炤知麻立干
炤知(一云毗處)麻立干立 慈悲王長子 母金氏 舒弗邯未斯欣之女 妃善兮夫人 乃宿伊伐飡女也 炤知幼有孝行 謙恭自守 人咸服之
소지마립간(일운비처)립 자비왕장자 모김씨 서불한미사흔지녀 비선혜부인 내숙이벌찬여야 소지유유효행 걈공자수 인함복지
소지 마립간(비처毗處)이 왕위에 올랐다. 자비왕(慈悲王)의 맏아들이고 어머니 김씨는 서불한 미사흔(未斯欣)의 딸이며 왕비는 선혜부인(善兮夫人)으로 이벌찬 내숙(乃宿)의 딸이다. 소지는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운 행실이 있었고, 겸손과 공손한 마음을 지켜왔기에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元年 大赦 賜百官爵一級
원년 대사 사백관작일급
원년(서기 479),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고 모든 관리들의 벼슬을 한 등급씩 올려 주었다.
二年 春二月 祀始祖廟 夏五月 京都旱 冬十月 民飢 出倉穀賑給之 十一月 靺鞨侵北邊
이년 춘이월 사시조묘 하오월 경도한 동시월 민기 출창곡진급지 십일월 말갈침북변
2년(서기 480) 봄 2월, 시조묘에 제사 지냈다. 여름 5월, 수도지역에 가뭄이 들었다. 겨울 10월, 백성들이 굶주렸으므로 창고의 곡식을 내어 구제하였다. 11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입하였다.
三年 春二月 幸比列城 存撫軍士 賜征袍 三月 高句麗與靺鞨入北邊 取狐鳴等七城 又進軍於彌秩夫 我軍與百濟加耶援兵 分道禦之 賊敗退 追擊破之泥河西 斬首千餘級
삼년 춘이월 행비열성 존무군사 사장포 삼월 고구려여말갈입북변 취호명등칠성 우진군어미질부 아군여백제가야원병 분도어지 적패퇴 추격파지니하서 참수천여급
3년(서기 481) 봄 2월, 비열성(比列城)에 행차하여 병사들을 위로하고 군복을 내려주었다.
3월,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에 쳐들어와 호명(狐鳴) 등 일곱 성을 빼앗고, 또 미질부(彌秩夫)에 진군하였다. 우리 병사가 백제, 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서 그들을 막았다. 적이 패하여 물러가자 니하(尼河)의 서쪽까지 추격하여 쳐부수고 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四年 春二月 大風拔木 金城南門火 夏四月 久雨 命內外有司慮囚 五月 倭人侵邊
사년 춘이월 대풍발목 금성남문화 하사월 구우 명내외유사여수 오월 왜인침변
4년(서기 482) 봄 2월, 커다란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금성 남문에 불이 났다. 여름 4월, 비가 오랫동안 내렸다. 중앙과 지방의 담당관에게 명하여 죄수 명부를 살피게 하였다.
5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
五年 夏四月 大水 秋七月 大水 冬十月 幸一善界 存問遘災百姓 賜穀有差 十一月 雷 京都大疫
오년 하사월 대수 추칠월 대수 동시월 행일선계 존문구재백성 사곡유차 십일월 뢰 경도대역
5년(서기 483) 여름 4월 홍수가 났고 가을 7월 홍수가 났고 겨울 10월 일선(一善) 땅에 행차하여 재해를 당한 백성들을 위문하고 곡식을 차등하여 나누어 주었다. 11월 우레가 쳤고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六年 春正月 以烏含爲伊伐飡 三月 土星犯月 雨雹 秋七月 高句麗侵北邊 我軍與百濟 合擊於母山城下 大破之
육년 춘정월 이오함위이벌찬 삼월 토성범월 우박 추칠월 고구려침북변 아군여백제 합격어모산성하 대파지
6년(서기 484) 봄 1월 오함(烏含)을 이벌찬으로 임명하고 3월 토성(土星)이 달을 침범하였고 우박이 떨어졌다. 가을 7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기에 우리 병사가 백제군과 함께 모산성(母山城) 아래에서 공격하여 크게 쳐부수었다.
七年 春二月 築仇伐城 夏四月 親祀始祖廟 增置守廟二十家 五月 百濟來聘
칠년 춘이월 축구벌성 하사월 친사시조묘 증치수묘이십가 오월 백제래빙
7년(서기 485) 봄 2월 구벌성(仇伐城)을 쌓았다. 여름 4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 지내고 묘지기 20호를 추가로 두게 하였다. 5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八年 春正月 拜伊飡實竹爲將軍 徵一善界丁夫三千 改築三年屈山二城 二月 以乃宿爲伊伐飡 以參國政 夏四月 倭人犯邊 秋八月 大閱於狼山之南
팔년 춘정월 배이찬실죽위장군 징일선계정부삼천 개축삼년굴산이성 이월 이내숙위이벌찬 이참국정 하사월 왜인침변 추팔월 대열어랑산지남
8년(서기 486) 봄 1월 이찬 실죽(實竹)을 장군으로 삼았다. 일선군의 장정 3천 명을 징발하여 삼년산성(三年山城)과 굴산성(屈山城) 두 성을 고쳐 쌓았다. 2월, 내숙(乃宿)을 이벌찬으로 삼아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여름 4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 가을 8월, 낭산(狼山) 남쪽에서 열병하였다.
九年 春二月 置神宮於奈乙 奈乙 始祖初生之處也 三月 始置四方郵驛 命所司修理官道 秋七月 葺月城 冬十月 雷
구년 춘이월 치신궁어내을 내을 시조초생지처 삼월 시치사방우역 명소사수리궁도 추칠월 집월성 동시월 뢰
9년(서기 487) 봄 2월 내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설치하였다. 내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3월, 사방에 우역(郵驛, 공문을 전달하고 마필을 공급하는 곳)을 처음으로 설치하였고, 담당관에게 명하여 관도(官道)를 수리하게 하였다. 7월, 월성(月城)을 수리하였다. 겨울 10월, 우레가 쳤다.
十年 春正月 王移居月城 二月 幸一善郡 存問鰥寡孤獨 賜穀有差 三月 至自一善 所歷州郡獄囚 除二死悉原之 夏六月 東陽獻六眼龜 腹下有文字 秋七月 築刀那城
십년 춘정월 왕이거월성 이월 행일선군 존문환과고독 사곳유차 삼월 지자일선 소역주군옥수제이사실원지 하유월 동양헌육안귀 복하유문자 추칠월 축도나성.
10년(서기 488) 봄 1월 임금이 월성에 옮겨 거주하였다. 2월 일선군에 행차하여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곡식을 차등있게 나누어 주었다. 3월, 일선군에서 돌아오면서, 지나가는 주와 군의 감옥에 갇힌 죄수 가운데 두 가지 사형죄를 제외하고 나머지 죄수는 모두 풀어 주었다. 6월, 동양(東陽)에서 눈이 여섯 개인 거북을 바쳤는데, 배 밑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가을 7월, 도나성(刀那城)을 쌓았다.
十一年 春正月 驅游食百姓歸農 秋九月 高句麗襲北邊至戈峴 冬十月 陷狐山城
십일년 춘정월 구류식백성귀농 추구월 고구려습북변지과현 동시워 함고산성.
11년(서기 489) 봄 정월,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모아 농사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가을 9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과현(戈峴)에 이르렀다. 겨울 10월, 호산성(狐山城)이 함락되었다.
十二年 春二月 重修鄙羅城 三月 龍見鄒羅井 初開京師市肆 以通四方之貨
십이년 춘이월 중수비라성 삼월 용견추라정 초개경사시사 이통사방지물
12년(서기 490) 봄 2월 비라성(鄙羅城)을 다시 쌓았다. 3월 추라정(鄒羅井)에 용이 나타났다. 처음으로 수도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자를 유통시켰다.
十四年 春夏旱 王責己 減常膳
십사년 춘하한 왕책기 감상선
14년(서기 492),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자 임금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여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였다.
十五年 春三月 百濟王牟大遣使請婚 王以伊伐飡比智女 送之 秋七月 置臨海長嶺二鎭 以備倭賊
십오년 춘삼월 백제왕모대견사창혼 왕이이벌찬비지녀 송지 추칠월 치임해장령이진 이비왜적
15년(서기 493) 봄 3월, 백제왕 모대(牟大, 동성왕)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다. 임금은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을 그에게 보냈다. 가을 7월, 임해(臨海)와 장령(長嶺) 두 진(鎭)을 설치하여 왜적에 대비하였다.
十六年 夏四月 大水 秋七月 將軍實竹等 與高句麗戰薩水之原 不克 退保犬牙城 高句麗兵圍之 百濟王牟大遣兵三千 救解圍
십육년 하사월 대수 추칠월 장군실죽등 여고구려전살수지원 불극 퇴보견아성 고구려병위지백제왕모대견병삼천 구해위
16년(서기 494) 여름 4월 홍수가 났다. 가을 7월 장군 실죽 등이 살수(薩水)의 벌판에서 고구려와 싸웠다.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犬牙城)을 지키고 있었다. 고구려 병사가 그곳을 포위하자 백제왕 모대가 병사 3천 명을 보내 포위를 풀고 구원해주었다.
十七年 春正月 王親祀神宮 秋八月 高句麗圍百濟雉壤城 百濟請救 王命將軍德智 率兵以救之 高句麗衆潰 百濟王遣使來謝
십칠년 춘정월 왕친사신궁 추팔월 고구려위백제치양성 백제청구 왕명장군덕지 솔병이구재 고구려중궤 백제왕견사래사
17년(서기 495) 봄 1월 임금이 몸소 신궁에 제사 지냈다. 가을 8월 고구려가 백제의 치양성(雉壤城)을 포위하자 백제왕이 구원병을 청하였다. 임금이 장군 덕지(德智)에게 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 병사가 궤멸되자, 백제왕이 사신을 보내 고마움을 표하였다.
十八年 春二月 加耶國送白雉 尾長五尺 三月 重修宮室 夏五月 大雨 閼川水漲 漂沒二百餘家 秋七月 高句麗來攻牛山城 將軍實竹出擊 泥河上破之 八月 幸南郊觀稼
십팔년 춘이월 가야국송백치 미장오척 삼월 중수궁실 하오월 대우 알천수창 표몰이백여가 추팔월 고구려래공우산성 장군실죽출격 니하상파지 팔월교관가
18년(서기 496) 봄 2월 가야국(加耶國)에서 꼬리의 길이가 다섯 자 되는 흰 꿩을 보냈다.
3월 궁실을 다시 수리하였다. 5월, 큰 비가 내려 알천(閼川)의 물이 불어나 집 2백여 채가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갔다. 가을 7월, 고구려가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해왔다. 장군 실죽이 나아가 니하(泥河) 근처에서 공격하여 쳐부수었다. 8월 남쪽 교외에 나가 파종을 관람하엿다.
十九年 夏四月 倭人犯邊 秋七月 旱蝗 命群官 擧才堪牧民者各一人 八月 高句麗攻陷牛山城
십구년 하사월 왜인범변 추칠월 한황 먕군관 거재감목민자각일인 팔월 고구려공함우산성
19년(서기 497) 여름 4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 가을 7월, 가뭄이 들었으며 메뚜기떼가 나타났다. 모든 관리들에게 백성을 다스릴 만한 재주가 있는 사람을 각기 한 명씩 천거하도록 명하였다. 8월, 고구려가 우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二十二年 春三月 倭人攻陷長峰鎭 夏四月 暴風拔木 龍見金城井 京都黃霧四塞 秋九月 王幸捺已郡 郡人波路有女子 名曰碧花 年十六歲 眞國色也 其父衣之以錦繡 置轝冪以色絹 獻王 王以爲饋食 開見之 斂然幼女 怪而不納 及還宮 思念不已 再三微行 往其家幸之 路經古陁郡 宿於老嫗之家 因問曰 今之人 以國王爲何如主乎?
이십이년 춘삼월 왜인공함장봉진 하사월 폭충발목 용견금성정 경도왕무사색 추구월 왕행날이군 군인파로유여자 명왈벽화 년십육세 진국색야 기부의지이금수 치거멱이색견 헌왕 왕이위궤식 개견지 령연유녀 괴이불납 급환궁 사념불이 재삼미행 왕기가행지 노걍고타군 숙어노구지가 인문왈 “금지인 이국왕위하여주호?”
22년(서기 500) 봄 3월 왜인이 장봉진(長峰鎭)을 쳐서 함락시켰다. 여름 4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금성의 우물에 용이 나타났다. 서울 사방에 누런 안개가 가득 끼었다. 가을 9월, 임금이 날이군(捺已郡)에 행차하였다. 그 고을 사람 파로(波路)에게 이름이 벽화(碧花)라고 하는 딸이 있었는데, 나이는 열여섯으로 실로 온 나라 안에서 뛰어난 미인이었다. 소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수놓은 비단을 입혀 수레에 태우고 색깔 있는 명주로 덮어서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음식을 보낸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열어보니 어린 소녀였으므로 괴이하게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왕궁에 돌아와서 그리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두 세 차례 평복을 입고 그 집에 가서 소녀와 잠자리에 들었다. 도중에 고타군(古陁郡)을 지나다가 어떤 노파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백성들은 임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嫗對曰 “衆以爲聖人 妾獨疑之 何者 竊聞王幸捺已之女 屢微服而來 夫龍爲魚服 爲漁者所制 今王以萬乘之位 不自愼重 此而爲聖 孰非聖乎?” 王聞之大慙 則潛逆其女 置於別室 至生一子 冬十一月 王薨
구대왈 중이위성인 첩독의지 하자 절문왕행날이지녀 부미복이래 부용위어복 위어자소제 금왕이만승지위 부자신중 차이위상 숙비성호?왕문지대참 즉잠역기녀 치어별실 지생일자 동십일월 왕훙.
노파가 대답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의심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임금이 날이(捺已)의 여자와 관계하러 변복하고 자주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무릇 용이라도 물고기의 껍질을 쓰고 있다가는 고기잡이에게 잡히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의 임금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신중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이 성인이라면 누가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임금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부끄럽게 여겨 곧 몰래 그 여자를 맞아들여 별실에 두었다. 아들 하나를 낳기에 이르렀다. 겨울 11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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