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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列傳-屈原賈生列傳


<屈原>

 

屈原者, 名平, 楚之同姓也. 為楚懐王左徒. 博聞彊志, 明於治亂, 嫺於辭令. 入則與王図議國事, 以出號令出則接遇賓客, 應対諸侯. 王甚任之.

굴원자 명평 초지동성야. 위초회왕좌도. 박문강지 명어치란 한어사령. 입즉여왕도의국사 이출호령; 출즉접우빈객 응대제후. 왕심임지.

 

굴원(屈原)은 이름이 평()이고, ()나라 왕실과 성이 같았다. 초 회왕(懷王)의 좌도(左徒:左相)였다. 널리 들은 것이 많고 뜻이 굳세었으며, 다스림과 혼란의 이치에 밝고 외교사령에도 능했다. 조정에 들어가서는 왕과 나라 일을 도모하여 호령을 내렸고, 나가서는 빈객을 접대하고 제후들을 상대했다. 왕이 그를 매우 신임했다.

 

上官大夫與之同列, 爭寵而心害其能. 懐王使屈原造為憲令, 屈平屬草稿未定. 上官大夫見而欲奪之, 屈平不與, 因讒之曰

상관대부여지동열 쟁총이심해기능. 회왕사굴원위헌령 굴평속초고미정. 상관대부견이욕탈지 굴평불여 인참지왈:

 

상관대부(上官大夫)가 그와 같은 반열이었는데 총애를 다투자 마음으로 굴원을 질투했다. 회왕이 굴원에게 법령을 만들게 하여 굴평이 아직 초고를 완성하지 않았는데 상관대부가 그것을 보고는 자기 것으로 하고 싶어 했으나 굴평이 주지 않자 굴평을 이렇게 헐뜯었다.

 

王使屈平為令, 衆莫不知, 毎一令出, 平伐其功, ()以為非我莫能為.王怒而疏屈平.

왕사굴평위영 중막부지 매일영출 평벌기공. 왈이위 비아막능위왕노이소굴평.

 

왕께서 굴평에게 법령을 기초하라고 한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법령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굴평이 그 공을 떠벌리며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지라고 합니다.’ 왕이 노하여 굴평을 멀리했다.

 

屈平疾王聴之不聡也, 讒諂之蔽明也, 邪曲之害公也, 方正之不容也, 故憂愁幽思而作離騒. 離騒者, 猶離憂也.

굴평질왕청지불총야 참훼지폐명야 사곡지해공야 방정지불용야 고우수유사이작이소. 이소자 유이우야.

 

굴원은 한쪽 말만 듣는 왕의 총명치 못함, 총명을 가리는 아첨하는 말, 공정함을 해치는 간사한 무리, 방정한 사람이 허용되지 못하는 것 등이 한이 되어 우울함과 근심 걱정으로 이소(離騷)를 지었다. 이소는 고민에 빠졌음을 가리킨다.

 

夫天者, 人之始也父母者, 人之本也. 人窮則反本, 故勞苦倦極, 未嘗不呼天也疾痛慘怛, 未嘗不呼父母也. 屈平正道直行, 竭忠盡智以事其君, 讒人閒之, 可謂窮矣. 信而見疑, 忠而被謗, 能無怨乎

부천자 인지시야; 부모자 인지본야. 인궁즉반본 고노고권극 미상불호천야; 진총참달 미상불호부모애. 굴평정도행 갈충진지이사기군 찬인간지 가위궁의. 신이견의 충이피방 능무원호?

 

무릇 하늘은 인간의 시원이며, 부모는 인간의 근본이다. 인간이 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힘들고 지치면 소리쳐 하늘을 찾지 않을 수 없고, 질병으로 고통스럽고 참담해지면 부모를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굴평은 바른 도리를 곧게 실천하고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 짜내서 그 군주를 섬겼지만 참소를 일삼는 자들에게 이간질을 당했으니 궁하다고 할 것이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당했으니 어찌 원망이 없겠는가?

 

屈平之作離騒, 蓋自怨生也. 國風好色而不淫, 小雅怨誹而不亂. 若離騒者, 可謂兼之矣. 上稱帝嚳, 下道斉桓, 中述湯武, 以刺世事.

굴평지작이소 개자원생야. 국풍호색이불음 소아원비이불란. 약이소자 가위겸지의. 상칭제곡 하도제환 중술탕무 이자세사.

 

굴평이 지은 이소는 대개 원망에서 나온 것이다. 국풍(國風)은 애정을 노래하지만 음탕하지 않고, 소아(小雅)는 원망과 비난을 담고 있으나 반란의 마음은 없다. 이소는 그 둘을 겸한 것이라 하겠다. 위로는 제곡(帝嚳)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제() 환공(桓公)을 말하고, 그 사이에 탕() 임금과 무왕(武王)을 기술하여 세상을 풍자하려 했다.

 

明道徳之広崇, 治亂之條貫, 靡不畢見. 其文約, 其辭微, 其志絜, 其行廉, 其稱文小而其指極大, 挙類邇而見義遠. 其志絜, 故其稱物芳. 其行廉, 故死而不容自疏. 濯淖汚泥之中, 蟬蛻於濁穢, 以浮遊塵埃之外, 不獲世之滋垢, 皭然泥而不滓者也. 推此志也, 雖與日月爭光可也.

명도덕지광숭 치란지조관 미불필현. 기문약 기사미 기지결 기행렴 기칭문소이기지극대 거류이이견의원. 기지결 고기칭물방. 기행렴 고사이불용자소. 탁뇨오니지중 선세어예 이부류진애지외 불획세지자구 작연니이부재자야. 추차지야 수여일월쟁광가야.

 

밝은 도리는 그 덕이 크고 존숭할 만하여 어지러움을 꿰뚫어 다스리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 문장은 간략하고 작지만 그 뜻은 고결하고 그 행동은 청렴하여 작지만 최고를 가리키며 작은 걸 들어 정의의 뜻을 밝힌다. 그 의지가 고결하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다루며 그 행동이 허세가 없어 죽는 순간까지 흩어짐이 없는 것이다. 진흙의 더러움을 씻고 매미가 흙을 나와 허물을 벗듯 세속의 더러움을 넘어서 세상의 오탁에 매이지 않으며 더러움을 씻어내지 물들지 않는다. 이 뜻으로 나아가면 누구든지 해와 달과도 밝음을 겨룰수 있다.

 

屈平既絀, 其後秦欲伐斉, 斉與楚従親, 恵王患之, 乃令張儀詳去秦, 厚幣委質事楚, :「秦甚憎斉, 斉與楚従親, 楚誠能絶斉, 秦願獻商於之地六百里.

굴원기출 기후진욕벌제 제여초종친 혜왕환지 내용장의상거진 후폐위질사초 왈 진심증제 제여초종친 초성능절제 진원헌상 어지지육백리

 

굴원이 쫓겨난 뒤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제나라와 초나라는 동맹 관계라 (진나라) 혜왕은 그것이 염려되어 장의에게 거짓으로 진나라를 떠나 후한 예물을 가지고 초나라에 몸에 맡기면서 진나라는 제나라를 몹시 증오하는데 제나라는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으니 초나라가 정말 제나라와 관계를 끊는다면 진나라는 상()과 오()의 땅 600 리를 바칠 의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했다.



楚懐王貪而信張儀, 遂絶斉, 使使如秦受地. 張儀詐之曰:「儀與王約六里, 不聞六百里.楚使怒去, 帰告懐王. 懐王怒, 大興師伐秦. 秦発兵撃之, 大破楚師於丹, 斬首八萬, 虜楚將屈匄, 遂取楚之漢中地.

초회왕탐이신장의 수절제 사사여진수지. 장의사지왈 의여왕약육리 불문육백리초사노거 귀고회왕. 회왕노 대흥사벌진. 진발병격지 태파초사어단 석 참수팔만 노초장굴개 수취초지한중지.


초 회왕은 욕심 때문에 장의를 믿고 마침내 제나라와 관계를 끊는 한편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 땅을 받아오게 했다. 장의는 이 장의가 왕과 약속한 것은 6 리였지 600 리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초나라의 사신은 성이 나서 돌아가 회왕에게 보고했다. 회왕은 성이 나서 군을 크게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도 군을 내서 초나라를 공격하여 단()과 석()에서 초나라의 군대를 대파하여 8만의 목을 베고, 초나라의 장수 굴개(屈丐)를 사로잡음으로써 마침내 초나라의 한중(漢中) 땅을 빼앗았다.

 

懐王乃悉発國中兵以深入撃秦, 戦於藍田. 魏聞之, 襲楚至鄧. 楚兵懼, 自秦帰. 而斉竟怒不救楚, 楚大困.

회왕내실발국중병이침입격진 전어남전. 위문지 습초지등. 초병구 자진귀. 이제경노불구초 초대곤.

 

회왕은 나라 안의 군을 전부 동원하여 깊숙이 들어가 진을 공격하니 남전(藍田)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나라가 이를 듣고는 초나라를 습격하여 등()에 이르렀다. 초나라의 군대는 겁이 나서 진나라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제나라도 결국은 화가 나서 초나라를 구하지 않으니 초나라가 큰 곤경에 처했다.

 

明年, 秦割漢中地與楚以和. 楚王曰:「不願得地, 願得張儀而甘心焉.張儀聞, 乃曰:「以一儀而當漢中地, 臣請往如楚.如楚, 又因厚幣用事者臣靳尚, 而設詭辯於懐王之寵姫鄭袖. 懐王竟聴鄭袖, 複釈去張儀.

명년 진할한중지여초이화. 초왕왈 불원득지 원득장의이감심언장의문 내왈 이일의이당한중지 신청왕여초여초 우인후폐사자신근상 이설위변어황왕지총이정수. 회왕경청정수 복석더장의.

 

이듬해, 진나라는 한중 땅을 떼어 초나라에 주면서 화의하려고 했다. 초왕은 땅은 얻고 싶지 않다. 장의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그만이다.’라고 했다. 장의가 이를 듣고는 이 장의 한 사람으로 한중과 바꿀 수 있다면 신은 초나라로 가길 청합니다.’라고 했다. 초나라로 가서는 또 후한 예물로 권신 근상(靳尙)과 통하고, 회왕이 총애하는 정수(鄭袖)를 궤변으로 끌어들였다. 회왕은 결국 정수의 말을 듣고 다시 장의를 풀어주었다.

 

是時屈平既疏, 不複在位, 使於斉, 顧反, 諫懐王曰:「何不殺張儀?」懐王悔, 追張儀不及.

시시굴평기소 불복재위 사어제 고반 간회왕왈 하불살장의?’ 회왕회 추장의불급.

 

이때 굴원은 이미 배척을 당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돌아와서 회왕에게 어째서 장의를 죽이지 않으셨습니까?’라고 간했다. 회왕이 후회가 되어 장의를 뒤쫓았으나 따라잡지 못했다.

 

其後諸侯共撃楚, 大破之, 殺其將唐眛.

기후제후공격초 대파지 살기장당매.

 

그 후 제후들이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대파하고 그 장수 당매(唐眛)을 죽였다.

 

時秦昭王與楚婚, 欲與懐王會. 懐王欲行, 屈平曰:「秦虎狼之國, 不可信, 不如毋行.懐王稚子子蘭勧王行:「柰何絶秦歓!懐王卒行. 入武関, 秦伏兵絶其後, 因留懐王, 以求割地. 懐王怒, 不聴. 亡走趙, 趙不內. 複之秦, 竟死於秦而帰葬.

시진소왕여초혼 욕여회왕회. 회왕욕행 굴평왈 진호랑지국 불가신 불여무행회왕아자자란권왕행: ‘내하절진환!’ 회왕졸행. 입무관 진복병절기후 인유회왕 이구할지. 회왕노 불청. 망도조 조불내. 복지진 경사어진이귀장.

 

당시 진 소왕은 초나라와의 혼인 때문에 회왕과 만나고자 했다. 회왕이 가려고 하자 굴평은 진나라는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가지 않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했다. 회왕의 어린 아들 자란(子蘭)은 왕에게 갈 것을 권하며 진나라와 관계를 끊으면 좋을게 뭡니까?’라고 했다. 회왕은 기어코 갔다. 무관(武關)에 들어서자 진나라의 복병이 그 뒤를 차단하고 회왕을 억류시킨 다음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했다. 회왕이 화가 나서 들어주지 않았다. 조나라로 도망쳤으나 조나라가 받아주지 않았다. 다시 진나라로 가서 결국 진나라에서 죽자 (진나라는 그 시신을) 장례를 위해 초나라로 돌려보냈다.

 

長子頃襄王立, 以其弟子蘭為令尹. 楚人既咎子蘭以勧懐王入秦而不反也.

장자경양왕립 이기제자란위영윤. 초인기구자란이권회왕입진이불반야.

 

큰아들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했고, 그 동생 자란은 영윤(令尹)이 되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자란이 회왕에게 진나라에 갈 것을 권하여 돌아오지 못한 일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屈平既嫉之, 雖放流, 睠顧楚國, 繋心懐王, 不忘欲反, 冀幸君之一悟, 俗之一改也. 其存君興國而欲反覆之, 一篇之中三致志焉. 然終無可柰何, 故不可以反, 卒以此見懐王之終不悟也.

굴평기질지 수방류 권고초국 계심회왕 불망욕반 기행군지일오 속지일개야. 기존군흥국이욕반복지 일편지중삼치지언. 연종무가내하 고불가이반 졸이차견회왕지종불오야.

 

굴원은 그것이 한스러웠다. 비록 추방당했지만 초나라를 그리워하고 회왕에 대한 마음이 남아서 돌아가길 잊지 않았다. 왕이 깨닫고, 나라의 풍속이 바뀌길 희망했다. 그래서 군주를 지키고 나라를 일으켜 다시 회복시켜 보고자 작품에 그 뜻을 거듭 밝혔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어쩌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니, 이로 보면 결국 회왕이 끝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人君無愚智賢不肖, 莫不欲求忠以自為, 挙賢以自佐, 然亡國破家相隨屬, 而聖君治國累世而不見者, 其所謂忠者不忠, 而所謂賢者不賢也.

인군무우지현불초 막불욕구충이자위 거현이자좌 연망국파가상수속 이성군치국루이불견자 기소우충자불충 이소위현자불현야.

 

군주가 현명치 못해 모자라고 자신을 향한 충신을 바라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여 보좌하길 바라지 않는 자는 없다. 그래도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파산하는 일이 계속되며, 성군의 치세가 몇 대가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충신이 실제로는 충신이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현명한 자가 실은 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懐王以不知忠臣之分, 故內惑於鄭袖, 外欺於張儀, 疏屈平而信上官大夫令尹子蘭. 兵挫地削, 亡其六郡, 身客死於秦, 為天下笑. 此不知人之禍也. 易曰:「井泄不食, 為我心惻, 可以汲. 王明, 並受其福.王之不明, 豈足福哉!

회왕이부지충신지분 고내혹어정수 외기어장의 소굴평이신상관대부 영윤자란. 병좌지삭 망기육군 신객사어진 위찬하소. 차부지인지화야. 열왈 정설불식 위아심측 가이급. 왕명 병수기복

 

회왕은 충신과 간신을 가릴 줄 몰랐다. 그래서 안에서는 정수에게 홀렸고, 밖에서는 장의에게 속았다. 굴원을 멀리 하고 상관대부와 자란을 믿었던 것이다. 군대는 꺾였고 땅은 깎여 여섯 개 군을 잃었으며 그 자신은 진나라에서 객사하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인간으로 인한 화를 몰랐기 때문이다. 역경(易經)우물이 흘러나와도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아프다. 왕이 현명하면 그 복을 받는다.’라고 했다. 그런데 왕이 밝지 못하니 어찌 복을 말하리오!

 

令尹子蘭聞之大怒, 卒使上官大夫短屈原於頃襄王, 頃襄王怒而遷之.

영윤자란문지대노 졸사상관대부단굴원어경양왕 경왕왕노이천지.

 

영윤 자란이 이를 듣고 크게 화를 냈고, 결국 상관대부를 시켜 경양왕에게 굴원의 나쁜 점을 말하게 하니 경양왕도 노하여 굴원을 추방했다.

 

屈原至於江浜, 被髪行吟沢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子非三閭大夫歟34) 何故而至此?」屈原曰:「挙世混濁而我獨清, 衆人皆酔而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지어강병 피발행음택반. 안색초췌 형용고고. 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여대부여? 하고이치타?’ 굴원왈 거세습탁이아독청 중인개취이아독성 시이견방

 

굴원이 강가에 이르렀는데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물가를 거닐며 중얼거렸다. 안색은 초췌했고 몸은 야위어 있었다. 어부가 이를 보고는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굴원은 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 혼자 깨끗하고, 모두가 취해 있는데 나만 깨어 있어서 이렇게 따돌림당한 것이라오.’라고 했다.

 

漁父曰:「夫聖人者, 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挙世混濁, 何不隨其流而揚其波衆人皆酔, 何不餔其糟而啜其醨何故懐瑾握瑜而自令見放為?」屈原曰:「吾聞之, 新沐者必弾冠, 新浴者必振衣, 人又誰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常流而葬乎江魚腹中耳, 又安能以皓皓之白而蒙世俗之溫蠖乎!

어부왈 부성인자 불응체어물이능여세추이. 거세혼탁 하불수기류이양기파? 중인개취 하불포기조이청기이? 하고회근옥유이자령견방위?’ 굴원왈 오문지 신몾가필탄과 신욕자필진의 인우수능이신지찰찰 수물지문문자호! 영부상류이장호강어복중이 우안능이호호지백이몽세속지온확

 

어부는 대저 성인은 사물에 구속받지 않고 세속과 더불어, 함께 변하는 사람 아닙니까? 세상이 온통 흐리다면 어째서 그 흐름을 따르거나 그 파도를 밀어 올리지 않는 것입니까? 모두가 취했다면 어째서 그 지게미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까? 어째서 한사코 지조를 지키려다 따돌림을 자초한 것입니까라고 했다. 굴원은 나는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막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가 깨끗한 자기 몸에 오물을 묻히려 하겠습니까? 차라리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례를 지낼지언정 또 어찌 백옥 같은 품격에다 먼지를 뒤집어쓰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乃作懐沙之賦. 其辭曰

내작회소지부. 기사왈

 

이에 <회사(懷沙)>라는 부()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랬다.

      

陶陶孟夏兮, 草木莽莽. 傷懐永哀兮, 汩徂南土.

도도맹하혜 초목망망. 상회영애혜 율조남토.

 

뜨거운 여름날 초목은 한껏 푸른데 아픈 마음을 품고 슬픔에 빠져 남쪽으로 쫓겨 가네.

 

眴兮窈窈, 孔靜幽墨. 冤結紆軫兮, 離湣之長鞠撫情效志兮, 俛詘以自抑. 刓方以為圜兮, 常度未替

현혜요요 공정유묵. 원결우진혜 이혼지장국; 무겆효지혜 부굴이자억. 완방이위환혜 상도미체;

 

아득하기가 한이 없고 공허함에 말을 잇지 못하네. 원통함에 주저앉아 아득한 마음 만 오래 갔다 그래서 감정을 달래고 의지를 다져서 머리 숙이고 스스로의 마음을 눌러본다네. 모난 것을 깎아 둥근 것을 만들 듯 상식에 거스르지 않았다.

 

易初本由兮, 君子所鄙. 章畫職墨兮, 前度未改內直質重兮, 大人所盛.

역초본유혜 군자소비. 장푁직묵혜 전도미개; 내직질중혜 대인소성.

 

처음부터 지켜야 할 기본을 바꾸는 짓은 군자라면 더럽게 여긴다네. 먹줄을 치듯 먼저의 기준을 바꾸지 않고 안으론 곧음을 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대인의 비결이다.

 

巧匠不斲兮, 孰察其揆正玄文幽処兮, 矇謂之不章離婁微睇兮, 瞽以為無明.

겨징불착혜 숙찰기규정? 현문유처혜 몽위지부장; 이루미제혜 고이위무명.

 

솜씨 있는 목수가 쓰지 않는다면 자가 바르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玄文(노자의 사상)이 심오하여 무지몽매한 이들은 조목조목 알지 못하니 이루離婁(눈이 밝은 사람)의 눈으로도 보지 못하니 어리석다는 것

 

変白而為黒兮, 倒上以為下. 鳳皇在笯兮, 雞雉翔舞.

변백이위륵혜 도상이위하, 봉황재노혜 계치상무.


흰 것을 검다 하고 위 아래가 뒤집어져 봉황은 새장 안에 갇혀 있고 잡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구나.

 

同糅玉石兮, 一概而相量. 夫黨人之鄙妒兮, 羌不知吾所臧. 任重載盛兮, 陥滯而不済懐瑾握瑜兮, 窮不得餘所示.

동유옥석혜 일개이상량, 부당인지비시혜 갱부지오소장. 임중재성혜 함체이불제; 회근악유혜 굴부득여소시.

 

옥은 돌과 뒤섞여 같은 값으로 취급받는 꼴이니 패거리들의 더러운 질투여! , 나의 감춰진 재능을 모르는구나. 나의 능력은 무겁고 큰 임무에 능통하건만 가로막혀 통하지 못하니 보배를 제대로 두지 못하는 격이다.

 

邑犬群吠兮, 吠所怪也誹駿疑桀兮, 固庸態也.

읍견군폐혜 폐소괴야; 비준의걸혜 고용태야.


마을의 개들이 떼 지어 짖는 것은 저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겠지. 영재를 비방하고 호걸을 의심하는 것은 본래 비열한 자들의 흔한 짓거리라네.

 

文質疏內兮, 衆不知吾之異采材樸委積兮, 莫知餘之所有.

문질소내혜 중부지오지이채; 재박위적혜 막지여지소유.

 

실력과 자질이 가리워있으니 사람들은 그런 나의 특별함을 알지 못하니 재목과 원목이 쌓여 있건만 그 용처를 모르네.

 

重仁襲義兮, 謹厚以為豊重華不可牾兮, 孰知餘之従容! 古固有不並兮, 豈知其故也

중인습의혜 근후이위풍; 중화불가오혜 숙지여지종용! 고고유불병혜 기지기고야?

 

어짊을 중시하고 올바름을 익히면서 거스르지 않고 조화하려 했건만 누구도 가만있지 못하는구나! 예부터 이는 병립하지 못하니 그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湯禹久遠兮, 邈不可慕也. 懲違改忿兮, 抑心而自彊離湣而不遷兮,

탕우구원혜 막불가모야. 징위개분혜 억심이자강; 이혼이불천혜.

 

성탕과 하우는 서로 때가 맞지 않아 사모해도 만날 길이 없고 한을 참고 분노를 삼키고 마음을 눌러 스스로 애써 혼돈 가운데서도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願志之有象. 進路北次兮, 日昧昧其將暮含憂虞哀兮, 限之以大故.

원지지유상. 진로북차혜 일매매기장모; 함우우애혜 한지이대고.

 

내 뜻이 길이 후세에 귀감이 되길 원하네. 북쪽으로 길을 잡아 어딘가에서 묵으려 하니 해는 이미 황혼, 날이 저물어가네. 걱정되는 마음을 참고 큰 변고(大故)를 막으려 한다.

 

亂曰浩浩沅湘兮, 分流汨兮. 脩路幽払兮, 道遠忽兮.

난왈: 호호원 상혜 분류골혜, 수로유불혜 도원홀혜.

 

정리하자면 넓고 넓은 완수와 상수가 갈라져 흐르듯 갈 길은 멀고도 아득하구나.



曾吟恆悲兮, 永歎慨兮, 世既莫吾知兮, 人心不可謂兮. 懐情抱質兮, 獨無匹兮. 伯樂既歿兮, 驥將焉程兮

증음항비혜 영탄개혜. 세기막오지혜 인심불가위혜. 회정초질혜 독무필혜. 백악기몰혜 기장언정혜?

 

거듭 슬픔을 읊어도 이미 세상에 나를 아는 이 없으니 인간의 마음 더이상 언급할 것이 없네. 충정과 훌륭한 자질을 품었어도 내 마음을 제대로 짝할 만한 자 없구나. 말 잘 고르던 백락이 이미 죽었으니 준마가 어디에서 능력을 평가받으리.

 

人生稟命兮, 各有所錯兮. 定心広志, 餘何畏懼兮

인생품명혜 각유소착혜. 정심광지 여하외구혜?

 

사람들은 각자의 받은 운명이 있어 제각기 사로잡힌 것이 있지. 마음을 정하고 뜻을 크게 가지니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

 

曾傷爰哀, 永歎喟兮. 世溷不吾知, 心不可謂兮.

증상원애 영탄위혜. 세탁불오지 심불가위혜.

 

거듭 속상하고 슬퍼지니 길게 한숨짓고 탄식하네. 세상이 혼탁하여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마음을 뭘로 설명하랴?

 

知死不可譲兮, 願勿愛兮. 明以告君子兮, 吾將以為類兮.

지사불가양혜 원물애혜. 명이고군자혜 오장이위류혜.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기에, 바라노니 애착을 버리려 한다. 오직 지혜로 군자에게 밝히노니 내 장차 분류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노라!

 

於是懐石遂自投汨羅以死.

어시회석수자투멱라이사.

 

그리하여 바위를 안고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

 

屈原既死之後, 楚有宋玉唐勒景差之徒者, 皆好辭而以賦見稱然皆祖屈原之従容辭令, 終莫敢直諫. 其後楚日以削, 數十年竟為秦所滅.

굴원기사지후 초유욧왕 당륵 경차지도자 개호사이이부견칭; 연개조굴원지종용사영 종막감직간. 기후초일이쇄 수십년경위진소멸.

 

굴원이 죽은 뒤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와 같은 무리들이 있어 모두 문장 짓는 것을 좋아하니 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모두들 굴원의 은근한 문장을 본받았지만 감히 (굴원처럼) 직간하지는 못했다. 그 후로 초나라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수십 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게 망했다.

 

自屈原沈汨羅後百有餘年, 漢有賈生, 為長沙王太傅, 過湘水, 投書以弔屈原.

자굴원침골라후백유여년 한유가생 위장사왕태부 과상수 투서이조굴원.

 

굴원이 멱라수에 가라앉은 지 백 여 년 뒤 한()나라에 가생(賈生)이 있었는데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되어 상수(湘水)를 지나다가 글을 지어 굴원을 애도했다.



<賈誼>

 

賈生名誼, 雒陽人也. 年十八, 以能誦詩屬書聞於郡中. 呉廷尉為河南守, 聞其秀才, 召置門下, 甚幸愛. 孝文皇帝初立, 聞河南守呉公治平為天下第一, 故與李斯同邑而常學事焉, 乃徴為廷尉. 廷尉乃言賈生年少, 頗通諸子百家之書. 文帝召以為博士.

가생명의 낙양인야. 면십팔 이능송시속서문어군중. 오정위위하남수 문기수재 소치문하 심행애. 효문황제초립 문하남수오공치평위천하제일 고여이사동읍이상학사언 내징위정위. 정위내언가생년소 파송제자백가지서. 문제소이위박사.

 

가생(賈生)은 이름이 의()이고 낙양(洛陽) 사람이다. 나이 18세에 시를 암송하고 문장을 잘 써서 군 안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오정위(吳廷尉)가 하남(河南) 태수로 있을 때 그가 수재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문하로 불러 매우 아꼈다. 효문황제(孝文皇帝) 즉위 초기에 하남 태수 오공(吳公)의 치적이 천하제일이라는 것과, 이사(李斯)와 같은 고향으로 늘 그에게 배웠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를 불러들여 정위로 삼았다. 정위는 가생이 어린 나이에 제자백가의 학문에 자못 정통하다고 아뢰었고, 문제는 가생을 불러 박사(博士)로 삼았다.

 

是時賈生年二十餘, 最為少. 毎詔令議下, 諸老先生不能言, 賈生盡為之対, 人人各如其意所欲出. 諸生於是乃以為能, 不及也. 孝文帝説之, 超遷, 一歳中至太中大夫.

시시가생년이십여 최위소. 매조영의하 제노선생불능언 가생진위지대 인인각여기의소욕출. 제생어시내이위능 불급야. 효문제설지 초천 일세중지태중대부.

 

이때 가생의 나이 20여 세로 가장 젊었다. 매번 조서와 명령에 대해 논의할 때면 다른 선생들은 말하지 못해도 가생은 모두 다 답을 내놓았는데 사람들이 각자 내고 싶었던 생각과 같았다. 이에 선생들은 능력이 가생만 못하다고 여겼다. 효문제(孝文帝)는 기뻐서 파격 승진시키니 1년 안에 태중대부(太中大夫)에까지 올랐다.

 

賈生以為漢興至孝文二十餘年, 天下和洽, 而固當改正朔, 易服色, 法制度, 定官名, 興禮樂, 乃悉草具其事儀法, 色尚黃, 數用五, 為官名, 悉更秦之法.

가생이위한흥지효문이십여년 천하화흡 이고당개정삭 역복색 법제도 정관명 흥예악 내실초구기사의법 색상황 수용오 위관명 실경진지법.

가생은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 효문제 20년 여 년에 이르기까지 천하가 평화롭고 화합하니 역법을 개정하고, 복색을 바꾸고, 제도를 법률 제도를 정하고, 관직의 명칭을 확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이에 그 일과 관련한 의례와 법제 등을 모두 갖추어 기초하니 색은 황색을 숭상하고, 숫자는 5를 사용하고, 관직의 이름을 확정하는 등 진나라의 법을 모두 바꾸려 했다.

 

孝文帝初即位, 謙譲未遑也. 諸律令所更定, 及列侯悉就國, 其説皆自賈生発之. 於是天子議以為賈生任公卿之位. 東陽侯馮敬之屬盡害之, 乃短賈生曰:「雒陽之人, 年少初學, 専欲擅権, 紛亂諸事.於是天子後亦疏之, 不用其議, 乃以賈生為長沙王太傅.

효문제초즉위 겸양미황야. 제율령소경정 급열후실취국 기설개자가생발지. 어시천자의이위가생임공경지위. 강 관 동양후 풍경지속진해지 내단가생왈 낙양지인 연소초학 전욕천권 분란제사어시천자후역소지 불용기의 내이가생위장사왕태부.

 

효문제는 즉위 초에는 겸손하여 나서지 않았다. 법률과 조령을 개정하고 열후들에게 봉지로 돌아가게 만든 것 등이 모두 가생에게서 나왔다. 이에 천자는 가생을 공경의 자리에 임명할 것을 논의하게 했다. 강후(絳侯, 주발), 관영(灌嬰), 동양후(東陽侯, 장상여), 풍경(馮敬) 등의 무리가 반대하면서 가생에 대해 낙양 출신으로 아직 어리고 학문도 일천한데 오로지 권력에 대한 욕심만 가지고 여러 일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라고 헐뜯었다. 이에 천자 역시 점차 그를 멀리하며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가생을 장사왕의 태부로 삼게 했다.

 

賈生既辭往行, 聞長沙卑溼, 自以壽不得長, 又以適去, 意不自得. 及渡湘水, 為賦以弔屈原. 其辭曰

가생기사왕행 문장사비습 자이수불급장 우이적거 의부자득. 급도상수 이부이조굴원. 기사왈:

 

가생이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나는데 장사(長沙)가 지대가 낮고 습해서 자신의 수명이 길지 않겠다는 생각과 또 쫓겨 가는지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상수를 건너면서 굴원을 조문하는 문장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共承嘉恵兮, 俟罪長沙. 側聞屈原兮, 自沈汨羅. 造託湘流兮, 敬弔先生.

공승가혜혜 준죄장사. 측문굴원혜 자침멱라. 조탁상류혜 경조선생.

 

공손하게 천자의 명을 받들어 장사에서 죄를 기다리게 되었구나. 어렴풋이 들으니 굴원은 스스로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는데 흘러가는 상수에 부쳐 삼가 선생의 영전에 조문하노라.

 

遭世罔極兮, 乃隕厥身. 嗚呼哀哉, 逢時不祥!

조세망극혜 내운권신. 오호애재 봉시불상!

 

부조리한 세상을 만나 마침내 몸을 망쳣으니 슬프구나, 때가 맞지 않았으니!

 

鸞鳳伏竄兮, 鴟梟翶翔. 闒茸尊顕兮, 讒諛得志賢聖逆曳兮, 方正倒植. 世謂伯夷貪兮, 謂盜蹠廉莫邪為頓兮, 鉛刀為銛.

난봉복찬혜 치효고상 탑용존현혜 참유득지; 현성역예혜 방정도식. 세위백이탐혜 위도척렴; 막야위둔혜 연도위섬

 

봉황은 엎드려 숨고 올빼미가 날아다니는구나. 못된 것들은 귀한 몸이 되고 모함하고 아첨하는 자들이 뜻을 얻었구나. 현인과 성인은 도리어 끌려다니고 반듯한 사람은 뒤바뀐 자리에 놓였네. 세상은 주려 죽은 백이를 탐욕스럽다 하고 도척을 청렴하다 말하며, 막야의 보검을 무디다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날카롭다고 하네.

 

於嗟嚜嚜兮, 生之無故! 斡棄周鼎兮寶康瓠, 騰駕罷牛兮驂蹇驢, 驥垂両耳兮服塩車.

어차묵묵혜 생지무고! 간기주정혜보강호 등가파우혜참견려 기수양이혜복염거

 

아아, 선생은 말도 못하고 까닭도 없이 이 화를 당하셨구나. 주 왕실의 보물인 세 발 솥을 버리고 질그릇 단지를 보배라고 하며, 비쩍 마른 소잔등에다 멍에를 지우고 절름발이 나귀더러 수레를 끌라 하니, 준마는 두 귀를 늘어뜨린 채 소금 수레나 끌어야 한다네.

 

章甫薦屨兮, 漸不可久嗟苦先生兮, 獨離此咎!

장보천리혜 점불가구; 차고선생혜 독이차구!

 

선비가 신발 밑에 깔렸으니 오래갈 수 없게 되었네. 아아, 홀로 이 허물을 입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訊曰已矣, 國其莫我知, 獨堙欝兮其誰語鳳漂漂其高遰兮, 夫固自縮而遠去.

신왈: 이의 국기막아지 독연울혜기수어? 봉표표기소체혜 부고자축이원거.


따져보면 이미 그리 되어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답답하고 분한 마음 홀로 가슴에 맺어둘 뿐 그 누구에게 말하랴? 봉황은 높은 하늘에 머무는 법인데 스스로 쪼그라들어 멀리멀리 가버렸네.

 

襲九淵之神竜兮, 沕深潛以自珍. 彌融爚以隠処兮, 夫豈従螘與蛭螾

습구연지신용혜 물심잠이자진. 이융약이은처혜 부기종의여질인?


깊은 연못에 들어간 신룡은 깊이깊이 숨어 자신을 귀히 했다. 스스로 제 몸을 소중히 간직하여 광명을 멀리하고 숨어 지내는 뜻을 개미와 같은 하챦은 사람들이 어찌 따르랴?

 

所貴聖人之神徳兮, 遠濁世而自蔵. 使騏驥可得係羈兮, 豈雲異夫犬羊!

소귀성인지신덕혜 원탁세이자장. 사기기가득계기혜 기운이부견양!

소중히 여길 것은 성인의 신비로운 덕이요 탁한 세상 멀리 떠나 스스로 숨어버렸다. 천리마를 매어두면 개나 양을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般紛紛其離此尤兮, 亦夫子之辜也! 瞝九州而相君兮, 何必懐此都也

반분분기이차우혜 역부자지고야! 이구주이상군혜 하필회차도야?

 

마음 산란하여 머뭇거리다가 이런 화에 걸려들었으니 선생의 허물이로다! 천하를 두루 둘러보고 그 중에서 어진 임금의 재상이 될 것이지 하필 이 나라만을 생각해야 했던가?

 

鳳皇翔於千仭之上兮, 覧徳煇而下之見細徳之険()[], 揺増翮逝而去之.

봉황상어천인지상혜 람덕휘이하지; 견세덕험미혜 요증핵서이거지.

 

봉황은 천 길 높은 하늘을 날다가 밝은 덕 환히 보이면 거기에 내려앉고 보잘 것 없는 덕에서 환란의 징조 보이면 날개를 훌훌 저어 그곳을 떠난다네.


 

彼尋常之汚涜兮, 豈能容呑舟之魚! 橫江湖之鱣鱏兮, 固將制於蟻螻.

피심상지오탁혜 기능용탄주지어! 황강호지선심혜 고장제어의루.

 

저 평범한 구정물이 배를 삼킬 큰 물고기를 받아들이겠는가? 강과 호수를 오가는 대어도 일단 작은 못이나 도랑에 갇히면 땅강아지 따위에 제압당하고 말 것을!

 

賈生為長沙王太傅三年, 有鴞飛入賈生舎, 止於坐隅. 楚人命鴞曰. 賈生既以適居長沙, 長沙卑溼, 自以為壽不得長, 傷悼之, 乃為賦以自広. 其辭曰

가생위장사왕탸부삼년 유효비입가생사 지어좌우. 초인명효왈 ’. 가생기이적거장사 장사비습 자이위수부득장 상도지 내이부이자광. 기사왈:

 

가생이 장사왕의 태부가 된 지 3년이 되던 어느 날 부엉이가 가생의 집에 날아 들어와서 방 가장자리에 앉았다. 초나라 사람들은 부엉이를 ()’이라고 불렀다. 가생은 장사로 쫒겨 와서 살고 있는데 장사의 지대가 낮고 습기가 많아 스스로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늘 상심하고 있었기에 문장을 지어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単閼之歳兮, 四月孟夏, 庚子日施兮, 服集予舎, 止於坐隅, 貌甚閒暇.

단알지세혜 사월맹하 경자일시혜 복집여사 지어좌우 모심한가.

 

정묘년, 4월 초여름 경자일(庚子日)도 저물어 갈 무렵 부엉이가 나의 집에 날아왔네. 방 가장자리에 앉았는데 그 모습 무척 한가롭구나.

 

異物來集兮, 私怪其故, 発書占之兮, 筴言其度, 野鳥入処兮, 主人將去.

이물래집혜 사괴기고 발서점지혜 책언기도. 야조입처혜 주인장거

 

이상한 것이 날아드니 난 그 까닭이 야릇하여 복서를 꺼내서 그 길흉을 예측을 해보니

들새가 방으로 들어오니, 주인이 장차 떠날 것이다.’

 

請問於服兮:「予去何之吉乎告我, 凶言其菑. 淹數之度兮, 語予其期.

청문어복혜 여거하지? 길호고아 흉언기치. 엄수지도혜 어여기기

 

부엉이에게 묻노니 나는 어디로 가겠는고? 길하면 내게 알려주고 흉하면 어떤 재앙인지 말해다오. 수명이 짧을지 길지 그 시기를 내게 일러다오.’

 

服乃歎息, 挙首奮翼, 口不能言, 請対以意.

복내탄식 거수분익 구불능언 청대이의

 

부엉이가 이를 탄식하니 머리를 들고 날개를 펼치도다. 입으로 말을 할 수 없으니,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萬物変化兮, 固無休息. 斡流而遷兮, 或推而還. 形気転続兮, 変化而嬗. 沕穆無窮兮, 胡可勝言!

만물변화혜 고무휴식. 간류이천혜 혹추이환. 형기전속혜 변화이선. 물목무궁혜 호가승언!

 

만물은 변화하니 본디 쉼이 없구나. 흐름과 돌기를 반복하니 갔다 왔다 하는구나. 유형과 무형이 서로 바뀌니 끊임없이 변화한다네. 심오하고 무궁한 이치 어찌 말로 다 표현하리오!

 

禍兮福所倚, 福兮禍所伏憂喜聚門兮, 吉凶同域.

화혜복소의 복혜화소복; 우희취문혜 길흉동역.

 

()란 복()이 기대고 있고, 복은 화가 숨어 있다. 근심과 기쁨은 한데 모이고 길흉도 한 곳에 있구나.

 

彼呉彊大兮, 夫差以敗越棲會稽兮, 句踐霸世.

피오강대혜 부차이패; 월서회계혜 구천패세.

 

저 오나라, 강대했거늘 부차(夫差)는 패망했고 월()은 회계(會稽)만을 갖고도 구천(句踐)은 세상을 제패했도다.

 

斯遊遂成兮, 卒被五刑傅説胥靡兮, 乃相武丁.

사유수성혜 졸피오형; 부열서미혜 내상무정.

 

이사(李斯)는 유세에 성공했으나 다섯 가지 형벌을 받고 끝났다. 부열(傅說)은 노예였지만 무정(武丁)의 재상이 되었도다.

 

夫禍之與福兮, 何異糾纆. 命不可説兮, 孰知其極

부화지여복혜 하이규묵. 명불가설혜 숙지기극?

 

화와 복은 얽혀 있으니 어찌 다른 연결이 있겠나 운명이란 설명할 수 없으니 누가 그 지극함을 알리오?

 

水激則旱兮, 矢激則遠. 萬物回薄兮, 振蕩相転. 雲蒸雨降兮, 錯繆相紛. 大専槃物兮, 坱軋無垠.

수격즉한혜 시격즉원. 만물회박혜 진탕상전. 운승우강혜 착무상분. 대전반물혜 앙알무한.

 

물은 격해지면 말라붙고 화살이 격해지면 멀리 간다. 만물은 돌고 돌아 서로 울리고 바뀌는구나. 구름이 피어올라 비를 내리니 복잡하게 얽히는구나. =이치가 만물을 다스리니 들쭉날쭉하다.

 

天不可與慮兮, 道不可與謀. 遅數有命兮, 悪識其時

천불가여여혜 도불가여모. 지수유명혜 오식기시?

 

천하는 염려한다고 되는게 아니듯 도()는 잔꾀로 되지 않는다. 수명은 길고 짧음이 있으나 어찌 그 때를 알 수 있으리오?

 

且夫天地為鑪兮, 造化為工陰陽為炭兮, 萬物為銅. 合散消息兮, 安有常則千変萬化兮, 未始有極.

차부천지위노혜 조화위공; 음양위탄혜 만물위동. 합산소식혜 안유상즉; 천변만화혜 미시유극.

 

천지가 용광로(火爐)라면, 조물주는 장인이로다. 음양이 숯이라면, 만물은 동()이라네. 합치고 흩어지고 사라지고 멈추는 것은 당연하니 천변만화하니 본래 끝이 없다네.

 

忽然為人兮, 何足控摶化為異物兮, 又何足患! 小知自私兮, 賎彼貴我通人大観兮, 物無不可.

홀연위인혜 하족공단; 화위이물혜 주하족환! 소지자사혜 천피귀아; 동인대관혜 물무불가.

 

우연히 인간이 되었거늘 무엇을 더 가져오리. 다른 사물로 변한다 해도 또 무엇을 걱정하리! 작은 지혜로 까부는 자 남은 천시하고 자신은 높이는구나. 통달한 자는 달관하여 만물이 같지않은 것이 없다.

 

貪夫徇財兮, 烈士徇名誇者死権兮, 品庶馮生.

탐부순재혜 열사순명; 과자사권혜 품서빙생.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죽고 열사는 명예를 위해서 죽고 권세를 떠벌리는 자 권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그냥 살 뿐이라네.

 

述迫之徒兮, 或趨西東大人不曲兮, 億変斉同. 拘士繋俗兮, 如囚拘至人遺物兮, 獨與道倶. 衆人或或兮, 好悪積意真人淡漠兮, 獨與道息.

술박지도혜 혹추서동; 대인불곡혜 억변제동. 구사번속혜 ? 여수구; 지인유뮬혜 독여도구. 중인혹혹혜 호오적의; 진인담막혜 독여도식.

 

■ : 集解徐広曰:「■音華板反, 又音脘.索隠音和板反. 説文云「■, 大木柵也. 漢書作「■」, 音去隕反.

 

이익을 좇는 자들 동분서주한다네. 대인은 굽히지 않으니 생각이 바뀌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세속에 얽매이니 죄수처럼 자신을 구속한다네. 지극한 자는 모든 걸 내려놓으니 그저 도와 함께 간다네. 뭇 사람들 미혹에 빠져 호오의 감정을 품고 살지만, 진실 된 자 담담하여 도와 더불어 존재한다네.

 

 

釈知遺形兮, 超然自喪寥廓忽荒兮, 與道翶翔. 乗流則逝兮, 得坻則止縦軀委命兮, 不私與己. 其生若浮兮, 其死若休澹乎若深淵之靜, 氾乎若不繋之舟.
석지유형혜 초연자상; 요량홀황혜 여도고상. 승류직서혜 득지즉지; 종구위명혜 불사여기. 기행고부혜 기사약휴; 담호심연지정 범호약불계지주.

 

형에 대한 지식을 버리고 초연히 자아를 잊으니 아전이 비어도 황량하지 않고 도리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리라. 물결에 실려 떠나가다 모래톱에 닿아야 멈추듯 몸뚱이 마다 운명을 맘대로 못하니 그 삶이란게 부평초 같고 죽음이란 휴식과 같은 것 담담하기가 심연의 고요함같고 표면으론 매이지 않은 배와 같다.

 

不以生故自寶兮, 養空而浮徳人無累兮, 知命不憂. 細故芥兮, 何足以疑!

불이생고자보혜 양공이부; 덕인무루혜 지명불우. 세고개효 하족이의!

 

삶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말고 의 자리를 잡으라 덕 있는 자는 삶이 불우하지 않음을 알아 쌓아두지 않아 거칠 것이 없다. 하찮은 풀잎인데 왜 걱정하겠나!

 

後歳餘, 賈生徴見. 孝文帝方受釐, 坐宣室. 上因感鬼神事, 而問鬼神之本. 賈生因具道所以然之狀. 至夜半, 文帝前席. 既罷, :「吾久不見賈生, 自以為過之, 今不及也.居頃之, 拝賈生為梁懐王太傅. 梁懐王, 文帝之少子, , 而好書, 故令賈生傅之.

후세여 가생징현. 효문제방수리 좌선실. 상인감귀신사 이문귀신지본. 가생인구도소이연지상. 지야반 문제전석. 기파 왈 오구불현가생 가이위과지 금불급야거경지 배가생위양회왕태부. 양회왕 문제지소자 애 이호서 고영가생부지.

 

그 후 1년 남짓, 가생은 소환되었다. 효문제는 마침 제사 지내고 선실(宣室:한나라 궁실)에 음식을 앞두고 앉아 있었다. 주상은 귀신과 관련한 일에 느끼는 바 있어 귀신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가생은 이에 그 방면의 이치를 상세히 말했다. 밤이 깊어지자 문제는 자리를 가생 쪽으로 당겨 앉았다. 자리가 끝나자 (주상은) ‘내가 오래도록 가생을 보지 못하는 동안 스스로 가생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가생에 미치지 못하는 구나라고 했다. 얼마 뒤 가생을 양() 회왕(懷王)의 태부(太傅)로 임명했다. 양 회왕은 효문제의 작은아들로서 사랑을 받았고, 또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생을 그 스승으로 삼은 것이다.

 

*受釐: 제사후 음복하듯 고기를 나누는 일

 

文帝複封淮南厲王子四人皆為列侯. 賈生諫, 以為患之興自此起矣. 賈生數上疏, 言諸侯或連數郡, 非古之制, 可稍削之. 文帝不聴.

문제복봉회남여왕자사인개위열후. 가생간 이위환지흥자차기의. 가생수상소 언제후혹연수군 비고지제 가초삭지. 문제불청.

 

효문제는 또 회남(淮南) 여왕(厲王)의 네 아들을 모두 제후에 봉했다. 가생이 그 때문에 우환이 생길 것이라고 간했다. 가생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제후들이 여러 개의 군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옛날 제도가 아니니 그것을 줄이자고 했다.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居數年, 懐王騎, 墮馬而死, 無後. 賈生自傷為傅無狀, 哭泣歳餘, 亦死.

거수년 회왕기 타마이사 무후. 가생자상위부무상 곡읍세야 역사.

 

몇 년 뒤, 회왕이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후사가 없었다. 가생은 스승으로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마음이 상해 1년 넘게 통곡하다가 그 역시 죽었다.

 

賈生之死時年三十三矣. 及孝文崩, 孝武皇帝立, 挙賈生之孫二人至郡守, 而賈嘉最好學, 世其家, 與餘通書. 至孝昭時, 列為九卿.

가생지사시년삼십삼의. 급효문붕 효무황제립 거가생지손이인지군수 이가가최호학 세기가 여여통서. 지효소시 열위구경.

 

가생이 죽었을 때 나이가 33세였다. 효문제가 죽고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하여 가생의 손자 두 명을 기용하여 군수에까지 이르렀는데, 가가(賈嘉)는 배우길 가장 좋아하여 집안을 잇고 었다. 틈날 때 마다 글을 읽었다. 효소제(孝昭帝) 때에 이르러서는 구경(九卿)의 대열에 들었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餘読離騒天問招魂哀郢, 悲其志. 適長沙, 観屈原所自沈淵, 未嘗不垂涕, 想見其為人. 及見賈生弔之, 又怪屈原以彼其材, 遊諸侯, 何國不容, 而自令若是. 読服烏賦, 同死生, 軽去就, 又爽然自失矣.

태사공왈 ; 여독이소 천문 초혼 애영 비기지. 적장사 관굴원소자침연 미상불수체 상견기위인. 급견가생조지 우괴굴원이피기재 유제후 하국불용 이자영약시. 독복조부 동사생 경거취 아상연자실의.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郢)을 읽어보니 그 뜻이 슬펐다. 장사 땅에 와서 굴원이 빠져 죽은 곳을 보며 눈물을 떨구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람을 깊이 생각했다. 가생이 굴원을 애도한 글을 읽고는 굴원이 그런 재능으로 다른 제후국에 유세했더라면 어떤 나라인들 받아들이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과 왜 스스로 그런 처지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복조부(鵩鳥賦)를 읽으면서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고, 거취에 초연했던 것을 알고서는 나의 고뇌도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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