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十三 三代世表第一
사기권십삼 삼대세표제일
사기의 13번째 권 3대세표 제 1권
索隱應劭云:「表者 錄其事而見之.」
색은응소운 '표자 록기사이견지'
색은이란 책의 응소가 전하길 '표란 무언가를 관찰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했다.
案:禮有表記 而鄭玄云 「表 明也」.
안 예유표기 이정현운 '표 명야'
주석하기를 표란 기록의 절차 형식은 정현이 말하길 '표란 밝히는 것'이라 했으며
謂事微而不著 須表明也 故言表也.
위사미이불저 순표명야 고언표야
사안이 미미하여 책으로 남기지 않은 걸 밝히는 것을 말로 밝히는 것이라 한다
正義言代者 以五帝久古 傳記少見 夏殷以來 乃有尙書略有年月 比於五帝事跡易明 故擧三代爲首表.
정의언대자 이오제구고 전기소견 하은이래 내유상서략유년원 차어오제사적이명 고거삼대위수장
단어 의미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5제의 역사가 오래 전 것이라 잔해진 것을 기록함 것을 본 것인데 '상서'라는 책에서 간략히 년표 월표가 있는데 5제의 행적은 비교적 쉬워 선대 3황을 수긍할 수 이게 한다.
表者 明也.
표자 명야
표란 밝히는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눙치는게 아니고)
明言事儀.
명언사의
밝힌다는 것은 일의 얼개를 다루는 것이다
太史公曰:五帝、三代之記, 尙矣.
태사공왈 오제 삼대지기 상의
태사공 사마천이 5제와 3황의 기록이 상(尙書)이다 했다
自殷以前諸侯不可得而譜,周以來乃頗可著.
자은이전제후불가득이보 주이래내파가저
은나라 이전 제후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고 주나라때에 이르러 불완전하나마 기록이 남았다.
孔子因史文次春秋,紀元年,正時日月,蓋其詳哉.
공자인사문차춘추 기원년 정시일월 개기상재
공자가 춘추를 쓰면서 이 상서덕에 시기를 알게된 거고 상세해 진 것이다.
至於序尙書則略,無年月;或頗有,然多闕,不可錄.
지어서상서즉략 무년월 혹파유 연다궐 불가록
상서의 서문에 보면 연월이 없거나 가끔 있어서 허점이 많아 기록으로 보기 어렵다
故疑則傳疑,蓋其愼也.
고의즉전의 개기신야
의문은 의문을 낳으니 아주 신중해야 한다.
餘讀諜記,黃帝以來皆有年數.
여독첩기 황제이래개유년수
첩기(왕들의 계보와 시호를 담은 책)을 읽어보니 황제씨 다음은 모두 연월이 있더라
稽其歷譜諜 終始五德之傳,古文鹹不同,乖異.
계기역보첩 종시오덕지전 고문함부동 괴이
그 역사 계보 첩을 오덕지전(오행의 이치)에 따라 조사해보니 고문들이 서로 달라 괴이하더라
夫子之弗論次其年月,豈虛哉!
부자지불론차기년월 이허재
공부자(공자)가 연월을 논하지 않았으니 허점아닌가
於是以五帝系諜、尙書集世紀黃帝以來訖共和爲世表.
어시이오제계첩 상서집세기황제이래흘공화위세표
난 5제계첩과 상서를 집대성하여 황제이래 공화까지 세표를 만들었다.
張夫子問褚先生曰:「詩言契、后稷皆無父而生. 今案諸傳記鹹言有父,父皆黃帝子也,得無與詩謬秋?」
장부자문저선생왈 '시언설 후직개무부이생 금안제전기함언유부 부개황제자야 득무여시유추'
장부자란 사람이 저선생(少孫)에게 '시경엔 설과 후직이 아비없이 출생했다는데 지금 모든 전기에 보면 아비가 있고 황제씨가 아버지라 합니다 시경에 오류가 있는 건 아닌지요'하니
褚先生曰:「不然. 詩言契生於卵,后稷人迹者,欲見其有天命精誠之意耳. 鬼神不能自成,須人而生,柰何無父而生乎!一言有父,一言無父,信以傳信,疑以傳疑,故兩言之. 堯知契、稷皆賢人,天之所生,故封之契七十里,後十餘世至湯,王天下. 堯知后稷子孫之後王也,故益封之百里,其後世且千歲,至文王而有天下.
저선생왈 '불연 시언설생어란 후직인적자 욕현기유천명정성지의이 귀신불능자성 수인이생 내하무부이생호 일언유부 일언무부 신이전신 의이전의 고양언지 요지설 계개현인 천지소생 소봉지계칠십리 후세야세지탕 왕천하 요지후짓자손지후왕야 고익봉지백리 기후세차천세 지문왕이유천하
저선생이 답하길 '아닙니다 시경엔 설이 알에서 낳았고 후직은 발자국에서 낳았다는데 그건 하늘의 천명과 정성이란 걸 말하고자 함입니다 귀신은 스스로 사람으로 변하지 못하니 어찌 사람이 되며 어찌 아비없는 자식이 있나요. 혹 아비가 있다 없다하는데 믿음은 믿음을 낳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 법 그래서 두가지 설이 있는 겁니다. 요임금은 설과 후직이 하늘이 내신 현인임을 알고 설에게 70리를 봉지로 준겁니다. 설의 10대 후손이 탕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되고, 또한 요임금은 후직의 자손이 천하를 다스릴 것임을 알고 100를 봉토로 더 주니 천년을 지나 주나라 문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된 겁니다.
詩傳曰:『湯之先為契,無父而生. 契母與姊妹浴於玄丘水,有燕銜卵墮之,契母得,故含之,誤吞之,即生契. 契生而賢,堯立為司徒,姓之曰子氏. 子者茲;茲,益大也. 詩人美而頌之曰「殷社芒芒,天命玄鳥,降而生商」. 商者質,殷號也.
시전왈 "탕지선위설 무부이생 설모여자매욕어현구수 유연함란타지 설모득 고함지 오탄지 즉생계 설생이현 요립위사도 성지왈자씨 자자자 자 익대야 시인미니송지왈 '은사망망 천명현조 강이생상' 상자질 은호야
시경이 전하길 "탕임금의 선조가 설이요 아비를 모른다. 설의 어미가 자매와 현구수에서 목욕하려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트려 설의 어미가 가져다 머금다가 삼켜 설을 낳았다 한다. 설은 타고나길 현명하여 요임금이 사도=관리로 세워 子라는 성을 주었고 子라는 성은 자茲 와 같은 뜻으로 더욱 강대해지라는 뜻이다. 시경은 설을 찬미하여 "은의 사직은 넓고 크도다 하늘이 검은 새로 내려와 상왕조를 이뤘다"했다. 상왕조가 본질이요 은나라는 이름이라
文王之先為后稷,后稷亦無父而生. 后稷母為薑嫄,出見大人跡而履踐之,知於身,則生后稷. 薑嫄以為無父,賤而棄之道中,牛羊避不踐也. 抱之山中,山者養之. 又捐之大澤,鳥覆席食之. 薑嫄怪之,於是知其天子,乃取長之. 堯知其賢才,立以為大農,姓之曰姬氏. 姬者,本也. 詩人美而頌之曰「厥初生民」,深修益成,而道后稷之始也.』
문왕지선위후직 후직역무부이생 후직모위강원 출견개인적이리천지 지어신 즉생후직 강원이위무부 천이기지도중 우양피불천야 포지산중 산자양지 우손지대택 조복석식지 강원괴지 어시지기천자 내취장지 요지기현재 입위대농 성지왕희씨 희자 본야 시인미이송지왈 '궐초생민' 심수익성 이도후직지시야"
주나라 문왕은 후직씨의 후손으로 후직씨 역시 아비없이 출생했다 전해진다. 후직씨의 어미가 큰 발자국을 보고 따라 밟고 산기를 가져 후직씨를 낳았다 전한다. 강원이 애비없는 자식이라 후직씨를 천히여겨 길바닥에 버렸는데 짐승들이 밟지않고 지나기에 산속에 버렸더니 산이 먹여살리더라 다시 연못가에 버렸더니 새들이 거둬 먹이기에 괴이하게 여겨 이가 하늘이 내신 사람임을 알고 데려다 길렀다. 요임금은 그 자질을 알고 대농으로 세워 성을 내려 희姬씨라 했는데 姬란 本이라는 뜻으로 시경이 찬미하여 이르길 '그가 백성을 낳았다=나라를 이뤘다'하고 더욱 더 번성하니 이게 후직씨의 시작이다"했다.
孔子曰:『昔者堯命契為子氏,為有湯也. 命后稷為姬氏,為有文王也. 大王命季歷,明天瑞也. 太伯之吳,遂生源也.』
공자왈 "석자요명설위자씨 위유탕야 명후직위희씨 위유문왕야 대왕명셰력 명천서야 태백지오 수생원야"
공자가 이르길 "옛날 요임금이 설에게 子씨 성을 주어 탕왕이 있게 하고 후직씨에게 희姬라는 성을 주어 주 문왕을 있게 하였다. 대왕=?이 季歷=주 문왕의 아버지에게 주 나라를 주고 고공단보의 아들 태백이 오나라 땅에서 나라를 일궜다" 했다.
天命難言,非聖人莫能見. 舜、禹、契、后稷皆黃帝子孫也. 黃帝策天命而治天下,德澤深後世,故其子孫皆復立為天子,是天之報有德也. 人不知,以為泛從布衣匹夫起耳. 夫布衣匹夫安能無故而起王天下乎?其有天命然.」
천명난언 비성인마능견 순 우 계 후직개황제자손야 황제책천명이치천하 덕택심후세 고기자손개복립위천자 시천지보유덕야 인부지 이위범종의필부기이 부포의필부안능무고이기왕천하호 기유천명연'
천명이란 쉽게 설명되지 않아 성인이 아니고선 알지못하는 것이라. 순, 우, 설 후직씨 모두 황제씨 자손이다. 황제씨가 천명으로 천하를 다스리시니 그 덕이 후세에 넘치게 이르고 그 자손들이 모두 천자에 오른 것이요 천자란 하늘이 덕에 보응함이다. 사람들은 그저 보통사람이 일어나 천자가 된 줄 아는데 보통 사람이 그저 그리 될 까닭이 있는가 모두 천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소위 신화의 공유를 본다
주몽의 설화에서 설과 후직씨 설화의 융합된 모습을 본다.
바로 이것이 중화사상이요 동북공정의 빌미....
이를 핏줄의 문제로 보면 동북공정과 민족사학으로 주도권 싸움이 된다.
그러나 혈연이 아닌 선진문물의 전수자 그룹=9夷로 보면 민족사학이니 중화 사상이니 충돌이 없는 형제국으로의 공존이 가능하다.
「黃帝後世何王天下之久遠邪?」
황제후세하왕천하지구원야
'황제씨의 후세가 그리 오래도록 왕으로 천하를 다스리게 됐나요' 다시 물으니
曰:「傳雲天下之君王爲萬夫之黔首 請贖民之命者帝,有福萬世. 黃帝是也. 五政明則修禮義,因天時擧兵征伐而利者王,有福千世.
왈 '전운천하지군왕위만부지검수 청속민지명자제 유복만세 황제지시 오정명즉수례의 인천시거병정벌이리자왕 유복천세
답하길 '전해지길 천자란 모든 백성의 우두머리요 동시에 하늘에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우두머리)로 복을 만 대에 남기는 법인데 황제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5정을 밝히고 제의를 닦으며 이익을 추구하는 왕들을 하늘이 주시는 때에 벌하여 1000세에 복을 전했다.
蜀王,黃帝後世也,至今在漢西南五千里,常來朝降,輸獻於漢,非以其先之有德,澤流後世邪? 行道德豈可以忽秋哉!人君王者擧而觀之.
촉왕 황제후세야 지금재한서남오천리 상래조항 수헌이한 비이기선지유덕 택류후세야 행도덕이가이물추재 인군왕자거이친지
촉왕 또한 황제의 후손으로 한나라 서남 5000리 거리에 있지만 항상 조례하고 한나라에 공물을 바치니 후세에 풍성한 선대의 덕 아니겠나 도덕을 행함에 멈출수 있는가 사람들의 우두머리란 늘 살펴야 하는 일이다.
漢大將軍霍子孟名光者,亦黃帝後世也. 此可爲博聞遠見者言,固難爲淺聞者說也. 何以言之?古諸侯以國爲姓. 霍者,國名也. 武王封弟叔處於霍,後世晉獻公滅霍公,後世爲庶民,往來居平陽. 平陽在河東,河東晉地,分爲詹國.
한대장군곽자먕명광자 역황제후세야 무왕봉제숙처어곽 후세진헌공명곽공 후세위서민 왕래거평양 평양재하동 하동진지 분위첨국
한나라 대장군 곽자맹 이름은 광이고 역시 황제씨 후손이다. 이는 멀리 넓게 볼 줄 아는 사람들이 할 말로 학문이 천박한 자들이 떠들수 있는 건 아니다. 왜 이리 말하느냐 옛날 제후들은 무리를 이루어 성을 갖게 되는데 곽이란 무리의 이름이다. 무왕이 동생과 삼촌들을 곽땅에 봉했는데 후세 진나라 헌공이 곽씨 족을 멸했고 곽씨 후손들은 평민으로 진나라 땅 하동 평양지역에 첨의 무리로 남았다.
以詩言之,亦可爲周世. 周起后稷,后稷無父而生. 以三代世傳言之,后稷有父名高辛;高辛,黃帝曾孫. 黃帝終始傳曰:『漢興百有餘年,有人不短不長,出(自)[白]燕之鄉,持天下之政,時有嬰兒主,欲行車.』霍將軍者,本居平陽(自)[白]燕. 臣爲郞時,與方士考功會旗亭下,爲臣言. 豈不偉哉!」
이시언지 역가위주세 주기후직 후직무부이생 이삼대세전언지 후직유부명고신 고신 황제증손 황제종시전왈 "한흥백유여년 유인부단부장 출자백연지향 지천하지정 시유영아주 욕행차" 곽장군자 본거평양자백연 신위랑시 흥방사고공회기정하 위신언 이불위재"
시경이 말하길 이 또한 주나라의 후세로 주나라는 후직으로부터 시작하고 후직이 아비없이 낳았다 한다. '삼대세전'이란 책에 보면 후직의 아버지는 고신씨요 황제씨의 증손이다. '황제종시전'에 말하길 "한나라가 시작하고 백 여년이면 적당한 사람이 백연향에서 나와 천하 통치를 감당할 것이요 그때 임금은 어린 아이로 수레를 탈 것(왕처럼)이라"했는데 곽장군이 본디 평양 백연향사람이요. 제가 랑으로 재직할 때 방사 고공을 연회장에서 만났는데 제가 말하길 이 어찌 특별하지 않느냐' 했었다.
十二諸侯年表
십이제후연표
太史公讀春秋歷譜諜,至周厲王,未嘗不廢書而歎也.
태사공독춘추역보첩 지주려왕 미상불폐서이탄야
태사공이 '춘추역보첩'을 읽다 주나라 여왕에 이르러 책을 던지고 탄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曰:鳴呼,師摯見之矣!紂為象箸而箕子唏.
왈 오호 사지견지의 주위상저이기자희
아아 태가 지가 본 대로구나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쓰니 기자가 탄식했다
周道缺,詩人本之衽席,關雎作
주도결 시인본지임석 관저작
주나라의 법도가 무너지니 시경의 이치가 죽었으니 '관저'를 지었다.
仁義陵遲,鹿鳴刺焉.
인의능지 록명자언
인의가 산산히 뜯기니 '록명'을 지어 풍자했다.
及至厲王,以惡聞其過,公卿懼誅而禍作,厲王遂奔於彘,亂自京師始,而共和行政焉.
급지려왕 이악문기과 공경구주이화작 려왕수분어체 란자경사시 이공화행정언
제 허물을 듣기 싫어하는 려왕을 보자니 공경대신들이 화를 입어 주살당할까 두려워 결국 려왕은 경사의 난으로 체로 도망하였고 공화(주공과 소공의 통치)정이 이뤄졌다.
是後或力政,強乘弱,興師不請天子.
시후혹역정 강승약 흥사불청천자
그 후 힘의 정치로 약자를 강자가 올라타 군사 동원에 천자의 재가가 필요치 않았다.
然挾王室之義,以討伐為會盟主,政由五伯,諸侯恣行,淫侈不軌,賊臣簒子滋起矣.
연협왕실지의 이토벌위회맹주 정유오백 제후자행 음치불궤 적신기찬자자기의
왕실을 명분으로 토벌하여 회맹주로서 선게 5패요 제후들이 음행도 심하고 신하나 적이 힘이 세면 찬탈하기도 했다.
齊、晉、秦、楚其在成周微甚,封或百里或五十里.
제 진 진 초기재성주미심 봉혹백리혹오십리
제나라 晉나라 秦나라 초나라가 주나라가 강성할 때는 백리 또는 50리 정도의 소국이었다.
晉阻三河,齊負東海,楚介江淮,秦因雍州之固,四海迭興,更為伯主,文武所囉大封,皆威而服焉.
진조삼하 제부동해 초개강회 진인옹주지고 사해실흥 경위백주 문무소라대봉 개위이복언
晉나라는 3개의 강에 갖혀있고 제나라는 동해가 막고있고 초나라는 황하와 회수사이에 진나라는 옹주의 지형으로 전국의 패자로 부침하며 맹주가되었다. 문왕 무왕이 세운 영주들이 모두 멸망당하고 복종하였다.
是以孔子明王道,幹七十餘君,莫能用,故西觀周室,論史記舊聞,興於魯而次春秋,上記隱,下至哀之獲麟,約其辭文,去其煩重,以制義法,王道備,人事浹.
시이공자명왕도 간칠십여군 막능용 고서관주실 논사기구문 흥어노이차춘추 상기은 하지애지획린 약기사문 거기번중 이제의법 왕도비 인사협
그래서 공자가 왕도를 밝히고자 70여 지도자를 만났으나 허용되지 않았기에 주나라 왕실을 살피며 역사서와 책들을 연구하여 노나라를 포함한 '춘추'를 썼는데 멀리는 노나라 은공 부터 애공의 죽음까지 다뤘는데 간략하게 번잡한 것을 빼고 의리와 법도에 관해 적어 왕도가 뭔지 사는게 뭔지까지 다루는 책을 썼다.
七十子之徒口受其傳指,為有所刺譏囉諱挹損之文辭不可以書見也.
칠십자지도구수기전지 위유소자기라휘파손지문사불가이서견야
70여명의 제자도 그 가르침을 전했는데 비평, 권고, 찬양, 은휘, 힐난, 훼손 등의 표현이 있어 책으로 펴내진 않았다.
魯君子左丘明懼弟子人人異端,各安其意,失其真,故因孔子史記具論其語,成左氏春秋.
노군자좌구명구제자인인이단 각안기의 실기진 고인공자사기구론기어 성좌씨춘추
노나라의 군자 좌구명은 공자의 제자들이 각각 제 주장만 세워 본질을 잃을까봐 공자의 기록을 연구하여 좌씨춘추를 지었다.
鐸椒為楚威王傳,為王不能盡觀春秋,採取成敗,卒四十章,為鐸氏微.
탁초위초위왕전 위왕불능진관춘추 채취성패 졸사십장 위탁씨미
탁초는 초나라 위왕의 스승으로 위왕이 춘추를 제대로 읽지못할까봐 성패를 가려 40장으로 된 '탁씨미'라는 요약집을 지었다
趙孝成王時,其相虞卿上采春秋,下觀近勢,亦著八篇,為虞氏春秋.
조효성왕시 기상우경상채춘추 하관근세 역저팔편 위우씨춘추
조나라 효성왕 때에 재상 우경씨는 춘추에서 당대의 세력들을 살펴 8편으로 된 우씨춘추를 지었다.
呂不韋者,秦莊襄王相,亦上觀尚古,刪拾春秋,集六國時事,以為八覽、六論、十二紀,為呂氏春秋.
여불위자 진장양왕상 역상관상고 산습춘추 집육국시사 이위팔람 육론 십이기 위여씨춘추
여불위는 秦나라 장양왕의 재상으로 상고시대부터 춘추를 발췌하여 6국의 일들을 8람 6론 12기로된 여씨춘추를 지었다.
及如荀卿、孟子、公孫固、韓非之徒,各往往捃摭春秋之文以著書,不同勝紀.
급여순경 맹자 공손고 한비자도 각왕왕군척춘추지문이저서 부동승기
순자 맹자 공손고 한비자등의 무리들이 각각 왕왕 춘추를 빌어 책을 냈으니 어느게 낫고 말고를 말할 수 없다.
漢相張蒼歷譜五德,上大夫董仲舒推春秋義,頗著文焉.
한상장창역보오덕 상대부동중서추춘춘의 파저문언
한나라 재상 장창은 5덕을 보첩 형태로, 상대부 동중서는 춘추의 이치에 대한 여러 글을 남겼다.
太史公曰:儒者斷其義,馳說者騁其辭,不務綜其終始;歷人取其年月,數家隆於神運,譜諜獨記世謚,其辭略,欲一觀諸要難.
태사공왈 유자단기의 치세자빙기사 불무종기종시 역인취기년월 수가륭어신운 보첩독기세시 기사략 욕일관제요란
사마천이 말하길 유학자들은 그 이치를 잊고 호사가들이 표현을 빌기는 해도 그 시종을 종합하지 않는다. 역법가는 연월일 만, 점치는 사람들은 신운에, 보첩=족보학자는 시호에만 집착하며 그 문장이 너무 간략해 일이관지한 요점을 파악함에 어려움을 겪는다.
於是譜十二諸侯,自共和訖孔子,表見春秋、國語學者所譏盛衰大指著於篇,為成學治古文者要刪焉.
어시보십이제후 자공화흘공자 표현춘추 국어학자소기성쇠대지저어편 위성학치고문자요산언
그래서 12제후의 족보를 공화(주공과 소공의 연정)에서 공자에 까지 춘추와 국어를 연구하는 이들을 성쇠를 위한 길잡이로 고문을 연구하는 이들을 위한 발췌본을 편찬한다 했다.
史記卷十五 六國年表 第三
사기권십오 육국연표 제삼
索隱 六國,魏、韓、趙、楚、燕、齊,並秦凡七國,號曰「七雄」.
색은 육국 위 한 조 초 연 제 병진범칠국 호왈 '칠웅'
사마정이 쓴 사기의 주석 색은은 위 한 조 초 연 재 그리고 秦을 합쳐 7웅이라 한다.
太史公讀秦記,至犬戎敗幽王,周東徙洛邑,秦襄公始封為諸侯,作西畤用事上帝,僭端見矣.
태사공독진기 지견융패유왕 주동사낙읍 진양공시봉위제후 작서치용사상제 참단견
사마천이 秦記를 읽으며 견융이 유왕을 이기자 주나라가 동으로 洛邑 천도하고 진의 양공이 제후를 봉하기 시작하고 서치를 천제단으로 사용하며 참람한 짓은 한 걸 발견했다.
禮曰:「天子祭天地,諸侯祭其域內名山大川.」
예왈 '천자제천야 제후제기역내명산대천'
애기에 이르길 '천자는 제천을 드리고 제후가 명산대천에 제를 올리는 법'이라 했다.
今秦雜戎翟之俗,先暴戾,後仁義,位在藩臣而臚於郊祀,君子懼焉.
금진잡융적지속 선폭루 후인의 위제번신이려교사 군자구언
지금 오랑캐 풍속이 진나라에 섞여 폭정이 앞서고 인의가 뒤로 밀려 번신들이 교사를 행하니 군자=학자들이 두려워 하더라.
及文公踰隴,攘夷狄,尊陳寶,營岐雍之閒,而穆公修政,東竟至河,則與齊桓、晉文中國侯伯侔矣.
급문공유롱 양이적 존진보 영기옹지한 이목공수정 동경지하 즉여제환 진문중국후백모의
문공이 롱지역을 넘어로 오랑캐를 밀어내고 진나라의 귀중함을 존중하여 옹땅에 주둔하여 목공이 등장하여 동쪽으로 황하까지 다스리니 제나라 환공 晉나라 문공과 어깨를 겨루더라.
是後陪臣執政,大夫世祿,六卿擅晉權,征伐會盟,威重於諸侯.
시후배신집정 대부세록 육경천진권 정벌회맹 위중어제후
그 후부터 배신=배석한 신하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대부들이 록을 먹으며 6경이 晉나라의 권세를 찬탈하며 회맹을 빌미로 제후들의 영향력을 넓혔다.
及田常殺簡公而相齊國,諸侯晏然弗討,海內爭於戰功矣.
급전상살간공이상제국 제후안연불토 해내쟁어전공의
전상이 간공을 죽여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도 제후들이 이를 성토치 않고 전쟁의 공로나 다투며 회맹의 정신을 잊었다
三國終之卒分晉,田和亦滅齊而有之,六國之盛自此始.
삼국종지졸분진 전화역멸제이유지 육국지성자차시
3국이 晉을 나눠가지며 전화가 제나라 땅을 차지하며 소위 6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務在強兵並敵,謀詐用而從衡短長之說起.
무재강병병적 모사용이종형단장지설기
힘을 키워 적과 맞서고 모사와 시비(형단장)가 생겨났다.
矯稱蜂出,誓盟不信,雖置質剖符猶不能約束也.
교칭봉출 서맹불신 수치질부부유불능약속야
왕을 사칭하는 이들이 벌떼처럼 나타나고 맹약은 신뢰를 잃으니 누구도 符를 쪼개 약속하려 하지 않았다.
秦旣得意,燒天下詩書,諸侯史記尤甚,爲其有所刺譏也. 진기득의 소천하시서 제후사기우심 위기유소자기야 진나라가 뜻을 이루자 천하의 시경 서경을 태워버렸는데 특히 각 제후국의 역사서가 가장 심하게 당했는데 진나라에 대한 비난을 실었기 때문이다. 詩書所以復見者,多藏人家,而史記獨藏周室,以故滅. 시서소이복현자 다장인가 이사기독장주실 이고멸 시경 서경이 다시 나타난 것은 속가에 보관 된 덕이며 역사서가 멸실 된 것은 주 왕실에 보관되었기에 없어진 것이다. 惜哉,惜哉! 석재 석재 아쉽고 아쉽다. 獨有秦記,又不載日月,其文略不具. 독유진기 우부재일월 기문략불구 오직 秦나라 역사만 남았지만 날자가 기록되지 않고 간략하여 온전치 못했다. 然戰國之權變亦有可頗采者,何必上古. 연전국지권변역유가파채자 하필상고 그래서 전국시대의 부침이 간혹 기록으로 남았으니 상고사라 할 만 한가? 秦取天下多暴,然世異變,成功大. 진취천하다폭 연세이변 성공대 진나라가 천하에 폭압이 심하여 세상이 크게 기이하게 변하게 만들었다 傳曰「法後王」,何也? 전왈 '법후왕' 하야 전하길 '법이 왕을 앞선다'는데 어찌 그런가? 以其近己而俗變相類,議卑而易行也. 이기근기이속변상류 의비이이행야 법이 실생활에 가까워 서로 쉽게 영향 받고 잘못을 따지는게 쉽기 때문이다. 學者牽於所聞,見秦在帝位日淺,不察其終始,因擧而笑之,不敢道,此與以耳食無異. 학자견어소문 견진재제위일천 불찰기종시 인거이소지 불감도 차여이이식무이 학자들은 진나라 치세가 짧아 소문을 믿으니 그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도에 이르지 못함을 가벼이 여기는데 이는 남의 말을 쉽게 믿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耳食: 귀가 얇은 것 悲夫! 비부 슬픈 일이다. |
餘於是因秦記,踵春秋之後,起周元王,表六國時事,訖二世,凡二百七十年,著諸所聞興壞之端.
여어시인진기 종춘추지후 기주원왕 표육국시사 흘이세 범이백칠십년 저제소문흥괴지단
내(餘=余) 진나라 역사의 부실함으로 인해 춘추를 따라 주나라 왕조의 시작부터 6국의 일들 그리고 진나라 2세 황제도 끼워넣은 모든 흥망성쇠의 소문을 책으로 남긴다.
後有君子,以覽觀焉.
유후군자 이람관언
후대 학자들이 이를 편람하기 바란다.
* 진나라 역사가 부실하므로 춘추를 참고하여 270여년의 역사를 정리하였다는 말
秦楚之際月表
索隱張晏曰:「時天下未定,參錯變易,不可以年記,故列其月.」 今案:秦楚之際,擾攘僭篡,運數又促,故以月紀事名表也.
색은장안왈 '시천하미정 참착변이 불가이년기 고열기월' 금안 진초지제 요양참찬 운수우촉 고이월기사명표야
색은에서 장안이 말하길 '천하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뭔가 부족해 변화가 심했기에 연대를 기록하기 어려워 月로 나열한 것'이다 했다. 지금 주석하자면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엎치락뒤치락 운수도 촉급하였기에 월 단위로 표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太史公讀秦楚之際,曰:初作難,發於陳涉;虐戾滅秦,自項氏;撥亂誅暴,平定海內,卒踐帝祚,成於漢家.
태사공독진초지제 왈 초작란 발어진섭 학루멸진 자항씨발란주폭 평정해내 졸천제조 성어한가
사마천이 진초역사를 읽고 말하길 처음 학정의 진나라에 난을 일으킨 것은 진섭이요 항우씨로 부터 난리를 정리하고 주벌하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마침내 임금의 자리에 오른 건 한나라 왕조에서 이뤄졌다.
五年之閒,號令三嬗.
오년지한 호령삼선
5년 사이에 호령하는 사람이 3 번 바뀌었다.
自生民以來,未始有受命若斯之亟也.
자생민이래 미시유수명약사지극야
사람이 생긴 이래, 이리 빠르게 천명을 받은 적이 없다
昔虞、夏之興,積善累功數十年,德洽百姓,攝行政事,考之於天,然後在位.
석우 하지흥 적선루공수십년 덕흡백성 섭행정사 고지어천 연후재립
옛날 우나 하나라의 발흥은 선업과 공을 수십년 들여 다스림을 맡아 백성들에게 널리 퍼지고서야 하늘의 지켜보심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를 것이니
湯、武之王,乃由契、后稷修仁行義十餘世,不期而會孟津八百諸侯,猶以為未可,其後乃放弒.
탕 무지왕 내유설 후직수인행의십여세 불기이회맹진팔백제후 유이위미가 기후내방시
탕과 무왕은 설과 후직의 10여대를 거친 仁이 800명의 제후들과 맹진에서 모였음에도 아직 모자라다 했으나 나중에 걸과 주왕을 죽이에 된 것....
秦起襄公,章於文、繆,獻、孝之後,稍以蠶食六國,百有餘載,至始皇乃能並冠帶之倫.
진기양공 장어문 목 헌 효지후 초이잠식육국 백유여재 지시황내능병관대지륜
진나라의 양공으로 일어나고 목공 헌공 효공이후에 6국을 잠식해들어가고 100여년이 지나 시황제가 모두를 왕의 도리로 묶어냈다.
以德若彼,用力如此,蓋一統若斯之難也.
이덕약피 용력여차 개일통약사지란야
덕이란 저렀듯 힘드는 일이니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이리 어렵고 시간 걸리는 일이다.
秦既稱帝,患兵革不休,以有諸侯也,於是無尺土之封,墮壞名城,銷鋒鏑,鉏豪桀,維萬世之安.
진기칭제 환병혁불휴 이유제후야 어시무척토지봉 타괴명성 소병적 서호걸 유만세지안
진나라가 황체라 칭하는데 병란과 혁명이 그치지 않음은 제후들이 있어서이기 때문에 한 치의 봉토를 주지 않고(분봉제를 없애고) 중심이 도리 만한 성들을 무너뜨리고 화살촉을 녹여(무기를 없애고) 호걸들을 제거하여 만대 안정을 도모했다.
然王跡之興,起於閭巷,合從討伐,軼於三代,鄉秦之禁,適足以資賢者為驅除難耳.
연왕적지흥 기어여항 합종토벌 일어삼대 향진지금 적족이자현자위구제난이
왕이 되는 것은 흔히 민간의 불만이 모여 왕조를 무너뜨리고 3대(진나라)를 이었는데 진나라의 금법이 현자들의 반역을 어렵게 한 것...
故憤發其所為天下雄,安在無土不王.
고분발기소위천하웅 안재무토불왕
이런 백성들의 분노가 천하 영웅들을 만들고 봉토와 제후없는 상태로 안정을 이루었다.
此乃傳之所謂大聖乎?
차내전지소위대성호
이것이 소위 전해지는 성인을 말함인가?
豈非天哉,豈非天哉!
이비천재 이비천재
어찌 하늘 뜻 아니겠는가?
非大聖孰能當此受命而帝者乎?
비대성숙능당차수명이제자호
성인이 아니라면 누가 이리 천명을 받아 황제가 되겠는가
[索隱述贊]秦失其鹿,腢雄競逐. 狐鳴楚祠,龍興沛谷. 武臣自王,魏豹必復. 田儋據齊,英布居六. 項王主命,義帝見戮. 以月系年,道悠運速. 洶洶天下,瞻烏誰屋?真人霸上,卒享天祿.
漢興以來諸侯王年表
한흥이래제후왕연표
索隱應劭云:「雖名為王,其實如古之諸侯.」
색은응소운 '수명위왕 기실여고지제후'
색은(=사마정의 사기 주석서)에서 응소가 말하길 '누구든 왕이라는 사람은 기실 옛날로 말하면 제후 일 뿐'이다 하였다.
太史公曰:殷以前尚矣.
태사공왈 은이전상의
사마천이 말하길 은나라 이전이 상고시대라 했다.
周封五等:公,侯,伯,子,男.
주봉오등 공 후 백 자 남
주나라 때에 5가지로 제후를 봉했는데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이다
然封伯禽、康叔於魯、詹,地各四百里,親親之義,囉有德也;太公於齊,兼五侯地,尊勤勞也.
연봉백금 강숙어노 첨 지각사백리 친친지의 라유덕야 태공어제 겸오후지 존근노야
그리고 백금을 노나라에 강숙을 첨=위나라에 봉했는데 400리 정도였고 친소를 나타내고 덕을 내 보이기 위한 것이다 태공을 제나라에 봉해 5제후의 영지를 다스리게 한 것은 그의 공로를 존중함이었다.
武王、成、康所封數百,而同姓五十五,地上不過百里,下三十里,以輔詹王室.
무왕 성 강소봉수백 이동성오십오 지상불과백리 하삼십리 이보첨왕실
모왕 성왕 강왕 때엔 봉토 영주가 수백명이었고 왕실 가족이 55명이었다 봉지는 100리를 넘지 않고 작으면 30리 정도였으며 이들은 왕실을 돕는 역할 이었다.
管、蔡、康叔、曹、鄭,或過或損.
관 채 강숙 조 정 혹과혹손
관 채 강숙 조 정 등은 넘치기도 더 작기도 했다.
厲、幽之後,王室缺,侯伯強國興焉,天子微,弗能正.
여 유지후 왕실결 후백강국흥언 천자미 불능정
여왕 유왕 이후 왕실이 부실해져 제후들이 강성해졌고 천자가 약하니 다스리기 힘들었다.
非德不純,形勢弱也.
비덕불순 형세약야
덕이 온전치 못해서 아니라 힘이 약해서일 뿐이다.
漢定百年之閒,親屬益疏,諸侯或驕奢,忕邪臣計謀為淫亂,大者叛逆,小者不軌於法,以危其命,殞身亡國. 한정백여유년 친속익소 제후혹교치 태사신게모위음란 대자반역 소자불궤어법 이위기명 운신망국 한나라가 안정되고 100여년 지나자 식속들이 서로 멀어져 어떤 제후는 교만하고 사치해져 사고 치거나 센 제후는 반란을 일으키고, 약한 제후는 법에서 벗어나니 그 운명이 위험해져 체신을 잃고 나라를 잃었다. 天子觀於上古,然後加惠,使諸侯得推恩分子弟國邑,故齊分為七,趙分為六,梁分為五,淮南分三,及天子支庶子為王,王子支庶為侯,百有餘焉. 천자관어상고 연후가혜 사제후득추은분자제국읍 소제분칠 조분위육 양분위오 회남분삼 급천자지서자위왕 왕자지서위후 백유여언 천자가 상고시대를 살펴 은혜를 더욱 베푸니 더 많은 제후가 무리와 읍을 얻게되니 제나라는 7개로, 조나라는 6개로, 양나라는 5개로 화남은 3개로 나뉘었고, 천자의 첩실 자식들이 왕이 되고 왕자들의 서출은 제후가 되니 100여명을 헤아렸다. 吳楚時,前後諸侯或以適削地,是以燕、代無北邊郡,吳、淮南、長沙無南邊郡,齊、趙、梁、楚支郡名山陂海鹹納於漢. 오초시 전후제후혹이적삭지 시이연 대무북변군 오 회남 장사무남변군 제 조 양 초지군산피해함납어한 오초의 난을 계기로 제후들의 봉지가 삭감되니 연나라 대나라는 북쪽 郡을 잃고 오나라 회남 장사는 남쪽 郡을 잃고, 제나라 조 나라 양나라 초나라는 명사관 호수 바다가 한의 직속이 되었다. 諸侯稍微,大國不過十餘城,小侯不過數十里,上足以奉貢職,下足以供養祭祀,以蕃輔京師. 제후초미 대국불과십여성 소후불과십여리 상족봉공직 하족이공양제사 이번보경사 제후들이 축소되어 큰 나라라야 10여성이요 작은 제후는 몇 십리 봉지라 위로는 나라에 진상하고 아래로는 수도를 돕는 것에 그쳤다. 而漢郡八九十,形錯諸侯閒,犬牙相臨,秉其阨塞地利,強本幹,弱枝葉之勢,尊卑明而萬事各得其所矣. 이한군팔구십 형착제후한 견아상임 병기애새지리 강본간 약지엽지세 존비명이만사가각득이기소의. 한나라의 군이 8-90개로 제후들의 거리가 서로 개 이빨이 맞물리듯 가까워 지니 중앙정부를 막는 요새처럼 되고 중앙정부는 강하고 나머진 잎사귀처럼 본말이 바로서니 위아래가 분명해지고 한계가 정확해졌다. |
太史公曰:匈奴絕和親, 攻當路塞;閩越擅伐, 東甌請降. 태사공왈 흉노절화친 공당노새 민월천대 동구청항 사마천이 이르길: 흉노가 화친을 끊고 요새들을 공격하는데 민월이 대나라, 동구에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二夷交侵, 當盛漢之隆, 以此知功臣受封侔於祖考矣. 이이교침 당성한지융 이차지공신수봉모어조고의 두 오랑캐가 교대로 침공함은 한나라가 융성할 때 일으로 이를 조상들만치 봉지를 받을 일이라 봤다. 何者? 自詩書稱三代「戎狄是膺, 荊荼是征」, 齊桓越燕伐山戎, 武靈王以區區趙服單於, 秦繆用百里霸西戎, 吳楚之君以諸侯役百越. 하자 자시서칭삼대 '융적시응 형도시정' 제환월연벌산융 무령왕이구구조복선어 진목용백리패서융 오초지군이제후역백월 왜냐? 시경 서경이 말하는 3대 때에도 '융과 적을 정벌하고 향과 도를 친다'했는데 제나라 환공은 연나라를 넘어 산융을, 조나라 무령왕은 적은 병력으로도 선우씨를 정복했고 진나라 목왕은 백리해를 통해 서융을, 오나라 초나라는 100여개 월족을막는 제후의 역할을 했다. 況乃以中國一統, 明天子在上, 兼文武, 席捲四海, 內輯億萬之衆, 豈以晏然不為邊境征伐哉! 황내이중국일통 명천자제상 겸문누 석권사해 내집억만지중 이이안연불위변경정벌재 마침내 중앙 무리들이 통일되고 문무를 겸하여 전국을 석권하여 안으로 많은 중생을 편안케 하신 천자가 계심을 밝히는 일이니 어찌 변방의 오랑캐를 치지 않으리 自是後, 遂出師北討強胡, 南誅勁越, 將卒以次封矣. 자시후 수출사북토강호 남주경월 장졸이차봉의 이 이후로 장수를 북으로 보내 오랑캐와 겨루고 남쪽 월족의 주리를 틀면 봉지를 받게되었다. |
後進好事儒者褚先生曰:太史公記事盡於孝武之事,故復修記孝昭以來功臣侯者,編於左方,令後好事者得覽觀成敗長短絶世之適,得以自戒焉.
후진호사유자저선생왈 : 태사공기사진어효무지사 고복수기효조이래공신후자 편어좌방 영후호사자득람관성패장단절세지적 득이자계언
후진으로 사적을 연구하던 저선생이 말하길 : 사마천의 기록들은 모두 효무제에 관한 것이라 소제이래 공신제후들을 다시 연구하여 왼쪽에 편집해뒀으니 후세에 사적 연구자들이 들여다보면 그 부침과 실패를 알게 되리라.
當世之君子,行權合變,度時施宜,希世用事,以建功有土封侯,立名當世,豈不盛哉!
당세지군자 행권합변 도시시의 희세용사 이건공유토봉후 입명당세 이부성재
당시의 영웅들을 보자면 권력을 변화에 맞춰 쓰고 법을 때에 맞게 베풀어 세속에 맞게 썼기에 그 공으로 제후에 봉해지고 이름을 떨친 것이니 이 어찌 영광이 아니겠나
觀其持滿守成之道,皆不謙讓,驕蹇爭權,喜揚聲譽,知進不知退,終以殺身滅國.
관기지만수성지도 개불겸양 교건쟁권 희양성예 지진부지퇴 종이살신멸국
그들의 권력유지의 이치를 보면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권력싸움이나 하고 이름만 내려하고 나서기만 했지 물러설 때를 몰라 제 몸을 망치고 무리를 망하게 했다.
以三得之,及身失之,不能傳功於後世,令恩德流子孫,豈不悲哉!
이삼득지 급신실지 불능전공어후세 영은덕유자손 이불비재
이런 세가지를 하니 목숨을 잃고 후대에 공을 세워 후손에게 끼칠 은덕을 만들지 못하니 이 슬프지 않을소냐
夫龍雒侯曾為前將軍,世俗順善,厚重謹信,不與政事,退讓愛人.
부용락후증위전장군 세속순선 후중근신 불여정사 퇴양애인
용락후였던 전장군은 세속에 어그러지지 않고 처신이 중후하고 정사를 가까이 하기 보다 물러서서 사람들을 아꼈다
其先起於晉六卿之世.
기선기어진육경지세
그 선조들은 晉나라 정승을 지냈는데
有土君國以來,為王侯,子孫相承不絶,歷年經世,以至於今,凡百餘歲,豈可與功臣及身失之者同日而語之哉?
유토군국이래 위왕후 자손상승부절 역년경세 이지어금 범백여세 이가여공신급신실지자동일이어지재
땅과 무리를 차지한 왕과 제후로서(=우두머리자 천자에 봉사하는) 자손들이 재상을 역임하며 100여 년 세월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는데 어찌 목숨을 잃은 공신들과 지나온 날들이 같다고 말할수 있나
悲夫,後世其誡之!
비부 후세기계지
애석하도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경계할 지어다.
建元已來王子侯者年表
-건원칭제이후 왕자 제후들...
制詔禦史:「諸侯王或欲推私恩分子弟邑者,令各條上,朕且臨定其號名.」
제조어사 '제후왕혹욕추사은분자제읍자 영각조상 짐저임정이호명'
어사(감찰 업무)에게 명하길 '내가 개인적으로 식읍을 나눠준 제후나 왕에게 각자가 천자에게 지킬 조항과 이름을 정해주리라'하니
太史公曰:盛哉,天子之德!
태사공왈 성재 천자지덕
사마천이 말하길 천자의 덕이 크도다!
一人有慶,天下賴之.
일인유경 천하뢰지
한 사람의 선함이 천하를 편안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