. 고구려인 사기(斯紀)는 본래 백제인이었는데, 실수로 왕이 타는 말의 발굽을 상처 나게 하여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고구려로 도망갔었다. 그가 이때 돌아와서 태자에게 말했다. “고구려 군대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수를 채운 가짜 병사입니다. 그 중 날쌔고 용감한 병사는 오직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니, 만일 그들을 먼저 쳐부수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太子從之 進擊大敗之 追奔逐北 至於水谷城之西北 將軍莫古解諫曰 嘗聞道家之言 知足不辱 知止不殆 今所得多矣 何必求多.”

태자종지 진격대패지 추분축배 지어수곡성지서북 장군막고해간왈 상문도가지언 지족불욕지지불태 금소득다의 하필구다.”

태자가 그 말에 따라 진격하여 크게 이기고, 달아나는 병사를 추격하여 수곡성 서북쪽에 이르렀다. 장수 막고해(莫古解)가 간언하였다. “일찍이 도가(道家)의 말에 만족할 줄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더 많은 것을 구하려고 하십니까?”

 

太子善之 止焉 乃積石爲表. 登其上 顧左右曰 今日之後 疇克再至於此乎.” 其地有巖石 罅若馬蹄者 他人至今 呼爲太子馬迹. 近肖古在位三十年薨 卽位.

태자선지 지언 내적석위표. 등기상 고좌우왈 금일지후 주극재지어차호.” 기지우암석 하약마제자 타인지금 호위태자마적. 근초고재위삼십년훙 즉위.

 

태자가 이 말을 옳게 여겨 중지하고 그곳에 돌을 쌓아 표석을 만들었다. 그 위에 올라가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 누가 다시 이곳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곳에는 말발굽 같이 생긴 바위 틈이 있는데, 사람들은 지금까지 태자의 말굽 자국이라고 부른다.

근초고왕이 재위 30년에 돌아가시자 왕위에 올랐다.

 

二年 以王舅眞高道爲內臣佐平 委以政事. 冬十一月 高句麗來侵北鄙.

이년 이왕구진고도위내신좌평 위이정사. 동십일월 고구려래침북비.

 

2(서기 376) 임금의 처남 진고도(眞高道)를 내신좌평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겨울 11,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三年 冬十月 王將兵三萬 侵高句麗平壤城. 十一月 高句麗來侵.

삼년 동시월 왕장병삼만 침고구려평양성. 십일월 고구려래침.

 

3(서기 377) 겨울 10, 임금이 병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을 침범하였다.

11, 고구려가 침범해왔다.

 

五年 春三月 遣使朝晉 其使海上遇惡風 不達而還. 夏四月 雨土竟日.

오년 춘삼월 견사조진 기사해상우악풍 불달이환. 하사월 우토경일.

 

5(서기 379) 3,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게 했으나, 사신이 폭풍을 만나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름 4, 흙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 나라는 오늘날 산서성지역, 북경으로 서쪽.... 국가간 화친을 맺는데 중요한 변수는 적국(여기선)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함이 크다. 산서성 일개 군현 정도의 크기인 진나라로 고구려를 견제하나????

 

六年 大疫. 夏五月 地裂 深五丈 橫廣三丈 三日乃合.

육년 대역. 하오월 지열 심오장 횡광삼장 삼일내합.

 

6(서기 380),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여름 5, 땅이 갈라져 깊이가 다섯 길, 너비가 세 길이나 되었는데 사흘 만에 다시 붙었다.

 

八年 春不雨 至六月 民饑 至有鬻子者 王出官穀 贖之.

팔년 춘불우 지유월 민기 지유죽자자 왕출관곡 속지.

 

8(서기 382), 봄부터 6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백성들이 굶주려 자식을 죽으로 끓이는 자가 생기자, 임금이 나라의 곡식을 내어 구제하였다.

 

十年 春二月 日有暈三重 宮中大樹自拔. 夏四月 王薨.

십년 춘이월 일유훈삼중 궁중대수자발. 하사월 왕훙.

 

10(서기 384) 2, 해에 세 겹의 해무리가 생겼고, 궁궐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다.

여름 4, 임금이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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