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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新羅本紀 第十- 興德王


興德王

 

興德王立 諱秀宗 後改爲景徽 憲德王同母弟也 冬十二月 妃章和夫人卒 追封爲定穆王后 王思不能忘 悵然不樂 群臣表 請再納妃 王曰 隻鳥有喪匹之悲 况失良匹何忍無情遽再娶乎 遂不從 亦不親近女侍 左右使令 唯宦竪而己(章和 姓金氏 昭聖王之女也)

흥덕왈립 휘수종 후개위경휘 헌덕왕동모제야. 동십이월 비장화부인졸 추봉위정목왕후. 왕사불능망 창연불락 군신표 청재납비. 왕왈 쌍조유상필지비 황실양필.” 하인무정거재취호 수부종역불친근여시 좌우사령 유환수이기.(장화 성김씨 소성왕지여야)

 

흥덕왕(興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수종(秀宗)인데, 후에 경휘(景徽)로 바꾸었다. 헌덕왕(憲德王)의 친동생이다.
겨울 12,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자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봉하였다. 임금이 왕비를 잊지 못하고 슬퍼서 즐거워하지 않았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표문(表文)을 올려 다시 왕비를 들일 것을 요청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쌍쌍인 새도 자기의 짝을 잃으면 슬퍼하는데, 하물며 좋은 배필을 잃고 나서 어찌하여 무정하게도 다시 부인을 얻겠는가?” 임금은 끝내 요청을 듣지 않았고, 또 시녀들조차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좌우의 심부름꾼은 오직 내시뿐이었다.(장화의 성은 김씨로, 소성왕(昭聖王)의 딸이다.)


 

二年 春正月 親祀神宮 唐文宗聞王薨 廢朝 命太子左諭德兼御史中丞源寂 持節吊祭 仍冊立嗣王爲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使持節大都督雞林州諸軍事兼持節充寧海軍使新羅王 母朴氏爲大妃 妻朴氏爲妃. 三月 高句麗僧丘德入唐 齎經至 王集諸寺僧徒 出迎之. 夏五月 降霜 秋八月 太白晝見 京都大旱 侍中永恭退.

이년 춘정월 친사신궁 당문종문왕훙 폐조 명태자좌유덕겸어사중승원적 지절조제 잉책입사왕위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지절충영해군사신라왕 모박씨위대비 처박씨위비. 삼월 고구려승구덕입당 제경지 왕집제사승도 출영지. 하오월 강상. 추팔월 태백주견 경도대한 시중영공퇴.

2(서기 827) 봄 정월, 임금이 몸소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당나라 문종(文宗)은 헌덕왕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조회를 폐지하고 태자좌유덕겸어사중승(太子左諭德兼御史中丞) 원적(源寂)에게 명하여 지절사(持節使)로 조문하도록 하였다. 이어 새로운 임금을 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지절충영해군사신라왕으로 책봉하고, 어머니 박씨를 대비로 삼고, 아내 박씨를 왕비로 삼아 책봉하였다.
3, 고구려의 승려 구덕(丘德)이 당나라에 들어가서 불경을 가지고 오자, 임금이 여러 절의 승려들을 모이게 하여 나가서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여름 5, 서리가 내렸다.
가을 8, 태백(太白, 금성)이 낮에 나타나고, 서울에 큰 가뭄이 들었다.
시중 영공(永恭)이 사직하였다.

三年 春正月 大阿飡金祐徵爲侍中 二月 遣使入唐朝貢 三月 雪深三尺 夏四月 淸海大使弓福 姓張氏(一名保臯)入唐徐州 爲軍中小將 後歸國謁王 以卒萬人鎭淸海(淸海 今之莞島)漢山州瓢川縣妖人 自言有速富之術 衆人頗惑之. 王聞之 曰 執左道以惑衆者 刑之 先王之法也投棄其人遠島 冬十二月 遣使入唐朝貢 文宗召對于麟德殿 宴賜有差 入唐廻使大廉 持茶種子來 王使植地理山 茶自善德王時有之 至於此盛焉.

삼년 춘정월 대아찬김우징위시중, 이월 견사입당조공, 삼월설심삼척. 하사월 청해댜사궁복 성장씨(일명보고)입당서주 위군중소장 후귀국알왕 이졸만인진청해(청해 금지완도)한산주표천현요인 자언유속부지술 중인파혹지. 왕문지 왈 집좌도이혹중자 형지 선왕지법야투기기인원도. 동십이월 견사입당조공 문종소대우린덕전 연사유차 입당회사대겸 지다종자래 왕사식지리산 차자선덕왕시유지 지어차성언.

 

3(서기 828) 봄 정월, 대아찬 김우징(金祐徵)을 시중으로 삼았다.
2,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3, 눈이 석 자나 내렸다.
여름 4, 청해대사(淸海大使) 궁복(弓福)은 성이 장씨인데[일명 보고(保臯)라고도 한다.]당나라 서주(徐州)에 들어가 군중소장(軍中小將)이 되었다. 후에 귀국하여 임금을 알현하고, 군사 1만 명으로 청해진(淸海鎭)(청해는 지금의 완도(莞島)이다.)을 지키게 되었다.
한산주(漢山州) 표천현(瓢川縣)에 사는 요사스러운 사람이 빨리 부자가 되는 술수가 있다고 말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현혹되었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사악한 방도로 많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은 선왕의 법이다.” 그리고 그 자를 먼 섬에 내다버리도록 하였다.
겨울 12,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당나라 문종(文宗)이 인덕전에서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고 사신의 등급에 따라 하사품을 주었다.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신 대렴(大廉)이 차나무 종자를 가지고 왔기에 임금이 지리산(地理山)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왕(善德王)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에 와서 크게 유행하였다.

四年 春二月 以唐恩郡爲唐城鎭 以沙飡極正往守之.

사년 춘이월 이당은군위당성진 이사찬극정왕수지.

 

4(서기 829) 2, 당은군(唐恩郡)을 당성진(唐城鎭)으로 만들고, 사찬 극정(極正)에게 가서 지키게 하였다.

五年 夏四月 王不豫 祈禱 仍許度僧一百五十人. 冬十二月 遣使入唐朝貢.

오년 하사월 왕불예 기도 잉허도승일백오십인. 동십이월 견사입당조공.

 

5(서기 830) 여름 4, 임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기도를 드리고, 이어 승려 15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겨울 12,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六年 春正月 地震 侍中祐徵免 伊飡允芬爲侍中 二月 遣王子金能儒幷僧九人朝唐 秋七月 入唐進奉使能儒等一行人 廻次溺海死 冬十一月 遣使入唐朝貢.

육년 춘정월 지진 시중우징면 이찬윤분위시중. 이월 견자김능유병승구인조당. 추칠월 입당진봉사능유등일행인 회차익해서. 동십일월 견사입당조공.

 

6(서기 831) 봄 정월, 지진이 났다.
시중 우징이 관직에서 물러나고, 이찬 윤분(允芬)을 시중으로 삼았다.
2, 왕자 김능유(金能儒)와 승려 아홉 명을 당나라에 보냈다.
가을 7, 당나라에 들어갔던 진봉사(進奉使) 능유 등 일행이 돌아오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겨울 11,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七年 春夏旱 赤地. 王避正殿 減常膳 赦內外獄囚. 秋七月 乃雨. 八月 飢荒 盜賊遍起. 冬十月 王命使安撫之.

칠년 춘하한 적지 왕피정전 감상선 사내외옥수. 추칠월 내우. 팔월 기황 도적편기. 동시월 왕명사안무지.

 

7(서기 832), 봄과 여름에 가물어 땅이 붉게 탔다. 임금은 정전에 나가지 않고 음식을 줄였으며, 중앙과 지방의 죄수들을 사면하였다. 가을 7월에야 비가 내렸다.
8, 흉년이 들어 도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겨울 10, 임금이 사람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八年 春 國內大飢. 夏四月 王謁始祖廟. 冬十月 桃李再華 民多疫死. 十一月 侍中允芬退.

팔년 춘 국내대기. 하사월 왕알시조묘. 동시월 도리재화 민다역사. 십일월 시중윤분퇴.

 

8(서기 833) , 나라 안에 큰 기근이 들었다.
여름 4, 임금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겨울 10,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에 꽃이 다시 피었고, 전염병으로 죽은 백성이 많았다.
11, 시중 윤분이 사직하였다.

九年 春正月 祐徵復爲侍中. 秋九月 王幸西兄山下大閱 御武平門觀射. 冬十月 巡幸國南州郡 存問耆老及鰥寡孤獨 賜穀布有差.

구년 춘정월 우징복위시중, 추구월 왕행서영산하대열 어무평문친사. 동시월 순행국남주군 존문기노급환과고독 사곡초유차.

 

9(서기 834) 봄 정월, 우징을 다시 시중으로 삼았다.
가을 9, 임금이 서형산(西兄山) 아래에 행차하여 크게 군대를 사열하고, 무평문(武平門)에서 활쏘기를 관람하였다.
겨울 10, 임금이 남쪽 지방의 주와 군을 두루 돌아보았다. 노인과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들을 찾아 위문하고, 곡식과 베를 형편에 따라 차등을 두어 내려주었다.

十年 春二月 拜阿飡金均貞爲上大等. 侍中祐徵以父均貞入相 表乞解職 大阿飡金明爲侍中.

십년 춘이월 배아찬김균정위상대등 시중우징이부균졍입상 표걸해직 대아찬김명위시중,

 

10(서기 835) 2, 아찬 김균정(金均貞)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시중 우징이, 그의 아버지 균정이 재상으로 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직할 것을 요청하였으므로, 대아찬 김명(金明)을 시중으로 삼았다.

十一年 春正月辛丑朔 日有食之 遣王子金義琮 如唐謝恩兼宿衛. 夏六月 星孛于東. 秋七月 太白犯月. 冬十二月 王薨 諡曰興德 朝廷以遺言 合葬章和王妃之陵.

십일년 춘정월신축삭 일유식지 견왕자김의종 여당사은겸숙위. 하유월 성패우동. 추칠월 태백범월. 동십이월 왕훙 시왈흥덕 조정이유언 합장여화왕비지릉.

 

11(서기 836) 봄 정월, 초하루 신축일에 일식이 있었다.
왕자 김의종(金義琮)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은혜에 감사드리고 아울러 숙위(宿衛)하게 하였다.
여름 6,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가을 7, 태백(太白)이 달을 침범하였다.
겨울 12,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흥덕(興德)이라 하였다. 조정에서는 임금의 유언에 따라 장화왕비(章和王妃)의 능에 합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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