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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呂太后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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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후자 고조미시비야 생요혜제  여노원태후


여태후는 유방이 왕이 되기전 부인으로 효혜제와 딸 노원태후를 낳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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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고조위한왕 득정도척희 애행 생조은왕여의 


유방이 한나라 왕이되고 정도 출신 척희를 부인으로 얻어 총애하여 조은왕 여의를 낳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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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제위인약 고조이위불류아 상욕폐태자 입척희자여의 여의유아


유방은 효혜제가 어질고 유약하여 자기를 닮지않았다 생각해 태자에서 폐위하고  척희의 아들 여의를 자기와 닮았다고 태자로 세우기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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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희행 상종상지관동 일야체읍 욕립기자대태자


척희를 총애하여 늘 유방을 따라다니며 관동에서 어느 날 울며 여의를 태자로 옹립해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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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연장 상유수 희견상 익소 


여후가 나이가 많아 두문불출하니 유방과 볼 일이 적어져 점점 소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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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입위조왕후 기대태자자수의 뢰대신쟁지 급유후책 태자득모폐


여의가 조나라 왕이 되어 태자가 될 뻔하였으나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유후=장량의 기지로 태자=효혜제와 여태후의 폐위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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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위인강의 좌고조정천하 소주대신다여후력


여태후는 사람됨이 강하여 유방이 천하를 차지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대신들을 제거하는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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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형이인 개위장


여태후의 오래비들은 모두 장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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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주여후사사 봉기자여태위역후 자산위교후  차형여석지위건성후


큰 오빠 주여후가 죽고 아들 여태가 역 지역 제후가 되고 아들이 교지역 제후가 되었고 둘째 오빠 여석지는 건성지역 제후가 되었다.


惠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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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십이년사월갑진 붕장락궁 태자습호위제


유방이 12년 4월 갑진일에 장락궁에서 붕어하니 태자가 제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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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고조팔자  장남비 효혜형야 이모 비위제왕  여개효혜제 척희자여의위조왕 박부인자항위대왕 제희자자회위앵왕 자우위회양왕 자장위회남왕 자건위연왕 


유방에게는 8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비가 효혜제의 배다른 형으로 제나라의 왕이 되었고 남은 동생들은 효혜제의 동생인데 척희의 아들 여의가 조나라의 왕이 박부인의 아들 항이 대나라의 왕으로 다른 빈들의 아들인 회는 양나라 왕으로 아들 우는 화양왕으로 장은 화남왕으로 건은 연나라의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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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제교위초왕 형자비위오왕 


유방의 아우 교는 초나라의 왕이 되었고 형의 아들 비는 오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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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씨공신번군오예자신위장사왕


유방의 혈연 아닌 공신 중 번의 지도자 오예의 아들 신이 장사의 왕이 되었다.


-여가서 유방의 통치술을 보면 진시황과 다른 면이 보이는데 진시황은 법이란 굴레로 제후들을 압박한 반면 유방은 소위 혈연으로 묶어낸다는 것....


그 가운데 소위 요지랄수 있는 초나라엔 동고동락한 동생을 왕으로 보내는 것이 그 특징적이다. 


우리는 소위 왕은 아들=태자로 이어지는 세습을 당연시하는데.... 


한 지역의 지도자로서의 왕과 통일 천하의 왕은 다르다는 걸 밝힌 것이 소위 天子...


그러나 천자는 소위 회맹의 선출직이기에 권위가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왕조란 엄밀한 의미로 봉건국이라 볼 것이다.


그러나 첫 통일 왕조로서의 진의 등장은 봉건체제가 아닌 제후국 체제로의 전환으로 볼 것이다.


소위 상고시대의 동등한 국가 위상이 어느 한 지도자에게 종속되는 것의 시작이 진나라의 기여.... 



. 使

여후최원척부인급기자조왕 내금영항수척부인 이소조왕 사자삼반


여태후가 척부인을 극도로 미워해 아들인 조나라 왕 여의까지도 미워해 영항에 척부인을 가두고 조나라 왕도 소환했다. 사자가 3번이나 되돌아왔다.


使:「 . . .」

조상건평후주창위사자왈 '고제속신조왕 조왕연소 절문태후원척부인 욕소조왕병주지 신불감견왕 왕차역병 불능봉조'


조나라 승상 건평후 주창이 사신에게 이르길 '유방이 나로 나이 어린 아들인 조나라 왕의 신하로 보냈다. 여태후가 척부인을 미워해 조나라 왕을 불러 주살하려한다고 듣고 신하된 도리로 왕을 어찌 보내나 또한 왕이 병중이라 부름에 응할 수 없었다'하니


使.

여후대노 내사인소조상


여태후가 몹시 화나 조나라 승상을 소환했다.


使.

조상징지장안 내사인복소조왕


조나라 승상이 장안으로 불려가고 다시 조나라 왕을 소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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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래 미도


조나라 왕이 장안에 도착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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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제자인 지태후노 자영조왕패상 여입궁 자협여조왕기거음식


성품이 좋은 효혜제가 태후가 화난 걸 아는 지라 조나라 왕을 패상에서 맞이하여 궁으로 들여 조나라 왕과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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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욕살지 부득한


태후가 조나라 왕을 죽이고자하나 틈이 나질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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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원년십이월 제신출사


효혜제원년 12월 효혜제가 새벽 사냥을 가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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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소 불능조기


조나라 왕이 나이가 어려 늦잠이 많아 일찍 일어나지 못하자


使.

태후문기독거 사인지탐음지


태후가 조왕이 홀로 있음을 알고 사람을 보내 독주를 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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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효혜환 조왕이사


날 밝고 효혜제가 돌아와 보니 조왕이 이미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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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내사회양왕우위조왈


그래서 회양왕 유우를 조나라 왕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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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조사역후부추시위영무후


여름 조서를 역후에게 내려 역후의 부친을 영무후로 임명하였다.


使 」.

태후수단척부인수족 거안 휘이 음음약 사거측중 명왈 '인체'


태후는 결국 척부인의 사지를 잘라내고 눈을 뽑고 귀를 지지고 말 못하게 하는 약을 먹이고 화장실에 살게하고 '사람 돼지'로 부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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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일 내소효혜제관인체


그리 며칠후 효혜제가 그 몰골을 보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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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견 문 내지기척부인 내대곡 인병 세여불능기


효혜가 묻기를 저가 척부인인 줄 알아보고 대성통곡하며 병을 얻어 몇년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하더라


使:「. .」

사인청태후왈 '차비인소위 신위태후자 종불능치천하'


태후를 뵙기 청하고 '이건 사람 할 짓 아닙니다 저는 태후의 아들로서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겠읍니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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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이차일음위음락 불청정 고유병야


효혜가 이후 술과 여자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병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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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초원왕  제도혜왕개래조 


2년 초의 원왕 제나라의 도혜왕이 조회에 왔다.  초의 원왕=유방의 동생, 제나라 도혜왕=유방의 맏아들, 효헤제의 이복 형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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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월 효혜여제왕연음태후전 효혜이위제왕형 치상좌 여가인지례  


매년 10월의 조회에 효혜제와 제나라 이복형 비가 여태후 안전에서 연회를 하는데 효혜제가 비를 깍듯히 형으로 모셔 상석을 양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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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노 내영수양치탐 치전 영제왕기위수  


태후가 분노하여 두개의 독배를 앞에 놓고 제나라 왕 유비에게 축수하도록 시켰다.  축수후 독배를 내릴 심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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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기 효혜역기 취치담구위수  


유비가 일어나니 효혜제도 같이 일어나 독배를 들고 축수하려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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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내공 자기범효혜치  


태후가 효혜제가 죽을 걸 두려워해 효혜제의 잔을 쳐 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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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괴지 인불감음 상취거 


유비가 기이하게 생각하고 취한 척 독배를 마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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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지기탐 제왕공 자이위불득탈장안 우  


그것이 독배란 걸 알고 유비가 겁나서 장안에서 살아나갈수 있을지 걱정하는데


:「. . .」

제내사사설왕왈  '태후독유효혜여노원공주 금왕유칠십여성 이공주내식수성 왕성이일군상태후 위공주탕목읍 태후필희 왕필무우'


제나라 신하 내사=내무부 장관??? 가 이르길 '태후의 마음 속엔 효혜제와 노원공주 뿐입니다 지금 왕은 70여개 성을 다스리고 공주는 겨우 몇개의 식읍 뿐인데 왕께서 성의 표시로 한 군을 떼어 공주의 탕목읍으로 하면 태후가 좋아하고 왕께선 살아 돌아 가실 겁니다'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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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제왕내상성양지군 존공주위왕태후 


유비가 성양 군을 상납하고 공주를 왕태후로 추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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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희 허지  


여후가 기뻐 허락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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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치주제저 악음 태 귀제왕  


제나라 궁에서 주연을 베풀어 유비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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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 방축장안성 사년취반 오년육년성취  


3년 장안성을 확장하는네 4년에 반 5,6년에 완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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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래회  십월조하


제후들이 모두 10월 조회에 참석하여 축하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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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년추팔월무인 효혜제붕 


7년 가을 8월 무인 일에 효혜제가 23세 나이에 붕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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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태후곡 읍불하 


상인데도 태후가 눈물은 흘리지 않고 곡하더라


:「 ?」

유후자장벽강위시중 년십오 위승상왈   '태후독유효혜 금붕 곡불비 군지기해호'


유후 장량의 아들 시중직을 맡은 장벽강이 15살임에도 승상에게 이르길 '태후의 하나뿐인 아들 효혜제가 죽었는데 곡은 하지만 슬퍼하질 않습니다 승상=아버지 장량?? 께서 왜 그런지 아십니까'물으니  


:「?」

승상왈  '하해'


승상이 답하길 어찌 알겠냐하니


:「 . .」

벽강왈 '제무장자 태후외군등 군금청배여태 여산 여록위장 장병거남북군 급제여개입궁 거중용사 여차직태후심안 군등행득탈화의'


벽강이 말하길 '효혜제가 성인인 아들이 없으니 태후가 타성받이들을 두려워 해서입니다 얼른 여태 여산 여록=여태후의 오라비들을 장수로 삼고 사방에서 군권을 장악하게 하고 여씨들을 궁으로 모아들여 정사에 참여시키면 태후가 마음을 놓고 타성 받이들은 모두 화를 면할 겁니다'하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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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내여벽강계


승상이 벽강의 계책대로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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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열 기곡내애  


태후가 기뻐하며 곡을 진심으로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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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권유차기 내대사천하


여씨 일가의 권력이 이로 시작되고 전국에 대사면령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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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신축 장 


9월 신축일에 매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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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즉위위제 알고묘 


태자가 황제가 되어 유방의 묘를 알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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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 호령일출태후


즉위 원년부터 모든 명령이 태후에게서 나왔다.


呂太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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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칭제 의욕립제여위왕 문우승상왕릉


태후가 통제하면서 여씨를 왕을 세우고저 우승상 왕릉에게 물으니


:「 』. , .」.

왕릉왈   '고제형백마맹왈 "비유씨이왕 천하공격지"  금왕여씨 비약야' 태후불열


왕릉이 답하길 '유방께서 백마를 잡아 맹세하길 "유씨 혈통이 아닌 왕이 나온다면 천하가 공격할 것이다"했습니다 이제 태후가 왕노릇하시니 맹약에 어긋나고 있습니다'하니 태후가 불쾌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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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좌승상진평  강후주발


다시 좌승상 진평과 주발에게 물으니


:「 .」 .

발등대왈    '고제정천하 왕자제 금태후칭제 왕곤제제여 무소불가' 태후희 태조 


주발등이 답하길 '유방이 천하를 안정시키며 왕의 자제들을 왕으로 삼았으니 이제 여씨인 태후가 다스리시니 여씨 혀제를 왕으로 세워도 안될 일 없습니다'하니 태후가 기뻐하며 조회를 파했다.


:「 ?」

왕릉양진평  강후왈  '시여고조삽혈맹 제군부재사 금고재붕 태후여주 욕왕여씨 제군종욕아의배약 하면목견고제지하'


왕릉이 진평 강후에게 말하길 '유방이 혈맹을 맺을 때 귀하들이 반발한 적 있소? 이제 유방이 죽었고 태후가 왕노릇한다고 여씨를 왕으로 세운다면 귀하들은 그 맹약을 어기자는 것이니 지하에 있는 유방을 뵐 면목이 있겠소'하니


:「 .」

진평  강후왈     '어금면절정쟁 신불여군  부전사직 정유씨지후 군역불여신'


진평 강후가 답하길  '이제 정쟁을 면하는 일에는 내가 당신만 못하지만 사직을 온전히 하고 유씨 후예를 지키는 일엔 당신이 우리만 못할 거외다'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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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무이응지


왕릉이 대응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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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태후욕폐왕릉 내배위제태부 탈지상권 왕릉수병면귀  


11월 태후가 왕릉 폐하고 황제의 태부로 옮기고 재상의 권세를 면탈하니 왕릉이 병을 핑계로 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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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좌승상평위우승상 이벽약후심이기위좌승상  


좌승상 진평을 우승상으로 세우고 벽양후 심이기를 좌승상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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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상불치사 영감궁중 여랑중령  


좌승상은 정치엔 간여치 않고 궁중사를 돌보니 낭중령과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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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득행태후 상용사 공경개인이결사  


심이기가 태후의 총애를 받아 모든 일에 간여하니 공경대부도 그의 결재를 받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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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존역후부위도무왕 욕이왕제여위점


역후의 부친 여택을 도무왕으로 추존하고 여씨들을 점차 왕으로 세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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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태후욕후제여 내선봉고조지공신랑중령무택위박성후


4월 제후들을 여씨로 바꾸기 위해 먼저 유방의 공신 낭중령 무택을 박성의 제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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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공주훙 사시위노원태후


노원공주가 죽자 노원태후라 시호를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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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언위노왕


노원공주의 아들 장언을 노나라 왕으로 세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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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언의 아비는 선평후 장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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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도혜왕자장위주허후 이여록여처지 


제나라 도혜왕의 아들 장을 주허의 제후로 삼고 여록의 딸을 처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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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상수위평정후 소부연위오후


제나라 승상 제수를 평정후로 소부의 양성연을 오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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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봉여종위패후 여평위부류후 장고위남궁후


그리고 여종을 패후로 여평을부류후로 장고를 남궁후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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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욕왕여씨 선립효혜후궁자강위화양왕 자불의위상산왕 자산위양성후 자조위지후 자무위아관후


태후가 여씨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먼저 효혜의 후궁의 아들 강을 회양왕으로 불의를 상산왕으로  산을 양성후로 조를 지후로 무를 아관후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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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풍대신 대신청립역후여대위여왕 태후허지


태후가 대신들을 부추겨 대신들이 역후 여대를 여왕으로 추대하니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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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강후석지졸 사자유죄 폐 립기제여록위호릉후 속강후후


건성후 여석지가 죽고 후계자를 죄를 물어 폐하고 동생 여록을 호릉후로 강후의 후임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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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상산왕훙 이기제양성후산위상산왕 경명의


2년 상산왕 유불의가 죽자 그 동생 양성후 유산을 상산왕으로 세워 이름을 유의로 바꿨다 


一年 .

십일년 여왕대훙 시위숙왕 태자가대립위왕 


11년 영왕 대가 죽자 숙왕으로 추대하고 태자 여가를 왕으로 세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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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 무사


3년째는 별 일 없었고


忿 .

사년 봉여수위임광왕 여타위유후 여갱시위췌기후 여분위여성후 급제후승상오인


4년 여수를 임광왕으로 여타를 유휴로 여갱시를 취기후로 여분은 여성후로 그리고 제후들의 승상 5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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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평후녀위효혜황후시 무자 상위유신 취미인자명지 살기모 입소명자위태자


선평후의 딸이 효혜황후가 되곤 자식이 없자 임신을 가장하고 미인의 아이를 데려와 미인을 죽이고 태자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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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붕 태자립위제


효혜제가 죽고 태자가 황제가 되었고  


:「 .」

제장 혹문기모사 비진황후자 내출언왈  '후안능살오모이영아 아미장 장즉위변'


황제가 자라며 그 어미가 죽임을 당하고 황후의 자식이 아니라는 말을 듣곤 '내 아직은 아니지만 힘이 강성해지면 변괴가 생기리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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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문이환지 공기위란 내유지영권중 언제병심 좌우막득현


효혜황후가 듣고 변란이 걱정되어 영항에 가둬두고 황제가 병이 심하다 하니 좌우승상 누구도 왕을 알현하지 못하더라   


:「 . .」

태후왈  '범유천하치위만민명자 개시여천 용지여지 상유환심이안백성 백성흔연이사기상 환은교통이천하치 금황제병구불이 내실혹혼란 불능계사종묘제사 불가속천하 기대지'


효혜태후가가 말하길 '무릇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만민의 목숨을 다루는 대지처럼 황제가 편안해야 백성도 편안하고 백성이 기뻐해야 황제도 기뻐하는 법 그리 시쁨을 함께할 때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지금 황제가 병이 깊어 혼란이 생길까 하고 종묘사직을 받들지 못할듯 하니 천하가 어찌 따르리오 황제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한듯 하오'하니   


:「 .」

군신개돈수언  '황태후위천하제민계소이안종묘사직심심 군신돈수봉조'


군신들이 모두 손모아 말하길 '황태후께서 전하 백성들을 위하시고 종묘사직의 안위를 걱정하시니 저희들은 그저 따르겠읍니다'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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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폐위 태후유살지


황제를 폐위하고 태후가 은밀히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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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병진 입상산왕의위제 경명왈홍


5월 병진일에 상산왕의를 황제로 세우고 이름을 유홍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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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칭원년자 이태후제천하사야


원년이라 하지않음은 태후가 나라를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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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후도위상산왕


지후 조를 상산왕으로 세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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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태위관 강후발위태위


태위라는 관직을 만들어 강후 주발을 태위로 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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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팔월 회양완훙 이제아관후무위회양왕


5년 8월 화양왕이 죽자 동생인 아관후 무를 화양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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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년십월 태후왈여왕가거처교지 폐지 이숙왕대제여산위여왕


6년 10월에 태후가 말하길 여왕인 여가가 교만하고 방자하니 숙왕이며 동생인 여산을 여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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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사천하


여름 대사면령을 내렸다


봉제도혜왕자흥거위동모후


제나라 도혜왕 아들 흥을 동모의 제후로 세웠다.




.

칠년정월 태후소조왕우


7년 정월 여태후가 조나라 왕 유우를 불렀다.


:「! 」.

우이제여녀위수후 불애 애타희 제여여투 노거 참지어태후 무이죄과 왈 '여씨안득왕 태후백세후 오필격지'


유우는 태후가 지정한 여씨 집안 여자를 사랑하지않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그 여씨 여자가 질투하고 문노하여 태후에게로 가서 참소하고 말하길 '여씨가 어찌 왕이 된단 말인가 태후가 죽으면 내 쳐 없애리'라 하더라고 무고하여 죄를 만들어 씌웠다


.

태후노 이고소조왕


태후가 노하여 조나라 왕 유우를 부른 것...


置邸 .

조왕지 치저불현 영위위수지 불여식


조왕이 오자 관저에 가둬두고 지키며 밥도 안 먹였다.


之.

.

.

!

.

!

.」

기군신혹절궤 첩포론지 조왕아 내가왈

'제여용사혜 유씨액 박협왕후혜 강수아비

아비기투혜 무아이오 참여난국혜 상승불오

아무충신혜 하고기국 자결중야혜 창천거직

우차불가회혜 녕조자재

위왕이아사혜 수자린지

여씨절리혜 탁천보구'


신하 중 누가 몰래 밥을 주면 잡혀 취조당하니 조왕이 굶주리며 한탄하길

'여씨들이 집권하니 유씨들에겐 횡액이고 왕과 제후를 겁박하여 마누라도 정해주네

내마누라가 질투에 쩔어 나를 미워하여 무고하네

여자가 참소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임금이 잠을 못 이루네

충신이 없나 왜 무리들과 멀어지나 허허벌판에 나혼자 결정하니 푸른 하늘만 같이하네

아아 후회스럽구나 일찌기 내 힘을 키워 평안함을 찾을 걸

왕이 되어 굶어죽는다면 누가 불쌍히 여기리

여씨들이 도리를 모르니 하늘이 갚아주길 바랄 뿐...'


.

정축 조왕유사 이민예장지장안민총차


정축일 조왕 유우가 아무도 모르게 죽으니 일반 백성들 무덤사이에 묻혔다. 


劉恢


.

을축 일식 주매


:「.」

태후오지 심불락 내위좌우왈  '차위아야'


.

이월 사양왕회위조왕 


.

여왕산사위양왕 양왕불지국 위제태부 


.

입황자평창후태위여왕


.

경명양왈여 여왈제천  


.

태후여제여수유녀위영릉후유택처 택위대장군


.

태후왕제여 공즉붕후유장군위해 내이유택위랑사왕 이위기심



.

양왕회지사왕조 심회불락


양왕 회가 조왕으로 가게 됐지만 기쁘지않았다.


.

태후이여산녀위조왕후


태후가 여산의 딸을 조나라 왕의 부인으로 주었다.


.

왕후종관개제여 천권 징사조왕 조왕부득자자 


왕후를 따라 온 관리들이 모두 여씨 일파라 제멋대로 조왕 회를 감시하니 유회가 맘대로 못하더라  


使.

왕유소애희 왕후사인탐살지 


유회왕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나 왕후가 사람을 시켜 독살하니  


.

왕내위가시사장 영악인가지


왕이 노래 4장을 지어 연주하고 노래하게 하니  


.

왕비 육월즉자살 


왕이 비탄에 빠져 6월에 자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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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문지 이위왕용부인기종묘례 폐기사


태후가 자살 소식을 듣고 부인을 버려 종묘례를 어겼다 여겨 그 후계를 없애고


.

선평후장오졸 이자언위노왕 오사시위노원왕


선평 제후 장오가 죽고 아들 언을 노왕으로 세우고 장오를 노원왕이라 시호를 내렸다.

使使 .

추 태후사사고대왕 욕사왕조 


가을 태후가 대지역 왕에게 조나라 왕으로 세우려 한다 일렀으나  


.

대왕사 원수대변


대왕이 고사하고 대지역을 지키련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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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부산 승상평등언 무신후여록상후 위차제일 청립위조왕 


태부 여산과 장평등이 말하길 무신후 여록이 제후중 으뜸이니 조나라 왕으로 세우길 청하니  


.

태후허지 추존록부강후위조소왕


태후가 허락하니 여록의 아비 강후를 조나라 소왕으로 추존하니

使 .

구월 연영왕건훙 유미인자 태후사인살지 무후 국제 


9월 연영왕 건이 죽고 미인의 아들이 있어 태후가 죽이니 후사가 없어 국가로 서지 못하더라  


.

팔년십월 입여숙왕자동평후여통위연왕 봉통제여장위동평후


8년 10월 여숙왕의 아들 동평후 여통이 연왕이 되니 통의 동생 여장을 동평후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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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위외손노원왕언연소 조실부모 고약 내봉장오전희양자 치위신도후 수위락창후 이보노원왕언


고종=유방의 부인 여태후가 외손자 노원왕을 시킨 언이 나이가 어리고 조실부모하여 외롭고 유약하니 장오의 전 애첩의 두 아들 치를 신도후로 수를 낙창후로 세워 노원왕 언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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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봉중대알자장석위건능후 여영위축자후  


그리고 중대알자 장석을 건능후로 세우고 여영을 축자후로 세웠다.


.

제중환자영승개위관내후 식읍오백호


환관들 중 영이나 승의 지위에 있는 자들을 내후로 임명하고 식읍 500호씩 주었다.


月中 . :「 , 』. . . .」

칠월중 고후병심 내영조왕여록위상장군 군북군  여왕산거남군 여채후계산 록왈  '고제이정천하 여대신약 왈 "비유씨왕자 천하공격지" 영여씨왕 대신불평  아즉붕 제연소 대신공위변 필거병위궁 신무송상 무위인소제'


칠월중 여태후가 병이 심해지니 조나라 왕 여록을 상장군으로 세워 북쪽에 주둔하게 했는데 이는 여왕 산이 남군을 맡고있어서다 여태후가 여산과 여록에게 주의를 주어 말하길 '유방이 천하를 안정시키고 대신들과 맹약=백마의 맹약을 맺어 "유씨가문이 아닌 자가 왕이 되면 모두 공격하라"했으니 이제 여씨 왕들에 대해 대신들이 불평이 있으니 내가 죽고 왕이 어리니 대신들이 정변을 일으킬까 두렵다 반드시 궁을 지켜 내 관을 따라오지 말고 누구도 ㅈ권을 쥐게 하지 마라'하더라  


.

신축 고후붕 유조사제후왕각천금 장상열후낭사개이질사금


신축일 여태후가 죽으니 모든 제후와 왕에게 천금을 내리고 장군과 재상 재후낭사에게 하사금을 내렸다.


.

대사천하


나라에 대사면을 내리고


.

이여왕산위상국 이여록녀위제후


여산을 상국=영의정으로 여록의 딸을 황제의 비로 들였다.


.

고후이장 이좌승상심이기위제태부


여태후를 장례지내고 좌승상 심이기를 황제의 태부=스승으로 삼았다.


.

주허후유장유기력 동모후흥거기제야 


주허의 제후 유장은 기개와 역량이 되고 동모후인 유흥거가 그 동생이다


.

개제애왕제 거장안


모두 제나라 애왕의 동생으로 장안에 머물렀다.


.

당시시 제여용사천권 욕위란 외고제고대신강  관등 미감발


그때 여씨 일파의 전횡에 반란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유방의 공신인 강후 주발 관영등을 두려워하여 거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

주허후부 여록녀 음지기모


주허의 제후 유장의 처 여록의 딸이 그 음모를 알아채고  


西 .

공견주 내음영인고기형애왕 욕영발병서 주 제여이립


주살당할까 두려워 은밀히 제나라 애왕에게 알려 서쪽 군대를 일으켜 징벌하고 여씨들을 세우려 했다  


.

주허후욕종중여대신위응


주허후 유장이 대신들과 더불어 난을 일으키려했고


.

제왕욕발병 기상불청


제나라 애왕도 發兵하려하는데 재상 소평=이 따르지 않더라


使 西.

팔월병오 제왕욕사인주상 상소평내반 거병욕위왕 왕인살기상 수발병동 사탈랑아왕병 병장지이서


8월 병오일에 왕이 사람을 시켜 재상을 처벌하려들자 재상 소평이 반발하여 오히려 왕을 포위하려했다. 그를 빌미로 재상을 죽이고 동쪽 병사를 일으켜 랑아왕의 병사를 빼앗아 통솔하여 서군도 흡수했다.


.

어재제왕어중


이 이야기는 家란 책에도 나온다


:「 . 使. . . . . .」

제왕내견제후왕서  '고제평천하 왕제자제 도혜왕왕제 도혜왕훙 요혜제사류제후양립신위제왕 효혜붕 고후용사 춘추고 청제여 찬폐제경립 우차살삼조왕 멸양 조 연이왕제여 분제위사 충신진간 상혹란불청 금고후붕 이제춘추부 미능치천하 고시대신제후 이제여우찬자존관 취병엄위 겁열후충신 교제이영천하 종묘소이위 과인솔병입주부당위왕자'


제나라 왕 유여의가 각 제후와 왕등에게 친서를 보내 이르길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그 아들 형제들과 도혜왕을 제나라의 왕으로 세웠고 도혜왕이 죽고 효혜제가 좋은 제후들을 두고 나를 제 나라 왕으로 세우셨자. 효혜제가 죽고 여태후가 정사를 맡아 나이가 고령이라 여씨들 말에 휘둘려 황제를 갈아치우고 조나라 왕도 세 번이나 죽이고 양나라 조나라 연나라를 멸망하고 여씨들을 왕으로 세워 제나라를 4으로 분리하였다. 충신들이 간언함에도 여태후가 듣지않았다. 태후가 죽고 황제가 나이가 한창이지만 천하를 통치하기엔 미흡하니 대신과 제후들을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여씨 일파들이 마음대로 자신들을 높이고 병사들을 모아 위세부리며 제후 충신들을 겁박하고 천하를 통제하려하니 종묘가 위기에 처했다. 이제 내가 병사를 이끌고 부당한 짓을 한 왕들을 주살하리라'하더라


.

한문지 상국여산등내견영음후관영장병격지


한나라 궁실이 듣고 상국 여산등이 영음후 관영을 장수로 공격하려했다.


:「 . .」

관영지형양 내모왈   '제여권병관중 욕위유씨이자립 금아파제환보 차익여씨지자야'


관영이 형양에 이르러 상의하길 '여씨들이 관중에 병력을 모아 유씨의 자립을 막으려하니 이제 내 제나라를 치면 이 또한 여씨에게 도움주는 일이라'하며


使使 .

내류둔형양 사사유제왕급제후 여연화 이대여씨변 공주지


형양에 주둔하고 제나라왕과 제후들과 연합하여 여씨들이 변란을 일으키면 함께 주벌하려했다.


西.

제왕문지 내환병서계대약


제나라왕이 듣고 병력을 돌려 서쪽 변방에서 그 약속을 기다렸다.


.

여록 여산욕발난관중 내탄강후 주허등 외외제 초병 우공관영반지 욕대관영병여제합이발유예미결


여록과 여산인 관중에서 난을 일으키려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강후 주허후등이 염려되고 밖으론 제나라 초나라 병력 그리고 관영이 반란할까 염려하여 관영이 제나라와 연합하길 기다리며 미적거렸다.


.

당시시 제천왕태 회양왕무 상산왕조명위소제제 급노원왕여후외손 개년소미지국 거장안


당시 제천 왕 유태. 회양왕 유무, 명목상 소제의 동생인 상산왕 유조, 그리고 노원왕 여후의 외손등 모두 나이가 어려 임지가 아닌 장안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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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록 양왕산각장병거남북군 개여씨지인


조나라 왕 여록 양나라 왕 여산이 각기 남북군의 수장으로 모두 여씨집안 사람이더라


.

열후군신막개견기명


장안의 제후나 군신들은 자신의 운명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

태위강후발부득입군중주병


태위 강후 주발이 군대를 통솔하러 들어갈 수 없었다


.

곡주후역상노병 기자기여여록선 


곡주후 역상은 늙고 병들었지만 그 아들 역기가 여록과 좋은 관계라


使.

강후내여승상진평모 사인겁역상  


주발과 승상 진평이 모의하여 사람을 보내 역상을 겁주어



紿:「 . . .」

영기자기왕태설여록왈   '고제야후공정천하 유씨소립구왕 여씨소립삼왕 개대신지의 사이포고제후 제후개이위의 금태후붕 제소 이족하패조왕인 불급지국수번 내위상장 장병류차 위대신제후소의 족하하불귀인 이병속태위 청양왕귀상국인 여대신맹이지국 제병필태 대신득안 족하고침이왕천리 차만세지리야'


아들 역기를 여록에게 보내 ' 유방이 여후와 공동으로 천하를 안정시켜 유씨 왕 9명 여씨 왕이 3명인데 모든 대신의 합의를 통해 제후들에게 통보하니 모두 마땅히 여겼다. 이제 태후가 돌아가시고 황제는 어린데 얼른 조왕의 패=옥새를 차고 변경의 적을 지켜야지 고작 장군놀이에 빠져있으니 대신 제후들이 의심하는 거다. 왜 족하는 왕의 소임을 다하고 군대는 태위에게 돌리지 않는가? 양왕 여산도 대신들과 합의하에 임지로 가시면 제 나라도 병력을 풀고 대신들도 편안해지고 족하도 그저 편안히 왕노릇할 수 있으니 이게 두루두루 좋은 일 입니다'하라 하니    


.

여록신연기계 욕귀장인 이병속태위


여록이 그 말이 옳다 느껴 장수의 직인을 돌려주고 군통수권을 태위에게 돌려주려하였다


使 .

사인보여산급제여노인 혹이위편 혹왈불편 계유예미유소결


여산과 여씨 어른들에게 통보하니 혹은 편케 생각하고 혹은 불편해하니 결단을 내리지 못하더라


.

여록신역기 시여출유렵


여록이 역기를 신망하여 같이 사냥을 나가니


:「 .」

과기고여수 수대노 왈  '약위장이기군 여씨금무처의'


고모를 들러가는데 고모가 화나서 이르길 '장수가 군사를 버리다니 여씨들은 갈 곳이 없어진 거다'하며


:「

내실출주옥보기산당하 왈  '무위타인수야'


모든 패물을 집어 던지며 말하길 '다른 사람들을 막을 필요없지'했다.


* 자기 걸 길바닥에 내 준 꼴이나 마찬가지다



.

좌승상이기면


좌승상이던 심이기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

팔월경신단 평양후줄행어사대부사 견상국산계사


8월 경신일 아침 어사대부를 하던 평양후 조줄이 상국 여산과 계략을 꾸미길...


使 :「 ?」

낭중영가수사종제래 인수산왈   '왕붕조지국 금수욕행 상가득사'


제나라를 따르는 낭중령 가수가 여산을 저울질 하며 이르길 '왕께서 일찍 무리에게 돌아가지않다가 이제 가고자하면 이상하지 않소'하며


.

구이관영여제초합종 욕주제여고산 내취산급입궁


관영과 제와 초가 연합하여 여씨를 주벌하려는 사실을 여산에게 고하고 여산에게 입궁하도록 종용했다.  


.

평양후통문기어 내치고승상  태위


평양후 기통이 이를 듣고 말을 달려 승상과 태위에게 고하니  


.

태위욕입북군 불득입


태위가 북군을 장악하려하였으나 실패하고  


.

양평후통상부절


양평후 기통이 부절=서류와 지팡이를 들고


.

내영지절교내태위북군


지휘봉을 들고 들어가 태위로 북군을 장악하게 했다.


:「使 .」

태위복영역기여전객유게선설여록왈   '제사태위수북군 욕족하지국 금귀장인사거 불연 화차기'


태위가 다시 역기에게 영을 내려 전객 유게을 앞세워 여록에게 말하길 '황제께서 태위에게 북군 지휘권을 주셨고 족하의 무리로 돌아가라고 하시니 장군의 도장을 놓고 돌아가시요 그러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겁니다'하니


.

여록이위역형불사기 수해인속전객 이이병수태위


여록이 역기가 자기를 속일 사람아니라 믿고 도장을 풀어 전객에게 주니 태위가 군권을 장악하더라


:「 .」

태위장지입군문향영군중왈   '위여씨우단 위유씨좌단'


태위가 지도자로 군영에 들어와 말하길 '여씨편이면 오른쪽을 유씨편이면 왼쪽을 벗어라'하니


.

군중개좌단위유씨


군사 모두 좌를 벗어보이더라


.

태위행지 장군여록역이해상장인거 태위수장북군


태위가 저리하자 여록도 상장군 인장을 풀고 가버리니 태위사 북군도 장악하게 되었다.


.

연상유남군


그래서 남군이 남게 되었는데


.

평양후문지 이여산모 고승상평 승상평내소주허후좌태위  


평양후가 여산의 음모를 듣고 승상 진평에게 알리니 승상 진평이 주허후를 불러 태위를 보좌하게 했다.


.

태위영주허후감군문


태위는 주허후에게 군문을 감독하게 하고


:「殿.」

영평양후고위위  '무입상국산전문'


평양후에게 명을 내려 위위=수위에게 '상국여산을 출입시키지 말라'명했다.

殿 .

여산부지여록이거북군 내입미앙궁 욕위란 전문부득입 배회왕래  


여산은 여록이 이미 북군을 떠난 걸 모르고 미앙궁에서 난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 돌았다.


.

평양후공불승 치어태위  


평양후가 승리하지 못할 걸 염려하여 태위에게 달려가자


:「.」

태위상공불승제여 미감송언주지 내견주허후위왈  '급입궁위제'


태위가 항시 여씨를 물리치지 못할까 염려하여 감히 여씨를 주벌하자는 송사를 올리지 못하는데 마침내 주허후를 파견하여 이르길 '궁으로 가 황제를 보위하라'하였다.


.

주허후청솔 대위료솔천여인  


주허후가 부하를 청하자 태위가 천여명의 군사를 주고


.

입미앙궁문 수견산정중


미앙군으로 들어가 여산을 만나


.

일포시 수격산  


잠깐 사이에 여산을 공격하였다.


.

산주 전풍대기 이고기종관란 막감투


여산이 도망가는데 하늘에서 바람이 크게 일어나니 따르던 관리들이 혼란하여 감히 싸우지 못하더라


.

추산 살지낭중부이측중


 결국 낭중부 관리들 사이에 있던 여산을 쫒아가 죽였다.  


.

주허후이살산 제명알자지절노주허후 


주허후가 이미 여산을 죽였고 황제가 알자=알림꾼에게 절=지휘봉을 주허후에게 전하라 하였다.  


.

주허후욕탈절신 게자불긍 주허후즉종여재 인절신치주 참장락위위여경시


주허후가 지휘봉을 잡으려 하니 알자가 안 주자 주허후가 수레로 쫒아가 장락궁  위위인 여경시를 참살하고...  


.

환 치입북군 보태위 


돌아와 북군으로 돌아가 태위를 보좌하였다


:「 .」

태위기 배하주허후왈   '소환독여산 금이주 천하정의'


태위가 일어나 주허후를 축하하며 이르길 '여산이 문제였는데 이제 죽였으니 천하가 바로잡힌 것이오' 하더라


.

수견인분부실포제여남여 무소장개참지  


사람을 나누어 모든 마을에 보내 여씨 일파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수하더라


.

신유 포참여록 이태살여수  


신유일에 여록을 잡아 참수하고 여수를 태형으로 죽였다.


使 .

사인주연왕여통 이폐노왕언


사람을 보내 연왕 여통을 주벌하고 노원왕 장언을 폐하였고


.

임술 이제태부이기복위좌승상 


임술일에는 황제의 스승 심이기를 좌승상으로 다시 복위하였으며 


.

임진 사제천왕왕염 입조유왕자수위조왕  


임진 일에는 제천왕을 염나라 왕으로 옮기고 조나라 유왕의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

견주허후장이주제여씨사고제왕 영태병  


주허후 유장을 보내 여씨일파 척결을 제나라 왕에게 보고하고 병력을 해산하였다.


.

관영병역태형양이귀


관영의 군대 역시 형양에서 해산하고 귀향 하였다.


少帝



:「 . . . .」

제대신상여음모왈  '소제급양  회양 상산왕 개비진효혜자야 여후이계사명타인자 살기모 양후궁 영효혜자지 입이위후 급제왕 이강여씨 금개이제멸제후여 이치소립 즉장용사 오속무류의 불여시제왕최현자립지'


대신들이 모여 상의하길 '양나라 회양 상산왕들이 모둔 효혜제의 진짜 아들이 아니고 여태후가 친모를 죽이고 후궁들 손에 키워 효혜제 아들로 칭하고 후사를 삼아 여씨의 세력을 키운 것이라 이제 여씨들을 멸살하였으나 그런 이들이 남아있으니 자라서 정사를 맡으면 우리는 낄데없다 그러니 가장 현명한 이를 골라 왕으로 세워주자'하니  



」.

혹언 '제도혜왕고제장자 영기적자위제왕 추본언지 고제적장손 가립야'


혹자는 말하길 '제나라 도혜왕이 유방의 장자이니 그의 아들이 제나라 왕이나 적장손이니 왕으로 세우자'하더라


:「 () . .」

대신개왈  '여씨이외가악이기위종묘 난공신 금제왕모가사 사균 악인야 즉립제왕 즉복위여씨'


대신들 모두 이르길 '여씨들 외척들이 악독하여 종묘를 흔들고 공신들을 어렵게 할 것이니 지금 왕모의 집안이 사찌요  사균이란 자가 있는데 악인이라 제나라 왕을 옹립해도 여씨 판처럼 될 것이다'하더라  


.

욕립회남왕 이위소 모가우악


회남왕을 옹립하자해도 너무 어린데다 외가가 좋지 않으니


:「 . . .」

내왈  '대왕방금고조견자 최장 효관후  태후가박씨근량 차입장고순 이인효문어천하 편'


이르길 '대나라 왕이 유방의 친아들이고 연장이며 그 어미 박후황후가 근면성실한 이이니 연장으로 보나 어짊으로 보나 천하를 편케할 사람이라'하더라


使.

내상여공음사인소대왕


서로 의견을 맞추어 대나라 왕을 부르려 사람을 보냈으나


使.

대왕사인사사


대나라왕 유항이 사양하더라


.

재반 연후승육승전 


다시 청하니 비로서 왕족의 수레에 올라


.

후구월회일기유 지장안 사대저


다음 9월 말일 기유일에 장안에 도착하여 대나라 왕의 관저에 머물렀다


.

대신개왕알 봉천자새상대왕 공존입위천자  


대신들 모두 알현하며 천자의 옥새를 올리고 천자로 옹립하더라


.

대왕수양 군신고청 연후청


유항이 수차례 사양하다가 군신들이 고집스레 청하자 나중에 받아들였다.


* 효혜제: 유방이 여태후와 낳은 맏아들....



:「 .」

동모후흥거왈   '주여씨오무공 청득제궁'


동모의 제후로 있던 유흥거가 말하길 '여씨들을 주살하는데 나는 아무런 공이 없으니 그저 궁을 청소하게 해주시오'하고


:「 .」

내여태복여음후등공입궁 전위소제왈  '족하비유씨 부당립'


그리고 태복 여음후 등공과 입궁하여 소제에게 말하길 '귀하가 유씨 혈통아니니 왕이 되어선 안되오'하더라


.

내고휘좌우집극자부병태거


그리고 창을 든 호위 무사들에게 무기를 풀고 떠나라 했느데


.

유수인불긍거병 환자영장택유고 역거병 


몇몇이 무기를 풀지 않으려 하자 환관의 우두머리 장택이 설명하고 병기를 풀더라


輿.

등공내소승여거재소제출


등공이 수레에 소제를 싣고 궁을 나가니  


:「?」

소제왈  '욕장아안지호'


소제가 '날 어디에 가두려 하오'하니


.」

등공왈 '출취사'


등공이 말하길 '나가서 구하면 됩니다'


.

사소부


소부(소왕의 궁)에 모셨다


.

내봉천자법가 영대왕어저


천자의 수레를 끌고 대나라 왕을 모시러 가


:「.」

보왈  '궁든제'


보고하길 '궁이 비었읍니다'하니


.

대왕즉석입미앙궁


대나라 왕이 그 저녁 즉시 미앙궁으로 들더라


:「 ?」

유알자십인지극위단문 왈  '천자재야 족하위위자이입'


왕의 전령 10명이 창으로 문을 지키며 '천자가 계신데 귀하가 왜 들어오시오'하니


.

대왕내위태위


대나라 왕이 태위를 부르니


.

태위왕유 알자십인개부병이거  


태위가 와서 설명하니 전령 10여명이 무기를 풀고 나가더라


.

대왕수입이청정


대나라왕 유항이 비로소 궁에 들어 정사를 보더라


.

야 유사분부주멸양 회양 상산왕급소제어저


밤에 양나라왕 회양왕 상산왕과 소제를 각 사저에서 주살하였다.



.

대왕립위천자


대나라 왕 유항이 천자가 되고


.

이십삼년붕 시위효문황제


즉위 23년만에 죽으니 시호가 효문황제다.


.

태사공왈  효문황제 고후지시 여민득이전국지고 군신구욕휴식호무위 고혜제수공 고후여주칭제 정불출방호 천하안연


태사공 사마천이 이르길 효혜황제와 여태후 시절엔 전국이 난리통을 면했고 군신이 모두 편안하게 살았으니 그 이유가 효혜제가 뭔가를 이루려 하지 않아서요 여태후가 정사를 보면서 문밖 출입을 않아서 천하가 편안했던 거요


.

형벌한용 죄인시희


법집행이 느슨하니 죄인도 드물더라


.

민무가색 의식자식


백성들은 생업에 힘쓰니 살림이 나아졌다 했다.



-여기서 사마천의 생각을 읽어보면....

한 마디로 나대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은 편안하다.....


왕이 영토를 늘리네 천자가 되겠네 설치면 백성이 힘들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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