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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列傳-刺客列傳


[曹沫]

 

曹沫者, 魯人也, 以勇力事魯荘公. 荘公好力. 曹沫為魯將, 與斉戦, 三敗北. 魯荘公懼, 乃獻遂邑之地以和. 猶複以為將.

조말자 노인야 이용력사노장공. 장공호력. 조말위노장 여제전 삼패배. 노장공구 내헌수읍지지이화. 유복이위장.

 

조말(曹沫)은 노()나라 사람으로 용기와 힘으로 노 장공(莊公)을 섬겼다. 장공은 힘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조말은 노나라의 장수가 되어 제()나라와 싸워 세 번이나 패배했다. 노 장공은 두려워서 수읍(遂邑)의 땅을 바치고 화친을 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말을) 다시 장수로 삼았다.

 

斉桓公許與魯會於柯而盟. 桓公與荘公既盟於壇上, 曹沫執匕首劫斉桓公, 桓公左右莫敢動, 而問曰:「子將何欲?」曹沫曰:「斉強魯弱, 而大國侵魯亦甚矣. 今魯城壊即圧斉境, 君其図之.

제환공허여노회어가이맹. 환공여장공기먕어단상 조말집비수겁제환공 환공좌우막감동 이문왈 자장하욕?’ 조말왈 제강노약 이대국침노역심의. 금노성괴즉압제경 군기도지

 

제 환공(桓公)이 노나라와 가()에서 모여 회맹할 것을 허락했다. 환공과 장공이 이미 단상에서 맹약을 맺었는데, 조말이 비수를 잡고 제 환공을 위협했다. 환공 좌우의 사람들은 감히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조말은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한데 큰 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너무 심합니다. 지금 노나라의 성이 무너져 제나라의 국경을 덮칠 판이니 군께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라고 했다.

 

桓公乃許盡帰魯之侵地. 既已言, 曹沫投其匕首, 下壇, 北面就群臣之位, 顔色不変, 辭令如故.

환공내허진귀노지침지. 기이언 조말투기비수 하단 북면취군신지위 안색불변 사영여공.

 

환공이 이에 노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줄 것을 허락했다. 말이 끝나자 조말은 비수를 던지고 단을 내려와 군신의 위치로 돌아갔지만 안색은 변함이 없었고 응대하는 말도 전과 같았다.

 

桓公怒, 欲倍其約. 管仲曰:「不可. 夫貪小利以自快, 棄信於諸侯, 失天下之援, 不如與之.於是桓公乃遂割魯侵地, 曹沫三戦所亡地盡複予魯.

환공노 욕배기약. 관중왈 불가. 부탐소리이자결 기신어제후 실천하지원 불여여지어시환공내수할노침지 조말삼전소망지진복여노.

 

환공은 화가 나서 그 약속을 어기려 했다. 관중이 안 됩니다. 무릇 작은 이익을 탐하고 스스로 좋아한다면 제후들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고 천하의 도움을 잃게 되니 돌려주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환공이 노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니, 조말이 세 번 싸워 잃었던 땅은 모두 노나라로 회복되었다.

 

 

[專諸]

 

其後百六十有七年而呉有専諸之事.

기후백육십유칠년이오유전제지사.

 

그로부터 167년 뒤 오()나라에서 전제(專諸)의 사건이 있었다.

 

専諸者, 呉堂邑人也. 伍子胥之亡楚而如呉也, 知専諸之能. 伍子胥既見呉王僚, 説以伐楚之利.

전제자 오당읍인야. 오자서지망초이여오야 지전제지능. 오자서기현오왕료 세이벌초지리.

 

전제는 오나라의 당읍(堂邑) 사람이다. 오자서(伍子胥)가 초()나라에서 도망쳐 오나라로 가서 전제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 오자서는 오왕 요()를 만나서 초나라를 토벌하면 이로운 점에 대해 말했다.

 

呉公子光曰:「彼伍員父兄皆死於楚而員言伐楚, 欲自為報私讎也, 非能為呉.

오공자광왈 피오원부형개사어초이원언벌초 욕자위보사수야 비능위오

 

오 공자 광()저 오원의 아버지와 형은 모두 초나라에서 죽었습니다. 오원(伍員, 오자서)이 초나라를 치자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서이지 오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呉王乃止. 伍子胥知公子光之欲殺呉王僚, 乃曰:「彼光將有內志, 未可説以外事.乃進専諸於公子光.

오왕내지. 오자서지오공자광지욕살오왕료 내왈 피광장유내지 미가세이외사내진전제어공자광.

 

오왕이 이에 (초나라를 토벌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오왕 요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저 광이 나라 안의 일에 뜻을 두고 있으니 나라 밖의 일은 말해서는 안 되겠구나!’라고 여기고 이에 전제를 공자 광에게 추천했다.

 

光之父曰呉王諸樊. 諸樊弟三人次曰餘祭, 次曰夷眛, 次曰季子劄. 諸樊知季子劄賢而不立太子, 以次傳三弟, 欲卒致國於季子劄. 諸樊既死, 傳餘祭. 餘祭死, 傳夷眛. 夷眛死, 當傳季子劄季子劄逃不肯立, 呉人乃立夷眛之子僚為王.

광지부왈오자제번. 제번제삼인; 차왈여제 차왈이매 차왈계자찰. 제번지계자찰현이불립태자 이차전삼제 욕졸치국어계자찰. 제번기사 전여제. 여제사 전이매. 이매사 당전계자찰; 개자찰도불긍립 오인내입이미지자요위왕.

 

공자 광의 아버지는 오왕 제번(諸樊)이다. 제번에게는 아우가 셋이 있었는데, 바로 밑의 아우는 여제(餘祭)이고, 그 다음은 이매(夷眛)이며, 끝의 아우는 계자찰(季子札)이다. 제번은 계자찰이 현명한 것을 알았지만 태자로 세우지 않았다. 이는 왕위를 차례대로 세 아우에게 전해, 결국에는 계자찰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번이 죽자 여제에게 왕위를 전했고, 여제가 죽은 뒤에는 이매에게 전했다. 이매가 죽자 응당 계자찰이 이어받아야 했으나, 계자찰이 달아나 즉위하려고 하지 않으니, 오나라 사람들은 결국 이매의 아들 요()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公子光曰:「使以兄弟次邪, 季子當立必以子乎, 則光真適嗣, 當立.故嘗陰養謀臣以求立.

공자광왈 사이형제차아 계자당립; 필이자호 즉광진적사 당립고상음양모신이구립.

 

공자 광이 말하기를 만일 형제의 순서대로 한다면 계자찰이 응당 즉위해야 하며, 만일 아들로서 한다면 내가 진정한 적사(適嗣, 정실 소생의 맏아들)이니, 당연히 임금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일찍부터 은밀하게 지모가 뛰어난 신하를 길러, 자기가 임금이 되는 길을 찾았다.

 

光既得専諸, 善客待之. 九年而楚平王死. , 呉王僚欲因楚喪, 使其二弟公子蓋餘屬庸將兵囲楚之灊使延陵季子於晉, 以観諸侯之変. 楚発兵絶呉將蓋餘屬庸路, 呉兵不得還.

광기득전제 선객대지. 구년이초평원사. 춘 오왕요욕인초상 사기인제공자개여 촉용장병위초지잠; 사연릉계자어진 이관제후지변. 초발병절오장개여 촉용로 오병부득환.

 

광은 전제를 얻고 나서, 그를 빈객(賓客)으로 잘 대우했다. 오왕 요 9년에 초 평왕(楚平王)이 죽었다. 그해 봄에 오왕 요가 초나라의 국상(國喪)을 틈타 그의 두 아우인 공자 개여(蓋餘)와 촉용(屬庸)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초나라 잠()을 포위하게 했다. 그리고 연릉(延陵)의 계자를 진()나라에 보내서 제후들의 상황을 살피게 했다. 초나라가 군대를 출동시켜 오 장군 개여와 촉용의 퇴로를 차단하자 오나라 군대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於是公子光謂専諸曰:「此時不可失, 不求何獲! 且光真王嗣, 當立, 季子雖來, 不吾廃也.

어시공자광위전제왈; ‘차시불가실 불구하획! 차광진왕사 당립 계자수래 불오폐야

 

이에 공자 광이 전제에게 말했다. ‘이때를 놓쳐서는 아니 되오. 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소! 게다가 나는 진정한 왕의 후계자이니 마땅히 왕위에 서야 하오, 설사 계자찰가 오더라도 나를 폐하지는 못할 것이오.’

 

専諸曰:「王僚可殺也. 母老子弱, 而両弟將兵伐楚, 楚絶其後. 方今呉外困於楚, 而內空無骨鯁之臣, 是無如我何.

전제왈 왕요가살야. 모노자약 이양제장병벌초 초절기후. 방금오외곤어초 이내공무골경지신 시무여아하

 

전제가 말하기를 왕 요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늙었고 아들은 어립니다. 또한 두 아우가 군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치러 갔는데, 초나라가 그들이 돌아올 길을 끊어버렸습니다. 지금 오나라는 밖으로는 초나라에게 곤란을 당하고, 안으로는 정직하고 강건한 신하가 전혀 없으니 우리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公子光頓首曰:「光之身, 子之身也.

공자광돈수왈 광지신 자지신야

 

공자 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몸이 그대의 몸이오=한 몸이오.’라고 말했다.

 

四月丙子, 光伏甲士於窟室中, 而具酒請王僚. 王僚使兵陳自宮至光之家.

사월병자 광복갑사어굴실중 이구주청왕요. 왕요사병진자궁지광지가.

 

4월 병자일(丙子日), 광이 지하실에 무장한 병사를 숨겨두고 술자리를 마련해 왕 요를 초청했다. 왕 요는 병사들에게 왕궁으로부터 광의 집까지 진을 치게 했다.

 

門戸階陛左右, 皆王僚之親戚也. 夾立侍, 皆持長鈹. 酒既酣, 公子光詳為足疾, 入窟室中, 使専諸置匕首魚炙之腹中而進之. 既至王前, 専諸擘魚, 因以匕首刺王僚, 王僚立死.

문호개폐좌우 개왕요지친척야.협립시 개지장피. 주기감 공자광상위족질 입굴실중 사전제치비수어구지복중이진지. 기지왕전 전제벽어 인이비수자왕요 왕요입사.

 

문과 계단 좌우에는 모두 왕 요의 친척이었다. 도로 양쪽을 따라 서서 모시고 있었는데, 모두 긴 칼을 지니고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공자 광은 발이 아프다고 말하고, 지하실로 들어가서 전제에게 뱃속에 비수가 들어있는 구운 물고기를 올리게 했다. 왕 앞에 이른 전제가 물고기를 가르고 비수로 왕 요를 찌르자 왕 요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左右亦殺専諸, 王人擾亂. 公子光出其伏甲以攻王僚之徒, 盡滅之, 遂自立為王, 是為闔閭. 闔閭乃封専諸之子以為上卿.

죄우역살전제 왕이요란. 공자광출기복갑이정왕요지도 진멸지 수자립위왕 시위합려. 합려내봉전제지자이위상경.

 

좌우에 있던 사람들 역시 전제를 죽였다. 왕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공자 광은 매복시켰던 무사들을 나오게 해 왕 요의 무리를 공격하여 모두 없앤 뒤, 마침내 스스로 즉위해 왕이 되니, 그가 바로 합려(闔閭)이다. 합려는 전제의 아들을 봉해 상경(上卿)으로 삼았다.

 

其後七十餘年而晉有予譲之事.

기수칠십여년진유여양지사.

 

그로부터 70여 년 뒤 진()나라에서 예양(豫讓)의 사건이 발생했다.

 

 

[予譲]

 

 

其後七十餘年而晉有予譲之事.

기후칠십여년이진유예양지사.

 

70년 후 진나라에선 예양 사건이 있었다.

 

予譲者, 晉人也, 故嘗事範氏及中行氏, 而無所知名.

예양자 진인야. 고상사범씨급중행씨 이무소지명.

 

예양은 진()나라 사람으로, 일찌기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겼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去而事智伯, 智伯甚尊寵之. 及智伯伐趙襄子, 趙襄子與韓魏合謀滅智伯, 滅智伯之後而三分其地. 趙襄子最怨智伯, 漆其頭以為飲器.

거이사지백 지백심존총지. 급지백벌조양자 조양자여한 위합모묠지백 멸지백지후이삼분기지. 조양자최원지백 칠기두이위음기.

 

그들을 떠나서 지백(智伯)을 섬겼는데, 지백은 예양을 매우 존중하고 총애했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치자, 조양자는 한씨(韓氏위씨(魏氏)와 공모해 지백을 없애고, 지백을 없앤 뒤에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조양자는 지백을 가장 원망해, 그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사용했다.

 

予譲遁逃山中, :「嗟乎! 士為知己者死, 女為説己者容. 今智伯知我, 我必為報讎而死,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乃変名姓為刑人, 入宮塗廁, 中挾匕首, 欲以刺襄子.

예양순도산중 왈 오호 사위지기자사 여위설기자용. 금지백지아 아필위보수이사 이보지백 즉오혼백불괴의금변명성위형인 입궁도측 중협비수욕이자양자.

 

예양이 산 속으로 숨으며 말하기를 아아!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단장한다고 했다. 이제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반드시 원수를 갚고 죽어 지백에게 보답한다면, 내 혼백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성명을 바꾸고 죄수가 되어 조양자의 궁에 들어가 뒷간의 벽을 발랐는데, 몸속에 비수를 품고 기회를 틈타 자양을 찔러 죽이려 했다.

 

襄子如廁, 心動, 執問塗廁之刑人, 則予譲, 內持刀兵, :「欲為智伯報仇!左右欲誅之. 襄子曰:「彼義人也, 吾謹避之耳. 且智伯亡無後, 而其臣欲為報仇, 此天下之賢人也.卒醳去之.

양자여측 심동 집문도측지형인 즉예양 내지도병 왈 욕위지백보구좌우욕주지. 양자왈 피의인야 오근피지이 차지백망무후 이기신욕위보구 차천하지현인야졸석거지.

 

양자가 뒷간에 갔다가 마음에 놀라는 바가 있어 뒷간의 벽을 바르는 죄수를 잡아다 심문하니, 바로 예양으로 몸속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예양이 말하기를 지백을 위해서 원수를 갚으려 했다!‘라고 하니,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양자가 말하기를 저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다. 단지 내가 그를 삼가고 피하면 된다. 게다가 지백이 죽고 후사가 없는데, 그의 가신(家臣)이 원수를 갚으려 하니, 이 사람이 천하의 현인이로다.’라고 하고, 마침내 그를 풀어주었다.

 

居頃之, 予譲又漆身為厲, 呑炭為唖, 使形狀不可知, 行乞於市. 其妻不識也. 行見其友, 其友識之, :「汝非予譲邪?」:「我是也.

거경지 예양우필신위나 탄회위아 사형상불가지 행걸어시. 기처불식야. 행견기우 기우식지 왈 여비예양야?’ 아시의

 

얼마 뒤 예양은 또 몸에다 옻칠해 문둥이처럼 꾸미고, 숯을 삼켜 목을 쉬게 해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한 뒤 저자에 가서 구걸을 했다. 그의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벗을 만나보니 그의 벗은 그를 알아보고 말하기를 자네는 예양이 아닌가?’라고 하자, 예양이 말하기를 나 맞네.’라고 했다.

 

其友為泣曰:「以子之才, 委質而臣事襄子, 襄子必近幸子. 近幸子, 乃為所欲, 顧不易邪何乃殘身苦形, 欲以求報襄子, 不亦難乎!

기우위읍왈 이자지재 위질이신사양자 양자필근행자. 근행자 내위소욕 고불이야? 하내잔신ㄱ고형 욕이구보양자 불역난호!’

 

그의 벗이 울면서 말하기를 자네의 재능으로 몸을 내맡겨 신하로 양자를 섬긴다면, 양자는 반드시 자네를 가까이하고 총애할 것일세. 가까이하고 총애하는 신하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오히려 쉽지 않겠는가? 왜 자기 몸을 해치고 몸에 고통을 주면서 양자에게 보복하려고 하는가? 왜 어려운 길을 걷는가!’라고 했다.

 

予譲曰:「既已委質臣事人, 而求殺之, 是懐二心以事其君也. 且吾所為者極難耳! 然所以為此者, 將以愧天下後世之為人臣懐二心以事其君者也.

예양왈 기이위질신사인 이구살지 시회이심이사기군야. 차오소위자극난이! 연소이위차자 장이괴천하후세지인회이심이사기군자야

 

그러자 예양이 말했다. ‘기왕 몸을 의탁하여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를 죽이려 한다면, 이는 두 마음을 품고서 군주를 섬기는 짓이네. 또한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바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네. 그러나 이를 하는 까닭은 장차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군주를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부끄럼을 알게 하려는 것일세.’

 

既去, 頃之, 襄子當出, 予譲伏於所當過之橋下. 襄子至橋, 馬驚, 襄子曰:「此必是予譲也.使人問之, 果予譲也.

기거 경지 양자당출 예양복어소당과지교하. 양자지교 마경 양자왈 차필시예양야사인문지 과예양야.

 

얼마 뒤 양자가 외출하려고 할 때, 예양은 양자가 지나가려는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을 놀래켜 떨어뜨리려 했다. 양자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예양일 것이다.’라고 하고는, 사람을 시켜 심문하니 과연 예양이었다.

 

於是襄子乃數予譲曰:「子不嘗事範中行氏乎智伯盡滅之, 而子不為報讎, 而反委質臣於智伯. 智伯亦已死矣, 而子獨何以為之報讎之深也?」予譲曰:「臣事範中行氏, 中行氏皆衆人遇我, 我故衆人報之. 至於智伯, 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

어시양자내수예양왈 자불상사범 중행씨호? 지백진멸지 이자불위보구 이반위질신어지백. 지백역이사의 이자독하이위지보수지심야?’ 예양왈 신사범 중행씨 범 중행씨개중인우아 아고중인보지. 지어지백 국사우아 아고국사보지

 

이에 양자가 예양을 꾸짖어 말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는가? 지백이 그들을 모두 없앴는데, 그대는 복수는 하지 않고, 도리어 예물을 바쳐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지백도 이미 죽었는데, 그대 홀로 어찌 그를 위해서 단단히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인가?’ 예양이 말했다. ‘신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으나,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했기에, 저 또한 보통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보답했을 뿐입니다. 지백에 대해 말하자면 저를 국사(國士)로 대우했기에, 저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襄子喟然歎息而泣曰:「嗟乎予子! 子之為智伯, 名既成矣, 而寡人赦子, 亦已足矣. 子其自為計, 寡人不複釈子!使兵囲之.

양자위연탄식이음왈 차호예자 자지위지백 명기성의 이과인사자 역이볻의. 자기자위계 관인보복석자!’ 사병위지.

 

양자가 탄식하고 울면서 말했다. ‘, 예자(豫子)! 그대가 지백을 위했다는 명예는 이미 이루어졌고, 과인(寡人)이 그대를 용서한 것도 이미 충분하다. 그대가 스스로 헤아려 보라. 과인은 다시 그대를 풀어주지 않으리라!’라고 하고는 병사들에게 그를 포위하게 했다.

 

予譲曰:「臣聞明主不掩人之美, 而忠臣有死名之義. 前君已寛赦臣, 天下莫不稱君之賢. 今日之事, 臣固伏誅, 然願請君之衣而撃之, 焉以致報讎之意, 則雖死不恨. 非所敢望也, 敢布腹心!

예양왈 신문명주불엄인지미 이충신유사명지의. 전군이관사신 천라막불칭군지현. 금일지사 신고복주 연원청군지의이격지 언이치보수지의 즉수사불한 비소감망야 감포복심!’

 

예양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 현명한 군주는 남의 아름다움을 덮어 가리지 아니하고, 충신은 명예를 위해 죽을 의리가 있다.”라고 합니다. 이전에 군주께서 이미 신을 너그럽게 용서하셨기에 천하에 군주의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의 일은 신이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원컨대 군주의 옷을 청해 그것을 쳐서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신다면, 비록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오나, 감히 진심을 털어놓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於是襄子大義之, 乃使使持衣與予譲. 予譲抜剣三躍而撃之, :「吾可以下報智伯矣!遂伏剣自殺. 死之日, 趙國志士聞之, 皆為涕泣.

어시양자대의지 내사사지의여예양. 예양발검삼요이격지 왈 오가이불보지백의!’ 수복검자살. 사지일 조국지사문지 개위체읍.


이에 양자는 그가 대의를 아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이윽고 사람을 보내 옷을 가져다 예양에게 주도록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들고 세 번을 뛰어 그 옷을 치면서 내가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말하고, 드디어 칼에 엎어져 자결했다. 그가 죽던 날, ()나라의 지사(志士)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聶政]

 

其後四十餘年而軹有聶政之事.

기후사십여년이지유섭정지사.

 

그로부터 40여 년 뒤 지()나라 땅에서 섭정(聶政)의 사례가 있었다.

 

聶政者, 軹深井里人也. 殺人避仇, 與母姊如斉, 以屠為事.

섭정자 지심정리인야. 살인피구 여모 자여제 이도위사.

 

섭정은 지나라 땅의 심정리(深井里) 사람이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원수를 피해서,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제()나라로 가서, 가축 잡는 일을 하였다.

 

久之, 濮陽厳仲子事韓哀侯, 與韓相俠累有卻. 厳仲子恐誅, 亡去, 遊求人可以報俠累者.

구지 복양엄중사사한애후 여한상협루유각. 엄중자공주 망거 유구인가이보협루자.

 

오랜 세월이 지났다. 복양(濮陽)의 엄중자(嚴仲子)가 한나라 애후(哀侯)를 섬겼는데, 그는 한()의 재상 협루(俠累)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엄중자는 죽음이 두려워 그곳에서 도망가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협루에게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구했다.

 

至斉, 斉人或言聶政勇敢士也, 避仇隠於屠者之閒. 厳仲子至門請, 數反, 然後具酒自暢聶政母前. 酒酣, 厳仲子奉黃金百溢, 前為聶政母壽. 聶政驚怪其厚, 固謝厳仲子. 厳仲子固進, 而聶政謝曰:「臣幸有老母, 家貧, 客遊以為狗屠, 可以旦夕得甘毳以養親. 親供養備, 不敢當仲子之賜.

지제 제인혹언섭정용감사야 피구은어도자지간. 엄중자지믄청수반 연후구주자창섭정모전, 주감 엄중자봉황금백일 전위섭정모수, 섭정경괴기후 고사엄중자. 엄중자고진 이섭정사왈 신행유노노 가빈 객유이위구도 가이단석득감취이양친. 친공양비 불가당중자지사

 

()에 이르자, 어떤 제 사람이 말하기를 섭정이라는 용감한 사나이가 있는데, 원수를 피해서 백정들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엄중자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 만나기를 청했다. 이를 자주 반복한 뒤에 술자리를 마련해 손수 섭정의 어머니 앞에서 술잔을 올렸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엄중자는 황금 100()을 들고 앞으로 가서 섭정 어머니의 장수를 축원했다. 섭정은 후한 예물에 놀라며 이상하게 여기고 굳이 사양했다. 엄중자가 억지로 주려고 하자, 섭정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신에게는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시고, 집이 가난하지만, 객지를 떠돌며 개백정 노릇을 해,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 봉양할 음식이 마련되었으니, 당신이 주는 예물을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厳仲子辟人, 因為聶政言曰:「臣有仇, 而行遊諸侯衆矣然至斉, 竊聞足下義甚高, 故進百金者, 將用為大人麤糲之費, 得以交足下之驩, 豈敢以有求望邪!聶政曰:「臣所以降志辱身居市井屠者, 徒幸以養老母老母在, 政身未敢以許人也.

엄중자피인 인위섭정언왈 신유구 이행유제후중의: 연지제 절문족하의심고 고진백금자 장용위대인추려지비 득이교족하지환 이감이유구망야?’ 섭정왈 신소이항지욕신거시정도자 도행이양노모; 노모재 정신미감이허인야

 

엄중자가 사람을 피해 섭정에게 말했다. ‘내게 원수가 있어, 여러 제후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제에 와서 당신의 의기(義氣)가 매우 높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황금 100일을 드려 어머니의 변변치 않은 음식비용에나 쓰게 해서 당신과 친교를 맺자는 뜻이었지, 어찌 감히 다른 바람이 있어서 그랬겠습니까?’ 그러자 섭정이 말하기를 제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해 시정(市井)에서 백정 노릇을 하는 까닭은 단지 늙은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입니다. 노모가 세상에 계신 동안에는 제 몸을 남에게 감히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厳仲子固譲, 聶政竟不肯受也. 然厳仲子卒備賓主之禮而去.

엄중자고양 섭정경불긍수야. 연엄중자졸비빈주지례이거.

 

엄중자가 굳이 권해도, 섭정은 끝내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중자는 끝까지 빈객과 주인의 예를 다하고 떠났다.

 

久之, 聶政母死. 既已葬, 除服, 聶政曰:「嗟乎! 政乃市井之人, 鼓刀以屠而厳仲子乃諸侯之卿相也, 不遠千里, 枉車騎而交臣. 臣之所以待之, 至淺鮮矣, 未有大功可以稱者, 而厳仲子奉百金為親壽, 我雖不受, 然是者徒深知政也. 夫賢者以感忿睚眥之意而親信窮僻之人, 而政獨安得嘿然而已乎! 且前日要政, 政徒以老母老母今以天年終, 政將為知己者用.

구지 섭정모사. 기이장 여복 섭정왈 차호! 정내시정지인 고도이도; 이엄중자내제루지경상야 불원천리 왕거기이교신. 신지소이대지 ㅈ천선의 이뮤대공가이칭자 이엄중자봉백금위친구 아수불수 연시자도심지정야. 부련자이감분애자지의이친신궁벽지인 이정독안득묵연이호! 차전일요정 정도이노모; 노모금이천년종 정장위지기자용

 

오랜 뒤에 섭정의 어머니가 죽었다. 장례를 마치고 상복을 벗은 뒤 섭정이 말하기를 ! 나는 바로 시정잡배로 칼을 들고 짐승을 도살한다. 그러나 엄중자는 제후의 경상(卿相)인데도 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몸을 낮추고 수레를 타고 와서 나와 사귀었다. 내가 그를 대우함은 가볍고 대수롭지 않았고, 아직까지 일컬을 만한 큰 공도 없다. 그런데도 엄중자는 황금 100일을 받들어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했다. 내가 비록 받지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한 것은 오로지 나를 깊이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명한 사람이 격분해 원수를 흘겨보고, 나 같은 궁벽한 곳의 사람을 가까이하고 믿어주었으니,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난번 그가 나를 원했지만, 나는 단지 노모 때문에 사양했다. 노모께서 이제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으니,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힘을 쓰겠다.’라고 했다.

 

乃遂西至濮陽, 見厳仲子曰:「前日所以不許仲子者, 徒以親在今不幸而母以天年終. 仲子所欲報仇者為誰請得従事焉!

내수서지복양 견엄중자왈 전일소이불허중자자 도이친재; 금불행이모이천년종, 중자소욕보구자위수? 청득종사언!’

 

그리하여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복양에 이르러, 엄중자를 만나서 말했다. ‘일전에 중자를 (당신을) 허락하지 않은 까닭은, 단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불행히도 모친께서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중자께서 원수를 갚으려는 자가 누구입니까?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厳仲子具告曰:「臣之仇韓相俠累, 俠累又韓君之季父也, 宗族盛多, 居処兵衛甚設, 臣欲使人刺之, ()終莫能就. 今足下幸而不棄, 請益其車騎壯士可為足下輔翼者.聶政曰:「韓之與衛, 相去中閒不甚遠, 今殺人之相, 相又國君之親, 此其勢不可以多人, 多人不能無生得失, 生得失則語泄, 語泄是韓挙國而與仲子為讎, 豈不殆哉!

엄중자구고왈 신지구한상협루 협루우한군지계부야 종족성다 거처병위심설 신욕사인자지 종말능취. 금독하행이불기 청익기거기장사가위족하보익자섭정왈 한지여위 상거중한불심원 금살인지상 상우국군지친 차기세불가이다인 다인불능무생득실 생득실즉어설 어설시안거국이여중자위수 이불태재

 

엄중자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나의 원수는 한의 재상 협루인데, 협루는 또한 한 임금의 숙부입니다. 그 일족이 대단히 많고, 거처는 경비가 대단히 삼엄합니다. 내가 사람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려고 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다행히도 마다하지 않으니,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수레 · · 장사들을 더 보태주리다.’ 섭정이 말하기를 한나라가 위()나라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지금 남의 재상을 죽이려고 하는데, 재상 또한 그 나라 임금의 친족인지라 이러한 형세에서 많은 사람을 쓰면 안 됩니다. 사람이 많다 보면 과실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과실이 발생하면 말(비밀)이 샐 것입니다. 말이 새면 한은 거국적으로 중자 (그대)와 원수가 될 것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遂謝車騎人徒, 聶政乃辭獨行.

수사거기인도 섭정내사독행.

 

마침내 수레 · · 장사들을 모두 사양하고, 섭정은 작별 인사를 하고 홀로 떠났다.

 

杖剣至韓, 韓相俠累方坐府上, 持兵戟而衛侍者甚衆. 聶政直入, 上階刺殺俠累, 左右大亂. 聶政大呼, 所撃殺者數十人, 因自皮面決眼, 自屠出腸, 遂以死.

장검지한 한상협루방좌부상 지병극이위시자심중. 섭정직입 상계자살협루 좌우대란. 섭정대호 소격살자수십인 인자피면결안 자도출장 수이사.

 

(섭정이) 칼을 차고 한나라에 이르렀을 때, 한나라의 재상 협루가 마침 관부(官府)의 당상에 앉아 있었는데, 무기를 들고 호위하는 자들이 아주 많았다. 섭정이 바로 들어가서 섬돌에 올라가 협루를 찔러 죽이니, 좌우에 있던 부하들이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섭정이 크게 고함치며 수십 명을 (칼로) 쳐서 죽이고, 그로 인해 얼굴에 상처입어 눈도 다쳐 자신의 배를 갈라 창자가 터져 마침내 죽었다.

 

韓取聶政屍暴於市, 購問莫知誰子. 於是韓()[], 有能言殺相俠累者予千金. 久之莫知也.

한취섭정시폭어시 구문막지수자. 어시한구현구지 유능언살상협루자여천금. 구지막지야.

 

한나라는 섭정의 시체를 가져다가 저자에 드러내놓고, 현상금을 걸었으나 누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한나라는 그것에 상금을 걸고, 재상 협루를 죽인 자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알지 못했다.

 

政姊栄聞人有刺殺韓相者, 賊不得, 國不知其名姓, 暴其屍而県之千金, 乃於邑曰:「其是吾弟與嗟乎, 厳仲子知吾弟!立起, 如韓, 之市, 而死者果政也,

정자영문인유자살한상자 적부득 국부지기명성 폭기시이현지천금 내어읍왈 기시오제여? 차호 엄중자지오제!’ 입기 여한 지시 이사자과정야.

 

섭정의 누나 섭영(聶榮)은 한나라의 재상을 찔러 죽인 자가 죽어 무리들이 누군지 몰라 범인의 시체를 드러내어 천금을 걸었다는 소문을 듣고, 목메어 말하기를 그는 내 동생일 것이다. ,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주었구나!”라고 하고는 곧바로 일어나 한나라의 저자로 갔다. 죽은 자는 과연 섭정이었다.

 

伏屍哭極哀, :「是軹深井里所謂聶政者也.市行者諸衆人皆曰:「此人暴虐吾國相, 王県購其名姓千金, 夫人不聞與何敢來識之也?」栄應之曰:「聞之. 然政所以蒙汚辱自棄於市販之閒者, 為老母幸無恙, 妾未嫁也.

복사곡극애 왈 시지심정리소위섭정자야시행자제중인개왈 차인포학오국상 왕현구기명성천금 부인불문여? 하감래식야?‘ 영응지왈 문지 연정소이몽오욕자기어시판지간자 위노모행무양 첩미가야.

 

시체 위에 엎드려 매우 슬피 울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지 땅 심정리의 섭정이라는 자입니다.’라고 했다. 저자에 가던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이 자는 우리나라의 재상에게 포악한 짓을 해, 임금께서 그 성명을 알고자 천금을 걸었는데, 부인은 듣지 못했소? 어찌 감히 와서 이 자를 안다고 하시오?’ 섭영이 말했다.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섭정이 오욕을 뒤집어쓰고 저자 거리에 몸을 던진 것은 노모가 다행스럽게 병이 없고, 제가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미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셨고, 저도 미혼입니다다.

 

親既以天年下世, 妾已嫁夫, 厳仲子乃察挙吾弟困汚之中而交之, 沢厚矣, 可柰何! 士固為知己者死, 今乃以妾尚在之故, 重自刑以絶従, 妾其柰何畏歿身之誅, 終滅賢弟之名!大驚韓市人. 乃大呼天者三, 卒於邑悲哀而死政之旁.

친기이천년하세 첩기가부 엄중자내착거오제곤오지중이교지 택후의 가내하! 사고위지기자사 금내이첩상재지고 중자형이절종 첩기내하외몰신지주 종멸현제지명대경한시인. 내대호천저삼 졸어읍비애이사정지방.

 

엄중자는 곤궁하고 천한 형편에 있는 제 동생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와 사귀었으니, 은택이 두터우니, 어찌하겠습니까? 남자는 본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배를 갈라 종적을 없앴습니다. 내가 어찌 죽임을 당하는 벌이 두려워 어진 동생의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한나라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그녀는) 이윽고 크게 세 번 하늘을 부르고, 마침내 울면서 슬퍼하다가 섭정의 곁에서 죽었다.

 

衛聞之, 皆曰:「非獨政能也, 乃其姊亦烈女也. 郷使政誠知其姊無濡忍之志, 不重暴骸之難, 必絶険千里以列其名, 姊弟倶僇於韓市者, 亦未必敢以身許厳仲子也. 厳仲子亦可謂知人能得士矣!

진 초 제 위문지 개왈 비독정능야 내기자역열녀야. 향사정성지기자무유인지지 부중폭해지란 필절험천리이열기명 자제구륙어한시자 역미필감이신허엄중자야. 엄중자역가위지인능득사의!’

 

(((()나라에서 그것을 듣고 모두 말하기를 단지 섭정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의 누나 역시 열녀이다. 만일 섭정이 진실로 그의 누나가 참고 견디는 뜻이 없어 해골이 드러나는 어려움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 반드시 몹시 험한 천 리 길을 달려와서 그 이름을 나란히 해, 누나와 동생이 모두 한의 저자거리에서 죽게 될지 알았다면, 또한 과감하게 몸을 엄중자에게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중자도 사람을 알아보고 현사(賢士)를 얻었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했다.

 


[荊軻]

 

其後二百二十餘年秦有荊軻之事.

기후이백이십여년진유형가지사

 

200년후 진나라에선 형가의 경우가 있었다.

 

荊軻者, 衛人也. 其先乃斉人, 徙於衛, 衛人謂之慶卿. 而之燕, 燕人謂之荊卿.

형가자 위인야. 기선내제인 사어위 위인위지경경. 이지연 연인위지형경.

 

형가는 위()나라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제나라 사람으로, (뒤에 형가가) 위나라로 옮겨가자, 위나라 사람들은 그를 경경(慶卿)이라고 불렀고, ()나라로 가자 연나라 사람들은 그를 형경(荊卿)이라고 불렀다.

 

荊卿好読書撃剣, 以術説衛元君, 衛元君不用. 其後秦伐魏, 置東郡, 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

형경호독격검 이술세위원군 위원군불용. 기후진벌위 치동군 사위원군지속어야왕.

 

형경은 독서와 검술을 좋아해, 그 솜씨로 위원군(衛元君)에게 유세했으나 위원군이 (그를) 쓰지 않았다. 그 후 진()나라가 위()나라를 쳐서 동군(東郡)을 설치하고 원군을 야왕=오랑캐의 우두머리 중 하나로 옮기게 했다.

 

荊軻嘗遊過楡次, 與蓋聶論剣, 蓋聶怒而目之. 荊軻出, 人或言複召荊卿.

형가상유과유차 여갑섭논검 갑섭노이목지. 형가출 인혹언복소형경.

 

형가는 일찍이 떠돌아다니다 유차(楡次)를 지나게 되었을 때 갑섭(蓋聶)과 검술에 대해서 논했는데, 갑섭이 성을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형가가 나가버리자, 어떤 사람이 형경을 다시 부르라고 말했다.

 

蓋聶曰:「曩者吾與論剣有不稱者, 吾目之試往, 是宜去, 不敢留.使使往之主人, 荊卿則已駕而去楡次矣. 使者還報, 蓋聶曰:「固去也, 吾曩者目摂之!

갑섭왈 낭자오여론검유뷸칭자 오목지 시왕 시의거 불감유사사왕지주인 형경즉이가이거유차의. 사자환보 갑섭왈 고거야 오낭자목섭지!’

 

갑섭이 말하기를 얼마 전에 내가 그와 검술을 논하다 걸맞지 않은 것이 있어서 내가 그를 노려보았소. 시험 삼아 가보시오, 그는 떠나버렸을 것이오. 감히 머무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다. 사람을 시켜 (형가가 머물렀던) 주인에게 가보게 하니, 형경은 이미 수레를 타고 유차를 떠나고 없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이를 아뢰자, 갑섭이 말했다. ‘당연히 떠났을 것이오. 내가 지난번에 그를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으니 말이오!’

 

荊軻遊於邯鄲, 魯句踐與荊軻博, 爭道, 魯句踐怒而叱之, 荊軻嘿而逃去, 遂不複會.

형가유어한단 노구천여형가부 쟁도 노구천노이질지 형가묵이도거 수불복회.

 

형가가 한단(邯鄲)에서 떠돌아다닐 때, 노구천(魯句踐)이 형가와 장기를 두었는데, (장기판의) 길을 다투다가 노구천이 성내어 그를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떠났고, 그리하여 다시 만나지 않았다.

 

荊軻既至燕, 愛燕之狗屠及善撃築者高漸離. 荊軻嗜酒, 日與狗屠及高漸離飲於燕市, 酒酣以往, 高漸離撃築,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형가기지연 애연지구도급선격축자고점리. 형가기주 일여구도급고점리음어연시 주감이왕 고점이격축 형가화이가어시중 상악야 이이상읍 방약무인자.

 

형가는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의 개백정과 ()’을 잘 타는 고점리(高漸離)를 좋아하게 되었다. 형가는 술을 즐겨 날마다 개백정, 고점리와 연나라의 저자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술이 얼큰해지면 고점리가 을 타고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추어 저자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기기도 하고 뒤 이어 서로 울기도 했는데, 마치 아무도 상관 않는 것 같았다.

 

荊軻雖遊於酒人乎, 然其為人沈深好書其所遊諸侯, 盡與其賢豪長者相結. 其之燕, 燕之処士田光先生亦善待之, 知其非庸人也.

형가수유어주인호 연기위인침심호서 기소유제후 진여기현호장자상결 연지처사전광선생역선대지 지기비용인야.

 

형가는 비록 술꾼들과 사귀었지만, 그의 사람됨은 침착하고 글 읽기를 좋아했다. 그가 제후들에게 떠돌면서 모두 현인이나 호걸 장자와 사귀었다. 그가 연으로 가자, 연의 은사(隱士) 전광(田光)선생 역시 그를 잘 대우했는데,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서였다.

 

居頃之, 會燕太子丹質秦亡帰燕. 燕太子丹者, 故嘗質於趙, 而秦王政生於趙, 其少時與丹驩. 及政立為秦王, 而丹質於秦.

거경지 회연태자단질진망귀연. 연태자단자 고상질어조 이진왕정생어조 기소시여단환. 급정입지진왕 이단질어진.

 

얼마 뒤에, 마침 연나라의 태자단()이 진()나라의 인질로 있다가 달아나 연나라로 돌아왔다. 연나라의 태자단은 일찍이 조()나라의 인질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왕 정(, 훗날 진시황)은 조나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단과 사이가 좋았다. 정이 즉위해 진나라의 왕이 되자, 단은 진나라의 인질이 되었다.

 

秦王之遇燕太子丹不善, 故丹怨而亡帰. 帰而求為報秦王者, 國小, 力不能. 其後秦日出兵山東以伐斉三晉, 稍蠶食諸侯, 且至於燕, 燕君臣皆恐禍之至.

진왕지우연태자단불선 고단원이망귀. 귀이구위보진왕자 국소 역불능. 기후진일출병산동이벌제 초 삼진 초잠식제후 차지어연 연군신개공화지지.

 

진나라의 왕이 연나라의 태자단을 잘 대우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단은 원망하고 도망쳐 돌아왔다. 돌아와서 진나라의 왕에게 보복하려고 했으나, 나라가 작고 힘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그 후 진나라는 날마다 산동(山東) 지역으로 출병해 제··삼진(三晉)을 치면서 제후국의 땅을 조금씩 잠식하면서 장차 연에 이르려고 하자 연나라의 왕과 신하가 모두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太子丹患之, 問其傅鞠武. 武対曰:「秦地遍天下, 威脅韓趙氏, 北有甘泉谷口之固, 南有涇渭之沃, 擅巴漢之饒, 右隴蜀之山, 左関殽之険, 民衆而士厲, 兵革有餘. 意有所出, 則長城之南, 易水以北, 未有所定也. 柰何以見陵之怨, 欲批其逆鱗哉!

태자단환지 문기부국무.무대왈 진지편천하 위협한 위 조씨 북유감천 곡구지고 남유경 위지옥 천파 한지요 우롱 촉지산 좌관 효지험 민중이사여 병혁유여. 의유소출 즉장성지남 역수이북 미유소정야. 내하이견릉지원 욕비기역린재!’

 

태자단이 그것을 걱정되어 그의 스승 국무(鞠武)에게 물었다. 국무가 대답해 말하기를 진나라의 영토는 천하에 고루 미쳐 한··조나라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감천(甘泉곡구(谷口)의 견고함이 있고, 남쪽으로는 경하(涇河위하(渭河)의 비옥함이 있으며, (한중(漢中)의 풍요로움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농(()의 산이 있고, 왼쪽에는 관(()의 험준함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수가 많고 병사들은 패기가 넘치며, 무기와 장비도 넉넉합니다. 진나라가 쳐들어올 뜻이 있다면, 장성(長城)의 남쪽과 역수(易水)의 북쪽은 안정될 수 없습니다. 어찌 능멸을 당했다는 원한으로 진나라 왕의 노여움을 사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다.

 

丹曰:「然則何由?」対曰:「請入図之.

단왈 연즉하유?’ 대왈 청입도지

 

단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소?’라고 하자, ‘깊이 도모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居有閒, 秦將樊於期得罪於秦王, 亡之燕, 太子受而舎之. 鞠武諫曰:「不可. 夫以秦王之暴而積怒於燕, 足為寒心, 又況聞樊將軍之所在乎是謂委肉當餓虎之蹊, 禍必不振矣! 雖有管, 不能為之謀也. 願太子疾遣樊將軍入匈奴以滅口. 請西約三晉, 南連斉, 北購於単於, 其後廼可図也.

거유한 진장번오기득죄어진왕 망지연 태자수이사지. 국무간왈 불가. 부이진왕지폭이적노어연 족위한심 우황문번장군지소재호? 시위 위육당아호지혜야 화필불진의! 수유관 안 불능위지모야. 원태자질견번장군입흉노이멸구, 청서약삼진 남연제 초 불구어선우 기후내가도야

 

얼마 뒤에, 진나라의 장군 번오기(樊於期)가 진나라의 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망명하자, 태자는 그를 받아들여 살게 했다. 국무가 간하기를 아니 됩니다. 저 포악한 진나라의 왕이 연나라에 대해 원한을 쌓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오싹해지기에 족합니다. 또 번장군이 연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는 고기를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던져놓는 것으로 화를 반드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관(, 관중(, 안자)이 살아 있다고 해도 대책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태자께서 빨리 번장군을 흉노(匈奴)한테 보내어 구실을 없애도록 해주십시오. 서쪽으로는 삼진(三晉)과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는 제·초나라와 연합하며, 북쪽으로는 흉노의 선우(單于)와 친교를 맺으십시오. 그런 뒤에 비로소 진나라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太子曰:「太傅之計, 曠日彌久, 心惛然, 恐不能須臾. 且非獨於此也, 夫樊將軍窮困於天下, 帰身於丹, 丹終不以迫於彊秦而棄所哀憐之交, 置之匈奴, 是固丹命卒之時也. 願太傅更慮之.

태자왈 태부지계 광일미구 필혼연 공불능수유. 차비독어차야 부전장군궁곤어천하 귀신어단 단종불이박어강진이기소애린지교 치지흉노 시고단명졸지시야. 원태부경려지

 

태자가 말했다. ‘사부의 계책은 너무나 오랜 시간을 요합니다. 마음이 어지러워 잠시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저 번장군은 천하에서 궁하고 어렵게 되어 나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나는 강한 진나라의 협박 때문에 슬프고 가련하게 된 친구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흉노에게 보낸다면 그것은 진실로 저의 명이 끝날 때입니다. 스승께서 다시 고려해주십시오.’

 

鞠武曰:「夫行危欲求安, 造禍而求福, 計淺而怨深, 連結一人之後交, 不顧國家之大害, 此所謂資怨而助禍. 夫以鴻毛燎於爐炭之上, 必無事矣. 且以鵰鷙之秦, 行怨暴之怒, 豈足道哉! 燕有田光先生, 其為人智深而勇沈, 可與謀.

국무왈 부행위욕구안 조화이구복 계천이원심 연결일인지후교 불고국가지대해 차소위 자원이조화. 부이홍모요어노탄지상 필무사의. 차이조지지진 행원폭지노 이족도재! 연유전광선생 기위인지심이용심 가여모

 

국무가 말했다. ‘무릇 위태로운 일을 행하고 안전함을 구하려 하거나, 화를 만들면서 복을 구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은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명의 새 친구와 교제하기 위해서 국가의 커다란 피해를 돌보지 않는다면, 이는 이른바 원한을 쌓아 화를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기러기 털을 화로의 숯불 위에 그슬린다면, 당연히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또한 독수리나 매처럼 사나운 진나라가, 원망이 가득해 흉포한 노여움을 터뜨린다면, 어찌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연나라에 전광(田光)선생이 계시는데, 그의 사람됨은 지혜가 심원하고 용감하고 침착하니, 함께 의논할 만합니다.’

 

太子曰:「願因太傅而得交於田先生, 可乎?」鞠武曰:「敬諾.出見田先生, 太子願図國事於先生也. 田光曰:「敬奉教.乃造焉.

태자왈 원인태부이득교어전선생 가호?’ 국무왈 경락출현전선생 도 태자원도국사어선생야’. 전광왈 경봉교내조언.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스승의 주선으로 전광선생과 사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겠습니까?’ 국무가 말했다. ‘기꺼이요.’ 하고 국무가 나가서 전광선생을 만나보고 말하기를 태자께서 선생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했다. 전광이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마침내 태자를 만나러 갔다.

 

太子逢迎, 卻行為導, 跪而蔽席. 田光坐定, 左右無人, 太子避席而請曰:「燕秦不両立, 願先生留意也.

태자봉영 각행위도 궤이폐석. 전광좌정 좌우무인 태자피석이청왈 연진불양립 원선생유의야

 

태자가 전광을 나아가 맞이하고 떨어져 걸으며 전광에게 길을 인도하였다. 무릎을 꿇고 (전광이 앉을) 자리를 털었다. 전광이 자리에 앉자, 좌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태자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의견을 청했다.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할 수 없으니, 선생께서 유념해 주시기를 바라오.’

 

田光曰:「臣聞騏驥盛壯之時, 一日而馳千里至其衰老, 駑馬先之. 今太子聞光盛壯之時, 不知臣精已消亡矣. 雖然, 光不敢以図國事, 所善荊卿可使也.太子曰:「願因先生得結交於荊卿, 可乎?」田光曰:「敬諾.即起, 趨出.

전광왈 신문기기성장지시 일일이치천리; 지기쇠노 노마선지. 금태자문광성장지시 부지신정이소망의. 수연 광불감이도국사 소선형경가사야태자왈 원인선생득결교어형경 가호?’ 전광왈 경락즉기 추출.

 

(그러자) 전광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는, 준마가 기운이 왕성할 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나, 노쇠하면 둔한 말도 그를 앞선다고 합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제가 왕성할 때의 일만 들으시고, 저의 정력이 이미 다 사라진 것은 모르십니다. 비록 제가 감히 나랏일을 도모하지는 못하지만, 저와 잘 지내는 형경(荊卿)이 쓸 만합니다.’라고 했다. 태자가 말했다. ‘선생을 통해서 형경과 교제를 맺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전광은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즉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太子送至門, 戒曰:「丹所報, 先生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也!田光俛而笑曰:「.

태자송지문 계왈 단소보 선생소언자 국지대사야 원선샹물설야!’ 전광면이소왈

 

태자가 문까지 배웅을 하며 경계의 말을 했다. ‘제가 말한 것이나 선생이 말한 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선생께서 누설하지 말아주십시오!’ 전광이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僂行見荊卿, :「光與子相善, 燕國莫不知. 今太子聞光壯盛之時, 不知吾形已不逮也, 幸而教之曰燕秦不両立, 願先生留意也. 光竊不自外, 言足下於太子也, 願足下過太子於宮.

루행견형경 왈 광여자상선 연국막부지. 금태자문광장성지시 부지오형이불체야 행이교지왈 연진불양립 원선생유의야”. 광절부자외 언족하어태자야 원족하과태자어궁

 

(전광은) 몸을 굽히고 가서 형경을 만나서 말했다. ‘내가 당신과 친하게 지냄은 연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소. 지금 태자가 내가 한창이던 시절의 일만을 들었을 뿐, 내 몸이 이미 미치지 않음을 모르고, 황송하게도 내게 하교해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할 수 없으니, 선생께서 유념해 주시오.”라고 하셨소. 나는 마음속으로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지 않고, 당신을 태자께 추천했으니, 당신이 왕궁으로 가서 태자를 뵙기를 바라오.’

 

荊軻曰:「謹奉教.田光曰:「吾聞之, 長者為行, 不使人疑之. 今太子告光曰:『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 是太子疑光也. 夫為行而使人疑之, 非節俠也.欲自殺以激荊卿, :「願足下急過太子, 言光已死, 明不言也.因遂自刎而死.

형가왕 근봉교전광왈 오문지 장자위행 불사인의지. 금태자고광왈 소언자 국지대사야 원선생물설시태자의광야. 부위행이사인의지 비절협야욕자살이격형경 왈 원족하금과태자 언광이사 명불언야인수자경이사.

 

형경이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이에) 전광이 내가 듣기로, 덕행이 있는 자는 일을 행함에 남에게 의심을 품게 하지 않는다고 했소. 지금 태자께서 내게 말한 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선생께서 누설하지 마시오.”라고 했소. 이는 태자가 나를 의심한 것이오. 무릇 행할 때 남의 의심을 받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 있는 행동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형경을 격려하려 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어서 빨리 태자에게 가서 전광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일이 누설되지 않았음을 밝혀주시오.’라고 하고는 이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荊軻遂見太子, 言田光已死, 致光之言. 太子再拝而跪, 膝行流涕, 有頃而後言曰:「丹所以誡田先生毋言者, 欲以成大事之謀也. 今田先生以死明不言, 豈丹之心哉!

형가수견태자 언전광이사 치광지언. 태자재배이궤 슬행유체 유경이후언왈 단소이계전선생무언자 욕이성대사지모야. 금전선생이사명불언 이단지심재!’

 

형가가 곧 태자를 뵙고 전광선생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며 전광의 말을 전했다. 태자는 두 번 절하고 무릎을 꿇고, 무릎걸음으로 나아가며 눈물을 흘리더니, 잠시 후에 말했다. ‘내가 전광선생께 말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큰일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었소. 지금 전광선생이 죽음으로써 누설하지 않음을 밝혔는데 (그것이) 어찌 나의 마음이었겠는가!’

 

荊軻坐定, 太子避席頓首曰:「田先生不知丹之不肖, 使得至前, 敢有所道, 此天之所以哀燕而不棄其孤也. 今秦有貪利之心, 而欲不可足也. 非盡天下之地, 臣海內之王者, 其意不厭. 今秦已虜韓王, 盡納其地. 又挙兵南伐楚, 北臨趙王翦將數十萬之衆距漳, 而李信出太原雲中. 趙不能支秦, 必入臣, 入臣則禍至燕.

형가좌정 태자피석돈수왈 전선생부지단지불초 사득지전 감유소도 차천지소이쇠연이불기기고야. 금진유탐리지심 이욕불가족야. 비진천하지지 신해내지왕자 기의불염. 금진이노한왕 진납기지. 우거병남벌초 북임조 ; 왕전장수십만지중거장 업 이이신출대원 운중. 조불능지진 필입신 입신즉화지연.

 

형가가 자리에 앉자,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광선생은 내가 어질지 못함을 모르고, 내게 그대를 만나 감히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연을 불쌍히 여겨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오. 지금 진나라는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어,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소. 천하의 땅을 다 빼앗고 천하의 왕들을 신하로 삼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오. 이제 진나라는 이미 한()나라의 왕을 사로잡고, 그 땅을 전부 거두었소. 또한 군사를 일으켜 남쪽으로는 초나라를 치고, 북쪽으로는 조나라까지 임박했소. 왕전(王翦)이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장()과 업()으로 갔으며, 이신(李信)은 태원(太原)과 운중(雲中)으로 출병했소. 조나라는 진나라를 지탱할 수 없어 반드시 (진나라로) 들어가 신하가 될 것이고, (조나라가 진나라로) 들어가 신하가 되면 그 화가 연나라에 미치게 되오.

 

燕小弱, 數困於兵, 今計挙國不足以當秦. 諸侯服秦, 莫敢合従. 丹之私計愚, 以為誠得天下之勇士使於秦, 闚以重利秦王貪, 其勢必得所願矣. 誠得劫秦王, 使悉反諸侯侵地, 若曹沫之與斉桓公, 則大善矣則不可, 因而刺殺之. 彼秦大將擅兵於外而內有亂, 則君臣相疑, 以其閒諸侯得合従, 其破秦必矣. 此丹之上願, 而不知所委命, 唯荊卿留意焉.

연소약 수곤어병 금게거국부족이당진. 제후복진 막감합종. 단지사계우 이위성득천하지용사사어진 규이중이; 진왕탐 기세필득소원의. 성득각진왕 사실반제후침지 약조말지여제환공 즉대선의; 즉불가 인이자살지.피진대장천병어외이내유란 즉군신상의 이기간자후득합종 기파진필의. 찻잔지상운 이부지소위명 유형경유의언

 

연나라는 작고 약해 여러 차례 전쟁으로 곤궁을 당했는데, 이제는 거국적으로도 진나라를 감당할 수 없소.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고, 감히 합종하려는 자가 없소. 나의 개인적인 계책으로는, 천하의 용사를 얻어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해, 커다란 이익을 미끼로 내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오. 진나라의 왕이 탐욕스러우니 그 형세는 반드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만일 진나라의 왕을 위협해,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게 한다면, 이는 조말(曹沫)이 제환공에게 했던 바와 같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를 찔러 죽여야 하오. 저 진나라의 대장들은 밖에서 군사를 통솔하고 있어 내부에서 난이 발생한다면, 임금과 신하가 서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니, 그 사이에 제후들이 합종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깨트릴 수 있소.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이나, 이러한 사명을 맡길 만한 사람을 모르고 있으니, 오직 형경(荊卿)이 유념해주기 바라오.’



 

 

久之, 荊軻曰:「此國之大事也, 臣駑下, 恐不足任使.太子前頓首, 固請毋譲, 然後許諾.

구지 형가왈 차국지대사야 신노하 공부족임사태자전돈수 고청무양 연후허락.

 

한참 후에, 형가가 말하기를 이는 나라의 큰일입니다. 신은 어리석고 재주가 없어 그러한 사명을 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태자가 앞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양하지 말기를 간청하자 (형가는) 허락했다.

 

於是尊荊卿為上卿, 舎上舎. 太子日造門下, 供太牢具, 異物閒進, 車騎美女恣荊軻所欲, 以順適其意.

어시존형경위상경 사상사. 태자일조문한 공태뢰구 이물간진 차기미녀자형가소욕 이순적기의.

 

그리하여 형가를 높여 상경(上卿)으로 삼고, 상등 관사에 머물게 했다. 태자가 날마다 관사로 가서 태뢰(太牢, ··돼지)가 갖추어진 음식을 접대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간간이 주었다. 또한 수레··아름다운 여인 등을 보내 형가가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게 하면서 그의 마음을 사려고 했다.

 

久之, 荊軻未有行意. 秦將王翦破趙, 虜趙王, 盡収入其地, 進兵北略地至燕南界. 太子丹恐懼, 乃請荊軻曰:「秦兵旦暮渡易水, 則雖欲長侍足下, 豈可得哉!

구지 형가미유행의. 진장왕전파조 노조왕 진수입기지 진병북략지지연남계. 태단공구 내청형가왈 진구단모도역수 즉수욕장시족하 이가득재!’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형가는 떠날 뜻이 없었다. 진나라의 장군 왕전이 조나라를 쳐부수어, 조나라의 왕을 사로잡고, 그 영토를 모두 거두어들인 뒤, 북쪽으로 진격해 땅을 빼앗으며 연나라의 남쪽 경계까지 이르렀다. 태자단이 두려워하며 비로소 형가를 청해 말하기를 진나라의 군대가 조만간 역수를 건너오면, 비록 오래도록 선생을 모시고 싶더라도, 어찌 그럴 수 있겠소?’라고 했다.

 

荊軻曰:「微太子言, 臣願謁之. 今行而毋信, 則秦未可親也. 夫樊將軍, 秦王購之金千斤, 邑萬家. 誠得樊將軍首與燕督亢之地図, 奉獻秦王, 秦王必説見臣, 臣乃得有以報.

형가왈 미태자언 신원알지. 금행이무신 즉진미가친야. 부번장군 진왕구지금천근 읍만가. 성득번장군수여연독항지지도 봉헌진왕 진왕필설견신 신내득유이보

 

형가가 말했다. ‘태자의 말씀이 없었더라도, 신이 알현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로 가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진나라의 왕에게 가까이할 수가 없습니다. 저 번장군은 진나라의 왕이 황금 1천 근과 만 호의 식읍(食邑)을 내걸고 찾고 있습니다. 만일 번장군의 목과 연 독항(督亢)의 지도를 얻어 진나라의 왕에게 바친다면, 진나라의 왕이 기뻐하며 반드시 신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에 신이 비로소 (태자께) 은혜를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太子曰:「樊將軍窮困來帰丹, 丹不忍以己之私而傷長者之意, 願足下更慮之!

태자왈 번장군궁곤래귀단 단불인이기지사이상장자지의 원족하경려지!’

 

(그러자) 태자는 번장군은 곤궁에 처해 나에게 귀의했는데, 내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덕행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겠으니, 선생께서 다시 고려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荊軻知太子不忍, 乃遂私見樊於期曰:「秦之遇將軍可謂深矣, 父母宗族皆為戮沒. 今聞購將軍首金千斤, 邑萬家, 將柰何?」

형가지태자불인 내수사견번오기왈 ; ‘진지우장군가위심의 부모종족개위륙몰. 금문구장군수금천근 음만가 장내하?’

 

형가는 태자가 차마 번장군의 목을 베지 못할 것을 알고, 마침내 개인적으로 번장군을 만나서 말했다. ‘진나라가 장군을 대우함은 참으로 잔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종족은 모두 죽거나 노비가 되었습니다. 지금 장군의 목에다 황금 1천 근과 만 호의 식읍을 내걸었다고 들었습니다. 장차 이를 어찌하시렵니까?’

 

於期仰天太息流涕曰:「於期毎念之, 常痛於骨髄, 顧計不知所出耳!荊軻曰:「今有一言可以解燕國之患, 報將軍之仇者, 何如?」

오기앙천태식유체왈 오기먀념지 상통오골수 고계부지소불이!’ 형가왈 금유일언가이해연국지환 보장군지구자 하여?’

 

(이에) 번오기는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매번 그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골수에 사무치도록 괴롭습니다. 그러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형가가 말하기를 지금 한마디 말로 연의 근심을 없애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於期乃前曰:「為之柰何?」荊軻曰:「願得將軍之首以獻秦王, 秦王必喜而見臣, 臣左手把其袖, 右手揕其匈, 然則將軍之仇報而燕見陵之愧除矣. 將軍豈有意乎?」

오기내전왈 위지내하?’ 형가왈 원듣장군지수이헌진왕 진왕필희이견신 신좌수파기유 우수침기흉 연즉강군지구보이연견릉지괘여의. 장군이유의호?’

 

번오기가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형가가 말했다. ‘장군의 목을 얻어 진의 왕에게 바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진나라의 왕은 반드시 기뻐해 저를 만나볼 것입니다. (그때) 제가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가 당한 모욕도 씻을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의향이 있으신지요?’

 

樊於期偏袒搤捥而進曰:「此臣之日夜切歯腐心也, 乃今得聞教!遂自剄.

번오기편단익완이진왈 차신지일야절치부심야 내금득문교!’ 수자경.

번오기가 한쪽 옷소매를 걷어 붙여 어깨를 드러내고, 한손으로 팔을 움켜쥐고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는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속을 썩이던 것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太子聞之, 馳往, 伏屍而哭, 極哀. 既已不可柰何, 乃遂盛樊於期首函封之.

태자문지 치왕 복시이곡 극애. 기이불가내하 내수성번오기수함봉지.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시체에 엎드려 통곡하며 매우 슬퍼했으나, 이미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번오기의 목을 상자에 넣어 봉했다.

 

於是太子予求天下之利匕首, 得趙人徐夫人匕首, 取之百金, 使工以薬焠之, 以試人, 血濡縷, 人無不立死者. 乃裝為遣荊卿. 燕國有勇士秦舞陽, 年十三, 殺人, 人不敢忤視.

어시태자여구펀하지리비수 득조인서부인비수 취지백금 사공이약쉬지 이시인 혈유루 인무불립사자. 내장위견형경 연국유용사진무양 년십삼 살인 인불감오시.

 

당시 태자는 일찍이 천하에서 예리한 비수를 구하던 중 조()나라의 사람 서부인(徐夫人)의 비수를 얻었는데, 황금 1백 근을 지불했다. 장인에게 칼날에 독약을 묻혀 사람에게 시험해보게 하니, 피를 한 방울만 흘려도 즉시 죽지않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짐을 챙겨 형가를 진나라에 보내려고 했다. 연에는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용사가 있었는데, 13세에 살인을 했기에, 사람들은 감히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乃令秦舞陽為副. 荊軻有所待, 欲與倶其人居遠未來, 而為治行. 頃之, 未発, 太子遅之, 疑其改悔, 乃複請曰:「日已盡矣, 荊卿豈有意哉丹請得先遣秦舞陽.

내령진무양위부. 형가유소대 욕여구 기인거원미래 이위치행 미발 태자지지 의기개회 내복청왈 일이진의 형경이유의재? 단청득선견진무양

 

이에 태자는 진무양을 형가의 조수로 삼았다. 형가에게는 기다려 함께 가려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멀리 살았으므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형가의 행장이 다 꾸려졌다. 한참이 지나도 형가가 출발하지 않자, 태자는 그가 시간을 끈다고 여기며, 형가가 마음이 바뀌어 후회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청해 말하기를 시간이 지체되는데 형경께서는 무슨 다른 생각 있소? 진무양을 먼저 보내게 해주시오.’라고 했다.

 

荊軻怒, 叱太子曰:「何太子之遣往而不返者, 豎子也! 且提一匕首入不測之彊秦, 僕所以留者, 待吾客與倶. 今太子遅之, 請辭決矣!遂発.

형가노 질태자왈 하태자지견? 왕이불반자 수자야! 차제일비수입불측지강진 복소이유자 새오갹여구. 금태자지지 창사결의!’ 수발.

 

형가가 성을 내며 태자를 질책하며 태자께서는 어찌 무양을 보내려고 하십니까?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풋내기입니다. 하물며 비수 한 자루를 들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강한 진나라에 들어가는 와중에, 제가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제 길벗을 기다려 함께 가고자 해서입니다. 지금 태자께서 시간을 끈다고 하시니, 그럼 하직하고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출발했다.

 

太子及賓客知其事者, 皆白衣冠以送之. 至易水之上, 既祖, 取道, 高漸離撃築, 荊軻和而歌, 為変徴之聲, 士皆垂淚涕泣. 又前而為歌曰

태자급빈객지기사자 개자의관이송지. 지역수지상 기조 취도 고점리격축 형가화이가 위변치지성 사개수루체읍. 우전이위가왈:

 

태자와 이 일을 아는 빈객들이 모두 흰 의관(衣冠)을 하고 그를 배웅했다. 역수가에 이르자 도조신(道祖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형가는 길에 올랐다.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화답해 노래를 불렀는데, 변치(變徵)의 소리를 내자,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複還!複為羽聲慷慨, 士皆瞋目, 髪盡上指冠. 於是荊軻就車而去, 終已不顧.

풍소소혜역수한 장사일거혜불복환!’ 복위우성강개 사개진목 발진상지관. 어시형가취거이거 종이불고.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다시 우성(羽聲)으로 노래하니 그 소리가 강개해,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이 관()으로 치솟았다. 그리하여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遂至秦, 持千金之資幣物, 厚遺秦王寵臣中庶子蒙嘉. 嘉為先言於秦王曰:「燕王誠振怖大王之威, 不敢挙兵以逆軍吏, 願挙國為內臣, 比諸侯之列, 給貢職如郡県, 而得奉守先王之宗廟. 恐懼不敢自陳, 謹斬樊於期之頭, 及獻燕督亢之地図, 函封, 燕王拝送於庭, 使使以聞大王, 唯大王命之.

수지진 지천금지자폐물 후유진왕총신중서자몽가. 가위선언어진왕왈 연왕성진포대왕지위 불감거병이역군리 원거국위내신 차제후지열 급공직여군현 이득봉수선왕지종묘. 공구불감자진 근참번오기지두 급헌연독항지지고 함봉 연왕배송어정 사사이문대왕 유대왕명지

 

마침내 진나라에 도착한 형가는 천금이나 되는 예물을 진왕의 총신(寵臣) 중서자(中庶子) 몽가(蒙嘉)에게 주었다. 몽가는 형가를 위해서 진나라의 왕에게 먼저 말했다. ‘연나라의 왕이 참으로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해 감히 군사를 일으켜 우리 군대에 항거하지 못하고, 무리들과 진의 신하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 제후국의 하나로 나라의 군현(郡縣)처럼 공물과 부세를 바치어, 선왕의 종묘(宗廟)를 받들어 지킬 수 있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두렵고 떨려 감히 대왕께 직접 아뢰지 못하고, 삼가 번오기의 목을 베어 연나라의 독항의 지도와 함께 바치려고 상자에 넣어 봉해 왔습니다. 연나라의 왕이 궁정에서 증정 의식을 거행하고, 사자를 보내어 대왕께 자초지종을 아뢰도록 했으니, 대왕께서 그에게 명령을 내리소서.’

 

秦王聞之, 大喜, 乃朝服, 設九賓, 見燕使者鹹陽宮. 荊軻奉樊於期頭函, 而秦舞陽奉地図柙, 以次進. 至陛, 秦舞陽色変振恐, 群臣怪之.

진왕문지 대희 내조복 설구빈 견연사자함양궁. 형가봉번오기두함 이진무양봉지도갑이차진. 지폐 진무양색변진공 군신괴지.

 

진 왕이 이를 듣고 매우 기뻐해 조복(朝服)을 갖추고, 구빈(九賓, 임금이 예의를 갖추어 맞이해야할 점잖은 아홉 손님. 즉 공(), (), (), (), (), (), (), 대부(大夫), ()를 말함)의 예를 베풀어, 연나라 사자를 함양궁(咸陽宮)에서 만나기로 했다. 형가가 번오기의 목이 든 함을 받들고, 진무양이 독항의 지도가 든 갑을 받들고 차례로 나아갔다. 어전의 계단 밑에 이르자 진무양이 안색이 변하며 겁에 질려 벌벌 떨자, 여러 신하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겼다.

 

荊軻顧笑舞陽, 前謝曰:「北蕃蠻夷之鄙人, 未嘗見天子, 故振慴. 願大王少仮借之, 使得畢使於前.

형가고소무양 전사왈 북번만이지비인 미상견천자 고진습. 원대왕소가차지 사득필사어전

 

형가가 진무양을 돌아보고 웃고는 앞으로 나아가 사과하며 말하기를 북방 오랑캐 땅에 천하게 살던 사람인지라 아직까지 천자를 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떨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사람의 무례를 용서하시고, 어전에서 사신의 임무를 마치게 해 주소서.’라고 했다.

 

 

秦王謂軻曰:「取舞陽所持地図.軻既取図奏之, 秦王発図, 図窮而匕首見. 因左手把秦王之袖, 而右手持匕首揕之. 未至身, 秦王驚, 自引而起, 袖絶. 抜剣, 剣長, 操其室. 時惶急, 剣堅, 故不可立抜.

진왕위가왈 취무양소지지도가기취도주지 진왕발도 도궁이비수견. 인좌수파진왕지수 이우수지비수침지. 미지신 진왕경 자인이기 수절. 발검 검장 조기실 시황급 검견 고불가입발.

 

그러자 진 왕이 형가에게 말했다. ‘진무양이 가지고 있는 지도를 가져오라.’ 형가가 지도를 받아들어 진 왕에게 바치니, 진 왕이 지도를 펼쳤다. 지도가 다 펼쳐지자 비수가 보였다. (그러자) 형가는 왼손으로 진 왕의 옷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쥐고 진 왕을 찔렀다. 미처 비수가 몸에 닿지 못했는데, 진 왕이 놀라서 몸을 당겨 일어서자, 소매가 잘라졌다. 진 왕이 칼을 뽑으려고 했으나, 칼이 길어 뽑지 못하고 칼집만 잡았다. 너무나도 황급한 데에다 굳게 꽂혀 있었으므로 즉시에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荊軻逐秦王, 秦王環柱而走. 群臣皆愕, 卒起不意, 盡失其度. 而秦法, 群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諸郎中執兵皆陳殿下, 非有詔召不得上. 方急時, 不及召下兵, 以故荊軻乃逐秦王.

형가축진왕 진왕환주이주. 군신개악 졸기불의 진실기도. 이진법 군신시전상자부득지척촌지병; 제낭중집병개진전하 비유조소부득상. 방급시 불급소하병 이고형가내축진왕.

 

형가가 진 왕을 추격하자, 진 왕은 기둥을 돌며 달아났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놀랐는데,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나라의 법에 의하면, 전상(殿上)에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한자나 한 치의 조그만 무기라도 몸에 지닐 수 없었으며, 여러 낭중(郎中)이 무기를 가지고 전하(殿下)에 늘어서 있었으나, 왕이 부르지 않을 때에는 전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너무도 다급해,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부를 틈이 없었으므로, 형가가 진 왕을 쫓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而卒惶急, 無以撃軻, 而以手共搏之. 是時侍醫夏無且以其所奉薬嚢提荊軻也. 秦王方環柱走, 卒惶急, 不知所為, 左右乃曰:「王負剣!

이졸황급 무이격가 이이수공박지. 시시시의하무저이기소봉약낭제형가야. 진왕방환주주 졸황급 부지소위 좌우내왈 왕부검!’

 

이에 대신들은 황급했고,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맨손으로 모두 형가를 내리쳤다. 이때 시의(侍醫) 하무저(夏無且)는 받쳐 들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진 왕이 기둥을 돌며 달아나기만 할 뿐 황급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자,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말하기를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라고 했다.

 

負剣, 遂抜以撃荊軻, 斷其左股. 荊軻廃, 乃引其匕首以擿秦王, 不中, 中桐柱. 秦王複撃軻, 軻被八創. 軻自知事不就, 倚柱而笑, 箕踞以罵曰:「事所以不成者, 以欲生劫之, 必得約契以報太子也.

부검 수발이격형가 단디좌고. 형가폐 내인기비수이적진왕 불중 중동주. 진왕복격가 가피팔창. 격자지사불취 의주이소 기거이매왈 사소이불성자 이욕생겁지 필득약결이보태자야

 

진 왕이 칼을 등에 지고, 마침내 칼을 뽑아 형가를 쳐서, 그의 왼쪽 다리를 끊었다. 형가는 쓰러진 채 비수를 당기어 진 왕에게 던졌으나, 적중시키지 못하고 기둥을 맞혔다. 그러자 진 왕은 다시 형가를 쳐서 여덟 군데나 상처를 입혔다. 형가는 스스로 일이 실패했음을 알고 기둥에 기대어 웃으며,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 꾸짖어 말했다. ‘일이 실패한 까닭은 진 왕을 사로잡아 협박해, 반드시 약속을 받아내어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於是左右既前殺軻, 秦王不怡者良久. 已而論功, 賞群臣及當坐者各有差, 而賜夏無且黃金二百溢, :「無且愛我, 乃以薬嚢提荊軻也.

어시좌우기전살가 진왕불이자양구. 기이논공 상군신급당좌자각유차 이사하무저황금이백일 왈 무저애아 내이약랑제형가야

 

이때 좌우의 많은 신하들이 몰려가서 형가를 죽였다. 진 왕은 오래도록 불쾌해 했다. 그런 뒤에 공을 논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상벌을 내렸는데, 각기 차등을 두었다. 하무저에게 황금 2백일()을 주며 말하기를 무저가 나를 사랑해,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라고 했다.

 

於是秦王大怒, 益発兵詣趙, 詔王翦軍以伐燕. 十月而抜薊城. 燕王喜太子丹等盡率其精兵東保於遼東. 秦將李信追撃燕王急, 代王嘉乃遺燕王喜書曰

어시진왕대노 익발병지조 조왕전군이벌연. 시월이발계성. 연왕희 태자단등진솔기정병동보어요동. 진장이신추격연왕급 대왕가내유연왕희서왈:

 

이로써 진 왕은 크게 노하여 더욱 많은 군사를 동원해서 조나라로 보내고, 왕전의 군대에 조서를 내려 연나라를 치게 했다. 열 달 만에 계성(薊城)이 함락되자 연 왕 희(), 태자 단 등은 모두 정예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遼東)을 지켰다. 진 장군 이신(李信)이 급히 연 왕을 추격하자, 대왕(代王) ()는 연 왕 희에게 곧 서신을 보냈다.

 

秦所以尤追燕急者, 以太子丹故也. 今王誠殺丹獻之秦王, 秦王必解, 而社稷幸得血食.

진소이우추연급자 이태자단고야. 금왕성살단헌지진왕 진왕필해 이사직행등혈식

 

진나라가 특별히 연 왕을 추격하는 까닭은 태자 단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단을 죽여 진 왕에게 바친다면, 진 왕은 반드시 노여움을 풀고 용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나라의 수명이 연장되고, 사직(社稷)은 다행히 계속 제사를 받들게 될 것입니다.

 

其後李信追丹, 丹匿衍水中, 燕王乃使使斬太子丹, 欲獻之秦. 秦複進兵攻之. 後五年, 秦卒滅燕, 虜燕王喜.

기후이신추단 단닉연수중 연왕내사사참태자단 욕헌지진. 진복진병공지. 후오년 진졸멸연노연왕희.

 

그 후에도 이신이 단을 추격하자, 단은 연수(衍水) 가운데 있는 섬에 몸을 숨기었고, 연 왕은 사자를 보내 태자단의 목을 베어 진에 바치고자 했다. 진나라는 다시 병사를 보내 연나라를 쳤다. 5년 뒤, 진나라는 마침내 연나라를 멸하고 연 왕 희를 사로잡았다.




[高漸離]

 

其明年, 秦並天下, 立號為皇帝. 於是秦逐太子丹荊軻之客, 皆亡.

기명년 진병천하입호위황제. 어시진축태자단 형가지객 개망.

 

그 이듬해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칭호를 황제(皇帝)라 했다. 그리하여 진나라에서 태자 단과 형가가 거느리던 객들을 추궁하자 그들은 모두 달아났다.

 

高漸離変名姓為人庸保, 匿作於宋子. 久之, 作苦, 聞其家堂上客撃築, 傍偟不能去. 毎出言曰:「彼有善有不善.従者以告其主, :「彼庸乃知音, 竊言是非.

고점리변명성위인용보 닉어어송자. 구지 작고 문기가당상객격축 방황불능거. 매출언왈 피유선유불선종자이고기주 왈 피용내지음 절언시비

 

고점리는 성명을 바꾸고 남의 머슴이 되어, 송자(宋子)라는 곳에서 일했다. 그는 오랫동안 괴롭게 지냈는데, 주인 집 마루 위에서 객이 축을 타는 소리를 들으면, 주변을 방황하며 떠나지 못했다. 매번 말하기를 어떤 곳은 잘 탔는데, 어떤 곳은 잘 타지 못했군.’이라고 했다. 하인이 그 주인에게 말하기를 저 머슴은 소리를 들을 줄 아는지, 남몰래 잘하느니 잘못하느니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家丈人召使前撃築, 一坐稱善, 賜酒. 而高漸離念久隠畏約無窮時, 乃退, 出其裝匣中築與其善衣, 更容貌而前. 挙坐客皆驚, 下與抗禮, 以為上客. 使撃築而歌, 客無不流涕而去者.

가장인소사전격축 일좌칭선 사주.이고점리념구은외약무궁시 내퇴 축지장감중축여기선의 경용모이전. 거좌객개경 하여항례 이위상객. 사격축이가 객무불유체이거자.

 

그러자 집 주인이 고점리를 불러 자기 앞에서 축을 타게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잘한다고 칭찬하며 술을 주었다. 이에 고점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숨어서 두려움과 가난 속에 살아보아야 끝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물러나 짐짝에서 축과 좋은 옷을 꺼내어, 용모를 바꾸고 다시 나타났다. 자리에 앉아있던 객들이 모두 놀라서, 자리에서 내려와 서로 대등한 예의로 대하고, 그를 상객으로 모셨다. 그가 다시 축을 타며 노래를 불렀는데,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 않은 객이 한 사람도 없었다.

 

宋子傳客之, 聞於秦始皇. 秦始皇召見, 人有識者, 乃曰:「高漸離也.秦皇帝惜其善撃築, 重赦之, 乃矐其目. 使撃築, 未嘗不稱善. 稍益近之, 高漸離乃以鉛置築中, 複進得近, 挙築樸秦皇帝, 不中. 於是遂誅高漸離, 終身不複近諸侯之人.

송자전객지 문어진시황. 진시황소견 이유식자 내왈 고점리야진황제석기선격축 중사지 내학기목. 사격축 미상불칭선. 소익근지 고점리내이연치축중 복진득근 거축박진시황 불주. 어시수주고점리 종신불복근제후지인.

 

송자 고을에서는 그를 돌아가며 손님으로 삼았고, 그 소문이 진시황(秦始皇)에게까지 들리게 되었다. 진시황이 그를 불러 만나보자, 어떤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고점리입니다.’라고 했다. 진시황은 축을 잘 타는 그의 솜씨를 아깝게 여겨, 죽을 죄를 용서하는 대신 그의 눈을 멀게 만들어 축을 타게 했는데, 연주할 때마다 칭찬하지 않는 적이 없었다. 진시황이 나날이 그를 가까이하자, 고점리는 납덩어리를 축 속에 감추어두고, 다시 진시황 곁에 가까이 갔을 때 축을 들어 진시황을 내리쳤으나 맞지 않았다. 진시황은 결국 고점리를 죽이고, 평생 동안 제후국의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魯句踐已聞荊軻之刺秦王, 私曰:「嗟乎, 惜哉其不講於刺剣之術也! 甚矣吾不知人也! 曩者吾叱之, 彼乃以我為非人也!

노구천이문형가지자진왕 사왈 차호 석재기불강어자검지술야! 심의오부지인야! 낭자오비질지 피내이아위비인야!’

 

노구천(魯句踐)은 형가가 진 왕을 찌르려 했다는 것을 듣고, 혼자 말했다. ‘! 애석하구나, 그는 칼을 찌르는 기술을 중시하지 않았구나! 내가 너무 사람을 몰랐구나! 지난날 내가 그를 꾸짖었을 때, 그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구나!’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世言荊軻, 其稱太子丹之命, 天雨粟, 馬生角, 太過. 又言荊軻傷秦王, 皆非也. 始公孫季功董生與夏無且遊, 具知其事, 為餘道之如是. 自曹沫至荊軻五人, 此其義或成或不成, 然其立意較然, 不欺其志, 名垂後世, 豈妄也哉!

태사공왈 세언형가 기칭태자단지명 천우속 마생각야 대과. 우언형가상진왕 개비야. 시공손계공 동생여하무일유 구지기사 위여도지여시. 자조말지형가오인 차기의혹성혹불성 연기립의교연 불기기지 명수후세 이망야재!.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형가(荊軻)에 관한 세상의 이야기 가운데 태자단()의 운명을 일컬어 하늘에서 곡식이 내리고, 말의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라고 하는데, 이는 너무 지나친 것이다. 또한 형가가 진 왕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하는 것도 모두 그릇된 것이다. 당시 공손계공(公孫季功)과 동중서(董仲舒)가 하무저(夏無且)와 교유했기에 이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었고, 나를 위해 말해준 것이 위와 같다. 조말(曹沫)부터 형가에 이르기까지 다섯 사람은, 그 의()가 어떤 것은 이루어지기도 했고 어떤 것은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심은 매우 분명했고, 자신들의 뜻을 속이지도 않았으니,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어찌 망령되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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