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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列傳- 魯仲連鄒陽列傳


<魯仲連>

 

魯仲連者, 斉人也. 好奇偉俶儻之畫策, 而不肯仕宦任職, 好持高節. 遊於趙.

노중련자 제인야. 호기위척당지획책 이불긍사환임직 호지고절. 유어조.

 

노중련(魯仲連)은 제() 사람이다. 기발하고 남다른 계책을 잘 냈으나 벼슬은 원치 않았으며 고고한 절개를 지키길 좋아했다. 조나라를 떠돌 때의 일이다.

 

趙孝成王時, 而秦王使白起破趙長平之軍前後四十餘萬, 秦兵遂東囲邯鄲. 趙王恐, 諸侯之救兵莫敢撃秦軍. 魏安釐王使將軍晉鄙救趙, 畏秦, 止於蕩陰不進. 魏王使客將軍新垣衍閒入邯鄲, 因平原君謂趙王曰

조효성왕시 이진왕사백기파조장평지군전후사십여만 진병수동위한단. 조왕공 제후지구병막감격진군. 위안리왕사장군진비구조 외진 지어탕음불진. 위왕사객장군신원연간입한단 인평원군위조왕왈:

 

조 효성왕(孝成王) 때 진왕이 백기(白起)로 하여금 조의 장평(長平) 군대 전후 40여 만을 격파하게 했다. 진의 군대는 마침내 동쪽 한단(邯鄲)을 포위했다. 조왕은 겁을 먹었고, 제후들의 구원병은 감히 진의 군대를 공격하지 못했다. 위 안희왕(安釐王)은 장군 진비(晉鄙)에게 조를 구하게 했으나 진이 두려워 탕음(蕩陰)에서 멈추고 진군하지 못했다. 이에 위왕은 객장군(客將軍) 신원연(新垣衍)을 사잇길로 한단으로 보내 평원군(平原君)을 통해 조왕에게 이렇게 말하게 했다.

 

秦所為急囲趙者, 前與斉湣王爭彊為帝, 已而複帰帝今斉(湣王)已益弱, 方今唯秦雄天下, 此非必貪邯鄲, 其意欲複求為帝. 趙誠発使尊秦昭王為帝, 秦必喜, 罷兵去.

진소위급위조자 전여제민왕쟁강위제 이이복귀제; 금제민왕이익약 방금유진웅천하 차기필탐한단 기의욕복구우제. 조성발사존진소왕위제 진필희 파병거

 

진이 급하게 조를 포위한 것은 전에 제 민왕(湣王)과 힘을 다투면서 함께 ()’가 되기로 했다가 얼마 뒤 거두어 들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는 이미 더 약해졌고 바야흐로 진만이 천하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이번 일은 꼭 한단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라는 칭호를 다시 찾고 싶어서입니다. 조가 정성껏 사신을 보내 진 소왕을 로 높이면 진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병력을 철수시킬 것입니다.’

 

平原君猶預未有所決.

평원군유예미유소결.

 

평원군은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此時魯仲連適遊趙, 會秦囲趙, 聞魏將欲令趙尊秦為帝, 乃見平原君曰:「事將柰何?」

차시노중연적유조 회진위조 문위장욕령조존진위제 내견평원군왈 사장내하?’


이때 노중련이 마침 조를 떠돌고 있다가 진이 조를 포위한 상황에서 위가 조로 하여금 진을 로 떠받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평원군을 만나 장차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렵니까라고 했다.

 

平原君曰:「勝也何敢言事! 前亡四十萬之衆於外, 今又內囲邯鄲而不能去. 魏王使客將軍新垣衍令趙帝秦, 今其人在是. 勝也何敢言事!

평원군왈 승야하감언사! 전망사십만지중어외 금우내위한단이불능거. 위왕사갹장군신원연영조제진 금기인재시. 승야하감언사!’

 

평원군이 이렇게 말했다. ‘이 조승이 어찌 감히 그 일을 말할 수 있겠소! 전에 밖에서 40만을 잃었고 지금 또 안으로 한단이 포위를 당해 물리칠 수 없으니. 위왕께서 객장군 신원연을 보내 조에게 진을 로 받들라 했고, 그가 지금 여기 있소. 이 조승이 어찌 감히 이 일을 말할 수 있겠소!’

 

魯仲連曰:「吾始以君為天下之賢公子也, 吾乃今然後知君非天下之賢公子也. 梁客新垣衍安在吾請為君責而帰之.

노중연왈 오시이군위천하지현공자야 오냐금연후지군비천하지현공자야. 양객신원연안재? 오청위군책이귀지

 

노중련이 말했다. ‘제가 처음에는 군을 천하의 현명한 공자로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천하의 현명한 공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 객이라는 신원연은 어디 있습니까? 제가 군을 위해 그 자를 꾸짖어 돌려보내겠습니다.’

 

平原君曰:「勝請為紹介而見之於先生.平原君遂見新垣衍曰:「東國有魯仲連先生者, 今其人在此, 勝請為紹介, 交之於將軍.新垣衍曰:「吾聞魯仲連先生, 斉國之高士也. 衍人臣也, 使事有職, 吾不願見魯仲連先生.平原君曰:「勝既已泄之矣.新垣衍許諾.

평원군왈 승청위소개이견지어선생평원군수견산원연왈 동국유노중련선생자 영기인재차 승청위소개 교지어장군신원연왈 오문노중련선생 제국지고사야. 연인신야 사사유직 오불원견노중련선생평원군왈 승기이설지의신원연허락.

 

평원군은 이 조승이 소개하여 선생께서 그를 만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평원군이 신원연을 만나 동쪽 나라에 노중련 선생이라는 분이 계신데 지금 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이 조승이 한 번 사귀어 보도록 장군께 소개할까 합니다라고 했다. 신원연은 제가 듣기에 노중련 선생은 제나라의 지조 높은 지사라 합니다. 그러나 이 신원연은 신하된 몸으로 일을 해야 하는 자리이니 저는 노중련 선생을 만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평원군이 이 조승이 이미 그분께 말씀을 드렸습니다라고 하자 신원연이 허락했다.

 

魯連見新垣衍而無言. 新垣衍曰:「吾視居此囲城之中者, 皆有求於平原君者也今吾観先生之玉貌, 非有求於平原君者也, 曷為久居此囲城之中而不去?」

노련견긴원연이무언. 신원연왈 오시거차위성지중자 개유구어평원군자야; 금오관선생지옥모 비유구어평원군자야 갈위구거차위성지중이불거?’


노중련은 신원연을 만났으나 말이 없었다. 신원연이 말했다. ‘제가 보니 지금 이 성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평원군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제가 선생의 귀한 모습을 뵈니 평원군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 같군요. 어찌하여 포위된 이 성안에 오래 머무르며 떠나지 않으십니까?’

 

魯仲連曰:「世以鮑焦為無従頌而死者, 皆非也. 衆人不知, 則為一身. 彼秦者, 棄禮義而上首功之國也, 権使其士, 虜使其民. 彼即肆然而為帝, 過而為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為之民也. 所為見將軍者, 欲以助趙也.

노중련왈 세이포초위무종송이사자 개비야. 중인부지 즉위일신. 피진자 기얘의이상수공지국야 권사기사 노사기민. 피즉사연이위제 과이위정어천하 즉연유도동해이사이 오불인위지민야. 소위견장군자 욕이조조야

 

노중련이 말했다. ‘세상에서는 포초(鮑焦: 주나라때 청렴한 선비)가 죽어 칭송받지 못한다는데 모두 틀렸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고 포초가 자기 한 몸만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저 진나라는 예를 버리고 전공만을 으뜸으로 치는 나라로서 힘으로 군사를 부리고 노예처럼 백성을 부립니다. 저들이 일단 멋대로 제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이 노중련은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을지언정 저는 결코 그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장군을 뵙고자 한 것은 조를 돕고 싶어서였습니다.’

 

新垣衍曰:「先生助之將柰何?」魯連曰:「吾將使梁及燕助之, 楚則固助之矣.

신원연왈 선생조지장내하?’ 노련왈 오장사양급연조지 제 초즉고조지의

 

신원연이 선생께서 조를 어떻게 돕겠다는 말입니까라고 했다. 노중련은 제가 양()과 연으로 하여금 조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제와 초는 본디 조를 돕고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新垣衍曰:「燕則吾請以従矣若乃梁者, 則吾乃梁人也, 先生悪能使梁助之?」

신원연왈 연즉오청이종의; 약내양자 즉오내양인야 선생악능사양조지?’

 

신원연이 연나라라면 제가 믿을 수 있습니다만 양나라라면 제가 양나라 사람인데 선생께서 어떻게 양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돕게 한단 말입니까라고 했다.

 

魯連曰:「梁未睹秦稱帝之害故耳. 使梁睹秦稱帝之害, 則必助趙矣.

노련왈 양미도진칭제지해고이. 사영도진칭제지해 즉필조조의

 

노중련은 양은 진이 제왕을 칭했을 경우의 폐해들을 아직 모를 뿐입니다. 양이 진이 제왕을 칭했을 경우의 폐해들을 안다면 틀림없이 조를 도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新垣衍曰:「秦稱帝之害何如?」

신원연왈 진칭제지해하여?’

 

신원연이 진이 제왕을 칭했을 경우 폐해란 무엇입니까라고 했다.


魯連曰:「昔者斉威王嘗為仁義矣, 率天下諸侯而朝周. 周貧且微, 諸侯莫朝, 而斉獨朝之. 居歳餘, 周烈王崩, 斉後往, 周怒, 赴於斉曰:『天崩地坼, 天子下席. 東藩之臣因斉後至, 則斮.斉威王勃然怒曰:『叱嗟, 而母婢也!卒為天下笑. 故生則朝周, 死則叱之, 誠不忍其求也. 彼天子固然, 其無足怪.

노련왈 석자제위왕상위인의의 솔천하제후이조주, 주빈차미 제후막조 이제독조지. 거세여 주열왕붕 제후왕 주노 부어제왈 천붕지탁 천자하석 동번지신인제후지 즉착제위왕발연노왈 질차 이모비야!” 졸위천하소. 고생즉조주 사즉질지 성불인기구야. 피천자고연 기무족괴

 

노중련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 제나라 위왕(威王)은 늘 인의를 행하며 천하의 제후들을 이끌고 주나라에 조회했습니다. 주나라는 가난하고 미미하여 제후들이 조회를 드리지 않았는데 제나라 혼자 조회했습니다. 1년 여 년 뒤, 주나라 열왕이 죽었는데 제나라가 늦게 왔습니다. 주나라가 성이 나서 제나라를 향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치는 천자의 장례에 동쪽 울타리의 신하 전인제(田因齊)가 늦게 오다니 목을 베야 할 것이다라 했습니다. 제나라 위왕은 발끈하며 이런 빌어먹을 종년의 자식이라고 성을 냈고 결국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지요. 살아 있을 때는 주나라에 조회하고 죽자 욕한 것은 그 요구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저 천자란 것이 본디 그런 것이니 나무랄 것 없겠지요.’

 

新垣衍曰:「先生獨不見夫僕乎十人而従一人者, 寧力不勝而智不若邪畏之也.

신원연왈 선생독불견부복호? 십인이종일인자 영역불승이지불약야? 외지야

 

신원연이 선생께서는 저 노복들이 안 보이십니까? 열 명이 한 사람을 따르는 것은 힘으로 이기지 못해서일까요, 지혜가 모자라서일까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魯仲連曰:「嗚呼! 梁之比於秦若僕邪?」

노중련왈 오호 양지비어진약복야?’

 

노중련은 오호! 진에 대해 양()이 노복과 같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新垣衍曰:「.

신원연왈

 

신원연이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魯仲連曰:「吾將使秦王烹醢梁王.

노중련왈 오장사진왕팽해양왕

 

노중련은 제가 진왕에게 양왕을 삶아 젖을 담그라고 할까요라고 했다.

 

新垣衍怏然不悅, :「噫嘻, 亦太甚矣先生之言也! 先生又悪能使秦王烹醢梁王?」

신원연앙얀불열 왈 희희 역태심의선생지언야! 선생우앇능사진왕팽해양왕?’

 

신원연이 인상을 찡그리고 불쾌해하며 어허! 너무 심하십니다, 선생의 말씀이! 선생이 어떻게 진왕을 시켜 양왕을 삶아죽이게 한단 말입니까라고 했다.

 

魯仲連曰:「固也, 吾將言之. 昔者九侯鄂侯文王, 紂之三公也. 九侯有子而好, 獻之於紂, 紂以為悪, 醢九侯. 鄂侯爭之彊, 辯之疾, 故脯鄂侯. 文王聞之, 喟然而歎, 故拘之牖里之庫百日, 欲令之死. 曷為與人倶稱王, 卒就脯醢之地

노중련왈 고야 오장언지. 석자구후 악후 문왕 봉지삼공야. 구후유자이호 헌지어주 주이위악 해구후. 악후쟁지강 변지질 고포악후. 문왕문지 위연이탄 고구지유리지고백일 욕영지사. 갈위여인구칭왕 졸취포해지지?

 

노중련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옛날 구후(九侯)와 악후(鄂侯), 주 문왕(文王)은 모두 은 주왕(紂王)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구후에게 잘난 딸이 하나 있어 주왕에게 딸을 바쳤는데, 주왕은 그녀를 미워하여 구후를 소금에 절여 죽였습니다. 악후가 강하게 말리며 직언하자 악후를 포를 떠서 죽였습니다. 주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탄식하자 주왕은 그를 유리(羑里)에 있는 감옥에 1백일이나 가두고는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왕이라 불러 결국에는 소금에 절여지는 신세가 되려고 하십니까?

 

斉湣王之魯, 夷維子為執策而従, 謂魯人曰:『子將何以待吾君?』魯人曰:『吾將以十太牢待子之君.夷維子曰:『子安取禮而來[]吾君彼吾君者, 天子也. 天子巡狩, 諸侯辟舎, 納筦籥, 摂衽抱機, 膳於堂下, 天子已食, 乃退而聴朝也.魯人投其籥, 不果納.

제민왕지노 이유자위집책이종 위노인왈 자장하이대오군?” 노인왈 오장이십태뢰대자지군이유자왈 자안취예이래대오군? 피오군자 천자야. 천자순수 제후벽사 납관약 섭임포기 선어당하 천자이식 내퇴이청조야노인투기약 불과납.


제 민왕이 노에 가려고 했을 때 말채찍을 들고 수행하던 이유자(夷維子)가 노 사람에게 당신들은 우리 군주를 어떻게 대접하겠소라고 물었습니다. 노 사람이 우리는 10태뢰(十太牢)의 예로 당신 군주를 대우하겠소라고 하자 이유자는 당신들이 어떤 예절에 근거해 우리 군주를 대접하려는 것이오? 우리 군주는 천자이시오. 천자께서 순행을 하시면 제후들은 자기 궁궐을 내어주고, 성문과 창고 열쇠를 맡기며, 옷을 걷어붙이고 탁자를 배치하며, 대청 밑에서 천자의 수라를 준비해 올리고, 천자께서 식사를 끝낸 후에야 물러나 정사를 듣는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나라 사람은 열쇠를 내던지고 제 민왕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不得入於魯, 將之薛, 仮途於鄒. 當是時, 鄒君死, 湣王欲入弔, 夷維子謂鄒之孤曰:『天子弔, 主人必將倍殯棺, 設北面於南方, 然後天子南面弔也.鄒之群臣曰:『必若此, 吾將伏剣而死.固不敢入於鄒.

부득입어노 장지설 가도어추. 당시시 추군사 민왕욕입조 이유자위추지고왈 천자조 주인필장배빈관 설북면어남방 연후천자남면조야추지군신왈 필약차 오장복검이사고불감입어추.

 

노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설()로 가려는데 추()에 길을 빌려야 했습니다. 당시 추의 군주가 죽어서 민왕이 조문을 하려 했습니다. 이유자는 (죽은) 추 군주의 아들에게 천자께서 조문을 하시면 주인은 관을 뒤로 하고 북쪽을 향해 자리를 남쪽에 펴고 앉습니다. 그 다음 천자께서 남쪽을 향해 조문을 하는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추의 신하들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칼에 엎어져 죽겠다라며 끝내 추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魯之臣, 生則不得事養, 死則不得賻襚, 然且欲行天子之禮於鄒, 魯之臣不果納.

추 노지신 생즉부득사양 사즉부득부수 연차욕행천자지예어추 노 추 노지신불과납.


, 노의 신하들은 군주가 살아 있을 때에는 제대로 모시지 못했고, 죽어서도 제사 음식을 넉넉히 차리지 못했는데 (제 민왕이) 천자의 예를 추, 노에다 행하려 하니 추, 노의 신하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今秦萬乗之國也, 梁亦萬乗之國也. 倶拠萬乗之國, 各有稱王之名, 睹其一戦而勝, 欲従而帝之, 是使三晉之大臣不如鄒魯之僕妾也. 且秦無已而帝, 則且変易諸侯之大臣. 彼將奪其所不肖而與其所賢, 奪其所憎而與其所愛. 彼又將使其子女讒妾為諸侯妃姫. 処梁之宮. 梁王安得晏然而已乎而將軍又何以得故寵乎?」

금진만승지국야 양역만승지국야. 구거만승지국 각유칭왕지명 도기일전이승 욕종이제지 시사삼진지대신불여추 노지복첩야. 차진무이이제 즉차변역제후지대신. 피장탈기소불초이여기소현 탈기소증이여기소애. 피우장사기자녀참첩위제후비희. 처양지궁. 양왕안득안연이기호? 이장군우하이득고총호?’

 

지금 진은 만승(萬乘)의 나라이고, 위 역시 만승의 나라입니다. 모두 만승의 나라를 가지고 각자 왕이라 칭하고 있는데, 위가 진의 승리를 한 번 보고는 진에 복종하여 진왕을 높여 제()로 삼으려는 것이니 이는 삼진(三晉)의 대신들을 추와 노의 하인이나 첩만도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진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끝내 제왕을 칭하면 제후들의 대신을 마음대로 갈아치울 것입니다. 못마땅한 사람은 버리고 유능하다는 사람을 기용할 것이며, 미운 자를 버리고 좋아하는 자들로 바꿀 것입니다. 저들은 또 진왕의 요사스러운 부녀자들을 제후의 아내로 삼게 할 것이니, 위의 궁궐에서도 그런 여자가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도 위왕이 편할 수 있으며, 장군 또한 지금처럼 총애와 신임을 받겠습니까?’

 

於是新垣衍起, 再拝謝曰:「始以先生為庸人, 吾乃今日知先生為天下之士也. 吾請出, 不敢複言帝秦.秦將聞之, 為卻軍五十里. 適會魏公子無忌奪晉鄙軍以救趙, 撃秦軍, 秦軍遂引而去.

어시신원연기 재배사왈 시이선생위용인 오내금일지선생위천하지사야. 오청출 불감복언제진진장문지 위각군오십리. 적회위공자무기탈진비군이구조 격진군 진군수인이거.

 

그제에서야 신원연은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사과하며 당초 선생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오늘에서야 선생이 천하에 제일가는 선비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여기를 떠나 다시는 진왕을 제왕으로 받들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진의 장군은 이 소식을 듣고는 바로 군대를 50리 뒤로 물렸다. 또 마침 위공자(魏公子) 무기(無忌)가 조를 구원하려고 진비(晉鄙)의 군사를 빼앗아 진의 군대를 공격해왔다. 진의 군대가 마침내 물러갔다.

 

於是平原君欲封魯連, 魯連辭譲(使)者三, 終不肯受. 平原君乃置酒, 酒酣起前, 以千金為魯連壽. 魯連笑曰:「所貴於天下之士者, 為人排患釈難解紛亂而無取也. 即有取者, 是商賈之事也, 而連不忍為也.遂辭平原君而去, 終身不複見.

어시평원군욕봉노련 노련사양자삼 종불긍수. 평원군내치주 주감기전 이천슴위노련수. 노련수왈 소귀어천하지사자 위인배환석란해분란이무취야. 즉유취자 시상고지사야 이련불인위야수사평원군이거 종신불복견.

 

이에 평원군은 노중련에게 땅을 내리려 했으나 노중련은 세 번이나 사양하며 끝내 받지 않았다. 평원군은 이에 술자리를 마련했고 술자리 무르익자 앞으로 나아가 천 금을 올리며 노중련의 장수를 빌었다. 노중련은 웃으며 천하의 선비가 귀한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고, 재난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고 받는 것은 상인들의 일이지요. 저는 차마 그렇게는 못합니다라 하고는 마침내 평원군과 작별하여 떠나서는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다.

 

其後二十餘年, 燕將攻下聊城, 聊城人或讒之燕, 燕將懼誅, 因保守聊城, 不敢帰. 斉田単攻聊城歳餘, 士卒多死而聊城不下. 魯連乃為書, 約之矢以射城中, 遺燕將.

깋이십여년 연장공하요성 요성인혹참지연 연장구주 인보수요성 불감귀. 제전단공요성세여 사졸다사이요성불하. 노련내위서 약지시이사성중 유연장.

 

그로부터 20여 년 후, 연의 장군이 제의 요성(聊城)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요성 사람 누군가 그들의 장군을 연에 중상모략했다. 장군은 죽을까 겁이 나서 요성을 지킨 채 돌아오지 않았다. 제의 전단(田單)이 요성을 1년 넘게 공격했지만 병사들만 많이 죽고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노중련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에 있는 연의 장군에게 쏘아 보냈다.


書曰吾聞之, 智者不倍時而棄利, 勇士不卻死而滅名, 忠臣不先身而後君. 今公行一朝之忿, 不顧燕王之無臣, 非忠也殺身亡聊城, 而威不信於斉, 非勇也功敗名滅, 後世無稱焉, 非智也.

서왈 오문지 지자불배시이기리 용사불각사이멸명 충신불선신이후군, 금공행일조지념 불고연왕지무신 비충야; 살신망요성 이위불신어제 비용야; 공패명멸 후세무칭언 비지야.

 

글에는 제가 듣기에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거슬러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죽는 것이 겁나 명예를 훼손하지 않으며, 충신은 자기 몸을 앞세우고 군주를 뒤에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모함 당한 한 때의 분노를 참지 못하여 좋은 신하가 없는 연왕을 버렸으니 이는 충성이 아닙니다. 또 요성을 잃고 장군까지 죽게 되면 장군의 위엄을 제에다 떨칠 수 없으니 이는 용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공이 무너지고 명성을 잃으면 후대 사람들은 장군을 칭찬하지 않게 될 것이니 이는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三者世主不臣, 説士不載, 故智者不再計, 勇士不怯死. 今死生栄辱, 貴賎尊卑, 此時不再至, 願公詳計而無與俗同.

삼자세주불신 설사부재 고지자불재계 용사불겁사, 급사생영욕 귀천존비 차시부제지 원공상계이무여속동.

 

세상의 군주로서 이 세 가지에 해당하는 사람을 신하로 삼지 않을 것이고, 유세가는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 생각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생사, 영욕, 귀천, 존비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니 공께서는 잘 생각하시어 세속과 함께 하지 않길 바랍니다.

 

且楚攻斉之南陽, 魏攻平陸, 而斉無南面之心, 以為亡南陽之害小, 不如得済北之利大, 故定計審処之.

차초공제지남양 위공평육 이제무남면지심 이위망남양지해소 불여득제북지리대 고정계심처지.

 

그리고 초나라는 제나라 남양(南陽), 위나라는 평륙(平陸)을 공격하고 있는데, 제나라는 남쪽 (초에는) 마음이 없습니다. 남양을 잃는 손실은 작아서 제수(濟水) 북쪽 땅의 큰 이익만 못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 따져서 대처하려는 것입니다.

 

今秦人下兵, 魏不敢東面衡秦之勢成, 楚國之形危斉棄南陽, 斷右壌, 定済北, 計猶且為之也. 且夫斉之必決於聊城, 公勿再計.

금진인하병 위불감동면; 형진지세성 초국지형위; 제기남양 단우괴 정제북 계유차위지야. 차부제지필결어요성 공물재계.

 

지금 진이 병사를 풀어 제를 도우니 위가 감히 동쪽 제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며, 제와 진이 손을 잡게 되니 초의 형세가 위태롭습니다. 또 제는 남양을 버리고 오른쪽 땅 평륙을 자르고는 제수 북쪽의 땅을 평정할 것이니 이는 득실을 따져 결정한 계책입니다. 제가 분명 요성을 다시 차지하려 할 것이니 공께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십시오.

 

今楚魏交退於斉, 而燕救不至. 以全斉之兵, 無天下之規, 與聊城共拠期年之敝, 則臣見公之不能得也. 且燕國大亂, 君臣失計, 上下迷惑, 栗腹以十萬之衆五折於外, 以萬乗之國被囲於趙, 壌削主困, 為天下僇笑. 國敝而禍多, 民無所帰心.

금초위교퇴어제 이연구불지. 이전제지병 무천하지규 여요성공거기년지폐 즉신견공지불능득야. 차연국대란 군신실계 상하미혹 율복이십만지중오절어외 이만승지국피위어조 괴삭주곤 위찬하륙소. 국폐이화다 민무소귀심.

 

지금 초, 위나라 군대는 번갈아 제나라에서 물러나는 중이고, 연나라의 구원병은 오지 않습니다. 제나라는 모든 병력을 동원하고 천하는 도와주지 않으니 1년 넘게 포위당하고 있는 요성을 공은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연은 큰 혼란에 빠져 있어 군주와 신하가 같이 올바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위아래가 모두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율복(栗腹)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밖에서 다섯 번이나 패전하여 만승의 나라가 조에게 포위당하니 땅은 깎여 나가고 군주는 치욕을 당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피폐하고 재앙이 자주 닥치니 백성들이 어디에 마음 두어야 할지 모릅니다.

 

今公又以敝聊之民距全斉之兵, 是墨翟之守也. 食人炊骨, 士無反外之心, 是孫臏之兵也. 能見於天下. 雖然, 為公計者, 不如全車甲以報於燕. 車甲全而帰燕, 燕王必喜身全而帰於國, 士民如見父母, 交遊攘臂而議於世, 功業可明.

금공문이폐요지민거전제지병 시묵적지수야. 식인작골 사무반외지심 시손빈지병야. 능견어천하. 수연 위공계자 불여전거갑이보아연. 거갑전이귀연 연왕필희; 신전이귀어국 사민여견부모 교유양비이의어세 공업가명.

 

지금 장군이 요성의 지친 백성들을 이끌고 제나라 군을 막고 있으니 묵적이 (성을) 지킨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고 뼈를 땔감으로 쓰는데도 병사들이 배반할 마음이 없으니 이는 손빈(孫臏)의 군대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천하에 능력을 보여주었습니. 그렇지만 장군을 위해서 생각해본다면, 병력을 온전하게 해서 연나라에 보답하느니만 못합니다. 병력을 온전하게 해서 연나라로 돌아가면 연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도) 온전한 몸으로 돌아가면 백성들은 부모를 만난 듯 기뻐할 것이고, 친구들은 팔을 걷고 세상을 향해 칭찬할 것이니 공업이 환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上輔孤主以制群臣, 下養百姓以資説士, 矯國更俗, 功名可立也. 亡意亦捐燕棄世, 東遊於斉乎裂地定封, 富比乎陶, 世世稱孤, 與斉久存, 又一計也. 此両計者, 顕名厚実也, 願公詳計而審処一焉.

상보고주이제군신 하양백성이자세사 교국경속 공명가립야. 망의역손연기세 동유어제호? 열지정봉 부비호도 위 세세칭고 여제구존 우일계야. 차양계자 현명후실야 원송상계이심처일언.

 

위로는 고립된 군주를 도와 군신들을 단속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잘 살게 하여 유세가들에게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면 나라를 바로잡고 풍속을 바꾸어 공명을 세울 수 있습니다. 혹여 이럴 마음이 없다면 연을 떠나 세속을 버리고 동쪽 제로 놀러 오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땅을 떼어 봉지를 정해 줄 것이니 도(), ()와 같은 부를 누릴 수 있으며, 세세손손 존귀한 이름을 가지고 제와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계책이 될 것입니다. 이 두 계책은 이름을 알리고 실리를 챙기는 것이니 공께서는 잘 생각하셔서 하나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且吾聞之, 規小節者不能成栄名, 悪小恥者不能立大功. 昔者管夷吾射桓公中其鈎, 簒也遺公子糾不能死, 怯也束縛桎梏, 辱也.

차오문지 규소절자불능성영명 악소치자불능입대공. 석자관이오사한공중기구 찬야; 유공자규불능사 겁야 ; 동박질곡 욕야.

 

그리고 저는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명성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피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관이오(管夷吾, 관중)는 환공(桓公)을 활로 쏘아 허리띠 고리를 맞혔으니, 찬탈(簒奪)이었습니다. 공자 규()를 저버리고 그를 위해서 죽지 않은 것은 비겁한 행동이었으며, 오랏줄에 묶이고 손발에에 수갑과 차꼬를 찬 것은 치욕이었습니다.

 

若此三行者, 世主不臣而郷里不通. 郷使管子幽囚而不出, 身死而不反於斉, 則亦名不免為辱人賎行矣. 臧獲且羞與之同名矣, 況世俗乎!

약차삼행자 세주불신이향리불통. 향리관자유수이불출 신사이불반어제 즉역명불면위욕인천행의. 장획차수여지동명의 황세속호!

 

이런 세 가지 행동을 한 사람은 세상 군주들이 신하로 삼으려 하지 않으며, 마을 사람들도 사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관자(管子)가 옥에 갇혀 세상에 나오지 못했거나 죽어서 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그는 끝내 치욕스러운 오명을 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노비들도 그와 비교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텐데 하물며 보통 사람이 오죽하겠습니까?

 

故管子不恥身在縲紲之中而恥天下之不治, 不恥不死公子糾而恥威之不信於諸侯, 故兼三行之過而為五霸首, 名高天下而光燭鄰國.

고관자불치신재누세지중이치천하지불치 불치불사공자규이치위지불신어제후 고경삼행지과이위오패수 명고천하이광촉린국.

 

그러나 관자는 오랏줄에 묶여 갇혀 있는 것보다 천하를 바로잡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고, 공자 규를 위해서 죽지 않은 것보다 제나라가 제후들 사이에 위엄을 떨치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잘못을 다 범하고도 환공을 오패(五覇)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그 명성을 천하에 드높이고 그 빛이 이웃 나라를 비추게 된 것입니다.

 

曹子為魯將, 三戦三北, 而亡地五百里. 郷使曹子計不反顧, 議不還踵, 刎頚而死, 則亦名不免為敗軍禽將矣. 曹子棄三北之恥, 而退與魯君計. 桓公朝天下, 會諸侯, 曹子以一剣之任, 枝桓公之心於壇坫之上, 顔色不変, 辭気不悖.

조자위노장 삼전삼배 이망지오백리. 향리조자계불반고 의불환종 문경이사 즉역명불면위패군금장의. 조자기삼배지치 이퇴여노군계. 환공조천하 회제후 조자이일검지임 지환공지심어단점지상 한색불변 사기불발.

 

조자(曹子, 조말)는 노의 장군으로서 제와 세 번 싸워 세 번 다 패하여 노나라 땅을 500리나 잃었습니다. 그 때 조자가 돌이켜 생각하지 않고 계획없이 목을 찔러 죽었더라면 패장이라는 치욕스러운 오명을 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자는 세 번 패배의 치욕을 마음에 두지 않고 물러나와 노나라 군주와 계책을 세웠습니다. 제나라 환공이 천하 제후들과 회맹하는 틈에 조자는 오직 칼 한 자루로 단 위에서 환공의 심장을 겨누었는데, 안색은 변함이 없었고 언행 역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三戦之所亡一朝而複之, 天下震動, 諸侯驚駭, 威加呉. 若此二士者, 非不能成小廉而行小節也, 以為殺身亡軀, 絶世滅後, 功名不立, 非智也. 故去感忿之怨, 立終身之名棄忿悁之節, 定累世之功. 是以業與三王爭流, 而名與天壌相獘也. 願公択一而行之.

삼전지소망일조이복지 천하진동 제후경해 위가오 월. 약차이사자 비불능성소염이행소절야 이위살신망구 절세멸후 공명불립 비지야. 고거감분지원 입종신지명; 기분손지절 정루세지공. 시이업여삼왕쟁류 이명여천괴상폐야. 원공택일이행지.

 

그렇게 세 번에 걸쳐 잃은 것을 하루에 되찾으니 천하가 진동했고 제후들은 놀라니 그 위엄이 오, 월을 능가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소한 청렴과 절개를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죽어 집안과 자손을 끊고 공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내 울분과 한을 버리고 평생의 공명을 세웠고, 원망스러운 작은 절개를 버리고 대대로 전할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업적이 오래도록 전해져 삼왕과 견줄 수 있고, 그 이름은 천지와 함께 영원히 남게 된 것입니다. 공께서는 하나를 택하여 행하시길 바랍니다.’

 

燕將見魯連書, 泣三日, 猶予不能自決. 欲帰燕, 已有隙, 恐誅欲降斉, 所殺虜於斉甚衆, 恐已降而後見辱. 喟然歎曰:「與人刃我, 寧自刃.乃自殺. 聊城亂, 田単遂屠聊城. 帰而言魯連, 欲爵之. 魯連逃隠於海上, :「吾與富貴而詘於人, 寧貧賎而軽世肆志焉.

연장견노련서 읍삼일 유여불능자결. 욕귀연 이유극 공주 ;욕항제 소살노어제심중 공이항이후견욕. 위연탄왈 여인인아 영자인내자살. 요성란 전단수도요성, 귀이언노련 욕작지. 노련도은어해상 왈 오여부구이굴어인 영빈천이경세사지언

 

연의 장수는 노중련의 편지를 읽고는 사흘을 울면서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연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연왕과) 이미 사이가 벌어져 죽임을 당할까 겁이 났고, 제에 항복하자니 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포로로 잡았으니 항복한 뒤 치욕을 당할까 두려웠다. 이에 탄식하며 다른 사람에게 죽느니 차라리 내 스스로 죽으리라라 하고는 바로 자살했다. 요성은 혼란에 빠졌고, 전단은 마침내 요성을 도륙했다. 돌아와 노중련에 대해 말하여 벼슬을 내리고자 했다. 노중련은 도망쳐 바닷가에 숨으면서 내가 부귀한 몸으로 남에게 눌려 사느니 차라리 빈천하지만 세상을 가볍게 여기며 내 뜻대로 살겠다라고 했다.



<鄒陽>

 

鄒陽者, 斉人也. 遊於梁, 與故呉人荘忌夫子淮陰枚生之徒交. 上書而介於羊勝公孫詭之閒. 勝等嫉鄒陽, 悪之梁孝王. 孝王怒, 下之吏, 將欲殺之. 鄒陽客遊, 以讒見禽, 恐死而負累, 乃従獄中上書曰

추양자 제인야. 유어양 여고오인장기부자 회음매생지도교. 상서이개어양승 공손궤지간 승등질추양 오이양효왕. 효왕노 하지리 장욕살지. 추양객유 이참견금 공사이부루 내종옥중상서왈:

 

추양(鄒陽)은 제() 사람이다. 그는 양()을 떠돌면서 오() 사람 장기부자(莊忌夫子)와 회음(淮陰) 사람 매생(枚生)의 무리들과 사귀었다. 그가 (양 효왕에게) 글을 올려 양승(羊勝), 공손궤(公孫詭) 사이에 끼어들자 양승 등이 추양을 질투하여 양 효왕에게 나쁜 말을 했다. 효왕이 노하여 추양을 법관에게 넘겨 죽이려 했다. 추양은 객지 떠돌다가 모함받아 죽어서도 오명을 지고 갈까 두려워 옥중에서 이런 글을 써서 올렸다.

 

臣聞忠無不報, 信不見疑, 臣常以為然, 徒虛語耳. 昔者荊軻慕燕丹之義, 白虹貫日, 太子畏之衛先生為秦畫長平之事, 太白蝕昴, 而昭王疑之.

신문충무불보 신불견의 신상이위연 도허어이. 석자형가모얀간지의 백홍관왈 태자외지 위선생위진화장평지사 태백식묘 이소왕의지.

신은 충성된 사람은 보답을 받지 않은 경우가 없고, 진실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신이 언제나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그저 빈말일 뿐이었습니다. 옛날 형가(荊軻)는 연() 태자 단()의 의로움을 사모했는데, 흰무지개가 해를 뚫는 조짐이 있었지만 태자 단은 형가를 의심했습니다. 위선생(衛先生)은 진을 위하여 장평(長平)의 일을 계획했을 때 태백(太白)이 묘성(昴星)을 범하는 징조가 있었지만 소왕(昭王)은 그를 의심했습니다.

 

夫精変天地而信不喩両主, 豈不哀哉! 今臣盡忠竭誠, 畢議願知, 左右不明, 卒従吏訊, 為世所疑, 是使荊軻衛先生複起, 而燕秦不悟也. 願大王孰察之.

부정변천지이신불유영쥬 기불쇠재! 금신진충갈성 필의원지 좌우불명 졸종리심 위세소의 시사형가 위선생복기 이연 진불오야. 원대왕숙찰지.

 

무릇 정성이 천지를 변화시켰음에도 믿음이 두 군주를 깨우치지 못하게 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지금 신은 충성으로 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아뢰어 알아주시기를 바랐지만, (왕의) 좌우가 현명치 못해 오히려 옥리에게 심문을 당하고 세상에 의심을 받게 되었으니 형가와 위선생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연과 진은 그들의 참뜻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잘 살피시길 바라옵니다!

 

昔卞和獻寶, 楚王刖之李斯竭忠, 胡亥極刑. 是以箕子詳狂, 接輿辟世, 恐遭此患也. 願大王孰察卞和李斯之意, 而後楚王胡亥之聴, 無使臣為箕子接輿所笑. 臣聞比幹剖心, 子胥鴟夷, 臣始不信, 乃今知之. 願大王孰察, 少加憐焉.

석변화헌보 초왕월지; 이사갈충 호해극형. 시이기자상광 접여벽세 공조차완야. 원대왕숙찰변화 이시지의 이후초왕 호해지청 무사신위기자 접여소소. 신문비간부심 자서치리 신시불신 내금지지. 원대왕숙찰 소가련언.

 

예전에 변화(卞和)는 보옥을 바쳤음에도 초왕은 변화의 발을 잘랐습니다. 이사(李斯)는 충성을 다했지만, 호해(胡亥)는 그를 극형에 처했습니다. 기자(箕子)가 미친 척하고, 접여(接輿)가 세상을 피해 살았던 것도 다 이런 환난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변화와 이사의 참뜻을 깊이 살피셔서 앞으로는 초왕과 호해처럼 잘못된 참소를 받아들이는 일이 없고, 신이 기자와 접여에게 비웃음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또 신은 비간(比干)이 가슴을 찢기고, 오자서(伍子胥)가 말가죽에 담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깊이 살피셔서 신을 조금이라도 가련히 여겨주시길 바라옵니다!

 

諺曰:「有白頭如新, 傾蓋如故.何則知與不知也. 故昔樊於期逃秦之燕, 藉荊軻首以奉丹之事王奢去斉之魏, 臨城自剄以卻斉而存魏. 夫王奢樊於期非新於斉秦而故於燕魏也, 所以去二國死両君者, 行合於志而慕義無窮也.

언왈 유백두여신 경개여고하즉? 지여부지야. 고석번오기도진지연 적형가수이진단지사; 왕사거제지위 임성자경이각제이존위 부왕사 번어기비신어제 진이고어연 위야 소이거이국사영군자 행합지이모의무궁야.

 

속담에 백발이 되도록 알게 지냈으나 여전히 낮설고, 지나다 우산을 잠깐 기울였는데도 오래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알고 모르고의 차이 때문입니다. 옛날 번오기(樊於期)는 진()에서 연으로 도망쳐 있다가 형가에게 자신의 머리를 주어 연 태자 단()의 일을 받들게 했습니다. 왕사(王奢)는 제를 떠나 위로 도망을 갔다가 성에 올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제를 물리치고 위를 보존했습니다. 그들이 제와 진을 떠나 연과 위의 군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은, 군주들의 행위가 자신들의 뜻에 맞았고, 또 자신들의 의로움을 사모하는 군주들의 마음에 자극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是以蘇秦不信於天下, 而為燕尾生白圭戦亡六城, 為魏取中山. 何則誠有以相知也.

시이소진불신어천하 이위연미생; 백규전망육성 위위취중산. 하즉? 성유이상지야.

 

그리고 소진(蘇秦)은 세상에서 신임을 받지 못했지만 오직 연에게만은 미생(尾生)과 같은 신의를 지켰습니다. 백규(白圭)는 싸움에서 패배해 여섯 개의 성을 잃은 다음 위로 도망쳤다가 나중에 위를 위해 중산(中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군주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蘇秦相燕, 燕人悪之於王, 王按剣而怒, 食以駃騠白圭顕於中山, 中山人悪之魏文侯, 文侯投之以夜光之璧. 何則両主二臣, 剖心坼肝相信, 豈移於浮辭哉!

소진상연 연인악지어왕 왕안검이노 식이결제 ; 백구현어중산 중산인악지위문후 문후투지이야광지벽. 하즉? 양주이신 부심탁간상신 기이어부사재!

 

소진이 연의 재상이 되자 연 사람이 왕에게 그에 대한 나쁜 말을 했으나 왕은 칼을 만지며 소진을 비방한 자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진을 더욱 우대하며 자신의 결제(駃騠)를 잡아 그에게 먹였습니다. 백규가 중산에서 공을 세우자 누군가가 위 문후(文侯)에게 그를 비방했습니다. 문후는 오히려 밤에도 빛을 발하는 구슬을 백규에게 내렸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는 두 군주와 두 신하가 각각 마음을 열고 서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근거도 없는 말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겠습니까?

 

故女無美悪, 入宮見妒士無賢不肖, 入朝見嫉. 昔者司馬喜髕腳於宋, 卒相中山範睢摺脅折歯於魏, 卒為應侯. 此二人者, 皆信必然之畫, 捐朋黨之私, 挾孤獨之位, 故不能自免於嫉妒之人也.

고여무미악 입궁견투 ; 사무현불초 입조견질. 석자사마희빈각어송 졸상중산 ; 범수접협절치어위 졸위응후. 차이인자 개신필연지화 연붕당지사 협고독지위 고불능자면어질투지인야.

 

그러므로 여자는 잘 났든 아니든 궁중으로 들어가게 되면 질투를 받게 되고, 선비는 어질든 아니든 조정에 서게 되면 시기를 받기 마련입니다. 옛날 사마희(司馬喜)는 송에서 무릎을 베이는 형을 받았지만 훗날 중산(中山)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또 범수(范睢)는 위에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이가 부러졌으나 끝내 진에서 응후(應侯)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계획을 믿고서, 사사로이 패거리를 짓지 않고 홀로 처신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是以申徒狄自沈於河, 徐衍負石入海. 不容於世, 義不苟取, 比周於朝, 以移主上之心. 故百里奚乞食於路, 繆公委之以政甯戚飯牛車下, 而桓公任之以國. 此二人者, 豈借宦於朝, 仮譽於左右, 然後二主用之哉感於心, 合於行, 親於膠漆, 昆弟不能離, 豈惑於衆口哉故偏聴生姦, 獨任成亂.

시이신도적자치어하 서연부석입해. 불용어세 의불구취 비주어조 이이주상지심. 고백리해걸식어로 목공위지이정; 영척반우거하 이환공임지이국. 차이인자 기차환어조 가예어좌우 연후이주용지재? 감어심 합어행 친어교칠 곤제불능이 기감어중구재? 고편청생간 독임성란.

 

그래서 신도적(申徒狄)은 스스로 강물에 빠졌고, 서연(徐衍)은 돌을 지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도의상 구차하게 취하지 않았고 조정에서 당파를 지어 주상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백리해(百里奚)는 길에서 걸식을 하고 있었으나 목공(穆公)은 그에게 정사를 맡겼고, 영척(寧戚)은 수레 아래에서 밥 먹고 있었으나 환공(桓公)은 그에게 나라를 맡겼습니다. 이 두 사람이 조정의 관리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좌우의 칭송을 빌려서 목공과 환공에게 등용된 것입니까? 마음이 서로 함께 느끼고 행동이 일치하면, 아교나 옻칠한 것보다 더 친밀하며 사이좋은 형제처럼 되어 그들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런 저런 사람들의 말에 현혹될 리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한쪽 말만 들으면 간사한 일이 생기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난리가 납니다.

 

昔者魯聴季孫之説而逐孔子, 宋信子罕之計而囚墨翟. 夫以孔墨之辯, 不能自免於讒諛, 而二國以危. 何則衆口鑠金, 積毀銷骨也.

석자노청계손지설이축공자 송신자한지계이수묵적. 부공자 묵지변 불능자면어참유 이이국이위. 하즉? 중구삭금 적훼소골야.

 

옛날 노는 계손(季孫)의 말을 듣고 공자(孔子)를 내쫓았고, 송은 자한(子罕)의 꾐에 빠져 묵적(墨翟)을 가두었습니다. 공자와 묵적의 달변으로도 참소와 아첨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노와 송은 위태로왔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是以秦用戎人由餘而霸中國, 斉用越人蒙而彊威. 此二國, 豈拘於俗, 牽於世, 繋阿偏之辭哉公聴並観, 垂名當世. 故意合則胡越為昆弟, 由餘越人蒙是矣不合, 則骨肉出逐不収, 蔡是矣. 今人主誠能用斉秦之義, 後宋魯之聴, 則五伯不足稱, 三王易為也.

시이진용융인여이패중국 제용원인몽이강위 선. 차이국 기구어속 견어세 번아편지사재? 공청병관 수명당세. 고의합즉호월위곤제 유여 월인몽시의; 불합 즉골육출축불수 주 상 관 채시의. 금인주성능용제 진지의 후송 ㄴ지청 즉오백부족칭 삼왕이위야.

 

()은 오랑캐 유여(由余)를 등용해 중국을 제패했고, 제는 월() 사람인 몽()을 기용해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때 강해졌습니다. 이 두 나라가 세속에 얽매어 이끌리거나, 아첨과 한쪽에 치우친 말에 사로잡혔습니까? 공정하게 듣고 두루 살펴봄으로써 이름을 당세에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뜻만 맞으면 호()나 월()처럼 아주 먼 곳의 사람들과도 형제처럼 될 수 있으니, 유여나 몽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뜻이 맞지 않으면 골육(骨肉) 사이라도 내쫓고 쓰지 않습니다. (), (), ()과 채()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오늘날 백성의 주인된 사람이 참으로 제, 진과 같이 옳은 방법을 쓰고 송, 노처럼 잘못된 말은 듣지 않는다면, 오백(五伯)의 명성도 별달리 언급할 것이 없으며, 삼왕(三王)의 공업 또한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是以聖王覚寤, 捐子之之心, 而能不説於田常之賢封比幹之後, 修孕婦之墓, 故功業複就於天下. 何則欲善無厭也.

시이성왕각오 연자지지심 이능불설어전상지현; 봉비간지후 수잉부지묘 고공업복취어천하. 하즉? 욕선무염야.

 

그러므로 성군은 충성과 간사함을 잘 가려야 자지(子之)의 위선적인 마음을 내칠 수 있고, 전상(田常)의 잔재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 무왕은 충신 비간(比干)의 후예를 봉하고, 배를 찢겨 죽은 임신한 여인의 무덤을 손질해줌으로써 그 공업을 또다시 세워 천하에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이는 무왕이 좋은 일을 하는데 결코 싫증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夫晉文公親其讎, 彊霸諸侯斉桓公用其仇, 而一匡天下. 何則, 慈仁慇勤, 誠加於心, 不可以虛辭借也.

부진문공친기수 강패제후; 제환공유기구 이일광천하. 하즉 자인은근 성가어심 불가이허사차야.

 

또 진() 문공(文公)은 그의 원수와 친하게 지냄으로써 제후들의 패자(覇子)가 될 수 있었고, 제 환공은 자신의 원수를 등용해 천하를 바로잡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문공과 환공이 자애로움, 인자함, 친절함으로 진정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는 빈말로써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至夫秦用商鞅之法, 東弱韓, 兵彊天下, 而卒車裂之

지부진용상앙지법 동약한 위 병강천하 이졸거열지;

 

()은 상앙(商鞅)의 방법을 써서 동쪽으로 한()과 위()를 약하게 만들고, 병력이 천하 제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상앙을 거열형(車裂刑)에 처했습니다.

 

越用大夫種之謀, 禽勁呉, 霸中國, 而卒誅其身. 是以孫叔敖三去相而不悔, 於陵子仲辭三公為人潅園.

월용대부종지모 금경오 패중국 이졸주기신. 시이손숙오삼거상이불회 어릉자중사삼공위인관원.

또 월은 대부 종()의 모략을 이용해 오를 벌하고 중국의 패자가 되었으나, 결국은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랬기 때문에 손숙오(孫叔敖)는 세 번이나 해임되었어도 낙담하지 않았던 것이고, 오릉(於陵)의 자중(子仲) 역시 삼공(三公) 직책을 사양하고 정원에 물 대주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今人主誠能去驕傲之心, 懐可報之意, 披心腹, 見情素, 墮肝膽, 施徳厚, 終與之窮達, 無愛於士, 則桀之狗可使吠尭, 而蹠之客可使刺由況因萬乗之権, 仮聖王之資乎然則荊軻之湛七族, 要離之焼妻子, 豈足道哉!

금인주성능거교오지심 히가보지의 피심복 견정소 타간담 시덕후 종여지궁달 무애어사 즉걸지구가사폐요 이척지객가사자유; 황인만승지권 가성왕지자호? 연즉형가지심칠족 요리이소처자 기족도재!

 

지금 군주가 진실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보답할 뜻을 품고 속마음을 꺼내 참된 마음을 보여주며, 간담(肝膽)을 털어 덕을 두터이 베풀고 기쁨과 어려움을 선비와 함께 하고 선비에게 인색하게 굴지 않으면, 포악한 걸왕(桀王)의 개라도 요 임금에게 짖어대게 할 수 있고, 도척(盜跖)의 식객들에게 허유(許由)를 찔러 죽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만승(萬乘)의 권세를 잡고 성왕의 자질을 갖추신 분의 명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형가(荊軻)가 칠족(七族)을 재난에 빠뜨린 일이나, 요리(要離)가 처자식을 불에 타 죽게 만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臣聞明月之珠, 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剣相眄者. 何則無因而至前也. 蟠木根柢, 輪囷離詭, 而為萬乗器者. 何則以左右先為之容也. 故無因至前, 雖出隨侯之珠, 夜光之璧, 猶結怨而不見徳. 故有人先談, 則以枯木朽株樹功而不忘.

신문명월지주 야광지벽 이암투인어도로 인무불안검상면자. 하즉? 무인이지전야. 반목근저 륜균이궤 이위만승기자. 하즉? 이좌우선위지용야. 고무인지전 수출수후지주 야광지벽 유결원이불견덕. 고유인선담 즉이고목교주수공이불망.

 

신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을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는 아무 이유 없이 보물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이상하게 꼬인 나무뿌리일지라도 임금의 그릇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는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그 생김새를 꾸미기 때문이다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이유 없이 눈앞에 나타나면, 아무리 수후주(隨侯珠)나 야광벽이라고 해도 원한만 맺게 될 뿐 고맙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미리 이야기를 해두게 되면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일지라도 공을 세워 잊히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今夫天下布衣窮居之士, 身在貧賎, 雖蒙尭舜之術, 挾伊管之辯, 懐竜逢比幹之意, 欲盡忠當世之君, 而素無根柢之容, 雖竭精思, 欲開忠信, 輔人主之治, 則人主必有按剣相眄之跡, 是使布衣不得為枯木朽株之資也.

금부천하포의궁거지사 신재빈천 수몽요 순지술 협이 관지변 회용봉 비간지의 욕진충당세지군 이소무근저지용 수갈정사 욕개충신 보인주지치 즉인주핑유안검상면지적 시사포의불득위고모교주지자야.

 

오늘날 지위도 벼슬도 없는 곤궁한 선비들은 빈천한 처지에 있습니다. 때문에 설령 요, 순의 통치술을 이해하고, 이윤(伊尹)이나 관중(管仲)과 같은 말재주를 지니고, 용봉(龍逢)과 비간(比干)과 같은 충성심을 지니고서 당대의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싶어 해도 나무뿌리를 다듬어 바치듯이 천거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마음과 생각을 다해서 충성과 진실을 보여 군주의 정사를 보좌하고 싶어도, 군주는 구슬을 던진 사람을 대하듯이 칼을 잡고 노려봅니다. 그래서 벼슬 없는 선비를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의 쓰임만도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是以聖王制世禦俗, 獨化於陶鈞之上, 而不牽於卑亂之語, 不奪於衆多之口. 故秦皇帝任中庶子蒙嘉之言, 以信荊軻之説, 而匕首竊発

시이성왕제세어속 독화어도균지상 이불견어비란지어 불사어둥다지구. 고진뢍제임중서자몽가지언 이신령가지설 이화구절발;

 

어진 군주가 세상을 통제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데에는, 도공이 물레 위에서 그릇을 만들 듯이 자기만의 교화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박하고 혼란한 말에 이끌리거나 뭇 사람들의 근거 없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진시황은 중서자(中庶子) 몽가(蒙嘉)의 말만 듣고 형가(荊軻)의 감언이설을 믿었다가 몰래 감추어둔 비수에 찔릴 뻔했습니다.

 

周文王猟涇, 載呂尚而帰, 以王天下. 故秦信左右而殺, 周用烏集而王.49) 何則以其能越攣拘之語, 馳域外之議, 獨観於昭曠之道也.

주문왕렵경 위 재여상이귀 이왕천하. 고진신좌우이살 주용조집이왕 하즉? 이기능월연구지어 치역외지의 독관어소광지도야.

 

이와 달리 주 문왕은 경수(涇水)와 위수(渭水) 가에서 사냥을 하다가 여상(呂尙)을 수레에 싣고 돌아와 그의 도움으로 천하의 왕이 되었습니다. 진시황은 좌우의 말을 듣다가 살해당할 뻔했고, 주 문왕은 까마귀가 한데 모여 앉듯이 우연히 여상을 만나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주 문왕은 속박하는 말 따위를 초월하고 어느 하나에 국한되지 않은 의견에 마음을 쏟아, 밝고 넓은 길을 홀로 살폈기 때문입니다.

 

今人主沈於諂諛之辭, 牽於帷裳之制, 使不羈之士與牛驥同皁, 此鮑焦所以忿於世而不留富貴之樂也.

금인주침어첨유지사 견어유상지제 사불기지사우기동조 차포초이분어세이불유부귀지락야.

 

그런데 오늘날 세상의 군주는 아첨하는 말에 빠지고, 애첩들에게 매여 뛰어난 선비들을 우대하지 않는 것이 소와 천리마에게 같은 사료를 먹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초(鮑焦)가 세상을 분개해하며 부귀의 즐거움에 마음을 두지 않은 까닭인 것입니다.

 

臣聞盛飾入朝者不以利汚義, 砥厲名號者不以欲傷行.

신문성식입조자불이리오의 지여명호자불이욕상행.

 

신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조정에 들어온 사람은 이익을 위해서 의로움을 더럽히지 않으며, 명성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사람은 욕심 때문에 행실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들었습니다.

 

 

 

故県名勝母而曾子不入, 邑號朝歌而墨子回車. 今欲使天下寥廓之士, 摂於威重之権, 主於位勢之貴, 故回面汚行以事諂諛之人而求親近於左右, 則士伏死堀穴巌藪之中耳, 安肯有盡忠信而趨闕下者哉!

고현명승모이증자불입 읍호조가이묵자회거. 금욕사천하요량지사 섭어위중지권 주어위세지귀 고회면오행이사첨유지지인이구친근어좌우 즉사복사굴형암수지중이 안긍유진충신이추궐하자재!

 

그러므로 증자(曾子)승모(勝母)’라는 이름의 고을에 들어서지 않았으며, 묵자(墨子)조가(朝歌)’라는 이름의 마을에서 수레를 되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지사들을권위와 막중한 권력으로 두려움에 떨게 하며 휘두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주들은 더러운 행실과 아첨을 좋아하는 선비들을 가까이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뜻있는 선비들은 바위 동굴 속에서 늙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어찌 자신의 충성심과 신의를 다해서 왕을 따르려고 하겠습니까?”

 

書奏梁孝王, 孝王使人出之, 卒為上客.

서진양효왕 효왕사인출지 졸위상객

 

이 글이 양 효왕에게 올라가자, 효왕은 사람을 보내 추양을 풀어준 후 마침내 그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魯連其指意雖不合大義, 然餘多其在布衣之位, 蕩然肆志, 不詘於諸侯, 談説於當世, 折卿相之権.

태사공왈 : 노연기지의수불합대의 연여다기재포의지위 탕연사지 불굴어제후 담설어당세 절경상지권.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노중련(魯仲連)이 지향하는 뜻이 대의(大義)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벼슬도 지위도 없는 그가 호탕하게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쳐 제후들에게 굽히는 일 없이 당대에 자신의 언변을 드날리며 고관들의 권력을 꺾은 일은 칭찬할 만하다.

 

鄒陽辭雖不遜, 然其比物連類, 有足悲者, 亦可謂抗直不橈矣, 吾是以附之列傳焉.

추양사수불곤 연기비물연유 유족비자 역가위항직불뇨의 오시이부지열전언.

 

추양(鄒陽)은 말은 공손하지 못했지만 비슷한 사물을 폭넓게 끌어다가 자신의 뜻을 비유, 설명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 그 또한 불굴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때문에 나는 그를 열전(列傳) 에 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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