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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高句麗本紀 第四 - 山上王


山上王

 

山上王 諱延優[一名位宮] 故國川王之弟也. 魏書云 朱蒙裔孫宮 生而開目能視 是爲太祖 今王是太祖曾孫 亦生而視人 似曾祖宮 高句麗呼相似爲位 故名位宮云.’ 故國川王無子 故延優嗣立 初 故國川王之薨也. 王后于氏 秘不發喪 夜往王弟發歧宅 曰 王無後 子宜嗣之發歧不知王薨 對曰 天之曆數有所歸 不可輕議 况婦人而夜行 豈禮云乎.”

산상왕 휘연우(일명위궁) 고국천왕지제야. 위서운 주몽예손궁 생이개목능시 시위태조 금왕시태조증손 역생이시인 사증조궁 고구려호상사위위 고명위궁운. 고국천왕무자 고연우사립초 고국천왕지훙야. 왕후우씨 비불발상 야왕왕재발기택 왈 왕무후 자의사지 발기부지왕훙대왈대왈 천지역수유소귀 불가경의 황부인이야행 이례룬호.

 

산상왕(山上王)의 이름은 연우(延優 위궁(位宮))이며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위서(魏書)에는 주몽의 후손 궁()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능히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이 태조이다. 지금 임금은 태조의 증손으로서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을 보는 것이 증조 궁과 비슷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서로 비슷하다는 말을 ()’라고 불렀으므로 위궁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이른다. 고국천왕은 아들이 없으므로, 연우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 고국천왕이 돌아가셨을 때, 왕후 우씨(于氏)는 임금의 죽음을 비밀로 하여 밝히지 않고, 밤에 왕의 아우 발기(發歧)의 집에 가서 말하길 임금이 아들이 없으니 마땅히 그대가 뒤를 이어야 합니다.” 발기는 임금이 돌아가신 것을 알지 못하고 대답하였다. “하늘의 운명은 돌아가는 곳이 있으므로 가볍게 논의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부인으로서 밤에 행차하는 것이 어찌 예절에 맞는다 하겠습니까?”

 

后慙 便往延優之宅 優起衣冠 迎門入座宴飮.

후참 경왕연우지택 우기의관 영문입좌연음.

 

왕후가 부끄러워하며 곧 연우의 집으로 갔다. 연우는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문에서 왕후를 맞아들여 자리에 앉히고 잔치를 베풀었다.

 

王后曰 大王薨 無子 發歧年長當嗣 而謂妾有異心 暴慢無禮 是以見叔於是 延優加禮 親自操刀割肉 誤傷其指 后解裙帶裹其傷指 將歸 謂延優曰 夜深恐有不虞 子其送我至宮延優從之.

왕후왈 대왕훙 무자 발기년장당사 이위첩유이심 폭만무례 시이견숙어시 연우가례 친자조도할육 오상기지 후해군대과기상지 장귀 위연우왈 야심공유불우 자기송아지궁연우종지.

 

왕후가 말하였다. “대왕이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없으니, 발기가 맏동생으로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저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사납고 거만하며 무례하여서 숙부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이에 연우는 더욱 예를 갖추어 직접 칼을 잡고 왕후에게 줄 고기를 베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다쳤다. 왕후가 허리띠를 풀어 그의 다친 손가락을 감싸주었다. 왕후가 돌아가려 할 때 연우에게 말하였다. “밤이 깊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까 두려우니, 그대가 나를 궁까지 데려다 주세요.”

 

王后執手入宮 至翌日質明 矯先王命 令群臣 立延優爲王 發歧聞之大怒 以兵圍王宮 呼曰 兄死弟及 禮也 汝越次纂奪 大罪也 宜速出 不然則誅及妻孥.”

왕후집수입궁 지익일질명 교선왕명 영군신 입연우위왕 발기문지대노 이병위왕궁 호왈 형사젝ㅂ 예야 여월차찬탈 대죄야 의속출 불연즉주급처노.”

 

연우가 그 말에 따라 왕후의 손을 잡고 궁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날이 밝을 무렵, 왕후가 선왕의 명이라고 속이며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연우를 왕으로 삼았다. 발기가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병사로 왕궁을 포위하고 소리쳐 말하였다. “형이 죽으면 아우가 왕위를 잇는 것이 예다. 너는 차례를 뛰어넘어 왕위를 찬탈하였으니 큰 죄악이로다. 마땅히 빨리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처자식들까지 죽이겠다.”

 

延優閉門三日 國人又無從發歧者 發歧知難 以妻子奔遼東 見太守公孫度 告曰 某 高句麗王男武之母弟也 男武死 無子 某之弟延優與嫂于氏謀 卽位以廢天倫之義 是用憤恚 來投上國 伏願假兵三萬 令擊之 得以平亂.”

연우폐문삼일 국인우무종발기자 발기지난 이처자분용동 견태수공손도 고왈 모 고구려왕남무지모제야 남무사 무자 모지제연우여수우씨모 즉위이폐천륜지의 시용분에 래투상국 복원가병삼만 영격지 득이평란.”

 

연우는 사흘 동안 문을 닫고 있었다. 나라 사람들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 발기는 어려움을 알고 처자들과 함께 요동으로 도망갔다. 발기는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를 만나 말하였다. “나는 고구려왕 남무(男武, 고국천왕)의 친동생입니다. 남무가 죽고 아들이 없는데, 나의 아우 연우가 형수 우씨와 도모하여 왕위에 올라 천륜의 의를 폐하였습니다. 이에 나는 분하여 상국으로 항복해 왔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병사 3만 명을 빌려주어 그들을 공격하고 고구려의 난을 평정하게 해주십시오.”

 

公孫度從之 延優遣弟罽須 將兵禦之 漢兵大敗. 罽須自爲先鋒追北 發歧告罽須曰 汝今忍害老兄乎?” 罽須不能無情於兄弟 不敢害之 曰 延優不以國讓 雖非義也 爾以一時之憤 欲滅宗國 是何意耶 身沒之後 何面目以見先人乎.”

공손도종지 연우견제계수 장병어지 안병대패. 계수자위선봉추북 발기고계수왈 여금인해노형호?” 계수불능무정어형제 불감해지 왈 연우불이국양 수비의야 이이일시지분 욕멸종국 시하의야 신몰지후 하면목이견선인호.”

 

공손도는 그 말에 따랐다. 연우가 동생 계수(罽須)를 보내어 병사를 거느리고 막게 하니 한나라 병사가 크게 패하였다. 계수가 스스로 선봉이 되어 달아나는 군사를 추격하자, 발기가 계수에게 말하였다. “네가 오늘 차마 늙은 형을 죽이겠는가?” 계수가 형제의 정을 버릴 수 없어 감히 그를 해치지 못하고 말하였다. “연우가 왕위를 사양하지 않은 것은 비록 의가 아니지만, 당신이 한때의 분함을 못 이겨 나라를 멸하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죽은 후에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뵐 것입니까?”  

     

發歧聞之 不勝慙悔 奔至裴川 自刎死 罽須哀哭 收其屍 草葬訖而還 王悲喜 引罽須內中宴 見以家人之禮 且曰 發歧請兵異國 以侵國家 罪莫大焉 今子克之 縱而不殺 足矣 及其自死 哭甚哀 反謂寡人無道乎罽須愀然銜淚而對曰 臣今請一言而死.”

발기문지 불승참회 분지배천 자문사 계수애곡 수기시 초장흘이환 왕비희 인계수내중연 견이가인지례 차왈 발기청병이국 이침국가 죄막대언 금자극지 종이불살 족의 급기자사 곡시애반위과인무도호 계수초연함루이대왈 금신청일언이사

 

발기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움과 후회스러움을 이길 수 없어 배천(裴川)으로 달아났다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계수가 슬퍼하며 울고 발기의 시신을 거두어 간략하게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임금은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하여 계수를 궐내로 들여 잔치를 베풀고 집안 사람의 예로 대하면서 말하였다. “발기가 다른 나라에 병사를 청하여 우리나라를 침범하였으니, 죄가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지금 그대가 이기고도 발기를 놓아주고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족하거늘, 그가 스스로 죽자 심하게 울고 슬퍼한 것은 도리어 과인을 무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계수가 슬픈 얼굴로 눈물을 머금으며 대답하였다. “저는 이제 한마디만 하고 죽기를 청합니다.”

 

王曰 何也?” 罽須曰 王后雖以先王遺命立大王 大王不以禮讓之 曾無兄弟友恭之義 臣欲成大王之美 故收屍殯之 豈圖緣此 逢大王之怒乎 大王若以仁忘惡 以兄喪禮葬之 孰謂大王不義乎 臣旣以言之 雖死猶生 請出受誅有司.”

왕왈 하야?” 계수왈 왕후수이선왕유명입대왕 대왕불이예양지 증무형제우공지의 신욕성대왕지미 고수시빈지 이도연차 봉대왕지노호. 대왕약이인망악 이형상례장지 숙위대왕불의호. 신기이언지 수사유생 청출수주유사.”

 

왕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계수가 말하였다. “왕후가 비록 선왕의 유명으로 대왕을 세웠더라도, 대왕께서는 예로써 사양하지 않은 것은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경의 의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대왕의 미덕을 이루고자 발기의 시신을 거두어 염습한 것입니다. 어찌 이것으로 대왕의 노여움을 당할 줄을 알았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약 어진 마음으로 발기의 악을 잊고 형에 대한 상례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 주신다면, 누가 대왕이 옳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이미 말을 다 하였으니 죽어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제 관부로 나아가 처형을 받겠습니다.”

 

王聞其言 前席而坐 溫顔慰諭曰 寡人不肖 不能無惑 今聞子之言 誠知過矣 願子無責 王子拜之 王亦拜之 盡歡而罷.

왕문기언 전석이좌 온안위유왈 과인불초 불능무혹 금문자지언 성지과의 원자무책왕자배지 왕역배지 진환이파.

 

임금이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다가앉으며 온화한 표정으로 위로하여 말했다. “과인이 어질지 못하여 미혹됨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 너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나의 잘못을 알겠구나. 너는 책망하지 말길 바란다.” 왕자가 임금에게 절하고, 임금도 그에게 또한 절을 하여 마음껏 즐기다가 헤어졌다.



秋九月 命有司 奉迎發歧之喪 以王禮葬於裴嶺. 王本因于氏得位 不復更娶 立于氏爲后.

추구월 명유사 봉영발기지상 이옹례장어배령. 왕본인우씨득위 불복경취 입우씨위후.

 

가을 9, 관리에게 명하여 발기의 상례를 받들어 왕의 예를 갖추어 배령(裴嶺)에 장사하게 하였다. 왕이 본래 우씨에 의하여 왕위에 올랐으므로, 다시 장가들지 않고 우씨를 왕후로 삼았다.

 

二年 春二月 築丸都城. 夏四月 赦國內二罪已下.

이년 춘이월 축환도성. 하사월 사국내이죄이하.

 

2(서기 198) 2,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여름 4, 국내의 두 가지 사형 죄 이하의 죄수들을 사면하였다.

 

三年 秋九月 王畋于質陽.

삼년 추구월 왕정우질양.

 

3(서기 199) 가을 9, 임금이 질양(質陽)에서 사냥하였다.

 

七年 春三月 王以無子 禱於山川 是月十五夜夢 天謂曰 吾令汝少后生男 勿憂.” 王覺語群臣曰 夢天語我 諄諄如此 而無少后 奈何?” 巴素對曰 天命不可測 王其待之.” 秋八月 國相乙巴素卒 國人哭之慟 王以高優婁爲國相.

칠년 춘삼월 왕이무자 도어산천 시월십오야몽 천위왈 오령야소후생남 물우왕각어군신왈 몽천어아 순순여차 이무소후 내하?” 을파소왈 천명불가측 왕기대지.” 추구월 국상을파소졸 국인곡지통 왕고우루위국상.

 

7(서기 203) 3, 임금이 아들이 없어 산천에서 기도하였는데, 이달 15일 밤 꿈에서 하늘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소후(少后)로 아들을 낳게 할 것이니 염려치 말라.” 임금이 잠에서 깨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꿈에 하늘이 나에게 이와같이 말하였는데, 소후가 없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을파소(乙巴素)가 대답하였다. “천명이란 예측할 수 없으니 임금께서는 기다리십시오.”

가을 8, 국상 을파소가 죽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통곡하였다. 임금은 고우루(高優婁)를 국상으로 삼았다.

 

十二年 冬十一月 郊豕逸 掌者追之 至酒桶村 躑躅不能獲. 有一女子 年二十許 色美而艶 笑而前執之 然後追者得之. 王聞而異之 欲見其女 微行夜至女家 使侍人說之 其家知王來不敢拒 王入室 召其女 欲御之 女告曰 大王之命 不敢避 若幸而有子 願不見遺.” 王諾之 至丙夜 王起還宮.

십이년 동십일월 교시일 장자추지 지주통촌 척촉불능획 유일여자 연이십허 미색이염 소이전집지 연후추자득지. 왕문이이지 욕견기녀 미행야지여가 사시인설지 기가지왕래불감서 왕입실 소기녀 욕어지. 여고왈 대왕지명 불감피 약행이유자 원불견유왕락지 지병야 왕기환궁.

 

12(서기 208) 겨울 11, 교제(郊際)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담당하는 자가 쫓아가 주통촌(酒桶村)에 이르렀는데 머뭇거리다 잡지 못하였다. 그때 나이가 20세 정도 되고 얼굴이 아름다운 한 여자가 웃으면서 앞으로 가서 돼지를 잡아주어 뒤쫓던 자가 돼지를 얻을 수 있었다. 임금은 이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기고, 그 여자를 보고자 밤에 은밀하게 그 여자의 집에 이르렀다. 시종을 시켜 알리니 그 집에서는 임금이 온 줄 알고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방으로 들어가 그 여자를 불러 동침하려 하자, 그 여자가 말하였다. “대왕의 명령을 감히 피할 수 없으니, 만약 총애를 입어 자식이 생기게 되면 버림받지 않기를 원하옵니다.” 임금이 승낙하였다. 자정 무렵이 되어 임금이 일어나 궁궐로 돌아왔다.

 

十三年 春三月 王后知王幸酒桶村女 妬之 陰遣兵士殺之 其女聞知 衣男服逃走 追及欲害之 其女問曰 爾等今來殺我 王命乎 王后命乎 今妾腹有子 實王之遺體也 殺妾身可也 亦殺王子乎?” 兵士不敢害 來以女所言告之 王后怒 必欲殺之 而未果. 王聞之 乃復幸女家 問曰 汝今有娠 是誰之子?” 對曰 妾平生不與兄弟同席 況敢近異姓男子乎 今在腹之子 實大王之遺體也 王慰籍贈與 甚厚 乃還告王后 竟不敢害. 秋九月 酒桶女生男 王喜曰 此天賚予嗣胤也 始自郊豕之事 得以幸其母 乃名其子曰郊彘 立其母爲小后 初 小后母孕未産 巫卜之曰 必生王后 母喜 及生 名曰后女. 冬十月 王移都於丸都.

십삼년 춘삼월 왕후지왕행주통천냐 투지 음경병사살지 기녀문지 의남복도주 추급욕해지 기녀문왈 이등금래살아 왕명호 왕후명호 금첩복유자 실왕지유체야 살첩신가야 역살왕자호?” 병사불감해 래이여소언고지 왕후노 필욕살지 이미과. 왕문지 내복행여가 문왈 여금유신 시수지자?” 대왈 첩평생불여형제동석 황감근이성남자로 금재복지자 실대왕지유체야 왕위적증여 심후 내환고왕후 경불감해. 추구월 주통녀생남 왕희왈 차천뢰여사윤야 시자교시지사 득이행기모 내명기사왈교체 입기모소루. 초 소후모잉미산 무복지왈 필생왕후 모희 급생 명왈후녀. 동시월 왕이도어환도.

 

13(서기 209) 3, 왕후는 임금이 주통촌의 여자에게 은혜를 베푼 사실을 알고, 그 여자를 질투하여 몰래 병사를 보내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가 소문을 듣고 알게 되어 남자 옷을 입고 도망하였다. 병사들이 그 여자를 쫓아가 죽이려 하자 그 여자가 물었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죽이려 하니, 임금의 명령이냐, 왕후의 명령이냐? 지금 내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진실로 임금이 남긴 혈육이다. 나를 죽이는 것은 좋으나 왕자도 죽일 수 있겠느냐?” 병사들이 그 여자를 감히 죽이지 못하고 돌아와서 그 여자의 말을 보고하였다. 왕후가 노하여 반드시 죽이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다시 그 여자의 집에 가서 물었다. “네가 지금 임신한 것이 누구의 자식이냐?” 그 여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는 평생에 형제와도 동석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감히 성이 다른 남자와 가까이 했겠습니까? 지금 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진실로 대왕의 혈육입니다.” 임금이 그 여자를 위로하고 선물을 후하게 주었다. 곧 돌아와 왕후에게 말하니, 왕후는 끝내 그 여자를 죽이지 못하였다.

가을 9, 주통촌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 임금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는 하늘이 나에게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신 것이다.” 처음에 교제에 쓰일 돼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어머니를 총애할 수 있었다 하여, 그 아이의 이름을 교체(郊彘)라 하고, 아이의 어머니를 소후(小后)로 세웠다. 처음 소후의 어머니가 그녀를 잉태해 낳기 전에 무당이 점을 쳐 말하였다. “반드시 왕후를 낳으리라.” 이에 어머니가 기뻐하였고, 아이를 낳게 되자 이름을 후녀(后女)라고 지었다.

겨울 10, 임금이 환도(丸都)로 도읍을 옮겼다.

 

十七年 春正月 立郊彘爲王太子.

십칠년 춘정월 입교체위왕태자.

 

17(서기 213) 봄 정월, 교체를 세워 왕태자로 삼았다.

 

二十一年 秋八月 漢平州人夏瑤 以百姓一千餘家來投 王納之 安置柵城. 冬十月 雷 地震 星孛于東北.

이십일년 추팔월 한평주인하요 이백성일천여가래투 왕납지 안치책성. 동시월 뢰 지진 성패우동북.

 

21(서기 217) 가을 8, 한나라 평주(平州) 사람 하요(夏瑤)가 백성 1천여 가()를 이끌고 항복해 왔다. 임금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책성(柵城)에 배치하였다.

겨울 10, 우레가 치고 지진이 났다. 혜성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二十三年 春二月壬子晦 日有食之.

이십삼년 춘이월임자회 일유식지.

 

23(서기 219) 2, 그믐 임자에 일식이 있었다.

 

二十四年 夏四月 異鳥集于王庭.

이십사년 하사월 이조집우왕정.

 

24(서기 220) 여름 4, 이상한 새들이 궁궐 뜰에 모였다.

 

二十八年 王孫然弗生.

이십팔년 왕손연불생.

 

28(서기 224), 임금의 손자 연불(然弗)이 태어났다.

 

三十一年 夏五月 王薨 葬於山上陵 號爲山上王.

삼십일년 하오월 왕훙 장어산상릉 호위산상왕.

 

31(서기 227) 여름 5, 임금이 돌아가셨다. 산상릉(山上陵)에 장사 지내고, 호를 산상왕(山上王)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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