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八十七. 李斯列傳]
李斯者, 楚上蔡人也. 年少時, 為郡小吏, 見吏舎廁中鼠食不絜, 近人犬, 數驚恐之. 斯入倉, 観倉中鼠, 食積粟, 居大廡之下, 不見人犬之憂. 於是李斯乃歎曰:「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処耳!」
이사자 초상채인야. 연소시 위군소리 견이사측중서식불결 근인견 수경공지. 사입창 관창중서 식적속 거대무지하 불견인견지우. 어시이사내탄왈 ‘인지현불초비여서의 재소자처이!’
이사(李斯)는 초(楚)의 상채(上蔡) 사람이다. 젊었을 때에 군(郡)의 하급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의 변소 안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사가 창고에 들어갔다가 창고 안의 쥐를 보니 쌓아 놓은 곡식을 먹고 큰 집에서 살며 사람이나 개를 보고도 겁을 내지 않았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며 ‘사람이 잘 나고 못 나는 것이 쥐와 같이 자신이 처해 있는 바에 달려 있을 뿐이구나!’라고 말했다.
乃従荀卿學帝王之術. 學已成, 度楚王不足事, 而六國皆弱, 無可為建功者, 欲西入秦. 辭於荀卿曰:「斯聞得時無怠, 今萬乗方爭時, 遊者主事. 今秦王欲呑天下, 稱帝而治, 此布衣馳騖之時而遊説者之秋也. 処卑賎之位而計不為者, 此禽鹿視肉, 人面而能彊行者耳. 故詬莫大於卑賎, 而悲莫甚於窮困. 久処卑賎之位, 困苦之地, 非世而悪利, 自託於無為, 此非士之情也. 故斯將西説秦王矣.」
내종순경학제왕지술. 학이성 도초왕부족사 이육국개약 무가위건공자 욕서입진. 사어순경왈 ;‘사문득시무태 금만승방쟁시 우자주사. 슴진왕욕탄천하 칭제이치 차호으치무지시이유세자지추야. 처비천지위이계불위자 차금록시육 인면이능강행자이. 고후막대어비천 이비막심어궁곤. 구처비천지위 인고지지 비세이악리 자탁어무위 차비사지정야. 고사장서세진왕의’
이에 순경(荀卿)으로부터 제왕의 학술을 배웠다. 학업을 마치자 초왕은 섬기기에는 부족하고, 여섯 나라는 모두 약해서 공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서쪽 진(秦)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순경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이 이사가 듣기에 때를 얻으면 게을리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제후들이 다투고 있는 때라 유세가들이 일을 주도합니다. 지금 진왕은 천하를 합병하여 제라고 칭하며 다스리려고 합니다. 이는 평민들이 내달릴 때이자 유세가들이 활약할 시기입니다.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계획을 세워 실행하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바라만 보는 것이고, 사람 얼굴을 하고 억지로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없고, 곤궁함보다 더 심한 슬픔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비천한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을 비난하고 이(利)를 미워하며, 스스로를 하지 않는 것에 맡기는 것은 남자(士)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왕에게 유세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至秦, 會荘襄王卒, 李斯乃求為秦相文信侯呂不韋舎人;不韋賢之, 任以為郎. 李斯因以得説, 説秦王曰:
지진 회장양왕졸 이시내구위진상문신후여불위사인 불위현지 임이위랑. 이사인이득세 세진왕왈:
진에 이르자 때 마침 장양왕(莊襄王)이 죽었다. 이사는 바로 진의 재상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의 사인(舍人, 문객)이 되기를 청했다. 여불위는 그를 유능하다 보고 낭(郞)에 임명했다. 이사는 이로 인해 유세할 기회를 얻어 진왕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胥人者, 去其幾也. 成大功者, 在因瑕釁而遂忍之. 昔者秦穆公之霸, 終不東並六國者, 何也? 諸侯尚衆, 周徳未衰, 故五伯迭興, 更尊周室. 自秦孝公以來, 周室卑微, 諸侯相兼, 関東為六國, 秦之乗勝役諸侯, 蓋六世矣. 今諸侯服秦, 譬若郡県. 夫以秦之彊, 大王之賢, 由灶上騒除, 足以滅諸侯, 成帝業, 為天下一統, 此萬世之一時也. 今怠而不急就, 諸侯複彊, 相聚約従, 雖有黃帝之賢, 不能並也.」
‘소인자 거이기야. 성대공자 재인하흔이수인지. 석자진목공지패 종부동병육국자 하야? 제후상중 주덕미쇠 고오백질흥 경존주실. 자진효공이래 주실비미 제후상경 관동위육국 진지승승역제후 개육세의. 금제후복진 비약군현. 부이진지강 대왕지현 유조상 소제 족이멸제후 성제업 위천하일통 차만세지일시야, 금태이불급취 제후복강 상위약종 수유황재지현 불능병야’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칩니다.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틈을 놓치지 않고 마침내 그것을 견디어 내는데 있습니다. 옛날 진 목공(穆公)이 패주가 되고도 끝내 동쪽의 여섯 나라를 병합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제후들이 여전히 많았고, 주(周)의 덕이 아직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패(五覇)가 번갈아 일어나 더욱 주 왕실을 존중했습니다. 진 효공(孝公) 이래로 주 왕실이 미미해지고 제후들이 서로를 아우르면서 관동은 여섯 나라가 되었고, 진은 승세를 타고 제후들을 부린지 대체로 6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제후들이 진에 복종하여 마치 (진의) 군현과 같습니다. 대저 진의 강대함, 대왕의 현명함으로써 부뚜막의 먼지를 청소하듯 제후들을 없애고 제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으니 이는 만년에 한 번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름을 부리며 급히 이루지 않고 있다가 제후들이 다시 강해져 서로 모여 합종을 맹약하게 되면 비록 황제의 현명함이 있더라도 합병할 수 없습니다.’
秦王乃拝斯為長史, 聴其計, 陰遣謀士齎持金玉以遊説諸侯. 諸侯名士可下以財者, 厚遺結之;不肯者, 利剣刺之. 離其君臣之計, 秦王乃使其良將隨其後. 秦王拝斯為客卿.
진왕내배사위장사 청기계 음견모사제지금옥이유세제후, 제후명사가하이재자 훙유결지 불긍자 이검자지. 이기군신지계 진왕내사기랑장수기후. 진왕배사위객경.
진왕은 이에 이사를 장사(長史)로 삼고, 그 계책을 듣고 은밀하게 모사들에게 금과 옥을 가지고 제후들에게 유세하게 했다. 제후국의 명사들 중 재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자에게는 후한 예물을 보내 결탁했고, 받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날카로운 칼로 찔렀다. 군신을 이간질하는 계략과 함께 진왕은 훌륭한 장수에게 그 뒤를 따르게 했다. 진왕은 이사를 객경에 임명했다.
會韓人鄭國來閒秦, 以作注漑渠, 已而覚. 秦宗室大臣皆言秦王曰:「諸侯人來事秦者, 大抵為其主遊閒於秦耳, 請一切逐客.」李斯議亦在逐中. 斯乃上書曰:
회한인정국내간진 이작주개거 이이각. 진종실대신개언진왕왈 ‘제후인래사진자 대더위기주유한어진이 청일절축객’ 이사의역재축중. 사내상서왈:
그때 마침 한(韓)의 정국(鄭國)이라는 사람이 와서 진을 이간질하려고 논밭에 물을 대는 운하를 만들고자 했으나 오래지 않아 발각되었다. 진의 왕족과 대신들이 모두 진왕에게 아뢰기를 ‘제후국에서 와서 진나라를 섬기는 사람 가운데 대다수는 자신의 군주를 위해 유세를 하며 진을 이간질할 뿐이오니, 객들을 모두 축출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사 역시 축출 대상으로 논의되었다. 이사는 이에 글을 올렸다.
臣聞吏議逐客, 竊以為過矣. 昔繆公求士, 西取由餘於戎, 東得百里奚於宛, 迎蹇叔於宋, 來丕豹、公孫支於晉. 此五子者, 不産於秦, 而繆公用之, 並國二十, 遂霸西戎. 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彊, 百姓樂用, 諸侯親服, 獲楚、魏之師, 挙地千里, 至今治彊.
신문사의축객 절이위과의. 석목공구사 서취유여어융 동득백리해어완 영건숙어송 내비표 공손지어진. 차오자 불산어진 이목공용지 병국이십 수패서융. 효공용상앙지법 이충역속 민이은성 국이부강 백성요용 제후친복 획초 위지사 거지천리 지금치강.
‘신이 관리들이 문객들을 축출하자는 논의를 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목공(繆公)은 인재를 구하고자, 서쪽으로는 융(戎)에서 유여(由余)를 데려오고, 동쪽으로는 완(宛)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宋)으로부터 건숙(蹇叔)을 맞이했고, 진(晉)으로부터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를 불러들였습니다. 이 다섯 사람들은 진(秦)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목공은 그들을 등용해 20개 나라를 병합하고, 마침내 서융(西戎)을 제패했습니다. 효공이 상앙(商鞅)의 법을 채용해 풍속을 바꾸자, 백성들이 부유해졌고 국가는 부강해졌습니다. 백성들은 쓰이는 것을 즐거워했고, 제후들은 몸소 복종했습니다. 초와 위(魏)의 군대를 제압하고 천리의 땅을 얻게 되어, 지금까지 평화롭고 강한 것입니다.
恵王用張儀之計, 抜三川之地, 西並巴、蜀, 北収上郡, 南取漢中, 包九夷, 制鄢、郢, 東拠成皐之険, 割膏腴之壌, 遂散六國之従, 使之西面事秦, 功施到今.
혜왕용장의지계 발삼천지지 서병읍 촉 북취상군 남취한중 포구이 제언 영 동처성고지험 할고유지양 수산육국지종 사지서면사진 공시도금.
혜왕(惠王)은 장의(張儀)의 계책을 써서 삼천(三川)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는 파(巴)와 촉(蜀)을 통합하고, 북쪽으로는 상군(上郡)을 거두었고, 남쪽으로는 한중(漢中)을 점령했으며, 구이(九夷)를 포섭해 언영(鄢郢)을 제압하고, 동쪽으로는 성고(成皐)의 험준함에 근거해 비옥한 땅을 할양받아, 마침내 여섯 나라의 합종을 깨뜨려서, 그들로 하여금 서쪽을 바라보며 진을 섬기게 하셨는데, 그 공로가 지금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昭王得範睢, 廃穣侯, 逐華陽, 彊公室, 杜私門, 蠶食諸侯, 使秦成帝業. 此四君者, 皆以客之功. 由此観之, 客何負於秦哉! 向使四君卻客而不內, 疏士而不用, 是使國無富利之実而秦無彊大之名也.
소왕득범수 폐양후 축화양 강공실 두사문 잠식제후 사진성제업. 차사군자 개이객지공. 유차관지 객가부어진재! 향사사군각갹이불내 소사용불용 시사국무부히지해진무강대지명야.
소왕(昭王)은 범수(范睢)를 얻어서, 양후(穰侯)를 폐위시키고, 화양군(華陽君)을 축출해, 진 왕실을 강화시키고 대신들의 가문이 커지는 것을 막으면서, 제후국들을 잠식했고, 진으로 하여금 황제의 대업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이 네 임금은 모두 객에게 공을 세우게 했습니다. 이러한 옛일을 보면, 객이 어찌 진을 저버렸다고 할지요! 앞의 네 임금이 객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인재를 멀리하고 등용하지 않았다면, 나라에 부귀와 이익의 실제가 없었을 것이며, 진의 강대국이라는 명성도 없었을 것입니다.
今陛下致昆山之玉, 有隨、和之寶, 垂明月之珠, 服太阿之剣, 乗繊離之馬, 建翠鳳之旗, 樹霊鼉之鼓. 此數寶者, 秦不生一焉, 而陛下説之, 何也? 必秦國之所生然後可, 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 犀象之器不為玩好, 鄭、衛之女不充後宮, 而駿良駃騠不実外廄,
금폐하치곤산지옥 유수 화지보 수명월지주 복태아지검 승섭리지마 건취봉지기 수영타지고. 사수보자 진불생이언 이폐하세지 하야? 필진국지소생연후가 즉시야광지벽불식조정 서상지기불위완호 정 위지여불충후궁 이준양결제부실외구.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崑崙山)의 옥을 가지고 계시고, 수씨(隨氏)와 화씨(和氏)의 벽옥(璧玉)을 보유하셨으며, 명월주(明月珠)를 차고 태아(太阿)의 명검을 지니셨습니다. 섬리마(纖離馬)를 타고 취봉기(翠鳳旗)를 세우시고, 영타(靈鼉)의 북까지 가지셨습니다. 이 여러 보물들은 진에서 하나도 생산되지 않았건만, 폐하께서 그것을 좋아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반드시 진에서 생산된 것이라야만 된다면, 야광의 옥으로 조정을 꾸밀 수 없으며, 코뿔소의 뿔이나 상아로 노리개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정(鄭)과 위(衛)의 미녀들로 후궁을 채워도 안 되며, 결제(駃騠)와 같은 준마들로 바깥 마구간을 채워서는 안 됩니다.
江南金錫不為用, 西蜀丹青不為采. 所以飾後宮充下陳娯心意説耳目者, 必出於秦然後可, 則是宛珠之簪, 傅璣之珥, 阿縞之衣, 錦繍之飾不進於前, 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女不立於側也. 夫撃甕叩缶弾箏搏髀, 而歌呼嗚嗚快耳(目)者, 真秦之聲也;鄭、衛、桑閒、昭、虞、武、象者, 異國之樂也. 今棄撃甕叩缶而就鄭衛, 退弾箏而取昭虞, 若是者何也? 快意當前, 適観而已矣.
강남금석불위용 서촉단청불위채. 소이식후굴불하진오심의세이목자 필출어진연후가 즉시왕주지잠 부기지이 아호지의 금수지식불진어전 이수속아화가치요조조녀불립어측야, 부격옹고부탄쟁박비 이가호명명쾌잊 진진지성야; 정 위 상간 소 우 무 상자 이국지악야. 금기결옹고부이취정위 퇴탄쟁이위소우 약시자하야? 쾌의당전 적관이이의.
강남의 금과 주석도 쓸 수 없으며, 서촉(西蜀)의 단청(丹靑)으로 색칠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후궁을 장식하고 희첩들을 꾸며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반드시 진나라에서 난 것이라야 한다면, 완주(宛珠)의 비녀, 부기(傅璣)의 귀고리, 아호(阿縞)로 지은 옷, 비단 장식들도 폐하의 앞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며, 세속의 유행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차린 조(趙)의 미녀들도 곁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대저 항아리(甕)를 두들기고 질장구(缶)를 치거나 쟁(箏)을 타며 넓적다리를 치면서, 어야디야 노래를 불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참다운 진의 음악 소리입니다. “정(鄭)”·“위(衛)”·“상간(桑間)”·“소(昭)”·“우(虞)”·“무(武)”·“상(象)” 등은 다른 나라의 음악 소리들입니다. 지금 항아리를 두들기며 질장구를 치던 것을 버리고 “정”과 “위”의 음악을 취하며, 쟁을 타던 것을 물리치고 “소”와 “우”의 음악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당장 마음을 즐겁게 하고, 눈으로 보기에 적합할 따름이옵니다.
今取人則不然. 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為客者逐. 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 而所軽者在乎人民也.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 臣聞地広者粟多, 國大者人衆, 兵彊則士勇. 是以太山不譲土壌, 故能成其大;河海不択細流, 故能就其深;王者不卻衆庶, 故能明其徳. 是以地無四方, 民無異國, 四時充美, 鬼神降福,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
금취인죽불연. 불문불가 불론곡직 비진자거 위객자축. 연즉시소중자재호색악주옥 이소경자재호인민야. 차비소이궤해내제제후지술야. 신문지광자속다 국대자인중 병강즉사용. 시이태산불양토양 소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왕자불각중서 고능명기덕. 시이지무사방 민무이국 사시충미 쉬신강복 차오제 삼왕지소이무적야.
그러나 지금 인재를 얻는 데는 그렇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묻지 않고, 굽은지 곧은지를 따지지 않고, 진나라 사람 아니면 물리치고, 객들을 쫓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색·음악·주옥 등은 소중히 여기고, 사람은 경시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천하에 군림하며 제후들을 제압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게 되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병력이 강하면 병사가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즉 태산(泰山)은 흙을 양보하지 않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왕은 뭇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기에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토는 사방으로 끝이 없고, 백성에게는 이국(異國)이 없으며, 사시사철 아름다움이 충만하고, 귀신이 복을 내립니다. 이는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 卻賓客以業諸侯, 使天下之士退而不敢西向, 裹足不入秦, 此所謂「藉冦兵而齎盜糧」者也. 夫物不産於秦, 可寶者多;士不産於秦, 而願忠者衆. 今逐客以資敵國, 損民以益讎,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 求國無危, 不可得也.
금내기검수이자적국 각빈객이업제후 사천하지사퇴이불감서향 이족불입진 차소위 ’적구명이제도량‘자야. 부물불산어진 가보자다 ; 사불산어진 이원충자중. 금축객이자적국 손민이익수 내자처이외수원어제후 구국무위 불가득야.
지금 진은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이롭게 하고, 객을 물리쳐서 제후에게 공을 세우게 하며, 천하의 인재로 하여금 물러나게 해 감히 서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어 진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적에게 병사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것’입니다. 대저 진에서 생산되지 않은 물건들 중에 보배로운 것이 많으며, 진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재들 중에 충성을 바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객을 축출해 적국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줄여서 원수에게 더해주어, 안으로는 저절로 텅 비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망을 사게 되면, 나라를 구하고 위태로움이 없게 할 수 없습니다.”
秦王乃除逐客之令, 複李斯官, 卒用其計謀. 官至廷尉. 二十餘年, 竟並天下, 尊主為皇帝, 以斯為丞相. 夷郡県城, 銷其兵刃, 示不複用.
진왕내제축객지령 복이사궁 졸용기계모. 관지정위. 이십여년 경병천하 존두위황제 이사위승상. 이군현성 소기병인 시불복용.
진왕은 이리하여 객에 대한 축출 명령을 취소하고, 이사(李斯)의 벼슬을 돌려주고, 마침내 그의 계책을 수용했다. 이사의 벼슬은 정위(廷尉)에 이르렀다. 20여 년 뒤, 결국 진은 천하를 통일했으며, 왕을 높여 황제라고 했고, 이사를 승상으로 삼았다. 군과 현의 성벽을 허물고 그 무기들을 녹여서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使秦無尺土之封, 不立子弟為王, 功臣為諸侯者, 使後無戦攻之患.
사진무척토지봉 불립자제위왕 공신위제후자 사후무전공지환.
진은 한 자(尺)의 땅도 봉해주지 않고, 자제(子弟)를 세워서 왕으로 삼지 않았으며, 공신(功臣)을 제후로 삼지 않았다. 이것은 뒷날 내란의 우환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始皇三十四年, 置酒鹹陽宮, 博士僕射周青臣等頌始皇威徳. 斉人淳於越進諫曰:
시황삼십사년 치주함양궁 박사복야주청신등송시황위덕. 제인순우월진간왈:
진시황 34년에, 함양궁(咸陽宮)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박사복야(博士僕射) 주청신(周靑臣) 등이 시황제의 위엄과 덕망을 칭송했다. 제(齊) 사람 순우월(淳于越)이 나아가 간언했다.
「臣聞之, 殷周之王千餘歳, 封子弟功臣自為支輔. 今陛下有海內, 而子弟為匹夫, 卒有田常、六卿之患, 臣無輔弼, 何以相救哉? 事不師古而能長久者, 非所聞也. 今青臣等又面諛以重陛下過, 非忠臣也.」
‘신문지 은주지왕천여세 봉자제공신자위기보. 금폐하유해내 이자제위필부 졸유전산 육경지환 신무보필 하이상구재? 사불사고이능장구자 비소문야, 금청신등우면유이중폐하과 비충신야’
‘신이 듣건대, 은과 주가 천여 년 동안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제와 공신을 봉하여 저절로 왕실을 돕는 지주가 되게 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소유하시고 계시지만, 자제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전상(田常)과 육경(六卿)의 환란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보필할 신하가 없으니 어떻게 나라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일 가운데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들은 바가 없사옵니다. 지금 저 주청신 등이 면전에서 아첨해 폐하의 잘못을 무겁게 만드니 충신이 아닙니다.’
始皇下其議丞相. 丞相謬其説, 絀其辭, 乃上書曰:
시황하기의승상. 승상유기설 출기사 내상서왈:
시황제는 이 의견을 승상에게 하달했다. 승상 이사는 그 견해가 오류가 있다 여겨 반박하는 상서를 올렸다.
「古者天下散亂, 莫能相一, 是以諸侯並作, 語皆道古以害今, 飾虛言以亂実, 人善其所私學, 以非上所建立. 今陛下並有天下, 別白黒而定一尊;而私學乃相與非法教之制, 聞令下, 即各以其私學議之, 入則心非, 出則巷議, 非主以為名, 異趣以為高, 率群下以造謗. 如此不禁, 則主勢降乎上, 黨與成乎下. 禁之便.
‘고자천하산란 막능상일 시이제후병작 어개도고금해금 식허언이난실 인선기소사학 이비상고건립. 금폐하병유천하 별백흑이정일존; 이사락내상여비법교지제 문영하 즉각이기샇ㄱ의지 입즉심비 출즉항의 ㅂ주이위명 이취이위고 솔군하이조방. 여차물금 즉주세항호상 당여성호하 금지경.
’옛날에는 천하가 어지러워 이를 통일시킬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제후들이 동시에 일어났고, 말은 모두 과거의 일을 인용해 지금의 것을 해쳤고, 헛된 말을 꾸며서 사실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개인적으로 배운 것을 옳다고 여기고, 위에서 세운 법제를 비난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셨고, 흑백을 분별해 오직 한 분의 황제만이 계심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배우는 자들이 서로 모여 조정에서 정한 법제를 비방합니다. 조칙(詔勅)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으면 곧 저마다 개인적으로 배운 것으로써 그것을 논의합니다. 집에 들어가서는 마음속으로 비방하고, 밖으로 나와서는 길거리에서 논의합니다. 군주를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취지를 달리함을 고상한 것으로 여겨서, 여러 추종자들을 이끌고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금지시키지 않는다면, 위로는 군주의 위상이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형성될 것이니 금지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臣請諸有文學詩書百家語者, 蠲除去之. 令到満三十日弗去, 黥為城旦. 所不去者, 醫薬蔔筮種樹之書. 若有欲學者, 以吏為師.」
신청제유문학시서백가어자 견제거지. 영도만삼십일불거 경위성단. 소불거자 의약복서종수지서. 약유욕학자 이리위사‘
신은 여러 제자백가의 저서들을 폐기시킬 것을 간청합니다. 금지령이 내린 지 30일이 지나도록 폐기하지 않으면, 경형(黥刑, 죄인의 이마나 팔뚝 따위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을 내려 성단(城旦, 죄인으로서 낮에는 적을 방어하고 밤에는 성을 쌓는 일에 복역하는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폐기하지 않아도 되는 책은 의약서와 복서(卜筮) 그리고 농림(農林)에 관한 책입니다. 만약 배우고자 하는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되옵니다.’
始皇可其議, 収去詩書百家之語以愚百姓, 使天下無以古非今. 明法度, 定律令, 皆以始皇起. 同文書. 治離宮別館, 周遍天下. 明年, 又巡狩, 外攘四夷, 斯皆有力焉.
시황가기의 수거시거백가지어이우백성 사천하무이고비금. 명법도 정율령 개이시황기. 동문서. 치이궁별관 주편천하. 명년 우순수 외양사이 사개유력언.
시황제는 이 의견이 옳다고 여기고, 시, 서 그리고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폐기시켜 백성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천하에 옛것으로써 현재를 비방하는 자가 없게 했다. 법도를 밝히고 율령을 정하는 것은 모두 시황제에게서 비롯되었다. 문자를 통일시켰다. 이궁(離宮)과 별관(別館)을 천하에 두루 지었다. 이듬해에 천하를 순방(巡訪)했고,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쳤는데, 이러한 일은 모두 이사가 힘썼다.
斯長男由為三川守, 諸男皆尚秦公主, 女悉嫁秦諸公子. 三川守李由告帰鹹陽, 李斯置酒於家, 百官長皆前為壽, 門廷車騎以千數.
사장남유위삼천수 제남개상진공주 여실가진제공자. 삼천수유고귀함양 이사치주어가 백관장개전위수 문정거기이수천.
이사의 맏아들 이유(李由)는 삼천군(三川郡)의 군수가 되었고, 여러 아들은 모두 진의 공주에게 장가들었고, 딸들은 모두 진의 여러 공자에게 시집을 갔다. 삼천군의 군수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咸陽)으로 돌아오자, 이사는 술잔치를 베풀었다. 백관의 우두머리가 모두 참석해 이사에게 장수를 기원했는데, 대문과 뜰에는 수레와 말이 수천이나 되었다.
李斯喟然而歎曰:「嗟乎! 吾聞之荀卿曰『物禁大盛』. 夫斯乃上蔡布衣, 閭巷之黔首, 上不知其駑下, 遂擢至此. 當今人臣之位無居臣上者, 可謂富貴極矣. 物極則衰, 吾未知所稅駕也!」
이사위연이탄왈: ‘차호! 오문지순경왈 “물금대성”. 부사내상채포의 여항지검수 상부지기노하 수탁지차. 당금인신지위무거신상자 가위부귀극의. 물극즉쇠 오미지소세가야!’
이사가 한숨을 쉬며 탄식하기를 ‘아! 나는 순경(荀卿)께서 “사물은 지나치게 성대해지는 것을 금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나 이사는 상채(上蔡)에서 태어난 평민이며 여항(閭巷)의 백성일 뿐인데, 폐하께서는 나의 재능이 모자람을 알지 못하시고 발탁하시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신하들 가운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으니 부귀가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이 극에 이르면 쇠퇴하거늘, 내가 어디서 멈추어야 될지 모르겠구나.’라고 했다.
始皇三十七年十月, 行出遊會稽, 並海上, 北抵琅邪. 丞相斯、中車府令趙高兼行符璽令事, 皆従. 始皇有二十餘子, 長子扶蘇以數直諫上, 上使監兵上郡, 蒙恬為將. 少子胡亥愛, 請従, 上許之. 餘子莫従.
시황제삼십칠년시월 행출유회계 뱡해상 북저랑야. 승상사 중거부령조고겸행부쇄영사 개종. 시황제유이십여자 장자부소이수직간상 상사감병상군 몽염위샂. 소자호해애 청종 상허지. 여자막종.
진시황 37년 10월, 회계산(會稽山)으로 가 해안을 따라 북쪽 낭야(琅邪)에 이르렀다. 승상 이사가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趙高)가 부새령(府璽令)의 책임을 맡아 수행했다. 시황제에게는 2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부소(扶蘇)가 여러 차례 직언(直言)을 올리기에, 시황제는 그에게 상군(上郡)의 군대를 감독하게 내보냈는데, 몽염(蒙恬)이 그 군대의 장군이었다. 시황제는 어린 아들 호해(胡亥)를 총애했는데, 그가 따라갈 것을 청하자 이를 허락했다. 나머지 아들들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其年七月, 始皇帝至沙丘, 病甚, 令趙高為書賜公子扶蘇曰:「以兵屬蒙恬, 與喪會鹹陽而葬.」書已封, 未授使者, 始皇崩.
기년칠월 시황제지사구 병심 영조고위서사공자부소왈 ‘이병속몽염 야상회함양이장’ 서이봉 미수사자 시황붕.
그해 7월, 시황제가 사구(沙丘)에 이르렀을 때 병이 심해져 조고에게 맏아들 부소에게 편지를 써 보내게 했다. 편지에는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와서 나의 영구를 맞아 장사 지내라.’라고 쓰여 있었다. 편지는 이미 봉했지만 아직 사자(使者)에게 주기 전에 시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書及璽皆在趙高所, 獨子胡亥、丞相李斯、趙高及幸宦者五六人知始皇崩, 餘群臣皆莫知也.
서급새개재조고소 독자호해 승상이사 조고급행환자오육인지시황붕 여군신개막지야.
그 편지와 옥새는 모두 조고가 지니고 있었고, 오직 아들 호해, 승상 이사, 조고 및 환관 대여섯 명만이 시황제의 죽음을 알았고 나머지 여러 신하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李斯以為上在外崩, 無真太子, 故袐之. 置始皇居轀輬車中, 百官奏事上食如故, 宦者輒従轀輬車中可諸奏事.
이사이위상재외붕 무진태자 고비지. 치시황거온량거중 백관진사상식여고 환자첩종온량거중가제진사.
이사는 황제가 외유중(外遊中)에 죽었고, 정식 태자가 책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을 비밀에 부쳤다. 시황제의 유해를 온량거(轀輬車) 속에 놓아두니 백관들이 정사를 아뢰고 식사를 올리는 것을 예전처럼 했다. 환관이 매번 온량거 안에서 여러 가지 국사(國事)를 결재했다.
趙高因留所賜扶蘇璽書, 而謂公子胡亥曰:「上崩, 無詔封王諸子而獨賜長子書. 長子至, 即立為皇帝, 而子無尺寸之地, 為之柰何?」胡亥曰:「固也. 吾聞之, 明君知臣, 明父知子. 父捐命, 不封諸子, 何可言者!」
조고인유소사부소새서 이위공자호해왈 ‘상붕 무조봉왕제자이독사장자서. 장자지 즉립위황제 이자무척촌지지 위지내하?’ 호해왈 ‘고야. 오문지 명군지신 명부지자 부손명 불봉제자 하가언자!’
조고는 옥새가 찍힌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공자(公子) 호해에게 말하기를 ‘황제께서 돌아가셨지만, 여러 아들 가운데 누구를 황제로 봉한다는 조서가 없고, 오직 맏아들에게만 글을 남기셨습니다. 맏아들이 오면, 곧 황제로 즉위하게 되고, 공자께서는 한 치의 땅도 가질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호해가 대답하기를 ‘당연하지요. 나는 현명한 군주는 신하를 잘 알고, 현명한 아버지는 아들을 잘 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운명을 하시면서 여러 아들을 제후에 봉하지 않으셨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라고 했다.
趙高曰:「不然. 方今天下之権, 存亡在子與高及丞相耳, 願子図之. 且夫臣人與見臣於人, 制人與見制於人, 豈可同日道哉!」胡亥曰:「廃兄而立弟, 是不義也;不奉父詔而畏死, 是不孝也;能薄而材譾, 彊因人之功, 是不能也:三者逆徳, 天下不服, 身殆傾危, 社稷不血食.」
조고왈 ‘불연 방금천하지권 존망제자여고급승상이 원자도지. 차부신인여견신어인 제인여견제어인 이가동이도재!’ 호해왈 ‘폐형이입제 시불의야; 불봉부조이외사 시불효야; 능박이제전 강인인지공 시불능야; 삼자역덕 천하불복 신태경위 사직불혈식’
조고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공자와 저와 승상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공자께서는 이를 도모하시기 바라옵니다. 장차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또 남을 제압하는 것과 남에게 제압당하는 것을 어찌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자, 호해가 말하기를 ‘형을 폐하고 아우를 세우는 것은 불의이고, 아버지의 조서를 받들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효이며, 재능이 천박하면서 억지로 남의 공로에 의지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오. 이 세 가지는 덕을 거스르는 것으로,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의 몸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고, 사직의 제사를 받들지 못하게 될 것이오.’라고 말했다.
高曰:「臣聞湯、武殺其主, 天下稱義焉, 不為不忠. 衛君殺其父, 而衛國載其徳, 孔子著之, 不為不孝. 夫大行不小謹, 盛徳不辭譲, 郷曲各有宜而百官不同功. 故顧小而忘大, 後必有害;狐疑猶予, 後必有悔. 斷而敢行, 鬼神避之, 後有成功. 願子遂之!」胡亥喟然歎曰:「今大行未発, 喪禮未終, 豈宜以此事幹丞相哉!」
고왈 ‘신문탕 무살기주 천하칭의언 불위불충. 위군살기부 이위국재기덕 공자저지 불위불효, 부대행불소근 성덕불사양 향곡각유의이백관부동공. 고고소이망대 후필유해; 호의유여 후필유회. 단이감행 귀신피지 후유성공. 원자수지!’ 호해위연탄왈 ‘금대행미발 ㅅㅇ예미종 이의이차산간승상재!’
조고가 말하기를 ‘제가 듣건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각기 자기의 임금을 죽였지만, 천하가 의롭게 칭송하며 불충(不忠)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위(衛)의 임금이 자기 아버지를 죽였지만 백성들은 그 덕을 받들었으며, 공자(孔子)도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불효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큰 일을 행할 때에는 작은 일에 주의할 필요가 없고, 큰 덕이 있는 사람은 일을 사양하지 않으며, 고을마다 제각기 특이한 면이 있고, 백관의 공이 다 같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돌아보다가 큰 일을 잊으면, 나중에 반드시 해로울 것이며, 의심을 해 주저하시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과감하게 행동하시면 귀신도 그것을 피해가며, 나중에 성공할 것입니다. 공자(公子)께서 이를 실행하실 것을 바라옵니다.’라고 했다. 호해가 한숨을 쉬며 탄식하기를 ‘아직 장사를 치르지도 않았고 상례(喪禮)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을 가지고 승상에게 동의를 구한단 말이오!’라고 했다.
趙高曰:「時乎時乎, 閒不及謀! 贏糧躍馬, 唯恐後時!」
조고왈 ‘시호시호 간불급모! 영양약마 유공후시!’
조고가 말하기를 ‘때가 때인 만큼, 의논할 시간이 없습니다. 말을 배불리 먹이고 달리길 기다리다간 오히려 후회할겁니다.’라고 했다.
胡亥既然高之言, 高曰:「不與丞相謀, 恐事不能成, 臣請為子與丞相謀之.」
호해기연고지언 고왈 ‘불여승상모 공사불능성 신청위자여승상모지’
호해는 이미 조고의 말을 옳다고 여기게 되었다.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과 의논하지 않으면 아마도 이 일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이 공자(公子)를 위해서 승상과 의논하겠습니다.’라고 했다.
高乃謂丞相斯曰:「上崩, 賜長子書, 與喪會鹹陽而立為嗣. 書未行, 今上崩, 未有知者也. 所賜長子書及符璽皆在胡亥所, 定太子在君侯與高之口耳. 事將何如?」斯曰:「安得亡國之言! 此非人臣所當議也!」高曰:「君侯自料能孰與蒙恬? 功高孰與蒙恬? 謀遠不失孰與蒙恬? 無怨於天下孰與蒙恬? 長子舊而信之孰與蒙恬?」斯曰:「此五者皆不及蒙恬, 而君責之何深也?」
고내위승상사왈 ‘상붕 사장자서 여상회함양이립위사. 서미행 금상붕 미유지자야. 소사장자서습부새개재호해소 정태자재군후여고지구이. 사장하여?’ 사왈 ‘안득망국지언! 차비인신고당의야!’ 고왈 ‘군후자료능숙여몽염? 공곳ㄱ여몽염? 모원부실숙여몽염? 무원어천하숙여몽염? 장자구이신지숙여몽염’ 사왈 ‘차오자개불급몽염 이군책지하심야?’
조고는 이리하여 승상 이사에게 말하기를 ‘황제께서 돌아가시면서 맏아들에게 편지를 내려 함양에서 장사를 지내고 후사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편지는 아직 발송하지 않았고, 지금 황제가 돌아가신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맏아들에게 내린 편지와 옥새는 모두 호해가 가지고 있습니다. 태자를 정하는 일은 군후(君侯)와 저의 입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이사는 ‘어찌해 나라를 망칠 말을 한단 말이오! 이는 신하가 논의할 만한 것이 아니오!’라고 말했고, 조고가 ‘군후께서는 스스로 능력을 헤아려 볼 때, 몽염(蒙恬)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공로는 몽염과 비교해 누가 더 높습니까? 계책은 몽염과 비교해 누가 더 실패하지 않고 원대했습니까? 몽염과 비교해 천하의 원한은 누가 더 없습니까? 맏아들과의 관계가 오래되고 신임하기로는 몽염과 비교해 누가 더 낫습니까?’라고 묻자, 이사는 ‘이 다섯 가지 모두 몽염보다 못하오. 그대는 왜 이렇게 심하게 따지시오?’라고 되물었다.
高曰:「高固內官之廝役也, 幸得以刀筆之文進入秦宮, 管事二十餘年, 未嘗見秦免罷丞相功臣有封及二世者也, 卒皆以誅亡. 皇帝二十餘子, 皆君之所知. 長子剛毅而武勇, 信人而奮士, 即位必用蒙恬為丞相, 君侯終不懐通侯之印帰於郷里, 明矣. 高受詔教習胡亥, 使學以法事數年矣, 未嘗見過失. 慈仁篤厚, 軽財重士, 辯於心而詘於口, 盡禮敬士, 秦之諸子未有及此者, 可以為嗣. 君計而定之.」
고왈 ‘고고내관지시역야 행득이도칠지문진입진궁 관사이십여년 미상견진면파승상공신유봉급이세자야 졸개이주망. 황제이십여자 개군지소지. 장자강곡이무용 신인이분사 즉위필용몽염위승장 군후종불회동후지인귀어향리 명의. 고수조교습호해 사학이법사수년의 미상견과실. 자인독후 경제중사 변어심이굴어구 진예경사 진지제자미유급차자 가이위사. 군계이정지’
조고가 말하기를 ‘저는 본래 하찮은 일이나 하는 환관이나, 다행히 형법의 공문서 담당 관리로서 진의 조정에 들어왔고, 일을 한 지 20여 년 동안 진에서 파면당한 승상이나 공신(功臣)들 가운데 2대를 이은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결국에는 모두 형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황제의 20여 명의 아들을 승상께서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맏아들은 강직하고 용맹스러워 사람들을 믿고 인재를 분발하게 하는 인물로, 즉위하면 반드시 몽염을 등용해 승상으로 삼을 것이고, 군후께서는 결국 통후(通侯, 봉건 시대,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지던 사람)의 인수(印綬)를 지니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칙명을 받들어 호해를 가르치고 법사(法事)를 익히게 한 지 몇 해가 되었으나, 아직 잘못을 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공자는 인자하고 독실하며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인재를 중히 여깁니다. 마음속으로 분별하면서도 말씨를 겸손하게 하며, 예의를 다해 선비를 공경합니다. 진의 여러 공자들 중에 아직 이러한 분이 없으니 참으로 후사로 내세울 만합니다. 군후께서 생각하시어 결정하십시오.’라고 했다.
斯曰:「君其反位! 斯奉主之詔, 聴天之命, 何慮之可定也?」高曰:「安可危也, 危可安也. 安危不定, 何以貴聖?」
사왈 ‘군기반위! 사봉주지조 청천지명 하여지가정야?’고왈 ‘안가위야 위가안야. 안위부정 하이귀성?’
이사가 ‘그대는 그대의 위치로 되돌아가고, 이 몸은 군주의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명을 들을 것이지, 어찌 우리가 고려해 결정할 수 있단 말이오?’라고 대답하자, 조고는 ‘평안함은 위태로울 수 있고, 위태로움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안정과 위급함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인이라고 존중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斯曰:「斯, 上蔡閭巷布衣也, 上幸擢為丞相, 封為通侯, 子孫皆至尊位重祿者, 故將以存亡安危屬臣也. 豈可負哉! 夫忠臣不避死而庶幾, 孝子不勤勞而見危, 人臣各守其職而已矣. 君其勿複言, 將令斯得罪.」高曰:「蓋聞聖人遷徙無常, 就変而従時, 見末而知本, 観指而睹帰. 物固有之, 安得常法哉! 方今天下之権命懸於胡亥, 高能得志焉. 且夫従外制中謂之惑, 従下制上謂之賊. 故秋霜降者草花落, 水揺動者萬物作, 此必然之效也. 君何見之晩?」
사왈 ‘사 상채여항포의야 상재탁위승상 봉위통후 자손개지존위중록자 고장이존망안위속신야. 이가부재! 부충신불피이서기 효자불근노이견위 인신각수시직이이의. 순기물복언 장영사득죄’ 고왈 ‘개문성인천사무상 취변이종시 견말이지본 관지이도귀. 물고유지 안득상법재! 방금천하지권명현어호해 고능득지언. 차부종외제중위지혹 종하제상위지적. 고추상항자초화락 구요동자만물작 차필연지효야, 군하견지만?’
이사는 ‘나는 상채의 평범한 평민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황제께서 발탁하시어 승상으로 삼으셨고, 통후로 봉하시어 자손들이 모두 높은 지위와 많은 녹봉을 받게 되었소. 그러므로 장차 국가의 존망과 안위를 나에게 맡기려고 한 것인데, 어찌 이 뜻을 저버린단 말이오! 대저 충신은 죽음을 피하려고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효자는 부지런히 힘써 위태롭지 않게 하고, 신하된 자는 각기 직분을 지킬 따름이오. 그대는 다시 그런 말을 해 장차 나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하시오.’라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대체로 성인은 고정관념이 없이 행할 바를 옮기며, 상황이 변하면 시의(時宜)에 따르고, 끝을 보면 시작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면 귀착할 바를 안다고 들었는데, 사물이란 원래 이런 것인데, 어찌 일정한 법칙이 있겠습니까? 이제 천하의 대권과 운명은 공자 호해에게 달렸으며, 저는 그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대저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미혹(惑)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모반(賊)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풀과 꽃이 떨어지고, 봄이 되어 물이 녹아서 흐르면 만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승상께서는 어찌 판단이 늦으십니까?’라고 했다.
斯曰:「吾聞晉易太子, 三世不安;斉桓兄弟爭位, 身死為戮;紂殺親戚, 不聴諫者, 國為丘墟, 遂危社稷:三者逆天, 宗廟不血食. 斯其猶人哉, 安足為謀!」高曰:「上下合同, 可以長久;中外若一, 事無表裏. 君聴臣之計, 即長有封侯, 世世稱孤, 必有喬松之壽, 孔、墨之智. 今釈此而不従, 禍及子孫, 足以為寒心. 善者因禍為福, 君何処焉?」
사왈 ‘오문진역태자 삼세불안; 제환형제쟁위 신사위륙; 주살친척 불청간자 국위구허 수위사직: 삼자역천 종묘불혈식. 사시유인재 안족위모!’ 고왈 ‘상하합동 가이장구 ; 중외약일 사무표리. 군청신지계 즉장유봉후 세세칭고 필유교송지수 공 묵지지. 금석차이불종 화급자손 족이위한심. 선자인화위복 군하처언?’
이사가 대답하기를 ‘내가 듣건대, 진(晉)은 태자를 바꾸었다가 세 임금이 재위하는 동안 평안하지 못했고, 제 환공(齊桓公)의 형제들은 자리다툼을 하다가 몸을 살육 당했으며, 은 주왕(殷紂王)은 친척을 죽이고 간언하는 자의 말을 듣지 않다가, 나라는 폐허가 되고 끝내 사직을 위태롭게 했다고 하오. 이 세 사람들은 모두 하늘의 뜻을 거역해 종묘에 들지도 못했소. 이 몸도 같은 사람인데, 어찌 모반을 꾸밀 수 있으리오!’라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위와 아래가 같은 마음이면 오랜 세월 권세를 지속시킬 수 있으며, 안과 밖이 일치하면 그 일에는 표리가 없어집니다. 승상께서 저의 계획을 수락하신다면 오래도록 봉후(封侯)를 유지하고 대대로 고(孤)의 가문이 되며, 반드시 왕자교(王子喬)나 적송자(赤松子)처럼 장수하고, 공자(孔子)나 묵자(墨子)처럼 지혜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포기하고 따르지 않으시면, 재앙이 자손까지 미쳐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처세를 잘하는 자는 재앙을 복으로 되돌리는데, 승상께서는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斯乃仰天而歎, 垂淚太息曰:「嗟乎! 獨遭亂世, 既以不能死, 安託命哉!」於是斯乃聴高. 高乃報胡亥曰:「臣請奉太子之明命以報丞相, 丞相斯敢不奉令!」
사내앙천이탄 수루태식왈 ‘차호 독조난세 기이불능사 안탁명재!’ 어시사내청고. 고내보호해왈 ‘청신봉태자지명명이보승상 승상사감불봉령’
이사는 이에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면서 ‘아! 홀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으니, 도대체 어디에 이 목숨을 맡긴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이리하여 이사는 조고의 의견을 수락했다. 조고는 이에 호해에게 보고하기를 “저는 태자의 현명하신 명령을 받들어 승상에게 알리니, 승상 이사께서도 감히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나이다!”라고 했다.
於是乃相與謀, 詐為受始皇詔丞相, 立子胡亥為太子. 更為書賜長子扶蘇曰:「朕巡天下, 禱祠名山諸神以延壽命. 今扶蘇與將軍蒙恬將師數十萬以屯邊, 十有餘年矣, 不能進而前, 士卒多秏, 無尺寸之功, 乃反數上書直言誹謗我所為, 以不得罷帰為太子, 日夜怨望. 扶蘇為人子不孝, 其賜剣以自裁! 將軍恬與扶蘇居外, 不匡正, 宜知其謀. 為人臣不忠, 其賜死, 以兵屬裨將王離.」
어시내상여모 사위수시황조승상 입자호해위태자. 경위서사장자부소왈 ‘짐순천하 수사명산제신이연수명. 금부소여장군몽염장수수십만이둔변 십유여년의 불능진이전 사졸다모 무척촌지공 내반수상서직언비방아소위 이부득파귀위태자 일야원망. 부소위인자불효 기사검이자재! 장군염여부소거외 불광정 의지기모. 위인신불충 기사사 이병속비장왕리’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이 공모해 진시황이 승상에게 내린 조서를 받았다고 날조하고, 호해를 태자의 지위에 오르게 했다. 맏아들 부소에게 내린 편지를 고쳐서 ‘짐이 천하를 순시하며 명산의 여러 신들에게 기도드리고 제사를 지내어 목숨을 연장하려고 한다. 지금 부소는 장군 몽염과 함께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변경에 주둔한 지가 벌써 10여 년이 지났으나 전진하지 못하고, 병력을 많이 소모하고 한 치의 공도 없으면서, 도리어 여러 차례 상서를 올려 직언해 짐이 하는 일을 비방하며, 현재의 직분을 그만두고 태자의 지위로 돌아올 수 없어서 밤낮으로 원망했다. 부소는 아들로서 불효하므로, 칼을 내리니 자결하라! 장군 몽염은 부소와 궁 밖에 머물면서 바르게 시정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그 지모(智謀)를 알았도다. 신하로서 충성스럽지 못했기에 죽음을 내리고, 군대는 부장(副將)인 왕리(王離)에게 맡겨라.’라고 적었다.
封其書以皇帝璽, 遣胡亥客奉書賜扶蘇於上郡. 使者至, 発書, 扶蘇泣, 入內舎, 欲自殺. 蒙恬止扶蘇曰:「陛下居外, 未立太子, 使臣將三十萬衆守邊, 公子為監, 此天下重任也. 今一使者來, 即自殺, 安知其非詐? 請複請, 複請而後死, 未暮也.」使者數趣之. 扶蘇為人仁, 謂蒙恬曰:「父而賜子死, 尚安複請!」即自殺.
봉기서이황제새 견호해객봉서사부소어상군. 사자지 발서 부소읍 입내사 욕자살. 몽염지부소왈 ‘폐하거외 미립태자 사신장삼십만중수면 공자위감 차천하중임야. 금일사자래 즉자살 안지기비사? 청복청 복청이후사 미모야’ 사자수취지. 부소위인인 위몽염왈 ‘부이사자사 상안복청‘ 즉자살.
그 편지를 옥새로 봉하고 호해의 객 중 하나를 상군의 부소에게 보냈다. 사자(使者)가 도착하자 부소가 그 편지를 뜯어보고 울면서, 내실로 들어가서 자살하려고 했다. 몽염이 부소를 만류하면서 ‘폐하는 궁 밖에 계시며, 아직 태자를 책봉하지 않으셨고, 저에게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변방을 지키게 하셨으며, 공자께서 이 군대를 감독하게 하셨는데, 이는 천하에서 막중한 임무입니다. 지금 한 사람의 사신이 왔다고 곧 자살하신다면, 어떻게 그 진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다시 용서를 간청하시고, 다시 간청하신 뒤에 자살해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사자가 여러 번 자살을 독촉했다. 부소는 사람됨이 어진지라, 몽염에게 ‘아버지께서 자식에게 죽음을 내리셨는데, 어찌 다시 용서를 간청하겠소?’라고 말하고 곧 자살했다.
蒙恬不肯死, 使者即以屬吏, 繋於陽周.
몽염불긍사 사자즉이속리 계어양주.
몽염이 죽지 않으려고 하자 사자는 곧 옥리에게 넘겨서 그를 양주(陽周)에 감금했다.
使者還報, 胡亥、斯、高大喜. 至鹹陽, 発喪, 太子立為二世皇帝. 以趙高為郎中令, 常侍中用事.
사자환보 호해 사 고대희. 지함양 발상 태자입위이세황제. 이조고위낭중령 성시중용사.
사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자, 호해, 이사, 조고가 대단히 기뻐했다. 함양으로 돌아와서 시황제의 죽음을 발표했고, 태자는 2세 황제로 즉위했다. 이로써 조고는 낭중령(郎中令)이 되어, 궁중에서 황제를 모시며 권력을 장악했다.
二世燕居, 乃召高與謀事, 謂曰:「夫人生居世閒也, 譬猶騁六驥過決隙也. 吾既已臨天下矣, 欲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 以安宗廟而樂萬姓, 長有天下, 終吾年壽, 其道可乎?」
이세연거 내소고여모사 위왈 ‘부인생거새간야 비유빙육기과결극야. 오기이임천하의 욕실이목지소호 궁심지지소악 이안종묘이악만성 장유천하 종오년수 도가호?’
2세 황제가 한가할 적마다 조고를 불러 함께 의논했는데 “대저 사람이 태어나 세상에 살아 있는 시간은 비유하자면 여섯 마리의 준마가 끄는 수레가 뚫어진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소. 나는 이미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귀와 눈으로 좋은 것들을 느끼고, 마음이 즐거운 바를 다하며, 종묘(宗廟)를 안정시키고 만백성을 기쁘게 해, 천하를 오래도록 소유한 채, 나의 천수를 마치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라고 물었다.
高曰:「此賢主之所能行也, 而昏亂主之所禁也. 臣請言之, 不敢避斧鉞之誅, 願陛下少留意焉. 夫沙丘之謀, 諸公子及大臣皆疑焉, 而諸公子盡帝兄, 大臣又先帝之所置也. 今陛下初立, 此其屬意怏怏皆不服, 恐為変. 且蒙恬已死, 蒙毅將兵居外, 臣戦戦栗栗, 唯恐不終. 且陛下安得為此樂乎?」
고왈 ‘차현주지소능행야 이혼란주지소금야. 신청언지 불감피부월지주 원폐하소유의언. 부사구지모 제공자급대신개의언 이제공자진제형 대신우선제지소치야. 금폐하초립 차기속의앙앙개불복 공이변. 차몽염이사 몽의장병거외신전전속속 유공부종. 차폐하안득위차악호?’
조고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현명한 군주만이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어리석은 군주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감히 도끼로 처형당함을 피하지 않고 말씀드리오니,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유념해주십시오. 대저 사구(沙丘)에서의 음모를 여러 공자들과 대신들이 모두 의심하고 있는데, 여러 공자들은 모두 폐하의 형들이며, 대신들도 선제께서 등용하셨던 인물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막 즉위하시자 그 무리들은 이 일을 못마땅하게 여겨 모두 복종하지 않으니, 변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몽염이 이미 죽었다고 하나, 몽의(蒙毅)는 군대를 이끌며 변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벌벌 떨면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어찌 그러한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二世曰:「為之柰何?」趙高曰:「厳法而刻刑, 令有罪者相坐誅, 至収族, 滅大臣而遠骨肉;貧者富之, 賎者貴之. 盡除去先帝之故臣, 更置陛下之所親信者近之. 此則陰徳帰陛下, 害除而姦謀塞, 群臣莫不被潤沢, 蒙厚徳, 陛下則高枕肆志寵樂矣. 計莫出於此.」
이세왈 ‘위지내하?’ 조고왈 ‘엄법이각형 영유죄자상좌주 지수족 멸대신이원골육; 빈자부지 천자귀지. 진제거선제지고신 경치폐하지소친신자근지. 차즉음덕귀폐하 해제이간모새 군신막불피윤택 몽후덕 폐하즉고침사지총악의. 계막물어차’
2세 황제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라고 묻자, 조고는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해, 죄를 위반한 자를 연좌(連坐)해 처단하고 일가족을 구속하게 하십시오. 대신들을 없애고 골육의 형제들을 멀리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선제의 옛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시고, 폐하께서 신임할 수 있는 자를 새로 두어 가까이하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잠재된 덕이 폐하께 모이고, 해로운 것이 제거되며, 간사한 계략이 방지되고, 여러 신하들 가운데 폐하의 두터운 은덕을 입지 않은 자가 없게 되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마음껏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나은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二世然高之言, 乃更為法律. 於是群臣諸公子有罪, 輒下高, 令鞠治之. 殺大臣蒙毅等, 公子十二人僇死鹹陽市, 十公主矺死於杜, 財物入於県官, 相連坐者不可勝數.
이사연고지언 내경위법율. 어시군신제공자유죄 점하고 영국치지. 살대신몽의등 공자십이인참사함양시 십공주책사어두 재물입어현관 상연좌자불가승수.
2세 황제는 조고의 말을 옳다고 여기고 이에 다시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공자들 중에 죄를 지으면 조고에게 맡겨서 죄를 조사하고 처형하게 했다. 이렇게 해 대신 몽의 등이 죽었고, 공자 12명이 함양의 저자 거리에서 죽었으며, 공주 10명도 두현(杜縣)에서 사지(四肢)가 찢겨 죽었다. 재산은 모두 관청에 몰수되었고, 연루된 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公子高欲奔, 恐収族, 乃上書曰:
공자고욕분 공수족 내상서왈:
공자 고(高)는 도망가려다가 가족이 구속되는 것이 두려워서, 이에 상서(上書)를 올렸다.
「先帝無恙時, 臣入則賜食, 出則乗輿. 禦府之衣, 臣得賜之;中廄之寶馬, 臣得賜之. 臣當従死而不能, 為人子不孝, 為人臣不忠. 不忠者無名以立於世, 臣請従死, 願葬酈山之足. 唯上幸哀憐之.」
‘선제무양시 신입즉사식 불즉승여. 어부지의 신득사지; 중구지보마 신득사지. 신당종사이불능 위인자불효 위인신불충. 불충자무명이립어세 신청종사 원장여산지족. 유상신애린지’
‘선제(先帝)께서 건재하셨을 때, 신이 입궁하면 음식을 하사하셨고, 궁을 나서면 수레를 타게 하셨습니다. 어부(御府)의 의복도 신에게 하사하시어 입었으며, 마구간의 좋은 말까지도 하사하시어 탔습니다. 신은 선제를 따라 죽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으니, 아들된 자로서 불효이고, 신하된 자로서 불충입니다. 충성을 바치지 못한 자는 세상에 나설 명목이 없는지라, 신은 선제를 따라 죽고자 하며, 선제의 묘가 있는 여산(酈山)의 기슭에 묻히기를 바라옵니다. 오직 폐하께서 저를 가엾게 여겨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書上, 胡亥大説, 召趙高而示之, 曰:「此可謂急乎?」趙高曰:「人臣當憂死而不暇, 何変之得謀!」胡亥可其書, 賜銭十萬以葬.
서상 호해대열 소조고이시지 왈 ‘차가위급호?’ 조고왈 ‘인신당우사이불하 하변지득모!’ 호해자기서 사전십만이장.
이 글이 올라오자, 호해는 대단히 기뻐하며 조고를 불러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이를 급박하다고 할 수 있겠소?’라고 했다. 조고가 대답하기를 ‘신하된 자가 죽음을 두려워해 정신이 없다면, 어찌 변란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호해가 그 글을 허가하고, 10만 전의 돈을 하사해 장사 지내게 했다.
法令誅罰日益刻深, 群臣人人自危, 欲畔者衆. 又作阿房之宮, 治直[道]、馳道, 賦斂愈重, 戍傜無已.
법령주벌일익각심 군신인인자위 욕반자중. 우작아방지궁 치직도 치도 부렴유중 수요무이.
법령과 형벌이 날로 가혹해지자, 여러 신하들과 사람들이 스스로 위험을 느꼈고, 모반하려는 자가 많아졌다. 계속해서 아방궁(阿房宮)을 짓고 곧은 길과 넓은 길을 만드느라, 세금은 더욱 가중되고 부역의 징발이 그치지 않았다.
於是楚戍卒陳勝、呉広等乃作亂, 起於山東, 傑俊相立, 自置為侯王, 叛秦, 兵至鴻門而卻. 李斯數欲請閒諫, 二世不許.
어시초수종진긍 오광등내작란 기어산동 걸준상립 자치위후왕 반진 병지홍문이각. 이사수욕청욕청한간 이세불허.
이리하여 초(楚) 땅의 수비병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 등이 반란을 일으켜 효산(崤山)의 동쪽에서 봉기하니 준걸들이 서로 나서서 스스로 후왕(侯王)을 자칭하며 진을 모반했고, 반란군이 홍문(鴻門)까지 진격했다가 퇴각했다. 이사가 여러 번 틈나는 대로 간언을 청했으나, 2세 황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而二世責問李斯曰:「吾有私議而有所聞於韓子也, 曰『尭之有天下也, 堂高三尺, 采椽不斲, 茅茨不翦, 雖逆旅之宿不勤於此矣. 冬日鹿裘, 夏日葛衣, 粢糲之食, 藜藿之羹, 飯土匭, 啜土鉶, 雖監門之養不觳於此矣. 禹鑿竜門, 通大夏, 疏九河, 曲九防, 決渟水致之海, 而股無胈, 脛無毛, 手足胼胝, 面目黎黒, 遂以死於外, 葬於會稽, 臣虜之勞不烈於此矣』.
이이세책문이사왈 ‘오유사의이유소문어한자야 왈 “요지유천하야 당고삼척 채연불착 모자부전 수역족지숙불근어차의. 동일녹구 하일갈의 자려지식 여곽지갱 반토궤 철토형 수감문지양불곡어차의 우착용문 통대하 소구하 곡구방 결정수치지해 이고무발 경무모 수족변지 면목여흑 수이사어외 장어회계 신노지로불열어차의”
도리어 2세 황제가 이사를 문책하기를 ’짐은 나름대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한비자(韓非子)로부터 들은 바가 있소. 요(堯)임금이 천하를 소유하셨을 때에 마루의 높이가 3자(尺)였고, 서까래는 통나무를 깎지 않았으며, 억새풀 지붕을 다듬지 않았으니, 비록 여인숙도 이보다 검소하지 않았을 것이오. 겨울에는 가죽 옷을 걸치고, 여름에는 갈옷을 입었으며, 거친 현미밥과 명아주 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을 질그릇에 담아 먹고 마셨소. 문지기의 음식도 이보다 검소하지 않았을 것이오. 우(禹) 임금은 용문산(龍門山)을 뚫고 대하(大夏)까지 통하게 해, 구하(九河)를 소통시키고, 여러 굽이마다 제방을 쌓아서, 물길을 터주어 바다로 흐르게 하느라, 넓적다리의 잔털이 다 닳았으며, 종아리의 털까지 없어졌고,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못이 박히고(胼胝),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소. 그러다 결국 객사해 회계산(會稽山)에 묻혔는데, 노예의 수고로움도 이보다 심하지 않았을 것이오.
然則夫所貴於有天下者, 豈欲苦形勞神, 身処逆旅之宿, 口食監門之養, 手持臣虜之作哉? 此不肖人之所勉也, 非賢者之所務也. 彼賢人之有天下也, 専用天下適己而已矣, 此所貴於有天下也. 夫所謂賢人者, 必能安天下而治萬民, 今身且不能利, 將悪能治天下哉! 故吾願賜志広欲, 長享天下而無害, 為之柰何?」
연즉부소귀어유천하자 이욕고형노신 신처역여지숙 구식감문지양 수지신노지작재? 차불초인지소면야 비현자지소무야. 피현인지유천하야 전용천하적기이의 차소귀어유천하야, 부소위현인자 필능안천하이치만민 금신차불능이 장오능치천하재! 고오원사지광욕 장형천하이무해 위지내하?’
그렇다면 대저 천하를 소유함이 존귀한 까닭이, 어찌 육신과 정신을 괴롭히며, 몸은 여인숙에 묵고, 입으로는 문지기의 음식을 먹고, 손으로는 노예의 일을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오? 이것은 못난 사람이 힘쓸 바이지, 현명한 자가 힘쓸 바가 아니오. 현명한 사람이 천하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에는, 전적으로 천하를 자기에게 맞도록 할 따름이고, 이것이 바로 천하를 소유함이 존귀한 까닭이오. 대저 현명하다고 불리는 자는 반드시 천하를 안정시키고 만백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오. 지금 자신도 이롭게 할 수 없으면서 장차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소? 그러므로 짐은 뜻대로 욕심을 넓히고, 오래도록 천하에 군림하면서도 해로움이 없기를 바라오.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오?’라고 했다.
李斯子由為三川守, 群盜呉広等西略地, 過去弗能禁. 章邯以破逐広等兵, 使者覆案三川相屬, 誚譲斯居三公位, 如何令盜如此.
이사자유위삼천수 군도오광등서략지 과거불능금 장한이파축광등병 사자복안삼천상속 초양사거삼공위 여하영도여차.
이사의 아들 유(由)는 삼천군(三川郡)의 군수였는데, 무리를 이룬 도적인 오광 등이 서쪽으로 침략하며 지나가도 막을 수가 없었다. 장한(章邯)이 오광 등의 반란군을 축출하자, 사신이 삼천군과 관련해 이사를 여러 번 심문했고, 이사에게 삼공(三公)의 직위에 있는데도 어찌 도적들이 이처럼 날뛰도록 했는지 질책했다.
李斯恐懼, 重爵祿, 不知所出, 乃阿二世意, 欲求容, 以書対曰:
이사공구 중작록 부지소출 내아이세의 욕구용 이서대왈:
이사는 두려워했고 녹봉을 중히 여기며,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는데, 이에 2세 황제의 뜻에 아부해 용서를 구하고자 상서를 올렸다.
夫賢主者, 必且能全道而行督責之術者也. 督責之, 則臣不敢不竭能以徇其主矣. 此臣主之分定, 上下之義明, 則天下賢不肖莫敢不盡力竭任以徇其君矣. 是故主獨制於天下而無所制也. 能窮樂之極矣, 賢明之主也, 可不察焉!
부현주자 필차능전도이행독책지술자야. 독책지 즉신불감불갈능이순기주의. 차신주지분정 상하지의명 즉천하현불초막감부진역갈임이순기군의. 시고주독제어천하이무소제야. 능궁악지극의 현명지주야 가불찰언!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모든 수단을 다해 신하를 감찰하고 책문하는 방법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임을 감찰하고 책문하게 되면 신하는 능력을 다해 군주를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리하여 신하와 군주의 직분이 정해지고, 위와 아래의 의리가 밝혀지며, 천하의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온갖 힘을 다하고 책임을 다해 자기의 군주를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군주 한 분만이 천하를 통제할 뿐 통제받지 아니하옵니다. 즐거움의 극치를 다할 수 있어야 현명한 군주이온데, 이런 방도를 살피시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故申子曰「有天下而不恣睢, 命之曰以天下為桎梏」者, 無他焉, 不能督責, 而顧以其身勞於天下之民, 若尭、禹然, 故謂之「桎梏」也.
고신자왈 ’유천하이불자수 명지왈이천하위질곡‘지 무타언 불능독책 이소이기신노어천하지민 약요 우연 고위지 ’질곡‘야.
그래서 신자(申子)는 ‘천하를 소유하고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천하를 차꼬와 수갑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신하에게 질책하지 못하면서 도리어 자신의 몸을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서 힘쓰고자 해 요 임금과 우 임금과 같이 그렇게 한다면, 천하는 이른바 '차꼬와 수갑'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夫不能修申、韓之明術, 行督責之道, 専以天下自適也, 而徒務苦形勞神, 以身徇百姓, 則是黔首之役, 非畜天下者也, 何足貴哉! 夫以人徇己, 則己貴而人賎;以己徇人, 則己賎而人貴. 故徇人者賎, 而人所徇者貴, 自古及今, 未有不然者也.
부불능수신 한지명술 행독책지도 전이천하자적야 이도무고형노신 이신순백성 즉시검수지역 비출천하자야 하족귀재! 부이인순기 즉기귀이인천; 이기순인 즉기천이인귀. 고순인자천 이인소순자귀 자고급금 미유불연자야.
무릇 신불해나 한비자의 훌륭한 법술을 배우지 못하고, 신하를 질책하는 방법을 행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천하를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며, 부질없이 자기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노력해 몸소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은, 서민의 역할이지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역할이 아닌데, 어찌 군주를 존귀하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남에게 자기를 따르게 하면 자기는 존귀해지고 남은 천해지며, 자기가 남을 따르게 되면 자기는 천해지고 남은 존귀해지옵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천해지고, 남이 따르는 자는 존귀하온데,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사옵니다.
凡古之所為尊賢者, 為其貴也;而所為悪不肖者, 為其賎也. 而尭、禹以身徇天下者也, 因隨而尊之, 則亦失所為尊賢之心矣, 夫可謂大繆矣. 謂之為「桎梏」, 不亦宜乎? 不能督責之過也.
범고지소위존현자 위기귀야; 아소위악불초자 위기천야. 이요 우이신순천하자야 인수이존지 즉역실소위존현지심의 부가위대무의. 위지위‘질곡; 불역의호? 불능독책지과야.
대체로 옛날에 현명한 자를 존중한 까닭은 그가 존귀하기 때문이고, 못난 자를 미워한 까닭은 그가 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 임금과 우 임금은 몸소 천하의 백성들을 따랐는데, 그들의 인습을 이어받아서 백성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역시 현명한 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어지옵니다! 대저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사옵니다. 그것을 '차꼬와 수갑'이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사옵니까? 이것은 신하를 질책하지 않은 과오이옵니다.
故韓子曰:「慈母有敗子而厳家無格虜者」何也? 則能罰之加焉必也.
고한자왈: ‘자모유패자이엄가무격노자’ 하야? 즉능벌지가언필야.
그러므로 한비자는 ‘자비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아들이 있어도 엄격한 집안에는 방자한 하인이 없다.’라고 말했사옵니다. 왜 그렇겠사옵니까?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주기 때문입니다.
故商君之法, 刑棄灰於道者. 夫棄灰, 薄罪也, 而被刑, 重罰也. 彼唯明主為能深督軽罪. 夫罪軽且督深, 而況有重罪乎? 故民不敢犯也. 是故韓子曰「布帛尋常, 庸人不釈, 鑠金百溢, 盜蹠不搏」者, 非庸人之心重, 尋常之利深, 而盜蹠之欲淺也;又不以盜蹠之行, 為軽百鎰之重也.
고상군지법 형기회어도자. 부기회 박죄야 이피형 중벌야. 피회명주위능심독경죄. 부죄경차독심 이황유중죄호? 고민불감범야. 시고한자왈 ‘포백심상 용인불석 삭금백일 도척불박’자 비용인지심중 심상지이심 이도척지욕천야; 우불이도척지행 위경백일지중야.
옛날 상군(商君)의 법에는 길에 재를 버리면 형벌을 내렸습니다. 대저 재를 버리는 행위는 가벼운 죄이지만 그 형벌은 곱절이었습니다.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가벼운 죄를 심하게 질책할 수 있사옵니다. 무릇 가벼운 죄에도 혹독하게 질책하는데, 하물며 큰 죄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므로 백성들이 감히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한비자는 ‘하찮은 베나 비단 조각이라도 평범한 사람은 내버려 두지 않지만, 뜨겁게 녹은 황금이 1백일(溢)이나 되어도 도척(盜跖)도 훔쳐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搏必隨手刑, 則盜蹠不搏百鎰;而罰不必行也, 則庸人不釈尋常. 是故城高五丈, 而樓季不軽犯也;泰山之高百仭, 而跛䍧牧其上. 夫樓季也而難五丈之限, 豈跛䍧也而易百仭之高哉?
박필수수형 즉도척부박백일; 이벌불필행야 즉용인불석심상. 시고성고오장 이루계불경범야; 태산지고백인 이파장목기상. 부루계야이난오장지한 이파장야이역백인지고재?
평범한 사람이 하찮은 이익을 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도척의 욕심이 얕아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도척이 1백일(鎰)이나 되는 귀중한 황금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훔치면 반드시 손을 못 쓰게 화상을 입게 되므로, 도척이 1백일의 황금을 훔치지 않은 것이옵니다. 그리고 형법이 반드시 시행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도 하찮은 것을 내버려두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성벽의 높이가 다섯 길밖에 되지 않더라도 누계(樓季)가 가볍게 여겨 넘지 못했으며, 태산의 높이가 1백길(仞)이나 되어도 절름발이 양치기가 그 위에서 양을 칩니다. 누계도 다섯 길의 한계를 어렵게 여겼는데, 어찌 절름발이 양치기가 1백인의 높이를 쉽게 여겼겠습니까?
峭塹之勢異也. 明主聖王之所以能久処尊位, 長執重勢, 而獨擅天下之利者, 非有異道也, 能獨斷而審督責, 必深罰, 故天下不敢犯也. 今不務所以不犯, 而事慈母之所以敗子也, 則亦不察於聖人之論矣. 夫不能行聖人之術, 則舎為天下役何事哉? 可不哀邪!
초점지세이야. 명주성왕지소이능구처존위 장집중세 이독천천하지리자 비유이도야 능독단이심독책 필심벌 고천하불감범야. 금불무소이불범 이사자모지소이패자야 즉역불찰어성인지론의. 부불능행성인지술 즉사위천하역하사재? 가불애야!
가파른 높이와 낮은 것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군주와 성스러운 왕이 오래도록 존귀한 지위에 있으면서, 길이 막중한 권세를 유지하고 천하의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특이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 결단을 내리고 감독하여 심한 벌을 내렸기 때문에 천하의 백성들이 감히 죄를 짓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죄를 짓지 못하게 힘쓰지 않고, 인자한 어머니가 아들을 망치는 바를 본받으려 한다면, 또한 성인의 길을 통찰하지 못한 것이 되옵니다. 대저 성인의 방법을 행하시지 않고, 자기를 버려서 천하를 위해서 고생하는 것을 어찌 본받으시겠습니까? 애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且夫倹節仁義之人立於朝, 則荒肆之樂輟矣;諫説論理之臣閒於側, 則流漫之志詘矣;烈士死節之行顕於世, 則淫康之虞廃矣. 故明主能外此三者, 而獨操主術以制聴従之臣, 而修其明法, 故身尊而勢重也.
차부검절인의지인입어조 즉황사지악철의; 간설논리지신간어측 즉유만지지눌의; 열사사절지행현어세 즉음강지우폐의. 고명주능외차삼자 이족조주술이제청종지신 이수기명법 고신존이세중야.
또 검소하고 절약하고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조정에 서게 되면 황망한 쾌락이 중단되고,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는 신하가 임금의 곁에서 간언하게 되면 방탕한 의견이 물러나며, 열사가 절개에 죽는 행위가 세상에 드러나면 음탕한 쾌락은 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훌륭한 군주는 이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을 멀리하고 군권을 독점하여 따르는 신하를 제어하고 엄명한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자신은 존귀해지고 권세가 막중해집니다.
凡賢主者, 必將能払世磨俗, 而廃其所悪, 立其所欲, 故生則有尊重之勢, 死則有賢明之謚也. 是以明君獨斷, 故権不在臣也. 然後能滅仁義之塗, 掩馳説之口, 困烈士之行, 塞聡揜明, 內獨視聴, 故外不可傾以仁義烈士之行, 而內不可奪以諫説忿爭之辯. 故能犖然獨行恣睢之心而莫之敢逆.
범현주자 필장능불세마속 이폐기소악 입기소욕 고생즉우존중지세 사즉유현명지시야. 시이명군독단 고줜부재신야. 연후능멸인의지도 엄치설지구 인열사지행 새총엄명 내독시청 고외불가경이인의열사지행 이내불가탈이간설분쟁지변. 고능락연독행자수지심이막지감역.
무릇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세속을 초탈하고 고쳐서, 자기가 싫은 바를 없애고 원하는 바를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서는 존중받는 권세가 있고, 죽어서는 현명했다는 시호가 있게 되옵니다. 이런 까닭으로 훌륭한 군주는 홀로 결정하고 이 때문에 권세가 신하에게 있지 않게 되옵니다. 그런 후에야 인의(仁義)의 주장을 없애고, 설득하는 입을 막으며, 열사의 행위를 억제시켜서, 자기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도 마음속으로 홀로 보고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외면적으로는 인의가 있는 사람과 열사의 언행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고, 마음속으로는 간언하며 다투는 언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사옵니다. 따라서 군주가 초연하게 홀로 마음대로 행동하더라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게 되옵니다.
若此然後可謂能明申、韓之術, 而脩商君之法. 法脩術明而天下亂者, 未之聞也. 故曰「王道約而易操」也. 唯明主為能行之.
약차연후가위능명신,한지술 이유상군지법. 법유술명이찬하란자 미지문야. 고왈 ‘왕도약이역조’야. 유명주위능행지.
이렇게 된 연후에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술을 밝히고 상군(商君)의 법을 닦았다고 말할 수 있사옵니다. 이러한 법을 닦고 학술을 밝히고서 천하가 어지러웠다는 말을 듣지 못했사옵니다. 그러기에 왕도(王道)는 간략해 행하기 쉽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이것을 행할 수 있사옵니다. 이렇게 하신다면 신하를 진실로 독촉하고 질책하실 수 있고, 간사한 신하가 없게 되옵니다. 간사한 신하가 없으면 천하는 평안해지고, 천하가 평안해지면 군주는 존엄해집니다. 군주가 존엄해지면 질책하심이 타당해지고, 질책이 타당해지면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사옵니다. 구하는 바를 얻게 되면 국가가 부유해지고, 국가가 부유해지면 군주의 즐거움도 풍부해지옵니다.
若此則謂督責之誠, 則臣無邪, 臣無邪則天下安, 天下安則主厳尊, 主厳尊則督責必, 督責必則所求得, 所求得則國家富, 國家富則君樂豊. 故督責之術設, 則所欲無不得矣. 群臣百姓救過不給, 何変之敢図? 若此則帝道備, 而可謂能明君臣之術矣. 雖申、韓複生, 不能加也.
약차즉위독책지성 즉신무사 신무사즉천하안 천하안즉주엄존 주엄존즉독책필 독책필즉소구득 소구득즉국가부 국가부즉군악풍. 고독책지술설 즉소용무부득의. 군신백성구과불급 하변지감도? 약파즉제도비 이가위능명군신지술의. 수진 한복생 불능가야.
그러므로 신하를 독촉하고 질책하는 법을 베풀면, 군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얻을 수 있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이 자기의 과오를 벗어나려고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감히 모반을 꾸밀 수 있겠사옵니까? 이렇게 하신다면 황제의 도가 갖추어지고, 신하를 통제하는 방법이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비록 신불해와 한비자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더 보탤 것이 없을 것입니다.’
書奏, 二世悅. 於是行督責益厳, 稅民深者為明吏. 二世曰:「若此則可謂能督責矣.」刑者相半於道, 而死人日成積於市. 殺人衆者為忠臣. 二世曰:「若此則可謂能督責矣.」
서진 이세열 어시행독책임엄 세민심자위명리. 이사왈 ‘약차즉가위능독책의’ 형자상반어도 이사인일성적어시. 살인중자위충신. 이사왈 ‘약차가위능독책의’
이 글이 올려지자, 2세 황제는 기뻐했다. 이리하여 독촉하고 처벌하는 것이 더욱 엄격해졌고, 백성에게 세금을 심하게 부과하는 자가 현명한 관리라고 여겨졌다. 2세 황제가 말하기를 ‘이러하다면 신하를 잘 감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도다.’라고 했다. 그 뒤 길에 다니는 사람들 중 반 정도가 형벌을 받았던 사람들이었고, 사형당한 사람들이 날로 저자에 쌓여갔다. 많은 사람을 죽인 자가 충신이 되었다. 2세 황제가 말하기를 ‘이러하다면 감독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도다!’라고 했다.
初, 趙高為郎中令, 所殺及報私怨衆多, 恐大臣入朝奏事毀悪之, 乃説二世曰:
초조고위낭중령 소살급보사원중다 공대신입조진사훼악지 내열이세왈:
처음 조고(趙高)가 낭중령(郎中令)이 되었을 때, 사람을 죽이거나 개인적인 앙갚음을 한 경우가 많았기에, 대신들이 조정에 들어가 정사를 아뢰다가 자신을 헐뜯을까 두려워 다음과 같이 2세 황제를 설득했다.
「天子所以貴者, 但以聞聲, 群臣莫得見其面, 故號曰『朕』. 且陛下富於春秋, 未必盡通諸事, 今坐朝廷, 譴挙有不當者, 則見短於大臣, 非所以示神明於天下也. 且陛下深拱禁中, 與臣及侍中習法者待事, 事來有以揆之. 如此則大臣不敢奏疑事, 天下稱聖主矣.」
‘천자소이귀자 단이문성 군신막득견기면 고호왈 “짐”. 차폐하부당어춘추 미필진통제사 금좌조정 견겅뷰당자 즉견단어대신 비소이시신명어천하야. 차폐합ㄹ심공금중 여신금시중습법자대사 사래유이계지. 여차즉대신불감진의사 천하칭성주의’
‘천자(天子)가 존귀한 까닭은 여러 신하들이 다만 소리만 들을 뿐이고, 여러 신하들이 그 얼굴을 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朕)”이라고 일컫는 것이옵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나이가 어리셔서, 반드시 모든 일에 두루 능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 앉아서 신하를 견책하거나 등용함에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단점을 보이게 되는 것이지, 천하에 신명(神明)을 보이는 것이 아니옵니다. 폐하께서는 궁궐 깊숙이 팔짱을 끼고 계시면서 법에 익숙한 신하와 시중(侍中)과 정사를 기다렸다가 일이 오면 그들과 의논해 결정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대신들이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아뢰지 못할 것이며, 천하에서 폐하를 성군(聖君)이라 칭송할 것이옵니다.’
二世用其計, 乃不坐朝廷見大臣, 居禁中. 趙高常侍中用事, 事皆決於趙高.
이세용기계 내불좌조정견대신 거금중. 조고상시중용사 사개결어조고.
2세 황제가 이 계책을 채용해 조정에 앉아서 대신들을 만나지 않고, 궁궐 깊숙이 머물렀다. 조고는 항상 황제를 안에서 모시며 일을 처리했고, 정사는 모두 조고에 의해 결정되었다.
高聞李斯以為言, 乃見丞相曰:「関東群盜多, 今上急益発繇治阿房宮, 聚狗馬無用之物. 臣欲諫, 為位賎. 此真君侯之事, 君何不諫?」李斯曰:「固也, 吾欲言之久矣. 今時上不坐朝廷, 上居深宮, 吾有所言者, 不可傳也, 欲見無閒.」
고문이사이위언 내견승상왈; ‘관동군도다 금상급익발요치아방궁 취구마무용지물. 신욕간 위위천. 차진군후지사 군하불간?’ 이사왈 ‘고야 오욕언지구의. 금시상불좌조정 상거심궁 오유소언자 불가전야 욕견무간’
조고는 이사가 이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는 것을 듣고, 이에 승상 이사를 만나 말하기를 ‘함곡관 동쪽에서 도적떼가 많이 일어났는데 지금 폐하께서는 급히 부역을 징발해 아방궁을 짓고, 개나 말 따위의 쓸모없는 것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제가 간언하려고 하나 직위가 낮습니다. 이는 참으로 승상의 일인데 어찌 간언하시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이사가 대답하기를 ‘정말 그렇소. 나도 그것을 말씀드리려 한 지 오래되었소. 그러나 지금 폐하께서는 조정에 나오시지 않고 깊은 궁중에만 머무시기 때문에, 내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전할 수가 없고 알현하려 해도 기회가 없었소.’라고 했다.
趙高謂曰:「君誠能諫, 請為君候上閒語君.」於是趙高待二世方燕樂, 婦女居前, 使人告丞相:「上方閒, 可奏事.」丞相至宮門上謁, 如此者三. 二世怒曰:「吾常多閒日, 丞相不來. 吾方燕私, 丞相輒來請事. 丞相豈少我哉? 且固我哉?」
조고위왈 ‘군성능간 청위군후상한어군’ 어시조고대이세방연악 부녁전 사인고승상: ‘상방간 가진사’ 승상지궁문상게 여차자삼. 이세노왈 ‘오상다한일 승상불래. 오방연사 승상첩해청사. 승상이소아재? 차고아재?’
조고는 ‘승상께서 진실로 간언하려 하신다면, 폐하의 한가한 때를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조고는 2세 황제가 연회를 즐기며 미녀들이 면전에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사람을 시켜 승상 이사에게 전하기를 ‘폐하께서 지금 한가하오니, 일을 아뢰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승상 이사가 궁문에 이르러 뵙기를 요청하기를 세 번이나 거듭했다. 2세 황제는 화를 내며 ‘짐이 늘 한가한 날이 많았건만 승상께서 그때는 오지 않았소. 짐이 연회를 즐기려고만 하면 승상께서는 매번 와서 일을 아뢰려 하오. 승상께서는 아마도 짐을 어리다고 얕잡아보는 것 같소! 정말 짐을 그렇게 보시오?’라고 꾸짖었다.
趙高因曰:「如此殆矣! 夫沙丘之謀, 丞相與焉. 今陛下已立為帝, 而丞相貴不益, 此其意亦望裂地而王矣. 且陛下不問臣, 臣不敢言. 丞相長男李由為三川守, 楚盜陳勝等皆丞相傍県之子, 以故楚盜公行, 過三川, 城守不肯撃. 高聞其文書相往來, 未得其審, 故未敢以聞. 且丞相居外, 権重於陛下.」二世以為然.
조고인왈 ‘여차태의! 부사구지모 승상여언. 금폐하이립위제 이승상귀불익 차기의역망열지이왕의. 차폐하불문신 신불감언. 승상장남이유위삼천수 초도진승등개승상방현지자 이고금도공행 과삼천 상수불긍격. 고문기문서상왕래 미득기심 고미감이한. 차승상거외 권중어폐하’ 이세이위연.
조고는 이를 이용해 말하길 ‘이렇게 대하시면 위험하십니다! 저 사구(沙丘)의 음모에 승상도 참여했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이미 황제의 지위에 계시지만, 승상은 더 존귀해진 것이 없습니다. 이는 아마도 영토를 나누어 가져 왕이 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신에게 물으시지 않기에 감히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승상의 장남 이유가 삼천군(三川郡)의 군수가 되었는데, 초(楚)의 도적 진승(陳勝) 등이 모두 승상의 이웃 고을에 살던 사람들이기에 초 지역의 도적들이 공공연히 돌아다니며 삼천군을 지나가도, 그 지역의 군수는 이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문서를 서로 왕래한다고 들었으나, 아직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승상은 궁 밖에 있어서 권세가 폐하보다 막중합니다.’라고 말하자, 2세 황제도 그렇게 생각했다.
欲案丞相, 恐其不審, 乃使人案験三川守與盜通狀. 李斯聞之.
욕안승상 공기불심 내사인안험삼천수여도통상. 이사문지.
승상을 심문하려고 했으나, 그 사실이 확실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사람을 시켜서 삼천군의 군수가 도적들과 내통하는 상황을 조사하게 했다. 이사가 그 소식을 들었다.
是時二世在甘泉, 方作觳抵優俳之観. 李斯不得見, 因上書言趙高之短曰:
시시이세재감천 방작곡저우배지관 이사부득견 인상서언조고지단왈:
이때 2세 황제는 감천궁(甘泉宮)에서 곡저(觳抵, 씨름)나 연극을 관람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이사는 황제를 알현할 수 없자 글을 올려 조고의 단점을 아뢰었다.
「臣聞之, 臣疑其君, 無不危國;妾疑其夫, 無不危家. 今有大臣於陛下擅利擅害, 與陛下無異, 此甚不便.
‘신문지 신의기군 무불위국; 접의기부 무불위가. 금유대신폐하천리천해 여폐하무리 차심불편.
’신이 듣건대, 신하가 자기의 군주를 의심하고 나라가 위태롭게 되지 않은 적이 없고, 아내가 자기의 남편을 의심하고 집안이 위태롭게 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옵니다. 지금 대신 중에 이익을 주기도 하고 해를 주기도 하여 폐하와 다를 바가 없는 자가 있으니, 이는 매우 부당한 일이옵니다.
昔者司城子罕相宋, 身行刑罰, 以威行之, 期年遂劫其君. 田常為簡公臣, 爵列無敵於國, 私家之富與公家均, 布恵施徳, 下得百姓, 上得群臣, 陰取斉國, 殺宰予於庭, 即弑簡公於朝, 遂有斉國.
석자사성자한상송 신행형벌 이위행지 기젼수겁기군. 전상위간공신 작열무적어국 사가지부여공가균 포혜시덕 하득백성 상득군신 음취제국 살재여어정 즉시간공어조 수유제국.
지난날에 사성(司城)이었던 자한(子罕)이 송(宋)의 재상이 되자, 몸소 형벌을 집행하며 위세 있게 행동하더니, 1년 만에 자기의 임금을 위협했습니다. 전상(田常)도 제 간공(齊簡公)의 신하가 되어 직위와 서열로는 그 나라에서 따를 자가 없었고, 개인적인 재력이 제의 공실(公室)과 비슷해지자, 은혜를 베풀고 덕을 펴서, 아래로는 민심을 얻고 위로는 여러 신하들을 끌어들이다가 은밀히 제나라를 탈취했는데, 그는 궁중의 뜰에서 재여(宰予)를 죽이고 이어서 궁중에서 간공(簡公)을 시해하면서 결국에는 제나라를 차지했습니다.
此天下所明知也. 今高有邪佚之志, 危反之行, 如子罕相宋也;私家之富, 若田氏之於斉也. 兼行田常、子罕之逆道而劫陛下之威信, 其志若韓玘為韓安相也. 陛下不図, 臣恐其為変也.」
차천하소명지야. 금고유사일지지 위반지행 여자한상송야; 사가지부 약전씨지어제야 겸행전상 자한지역도이겁폐하지위신 기지약한기위한완상야 폐하부도 신공기위변야’
지금 조고는 사악한 뜻을 품고 위태롭고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데, 마치 송의 재상 자한과 같으며, 그의 개인적인 재력도 제의 전상과 같사옵니다. 전상과 자한의 반역의 수법을 병행해 폐하의 위신을 격퇴시키려는 뜻은 한이(韓玘)가 한왕(韓王) 안(安)의 재상으로 있을 때와 같사옵니다. 폐하께서 그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시면, 저는 그가 변란을 일으킬까 두렵사옵니다.”
二世曰:「何哉? 夫高, 故宦人也, 然不為安肆志, 不以危易心, 絜行脩善, 自使至此, 以忠得進, 以信守位, 朕実賢之, 而君疑之, 何也? 且朕少失先人, 無所識知, 不習治民, 而君又老, 恐與天下絶矣. 朕非屬趙君, 當誰任哉? 且趙君為人精廉彊力, 下知人情, 上能適朕, 君其勿疑.」李斯曰:「不然. 夫高, 故賎人也, 無識於理, 貪欲無厭, 求利不止, 列勢次主, 求欲無窮, 臣故曰殆.」
이세왈 ‘하재 부고 고환인야 연불위안사지 불이위역심 결행수선 자사지차 이충득진 이신수위 짐해현지 이군의지 하야? 차짐소실선인 무소식지 불급치민 이군우노 공여천하절의. 짐비속조군 당수임재? 차조군위인정렴강력 하지인정 상능적짐 군기물의’ 이사왈 ‘불연 부고 고천인야 무식어리 탐욕무염 구리부지 열세차주 구욕무궁 신고왈태’
2세 황제가 말하기를 ‘무슨 말씀이오? 조고는 본래 환관이었고, 나라가 평안하다고 자기의 뜻을 제멋대로 하지 않았고, 또한 위태롭다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며, 행실을 맑게 했고 선행을 닦으며 줄곧 여기에까지 이르렀소. 충성으로써 승진했으며, 신의로써 지위를 지키는 사람으로, 짐은 진실로 그를 현명하다고 보는데, 그대가 그를 의심하니 무슨 이유이오? 게다가 짐이 어렸을 때 선친을 잃어 아는 지식으로는 백성들을 다스리기가 능숙하지 못하며, 게다가 그대도 늙었으니 언제 천하의 일과 결별할까 두렵소. 그러니 짐이 조고에게 국사를 맡기지 않으면 누구에게 맡겨야 한단 말이오? 게다가 조고의 사람됨이 청렴하고 부지런하며, 아래로는 민심의 실정을 알고, 위로는 짐의 뜻에 부합할 수 있으니, 그대는 그를 의심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이사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대저 조고라는 자는 본래 미천한 출신이라서, 도리에 밝지 못하며 탐욕은 끝이 없고 이익을 추구함은 그치지 않는데, 권력의 서열이 폐하 다음 가며 욕구도 끝이 없기에 제가 위험한 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했다.
二世已前信趙高, 恐李斯殺之, 乃私告趙高. 高曰:「丞相所患者獨高, 高已死, 丞相即欲為田常所為.」於是二世曰:「其以李斯屬郎中令!」
이세이전신조고 공이사살지 내사고조고. 고왈 ‘승상소환자독고 고이사 승상즉욕위전상소위’ 어시이세왈 ‘기이이사속낭중령!’
2세 황제는 이미 예전부터 조고를 신임했던지라, 이사가 그를 죽일까 두려워 남몰래 조고에게 이를 일러주었다.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의 걱정거리는 오직 조고뿐이며, 제가 죽으면 승상께서는 곧 전상과 같은 행위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리하여 2세 황제는 ‘이사를 낭중령(郎中令)에 넘겨 조사하라!’라고 말했다.
趙高案治李斯. 李斯拘執束縛, 居囹圄中, 仰天而歎曰:
조고안치이사. 이사구집속박 거영어중 앙천이탄왈:
조고가 이사의 죄목을 심문했다. 이사는 구속되어 묶인 채 감옥에 갇히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嗟乎, 悲夫! 不道之君, 何可為計哉! 昔者桀殺関竜逢, 紂殺王子比幹, 呉王夫差殺伍子胥. 此三臣者, 豈不忠哉, 然而不免於死, 身死而所忠者非也.
‘차호 비부! 부도지군 하가위계재! 석자걸샇관용봉 주살왕자비간 오왕부차살오자서. 차삼신자 이불충재 연이불면어사 신사이소충자비야.
’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에게 무슨 계책을 말할 수 있으랴! 옛날 하 걸왕(夏桀王)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였고, 은 주왕(殷紂王)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으며,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오자서(伍子胥)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충성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충성을 받을 만한 군주가 못 되었기 때문이다.
今吾智不及三子, 而二世之無道過於桀、紂、夫差, 吾以忠死, 宜矣. 且二世之治豈不亂哉! 日者夷其兄弟而自立也, 殺忠臣而貴賎人, 作為阿房之宮, 賦斂天下. 吾非不諫也, 而不吾聴也.
영오지불급삼자 이이세지무도과어걸 주 부차 오이충사 의의. 차이세지치이불란재! 일자이기형제이자립야 살충신이귀천인 작위아방지궁 부험천하. 오비불간야 이불오청야.
지금 나의 지혜가 그들 세 사람보다 못하고, 2세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 부차 등보다 더 심하니, 내가 충성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당연하도다. 그리고 2세 황제의 다스림이 어찌 어지럽지 않겠는가? 지난날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했고,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며, 아방궁을 짓느라고 천하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했다. 내가 직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이다.
凡古聖王, 飲食有節, 車器有數, 宮室有度, 出令造事, 加費而無益於民利者禁, 故能長久治安. 今行逆於昆弟, 不顧其咎;侵殺忠臣, 不思其殃;大為宮室, 厚賦天下, 不愛其費:三者已行, 天下不聴. 今反者已有天下之半矣, 而心尚未寤也, 而以趙高為佐, 吾必見冦至鹹陽, 麋鹿遊於朝也.」
범고성왕 음식유절 거기유수 왕실유도 출영조사 가비이무익어민이자금 고능장구치안 금행역어곤제 불고기구 ; 침살충신 불가기앙 ; 대위궁실 후부천하 불애기비: 삼자이행 천하불청. 금반자이유천하지반의 이심상미오야 이이조고위좌 오필견구지함양 미록유어조야.’
무릇 옛날의 성왕들은, 식사할 때에도 예절을 지녔고, 수레나 물건에도 일정한 수를 따졌으며, 궁궐을 짓는 데도 한도가 있었다. 조칙을 내려 어떤 일을 함에는 비용을 들이며 백성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을 하지 않았으므로, 오랫동안 평온하게 다스렸던 것이다. 그는 지금 형제에게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하고도 그 허물을 돌아보지 않고, 충신을 죽이면서 그 재앙을 생각하지 않는다. 크게 궁실을 지으며,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비용을 아껴 쓰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이미 자행되고 있는 한 천하의 백성들은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반역자가 천하의 반을 차지했건만, 황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조고를 보좌관으로 삼고 있다. 내가 반드시 도적이 함양에 이르고 고라니와 사슴이 조정에서 노는 꼴을 보겠구나.’
於是二世乃使高案丞相獄, 治罪, 責斯與子由謀反狀, 皆収捕宗族賓客. 趙高治斯, 榜掠千餘, 不勝痛, 自誣服. 斯所以不死者, 自負其辯, 有功, 実無反心, 幸得上書自陳, 幸二世之寤而赦之. 李斯乃従獄中上書曰:
어시이세내사고안긍상옥 치죄 책사여자우모반상 개수포종족빈객. 조고치사 방략천여 불승통 자무복. 사소이불사자 자부기변 유공 실무반심 행득상서자진 행이세지오이사지. 이사내정억중상서왈:
이리하여 2세 황제는 조고에게 승상을 하옥해 처벌하게 했다. 이사는 아들 유(由)와 함께 국가 모반죄를 추궁당했고, 그의 친족과 빈객들이 모두 구속되었다. 조고가 이사를 심문하면서 1천여 번이나 고문하자, 이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로 자백하고 말았다. 이사가 자살하지 않은 까닭은 공로가 있고 실제 모반의 마음이 없었다는 자기변명과, 다행히 황제에게 스스로 진정서를 올릴 경우, 황제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사면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이에 옥중에서 글을 올렸다.
「臣為丞相治民, 三十餘年矣. 逮秦地之陝隘. 先王之時秦地不過千里, 兵數十萬. 臣盡薄材, 謹奉法令, 陰行謀臣, 資之金玉, 使遊説諸侯, 陰脩甲兵, 飾政教, 官鬥士, 尊功臣, 盛其爵祿, 故終以脅韓弱魏, 破燕、趙, 夷斉、楚, 卒兼六國, 虜其王, 立秦為天子. 罪一矣. 地非不広, 又北逐胡、貉, 南定百越, 以見秦之彊. 罪二矣.
‘신위승상치민 삼십여년의. 체진지지협애. 선왕지시진지불과천리 병수십만. 신진박재 근봉법령 음행모신 자지금옥 사유세제후 음수갑병 식정교 관투사존공신 상기직록 고종이협한약위 파연 조 이제 초 졸겸육국 노기왕 입진위천자. 죄일야. 지비불광 우북축호 맥 남정백월 이견진지강 죄이의.
’신이 승상이 되어 백성들을 다스린 지가 30여 년이나 되었는데, 그때는 아직 진의 영토가 좁을 때였습니다. 선왕의 시대에는 진의 영토가 1천 리를 넘지 못했으며, 병력도 몇 십만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은 변변치 못한 재주를 다해 삼가 법령을 받들고, 남몰래 지모가 있는 신하를 보내어 보석을 가지고 가서 제후들을 설득하게 했습니다. 또 남몰래 군비를 갖추고 정치와 교육을 정비했으며, 투사에게 벼슬을 주고 공신을 존중해 그들의 직위와 녹봉을 충분히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한(韓)을 위협하고 위(魏)을 약화시켰으며, 연(燕)과 조(趙)를 깨뜨렸고 제(齊)와 초(楚)를 평정했고, 끝내 여섯 나라를 병합하면서, 그 나라의 왕들을 사로잡았고, 진(秦)을 내세워 천자가 되게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죄입니다. 영토가 광대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건만 더욱 북쪽으로 호(胡)와 맥(貉)을 쫓아냈고, 남쪽으로 백월(百越)을 평정해, 진의 강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죄입니다.
尊大臣, 盛其爵位, 以固其親. 罪三矣. 立社稷, 脩宗廟, 以明主之賢. 罪四矣. 更剋畫, 平鬥斛度量文章, 布之天下, 以樹秦之名. 罪五矣. 治馳道, 興遊観, 以見主之得意. 罪六矣. 緩刑罰, 薄賦斂, 以遂主得衆之心, 萬民戴主, 死而不忘. 罪七矣. 若斯之為臣者, 罪足以死固久矣. 上幸盡其能力, 乃得至今, 願陛下察之!」
존대신 성기작위 이고기친. 죄삼의. 입사직 수종묘 이명주지현. 죄사의. 결극화 평투곡도양문장 포지천하 이수진지명. 죄오의 치치도 흥유관 이견주지;득의. 죄육의 완형벌 박부험 이추주득지중지심 만민재주 사이불망. 죄칠의. 약사지위신자 죄족이사고구의. 상행진지능력 내득지금 원폐하찰지!’
대신들을 존중해 그들의 직위를 만족시켜서, 군신관계의 친밀함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세 번째 죄입니다. 사직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구축해, 황제의 현명함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저의 네 번째 죄입니다. 눈금을 고치며 되(升)와 자(尺)의 단위를 통일시켜, 그것을 천하에 널리 펴서 진의 명성을 수립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다섯 번째 죄입니다. 수레가 달릴 수 있는 도로를 닦고 지방 순시를 즐겁게 해 황제를 의기양양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여섯 번째 죄입니다. 벌을 낮추고 세금을 덜어주어 황제께서 민중의 마음을 얻도록 했으며 만백성이 황제를 받들어 죽어도 그 은혜를 잊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일곱 번째 죄입니다. 이 이사는 신하된 몸으로서 죄를 지었으니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죽어도 마땅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다행히 저의 능력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니, 폐하께서 이를 굽어 살펴주시기 바라옵니다!’
書上, 趙高使吏棄去不奏, 曰:「囚安得上書!」
서상 조고사리기거부진 왈 ‘수안득상서!’
이 글이 올라오자, 조고가 담당 관리에게 폐기시키고 아뢰지 못하게 하며 ‘죄수가 어찌 폐하께 글을 올릴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趙高使其客十餘輩詐為禦史、謁者、侍中, 更往覆訊斯. 斯更以其実対, 輒使人複榜之. 後二世使人験斯, 斯以為如前, 終不敢更言, 辭服. 奏當上, 二世喜曰:「微趙君, 幾為丞相所売.」
조고사시갹십여배사위어사 알자 시중 경왕복심사. 사경이기실대 첩사인복방지. 후이세사인험사 사이위여전 종불감경언 사복. 진당상 이세희왈 ‘미조군 기위승상소매’
조고가 자기의 식객 10여 명을 시켜 거짓으로 어사(御史)·알자(謁者)·시중(侍中)인 것처럼 꾸며, 번갈아 이사를 찾아가서 심문하게 했다. 이사가 번복해 사실대로 대답하면, 사람을 시켜 다시 그를 매질했다. 나중에 2세 황제가 사람을 시켜 이사를 심문하자 이사는 예전처럼 하리라 생각하고 끝내 감히 무고함을 번복하지 못하고 굴복하고 말았다. 판결이 황제에게 아뢰어지자, 2세 황제는 기뻐하며 ‘조고가 아니었다면 승상에게 속을 뻔했구나.’라고 말했다.
及二世所使案三川之守至, 則項梁已撃殺之. 使者來, 會丞相下吏, 趙高皆妄為反辭.
급이세소사안삼천지수지 즉항염이격살지. 사자래 회승상하리 조고개망위반사.
이어서 2세 황제는 삼천군의 군수를 조사하려고 사자를 파견했다. 그러나 반란군 항량(項梁)이 이미 그를 공략해 죽인 뒤였다. 사자가 돌아오자, 승상은 형리(刑吏)에게 넘겨졌고, 조고는 모반죄의 진술서를 모두 날조했다.
二世二年七月, 具斯五刑, 論腰斬鹹陽市. 斯出獄, 與其中子倶執, 顧謂其中子曰:「吾欲與若複牽黃犬倶出上蔡東門逐狡免, 豈可得乎!」遂父子相哭, 而夷三族.
이세이년칠원 구사오형 논요참함양시. 사출옥 여기중자구집 고위지중자왈 ‘오욕여약복뢰왕견구출상채동문축교토 이가득호!’ 수부자상곡 이이삼족.
2세 황제 2년 7월에 이사에게 오형(五刑)을 내린 뒤 함양의 저자 거리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했다. 이사가 감옥에서 나오며, 함께 투옥되었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누런 개를 끌고서 고향 상채(上蔡)의 동쪽 변두리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게 되었구나!’라고 하며, 마침내 부자가 서로 울음을 터뜨렸고, 삼족(三族)이 모두 사형을 당했다.
李斯已死, 二世拝趙高為中丞相, 事無大小輒決於高. 高自知権重, 乃獻鹿, 謂之馬.
이사이사 이세배조고위중승상 사무대소첩결어고. 고자지권중 내헌록 위지마.
이사가 죽고 나서, 2세 황제는 조고를 예우해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고, 일이 크든 작든 모두 조고에게 결정하게 했다. 조고는 자기의 권한이 막중함을 알고, 이에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 했다.
二世問左右:「此乃鹿也?」左右皆曰「馬也」. 二世驚, 自以為惑, 乃召太蔔, 令卦之.
이세문좌우 ‘차내록야?’ 좌우개왈 ‘마야’. 이세경 자이위혹 내소대복 영복지.
2세 황제가 좌우의 신하에게 ‘이것은 사슴이오?’라고 묻자, 신하들은 모두 ‘말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2세 황제는 놀라면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太蔔曰:「陛下春秋郊祀, 奉宗廟鬼神, 斎戒不明, 故至於此. 可依盛徳而明斎戒.」
태복외ᅟᅡᆯ ‘폐하춘추교사 봉종묘귀신 제계불명 고지어차. 가의성덕이명제계’
태복은 ‘폐하께서 봄과 가을에 교사(郊祀)를 지내고, 종묘에서 귀신을 모시면서, 재계(齋戒)가 분명치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옵니다. 많은 덕을 쌓음으로써 재계를 분명히 하옵소서.’라고 일러주었다.
於是乃入上林斎戒. 日遊弋猟, 有行人入上林中, 二世自射殺之. 趙高教其女婿鹹陽令閻樂劾不知何人賊殺人移上林. 高乃諫二世曰:「天子無故賊殺不辜人, 此上帝之禁也, 鬼神不享, 天且降殃, 當遠避宮以禳之.」二世乃出居望夷之宮.
어시내입상림제계. 일유익렵 유행인입상림중 이세자사살지. 조고교기여서함양악핵부지하인적살인이상림. 고내간이세왈 ‘천자무고적살부고인 차상제지금야 귀신불향 천차항앙 당원피궁이양지’ 이세내출거망이지궁.
이리하여 2세 황제는 상림원(上林苑)에 들어가 재계했다. 매일 사냥이나 하며 노닐었는데, 어떤 지나가는 사람이 상림원에 들어왔다가, 2세 황제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조고는 그의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을 시켜서 누군지 알 수 없는 자가 사람을 죽여 상림원으로 옮겨놓았다고 탄핵하게 했으며, 조고는 이에 2세 황제에게 간언하기를 ‘천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이는 하늘에서 금하는 것이옵니다. 이제 귀신도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며, 하늘도 또한 재앙을 내릴 것이니, 마땅히 궁궐을 빠져나가 재앙이 없도록 기도하셔야 하옵니다.’라고 하자, 2세 황제는 이에 망이궁(望夷宮)으로 나가 살았다.
留三日, 趙高詐詔衛士, 令士皆素服持兵內郷, 入告二世曰:「山東群盜兵大至!」二世上観而見之, 恐懼, 高既因劫令自殺.
유삼일 조고사조위사 영사개소복지병내향 입고이세왈 ‘산동군도병대지!’ 이세상관이견지 공구 고기인겁영자살.
사흘 뒤에 조고는 위사(衛士)들에게 조칙이라고 하며 날조해, 군사들을 모두 흰 옷을 입고 무장한 채 궁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서, 그들이 입궁하자 2세 황제에게 ‘산동의 도적떼가 크게 쳐들어왔읍니다!’라고 보고했다. 2세 황제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서 두려워했는데, 조고가 위협을 가해 그를 자살하게 했다.
引璽而佩之, 左右百官莫従;上殿, 殿欲壊者三. 高自知天弗與, 群臣弗許, 乃召始皇弟, 授之璽.
인새이패지 좌우백관막종 상전 전욕괴자삼. 고자지천불여 군신불허 내소시황제 수지새.
조고는 옥새를 손에 넣고 황제의 복장을 했는데, 좌우의 백관들이 아무도 따르지 않았고, 궁전에 올라갔으나 궁전이 세 번이나 무너지려고 했다. 이에 조고는 하늘도 자기를 돕지 않고 군신들도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진시황의 손자를 불러 옥새를 주었다.
子嬰既位, 患之, 乃稱疾不聴事, 與宦者韓談及其子謀殺高. 高上謁, 請病, 因召入, 令韓談刺殺之, 夷其三族.
자영기위 환지 내칭질불청사 여환자한담급기자모살고. 고상알 청병 인소입 영한담자살지 이기삼족.
자영(子嬰)이 즉위하면서 조고를 두려워해, 병을 핑계대고 정사를 돌보지 않고, 환관 한담(韓談) 그리고 그의 아들과 함께 조고를 살해할 모의를 꾸몄다. 마침 조고가 알현하고자 와서 문병을 청하자, 이에 그를 불러들이고 한담을 시켜서 그를 찔러 죽이게 했으며, 그의 삼족을 멸했다.
子嬰立三月, 沛公兵従武関入, 至鹹陽, 群臣百官皆畔, 不適. 子嬰與妻子自係其頚以組, 降軹道旁. 沛公因以屬吏. 項王至而斬之. 遂以亡天下.
자영입삼월 패공병종무관입 지함양 군신백관개반 불적. 자영여처자자계기경이조 항지도방. 패공인이속리. 항왕지이참지. 수이망천하.
자영이 즉위한 지 석 달 만에 패공(沛公, 유방)의 군사가 무관(武關)으로 들어와 함양(咸陽)에 이르렀다. 모든 신하와 백관들은 모두 자영을 배반해 대항하지 않았다. 자영은 처자와 더불어 옥새가 달린 끈을 자기의 목에 걸고서 지도(軹道) 부근에서 항복했다. 패공은 자영을 관리에게 넘겼으나, 항왕(項王, 항우)이 와서 그의 목을 베었고, 마침내 진은 천하를 잃었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李斯以閭閻歴諸侯, 入事秦, 因以瑕釁, 以輔始皇, 卒成帝業, 斯為三公, 可謂尊用矣. 斯知六蓺之帰, 不務明政以補主上之欠, 持爵祿之重, 阿順苟合, 厳威酷刑, 聴高邪説, 廃適立庶. 諸侯已畔, 斯乃欲諫爭, 不亦末乎!
태사공왈 이사이여염역제후 입사진 인이하흔 이보치황 졸성제업 사위삼공 가위존용의. 사지육예지귀 불무명정이보주상지흠 지작록지중 아순구합 엄위혹형 청고사설 폐적입서. 제후이반 사내욕간쟁 불역말호!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李斯)는 빈민 출신으로 제후들에게 유세하다가 진으로 들어가서 섬겼는데, 열국(列國)들이 서로 다투고 있는 기회를 틈타 진 시황(秦始皇)을 보필해 결국 황제의 대업을 이루게 했다. 이사는 삼공(三公)이 되었으므로 높게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사는 육예(六藝)의 귀결을 알면서도 군주의 결점을 보완하는 공명정대한 정치에 힘쓰지 않았다. 작위와 녹봉의 중대함을 유지하고 군주에게 아부하면서 구차하게 영합했다. 조칙을 엄히 하고 형벌을 혹독하게 했으며, 조고(趙高)의 간사한 말을 듣고서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즉위하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반란을 일으킨 뒤에 이사가 직언하려고 했으니, 어찌 늦지 않았으랴!
人皆以斯極忠而被五刑死, 察其本, 乃與俗議之異. 不然, 斯之功且與周、召列矣.
인개이사극충이피오형사 찰기본 내여속의지이. 불연 사지공차여주 소열의.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 극진하게 충성했으나 오형(五刑)을 당해 죽은 줄로 안다. 그러나 그 본말을 살펴보면 세속의 공론과 다르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周公)이나 소공(召公)과 같은 대열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