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三國史記

新羅本紀-脫解尼師今


脫解尼師今

 

脫解尼師今立(一云吐解) 時年六十二 姓昔 妃阿孝夫人.

탈해이사금립(일운토해) 시년육십이 성석 비아효부인.

 

탈해이사금이 제위에 오르니 62세 때이다 성은 석씨여 왕비는 아효부인이다.

 

脫解 本多婆那國所生也. 其國在倭國東北一千里 初其國王娶女 國王女爲妻 有娠七年 乃生大卵. 王曰 人而生卵不祥也 宜棄之 其女不忍 以帛裹卵並寶物 置於櫝中 浮於海 任其所往.

탈해 본다파나국소생야. 기국재왜국동북일천리 초기국왕취녀 국왕여위처 유신칠년 내생대란. 왕왈 인이생란불상야 의기지 기녀불인 이금과란병보물 치어독중 부어해 임기소왕 .

 

탈해는 본디 다파나국 소생으로 왜국 동북 1000리에 있으며 처음 그 왕이 여자를 얻어 임신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는데 왕이 사람이 알을 낳는 건 상서롭지 못하니 버리기로 했으나 여인이 비단에 아이를 싸서 보물과 함께 상자에 넣어 정처없이 바닷물에 띄워 보냈다.

初至金官國海邊 金官人怪之不取. 又至辰韓阿珍浦口. 是始祖赫居世在位三十九年也.

초지금관국해변 금관이괴지불취. 우지진한아진포구 시시조혁거세재위39년야.

 

처음 금관 가야 해변에 다다랐으나 금관 가야인들이 괴상히 여겨 거두지 않았고 다시 진한 아진포구에 다다랐다. 이에 시조 혁거세 재위 39년의 일이다.

 

時海邊老母 以繩引繫海岸 開櫝見之 有一小兒在焉 其母取養之 及壯身長九尺 風神秀朗 智識過人.

시해변노모 이승인계해안 개독견지 유일소아재언 기모취양지 급장신장구척 풍신수랑 지식과인.

 

당시 해변의 어느 어머니가 줄로 해안 끌어대 상자를 열어보니 어린 아이가 있어 거두어 키웠는데 신장이 9척이요 생각이 올바르며 남보다 지혜가 많았다.

 

或曰 此兒不知姓氏 初櫝來時 有一鵲飛鳴而隨之 宜省鵲字 以昔爲氏 又解韞櫝而出 宜名脫解 脫解.

혹왈 차아부지성씨 초독래시 유일작비명이수지 의성작자 이석위씨 우해온독이출 의명탈해 탈해.

 

혹자는 말하길 이 아이의 성씨를 모르고 상자에서 꺼낼 때 까치가 울다 떨어졌으니 작이란 글자를 따서 석씨를 성으로 또한 상자에서 나왔으니 이름을 탈해로 했다

 

始以漁釣爲業 供養其母 未嘗有懈色 母謂曰 汝非常人 骨相殊異 宜從學以立功名.

시이어조위업 공양기모 미상유해색 모위왈 여비상인 골상수이 의종학이입공명.

 

처음엔 어업에 종사하며 어미를 모셨는데 전혀 게으름이 없었고 어미가 말하길 넌 보통 사람이 아니요 골상도 남다르니 공부하여 공명을 세우라 했다.

 

於是 專精學問 兼知地理 望楊山下瓠公宅 以爲吉地 設詭計 以取而居之 其地後爲月城. 至南解王五年 聞其賢 以其女妻之 至七年 登庸爲大輔 委以政事 儒理將死曰 先王顧命曰 吾死後 無論子壻 以年長且賢者 繼位是以 寡人先立 今也 宜傳其位焉.

어시전정학문 겸지지리 망양산하호공댁 이위길지 설궤게 이취이거지기지후위월성. 지남해왕오년 문기현 이기녀처지 지칠년 등용위대보 위이정사 유리장사왈 선왕고명왈 오사후 무론자서 이년장차현자 계위시이과인선입 금야 의전기위언.

 

그래서 학문에 정진하며 동시에 지리학도 공부하여 양산 아래 호공의 집을 보고 길지라 생각해 속임수를 부려 빼앗고 거주했는데 나중에 월성이 들어선 자리다. 남해왕 5년 그 현명함을 듣고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고 7년이 지나 대보(큰 조력자)의 입지를 주었고 정사를 돌보게 했다 유리가 죽어갈 즈음 말하길 선왕께서 내 죽으면 아들 사위 가리지 말고 연장이요 현명한 사람을 세우라셨는데 내가 먼저 위에 올랐으니 이제 마땅히 그에게 위를 넘겨주리라

 

二年 春正月 拜瓠公爲大輔 二月 親祀始祖廟

이년 춘정월 배호공위대보 이월 친사시조묘

 

2년 봄 1월에 호공을 대보로 삼고 2월 시조묘에 제를 올렸다.

 

三年 春三月 王登吐含山 有玄雲如蓋 浮王頭上 良久而散 夏五月 與倭國結好交聘 六月 有星孛于天船

삼년 춘삼월 왕등토함산 유현운여개 부왕두상 양구이산 하오월 여왜국결호교빙 유월 유성폐우천선.

 

3년 봄 3월에 왕이 토함산에 오르니 구름이 자욱히 끼었다 풀렸고 여름 5월 왜국과 사신을 교류하고 6월 유성이 천선성에서 내렸다.

 

 

천선(天船)9개의 붉은색 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은하수의 한가운데 있다. 강을 건너는 일을 주관하며 천선이 은하수 안에 없으면 수로(水路)가 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강물이 범람해 넘친다고 한다

 

五年 秋八月 馬韓將孟召 以覆嚴城降

오년 추팔월 마한장맹소 이복엄성항

 

5년 가을 8월 마한 장수 맹소가 망해 엄성에 투항하였다.

 

七年 冬十月 百濟王拓地 至娘子谷城 遣使請會 王不行

칠년 동시월 백제왕척지 지랑자곡성 견사청회 왕불행

 

7년 겨울 10월 백제왕이 땅을 개척하여 랑자곡성에 이르러 사신을 보내 만나자 하였으나 왕이 만나주지 않았다.

 

八年 秋八月 百濟遣兵 攻蛭山城 冬十月 又攻狗壤城 王遣騎二千 擊走之 十二月 地震 無雪

팔년 추팔월 백제견병 공질산성 동시월 우공구양성 왕견기이천 격주지 십이월 지진 무설

 

8년 가을 8월에 백제가 병사를 보내 질산성을 공격하고 10월 구양성을 또 공격하니 왕이 기병 2000을 보내 쫒아냈고 12월 지진이 발생하고 눈이 오지 않았다.

 

九年 春三月 王夜聞 金城西始林樹間 有鷄鳴聲 遲明 遣瓠公視之 有金色小櫝掛樹枝 白鷄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櫝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奇偉.

구년 춘삼월 왕야문 금성서시림수간 유계명성 지명 견호공시지 유금색소독괘수지 백계명어기하 호공환고 왕사인취독개지 유소남아재기중 자용기위.

 

9년 봄 3월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나중에 계림)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낡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피게 하니 작은 금색 상자가 나무에 걸려잇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다고 돌아와 보고하여 왕이 상자를 열고보니 남자 아이가 있는데 용모가 남다르더라.

 

上喜 謂左右曰 此豈非天遺我以令胤乎 乃收養之 及長聰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櫝姓金氏 改始林名鷄林 因以爲國號

상희 위좌우왈 차이비천유야이영윤호 내수양지 급장총명다지략. 내명알지 이기출어금독성김씨 개시림명계림 인이위국호.

 

왕이 기뻐하며 좌우 신료에게 이르길 이는 하늘이 나로 하여금 대를 이으라 주심이 아니겠는가(豈非)라며 거두어 키우니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하여 이름을 알지라하고 금빛 상자에서 나왔으니 김씨를 성으로 삼았고 시림을 계림으로 바꿔부르게 하고 무리의 이름으로 삼았다.

 

十年 百濟攻取蛙山城 留二百人居守 尋取之

십년 백제공취와산성 유이백인거수 심취지

 

10년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하고자 했으나 200여 명이 지키고 있어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十一年 春正月 以朴氏貴戚 分理國內州郡 號爲州主(-郡主) 二月 以順貞爲伊伐湌 委以政事

십일년 춘정월 이박씨귀척 분리국내주군 호위주주(군주) 이월 이순정위이벌찬 위이정사.

 

11년 봄 1월 박씨를을 귀한 일가로 구분하고 주와 군을 나누어 주의 우두머리로 세웠다, 2월 김순정을 이벌찬으로 정사를 살피도록 했다.

 

十四年 百濟來侵

십사년 백제래침

 

14년 백제가 침공해왔다.

 

十七年 倭人侵木出島 王遣角干羽烏禦之 不克 羽烏死之

십칠년 왜인침목출도 왕견각간우오어지 불극 우오사지.

 

17년 왜인이 목출도로 침략해왓고 왕이 각간 우오를 보내 다루게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우오가 죽었다.

 

十八年 秋八月 百濟寇邊 遣兵拒之

십팔년 추팔월 백제구변 견병거지

 

18년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여 군대를 보내 막았다.

 

十九年 大旱 民饑 發倉賑給 冬十月 百濟攻西鄙蛙山城 拔之

십구년 대한 민기 발창진급 동시월 백제공서비와산성 발지

 

19년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자 창고를 열어 구휼하였고 겨울 시월에 백제가 와산성 외곽을 공격하였으나 물리쳤다.

 

 

 

 

二十年 秋九月 遣兵伐百濟 復取蛙山城 自百濟來居者二百餘人 盡殺之

이십년 추구월 견병벌백제 복취와산성 자백제래거이백여인 진살지.

 

20년 가을 9월 백제에 병사를 보내 와산성을 탈환하고 백제 유민 200명을 모두 죽였다.

 

二十一年 秋八月 阿湌吉門與加耶兵 戰於黃山津口 獲一千餘級 以吉門爲波珍湌

賞功也

이십일년 추팔월 아찬길문여가야병 전어황산진구 획일천여급 이길문위파진ㅊ판상공야.

 

21년 가을 8월 아찬 길문에게 가야병을 주어 황산진에서 싸워 100여명 수급을 얻어 갈문을 파진찬의 공에 상을 주었다.

 

二十三年 春二月 彗星見東方 又見北方 二十日乃滅

이십삼년 춘이월 혜성견동방 우견북방 이십일내멸

 

23년 봄 2월 헤성이 동방에 또 북방에 나타나 20여일 만에 사라졌다.

 

二十四年 夏四月 京都大風 金城東門自壤 秋八月 王薨 葬城北壤井丘

이십사년 하사월 경도대풍 금성동문자괴 추팔월 왕훙 장성북괴정구

 

24년 여름 4월 수도에 태풍이 불어 금성 동문이 무너졌고 가을 팔월 왕이 승하하니 성 북쪽 괴정언덕에 장사했다.


'三國史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新羅本紀- 祇摩尼師今  (0) 2019.11.21
新羅本紀-婆娑尼師今  (0) 2019.11.20
新羅本紀-儒理尼師今立  (0) 2019.11.19
新羅本紀- 南解次次雄  (0) 2019.11.19
新羅本紀-朴赫居世  (0) 2019.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