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三國史記

新羅本紀 第九 -惠恭王


惠恭王

 

惠恭王立 諱乾運 景德王之嫡子 母 金氏滿月夫人 舒弗邯義忠之女 王卽位時年八歲 太后攝政.

혜공왕립 휘건운 경덕왕지적자 모 김씨만월부인 서불한의충지녀 왕즉위시년팔세 태후섭정.

 

혜공왕(惠恭王)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건운(乾運)이며 경덕왕(景德王)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월부인(滿月夫人)이며 서불한 의충(義忠)의 딸이다. 임금에 즉위했을 때 나이가 여덟 살이라서 태후가 섭정하였다.

 

元年 大赦 幸大學 命博士講尙書義.

원년 대사 행대학 명박사강상서의.

 

원년(서기 765),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임금이 태학에 행차하여 박사에게 상서(尙書)를 강의하게 하였다.

 

二年 春正月 二日並出 大赦. 二月 王親祀神宮 良里公家牝牛生犢 五脚 一脚向上 康州地陷成池 縱廣五十餘尺 水色靑黑. 冬十月 天有聲如鼓.

이년 춘정월 이일병출 대사. 이월 왕친사신궁 양리공가빈우생독 오각일갈향상 강주지함성지 종광오십여척 수색청흑. 동시월 천유성여고.

 

2(서기 766) 봄 정월, 두 개의 해가 나타났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 임금이 몸소 신궁에서 제사를 지냈다. 양리공(良里公) 집에서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다리가 다섯이었다. 다리 하나는 위로 향하였다.

강주(康州)에서 땅이 함몰되어 연못이 되었는데 넓이가 50여 척이고 물빛이 검푸른 색이었다.

겨울 10,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북소리 같았다.

 

三年 夏六月 地震 秋七月 遣伊飡金隱居 入唐貢方物 仍請加冊命 帝御紫宸殿宴見 三星隕王庭 相擊 其光如火迸散 九月 金浦縣禾實皆米.

삼년 하유월 지진. 추칠월견이찬김은거 입당공방물 잉청가책명 제어자신전연견 삼성운왕정 상격 기광여화병산. 구월 김포현화실개미.

 

3(서기 767) 여름 6, 지진이 났다.

가을 7, 이찬 김은거(金隱居)를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동시에 책명해주기를 요청하니 황제가 자신전(紫宸殿)에 나와 접견하였다. 별 세 개가 대궐에 떨어져 서로 부딪쳤다. 그 빛이 불같이 솟아올랐다가 흩어졌다.

9, 김포현(金浦縣)에서 벼 이삭이 모두 쌀로 맺혔다.

 

四年 春 彗星出東北 唐代宗遣倉部郞中歸崇敬兼御史中丞 持節齎冊書. 冊王爲開府儀同三司新羅王 兼冊王母金氏爲大妃 夏五月 赦殊死已下罪 六月 京都雷雹傷草木 大星隕皇龍寺南 地震聲如雷 泉井皆渴 虎入宮中 秋七月 一吉飡大恭與弟阿飡大廉叛 集衆 圍王宮三十三日 王軍討平之 誅九族 九月 遣使入唐朝貢 冬十月 以伊飡神猷爲上大等 伊飡金隱居爲侍中.

사년 춘 혜성출동북 당대종견창부랑중귀숭경겸어사중승 지절제책서. 책서위개부의동삼사신라왕 겸책왕모김씨위대비. 하오월 사숫기하죄. 유월 경도뇌박상초목 대성운황룡사남 지진성여뢰 천정개갈 호입궁중. 추칠월 일길천대공여제아찬대렴반 집중 위왕궁삼십삼일 왕군토평지 수구족. 구월 견사입당조공. 동시월 이이찬신유위상대등 이찬김은거위시중,

 

4(서기 768) 봄 혜성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당나라 대종(代宗)이 창부낭중(倉部郞中) 귀숭경(歸崇敬)에게 사중승(御史中丞)을 겸직시켜, 황제의 신임표와 책봉서를 가지고 가도록 하여, 임금을 개부의동삼사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또 임금의 어머니 김씨를 대비로 책봉하였다.

여름 5, 사형죄 이하의 죄수들을 사면하였다.

6, 서울에 벼락이 치고 우박이 내려 초목이 상하였다. 큰 별이 황룡사(皇龍寺) 남쪽에 떨어졌다. 지진이 났는데 그 소리가 벼락 소리 같았고 우물과 샘이 모두 말랐다. 호랑이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다.

가을 7, 일길찬 대공(大恭)이 그의 동생인 아찬 대렴(大廉)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무리를 모아 33일간 왕궁을 포위하였다. 임금의 병사가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9족을 모두 죽였다.

9,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0, 이찬 신유(神猷)를 상대등으로 삼고 이찬 김은거를 시중으로 삼았다.

 

五年 春三月 燕群臣於臨海殿 夏五月 蝗 旱 命百官各擧所知 冬十一月 雉岳縣鼠八千許 向平壤 無雪.

오년 춘삼월 연군신어임해전. 하오월 황 한 명백관각거소지. 동십일월 치악현서팔천허 향평양 무설.

 

5(서기 769) 3, 임해전(臨海殿)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여름 5, 메뚜기떼가 생겼다. 가뭄이 들었다. 임금이 백관들에게 각자 아는 인물을 천거하게 하였다.

겨울 11, 치악현(雉岳縣)에서 쥐 8천여 마리가 평양(平壤)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

 

六年 春正月 王幸西原京 曲赦所經州縣繫囚. 三月 雨土 夏四月 王至自西原. 五月十一日 彗星出五車北 至六月十二日滅 二十九日 虎入執事省 捉殺之 秋八月 大阿飡金融叛 伏誅 冬十一月 京都地震 十二月 侍中隱居退 伊飡正門爲侍中.

육년 춘정월 왕행서원경 곡사소경주형계수. 삼월 우토. 하사월 왕지자서원. 오월십일일 혜성출오거북 지유월십이일멸 이십구일 호입집무성 착살지. 추팔월 대아찬김융반 복주. 동십이월 경도지진. 십이월 시중은거퇴이찬정문위시중.

   

6(서기 770) 봄 정월, 임금이 서원경(西原京)에 행차하였다. 지나가는 주와 현의 죄수들을 특별히 사면하였다.

3, 흙비가 내렸다.

4, 임금이 서원경에서 돌아왔다.

511, 혜성이 오거(五車)성좌 북쪽에 나타났다가 612일에 사라졌다.

29, 호랑이가 집사성(執事省)에 들어왔으므로 잡아 죽였다.

가을 8, 대아찬 김융(金融)이 반역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겨울 11, 서울에 지진이 났다.

12, 시중 은거가 관직에서 물러났기에, 이찬 정문(正門)을 시중으로 삼았다.

       

八年 春正月 遣伊飡金標石 朝唐賀正. 代宗授衛尉員外少卿放還.

팔년 춘정월 견이찬김표석 조당하정. 대종수위위원외소경방환.

 

8(서기 772) 봄 정월, 이찬 김표석(金標石)을 당에 보내 새해인사를 올렸다. 당 대종이 그에게 위위원외소경(衛尉員外少卿) 벼슬을 주어 귀국시켰다.

 

九年 夏四月 遣使如唐賀正 獻金銀牛黃魚牙紬朝霞等方物. 六月 遣使如唐謝恩 代宗引見於延英殿.

구년 하사월 견사여당하정 헌금은우황어아유조하등방물. 유월 견사여당사은 대종인견어연영전.


9년(서기 773) 여름 4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인사를 올리고 금, 은, 우황, 어아주(魚牙紬), 조하주(朝霞紬) 등의 토산물을 바쳤다.

6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사은을 표하니 당나라 대종이 사신을 연영전(延英殿)에서 접견하였다.


十年 夏四月 遣使如唐朝貢 秋九月 拜伊飡良相爲上大等 冬十月 遣使如唐賀正 見于延英殿 授員外衛尉卿遣之.

십년 하사월 견사여당조공. 추구월 배이찬양상위상대등. 동시월 견사여당하정 견우연영전 수원외위위경견지.


10년(서기 774) 여름 4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이찬 양상(良相)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겨울 10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인사를 올렸다. 황제가 연영전에서 이들을 접견하고 그들에게 원외위위경(員外衛尉卿) 벼슬을 주어 귀국시켰다.


十一年 春正月 遣使如唐朝貢. 三月 以伊飡金順爲侍中. 夏六月 遣使朝唐 伊飡金隱居叛 伏誅 .秋八月 伊飡廉相與侍中正門謀叛 伏誅.

십일년 춘정월 견사여당조공. 삼월 이이찬김순위시중. 하유월 견사조당이찬김은거반 복주. 추팔월 이찬염상여시중정문모반 복주.


11년(서기 775) 봄 정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3월, 이찬 김순(金順)을 시중으로 삼았다.

여름 6월, 사신을 파견하여 당나라의 조정에 들어가게 하였다.

이찬 김은거가 반역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가을 8월, 이찬 염상(廉相)이 시중 정문과 함께 반역을 꾀하였다. 그들을 처형하였다.


十二年 春正月 下敎 百官之號 盡合復舊 幸感恩寺望海 二月 幸國學聽講 三月 加倉部史八人 秋七月 遣使朝唐 獻方物 冬十月 遣使入唐朝貢.

십이년 춘정월 하교 백관지호 진합복구 행감은사망해. 이월 행국학청강. 삼월 가창부사팔인. 추칠월 견사조당 헌방물. 동시월 견사입당조공.


12년(서기 776) 봄 정월, 임금이 교서를 내려 백관들의 관직 이름을 모두 이전대로 복구하였다.

임금이 감은사(感恩寺)에 행차하여 바다에 제사를 지냈다.

2월, 임금이 국학에 가서 강의를 들었다.

3월, 창부(倉部)에 사(史) 8명을 더 두었다.

가을 7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겨울 10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十三年 春三月 京都地震. 夏四月 又震 上大等良相上疏 極論時政. 冬十月 伊飡周元爲侍中.

십삼년 춘삼월 경도지진. 하사월 우진 상대등양상상소 극론시정. 동시월 이찬주원위시중.


13년(서기 777) 봄 3월, 서울에 지진이 났다.

여름 4월, 지진이 다시 발생하였다.

상대등 양상이 상소하여 시정(時政)을 극렬하게 비판하였다.

겨울 10월, 이찬 주원(周元)을 시중으로 삼았다.


十五年 春三月 京都地震 壞民屋 死者百餘人 太白入月 設百座法會.

십오년 춘삼월 경도지진 괴민옥 사자백여인 태백입월 설백좌법회.


15년(서기 779) 봄 3월, 서울에 지진이 나서, 민가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백여 명이 되었다.

태백(太白, 금성)이 달에 들어갔다.

백좌법회(百座法會)를 열었다.


十六年 春正月 黃霧 二月 雨土 王幼少卽位 及壯 淫于聲色 巡遊不度 綱紀紊亂 災異屢見 人心反側 社稷杌陧 伊飡金志貞叛 聚衆 圍犯宮闕 夏四月 上大等金良相與伊飡敬信 擧兵誅志貞等 王與后妃爲亂兵所害 良相等諡王爲惠恭王 元妃新寶王后 伊飡維誠之女 次妃 伊飡金璋之女 史失入宮歲月.

십육년 춘정월 황무. 이월 우토 왕유소즉위 급장 음우성색 순유부도 강기문란 재이누견 인심반측 사직올날 이찬김징저반 취중 위범궁궐. 하사월 상대등김양상여이찬경신 거병주지정등 왕여후비위안병소해 양상등시왕위혜공왕 원비신보왕후 이찬유성지녀 차비 이찬김장지녀 사실입궁세월.


16년(서기 780) 봄 정월, 누런 안개가 끼었다.

2월, 흙비가 내렸다.

임금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장성하자 음악과 여색에 빠져 돌아다니며 노는 것을 절제하지 않았다. 기강이 문란해지니 재난과 이변이 자주 발생하였으므로 인심이 이반되고 사직이 위태로웠다.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키고 무리들을 모아 궁궐을 포위하여 침범하였다.

여름 4월, 상대등 김양상이 이찬 경신(敬信)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지정 등을 죽였다. 임금과 왕비는 난리 중에 살해되었다. 양상 등이 임금의 시호를 혜공왕(惠恭王)이라 하였다. 원비 신보왕후(新寶王后)는 이찬 유성(維誠)의 딸이고 다음 왕비는 이찬 김장(金璋)의 딸이었는데 역사서에는 두 왕비가 궁에 들어온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三國史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新羅本紀 第十 -元聖王  (0) 2019.12.23
新羅本紀 第九 -宣德王  (0) 2019.12.22
新羅本紀 第九-景德王  (0) 2019.12.20
新羅本紀 第九 -孝成王  (0) 2019.12.19
新羅本紀 第八 -聖德王  (0) 201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