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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秦始皇本紀

秦始皇帝者 秦莊襄王子也.

진시황제자 진장양왕자야 


진시황제는 秦나라 장양왕의 아들이라  


莊襄王爲秦質子於趙 見呂不韋姬 悅而取之 生始皇 以秦昭王四十八年正月生於邯鄲. 

장양왕위진질자어조 견여불위희 열이취지 생시황 이진소왕사십팔년정월생어한단


장양왕이 조나라에 볼모로 가있을 때 여불위의 첩에 반해 취하여 秦나라 소왕이 48세되던 해 정월 한단에서 낳았다.  



及生 名爲政 姓趙氏.

급생 명위정 성조씨 


이름은 정이요 성은 조씨라 


年十三歲 莊襄王死 政代立爲秦王.

년십삼세 장양왕사 정대립위진왕  


13세 되던 해 장양왕이 죽고 정이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니 


當是之時 秦地已幷巴·蜀·漢中 越宛有郢 置南郡矣 ; 北收上郡以東 有河東·太原·上黨郡 ; 東至滎陽 滅二周 置三川郡. 

당시지시 진지이병파 촉 한중 월완유영 치남군의 북수상군이동 유하동 태원 상당군 동지영양 멸이주 치삼천군


그 당시 진나라 영토는 이미 파 촉 한중 완을 넘어 영땅까지 남군을 설치했고 북으로는 상군을흡수하고 동으로 하동 태원 상당군을 합병하야 동쪽 끝으로 영양 그리고 동서주나라 땅=낙읍을 차지해 삼천군을 설치했다


呂不韋爲相 封十萬戶 號曰文信侯.  

여불위위상 봉십만호 호왈문신후 


여불위를 재상으로 뽑아 10만 호의 영지를 봉하면 문신후라 불렀다. 


招致賓客游士 欲以幷天下. 

초치빈객유사 욕이병천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청하여 천하를 아우르기 원했고 


李斯爲舍人. 

이사위사인 


이사가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고 


蒙驁·王齮·麃公等爲將軍. 

몽오 왕의 표공등위장군 


몽오 왕의 표공등이 장군이 되었고  


王年少 初卽位 委國事大臣. 

왕년소 초즉위 위국사대신 


왕이 어리므로 즉위 초엔 대신들이 국정을 맡았다. 


晉陽反 元年 將軍蒙驁擊定之

진양반 원년 장군몽오격정지 


즉위 원년 진양에서 반란이 일어나 몽오장군이 진격하여 평정하였다. 


二年 公將卒攻卷 斬首三萬.

이년 표공장졸공권 참수삼만


2년에 표공장군이 권을 공격하여 3만을 베었고  


三年 蒙驁攻韓 取十三城十月 將軍蒙驁攻魏氏暢·有詭大饑.

삼년 몽오공한 취십삼성  왕의사  십월 장군몽오공위씨창 유궤  세대기 


3년 몽오장군이 한나라를 쳐 13성을 빼았고 왕의장군이 죽었으며 10월 몽오장군이 위씨들의 창 그리고 유궤를 공격하였고 그 해 대기근이 들었다. 


四年 拔暢·有詭三月 軍罷秦質子歸自趙 趙太子出歸國十月庚寅 蝗蟲從東方 蔽天天下疫百姓粟千石 拜爵一級.

사년 발창 유궤 삼월 군태 진질자귀자조 조태자출국귀 십월경인 황충종동방래 폐천 천하역 백성납속천석 배작일급


4년 창과 유궤를 점령하고 3월 군사를 쉬게하고 조나라에 갔던 볼모와 조나라의 태자를 맞바꿨다. 10월 경인일에 메뚜기가 동쪽으로 부터 하늘 새카맣게 덮고 날아들어 전염병이 돌고 백성중 곡식 1000석을 낸 사람에겐 1급 작위를 내렸다.   


五年 將軍驁攻魏 定酸棗·燕·虛·長平·雍丘·山陽城 皆拔之 取二十城初置東郡

오년 장군몽공위 정산조 연 허 장평 옹구 산양성 개발지 취이십성 초치동군 동뢰 


5년 몽오장군이 위나라를 쳐 산조지역을 평정하고 연 허 장평 옹구 산양성을 함락하니 20성을 차지하여 처음으로 동군을 설치하고 한 겨울에 우뢰가 울었다


六年 韓·魏·趙·衛·楚共擊秦 取壽秦出兵 五國兵罷拔衛 迫東郡 其君角其支屬徙居野王 阻其山以保魏之河.

육년 한 위 조 위 초공격잔 취수릉  진출병 오국병태  발위 박동군 기군각솔기지속사거야왕 조기산이보위지지하내 


6년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가 합공으로 진을 쳤으나 진나라가 출병하여 衛나라를 정벌하니 다른 5국 병사들이 주춤하고 동군까지 밀어부치자 수장 각이 가솔을 이끌고 야왕에 거하며 산세에 의지하여 황하 안쪽에 명맥을 유지하였다. 


七年 彗星先出東方  五月見西方將軍驁死以攻龍·孤·慶都 還兵攻汲彗星見西方十六日夏太后死.

칠년 혜성선출동방 현북방 오월현서방 장군몽사  이공용 호 경도 환병공급 혜성복현서방십육일 하태후사 


7년에 혜성이 빈번했는데 처음엔 동방에 그리고 북방에 그리고 서방에 출현하였고 용땅 호땅 경도를 공격하던 몽오장군이 죽고 병사를 돌려 급땅을 공격하였다. 혜성이 다시 서방에 16일간 나타나고 하태후가 승하했다.   


八年 王弟長安君成將軍擊趙  死屯留 軍吏皆斬死 遷其民於臨洮將軍壁死 卒屯留·蒲鶴反戮其屍河魚大上 重馬東就食.

팔년 왕제장안군성교장군격조 반 사둔류 군사개참사 천기민어임조 장군벽사 졸둔류 포학반육기시 하어대상 경거중마동취식


8년 왕의 동생 장안군 성교가 장군으로 조나라를 치러가서 오히려 반란하여 둔류에서 죽고 군사들 모두 참시당했으며 거기 사람들을 모두 임조로 옮겨 살게하였고 성교장군이 벽루에서 자살하니 따르던 병사들 중 죽은 자들은 육시를 당했고 믈고기들이 땅에 오르니 진나라 사람들이 모두 물고기를 주우러 동으로 갔다 


-여기서 하태후는 자초=장양왕의 생모 즉, 시황제의 할머니를 의미하고 

혜성 출현에 대한 속설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孝經內記云:彗在北斗兵大起彗在三台臣害君彗在太微君害臣彗在天獄諸侯作亂所指其處大惡彗在日旁子欲殺父

효경내기에 이르길 혜성이 북두칠성 자리에 보이면 병사가 크게 일어나고 삼태성에 보이면 신하가 임금을 해치고 태미원에 보이면 임금이 신하를 베고 천옥의 자리에 보이면 제후가 난을 일으킨다고 본다 더더구나 혜성이 낮에 보이면 자식이 아비를 죽인다라 읽는다 했다. 


嫪毐封爲長信侯

노애봉위장신후 


노애가 장신후로 봉해지고 


之山陽地 居之.

여기산양지 영애거지 


산양땅을 주어 노애를 살게 하였다.  


宮室馬衣服苑囿馳獵恣

궁실거마의복원유치렵자애 


노애에게 전권을 주어 뭐든 마음대로 하게하니 


事無小大皆決於

사무소대개결어애 


모든 대소사가 노애의 결정을 따르고 


又以河西太原郡

우이하서태원군경위애국


또한 하서(일설엔 汾水) 태원군을 노애의 관할로 주었다. 


九年 彗星見 或竟天.

구년 혜성현 혹경천


9년 헤성이 하루종일 나타났다. 


攻魏垣·蒲陽

공위원 포양


위나라의 원과 포양땅을 공격하였다. (원은 본디 위나라의 발원지요 포양은 晉나라 공자 중이의 영역) 


四月 上宿雍.

사월 상숙옹


4월 왕이 옹땅에 들러  


己酉 王冠 帶劍.

기유 왕관 대검 


기유일에 22살이 된 왕이 성인식을 하고 검을 찼다.  


長信侯而覺 矯王御璽及太璽以發縣卒及衛卒·官騎·戎翟君公·舍人 將欲攻蘄年宮爲.

장신후애작난이각 교왕어새급태새이발현종급위졸 관기 융적군공 사이 장용공기년궁위난


장신후 노애가 반란을 도모하며 옥새와 태후의 도장을 위조해 현의 병사들 기병 융적 무리와 사병을 일으켜 옹에 있던 기년궁을 치려는 난을 일으켰다.   


王知之 令相國昌平君·昌文君發卒攻.

왕지지 영상국창평군 창문군발졸공애 


왕이 이를 알고 창평군과 창문군으로 병사를 일으켜 노애를 치도록 하였다.  


戰咸陽 斬首 皆拜爵 及宦者皆在戰中 亦拜爵一級

전함양 참수수백 개배작 급환자개재전중 역배작일급


함양 싸움에서 수백명을 참수하고 모두에게 작위를 주었는데 전장에 있던 환관들도 한 계급 특진하였다.  


等敗走

애등패주


노애 일당이 패하여 도주하였고 


卽令國中 : 有生得 賜錢百萬 ; 殺之 五十萬.

즉영국중   유생득애 사전백만   살지 오십만 


즉시 나라에 포고령을 내려 생포하면 백만냥 죽이면 5십만냥을 포상금으로 걸었다.  


盡得

진득애등


마침내 노애 일당을 잡았다. 


衛尉竭·史肆·佐弋竭·中大夫令齊等二十人皆梟首

위위갈 내사사 좌익갈 중대부영제등이십인개효수 


위위인 갈 내사인 사 죄익인 갈중부대령인 제등 20여명이 효수되고  


裂以徇 滅其宗

거열이순 멸기종


몸뚱이는 거열형으로 찢고 종친들은 멸문되었다. 


及其舍人 輕者爲鬼薪.

급기사인 경자위귀신 


그 私兵들은 죄가 가벼우면 귀신형(평생 묘지에서 땔감을 줍는 형)에 처하고 


及奪爵遷蜀四千餘家 家房

급탈작천촉사천여가 가방릉


죄가 중하면 박탈관직하고 촉의 방릉에 귀양하였는데 4000여 가구다. 


()[]月寒凍 有死者.

사월한동 유사자 


4월인데도 한파에 얼어죽은 자가 있더라 


楊端和攻衍氏

양단화공연씨 


양단화가 연씨(위나라 지역)을 공격하였다. 


彗星見西方 又見 從斗以南八十日.

혜성현서방 우현북방 종두이남팔십일 


혜성이 서방에 나타났다 북방에 나타나 북두칠성을을 따라 남쪽으로 80여일간 보였다.  


十年 相國呂韋坐嫪毐.

십년 상국여불위좌노애면


10년 상국이던 여불위가 노애 사건에 연좌되어 면직되었다.  


爲將軍

환의위장군 


환의가 장군이 되고 


齊·趙置酒

제 조래치주 


제나라와 조나라가 와서 주연이 베풀어지고 


齊人茅焦秦王曰 : “秦方以天下爲事 而大王有遷母太后之名 恐諸侯聞之 由此倍秦也.

제인모초설진왕왈 : '진방이천하위사 이대왕유천모태후지명 공제후문지 유차배진야'


제나라 사람 모초가 진왕=시황제에 이르길 : '진나라가 천하제패를 도모하는데 어머니를 옹에 모신 것을 유배라 받아들여 제후들이 두려워합니다'하니 

 

秦王乃迎太后於雍而入咸陽 居甘泉宮.

진왕내영태후어옹이입함양 복거감천궁 


진나라 왕이 태후를 함양으로 맞아들여 다시 감천궁에 사시도록 하였다. 


 逐客 李斯上書 乃止逐客令

대색 축객 이사상서설 내지측객령 


대대적으로 유세객들을 색출하여 축출하려하니 이사가 상소를 올리니 축객령을 그만두었다. 


李斯因秦王 請先取韓以恐他國 於是使斯下韓.

이사인설진왕 청선취한이공타국 어시사사하한 


이사가 왕에게 먼저 한을 쳐서 다른 나라들을 두렵게 하자하니 이사로 하여금 한나라를 치게 하였다.  


韓王患之與韓非謀弱秦

한왕환지  여한비모약진


한왕이 걱정되어 한비자와 함께 진을 약하게 만들 계획을 짰다.  


大梁人尉繚 秦王曰 : “以秦之彊 諸侯譬如郡縣之君 臣但恐諸侯合從 翕而出 此乃智伯·夫差·湣王之所以亡也願大王毋愛財物 其豪臣其謀 過亡三十萬金 則諸侯可盡.

대량인위료래 설진왕왈 : '이진지강 제후비여군현지군 신단공제후합종 흡이출불의 차내지백 대차 민왕지소이망야 원대왕무애재물 뇌기호신이난기모 불과망삼년십만금 즉제후가진' 


대량 사람 국위인 료가 진왕에게 이야기 하길: '진나라가 강성함에 비하면 제후들이야 일개 군현의 수장 급이지만 신은 그들이 뭉쳐 그릇된 의욕을 부릴까 염려됩니다. 이리 힘을 합쳐 지백부차 민왕이 망한 겁니다. 원컨대 대왕이 재물을 풀어 호족이나 신하들에게 나눠준다면 불과 30만 금이면 제후들을 모두 끌어안을 겁니다'하니  


秦王從其計 見尉繚亢禮 衣服食飮與繚同.

진왕종기계 견위료항례 의복식음여료동


진왕이 그 계획을 따르고 국위 료를 대함에 예로 대하고 의복 음식 모든 걸 왕과 똑같이 하도록 하였다 


繚曰 : “秦王爲人 蜂准 長目 摯鳥膺 豺聲 少恩而虎 居約易出人下 得志亦輕食人我布衣 然見我常身自下我誠使秦王得志於天下 天下皆爲虜矣可與久游.乃亡去

료왈: '진왕위인 봉준 장목 지조응 시성 소은이호랑심 거약이출인하 득지역경식인 아포의연견상신자하아 성사진왕득지어천하 천하개위노의 불가여구유' 내망거


료가 말하길 : '진왕의 사람됨이 코가 높고 째진 눈에 새가슴에 승냥이 음성이요 호랑이나 늑대처럼 좁은 마음이다 그저 쉽게 다른 이를 높이는 듯 하나 역으로 뜻만 가지면 사람잡을 위인이라 내 평민임에도 나를 높이지만 진왕이 천하를 얻자고 하면 천하를 다 발 아래 둘 사람이니오래 사귈 사람이 아니다'하고 도망하였다. 

 

秦王覺 固止 以爲秦國尉 卒用其計策而李斯用事.

진왕각 고지 이위진국위 졸용기계책  이이사용사 


진왕이 알아채고 붙잡아 진나라의 국위로 삼아 그의 계책을 따르고 국사를 맡겼다.  


十一年 王翦·桓·楊端和攻鄴 取九城

십일년 왕전 환의 양단화공업 취구성


11년에 왕전과 환의 양단화가 업을 공격하여 9성을 함락했다. 


王翦攻閼與· 皆幷爲一軍.

왕전공연여 요양 개병위일군 


왕전이 연여와 요양을 공격하여 둘을 합쳐 하나의 군대로 만들었다.  


翦將十八日 軍歸斗食以下 什推二人從軍取鄴安陽 .

왕전십팔일 군귀두식이하 십추이인종군취업안양 환의장


왕전이 18일간 두식이하 군졸은 돌려보내고 1/5정도만 남겨 업과 안양 탈취에 동원하였는데 환의가 장수를 맡았다. 


十二年 文信侯韋死 竊葬.

십이년 문신후불위사 절장


12년 문신후라 불리던 여불위가 죽어 몰래 장사지냈다.  


其舍人臨者 晉人也逐出之 ; 秦人六百石以上奪爵  ; 五百石以下  勿奪爵.

기사인임자 진인야축출지   진인육백석이상탈작 천   오백석이하불임 천 물 탈작 


가솔중 장례에 참석한 晉나라 출신은 축출하고 秦나라 사람이면 600석 이상 관직은 관직을 몰수하고 방릉으로 이주시키고 500석이하에 장례 불참석자는 귀양하되 작위는 유지하였다. 


自今以 操國事道如嫪毐·韋者籍其門 視此.

자금이래 조국사부도여노애 불위자적기문 시차  


이때부터 나랏일을 여불위나 노애처럼 망치는 이들은 따로 노비로 관리하며 감시하였다. 


 嫪毐舍人遷蜀者.

추 복노애사인천촉자


가을에 촉으로 귀양한 노애의 무리들을 복위 시켜주었는데 


當是之時 天下大旱 六月至八月乃雨.

당시지시 천하대한 육월지팔월내우 


당시 천하에 기근이 들어 6월부터 8월까지 내도록 비가 안 내린 탓이다. 


十三年 攻趙平陽 殺趙將扈輒 斬首十萬王之河南

십삼년 환의공조평양 살조장호첩 참수십만  왕지하남


13년 환의장군이 조나라 평양을 공격하고 조나라 장군 호첩을 죽이고 병사 10만은 베었다. 

하남의 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正月 彗星見東方.

정월 혜성현동방 


정월에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났고


十月 攻趙

십월 환의공조 


10월에 환의가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十四年 攻趙軍於平陽 取宜安 破之 殺其將軍.

십사년 공조군어평양 취의안 파지 살기장군  


14년 조나라 군과 평양에서 붙어 의안을 함락하고 장군을 죽였다. 


定平陽·武城

환의정평양 무성


환의 장군이 평양과 무성을 평정하였다. 


韓非使秦 秦用李斯謀 留非 非死雲陽

한비사진 진용이사모 유비 비사운양


한비자가 사신으로 秦나라로 오자 이사의 계략대로 한비자를 억류하니 한비자가 운양에서 죽었다. 


韓王請爲臣.

한왕청위신


한나라 왕이 신하국이 되기를 청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진의 집요한 조나라 공격을 본다. 근본은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가 본디 晉나라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晉나라는 발원상 주나라의 형제국이고 이미 주나라가 망한 마당에 그 후예국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참고로 중국 역대 나라들을 보면 


  • 하나라(夏)

  • 상나라(商) 혹은 은(殷)

  • 주나라(周)

    • 동주시대

  • 춘추전국시대 - 제자백가 - 춘추오패 - 열국지

    • 춘추시대

      • 형나라(邢)


    • 전국시대

      • 연나라(燕)

      • 제나라(齊)

      • 송나라(宋)

      • 진(晉)

      • 진(陳)

      • 초나라(楚)

      • 월나라(越)

      • 위나라(衛)

      • 조나라(曹)

      • 진(秦)

      • 노나라(魯)

      • 오나라(吳)

      • 삼진(三晉)

      • 위나라(魏)

      • 조나라(趙)

      • 한나라(韓)

  • 진나라(秦) - 선진시대


  • 초한병립시대(楚, 漢) - 초한지

  • 한나라(漢)

    • 전한(前漢) 혹은 서한(西漢) - 한사군

    • 신나라(新)

    • 후한(後漢) 혹은 동한(東漢)

  • 위진남북조시대 = 육조시대

    • 삼국시대 - 삼국지

      • 위나라 (魏, 조위 - 曹魏)

      • 촉나라 (蜀, 촉한 - 蜀漢)

      • 오나라 (吳, 손오 - 孫吳)

        • 중나라 (仲)

    • 서진(西晉, 사마진 - 司馬晉)

      • 구지

    • 동진(東晉)

    • 오호십육국시대

      • 전량(前涼)

      • 전조(前趙)

      • 성한(成漢)

      • 후조(後趙)

      • 전연(前燕)

      • 전진(前秦)

      • 후연(後燕)

      • 후진(後秦)

      • 서진(西秦)

      • 후량(後涼)

      • 남량(南涼)

      • 북량(北涼)

      • 남연(南燕)

      • 서량(西涼)

      • 하(夏)

      • 북연(北燕)


    • 남북조시대

      • 북조

        • 북위(北魏)

        • 동위(東魏)

        • 서위(西魏)

        • 북제(北齊)

        • 북주(北周)

      • 남조

        • 유송(劉宋)

        • 남제(南齊)

        • 소량(蕭梁)

          • 후량(後梁)

        • 남진(南陳)

  • 수나라(隋)

  • 당나라(唐)


  • 오대십국시대

    • 오대

      • 후량(後梁)

      • 후당(後唐)

      • 후진(後晉)

      • 후한(後漢)

      • 후주(後周)

    • 십국

      • 초(楚)

      • 오(吳)

      • 오월(吳越)

      • 전촉(前蜀)

      • 민(閩)

      • 형남(荊南)

      • 남한(南漢)

      • 후촉(後蜀)

      • 남당(南唐)

      • 북한(北漢)

  • 요나라(遼)

    • 서요(西遼)

  • 송나라(宋, 조송 - 趙宋)

    • 북송(北宋)

    • 남송(南宋)

  • 서하(西夏)

  • 금나라(金)

  • 원나라(元)

  • 명나라(明)

    • 남명(南明)

  • 후금(後金)

  • 청나라(淸)

  • 북양정부

    • 군벌

    • 중화제국

    • 호법정부

  • 중화민국 - 중국 국민당(국민정부(1928년-1949년/현재), 국공내전으로 본토 상실. 현재의 대만.)

    • 중화소비에트공화국 -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 기원.

    • 왕징웨이 정권 - 화평반공을 외치며 새로운 중화민국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일본 제국의 괴뢰국.

    • 만주국 - 만주국은 청의 뒤를 잇는다고 볼 수도 있으나, 사실상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었다.

    • 몽강연합자치정부 - 내몽골 지역에 세워진 일본 제국의 괴뢰국.

  • 중화인민공화국 - 중국 공산당(1949년-현재) -http://tip.daum.net/question/92252086/92254435?q=조나라



十五年 大興兵 一軍至鄴 一軍至太原 

십오년 대흥병 일군지업 일군지태원 취랑맹


15년 다시 대군을 일으켜 하나는 업으로 하나는 태원땅으로 향해 랑맹을 함락했다. 


地動

지동


지진이 있었다


十六年九月 發卒受地韓南陽假守騰.

십육년구월 발졸수지한남양가수등 


16년 9월 한나라 남양 땅을 거두어 등을 태수로 삼았다.  


初令男子書年

초령남자서년 


처음으로 남자들 나이를 기록으로 남기게 했다. 


魏獻地於秦

위헌지어진 


위나라도 진나라에 복속되었다


秦置麗邑

진치려읍


진나라가 려읍을 설치했다


十七年 史騰攻韓 得韓王安 盡納其地 以其地爲郡 命曰潁川.

십칠년 내사등공한 득한왕안 진납기지 이기지위군 명왈영천 


17년 내사 등이 한나라를 쳐 한나라 왕 안을 생포하고 그 땅을 접수하여 영천군으로 했다. 


地動華陽太后卒民大饑.

지동  화양태후졸  민대기  


지진이 나고 화양태후가 죽고 대기근이 들었다. 


-여기 나오는 화양태후는 얘기하면 길지만 

간략히 말해 훗날 효문왕이 된 안국군의 비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효문왕이 즉위하자마자  죽자 여불위의 계략대로 자초=장양왕이 왕위에 오르고 장양왕이 여불위의 첩에게서 낳은 정=시황제가 왕위를 잇게된다. 

즉, 자초에겐 양어머니요 시황제에겐 할머니.... 


十八年 大興兵攻趙 王翦將上地 下井陘 端和將河 伐趙 端和圍邯鄲城

십팔년 대흥병공조 왕전장상지 하정경 단화장하내 갱외벌조 단화위한단성


18년 다시 병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치는데 왕전은 상지의 장수로 아래 정경을 양단화는 하내 병력을 이끌고 강외가 조나라를 치는데 합류했다 양단화가 한단성을 포위하였다. 


十九年 王翦·羌盡定取趙地東陽 得趙王.

십구년 왕전 강외진정위조지동양 득조왕


19년 왕전과 강외가 조나라 땅 동양을 함락하고 조나라왕을 생포하였다.  


引兵欲攻燕 屯中山.

인병욕공연 둔중산


병사를 이끌고 연나라를 치고자 중산에 주둔하였다.  


秦王之邯鄲 諸嘗與王生趙時母家有仇怨 .

진왕지한단 제상여왕생조시모가유구원 개갱지


진시황이 한단에 이르러 조나라 살 적에 외가 쪽으로 원한 있는 모두를 생매장하였다.  


秦王還 從太原·上郡歸

진왕환 종태원 상군귀


진시황이 귀로에 태원과 상군을 들러 귀국하였다.


始皇帝母太后崩

시황제모태후붕


시황제의 어머니가 죽고 


趙公子嘉其宗百人之代 自立爲代王 東與燕合兵 軍上谷大饑.

조공자가솔기종수백인지대 자립위대왕 동여연합병 군상곡 대기 


조나라 공자 가가 종친 수백명을 이끌고 대땅으로 가 스스로 대나라 왕이 되어 연나라와 연합하여 상곡군을 편제했다. 큰 기근이 들었다. 


-여기서 시황제의 외가 척살이 가지는 의미는 여불위의 첩이었던 모친에 대한 흔적 지우기요 

秦나라의 필생대업 三晉 조 한 위를 몰살하여 소위 원 중국 전통=회맹제의 흔적 주나라의 전멸인 이유를 보자면 본디 회맹이란 그 당시까지 전형적인 왕 선출방식의 빌미를 제거하는 것 다른 의미로 세습왕조의 정당성 확보... 

개인적으로 이 때부터 소위 중국화 작업이 이뤄진 것.... 


二十年 燕太子丹患秦兵至國  使荊軻刺秦王

이십년 연태자단환진병지국 공 사형가자진왕


20년 연나라 태자 단이 秦이 연나라에 침입할까 두려워 형가를 자객으로 보냈다. 


秦王覺之 體解軻以徇 而使王翦·辛勝攻燕.

진왕각지 체해가이순 이사왕전 신승공연


진시황이 알아채고 형가를 능지처참하여 내 보이고 왕전과 신승으로 하여금 연나라를 치게 했다. 


燕·代發兵擊秦軍 秦軍破燕易水之西.

연 대발병격진군 진군파연이수지서 


연나라 대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 군사를 공격하니 진나라 군이 연을 처부수고 이수 서쪽이었다. 


二十一年 王賁攻()[].

이십일년 왕분공 계


21년 왕분이 계성을 공격하였다.  


乃益發卒詣王翦軍 遂破燕太子軍 取燕薊城 得太子丹之首.

내익발졸예왕전군 수파연태자군 뮈연계성 득태자단지수 


마침내 군사를 더해 왕전군을 지원하여 드디어 연나라 태자군을 깨부수고 연나라 계성을 함락하고 연나라 태자 단의 목을 베었다. 


燕王東收遼東而王之

연왕동수요동이왕지


연나라 왕이 요동지방을 차지하고 왕이 되었다. 


王翦謝病

왕전사병노귀


왕전이 병과 노쇠함을 핑계로 귀향하였다. 


新鄭反

신정반


신정이 반역하고 


昌平君徙於郢

창평군사어영


창평군을 영땅으로 이주하도록 했다


大雨雪 深二尺五寸.

대우설 심이척오촌


큰 눈이 내려 2척 5촌이 쌓였다. 


二十二年 王賁攻魏 引河溝灌大梁 大梁城壞 其王請降 盡取其地.

이십이년 왕분공위 인하구관대량 대량성괴 기왕청항 진취지기


22년 왕분이 위나라를 공격할 때 대량성에 물을 대어 성이 붕괴하도록 하고 그 왕(  )이항복하자 그 땅을 함락하였다. 


二十三年 秦王召王翦 彊起之 使將擊荊

이십삼년 진왕복소왕전 강기지 사장격형


23년 진시황은 왕전을 다시 불러 강제로 장수로 세워 형나라=초나라를 치게 했다


取陳以南至平輿 虜荊王.

취진이남지평여 노형왕


진나라 이남의 평여까지 차지하고 형나라 왕을 생포했다.  


秦王游至郢陳

진왕유지영진 


진시황이 영도와 진현까지 돌아보았다. 


荊將項燕立昌平君爲荊王 反秦於淮南.

형장항연립창평군위형왕 반진아회남


형나라 장수 항연이 창평군을 왕으로 세워 회남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二十四年 王翦·蒙武攻荊 破荊軍 昌平君死 項燕遂自殺.

이십사년 왕전 몽무공형 파형군 창평군사 항연수자살


24년 왕전과 몽무가 형나라를 치고 창편군이 죽으니 항연도 자살하였다. 


- 진시황의 중국통일을 보는 기준이 각각일수 있으나...  

회맹의 종주로서 주나라 그리고 여러 제후국들을 쓸어내 중국 상고시대의 회맹제를 없애려는 노력이라 본다. 

즉, 민족사학이 말하는 고조선의 전통의 단절... 

그게 진시황의 필생의 목표인 셈....


二十五年 大興兵 使王賁將 攻燕遼東 得燕王喜.

이십오년 대흥병 사왕분장 공연요동 득연왕희 


25년 대군을 일으켜 왕분장군으로 하여금 연의 요동을 공격하게 하고 연왕 희를 사로잡았다.


還攻代 虜代王嘉.

환공대 노대왕가 


돌아오는 길에 대나라를 공격하야 대나라 왕 가를 생포하였다. 


王翦遂定荊江南地 ; 降越君 置會稽郡.

왕전수정형강남지 : 강월군 치회계군 


왕전 장군이 형나라를 치고 강남땅을 안정시켰고 월나라 우두머리가 항복하므로 회계군으로 삼았다. 


五月 天下大.

오월 천하대포


5월 전국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 

二十六年 齊王建與其相后勝發兵守其西界 通秦

이십육년 제왕건여디강후승발병수기서계 불통진 


26년 재나라 왕 전건이 재상 후승과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와 단절을 위해 서쪽 국경을 막았다


秦使將軍王賁從燕南攻齊 得齊王建

진가장군왕분종연남공제 득제왕건 


진나라가 연나라를 점령한 왕분 장군을 시켜 제나라를 치도록 하고 제나라왕 전건을 사로 잡았다.  


秦初幷天下 令丞相·御史曰 : 日韓王納地效璽 請爲藩臣 已而倍約 與趙·魏合從畔秦 故興兵誅之 虜其王

진초병천하 영승상 어사왈 : '이일한왕납지효새 청위번신 이이배약 여조 위합반진 고흥병주지노기왕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고 승상과 어사에게 이르길 : '지난 날 한나라 왕은 땅과 옥새를 들고와 번신이 되겠노라 했다가 약조를 어기고 조나라 위나라와 함께 빈나라에 반역하였기에 병력을 일으켜 주살하고 왕을 사로 잡았다. 


寡人以爲善 庶幾息兵革趙王使其相李牧約盟 故歸其質子已而倍盟 反我太原 故興兵誅之 得其王趙公子嘉乃自立爲代王 故擧兵擊滅之魏王始約服入秦 已而與韓·趙謀襲秦 秦兵吏誅 遂破之

과인이위선 서기식병혁 조왕사시상이목래약맹 고귀기질자 이이배맹 반아태원 고흥병주지 득기왕 조공자가내자립위대왕 고거병격멸지 위왕시약복입진 이이여한 조모습진 진병리주수파지


내 그 정도면 됐다싶어 병력을 거두려 앴는데 조왕이 이목을 사자로 보내어 동맹을 맺자기에 그 공자를 볼모에서 풀어주었건만 동맹을 배신하고 태원땅에서 반기를 드니 병사를 일으켜 주살하고 왕을 잡아왔다. 볼모에서 풀린 조나라 공자 가가스스로 대나라 왕으로 자칭하니 병력을 보내 멸망시켰다


荊王獻靑陽以西 已而畔約 擊我南郡 故發兵誅 得其王 遂定其荊地

형왕헌청양이서 이이반약 격아남군 고발병주 기득왕 수정기형지


형나라 왕도 청양 서쪽 당을 바치노라 하더니 약속을 깨고 우리 남쪽 郡을 침범하길래 병사를 보내어 왕을 잡아들이고 형땅을 평정하였다. 


燕王昏 其太子丹乃陰令荊軻爲賊 兵吏誅 滅其國

연왕혼란 기태자단내음영형가위적 병리주 멸기국


연나라도 난을 바라고 태자 단이 형가를 자객으로 보내 적으로 돌아섰기에 병사를 보내 주살하고 그 나라를 멸망시켰다.  


齊王用后勝計 絶秦使 欲爲 兵吏誅 虜其王 平齊地.

제왕용후승계 절진사 욕이란 병리주 노기왕 평제지 


제나라 왕은 후승의 계교에 따라 진나라와 단교하고 반란을 도모하기에 병사를 보내 왕을 잡아들이고 제나라 땅을 평정하였다. 


寡人以眇眇之身 興兵誅暴亂 賴宗廟之靈 六王咸伏其辜 天下大定今名號不更 無以稱成功 傳後世其議帝號.” 

과인이묘묘지신 흥병주폭난 뢰종묘지영 육왕함복기고 천하대정 금명호불편 무이칭성공전후세 기의제호' 


내 보잘것 없는 몸으로 병사를 일으켜 난을 바로잡음은 종묘의 혼령들의 도우심이요 6개 국왕들이 머리를 숙이니 천하가 평정되었다. 이제 왕의 칭호가 이런 성공을 후세에 전하기에 걸맞지 않고 편치 않으니 왕의 칭호에 대해 논하라' 하더라 


丞相綰·御史大夫劫·廷尉斯等皆曰 : “昔者五帝地方千里 其外侯服夷服諸侯或朝或否 天子能制今陛下興義兵 誅殘賊 平定天下 爲郡縣 法令由一統 自上古以未嘗有 五帝所

승상관 어사대부겁 정위사등개왈 : '석자오제지방천리 기외후복이복제후혹조혹부 천자불능제금폐하흥의병 주잔적 평정천하 해내위군현 법령유일통 자상고이래미상유 오제소불급 


승상 왕관 어사대부 풍겁과 정위 이사등이 모두 말하길: '옛날 5제시절 영토 1000리 밖 후복 이복제후들이 조정에 들기도 하고 않기도 하여 천자의 다스림에 문제가 있었읍니다. 이제 폐하가 의병을 일으켜 잔당을 처리하고 천하를 안정시켜 전국에 군현제를 세우고 명령체계를 하나로 세우셨는데 이는 5제 때로부터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臣等謹與博士議曰 : ‘古有天皇 有地皇 有泰皇 泰皇最貴.’ 臣等昧死上尊號 王爲‘泰皇’命爲‘制’令爲‘詔’ 天子自稱曰‘朕’.” 

신등근여박사의왈: '고유천황 유지황 유태황 태황최고' 신등미사상존호 왕위테황 명위 제 여위 소 찬자자칭왈 짐


신하들이 박사들과 논의하여 말씀드립니다: ' 옛날 하늘과 땅을 주재하는 임금이 있고 그를 아우르는 태황이 있었는데 그 중 제일이 태황입니다 저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왕의 명칭을 올려드립니다. 왕은 태황으로 부르시고 칙령은 제와 소로 그리고 왕께서는 스스로 짐이라 칭하소서 하니 


王曰 : “去‘泰’ 著‘皇’ 上古‘帝’ 位號 號曰‘皇帝’他如議.” 

왕왈: '거태 저황 변상고제 위호 호왈 황제 타여의 


왕이 답하길 '태자는 빼고 황자만 따고 상고시대 5제라 부르던 제를 따서 황제라 하고 나머진 상의대로 하라'


制曰 : “可.” 

제왈; '가'


그리곤 칙령으로 '가하다'하고


追尊莊襄王爲太上皇

추존장양왕위태상황 


장양왕을 태상황으로 추존하고 


制曰 : “朕聞太古有號毋諡 中古有號 死而以爲謐如此 則子議父 臣議君也 甚無謂 朕弗取焉自今已 除諡法朕爲始皇帝後世以計 二世三世至于萬世 傳之無窮.

제왈 : '짐문태고유호무시 중고유호 사이이행위밀 여차 즉자의부 신의군야 심무위 짐불취언 

자금이래 제시법 짐위시황제 후세이계수 이세삼세지우만세 전지무궁'


칙령으로 정하여 말하길 '내 듣기엔 태고엔 호는 있어도 시호는 없었고 그 뒤 호로만 부르다 사후에 시호를 정한 걸로 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자식이 아비를 신하가 임금을 평가하는 꼴이니 말도 안되는 짓이라 생각해 따르지 않겠다. 이제부터는 시호법을 없애고 내 신황제가 될터이니 후대 왕들은 숫자대로 2세 3세 황제로 불러 세세토록 그리 해라'하더라...


-여기 보면 소위 황제 칭호의 연원을 본다. 하늘과 땅을 동시에 아우르는 태황에서 황이란 글자를 그리고 5제들의 제자를 따서 황제로 부르기로 한 것... 따라서 시황제란 =처음 황제=황제 1세요 다음 황제들은 그저 황제로 부름이 옳다. 호해를 2세 시황제로 부름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황제란 칭호는 명실상부 전국을 하나의 체계로 중앙집권제를 이룬 업적을 나타내는 단어일 뿐이다. 

본문에 밝히듯 5제시대까지 소위 田服제로 일정 거리 이상의 무리들과 협력체제를 갖췄던 것을 완전히 통제하에 들인 것을 기념하여 만든 新造語일 뿐이다. 


그 논리대로 따르면 중국의 정체성은 중앙집권제의 국가로 상고시대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것... 


始皇推終始五德之傳 以爲周得火德 秦代周德 從所

시황추종시오덕지전 이위주득화덕 진대주덕 종소불승 


시황제는 5덕=5행설을 믿어 주나라는 5행중 불의 기운이요 진의 덕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方今水德之始 改年始 朝賀皆自十月朔

방금수덕지시 개년시 조하개자십월삭


물의 기운이 이긴 걸로 보아 신년을 바꾸어 조정하례를 10월 초로 하고  


衣服旄旌節旗皆上黑

의복모정절기개상흑


의복이나 깃발등 모든 상징의 최고를 검은색으로 하고 


以六爲紀 符·法冠皆六寸 而輿六尺 六尺爲步 乘六馬.

수이육위기 부 법관개육촌 이여육착 육척이보 승육마  


6을 기본 숫자로 정하여 부절과 법관을 6촌으로 수레 폭은 6자로 6척을 1보로 정하고 6마리 말을 탔다. 


名河曰德水 以爲水德之始

경명하왈덕수 이위수덕지시 


황하의 이름을 덕수라 하여 수기운의 기원으로 삼았다. 


剛毅戾深 事皆決於法 刻削毋仁恩和義 然後合五德之.

강의누심 사개결어법 각삭무인의화의 연후합오덕지수  


강직함을 최고덕으로 하여 모든 일은 법대로 처리하고 어질고 은혜를 베풀고 화목함이나 옳음에 치우치지않음이 5행을 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於是急法 久者.

어시급법 구자불사 


한 번 정한 것을 바꾸지 않았다. 


-여기서 5행의 水는 북쪽과 검은 색 그리고 겨울을 의미하여 엄혹함이 기본 기운이다. 


丞相綰等言 : “諸侯初破 燕·齊·荊地遠 爲置王 毋以塡之請立諸子 唯上幸許.” 

승상왕관언 : '제후초파 연 제 형지원  불위치왕 무이진지  청립제자 유상행허 


승상 왕관이 말하길 : 제후제를 깼지만 연나라 제나라 형나아 당이 멀리 있는데다 왕이 없으니다스리기 힘듭니다. 다시 왕자들을 제후로 보내도록 윤허하소서'하니


始皇下其議於群臣 群臣皆以爲便.

시황하기의어군신 군신갸이위편


시황제가 이 의제를 군신회의에 내어놓자 군신들 모두 동의하는데 


廷尉李斯議曰 : “周文武所封子弟同姓甚衆 然後屬疏遠 相攻擊如仇讎 諸侯相誅伐 周天子弗能禁止今海賴陛下神靈一統 皆爲郡縣 諸子功臣以公賦重賞賜之 甚足易制天下無 則安寧之術也置諸侯不便.

정위이사의왈 : '주문무소종자제동성심중 연후속소원 상공격여구수 제후경상주벌 주천자불능금지 금해내뢰폐하신령일통 개위군현 제자공신이공무세중상사지 심족이제 천하무이의 즉안녕지술야 치제후불편'


정위 이사가 의제를 내기를 : '주나라 문무왕이 일족을 제후로 봉했으나 후일 서로 관계가 소원해져 서로 원수처럼 싸우니 제 아무리 주나라 왕이 천자라도 통제치 못한 것 이제 폐하를 중심으로 하나로 통일되어 군현제가 실현 되었고 왕자 공신들을 세를 줄이고 상을 내리면 다스리기 쉬울 것이고 다른 생각이 안생길텐데 제후를 세워 불편함을 만들일 없읍니다'하니 


始皇曰 : “天下共苦戰鬪 以有侯王賴宗廟 天下初定 立國 是樹兵也 而求其寧息 豈不難哉廷尉議是.

시황왈 : '천하공고전투불휴 이유후왕 뢰종묘 천하초정 우복립국 시수병야 이구이영식 이불난재 정위의시'


시황제 이르길: '제후들 탓에 천하가 시끄러운 것이 맞다 이제 종묘(제사)도 안정 되었는데 무리를 나눠 병력을 주면 평안함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정위(직책) 이사의 말이 옳다'하고 


分天下以爲三十六郡 郡置守·尉·監

분천하이위삼십육군 군치수 위 감


나라를 36개 군으로 나누어 군마다 수 위 감을 두었다. 

* 수는 군수를 위나 감은 그 하부 직책을 의미한다. 


名民曰“黔首”

경명민왈'검수'


백성을 부르는 말을 '검수'로 하였다. 

* 검수: 말 그대로 검은 머리.... 


대포 


큰 잔치가 열렸고 


收天下兵 聚之咸陽 銷以爲鍾 金人十二 重各千石 置廷宮中.

수천하병 위지함양 소이위종거 금인십이 중각천석 치정궁중 


나라안 병기들을 함양에 모아들여 종거(종 걸이)와 쇠로 만든 동상 12개를 각각 무게가 1000석이고 궁정안에 세웠고.... 


一法度衡石丈尺

일법도형석장척


법과 도량형 석, 장, 척을 새로 정하고 


同軌

거동궤


수레의 규격을 통일하고 


書同文字

서동문자 


글자를 통일하고 


地東至海曁朝鮮 西至臨洮·羌中 南至 據河爲塞 並陰山至遼東.

지동지해기조선 서지임조 강중 남지북향호 북거하위색 병음산지요동  


동쪽 땅은 조선 근처 바다에, 서쪽은 임조와 강중에 남으론 북향호까지 북쪽으론 강을 경계삼아 쌍 음산에서 요동까지 넓혔다.  


徙天下豪富於咸陽十二萬

사천하호부어함양십이만호 


천하 갑부들 12만호를 함양으로 불러들여 


諸廟及章臺·上林皆在渭南

제묘급장대 상림개재위남


각 조상을 모시는 종묘와 번화가(장대) 상림(왕실 정원)을 모두 위수 남쪽으로 유치하였다. 


秦每破諸侯 寫放其宮室 作之咸陽阪上 南臨渭 自雍門以東至涇·渭 殿屋複道周閣相屬.

진매파제후 사방기궁실 작지함양북판상 남임위 자옹문이동지경 위 전옥복도주각상속 


진나라가 제후들을 깰 때마다 그 궁전을 복사하여 함양북쪽 언덕에 세우니 남으로는 위수에 닿는데 옹문부터 동쪽으로 위수와 경수까지 서로 맞닿아있다. 


所得諸侯美人鍾鼓 以充入之.

소득제후미인종고 이충입지 


거기엔 각 제후들이 살면서 흥청망청하였다. 


-여기서 시황제의 업적 가운데 각 국의 문화를 모아 함양북쪽 언덕에 재현한 일... 

오늘날로 말하면 민족 박물관??? 

또 하나 여기서 조선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미 진으로서도 어쩔수 없는 대국임을 은연중 밝힌다. 

더더구나 조선의 특징을 바다 건너 그리고 해동과 분리하여 설명한다는 점.... 

바다 건너라는 표현이 曁란 글자로 바다를 공유하는 의미로 쓴다는 점... 


二十七年 始皇巡隴西· 出雞頭山 過回中.

이십칠년 시황순롱서 북지 출계두산 과회중 


27년 시황이 롱산 서북지역을 순시할 때 계두산에서 회중궁을 지날 때


焉作信宮渭南 命信宮爲極廟 象天極.

언작신궁위남 이경명신궁위극묘 상천극  


위수 남쪽에 信궁을 지을 것을 명하고 이를 극묘라 명하여 하늘의 북극성을 상징했다.  


自極廟道通酈山 作甘泉前殿.

자극묘도통여산 작감천전전 


극묘에서 여산까지 길을 내고 감천궁의 전실을 지었다. 


築甬道 自咸陽屬之.

축용도 자함양속지  


포장도를 함양에서 속지들을 향해 내고 


 賜爵一級.

시세 사작일급 


그 해에 작급을 일계급씩 올려주고 


治馳道

치치도 


말들이 달리는 도로=현 고속도로내지 통신망을 만들었다. 


二十八年 始皇東郡縣 上鄒嶧山

이십팔년 시황동행군현 상추역산 


28년 시황이 동쪽 군현을 방문하여 추역산에 올랐다. 


立石 諸儒生議 刻石頌秦德 議封禪望祭山川之事.

입석 여노제유생의 각석송진덕 의봉선망제산천지사 


노나라 유생들과 협의하여 비석을 세워 진나라의 덕을 칭송하게 하고 봉선의식과 각종 제사에대해 의논하였다. 


乃遂上泰山 立石  祠祀.

내수상태산 입석 봉 사사 


태산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땅을 돋워 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고 


 風雨 休於樹下 因封其樹爲五大夫

하 풍우폭지 휴어수하 인봉기수위오대부


내려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 나무 아래 쉬었는데 그 나무에 5째 대부의 품계를 내렸다. 


禪梁父

선양보


양보산에선 자리를 치우고 산천에 대한 제사=선을 올렸다.  


刻所立石 其辭曰 : 

각소입석 기사왈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웠는데 씌여진 글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추역산 태산에 비를 세운 기록이 나오는데.... 

비석을 세운다는 말은 그 지역이 전술 전략적으로 요지라는 말....

노나라 유생들과 의논했다는 말은 제사 법을 의논했다는 말이요.... 

그간 제사가 끊겼었음을 말하는 것... 


즉, 추역산 태산은 노나라 땅이요 고래로 夷족의 땅으로 인지되던 곳... 

이제서야 소위 제사에 대한 예법을 되살려 천하의 지배자임을 알리려는 노력이다.   


皇帝臨位 作制明法 臣下脩飭.

황제임위 작제명법 신하수칙


황제께서 위에 올라 법을 바로세우시니 신하들이 삼가고....  


二十有六年 初幷天下 賓服.

이십유육년 초병천하 망불빈복


26년 처음 전국을 통일하시니 찾아오지않는 제후들이 없었고  


親巡遠方黎民 登茲泰山 周覽東極.

친순원방여민 등자태산 주람동극


친히 멀리 있는 백성들을 돌아보시고자 태산에 올라 두루 동쪽끝까지 살피시니  


從臣思迹 本原事業 祗誦功德

종신사적 본원사업 지성공덕


따르던 신하들이 업적을 돌아보고 하신 일의 시작을 기억하며 공덕을 기리누나  


治道運 諸産得宜 皆有法式.

치도운행 제산득의 개유법식


다스림이 원할하니 모든 결과가 마땅히 법식에 맞고 


大義休明 垂于後世 順承勿革.

대의휴명 수우후세 순승물혁


대의가 분명하니 후세에 전해짐에 변동이 없고  


皇帝躬聖 平天下 懈於治.

황제궁성 기평천하 불해어치


황제가 몸소 거룩함을 닦으니 세상이 평안하고 다스림에 오차가 없고    


夙興夜寐 建設長利 專隆敎誨

숙여야참 건설장리 전륭교회


주야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애쓰며 큰 가르침에 전력을 다하니  


訓經宣達 遠近畢理 咸承聖志.

훈경의달 원근필리 함승성지


가르침이 잘 전달되니 원근이 서로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거룩한 뜻에 맞아 떨어지니  


貴賤分明 男女禮順 愼遵職事

귀천분명 남여예순 신준직사 


위계가 서고 남여가 유별하여 할 일을 어긋남없이 하니 


昭隔 淸淨 施于後嗣.

소격내외 미불청결 시우후사 


안밖이 분명하고 청렴함을 후대 사람들에 베푸시니  


化及無窮 遵奉遺詔 永承重戒

화급무궁 준봉유조 영승중계


그런 모습이 영원하도록 남기신 뜻을 지켜 깊이 명심하여 영원토록 계승하라  


-이상은 소위 추역산 비석의 내용으로 흔한 송덕비의 내용을 갖췄다만... 

주의할 것은 지도자로서의 덕이란 걸 이 두 구절이 웅변한다.


皇帝躬聖 平天下 懈於治.

황제궁성 기평천하 불해어치


夙興夜寐 建設長利 專隆敎誨

숙흥야매 건설장리 전륭교회


躬聖 夙興夜寐.... 스스로 덕을 주야로 닦아야 한다라는 말... 

느슨하고 게을러지지 않도록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힘서야 함을 말한다. 


於是乃並勃海以東 過黃· 窮成山 登之罘 立石頌秦德焉而去

어시내병발해이동 과황 추 궁성산 등지부 입석송진덕언이거 


또한 그 즈음 발해를 끼고 동쪽으로 제나라 땅이었던 황현 추현을 지나 성산을 향해 지부산에 올라 송덕비를 세우고 돌아갔다. 


-여기서 첫 구절을 볼 때 並이란 단어를 주의해 해석해야 한다. 병은 나란히=따라서란 뜻이고勃海以東이란 말도 발해의 동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발해를 끼고' 라는 해석으로 해야 옳다. 

왜냐하면 조선과의 경계를 발해 해안선을 공유한다 했기 때문이다. 



南登琅邪  留三月

남등낭아 대요지 유삼월


남쪽으로 낭야대에 올라 기뻐하며 3개월을 머물고 


乃徙黔首三萬琅邪臺下 十二.

내사검수삼만호랑야대하 복십이세 


백성 3만호를 낭야대 아래 이주시켜 12년간 세금을 면제하였다. 


作琅邪臺立石刻 頌秦德 明得意.

작랑아대입석각 송진덕 명득의 


낭야대에 석비를 세워 진나라의 덕을 칭송하며 득의 양양한 마음을 밝혔다. 


 : 維二十八年 皇帝作始端平法度 萬物之紀以明人事 合同父子聖智仁義 顯白道理.

왈 : 유이십팔년 황제작시  단평법도 만물지기 이명인사 합동부자  성지인의 현백도리 


비석에 남기길 28년 황제로서 법도를 반듯히 세우니 만물이 제자리를 잡고 사람사는 도리를 밝히시니 부자가 뜻이 합하고 도리의 기본이 두루두루 잡혀 도리가 바로 섰다. 


東撫東土 卒士事已大畢 乃臨于海

동무동토 이성졸사  사이대필 내임우해 


문사들을 살펴 동쪽 땅=夷의 사상을 위무하니 문사를 섬김에 다하신 것이요 그 겸허함이 바다=조선까지 이른 것이라 


皇帝之功 本事上農除末 黔首是富.

황제지공 권노본사  상농제말 검수시부 


본질에 충실한 황제의 노력이요 농업=경제를 우선하여 백성들을 부요하게 하셨고   


普天之下 心揖志器械一量 同書文字日月所照 舟輿所載皆終其命 得意應時動事 是維皇帝匡飭 水經地.

보천지하 단심읍지  기계일량 동서문자  일월소조 주여소재  개종기명 막불득의 응시동사 시유황제  광칙이속 능수경지 


세상 사람들의 뜻과 정서를 모으시고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시니 해와 달이 밝히 비추고 수레와 배가 제대로 물건을 실어나르고 삿된 생각없이 제 본분을 다하니 황제 덕분에 때에 맞게 일이 되어지고 기이한 풍속을 따르지 않으니 전국이 한결 같았다.  

*지방색이나 차별이 없다라는 의미


憂恤黔首 朝夕除疑定法 咸知所辟

우휼검수 조석불해  제의정법 함지소벽


밤낮으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한 점 의심없는 바른 법을 세우시니 이것이 참된 임금된 모습이다.  


方伯分職 諸治經易擧錯必當 如畫.

방백분직 제치경이  거착필당 막불여화


각 지방 지도자들이 일을 나눠 맡으니 일이 쉬워지고 착오없이 돌아갔다. 


皇帝之明 臨察四方尊卑貴賤 踰次姦邪 皆務貞良細大盡力 莫敢怠荒

황제지명 임찰사방  존비귀천 불유차행  간사불용 개무정량  세대진력 막감태황


황제가 현명하게 사방을 살피니 귀천을 막론하고 딴 짓 안하고 간사함을 용남치 않고 모두 정숙하고 선량하게 되니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고 감히 게으르거나 막 살지 않더라 


遠邇辟隱 專務肅莊端直敦忠 事業有常

원이피은 전무숙장  단직돈충 사업유상


서로 속이질 않고 엄숙하며 올곧고 충직하니 일마다 상식적이다. 


皇帝之德 存定四極除害 興利致福.

황제지덕 존정사극  주란제해 흥리치복


황제의 덕으로 사극=모든 일이 정해지고 난을 일으키는자를 죽여 피해를 없애니 이로움이 복이 되더라 


節事以時 諸産繁殖黔首安寧 用兵革.

절사이시 제산번식  검수안녕 불용병혁


모든 일이 때에 적절하니 풀요로워져 백성들이 편안하니 병사를 쓸 일도 혁명을 할 일도 없어지고   


六親相保 終無寇賊驩欣奉敎 盡知法式六合之 皇帝之土.

육친상보 종무구적  환흔봉교 진지법식 육합지내 황제지토


서로돕는 풍속에 도적이나 쌈이 없어지고 배움에 흔쾌히 임하니 모두 법과 방식을 알고 천지사방이 다 황제의 영역이더라 


西涉流沙 南盡北戶東有東海 過大夏人迹所至 臣者

서보유사 남진북호  동유동해 북과대하  인적소지 무불신자


서쪽 유사 남쪽 북호=북향집, 그리고 동으론 동해까지 북으론 대하를 지나 사람 사는 곳 모든 사람들이 신하 아닌 곳이 없더라 


功蓋五帝 澤及牛馬受德 各安其宇.

공개오제 택급우마  막불수덕 각안기우


황제의 공이 5제의 공을 넘어서니 은택이 짐승에게까지 미쳐 덕을 받지 않은 자가 없다. 


維秦王兼有天下 立名爲皇帝 乃撫東土 至于琅邪

유진왕겸유천하 립명위황제 내무동토 지우랑야 


진나라왕이 천하를 묶어 황제가 되어 동쪽 땅 랑야까지 어루시고  


列侯武城侯王離·列侯通武侯王賁·倫侯建成侯趙亥·倫侯昌武侯成·倫侯武信侯馮毋擇·丞相隗林·丞相王綰·卿李斯·卿王戊·五大夫趙嬰·五大夫楊樛從與議於海上

열제후무성후왕리 열후통무후왕분 윤후건성후조해 윤후창무후성 윤후무신후풍무택 승상외림

승상왕관 경이사 경왕무 오대부조영 오대부양규종 여의어해상 


열후 왕리 왕분,윤후 조해 성 풍무택 승상 외림,왕관 재상 이사 5대부 조영 양규등이 바닷가에서 회합을 하였는데 


 : “古之帝者 過千里 諸侯各守其封域 或朝或否 相侵暴亂 殘伐 猶刻金石 以自爲紀古之五帝三王 知敎 法度 假威鬼神 以欺遠方 稱名 久長其身未歿 諸侯倍叛 法令不行今皇帝幷一海 以爲郡縣 天下和平昭明宗廟 體道 尊號大成群臣相與誦皇帝功德 刻于金石 以爲表經.


왈 : '고지제자 지불과천리 제후각수지봉역 혹조혹부 상침폭란 잔벌불지 유각금석 이자위기

고지오제삼왕 지교부동 법도불명 가위귀신 이기원방 실불칭명 고불장구  기신미몰 제후배반 법령불행 금황제병일해내 이위군현 천하평화 소명종묘 체도행덕 존호대성 군신상여송황제공덕 각우금석 이위표경'


옛날 임금들은 영토가 천리밖에 안되고 제후들은 제 영역만 지키고 조회에 참가도 제가끔이요서로 싸움이 그치지않는 데다 제 나름 금석=기준을 삼아 역사를 정하였다. 

3황5제도 한결같은 가르침이 아니라 제각각 가르치고 법도 제각각인 데다 스스로 신 인 척하여 끼리끼리 뭉치니 이름도 불명확하여 오래 전해지지않는데다 당자가 죽지 않았어도 제후들이 제 멋대로 배반하고 법을 지키지 않았다. 

이제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군현제를 세우니 천하가 편안하고 종묘=조상이 누군지 분명해지고 도덕이 잡히니 명성이 자자하여 신하들이 앞다투어 황제를 칭송하니 본=표경이 될만하다'하였다. 


-여기서 진시황제 이전의 세대는 너무 자율적이라 통일성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군현제를 통해 중앙집권적 질서를 이룬 업적을 주장한다.     



 齊人徐巿等上書 言海中有三神山 名曰蓬萊·方丈·瀛洲 僊人居之.

기이 제인서불등상서 헌애중유삼신산 명왕봉래 방장 영주 선인거지


그리고 제나라 출신 서불이 상소를 올려 이르길 먼 바다에 신선이 사는 3신산이 있는데 이름이 봉래 방장 영주라 합니다.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청득제계 여동남여구지 


제계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3신산을 찾아보겠읍니다. 


於是遣徐巿發童男女千人 入海求僊人.

어시견서불발동남여수천인 입해구선인


그래서 서불이 어린 아이들 수천명과 선인을 찾아 떠났다. 


- 난데없이 왠 선인을 찾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자 

중국인들의 머릿 속에 각인된 것은 夷라 부르는 선진문물에 대한 동경이 있어왔는데, 기실 전쟁으로 맞붙어 보니 한낱 오합지졸 오랑캐 무리 정도라...

더 먼 동방 어떤 곳에 근원적인 선진 문물이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함을 나타내는 말....  

 

始皇還 過彭城 齋戒禱祠 欲出周鼎泗水

시황환 과팽성 제계도사 욕출주정사수 


시황제가 돌아오는 길에 팽성에 들러 사당에서 사수에 바진 구정을 꺼내길 기도하고 


使千人沒水求之 弗得.

사천인몰수구지 부득 


천 명의 사람을 시켜 꺼내려 했으나 얻지못하고 


乃西南渡淮水 之衡山·南郡

내서남도회수 지형산 남군


서남쪽으로 회수를 건너 형산과 남군에 이르러 


浮江 至湘山祠.

부강 지상산사  


상산 사당에 가려고 강을 건너려는데  


逢大風 得渡.

봉대풍 기부득도 


큰 바람을 만나 건널수 없었다. 


上問博士曰 : “湘君何神?” 

성문박사왈 : '상군하신'


그래서 박사에게 묻기를 상 지역의 섬기는 신이 누구냐 물으니  


博士對曰 : “聞之 堯女 舜之妻 而葬此.

박사대왈 : '문지 요녀 순지처 이장차' 


박사가 답하길 '듣기론 요임금의 딸로 순임금의 처로 여기 장사했다 합니다'하니


於是始皇大怒 使刑徒三千人皆伐湘山樹 赭其山.

어시황제대노 사형도삼천인개벌상산수 자기산 


황제가 대노하여 죄수 3000명으로 상산의 나무를 베어 민둥산을 만들고 


上自南郡由武關歸.

상자남군유무관귀 


시황제가 남군에서 무관을 거쳐 환궁하였다. 


二十九年 始皇東游

이십구년 시황동류


29년 시황제가 동쪽을 여행하는데 


至陽武博沙中 爲盜所驚.

지양무박랑사중 위도소경 


양무 박랑사에서 강도를 만나 놀란 일이 있다


求弗得 乃令天下大十日.

구부득 내령천하대색십일


놓쳤기에 천하에 10일간 대 수색령을 내렸다. 


-이 이야기는 소위 장자방과 창해공의 진시황 살해 기도를 말하는데...

창해공이 철추로 시황제의 수레를 노렸던 일.... 


登之罘 刻石

등지부 각석


지부산에 올라 비석을 세웠다 


其辭曰 : 

기사왈


거기 쓰여있길 


維二十九年 時在中春 陽和方起.

유이십구년 시재중춘 양화방기  


29년 양기의 온화한 기운이 일어나는 한창 봄에 


皇帝東游 巡登之罘 臨照于海.

황제동류 순등지부 임조우해  


황제가 동쪽을 다니다 지부산에 올라 바다에 해를 마주하니 


從臣嘉觀 原念休烈 追誦本始.

종신희환 원념휴열 추송본시  


따르던 신하들도 기뻐 이룬 업적을 생각하며 그 처음을 찬송하니  


大聖作治 建定法度 顯箸綱紀.

대성작치 건정법도 현저강기 


위대한 성인이 법도를 바로세우고 체계(강기)를 세우고 다스리기 시작하여 


外敎諸侯 光施文惠 明以義理.

외교제후 광시문혜 명이의리 


밖으로 제후들을 교화하고 널리 강압적이지 않은 은혜를 베풀고 정의와 이치를 밝히 펴시는데 


六國回辟 貪戾無厭 虐殺

육국회피 탐려무염 학살불이 


6개 나라는 따르지 않고 탐욕에 빠져 학살이 그치지 않았다.  


皇帝哀衆 遂發討師 奮揚武德.

황제애중 수발토사 분양무덕 


황제가 백성들을 가엽게 여겨 군사들을 일으켜 武의 덕이 무언지 펼쳐보였다. 


義誅信 旁達 賓服

의주신행 위천방달 막불빈복


정의로 심판하고 신의를 보여주니 위엄이 널리 전달되니 모두들 찾아 오더라 


烹滅彊 振救黔首 周定四極

팽멸강포 진구검수 주정사극


강포함을 없애 백성들을 구하시고 널리 한계를 정하시며(전쟁을 없애고)


普施明法 經緯天下 永爲儀則.

보시명법 경위천하 영위의칙 


밝은 법을 펼치시고 천하의 체계를 세우시니 영원한 모범이 되었다. 


大矣哉宇縣之中 承順聖意.

대의재  우현지중 승순성의 


위대하도다 천하 모든 고을들이 거룩한 뜻에 순종하도다  


群臣誦功 請刻于石 表垂于常式.

군신송공 청각우석 표수우상식


상하 모든 신하들이 공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워 통상=기준적인 법으로 나타내노라


其東觀曰 : 維二十九年 皇帝春游 覽省遠方.

기동관왈 : 유이십구년 황제춘유 남성원방


그 동쪽 면에 써있길 ; 29년 봄 황제가 먼 지방을 살피러 나섰다가  


逮于海隅 遂登之罘 昭臨朝陽.

체우해우 수등지부 소임조양  


바닷가에 이르러 지부산에 올라 아침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觀望廣麗 從臣咸念 原道至明.

관망광려 종신함념 원도지명


그 장관을 보던 신하들과 함께 으뜸되는 도리란 밝은 것임을 생각하고  


聖法初興 淸理疆內 外誅暴彊.

성법초흥 청리강내 외주폭강


시황제가 거룩한 법으로 안으로 깨끗한 도리를 펴고 밖으론 강포함을 쳐 없앴다 


武威旁暢 振動四極 禽滅六王. 

무위방창 진동사극 금멸육왕


무위를 떨쳐 6개국 왕들을 없애니 온 세상을 들썩였고


闡幷天下 甾害絶息 永偃戎兵.

천병천하 재해절식 영언융병


천하를 통일하여 전쟁의 폐해를 없애고 융(서쪽 오랑캐)을 쓰러트려 영원히 일어나지ㅣ 못하게 하시니  


皇帝明德 經理宇內 視聽不怠. 

황제명덕 경리우내 시청불태 


황제의 밝은 덕으로 천하의 질서를 감찰함에 게으르지 않으시어 


作立大義 昭設備器 咸有章旗.

작립대의 소설비기 함유장기


대의를 세우시고 도량형을 통일하니 모두 (맞게)구별되더라   


職臣遵分 各知所行 事無嫌疑.

직신준분 각지소행 사무혐의 


신하들은 제 직팩과 분수를 알아서 행하니 하는 일에 의심이나 불신이 없고  


黔首改化 遠邇同度 臨古絶尤.

검수개화 원이동도 임고절우  


백성들이 화목하고 온 나라가 같은 도량형으로 옛 태평성대(3황5제)를 맞이하였다.


常職旣定 後嗣循業 長承聖治.

상직기정 후사순업 장승성치 


직분에 따른 기준이 생기니 후사들이 이어받아 거룩한 통치를 오래토록 이어가라


群臣嘉德 祗誦聖烈 請刻之罘.

군신가덕 지송성열 청각지부


임금과 모두 아름다운 덕을 갖춰 거룩한 열심을 칭송하며 지부에 비석 세우길 청하였다라 기록되어있다.   


 遂之琅邪 道上黨入.

선 수지낭야 도상당입


돌고돌아 낭야에 갔다 상당으로 들어갔다


三十年 無事.

삼십년 무사 


30년엔 별 다른 일이 없었고 

 

三十一年十二月 曰“嘉平”.

삼십일년십이월 경명랍왈 '가평' 


31년 12월 납월=섣달을 가평으로 개명하였고 


賜黔首里六石米 二羊.

사검수리육석미 이양


각 마을 백성들에게 6석의 쌀과 두 마리 양을 하사하였다 


始皇爲微咸陽 與武士四人俱 夜出逢盜 見窘 武士擊殺盜 關中大二十日米石千六百.


시황위미행함양 여무사사인구 야출봉도란지 견군 무사격살도 관중대색이십일 미석천육백


시황제가 호위무사 4명과 함양을 야간 암행하다 란지에서 도적을 만났고 퇴로가 없는 도적들을 무사가 격살하였고 관중(동쪽의 함곡관(函谷關), 남쪽의 무관(武關), 북쪽의 소관(蕭關), 서쪽의 산관(散關) 등 네 관문의 중앙지역)을 20일 간 쌀 1600석을 걸고 대대적으로 수색하였다. 


三十二年 始皇之碣石 使燕人生求羨門·高誓

삼십이년 시황지갈석 사연인노생구선문 고서


32년 시황이 갈석에와 연나라 사람 노생을 시켜 명망높은 선인인 선문과 고서를 찾으라 시켰다. 


刻碣石門

각갈석문


갈석산 돌로 된 山門에 글을 새겼고.


壞城郭 決通隄防

괴성곽 결통제방


성곽무너진 부분을 제방으로 연결하였다


其辭曰 : 

기사왈


거기 기록되길


遂興師旅 誅戮無道 爲逆滅息.

수흥사여 주륙무도 위역멸식 


황제가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무리를 주살하여 역모를 꿈꾸지 못하게 했고 


武殄 無罪 庶心咸服.

무진목역 문복무죄 서심함복  


강한 군사력으로 반역의 무리를 없애고 학문적 자세로 죄없는 자를 복위하니 백성들 마음에 승복하는 마음이 들더라  


 賞及牛馬 恩肥土域.

혜론공로 상급우마 은비토역 


너그러이 공로를 따져 소나 말로 상을 주니 전국이 은덕으로 풍요로워졌다. 


皇帝奮威 德幷諸侯 初一泰平.

황제분위 덕병제후 초일태평 


황제의 위엄과 덕으로 제후들과 함께하니 처음으로 태평성대가 되었고 


墮壞城郭 決通川防 夷去險阻

휴괴성곽 결통천방 이거험조


성곽을 없애고 수로로 서로 이어주니 도둑들이 산속으로 떠났다. 


地勢 黎庶無繇 天下咸撫

지세기정 여서무요 천하함무 


세상이 편해지니 모든 백성의 소요가 없어지고 천하가 다스려졌다.


其疇 女修其業 事各有序

남요기주 여수기업 사각유서 


남자는 밭갈기를 여자는 길쌈을 즐기고 애쓰니 모든 일의 질서가 잡혔고 


惠被諸産 久並 安所.

혜피제산 구병래전 막불안소  


황제의 혜택이 모든 것에 미쳐 농사에까지 이르니 불안할 일이 없고  


群臣誦烈 請刻此石 垂著儀矩

군신송열 청각차석 수저의거


모든 제후와 신하들이 이 석비를 깎아 잣대로 삼기 바라노라라고 쓰여졌다. 


- 소위 군왕의 道가 무엇인가라는 중국의 사고를 볼 수 있다. 

시황제를 독재라 평하기도 하지만 민생의 평안을 주는 군왕이 聖君이라는 생각.... 

서로 나뉘어 쌈질하는 춘추전국 시대를 군현제로 묶어 조직된 체계를 세운 업적을 칭송하는 것.... 


因使韓終·侯公·石生求仙人死之藥

인사한종 후공 석생구선인불사지약 


한종 후공 석생을 시켜 선인들의 불사약을 구해오라 시켰다. 


始皇巡 從上郡入.

시황순북변 종상군입 


시황제가 북쪽 변방을 돌아 상군지역으로 들어갔다 


燕人生使入海還 以鬼神事 因奏圖書 曰“亡秦者胡也”

연인노생사입해환 이귀신사 인주록도서 왈'망진자호야'


바다로 나갔다 돌아온 연나라 노생이 참위서를 가져왔는데 '진나라를 망칠 자는 호'라 했다. 


始皇乃使將軍蒙恬發兵三十萬人擊胡 略取河南地.

시황내사장군몽념발병삼십만인북격호 약취하남지


시황제가 몽념장군을 시켜 30만을 이끌고 호를 치도록하고 하남땅을 얻었다. 


三十三年 發諸嘗逋亡人·贅婿·賈人略取陸梁地 爲桂林·象郡·南海 以適遣戍

삼십삼년 발제상포망인 췌서 매인약취육양지 위계림 상군 남해 이시견융


33년 탈세하고 도망한 이, 인신매매한 이등을 뽑아 육량 지역에 계림 상군 남해군을 개발 설치하여 오랑캐를 몰아냈다. 


西斥逐匈奴

서북척수흉노


서북쪽으로 흉노를 내몰았다. 


自楡中並河以東 屬之陰山 以爲()[]十四縣 城河上爲塞.

자유중병하이동 속지음산 이위삼 사십사현     성하상위색


유중으로부터 황하를 따라 음산 땅을 흡수하여 3-44현을 만들고 강변에 성을 쌓아 요새로 삼고  


又使蒙恬渡河取高闕·()[]山·假中 築亭障以逐戎人.

우사몽념도하위고궐 도양산 북가중 축정장이축융인 


또 몽념장군으로 하여금 강건너 고궐 도양산 북가중을 치고 성을 쌓아 융을 내몰았다.  


徙謫 實之初縣.

사적 실지초현  


귀양간 사람들로 하여금 설치된 현에 충실하도록 하였다. 


得祠

금부득사 


따로 사직 제사는 금하였다


明星出西方

명성출서방 


서쪽 하늘에 혜성이 나타났고 


三十四年 適治獄吏直者 築長城及南越地

삼십사년 적치옥리부직자 축장성급남월지 


34년 부정직한 관리들을 남월까지 장성 건축에 동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시황제가 세운 장성=만리장성이란 생각은 말아야 한다. 소위 중국의 역사는 中原인들과 여타 민족=소위 4방향 오랑캐의 침입과 대결의 역사이기에 장성도 여럿이다.

유의할 것은 得祠 여기서 祠는 우리로 말하면 사당 도는 사직으로 주나라 통치의 맹점이라 본 진시황은 이를 철저히 금했다는 말이다. 


始皇置酒咸陽宮 博士七十人前爲壽.

시황치주함양궁 박사칠십인전위수 


시황제가 함양궁에서 주연을 베푸니 박사 70인이 앞에 나와 만수무강을 비는데 


僕射周靑臣進頌曰 : “他時秦地過千里 賴陛下神靈明聖 平定海 放逐蠻夷 日月所照 賓服以諸侯爲郡縣 人人自安 無戰爭之患 傳之萬世自上古及陛下威德.” 

복야주청신진송왈: '타시진지불과천리 뢰폐하신령명성 평정내해 방수만이 일월소조 막불빈복이제후이군현 인인자안락 무전쟁지환 전지만세 자상고불급폐하위덕'


상서복야 주청신이 나서서 칭송하길 : '예전 진나라 영토는 100리에 불과했지만 폐하를 신뢰하는 신령들이 폐하의 덕을 밝히시니 전세계가 안정되고 오랑캐들을 내몰아 폐하의 밝은 덕이미치는 곳 어디든 다 믿고 따릅니다 이에 제후들이 군현제에 속하여 전쟁 걱정을 덜고 백성들이 안락함이 만세에 전해질 겁니다, 예부터 폐하같은 위엄과 덕이 없었읍니다'하니 


始皇悅

시황열


시황제가 기뻐하더라 


博士齊人淳于越進曰 : “臣聞殷周之王千餘 封子弟功臣 自爲枝輔今陛下有海 而子弟爲匹夫 卒有田常·六卿之臣 無輔拂 何以相救哉師古而能長久者 非所聞也今靑臣又面諛以重陛下之過 非忠臣.” 

박사제인순우월진왈 : '신문은주지왕천여세 봉자제공신 자위지보 금폐하유해내 이자제위필부졸유전상 육경지신 무보불 하이상구재 사불사고이능장구자 비소문야 금청신우면유이중폐하지과비충신' 


제나라 사람 박사 순이 튀어나와 이르길 : '소신 듣기론 은나라 주나라 천여년간 자식과 형제들을 제후로 봉함으로 곁가지처럼 의지가지가 되었읍니다. 지금 세계를 통일한 폐하가 자제를평민으로 두시니 제나라 재상 전상이나 晉의 6재상처럼 반역자가 나오면 억제의 힘이 되어줄 사람이 없으니 도움이 되겠읍니까 역사에서 벗어난 일이 오래가는 걸 듣지 못했읍니다. 지금 주청신이 면전에서 아부하며 폐하의 허물을 더하니 충신이 아닙니다'하니 


始皇下其議

시황하기의


시황제가 그에 대해 의논토록 하였다. 


丞相李斯曰 : “五帝 三代相襲 各以治 非其相反 時變.

승상이사왈 : '오제불상복  3대불상습 각이치  비기상반 시변이야


승상 이사가 말하길 : ' 5제 시대도 하,상,주 3대도 서로 베끼거나 반복하지 않고 각자 방식으로 다스렸는데 그건 시대나 환경이 다른 탓입니다.  


今陛下創大業 建萬世之功 固非愚儒所知

금폐하창대업 건만세지공 고비우유소지


이제 폐하가 이루신 크나 큰 대업이니 어리석은 지식에 휘둘리지 마소서  


且越言乃三代之事 何足法也時諸侯並爭 厚招游學.

차월언내삼대지사 하족법야   이시제후병쟁 후초유학 


또 월이 말한 3대의 치세가 법이라도 됩니까 제후들이 쌈질할 때엔 맞지않고 잡다한 학설이 난무하도록 한 겁니다. 


今天下已定 法令出一 百姓當家則力農工 士則學習法令辟禁.

금천하이정 법령출일 백성당가즉력농공 사즉학습법령피금  


이제 법이 안정되고 하나로 집행되니 백성들이 일에 전념하고 선비들이 통일된 법으로 피하고금할 것을 공부합니다.  


今諸生師今而學古 以非當世 黔首.

금제후불사금이학고 이비당세 혹란검수  


이제 오늘을 모르고 옛 것만 배우면서 당장의 세상을 비난하여 백성들을 혼란하게 합니다. 


丞相臣斯昧死言 : 古者天下散 莫之能一 是以諸侯並作 語皆道古以害今 飾虛言以 人善其所私學 以非上之所建立.

승상신사매사언 : 고자천하산란 막지능일 시이제후병작 어개도고이해금 시허언이난실 인선기소사학 이비상지소건립


승상 이사가 죽기를 무릅쓰고 말합니다 : 옛 것이란 천하를 흩고 어지럽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해 제후들이 제각기 법을 만드니 그런 옛 것들이 오늘날 해가 된다는 겁니다 본질을 어지럽히는 번지르르 한 말에 혹해 각자 배운 것을 고집하며 폐하의 업적을 비난하는 겁니다


今皇帝幷有天下 別黑白而定一尊.

금황제병유천하 별흑백이정일존  


이제 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여 흑백의 구별을 정하시는 분이신데 


私學而相與非法敎 人聞令下 則各以其學議之 入則心非 出則巷議 夸主以爲名 取以爲高 群下以造謗.

사학이상여비법교 인문영하 즉각이기학의지 입즉심비 출즉항의 과주이위명 이취이위고 솔군하이조방  


혼자 생각으로 서로 틀리다 다투며 하나를 들어도 서로 제 옳다 떠들고 조정에 들어와서 생각이 서로 어긋나고 나가서 우왕좌왕 더들며 자신을 과시하며 자기 이름 내고 높히려 아랫사람 모아 패거리 짖고 비방하는 겁니다  


如此弗禁 則主勢降乎上 黨與成乎下.

여차불금 즉주세강호상 당여성호하  


이러한 것을 막지 못하면 위로는 조정의 권세가 떨어지고 아래에선 파당만 지어질 뿐입니다. 


禁之便

금지변


그런 변화를 막으소서 


臣請史官非秦記皆燒之

신청사관비진기개소지 


신이 사관들에게 청하노니 진나라 역사말고는 다 태우고 


非博士官所職 天下敢有藏詩·書·百家語者 悉詣守·尉雜燒之.

비박사관소직 천하감유장시 서 백가제어 실지수 위잡소지 


박사가 아닌 사람들이 가진 시 서 제자백가의 책들은 군수와 위에게 교지하여 모두 태우소서 


有敢偶語詩書者棄巿以古非今者族

유감우어시서자기불  이고비금자족


감히 쓸데없이 시서를 논하는 자는 황제를 부정하는 자이니 


吏見知擧者與同罪

이견지불거자여동죄 


관리들이 이러한 자를 보면 공법으로 알면되고 


令下三十日 黥爲城旦.

영하삼십일불소 경위성단 


30일 후에도 소각하지 않으면 얼굴에 묵자를 새기고 장성 건축에 내모소서 


去者 醫藥卜筮種樹之書.

소불거자 의약복무종수지서 


예외로 할 것은 의약 점술 종자에 관한 책이고 


欲有學法令 以吏爲師.

약욕유학법령 이리위사 


만약 법령을 공부하려면 관리들을 스승으로 삼으라 하소서' 하니


制曰 : “可.” 

제왈 : '가' 


옳다라 법으로 선언하였다. 


三十五年 除道 道九原抵雲陽 塹山堙谷 直通之.

삼십오년 제도 도구원저운양 참산인곡 직통지


35년 길을 냈는데 구원에서 운양까지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 곧은 길을 만들었다.  


於是始皇以爲咸陽人多 先王之宮廷小 

어시시황이위함양인다 선왕지궁정소 


시황제 당시 함양 거주민이 많은데 선대 임금들의 궁정이 작았다 


吾聞周文王都 武王都鎬 鎬之閒 帝王之都也.

오문주문왕도풍 무왕도호 풍호지한 제왕지도야


내 듣기론 주나라 문왕은 풍에 무왕은 호에 도읍했으니 그 사이가 왕도로 적합하다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

내영작조궁위남상림원중 


그리하여 위수 남쪽 상림원에 궁을 지었다  


先作前殿阿房 東西五百步 五十丈 上可以坐萬人 下可以建五丈旗.

선작전전아방 동서오백보 남북오십장 상가이좌만인기 하가이건오장기. 


먼저 아방에 전전을 짓는데 동서가 500보요 남북이 50장으로 윗 층에 1000명이 앉을수 있고 아래층엔 5장 깃발을 세울 수 있다.


周馳爲閣道 自殿下直抵南山.

주치위각도 자전하직저남산 


사방으로 달릴 도로가 전전에서 나와 남산으로 향하고 


表南山之顚以爲闕

표남산지전이위궐


남산 꼭대기에 궐을 세워 표시하였다. 


 自阿房渡渭 屬之咸陽 以象天極閣道絶漢抵營室也.

위복도 자아방도위 속지함양 이상천극각도절한저영실야 


아방에서 위수를 건너는 다리를 만들어 함양에 잇게하여 북극성 각도성이 은하수를 건너 영실성에 닿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阿房宮未成 ;  擇令名名之.

아방궁미성 : 성 욕경택령명명지  


아방궁이 미완이나 완성후 좋은 이름으로 바꾸려 했으나 


作宮阿房 故天下謂之阿房宮.

작궁아방 고천하위지아방궁  


아방에 궁을 세운 고로 천하가 아방궁이라 부르는 것이다. 


隱宮徒刑者七十餘萬人 乃分作阿房宮 或作麗山.

은궁도형자칠십여만인 내분작아방궁 혹작려산  


궁형이나 도형을 받은 70여만명을 나누어 아방궁과 여산을 짓게 하였다. 


山石槨 乃寫蜀·荊地材皆至.

발북산석곽 내사촉 형지재개지 


북산에서 석재를 촉과 형땅에서 목재를 가져왔다. 


關中計宮三百 關外四百餘.

관중계궁삼백 관외사백여  


관중에 300개의 궁이 관중 밖에 400여채를 지었고  


於是立石東海上胊界中 以爲秦東門.

어시입석동해상구계중 이위진동문 


동해에 구(오랑캐)와 경계에 비석을 세워 진나라의 동문으로 삼았다. 


因徙三萬家麗邑 五萬家雲陽 復不事十.

인사삼만가여읍 오만가운양 개복불사십세 


3만가구를 여산에 5만 가구를 운양에 이주해 10년간 조세와 부역을 없애 주었다. 


始皇曰 : “臣等求芝奇藥仙者常弗遇 類物有害之者方中 人主時爲微以辟惡鬼 惡鬼辟眞人至人主所居而人臣知之 則害於神眞人者 入水 入火 雲氣 與天地久長今上治天下 未能恬願上所居宮毋令人知 然后死之藥殆可得也.” 

노생설시황왈 : '신등구지기약선자상불우 유물유해지자 방중 인주시위미행이피악귀 악귀피 진인지 인주소거이인신지지즉해어신 진인자 입수불유 입화불설 능운기 여천장지구 금상치천하 미능염담 원상소거둥무영인지 연후불사지약태가득지'


노생이 시황제에게 설명하길 : ' 저희가 신선의 약과 영지를 구하는데 영 만나질 못하였는데 뭔가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황제께서 악귀를 피해 미행하시면 악귀를 피해 진인이 이를 것입니다. 황제가 계신 곳을 신하들이 알기에 귀신이 해를 끼치는 것이요 진인은 물에 빠져도 젖지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하늘기운으로 장수하실 것입니다 지금 황제의 통치가안정되지 못한데 거처하시는 곳을 아무도 모르게 하시면 불사약을 얻을수 있겠읍니다'하니 


於是始皇曰 : “吾慕眞人 自謂‘眞人’ 稱‘朕’.” 

어시시황왈 : '오모진인  자위 진인 불칭 짐


시황제 답하길 : '내 진인을 연모하였으나 스스로 짐이 아니라 진인이라 부르리라'


乃令咸陽之旁二百里宮觀二百七十道甬道相連 帷帳鍾鼓美人充之 各案署移徙所幸 有言其處者 罪死

내영함양지방이백리내궁관이백칠십복도용고상연 유장종고미인충지 각안서불이사 행소행 유언지처자 죄사


그리하여 함양 근방 200리에 270개 복도가 서로 연결된 궁을 지어 온갖 장식에 음악과 선남선녀로 채워 서로 함부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고 왕의 방문시 그 장소를 말하는 자를 죽음으로 다스렸다. 


始皇帝幸梁山宮 從山上見丞相騎衆 弗善也.

시황제행양산궁 종산상견승상처기중 불선야 


시황제가 양산궁으로 행차할 때 인근 산 정상에서 보이는 승상의 마차와 기병 무리가 눈에 띄여 


中人或告丞相 丞相後損

중인혹고승상 승상후손거기 


누가 승상에게 귀띰하여 후일 마차와 말의 수를 줄였다. 


始皇怒曰 : “此中人泄吾語.” 

시황노왈 : '차중인설오언'


시황제가 분노하여 말하길 : '이건 누군가 내 말을 누설한 것'이라며 


案問莫服

안문막복


취조하였으나 알아내지 못하자 


當是時 詔捕諸時在旁者 皆殺之.

당시시 소포제시재방자 개살지 


그 당시 보좌진 및 주변 모두를 죽였다 


自是後莫知之所在

자시후막지행지소재 


이로부터 황제의 행차를 알지 못했다


聽事 群臣受決事 悉於咸陽宮.

청사 군신수결사 실어함양궁


모든 보고와 결정이 모두 함양궁에서 이뤄졌다. 


侯生生相與謀曰 : 

후생노생상여모왈 :


方士인 후생과 노생이 서로 쑥덕거리길 


“始皇爲人 天性剛戾自用 起諸侯 幷天下 意得欲從 以爲自古莫及己

 시황위인 천성강려자용 기제후 병천하 의득욕종 이위자고막기기


시황제의 사람됨이 제후로 천하 통일했다고 고집세고 깐깐해 제 고집만 옳다하고 맘먹은 대로 하려고만 하며 자기 만한 인물이 없다하니 


專任獄吏 獄吏得親幸

전임옥리 옥리득친행 


옥리만 임명하고 옥리만 아끼고 


博士雖七十人 特備員弗用

박사수칠십인 특비원불용


박사가 비록 70명이어도 등용하지 않으니 


丞相諸大臣皆受成事 倚辨於上

승상제대신개수성사 의변어상 


승상이고 대신이 모두 임금이 말한 대로만 행하고 


以刑殺爲威 天下畏罪持祿 莫敢盡忠

상요이형살위위 천하외죄지록 막감진충 


임금이 형벌과 사형으로 권위 내세우길 좋아하니 천하 모두 벌받을까 두려워 충언을 드리지 못하고 있소 


聞過而日驕 下懾伏謾欺以取容

상불문과이일교 하섭복만기이취용


임금이 허물을 귀담지 않고 날마다 교만해지고 아랫사람들은 겁에 질려 거짓말로 일관하고 


秦法 得兼方 輒死

진법 부득겸방불험 첩사


진나라 법은 方術을 겸하지 못하게 하고 잘못되면 사형하니  


然候星氣者至三百人 皆良士 畏忌諱諛 敢端言其過

연후성기자지삼백인 개양사 외기휘유 불감단어기과


그래서 기후와 별을 살피는 사람이 300명이나 되고 모두 훌륭하면서도  거짓말이 될까봐 두려워 왕의 허물을 직언하지 못하니 


天下之事無小大皆決於上 上至以衡石量書 日夜有呈 中呈得休息

천하지사무소대개결어상 상지이형석양서 일야유정 불중정불득휴식


천하 모든 결정권이 임금에 있으니 임금이 알아야할 지식이 엄청나고 낮과 밤의 정해진 양이 있어 양을 채우지 못하면 휴식도 못할 지경일 겁니다. 


貪於權勢至如此 未可爲求仙藥.” 於是乃亡去.

탐어권세지여차 미가위구선약   어시내망거


이리 권력을 탐하니 신선의 약을 구해주면 안될거요'하며 도망하였다. 


始皇聞亡 乃大怒曰 : 

시황문망 내대노왈


시황제가 도망한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吾前收天下書中用者盡去之

 오전수천하서불중용자진거지


내 전에 쓸모없는 책들을 모아 태웠고 


悉召文學方術士甚衆 欲以興太平 方士欲練以求奇藥

실소문학방술사심중 욕이흥태평 방사욕연이구기약


모든 방술사들을 불러 태평성대를 이루려고 선약을 구해 오라했더니 


今聞韓衆去 巿等費以巨萬計 得藥 徒姦利相告日聞

금문한중거불복 서불등비이거만계 종불득약 도간이상고일문 


이제 들으니 한중은 함흥차사요 서불은 비용만 탕진하고 선약은 구하지 못하더니 이제 서로 이익에 서로 매일 고소고발하고  


生等吾尊賜之甚厚 今乃誹謗我 以重吾德也

노생등오존사지심후금내비방아 이중오부덕야


노생 일행은 내 후히 대해줬건만 나를 비방이나 하니 내 덕이 많이 부족한 게다 하며 


諸生在咸陽者 吾使人廉問 或爲言以黔首.” 

제생재함양자 오사인렴문 혹위요언이란검수


함양 땅에 사는 저런 무리들을 사람을 시켜 심문하니 요망한 소리로 백성들을 혼란케 하더라' 하며 


於是使御史悉案問諸生 諸生傳相告引 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 之咸陽 使天下知之 以懲後

어시사어사실안문제생 제생전상고인 내자제범금자사백육십여인 개갱지함양 사천하지지 이징후


어사로 하여금 모든 방사들을 조사케 하니 서로 고발하여 내 말을 어긴 460명을 함양 땅에 생매장하고 천하에 알도록 이리 징계하고  


益發謫徙邊

익발적사변


더불어 몇몇은 변경으로 귀양 보냈다. 


始皇長子扶蘇諫曰 : 

시황장자부소간왈


시황제의 장자 부소가 간언하되 


“天下初定 遠方黔首未集 諸生皆誦法孔子 今上皆重法繩之 臣恐天下唯上察之.” 

 천하초정 원방검수미집 제생개송법공자 금상개중법승지 신공천하불안  유상찰지


천하가 이제 처음 안정되고 멀리 변방의 주민들이 모여들지도 않고 유생들은 공자의 법을 외우고 있는데 지금 임금님이 법으로 이리 옭아매시니 천하가 불안해질까 염려됩니다 이 점 살피소서'하였더니 


始皇怒 使扶蘇監蒙恬於上郡.

시황노 사부소북감몽념어상군


시황제가 화가 나서 부소를 몽염 장군 감시를 명목으로 북쪽 상군=상 지방으로 보내 버렸다. 


三十六年 熒惑守心

삼십육년 형혹수심 


36년 형혹성=별이 심성을 혹간 가리우니(화성을 의미하고 불운을 상징한다 봄 심성은 28수 별자리 중 5번째로 천자 태자를 상징한다 보아 천자나 태자를 가로막는다고 봄)


有墜星下東郡 至地爲石 黔首或刻其石曰“始皇帝死而地分”.

유추성하동부 지지위석 검수혹각기석왈 시황제사이지분 


별이 동부지역에 떨어져 돌이 되었는데 백성 하나가 기 돌에 '시황제도 죽어 땅의 일부가 된다' 새겼다.


始皇聞之 遣御史逐問 莫服 盡取石旁居人誅之 因燔銷其石

시황문지 견어사수문 막복 진취석방거인주지 인번소기석


시황제가 이를 듣고 어사를 보내 심문하였으나 누군지 밝히질 못해 운석이 떨어지 주변사람을주살하고 그 돌을 태워 녹여 버렸다. 


始皇不樂 使博士爲仙眞人詩 所游天下 傳令人謌弦之

시황불락 사박사위선진인시 급행소유천하 전영악인가현지 


시황제가 편치않아 박사들로 선진인의 시를 만들고 천하를 돌아다닐때 마다 악사들로 연주하고 부르게 했다. 


 使者從關東夜過華陰平舒道 有人持璧遮使者曰 : “爲吾遺滈池君.

추 사자종관동야과화음평서도 유인지벽차사자왈 : '위오유호지군' 


가을 사신들이 동관 밖 화음지역 길을 밤에 지날 때 옥을 든 사람이 나타나 길을 막고 이르길 ;' 나를 호지군(수신의 이름=水의 기운인 진나라의 임금=진시황)에게 보내 주오'하더라 


因言曰 : “今年祖龍死.” 

인언왈 : '금년조용사'


이유를 들어 말하길 ; ;금년에 조룡이 죽기 때문'이라 했다. 


使者問其故 因忽 置其璧去.

사자문기고 인홀불현 치기벽거  


사신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홀연히 옥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使者奉璧具以聞

사자봉벽구이문 


사신이 옥을 들고와 들은 바를 전하니 


始皇然良久  : “山鬼固過知一事也.” 

시황묵연양구 왈 : '산귀고불과지일세사야'


시황제가 오랜동안 침묵하아 이르길 ; '산의 귀신은 오직 한 해 일 만 아는 법이다'하며  


退言曰 : “祖龍者 人之先也.

퇴언왈 : '조룡자 인지선야' 


내려가면 말하길 : '조란 이미 고인을 말하는 것'이니 조룡이 나일수 있나? 하더라 


使御府視璧 乃二十八年渡江所璧也.

사어부시벽 내이십팔년행도강소침벽야 


御府에게 옥을 검사시키니 28년 즉, 8년 전 강을 건널 때 빠트린 그것이더라 


於是始皇卜之 卦得游徙吉

어시시황복지 괘득여사길


황제가 점을 치니 괘가 한 자리에 있지말고 돌아다니거나 이사를 하는게 좋다 하니  


河楡中三萬家

천북하유중삼만가 


북하(황하 초입의 두 갈래 북하 남하중 하나) 유중으로 3만 가구를 이주하고 


拜爵一級

배작일급


작급을 한 계단 씩 올렸다. 



사(舍)수(宿)중심별
東方 靑龍(角)처녀자리 (α Vir) 스피카
(亢)처녀자리 (κ Vir)
(氐)천칭자리 (α Lib) 주벤엘게누비
(房)전갈자리 (π Sco)
(心)전갈자리 (σ Sco) 알니야트
(尾)전갈자리 (μ Sco)
(箕)궁수자리 (γ Sgr) 알나시
北方 玄武(斗)궁수자리 (φ Sgr)
(牛)염소자리 (β Cap) 다비흐
(女)물병자리 (ε Aqr) 알발리
(虛)물병자리 (β Aqr) 사달수드
(危)물병자리 (α Aqr) 사달멜릭
(室)페가수스자리 (α Peg) 마르카브
(壁)페가수스자리 (γ Peg) 알게니브
西方 白虎(奎)안드로메다자리 (η And)
(婁)양자리 (β Ari) 셰라탄
(胃)양자리 (35 Ari)
(昴)황소자리 (17 Tau) 엘렉트라
(畢)황소자리 (ε Tau) 아인
(觜)오리온자리 (λ Ori) 메이사
(參)오리온자리 (ζ Ori) 알니탁
南方 朱雀(井)쌍둥이자리 (μ Gem)
(鬼)게자리 (β Cnc) 알타흐
(柳)바다뱀자리 (δ Hya)
(星)바다뱀자리 (α Hya) 알파드
(張)바다뱀자리 (ν Hya)
(翼)술잔자리 (α Crt) 알케스
(軫)까마귀자리 (γ Crv) 기에나흐

 

三十七年十月癸丑 始皇出游.

삼십칠년십월계축 시황출유


37년 10월 계축일에 시황이 여행을 떠나며


左丞相斯從 右丞相去疾守.

좌승상사종 우승상거질수


좌승상 이사가 다르고 거질에게 도읍을 지키게 했다


少子胡亥愛慕請從 上許之.

소자호해애모청종 상허지


작은 아들 호해가 따라 나서길 간절히 원해 임금이 허락하였고


十一月 行至雲夢 望祀虞舜於九疑山.

십일월 행지운몽 망사우순어구의산


11월 운몽에 도달해 구의산은 바라보며 우순에게 제를 올리고


浮江下 觀籍柯 渡海渚. 過丹陽 至錢唐.

부강하 관적가 도해저 과단양 지전당


배로 강을 내려가 적가를 보며 해저=삼각주(모래 톱)로 건너 단양을 지나 전당강에 이르렀다.


臨浙江 水波惡 乃西百二十里從狹中渡.

임절강 수파악 내서백이십리종협중도


절강에 다다르니 파도가 심해 서쪽으로 120리를 올라가 강폭이 좁은 곳에서 건넜다.


上會稽 祭大禹 望于南海 而立石刻頌秦德.

상회계 망대우 망우남해 이립석각송진덕


임금이 회계에서 대우=우임금에게 제를 올리고 남해바다를 바라보이는 곳에 비석을 세워 진나라의 덕을 기렸다.


-여기 보이는 지명을 확인하면 錢唐= 浙江이고 會稽는 塗山으로 산동반도 주변이고 거기서 본 남해는 산동반도 아래 바다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또한 行至雲夢 望祀虞舜於九疑山 등의 지명을 보면 후베이 후난 성 주변이다. 즉, 湖 남북 습지가 운몽이라면 산동에서 절강까지 또 운몽까지의 거리가 당시 교통상황으로 여행 가능한 거리???

따라서 이는 상징적 의미로 보아 유적? 순례라는 명분...


其文曰 : 皇帝休烈 平一宇 德惠脩長.

기문왈 : 황제휴열 평일우내 덕혜수장  


비석에 써있길 : 황제의 아름다운 열정이 전국을 평화롭게 하고 덕과 은혜가 지속되도다   


三十有七年 親巡天下 周覽遠方.

삼십유칠년 친순천하 주람원방 


37년 친히 천하를 돌아 먼 지방도 두루 살피시고 


遂登會稽 習俗 黔首齋莊.

수등회계 선성습속 검수제장 


회계(산 이름이라기 보다 부루단군을 만난 것을 의미)에 참여하여 좋은 풍속이 무언가를 배워펼치니 백성들 모두 단정하더라 


群臣誦功 本原事迹 追首高明

군신송공 봉원사적 추수고명 


제후와 신하들이 그의 공을 칭송하여 그 본디 의미의 머리를 찾아 밝히더라 


秦聖臨國 始定刑名 顯陳舊章.

진성임국 시정형명 현진구장 


진왕조의 고귀함이 무리에 임하니 오래된 형벌들의 기준이 정해지고 


初平法式 審別職任 以立恆常.

초평법식 심별직임 이립항상  


법이 공평해지고 직임에 따른 구별을 심사하여 항상=기준을 세우셨다. 


六王專倍 貪戾慠猛 衆自彊虐恣 負力而驕 動甲兵.

육왕전배 탐려오맹 솔중자강  포학자행 부력이교 수동갑병


6왕들은 탐심과 오만에 빠져 제각각 무리로 포학하고 방자하게 힘만 믿고 교만에 차 군대를 출동하였다. 


陰通閒使 以事合從 爲辟方飾詐謀 侵邊 遂起禍殃.

음통한사 이사합종 행위벽방 내식작모 외래침변 수기화앙 


뒷전으로 합종연횡하는등 그릇되게 굴었고 속으론 음모를 꾸미고 겉으론 쌈질로 화와 재앙을 불렀다 


義威誅之 殄熄 賊滅亡 

위위주지 진식폭패 난적멸망


시황제가 정의의 위세로 심판하여 거친 패륜을 불식시키고 소요자들을 멸망시켰다. 


聖德廣密 六合之中 被澤無疆.

성덕광밀 육합지중 피택무강  


고귀한 덕이 크고 세밀하여 온 세상 모두에게 고루 나눠졌다.   


皇帝幷宇 兼聽萬事 遠近畢淸.

황제병우 겸청만사 원근필청  


황제가 세상을 통일하고 모든 일을 잘 들어주니 고루 깨끗하여졌다. 


運理群物 考驗事實 各載其名.

운리군물 고험사실 각재기명 


만물의 이치를 살리고 사실을 실험하여 그 분별을 세우시고 


貴賤並通 善否陳前 靡有隱情 宣義


귀천병통 선부진전 미유은정 식성선의 


빈부가 서로 소통되고 선악이 대립하지않고 서로 보듬는 속정이 생겨 가식을 가려내고 옳음을 펼치게 됐다 


有子而嫁 倍死

유자이가 배사부정 


아이를 버리고 개가하면 배우자 죽음을 더럽히는 것이오


防隔 禁止淫泆 男女絜誠

방격내와 금지음일 남녀결성


내외를 구분하고 음란이 넘치는 걸 금하니 남여 모두 고결하고 성실해졌다


夫爲寄 殺之無罪 男秉義程

부위기가 살지무죄 남병의정


수퇘지 처럼 상대 안가리는 남자는 죽여도 죄가 아니라 하니 사내들이 정도를 지키게 되고 


妻爲逃嫁 得母 咸化廉淸

처위도가 자부득모 함화염청


자식을 버린 어미는 자식들이 어미로 취급하지 않아도 된다 하니 남여 모두 염치를 알고 깨끗하여졌다. 


大治濯俗 天下承風 蒙被休經

대치탁속 천하승풍 몽피휴경 


대대적으로 풍속을 교화하니 천하가 따르고 무지몽매한 이들이 아름다운 가르침을 입더라 


皆遵度軌 和安敦勉 順令.

개준도궤 화안돈일 막불순명


모두 궤도대로 움직이니 편안하고 명을 거스리는 자가 없더라 


黔首脩絜 同則 嘉保太平 後敬奉法 常治無極 輿舟.

검수수결 인요동칙 가보태평 후경봉법 상치무극 여주불경 


백성들이 단정해지고 같은 법을 따르니 모두 기쁘고 평안하니 모두 법을 받들고 균형있게 다스리니 마치 수레와 배가 기울지 않음과 같더라


從臣誦烈 請刻此石 光垂休銘.

종신송열 청각차석 광수휴명


따르는 신하들이 그 열성을 칭송하여 이 비석을 세울 것을 요청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빛나길 바라노라 하였다. 


還過 從江乘渡

환과오 종강승도


강을 따라 오 땅을 지나 돌아오는 길에 배로 강을 건너  


並海上 至琅邪

병해상 북지낭야 


바다를 끼고 북으로 낭야성에 도착하였다. 


方士徐巿等 入海求神藥 數歲不 費多 恐譴 乃詐曰 : “蓬萊藥可得 然常爲大鮫魚所苦 得至 願請善射與俱 見則以連弩射之.

방사서불등 입해신약 수세부득 비다 공견 내사왈 : '봉래약가득 연상위대교어소고 고부득지 원청선사여구 견즉이연노사지' 


방사 서불등이 바다 건너 신약을 구하자 했으나 시간과 비용 많이 들어 견책을 두려워하여 꾸며 말하길 : ' 봉래에서 약을 구할 순 있으나 항상 큰 물고기가 방해하니 얻기 어렵습니다.원컨대 활의 명인이 함께 가서 발견 즉시 여러 발 쏘아 잡게 하소서'하더라 


始皇夢與海神戰 如人狀.

시황몽여해신전 여인상 


시황제가 꿈에 해신과 싸우는데 보니 사람의 형상이더라 


問占夢 博士曰 : “水神可見 以大魚蛟龍爲候今上禱祠備謹 而有此惡神 當除去 而善神可致.” 

문점몽 박사왈 : '수신불가현 이대어교룡위후  금상도사비근 이유차악신 당제거 이선신가치


박사에게 꿈 해몽을 시키니 : '물의 신은 본디 보이지 않는 것으로 큰 물고기나 용으로 나타납니다. 이제 열심으로 기도하면 악한 기운을 제거하고 좋은 기운이 올 겁니다' 하였다. 


乃令入海者齎捕巨魚具 而自以連弩候大魚出射之.

내영입해자재포거어구 이자이연노후대어출사지 


그리하여 바다로 나갈 때 큰 고기를 보는 즉시 채비로 쇠뇌를 준비하라 일렀다  


自琅邪至榮成山 弗見.

자낭야북지영성산 불견 


낭야로부터 떠나 영성산에 이르기 까지 발견하지 못하다가 


至之罘 見巨魚 射殺一魚.

지지부 견거어 사살일어 


지부에 이르러 발견하여 한 마리 쏘아 잡고 


遂並海西.

수병해서 


바다를 끼고 서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至平原津而病

지평원진이병


평원진에 이르러 병이 났지만 


始皇惡言死 群臣莫敢言死事.

시황오언사 군신막감언사사 


시황제가 죽는다는 말을 싫어하여 군신이 감히 죽을 병임을 말하지 못했다


上病益甚 乃爲璽書賜公子扶蘇曰 : “與喪會咸陽而葬.

상병익심 내위새서사공자부소왈 : '여상회함양이장' 


임금의 병이 심해지니 공자 부소에게 새서를 보내 : '함양으로 와서 장례에 참석하라'했다. 


書已封 在中府令趙高符璽事所 未授使者.

서이봉 재중거부영조고행부새사소 미수사자 


글을 봉인하고 수레에 따르는 부령 조고에게 전하게 했으나 사신이 받질 못했다. 


七月丙寅 始皇崩於沙丘平臺.

칠월병인 시황붕어사구평대 


7월 병인일에 시황제가 사구평대에서 죽었고


丞相斯爲上崩在外 恐諸公子及天下有變 乃祕之 發喪.

승상사위상붕재외 공제공자급천하유변 내비지 불발상 


승상 이사가 공자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죽음을 알리지 않고 비밀로 하고 발상하지 않았다.  


棺載轀涼 故幸宦者 所至上食

관재온량거중 고행환자참승 소지상식


관을 온량거에 싣고 날마다 시중드는 척 하려고 환관을 동승시켜 


百官奏事如故 宦者輒從轀涼中可其奏事.

백관진사여고 환자첩종온량거중가기진사  


정상적으로 나랏 일을 보는척 환관이 드나들었다. 


獨子胡亥·趙高及所幸宦者五六人知上死

독자호해 조고급소행환자오육인지상사


호해와 조고 그리고 환관 5-6인이 시황제의 죽음을 알 뿐이라


趙高故嘗敎胡亥書及獄律令法事 胡亥私幸之.

조고고상교호해서금옥률영법사 호해사행지 


조고가 예전에 호해에게 형법을 가르쳤기에 호해를 개인적으로 편하게 생각했다


高乃與公子胡亥·丞相斯陰謀破去始皇所封書賜公子扶蘇者 詐爲丞相斯受始皇遺詔沙丘 立子胡亥爲太子

고내여공자호해 승상사음모파거시황소봉서사공자부소자 이경사위승상사수시황유조사구 립자호해위태자


조고가 호해 승상 이사와 공모해 부소에게 갈 새서의 봉인을 뜯고 내용을 바꿔 사구에서 유조를 받은 걸로 하고 호해를 태자로 세웠다. 


爲書賜公子扶蘇·蒙恬 以罪 ()賜死

경위서사골자부소 몽념 수이죄      사사


또한 내용을 바꿔 부소와 몽념에게 몇몇 죄를 들어 사형을 언도하였는데  


語具在李斯傳中

어구재이사전중


이 내용은 이사전에 있다. 


 遂從井陘抵九原.

행 수종정형저구원 


길을 재촉해 정형 아래 구원에 다다르고 


會暑 上轀 乃詔從官令載一石鮑魚 其臭.

회서 상온거취 내조종관영거재일석포어 이난기취


여름이 되니 임금의 온거에서 냄새가 진동하니 수레에 1석의 포어=염장 생선을 싣게하여 냄새를 감추려 하였다. 


-여기서 온량거란 앉아 타는 수레가 아닌 누울 수있는 이동식 거실 같은 마차를 의미한다.  


從直道至咸陽 發喪.

행종직도지함양 발상


직도를 따라 함양에 도착한 후 상을 치루고  


太子胡亥襲位 爲二世皇帝

태자호해습위 위이세황제


호해가 제위를 이어받고 2세 황제라 했다. 


九月 葬始皇酈山.

9월 장시황여산  


9월에 시황제를 여산에 장사하였다. 


始皇初卽位 穿治酈山 及幷天下 天下徒送詣七十餘萬人 穿三泉 下銅而致槨 宮觀百官奇器珍怪徙臧滿之

시황초즉위 천치여산 급병천하 천하도송지칠십여만인 천삼천 하동이치곽 궁관백관기기진괴사장만지


시황제는 즉위 초 여산을 파도록 하였는데 천하통일후 각지에서 70여만명을 모아 3개의 하천을 파고 바닥을 구리로 덮어 상자처럼 만들어 궁전 모형과 백관 모형, 기이하고 진귀한 것들을 옮겨 채웠다. 


令匠作機弩矢 有所穿近者輒射之.

영장작기노시 유소천근자첩사지 


장인들에 명하여 기계활을 설치하여 침입자를 소게 하였고 


以水銀爲百川江河大海 機相灌輸 上具天文 下具地理.

이수은위백천강하대해 시상관수 상구천문 하구지리 


수은으로 강들과 바다를 꾸며 기계로 흐르도록 하고 천정은 천문으로 바닥은 지상을 구현하였다. 


以人魚膏爲燭 滅者久之.

이인어고위촉 도불멸자구지 


인어=민물고래 기름으로 등을 밝혀 오래도록 꺼지지 않게 하였다 


二世曰 : “先帝後宮非有子者 出焉.

이세왈 : '선제후궁비유자자 출언불의 


2세 황제왈 : '선왕의 후궁들 중 아들이 없는 자를 출궁함은 옳지 않다'하며


皆令從死 死者甚衆.

개령종사 사자심중 


모두 순장하니 그 수가 심히 많았다. 


已下 或言工匠爲機 臧皆知之 臧重卽泄.

장기이하 혹언공장위기 장개지지 장중즉설 


순장후 혹자 말하길 기계 설치한 기술자들이 순장 사실을 모두 아니 숱한 죽음이 누설될꺼라 했다 


大事畢 已臧 閉中羨 下外羨門盡閉 工匠臧者 出者

대사필 이장 폐중선 하외선문진폐 공장장자 무복출자 


대공사가 끝나고 부장이 끝나자 묘도 중간문을 막아버리고 바깥 묘도 문도 모두 막아 기술자및 인부들 모두 살아나온자가 없었다. 


樹草木以象山.

수초목이상산


초목을 심어 마치 산처럼 꾸며 놓았다. 


二世皇帝元年 年二十一

이세황제원년 년이십일


호해황제 나이 21에 황제가 되어 


趙高爲中令 任用事.

조고위낭중령 임용사 


조고를 낭중령으로 임용하고 


二世下詔 增始皇寢廟牲及山川百祀之禮.

이세하조 증시황침묘희생급산천백사지례 


호해황제가 시황제 제사를 산천에 지내는 제서와 급을 맞추라 영을 내리고 


令群臣議尊始皇廟

영군신의존시황묘


군신들에게 그 방법을 회의토록 하니


群臣皆頓首言曰“古者天子七廟 諸侯五 大夫三 雖萬世世今始皇爲極廟 四海之皆獻貢職  禮咸備 毋以加先王廟或在西雍 或在咸陽天子儀當獨奉酌祠始皇廟自襄公已下軼所置凡七廟群臣以禮進祠 以尊始皇廟爲帝者祖廟皇帝自稱‘朕’.

군신개돈수언왈 : '고천자칠묘 제후오 대부삼 수만세세불일훼 금시황위극묘 사해지내개헌공직 증희생 예함비 무의가 선왕묘혹재서옹 혹재함양 천자의당독봉작사시황묘 자양공이하일훼 소치범칠묘 군신이예진사 이존시황묘위제자조묘 황제부자칭 짐' 


군신들 모두 손모아 이르길: '옛 천자는 7묘요 제후는 5묘요 대부는 3묘로 만세토록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제 시황제의 묘가 극묘(최고)로 전국에서 제물이 오고 희생제물도 많으니 더이상 보탤 것이 없읍니다, 시황제의 묘가 서안과 함양 두군데 있으나 천자께서는 의당 직접 시황묘에 헌작하심이 옳습니다. 장양왕이하 모두 갖추어 7묘를 갖추고 군신이 예로 제사드림으로 시황묘를 조묘(시조)로 하시고 황제는 스스로 짐이라 부르십시오. 


-여기서 7묘 5묘 등은 한 마디로 위패를 모시는 법을 말하며 중앙에 태조 그리고 소묘(昭廟)는 동쪽목묘(穆廟)는 서쪽에 위치하여 서열대로 위치하는데묘는 모두 남향으로 문과 당()과 실()과 침()과 그리고 협실(夾室)로 구성한다 .


二世與趙高謀曰 : “朕年少 初卽位黔首未集附先帝巡郡縣 以示彊 威服海今晏然卽見弱 毋以臣畜天下.

이세여조고모왈 : '짐연소 초즉위 검수미집부 선제순행군현 이시강 함복해내 금안연불순행 즉견약 무이신축천하


호해황제가 조고와 상의하여 말하길: '내가 나이가 어리고 이제 갓 즉위해 백성들이 모여들지 않소 시황제의 군현을 순행에서 권위가 보여지니 전국이 복종하고 따랐듯 내 편히 앉아있으면 나약한 군주로 보일 터이니 천하가 나의 신하가 되지 않을 것이오'하며 


 二世東郡縣 李斯從.

춘 이세동행군현 이사종 


봄 호해황제가 동쪽 군현으로 떠나니 승상 이사가 따랐다. 


到碣石 並海 南至會稽 而盡刻始皇所立刻石 石旁著大臣從者名 以章先帝成功盛德焉 :

도갈석 병해 남지회계 이진각시황소립각석 석방저대신종자명 이장선제성공성덕언


갈석에 다다라 해안을 따라 남쪽 회계에 도착하여 시황제가 세운 비석의 글자 옆에 따르던 신하들의 이름을 새겨 시황제의 성덕을 새겨놓았다.    


皇帝曰 : “金石刻盡始皇帝所爲也今襲號而金石刻辭稱始皇帝 其於久遠也如後嗣爲之者 稱成功盛德.

황제왈 : '금석각진시황제소위야 금습호이금석각사불칭시황제 기어구원야여후사위지자 불칭성공성덕' 


여기 새겨진 모든 것들은 시황제의 업적이고 지금 황제 칭호를 이어받은 내가 새긴 글이 시황제와 혼동된다면 오랜 후일 다음 황제와 시황제의 성덕이 헷갈릴 것이오' 하니  


丞相臣斯·臣去疾·御史大夫臣德昧死言 : “臣請具刻詔書刻石 因明白矣臣昧死請.

승산신사 신거질 어사대부신덕매사언 : '신청구각조서각석 인명백의   신매사청 


승상 이사 풍거질 어사대부 덕이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길: '저희들이 조서를 새겨 명백히 하겠읍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하니


制曰 : “可.” 

제왈 : '가'


'좋다' 하였다. 

 

遂至遼東而還

수지요동이환


요동을 들렸다 귀환하였다. 


-여기 보면 뭉뚱그려 요동 전장의 갈석, 회계 등의 장소가 막 즉위한 임금이 반드시 다녀와야할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황제 역시 통일을 이루고 보고차 다녀왔듯... 

동쪽 누군가에게 정통성을 인준받아야 함이 아닌가?  

이 지역들이 공교롭게도 소위 선진 문물 夷의 지역이란 점을 생각하면.... 

마치 원로회의를 연상케 한다.  


於是二世乃遵用趙高 申法令

어시이세내준용조고 신법령


그 때 호해황제가 조고의 의견을 따라 법령을 밝히는데 


乃陰與趙高謀曰 : “大臣 官吏 及諸公子必與我爭 爲之柰何?

내음여조고모왈 : '대신불복 관리상강 급제공자필여아쟁 위지내하' 


은밀히 조고와 상의하길 : '대신들이 불복하고 관리들도 고집스럽고 여러 공자들이 나와 겨룰 것이니 어쩌면 좋겠소'물으니 


高曰 : “臣固願言而未敢也先帝之大臣 皆天下世名貴人也 積功世以相傳久矣

고왈 : '신고원언이미감야  선제지대신 개천하누세명귀인야 적공노세이상전구의


조고가 답하길 : '제가 진즉 말씀드리고팠지만 감히 못했는데 시황제의 대신들은 모두 대대로 명문가인 사람들로 공덕이 오래 쌓여온 사람들입니다 


今高素小賤 陛下幸稱擧 令在上位 管中事.

금고소소천 폐하행칭거 영제상위 관중사  


지금 저는 그저 미천한데 폐하가 높이 들어 쓰셔서 관중=수도 통치를 맡기시니 


大臣鞅鞅 特以貌從臣 其心實.

대신앙앙 특이모종신 기심실불복 


대신들이 원망에 차 겉으론 따르는 체 하지만 그 속마음으론 불복합니다 


今上出 因此時案 郡縣守尉有罪者誅之 上以振威天下 下以除去 上生平所可者.

금상출 불인차시안 군현수위유죄자주지 상이진위천하 하이제거 상생평소불가자 


지금 황제께선 이 기회를 이용해 군현의 우두머리들 중 죄있는 자의 죄를 물어 권위를 떨치시고 안으로 평소 폐하의 맘에 들지 않는 자를 제거하시면 합니다. 


今時師文而決於武力 願陛下遂從時毋疑 卽群臣及謀.

금시불사문이결어무력 원폐하수종시무의 즉군신불급모  


지금 판국은 文이 아니라 武가 대세니 그저 그런 시류를 따르면 군신들이 꼼짝 못할 겁니다. 


明主收擧餘民 賤者貴之 貧者富之 遠者近之 則上下集而國安矣.

명주수거여민 천자귀지 빈자부지 원자근지 즉상하집이국안의' 


현명한 군주는 비천한 자를 귀하게, 가난한 자를 부자로, 원수도 친구로 만들 수 있고 그것이 모두 평안한 길입니다. 


二世曰 : “善.” 

이세왈 : '선'


호해 왈 '옳다'


誅大臣及諸公子 以罪過連逮少近官三 無得立者 而六公子戮死於杜.

내행주대신급제공자 이죄과연체소근관삼랑 무득립자 이육공자참사어두 


대신과 공자들 그리고 삼랑의 죄를 물어 살아남지 못했고 공자중 6은 갇혔다 참살 당했다


公子將閭昆弟三人囚於 議其罪獨後

공자장려곤제삼인수어내궁 의기죄독후


공자 장려의 3형제는 내궁에 갇혔다가 나중에 죄를 물었다


二世使使令將閭曰 : “公子 罪當死 吏致法焉.” 

이세사사영장려왈 : '공자불신 죄당사 리치법언'


호해황제가 장려에게 영을 내리길 : '공자로 충성하지 않으면 당연히 죽을 죄라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將閭曰 : “闕廷之禮 吾未嘗敢從賓贊也 ; 廊廟之位 吾未嘗敢失節也 ; 受命應對 吾未嘗敢失辭也 何謂願聞罪而死.” 

장려왈 : '궐정지례 오미상감불종빈찬야  ; 종묘지위 오미상감실절야 ; 수명응대 오미상감사야하위불신 원문죄이사'


장려가 반박하길 : '궁중 대외 연회에 꼬박꼬박 따르고 제례에도 예를 갖췄으며 국빈 접대에서도 실언한 적이 없는데 왜 신하의 예를 안 했다 하는지 내 죄가 뭔지 알고 죽읍시다'하니


使者曰 : “臣得與謀 奉書從事.

사자왈 : '신부득여모 봉서종사' 


사자가 말하길 ; '신하가 알 일이 아니고 그저 명을 따르라'하니 


將閭乃仰天大呼天者三  : “天乎吾無罪!

장려내앙천대호천자삼 왈 : '천호! 오무죄' 


장려가 하늘을 우러러 세 번 외치길 '하늘이여 난 죄가 없소' 하고


昆弟三人皆流涕拔劍自殺

곤제삼인개유체발검자살


3형제가 눈물로 검을 꺼내 자살하더라


宗室振恐

종실진공


이로 종실이 공포에 떨고 


群臣諫者以爲誹謗 大吏持祿取容 黔首振恐.

군신간자이위비방 대리지록취용 검수진공


신하의 간언은 비방으로 치부되고 대신들은 지위를 잃지 않으려 수용하니 백성들이 공포에 떨더라 


四月 二世還至咸陽  : “先帝爲咸陽朝廷小 故營阿房宮爲室堂未就 會上崩 罷其作者 土酈山酈山事大畢 今釋阿房宮弗就 則是章先帝擧事過也.” 

사월 이세환지함양 왈 : '선제위함양조정소 고영아방궁  위실당 미취 회상붕 태기작자 복토여산 여산사대필 금석아방궁불위 즉시장전제거사과야' 


4월 호해황제가 함양에 돌아와 말하길 : '시황제께서 함양 조정이 좁아 아방궁을 설치하려하셨고 궁궐을 지었는데 완공 이전에 황제께서 붕어하시어 그 작업을 멈추고 여산 복토에 전념하였소 이제 여산 공사가 끝난데다 아방궁이 미완이니 이는 선왕의 허물이 될 수도 있소'하며


作阿房宮

복작아방궁


아방궁 공사를 재개하였다. 


外撫四夷 如始皇計.

외무사이 여시황계 


밖으로 시황제의 계획대로 4夷를 도닥이시고


盡徵其材士五萬人爲屯衛咸陽 令敎射狗馬禽獸.

진징기재사오만인위둔위함양 영교사구마금수 


5만명을 징발하여 함양 수비에 투입하고 활쏘기 군견 군마 금수 훈련을 명했다.


當食者多  下調郡縣轉輸菽粟芻藁 皆令自齎糧食 咸陽三百里內不得食其穀.

당식자다 도부족 하조군현전수숙속추고 개영자재식량 함양삼백리내부득식기곡 


먹일 입이 많아 식량이 부족하여 군현에 식량(콩 조 여물)을 할당하여 식량을 마련토록하니 함양 300리 안에 곡식이 동 났다. 


用法益刻深.

용법익각심


이 법이 심각하게 적용되니.... 


七月 戍卒陳勝等反故荊地 爲“張楚”

칠월 수졸진승등반고형지 위 '장초'


7월 장서을 지키던 진승 일당이옛 형땅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초'나라라 하엿다.


勝自立爲楚王 居陳 遣諸將徇地.

승자립위초왕 거진 견제장순지  


반란에 성공하자 스스로 초왕이라 하며 진 지역에 터 잡고 장수들을 보내 영토를 넓혔다. 


山東郡縣少年苦秦吏 皆殺其守尉令丞反 以應陳涉 相立爲侯王 合從西鄕 名爲伐秦 可勝.

산동군현소년고진리 개살기수위영승반 이응진섭 상립위후왕 합종서향 명위벌진 불가승수야 


산동지역에서 진의 관리에게 고통받던 젊은이들이 군수 군위 현령 현승등 관리를 죽이고 진승에 동조하고 서로 후니 왕이니 자임하며 서쪽으로 범위를 넓히며 진을 정벌하자는 명분으로 선 이들이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謁者使東方 以反者聞二世.

알자사동방 래이반자문이세 


동방을 다녀온 이가 알현을 청해 호해에게 반란을 보고하니


二世怒 下吏

이세노 하리


호해가 노해 하옥하였다


後使者至 上問 對曰 : “群盜 郡守尉方逐捕 今盡得 足憂.” 

후사자지 상문 대왈 : '군도 군수위방축포 금진득 부족우'


다음 사자가 돌아오니 호해가 묻자 대답하길 : '도적떼를 군수 군위가 추포하여 이제 모두 잡아들였으니 걱정할 일 없읍니다'하니


上悅

상열


호해가 기뻐하더라


武臣自立爲趙王 魏咎爲魏王 田儋爲齊王.

무신자립위조왕 위구위위왕 전담위제왕 


무신이 스스로 조왕이 되고 위구가 위왕이 전담이 제왕이 되고 


沛公起沛

패공기패 


패공이 패를 일으켰고 


項梁擧兵會稽郡.

항양거병회계군


항양이 회계군에서 병력을 일으켰다


二年冬 陳涉所遣周章等將西至 十萬

이년동 진섭소견주장등장서지희 병수십만


즉위 2년 겨울 진섭(진승)이 주장등 장군을 서쪽으로 보내 희수에 이르니 병사가 10만이었다


二世大驚 與群臣謀曰 : “柰何?

이세대경 여군신모왈 : '내하' 


호해가 아주 놀라 군신들과 모여 묻기를 '어찌해야하는가'하니 


少府章邯曰 : “盜已至 衆彊 今發近縣及矣酈山徒多 請赦之 授兵以擊之.

소부장한왈 : '도이지 중강 금발근현불급의 여산도다 청사지 수병이격지' 


황실 재정을 맡던 장한이 말하길 : '도적 무리가 이미 가까이 왔고 수도 많은데 이제 가까운 현에서 군을 징발하기는 어렵고 여산 작업자=범죄자들이 많으니 사면령을 내려 병사로 충당하여 공격하면 합니다'


二世乃大赦天下 使章邯將 擊破周章軍而走 遂殺章曹陽.

이세내대사천하 사장한장 격차주장군이주 축살장조양 


호해가 대사면령을 내려 장한 장군으로 공격하게 하니 주장의 군사들이 퇴각하여 조양까지 쫒아가 주장을 죽였다. 


二世益遣長史司馬欣·董翳佐章邯擊盜 殺陳勝城父 破項梁定陶 滅魏咎臨濟

이세익견장사사마흔 동예좌장한격도 살진승성보 파항양정도 멸위구임제


호해는 또 장사 사마흔과 동예를 보내 장한을 도와 반란 도당을 치게 하니 진승을 성보에서 죽이고 항양을 정도에서 무지르고 위구의 군사를 임제에서 멸망시켰다. 


楚地盜名將已死 章邯乃渡河 擊趙王歇等於鉅鹿

초지도명장이사 장한내북도하 격조왕알등어거록


초땅의 반역도 장군들을 죽이고 장한은 북으로 강 건너 거록의 조왕 알의 무리를 공격했다 


趙高二世曰 : “先帝臨制天下久 故群臣敢爲非 進邪今陛下富於春秋 初卽位 柰何與公卿廷決事事卽有誤 示群臣短也天子稱朕 聞聲.” 

조고설이세왈 : '선제임제천하구 고군신불감위비 진사설 금폐하하당어춘추 초즉위 내하여공경정결사 사즉유오 시군신단야 천자칭짐 고불문성'


조고가 호해에게 설명하길 : '시황제는 천하를 오래 다스려 군신들이 감히 그르다거나 사된 말을 못한 겁니다. 이제 폐하가 나이도 어리고 즉위한지 얼마 안되었으니 어찌 공경대신들과 일처리 하시겠읍니까 혹 실수가 있으면 군신들에게 단점으로 보이게 됩니다. 천자가 짐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런 소리를 피하기 위함입니다'하니


於是二世常居禁中 與高決諸事 其後公卿希得朝見 

어시이세상거금중 여고결제사 기후공경희득조견


이에 호해가 두문불출하고 조고가 모든 일을 결정하니 공경대신들이 왕을 뵙고자 해도 볼 수가 없었다. 


盜賊益多 而關中卒發東擊盜者毋已.

도적익다 이관중졸발동격도자무이 


그 이후 반란이 빈번하여도 관중 동쪽으로 군사를 일으켜 떠나는 이가 없어졌다 


右丞相去疾·左丞相斯·將軍馮劫進諫曰 : “關東群盜並起 秦發兵誅擊 所殺亡甚衆 然猶盜多 皆以戌漕轉作事苦 大也請且止阿房宮作者 四邊戍轉.

우승상거질 좌승상이사 장군풍겁진간왈: '관동군도병기 진발병주격 소살망심중 연유부지 도다 개이수조전작사약 부세대야 청차지아방궁작자 감성사변수전 


우승상 거질과 좌승상 이사 그리고 장군 풍겁이 간언하여 말하길 : '관중 동쪽에 반란이 빈번하니 진나라 군사를 일으켜 처벌해야하며 죽음으로 본을 보여 그러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반란이 빈번함은 모두 병역 조운 운송이 힘들고 세금이 과한 탓입니다 그러니 아방궁 건축을 그만 두고 운송과 병역을 감하십시오'하니 


二世曰 : “吾聞之韓子曰 : ‘堯舜 茅茨 飯土 啜土形 雖監門之養 觳於此禹鑿龍門 通大夏 決河亭水 放之海 身自持築 脛毋毛 臣虜之勞不烈於此矣.’ 

이세왈 : '오문지한자왈 : 요순변연불괄 모자부전 반토륜 철토형 수감문이양 불곡어차 우착용문 통대하 결하정수 방지해 신자지축삽 경무모 신노지노불열어차의


호해가 답하길 : '내 한비자에게 듣기론 : '요순은 서까래도 다듬지 않고 초가 지붕도 다듬지않고 흙그릇에 먹고 마셨다는데 문지키는 개도 이러지 않을 것이며 우임금은 용문을 뚫어 대하에 물을 대는 공사에 정강이 털이 빠지도록 일했다는데 잡힌 포로도 이리 않을 것이다'


凡所爲貴有天下者 得肆意極欲 主重明法 敢爲非 以制御海

범소위귀유천하자 득사의극욕 주중명법 하불검위비 이제어해내의 


무릇 천하의 귀한 사람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법을 정해 아랫사람들이 아니라 소리 못하게 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법 


夫虞·夏之主 貴爲天子 親處窮苦之實 以徇百姓 何於法?

부루 하지주 귀위천자 친처궁고지실 이순백성 상하어법 


부루와 하나라 임금들은 천자로 불리면서도 실지 궁핍하게 살았으니 백성 누가 더 잘 살겠소 이게 어찌 밥이오


朕尊萬乘 毋其實 吾欲造千乘之駕 萬乘之屬 充吾號名.

짐존만승 무기실 오욕조천승지가 만승지속 충어호명


내 만 대의 마차를 끌 정도지만 겨우 천 대의 마차를 끌 뿐이니 萬乘之主로서 호칭만이라도 걸맞게 하려하오 


且先帝起諸侯 兼天下 天下已定 外攘四夷以安邊竟 作宮室以章得意 而君觀先帝功業有緖.

차선제기제후 겸천하 천하이정 외양사이이안변경 작궁실이장득의 이군관선제공업유서  


또시황제는 제후로서 천하를 통일하여 안정시키고 4夷를 변경에 두고 궁실을 지어 티를 냈기에 사람들이 그 업적을 보게 되는 것이오


今朕卽位二年之閒 群盜並起 能禁 又欲罷先帝之所爲 是上毋以報先帝 爲朕盡忠力 何以在位?

금짐즉위이년지한 군도병기 군불능금 우욕태선제지소위 시상무이보선제 차불위짐진충력 하이재위' 


내 즉위한지 2년에 반란이 빈번함에도 막지 못하고 또 시황제에 보답하지 않고 내게 충성도 다하지 않으면서 어찌 그 자리에 있는가'하며  


下去疾·斯·劫吏 案責他罪

하거질 사 겁리 안책타죄


거질 이사 풍겁을 옥에 가둬 그들의 죄를 물었다. 


去疾·劫曰 : “將相.” 自殺

거질 겁왈 : '장상불욕' 자살


거질과 겁은 차마 장차 모욕은 못 당하겠다며 자살하고 


斯卒囚 就五刑

사졸수 취오형


이사는 죄수로 목숨을 구하다 5형을 받았다. 


 ‘墨’(이마에 자자(刺字)하는 것)·‘劓’(코를 베는 것)·‘剕’(다리를 자르는 것)·‘宫’(거세하는 것)·‘大辟’(사형) 등 다섯 가지 형벌 


三年 章邯等將其卒圍鉅鹿 楚上將軍項羽將楚卒往救鉅鹿.

삼년 장한등장기졸위거록 초상장군항우장초졸왕구거록 


즉위 3년 장한을 비롯한 장수들이 거록을 포위하자 초의 상장군 항우가 구원병으로 초나라 병사를 거록으로 가게했다


 趙高爲丞相 竟案李斯殺之.

동 조고위승상 경안이사살지 


겨울 조고가 승상이 되고 결국 이사를 죽였다 


 章邯等戰 二世使人讓邯 邯恐 使長史欣請事 趙高弗見 又弗信.

하 장한등전수긱 이세사인양한 한공 사장사흔청사 조고불견 우불신 


여름 장한장군이 전투에서 패각하자 호해가 사신을 보내 장한 장군을 힐책하니 장한 장군이 두려워 장사 사마흔에게 청하여 조고를 만나도록 하였으나 조고는 만나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다. 


欣恐 亡去 高使人捕追.

흔공 망거 고사인포추불급 


사마흔이 겁에 질려 도망하니 조고가 체포조를 보냈지만 실패하였다. 


欣見邯曰 : “趙高用事於中 將軍有功亦誅 無功亦誅.

흔견환왈 : '조고용사어중 장군유공역주 무공역주' 


사마흔이 장한에게 이르길 : '조고가 관중지역의 모든 일을 도맡았으니 장군이 공이 있든 없든책임을 물어 죽일겁니다'하더라


項羽急擊秦軍 虜王離 邯等遂以兵降諸侯.

항우급격진군 노왕리 한등수이병항제후 


항우가 갑자기 진군을 공격하여 왕리를 포로로 잡으니 장한 장군이 병력을 이끌고 항복하여 제후가 되었다.  


八月己亥 趙高欲爲 恐群臣 乃先設驗 鹿獻於二世  : “馬也.

팔월기해 조고욕위란 공신하불청 내선설험 지록헌어이세 왈 : '마야'


8월 기해일 조고가 반란을 작정하고 공신들을 시험하고자 호해황제 앞에 사슴을 바치고 '말입니다'하더라 


二世笑曰 : “丞相誤邪鹿爲馬.” 

이세소왈 : '승상오사   위록위마


호해황제가 웃으며 '승상 뭐가 잘못됐소 사슴을 말이라하다니'하며


問左右 左右或 或言馬以阿順趙高 或言鹿  

문좌우 좌우혹묵 혹언마이아순조고 혹언록


좌우 대신들에게 물으니 혹은 말을 않고 혹은 조고에 따라 말이라 하고 혹 사슴이라 하였다.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고인음중제언록자이법


조고가 말없이 사슴이라 한 사람들을 법으로 음해 하였다. 


後群臣皆畏高.

후군신개외고


이후 모두가 조고를 무서워 하였다. 


高前言“關東盜毋能爲也”

고전수언 '관동도무능위야'


조고는 전에 수차례 말하길 : '관중 동쪽 반란군들은 별게 아니다'해왔다. 


及項羽虜秦將王離等鉅鹿下而前 章邯等軍 上書請益助 燕·趙·齊·楚·韓·魏皆立爲王 自關以東 大氐盡畔秦吏應諸侯 諸侯咸其衆西鄕

급항우노진왕리등거록하이전 장한등군수각 상서청익조 연 조 제 초 한 위개립위왕 자관이동 대저반진이응제후 제후함솔기중서향


항우가 거록에서 왕리를 잡고 게속 진격하니 장한 장군등이 퇴각을 수차례하며 원군을 청했고 연 조 제 초 한위 모두 왕을 세워 관중 동쪽 모두가 반기를 들고 그들을 반겨 군사를 몰고 서쪽으로 진군하였다.  


沛公將萬人已屠武關 使人私於高 高恐二世怒 誅及其身 乃謝病朝見.

패공장수만인이도무관 사인사어고 고공이세노 주습기신 내사병불조현  


패공은 수만명의 군사를 끌고 무관을 점령하고 조고에 사신을 보내왔다 조고는 호해황제의 노여움을 살까싶어 자해하고 그를 핑계로 어전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二世夢白虎齧其左驂馬 殺之 不樂 怪問占夢.

이세몽백호설기좌참마 살지 심불락 괴문점몽


호해황제가 꿈에 마차의 좌측 말을 물어 죽이는 백호를 죽이는 꿈을 꾸고 불편한 마음에 해몽하니  


卜曰 : “涇水爲祟.” 

복왈 : '경수위수'


경수의 수신이 문제라는 점사에 


二世乃齋於望夷宮 欲祠涇 四白馬

이세내제어망이궁 욕사경 침사백마


호해황제가 망이궁에서 목욕재계하고 경수의 수신을 달래려 백마 4마리를 물에 던졌다. 


使使責讓高以盜賊事

사사책양고이도적사


사람을 보내 반란에 대해 조고를 힐책하자 


高懼 乃陰與其婿咸陽令·其弟趙成謀曰 : “上聽諫 今事急 欲歸禍於吾宗吾欲易置上 立公子嬰 子嬰仁儉 百姓皆載其言.

고구 내음여기서함양영염락 기제조성모왈: '상불청간 금사급 욕귀과어오종 오욕역치상 경립공자영 자영인검 백성개재기언' 


조고가 두려워 은밀히 함양 영수인 염락, 아우 조성과 모의하길 : 임금이 간언을 안듣다가 일이 급해지니 우리 일족에 화를 돌리려 한다 해서 공자 영이 인자하고 검소하니 백성들이 그 말을 신뢰하니 그를 임금에 앉히고 싶다 하더라


使中令爲 詐爲有大賊 召吏發卒 追劫母置高舍.

사랑중영위내응 사위유대적 영악소리발졸 추겁악모치고사 


그리고 낭중령을 꼬드겨 내부로 부터 호응을 이끌고 거짓으로 큰 반란이 일어났다며 염락의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 가두고 염락으로 병력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將吏卒千餘人至望夷宮殿門 縛衛令僕射  : “賊入此 ?

견악장리졸천여인지망이궁전문 박위영복야 왈 : '적입차 하부지' 


염락으로 하여금 1000명의 사졸을 이끌고 망이궁 전전 앞에서 위령과 복야를 결박하고 말하길 '적이 이리 침입하도록 무얼했나' 윽박하니


衛令曰 : “周廬設卒甚謹 安得賊敢入宮?

위령왈 : '주려설졸심근 안득적감입궁'


위령이 답하길 : '주변 경계가 삼엄한데 어찌 적들이 궁에 들이 닥치겠소'하니


遂斬衛令 直將吏入  宦者大驚 或走或格 格者輒死 死者十人.

악수참위령 직장이입 행사 낭환자대경 혹주혹격 격자첩사 사자수십인


염락이 위령을 참수하고 궁으로 진입해 활을 쏘니 환관들이 놀라 달아나고 대치하기도 하나 대치한 자들은 죽임을 당해 수십명에 달했다. 


中令與俱入 射上幄坐幃.

낭중영여악구입 사상악좌위 


낭중령과 염락이 같이 들어와 휘장의자=옥좌를 쏘니 


二世怒 召左右 左右皆惶擾

이세노 소좌우 좌우개황우불투


호해황제가 노하여 주변을 찾으니 모두 당황하여 싸우지 못했다.


旁有宦者一人 敢去.

방유환자일인 시불감거 


곁의 환관 하나만이 시립해있기에 


二世入 謂曰 : “公何蚤告我乃至於此!

이세입내 위왈 : '공하불조고아   내지어차' 


호해가 다가가 말하길 : '넌 어찌해 일찍 알리지 않고 이꼴이 되도록 뭐했나' 하자


宦者曰 : “臣敢言 故得全使臣蚤言 皆已誅 安得至今?

환자왈 : '신불감엄 고득전  사신조언 개이주 안득지금' 


환관이 말하길 : '내 살자고 아무 말 안했읍니다 미리 알렸더라도 죽었을 것이니 지금 이처럼 살아있을까요'하더라 


前卽二世 : “足下驕恣 誅殺無道 天下共畔足下 足下其自爲計.

염락전즉이세수왈 : '족하교자 주살무도 천하공반족하 족하기자계' 


염락이 호해앞에서 죄를 따지며 말하길 : '당신이 교만하고 방자해 사람을 죽임에 원칙이 없으니 천하가 다 배반한 것이니 이 모든게 다 당신 탓이오' 하더라


二世曰 : “丞相可得見否?” 

이세왈 : '승상가득견부'


호해가 말하길 : : '승상을 만난수 없겠소' 하니


 : .” 

낙왈 : '불가'


염락이 안된다 하고 


二世曰 : “吾願得一郡爲王.” 弗許.

이세왈 : '오원득일군위왕' 불허 


호해가 말하길 ; '내 일개 군의 수령으로 가겠소' 하니 완되오 하고  


又曰 : “願爲萬.” 弗許

우왈 : '원위만호후' 불허 


또 묻길 : '10000호의 수령은 어떻소' 하니 안되오 하더라


 : “願與妻子爲黔首 比諸公子.

왈 : '원여처자위검수 차제공자' 


또 묻길 '그럼 공자들 처럼 그저 평범한 백성처럼 처자와 살면 안되오'하니


 : “臣受命於丞相 爲天下誅足下 足下雖多言 敢報.

염락왈 : '신수명어승상 위천하주족하 족하수다언 신불감보' 


염락이 답하길 ; '난 승상의 명령으로 천하가 당신의 징벌을 원하오 당신이 말이 많으니 일일이 대꾸하기 싫소'하며 


麾其兵進

휘기병진 


병사들에게 진격하라 하니 


二世自殺.

이세자살


호해가 자살하였다. 


歸報趙高 趙高乃悉召諸大臣公子 告以誅二世之狀

염락귀보조고 조고내실소제대신공자 고이주이세지상


염락이 조고에 보고하니 조고가 대신과 공자들을 불러 호해의 주벌 상황을 알리고 


 : “秦故王國 始皇君天下 故稱帝今六國自立 秦地益小 乃以空名爲帝 宜爲王如故 便.” 

왈 : '진고왕국 시황군천하 고칭제 금육국복자립 진지익소 내이공명위제 불가 의위왕여고 경'


이르길 '진은 본디 왕국이요 시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니 제라 칭한 것 이제 6국이 분립하고 영토도 좁아지니 헛되이 제라 부름이 가하지 않다. 옛날 처럼 왕이 부름이 마땅하니 고쳐라'하더라 


立二世之兄子公子嬰爲秦王

립이세지형자공자영위진왕


호해황제의 형의 아들 자영을 진왕으로 삼고 


以黔首葬二世杜南宜春苑中

이검수장이세두남의춘원중


백성들이 호해황제를 두남 의춘원에 장사하였다.


令子嬰齋 當廟見 受王璽

영자영제 장조현 수왕새


자영에게 목욕재계후 종묘에서 옥새를 받으라 명하니 


齋五日 子嬰與其子二人謀曰 : “丞相高殺二世望夷宮 恐群臣誅之 乃詳以義立我我聞趙高乃與楚約 滅秦宗室而王關中今使我齋見廟 此欲因廟中殺我我稱病不行 丞相必自 則殺之.” 

제오일 자영여기자이인모왈 : '승상고살이세망이궁 공군신주지 내상이의립아 아문조고내여초약 멸진종실이왕관중 금사아제현묘 차욕인묘중살아 아칭병불행 승상필자래 내즉살지'


재계 5일차에 두 아들에게 이르길 '승상은 망이궁에서 황제를 죽이고 군신들이 죄를 물을까 두려워 의를 거론하며 나를 왕으로 세우려는데 내 듣기엔 조고가 초와 밀약하여 진의 종실을 멸하고 관중의 왕이 되려한다더라 이제 내가 종묘에 나타나면 나를 종묘에서 죽일 것이니 내 병을 핑계로 가지 않으면 조고가 찾아올 것이다 오면 죽여라'하더라 


高使人請子嬰 子嬰不行 高果自往  : “宗廟重事 王柰何不行?” 

고사인청자영수배 자영불행 고과자왕 활 : '종묘중사 왕내하불행'


조고가 여러 번 사람을 보냈음에도 가지 않으니 직접 와서 '종묘제는 중요한 일인데 왜 왕은 종묘례를 하지 않는가' 묻더라  


子嬰遂刺殺高於齋宮 三族高家以徇咸陽

자영수척살고어제궁 삼족고자이순함양


자영이 조고를 제궁에서 베어죽이고 조고의 3족을 함양에 효수하였다.  


子嬰爲秦王四十六日 楚將沛公破秦軍入武關 遂至霸上 使人約降子嬰

자영위진왕사십육일 초장패공파진군입무관 수지패상 사인약항자영


자영이 즉위 46일만에 조나라 패공이 진나라군을 깨고 무관에 들어서 패상에 도달하여 사람을 보내 자영의 항복을 약속받았다. 


子嬰卽傒頸以組 白馬素 奉天子璽符 降軹道旁

자영즉혜경이조 백마소차 봉천자새부 항지도방


자영이 즉시 풀띠를 목에 매고 백마가 끄는 보통 마차에 천자의 옥새와 부절을 받들고 지도 근방에서 항복하였다. 


沛公遂入咸陽 封宮室府庫 還軍霸上

패공수입함양 봉궁실부고 환군패상


패공이 함양에 입성하여 궁궐을 폐쇄하고 패상으로 돌아갔다. 


居月餘 諸侯兵至 項籍爲從長 殺子嬰及秦諸公子宗族

거월여 제후병지 항적위종장 살자영급진제공자종족


달포쯤 지나 병력이 도착하였는데 항우가 종장의 지위로 자영과 공자들 일족을 죽여


遂屠咸陽 燒其宮室 虜其子女 收其珍寶貨財 諸侯共分之

수도함양 소지궁실 노기자녀 수기진보화재 제후공분지 


함양민을 도살하고 궁궐을 불태우고 아이들을 포로로 각종 보화를 거두어 제후들과 공평히 나눴다


滅秦之後 各分其地爲三 名曰雍王·塞王·翟王 號曰三秦.

멸진지후 각분기지위삼 명왈 옹왕 새왕 적왕 호왈삼진 


진이 망하고 나라를 셋으로 쪼개 옹왕 새왕 적왕을 세워 3진이라 불렀다.


項羽爲西楚霸王 主命分天下王諸侯 秦竟滅矣

항우위서초패왕 주명분천하왕제후 진경멸의 


항우는 서초의 왕이 되어 명령을 내려 각 왕과 제후에게 천하를 나눠주지 진나라라는 영토는 없어졌다


後五年 天下定於漢.

후오년 천하정어한


그 뒤 5년 천하는 한나라에 의해 안정되게 된다. 



여기부터 사마천의 주해....


太史公曰 : 秦之先伯翳 嘗有勳於唐虞之際 受土賜姓.

태사공왈 : 진지선백예 상유훈어당우지제 수토사성 


사마천이 말하길 : 진의 선조는 백예로 요순임금때공훈을 세워 땅과 성을 하사 받고 


及殷夏之閒微散

급은하지한미산


하왕조 은왕조엔 미미하게 흩어져 있다가 


至周之衰 秦興 邑于西垂.

지주지쇠 진흥 읍우서수 


주나라 쇠퇴기에 진을 일으켜 서수에 도읍하고


自繆公以 稍蠶食諸侯 竟成始皇.

자목공이래 초잠식제후 경성시황


목공때 부터 제후들을 잠식해 시황제에 이르렀다. 


始皇自以爲功過五帝 地廣三王 而羞與之侔.

시황자이위공과오제 지광삼왕 이차여지모


시황제는 스스로 5제보다 공이 많고 하은주 왕조보다 영토가 넓다고 다른 왕조들과 동등한 걸못 참았다. 


善哉乎賈生推言之也 : 

선재호가생추언지야 왈 


가생의 평가가 옳았는데 말하길

 

秦幷兼諸侯山東三十餘郡 繕津關 據險塞 修甲兵而守之.

진병겸제후산동삼십여군 선진관 거험새 수갑병이수지  


진나라가 산동 30여군 재후를 병합하고 나르터와 관문을 연결하고 험준한 요새에서 갑옷 병사들로 지키게 했다.  


然陳涉以戍卒散之衆 奮臂大呼 用弓戟之兵 白梃 望屋而食 天下

연진섭이수졸산란지중수백 분비대호 불용궁자지병 서우백정 망옥이식 횡행천하


그래서 진섭(진승)이 흩어진 병졸들과 팔 만 걷어부치고 활과 창을 쓰지 않고 몽둥이와 호미만으로 한 뎃 잠을 자면서 천하를 주름 잡았다.  


秦人阻險 關梁 長戟 彊弩.

진인조험불수 관양불합 장극불자 강노불사


진나라 사람들은 지형만 믿고 관문의 다리를 접지않고 장창이나 활을 쏘지도 않았다. 


楚師深入 戰於鴻門 曾無藩籬之艱.

초사심입 전어홍문 증무번리지간 


초나라 군사들이 홍문으로 처들와 싸울 때도 목책같은 울타리 조차도 없었다. 


於是山東大擾 諸侯並起 豪俊相立.

어시산동대우 제후병기 호준상립 


산동지방이 어지러워 제후들이 생겨나 서로 자웅을 겨루었을 때도 


秦使章邯將而東征 章邯因以三軍之衆要巿於外 以謀其上.

진사장한장이동정 장한인이삼군지중요불어외 이모기상 


장한 장군을 시켜 동쪽을 정벌하던 3군을 모아 임금을 모반하려 했다  


群臣之 可見於此矣.

군신지불신 가견어차의 


임금과 신하간의 반목이 이 정도였고 


子嬰立 

자영립 수불오


자영이 왕이 되고도 그 모양 그 꼴이었다. 


藉使子嬰有庸主之材 僅得中佐 山東雖 秦之地可全而有 宗廟之祀未當絶也

자사자영유용주지재 근득중좌 산동수란 진지지가전이유 종묘지사미당절야


자영이 보통의 지도자의 역량이라도 가져 보좌진을 잘 만났으면 산동지역이 어수선해도 진의 영토를 지키고 종묘사직도 이어졌을 것이다. 


秦地被山帶河以爲固 四塞之國也

진지피산대하이위고 사색지국야 


진나라 땅은 산을 등지고 하천을 끼고 있는 사방이 막힌 나라다


自繆公以 至於秦王 二十餘君 常爲諸侯雄.

자목공이래 지어진왕 이십여군 상위제후웅 


목공이래 진왕까지 20여 임금 모두 제후들 사이에 으뜸이었고 


世世賢哉 其勢居然也

이세세현재 기세거연야


어찌 이 모든 왕들이 현명해서일까? 다만 지형이 그래서일 뿐... 


且天下嘗同心幷力而攻秦矣

차천하상동심병력이공진의


또 천하가 같은 마음으로 진나라를 치고 싶어했지만


當此之世 賢智並列 良將其師 賢相通其謀 然困於阻險而能進 秦乃延入戰而爲之開關 百萬之徒逃而遂壞.

당차지세 현지병렬 양장행기사 현상통기모 연인어조험이불능지 진내정입전이위지개관 백만지도도배이수괴  


이 세상 현자와 지혜자가 널렸고 훌륭한 장수가 그 군대를 움직이고 현명한 재상들이 생각이 같다만 오직 난공불락의 요새인지라 진격하지 못하니 진나라가 관문을 열고 끌여들여 싸우려 해도 100만 군사가 도망하고자 해도 갖혀 괴멸될 뿐인데... 


勇力智慧足哉

이용력지혜부족재


이것이 용력과 지혜가 부족한 건가?


 不便.

형불리 세불편야


지형지세가 불리하고 불편한 탓


秦小邑幷大城 守險塞而軍 毋戰 閉關據阨 荷戟而守之.

진소읍병대성 수험색이군 고루무전 폐관거애 하극이수지 


진나라같은 소읍이 큰 성이 된 것은 험준한 지세가 또 하나의 군대인 탓... 가파른 보루에서 문닫고있는데 창인들 뭔 소용인가?  


諸侯起於匹夫 以利合 非有素王之.

제후기어필부 이리합 비유소왕지행야 


제후들이란 본디 보통 사람들이라 이득에 따라 연합하니(대의가 없으니) 온전한 왕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其交未親 其下未附 名爲亡秦 其實利之也.

기교미친 기하미부 명위망진 기실리지야  


그 교류가 진심에 찬 것도 아니니 부하들도 단단하지 않고 진나라 패망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제 잇속이 앞서니 


彼見秦阻之難犯也 必退師.

피견진조지난범야 필퇴사 


그들이 험준한 지형을 알았다면 군대를 물리고


安土息民 以待其敝 收弱扶罷 以令大國之君 得意於海.

안토식민 이대기폐 수약부태 이령대국지군 불충부득의어해내


백성들을 상대국이 쇠약해 질 때까지 백성을 쉬게하고 대국의 임금 다움으로 약하고 안일한 나라를 거두었다면 세상사람들의 합의와 충성을 못 얻을 리 없건 만.... 


貴爲天子 富有天下 而身爲禽者 其救敗非也

귀위천자 부유천하 이신위금자 기수패비야 


천자의 자리만 욕심내어 천자처럼 귀하고 천하 부자될 마음에 사로잡혔으니 패배하는 것 말고뭘 구하는 것이냐? 


秦王足己 遂過而.

진왕족기불문 수과이불변 


진시황은 남 말 듣지 않는 걸 최고라 여겨 허물을 고치지 않았고 


二世受之 因而 虐以重禍.

이세수지 인이불개 포학이중화 


호해 역시 똑같아 고칠 줄 모르니 포학함이 배 가 되었고


子嬰孤立無親 危弱無輔.

자영고립무친 위약무보 


자영은 홀로 외로워 약해도 도울 이가 없었다


三主惑而終身  亦宜乎?

삼주혹이종신불오 망 불역의호 


셋 다 깨닫질 못했으니 망하는 것 말고 뭐가 마땅하겠나? 


當此時也 世非無深慮知化之士也 然所以敢盡忠拂過者 秦俗多忌諱之禁 忠言未卒於口而身爲戮沒矣.

당차시야 세비무심려지화지사야 연소이불감진충불과자 진속다기위지금 충언미졸어구이신위육몰의 


그 당시 세상 변화나 걱정하는 지사들이 없지 않았으나 충성스런 간언으로 왕의 허물을 막지 못한 것은 당대 진나라 습속이 금기가 많아 충언이 미처 말로 다하기도 전에 죽임 당하였기 때문...


故使天下之士 傾耳而聽 重足而立 拑口而

고사천하지사 경이이청 중족이립 겸구이불언


그래서 천하 지사들이 그저 예스맨으로 입에 겸자물린듯 입을 닫게 만들었다. 


是以三主失道 忠臣敢諫 智士敢謀 天下已 上聞 豈不哀哉!

시이삼주실도 충신불감간 지사불감모 천하이란 간불상문 이불애재 


이렇듯 3왕이 도리를 모르니 간언하는 충신이 없고 국사를 논하는 지사도 없어 천하가 어지럽고 간신배들이 임금의 말을 따르지 않으니 어찌 슬픈 일 아닌가? 


先王知雍蔽之傷國也 故置公卿大夫士 以飾法設刑 而天下治.

선왕지옹폐지상국야 고치공경대부사 이식법설형 이천하치 


자고로 왕들이 백성들과의 불통의 문제를 알아 재상 및 관리를 두고 법을 두어 천하를 다스렸건만... 


其彊也 而天下服.

기강야 금폭주란이천하복 


그게 잘 돌아가면 폭력을 금하고 난리를 처벌하므로 천하가 복종하였고


其弱也 五伯征而諸侯從.

기약야 오백정이제후종 


그 체제가 안 돌아가도 5 제후( 齊桓公 晋文公 楚莊王 宋襄公 秦穆公) 가 군소 제후를 정벌하여 복종시켰고


其削也 守外附而社稷存.

기삭야 내수외부이사직존


비록 나라가 쇠해도 방비를 튼튼히 하고 밖으로 서로 의지해 사직은 지켰다.  


故秦之盛也 繁法嚴刑而天下振 ; 及其衰也 百姓怨望而海畔矣

고진지성야 번법엄형이천하진 ; 급기쇠야 백성원망이해내반의 


고로 진나라가 강성할 때는 번잡한 법과 엄한 집행으로 천하를 쥐고 흔들었지만 쇠해지니 백성들 원망이 들고 일어나 세상이 모두 반기를 들었다. 


故周五序得其道 而千餘歲不.

고주오서득기도 이천여세부절


옛 주나라의 5서=5典=5倫이 기본 도리로 천년을 이어오고


秦本末並失 長久.

진본말병실 고불장구 


진나라는 본말을 모두 잃으니 장구하지 못한 것.... 


由此觀之 安危之統相去遠矣.

유차관지 안위지통상거원의 


이로 보아도 안정과 위험은 서로 현격히 다른 것이라


野諺曰“前事之 後事之師也”.

야언왈'전사지불망 후사지사야' 


소위 시세 말로 '과거를 잊지 않으면 후일 귀감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 


是以君子爲國 觀之上古 驗之當世 以人事 察盛衰之理 審權勢之宜 去就有序 變化有時 故曠日長久而社稷安矣

시이군자위국 관지상고 험지당세 참이인사 찰성쇠지리 심권세지의 거취유서 변화유시 고광일장구이사직안의


그래서 지도자라면 옛날 일을 돌아보아 당장의 난관과 견주어 시험하고 사람을 쓸 때 참고하고 성쇠의 이치를 살펴 권력의 향배를 정해 변환기에 취사선택을 잘 하는 법이다 그래서 왕의 권위가 유지되고 사직이 유지 되는 것이다. 


秦孝公據函之固 擁雍州之地 君臣固守而窺周室 有席卷天下 包擧宇 囊括四海之意 幷呑八荒之心

진효왕거효함지고 옹옹주지지 군신고수이규주실 유석권천하 포거우내 낭괄사해지의 병탄팔황지심


진나라 효왕은 효와 함곡관에 칩거하며 옹주땅을 부여잡고 군신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주나라왕실을 호시탐탐 노렸다가 빈틈이 생기자 천하를 삼키고자 내실을 다지고 온 세상=8황을 통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當是時 商君佐之 立法度 務耕織 修守戰之備 外連衡而諸侯 於是秦人拱手而取西河之外

당시시 상군좌지 내립법도 무경직 수수전지비 외연형이제후 어시진인공수이취서하지외


당시 상군=공손앙의 보좌로 안으로 법도를 세우고 농사와 길쌈에 힘쓰며 수비전력을 키우며 밖으로 제후들의 합종연횡을 부추겨 진나라는 팔짱 낀 채 서하 밖 땅을 차지한 것이다. 


-여기서 서하=황하 서쪽 땅이란 낙수와 황하 사이 땅을 말하고 오늘날 유명한 도시가 바로 서안 즉, 진은 낙수 서쪽에 있으며 위나라와 이 땅을 놓고 대립하였다. 당대의 중국이란 섬서성 서쪽으론 소위 융 땅이요 황하하류 지역은 소위 夷의 영역이 되는 것.... 


孝公 惠王·武王蒙故業 因遺冊 南兼漢中 西擧巴·蜀 東割膏腴之地 收要害之郡

효공기몰 혜왕 무왕몽고업 인유책 남겸한중 서거파 촉 동할고유지지 수요해지군


효공이 죽고서도 혜왕과 무왕이 효공의 업적을 이어 (=유책) 남으로 한중을 서로 파, 촉 동의 비옥한 땅을 얻어 요충지를 얻었다.  


諸侯恐懼 會盟而謀弱秦 愛珍器重寶肥美之地 以致天下之士 合從締交 相與爲一.

제후공구 회맹이모약진 불애진기중보비미지지 이치천하지사 합종체교 상여위일 


제후들이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회맹에서 진을 약화하고자 보화와 비옥한 땅을 내놓아 천하의 지사들을 모으고 하나로 뭉쳤다. 


當是時 齊有孟嘗 趙有平原 楚有春申 魏有信.

당시시 제유맹상 조유평원 초유춘신 위유신릉 


당시 제나라엔 맹상군 조나라엔 평원군 초나라엔 춘신군 위나라엔 신릉군 등이 다스렸는데 


此四君者 皆明知而忠信 寬厚而愛人 尊賢重士 約從離衡 幷韓·魏·燕·楚·齊·趙·宋·衛·中山之衆

차사군자 개명지이충신 관후이애인 존현중사 약종이형 병한 위 연 초 제 조 송 위 중산지중


이 네 군주가 모두 현명하고 신롸가 두텁고 사람들을 아낄 줄 알아 서로 합종하여 한 위 연 초 제 송 위 중산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다. 


於是六國之士有寧越·徐·蘇秦·杜赫之屬爲之謀 齊明·周最·陳軫·昭·緩·翟景·蘇厲·毅之徒通其意 起·孫臏·帶佗·兒良·王廖·田忌·廉頗·趙奢之朋制其兵.

어시육국지사유영월 서상 소진 두혁지속위지모 제명 주최 진진 소활 루완 작경 소여 낙의지도통기의 오기 손빈 대타 아량 왕료 전기 염파 조사지붕제기병


당시 육국의 인재로는 영월, 서상(徐尙), 소진(蘇秦), 두혁(杜赫) 등이 있어 계략을 세웠고, 제명(齊明), 주최(周最), 진진(陳軫), 소활(召滑), 누완(樓緩), 책경(翟景), 소려(蘇?), 악의(樂毅) 등이 각국의 의견을 소통시켰으며, 오기(吳起), 손빈(孫), 대타(帶), 아량(兒良), 왕료(王廖), 전기(田忌), 염파(廉頗), 조사(趙奢) 등이 친구가 되어 군사를 통솔했다. 


常以十倍之地 百萬之衆 叩關而攻秦

상이십배지지 백만지중 고관이공진


그리하여 그들은 진나라의 열 배가 되는 땅과 1백 만이나 되는 대군으로 함곡관으로 진격해 진나라를 공략했다. 


秦人開關延敵 九國之師逡巡遁逃而敢進.

진인개관정적 구국지사준순둔도이불감진 


진나라가 관문을 열고 적들을 끌어들이니 9나라 군사들이 감히 들어서질 못하더라  


秦無亡矢遺鏃之費 而天下諸侯已困矣 

진무망시유촉지비 이천하제후이곤의


진나라는 한개의 화살도 잃지않고 천하 제후들을 곤경에 빠트렸고 


於是從散約解 爭割地而奉秦.

어시종산약해 쟁해지이봉진 


그리하여 합종은 깨어지고 서로 앞다투어 진나라에 땅을 바쳤다 


秦有餘力而制其敝 追亡逐 伏尸百萬 流血漂鹵

진유여력이제기폐 추망추배 복시백만 유혈표로


진나라가 여력이 있으므로 연합을 깨고 따라가 섬멸하니 시체가 100만이요 핏물에 방패가 떠다닐 정도였다


因利乘便 宰割天下 分裂河山 彊國請服 弱國入朝

인리승편 재할천하 분열하산 강국청복 약국입조


이런 이점으로 천하를 분열하여 강국엔 항복을 권하고 약국은 입조하였다.


延及孝文王·莊襄王 享國日淺 國家無事.

연급효문왕 장양왕 형국일천 국가무사


효문왕 장양왕은 재임기가 짧아 별 다른 일이 없었다. 


及至秦王 續六世之餘烈 振長策而御宇 呑二周而亡諸侯 履至尊而制六合 拊以鞭笞天下 威振四海

급지진왕 속육세지여열 진장책이어우내 탄이주이망제후 이지존이제육합 집추부이편답천하위진사해 


마침내 진시황제에 이르러 6 선왕의 열정을 이어받아 지휘권을 휘둘러 동,서주를 멸망하여 지존에 올라 6개국을 통제하고 형벌제를 집대성하여 위엄을 만방에 펼쳤다. 


南取百越之地 以爲桂林·象郡 百越之君俛首傒頸 委命下吏

남취백월지지 이위계림 상군 백월지군면수계두 위명하리


남쪽 머든 월 지역을 취하여 계림과 상군을 만들어 백월 지도자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손 모아 명령을 받들었다.  


乃使蒙恬築長城而守藩籬 卻匈奴七百餘里 胡人敢南下而牧馬 敢彎弓而報怨

내사몽염북축장성이수번리 각흉노칠백여리 호인불감남하이목마 사불감만궁이보원


그리고 몽염장군을 시켜 장성을 짓게하여 번리=백성을 지키고 흉노를 700여리 내쫒으니 호인들이 감히 남쪽 땅에 들어와 말을 풀지 못하고 무사들도 무기를 들고 설치지 못했다.  


於是廢先王之道 焚百家之言 以愚黔首

어시폐선왕지도 분백가지언 이우검수 


그 때에 선왕의 도리를 어긋나게 소위 분성갱유하여 우민화 정책을 폈다.  


墮名城 殺豪俊 收天下之兵聚之咸陽 銷鋒鑄 以爲金人十二 以弱黔首之民.

타명성 살호준 수천하지병취지함양 소봉주거 이위금인십이 이약검수지민


이름 난 성을 허물고 영웅호걸을 죽이고 나라안 무기를 거둬들여 12인 동상을 만들어 백성들의 반란의 여지를 없앴다. 


然後斬華爲城 因河爲津 據億丈之城 測之谿以爲固

연후점화위성 인하위진 거억장지성 임불측지계이위고


연후 화산자락을 성채삼고 해자를 둘러 높은 철통같은 성에 거했다.  


良將勁弩守要害之處 信臣精卒陳利兵而誰何 天下以定.

양장경노수요해지처 신신정졸진이병이수하 천하이정


좋은 장수와 궁수들로 요지를 지키고 정예부대로 두르니 천하가 안정되었다. 


秦王之心 自以爲關中之固 金城千里 子孫帝王萬世之業也

진왕지심 자이위관중지고 금성천리 자손제왕만세지업야


진시황제의 마음은 철옹성같은 관중지역을 수도로 삼는게 자손 만대를 위한 위업이라 믿었다.  


秦王 餘威振於殊俗

진왕기몰 여위진어수속


시황제가 이미 죽었어도 그의 위세가 기이한 풍속으로 남았다.  



陳涉 牖繩樞之子 甿隷之人 而遷徙之徒 才能及中人 非有仲尼·墨翟之賢 陶朱·猗頓之富 躡足伍之閒 而倔起什伯之中 罷散之卒 百之衆 而轉攻秦.

진섭 옹유승추지자 망예지인 이천섭지도 재능불급중인 비유중니 묵적지현 도주 의돈지부 섭족행오지한 이굴기십백지중 송태산지졸 장수백지중 이전공진 


진섭=진승은 본디 찢어지게 가난해 장성공사에 동원된 노비나 진배없는 출신으로 중니 묵적같은 지혜도 없고 도주나 의돈같은 부자도 아닌데 끌려가는 노비 무리에서 흩어진 졸개들을 모아 수많은 장수들을 이끌고 제후로 떨쳐 일어나 진나라를 공격한다.


斬木爲兵 揭竿爲旗 天下雲集響應 贏糧而景從 山東豪俊遂並起而亡秦族矣

참목위병 게간위기 천하운집향응 영량이경종 산동호준수병기이망진족의 


죽창으로 무기삼고 민중반란을 일으켜 천하의 호응을 얻어 식량을 싸들고 우러러 따를 정도가되니 산동의 호걸들 역시 들고 일어나 진왕족을 멸망케 한 도화선이 되었다.  


且夫天下非小弱也 雍州之地 函之固自

차부천하비소약야 옹주지지 효함지고자약야 


또한 옹주 지역이 그리 작은 땅이 아니고 효산과 함곡관의 공고함이 여전하다


陳涉之位 非尊於齊·楚·燕·趙·韓·魏·宋·衛·中山之君 ; 棘矜 非錟於句戟長 ; 適戍之衆 非抗於九國之師 ; 深謀遠慮 軍用兵之道 非及鄕時之士也

진섭지위 비존어제 초 연 조 한 위 송 위 중산지군  서우극궁 비담어구극장쇄야 적수지중 비항어구국지사 심모원려 행군용병지도 비급향시지사야 


진섭의 지위란게 6국의 지도자만치 존귀하지도 않고 호미와 곰방메 작대기가 날카로운 창도 아니요 변방을 지키는 병졸이 9개국 병사들만 한가 게다가 전략전술도 머리만 굴리는 선비만도 못했다. 


然而成敗 功業相反也.

연이성패이변 공업상반야  


그러므로 성패가 다르고 공적도 상반되는 것


試使山東之國與陳涉度長絜大 比權量力 可同年而語矣

시사산동지국여진섭도장혈대 비권양력 즉불가동년이어의 


산동 땅 제후국과 진승을 진섭과 비교한다면 법도도 크기도 상대가 안되고 역량으로 보아도 같은 급이라 말하기 어렵다. 


然秦以區區之地 千乘之權 招八州而朝同列 百有餘年矣

연진이구구지지 천승지권 초팔주이조동열 백유여년의


그러나 진의 구획된 영토는 천승의 권력 8주의 조공과 동맹이 100년 넘게 이어져 왔다. 


然后以六合爲家 函爲宮 一夫作難而七廟墮 身死人手 爲天下笑者 何也

연후이육합지가 효함위궁 일부작난이칠묘타 신사인수 위천하소자 하야


6나라가 가족처럼 뭉치고관중땅을 궁전으로 삼은 건데 일개 사내로 인한 난리에 7묘(종묘)가 무너지고천자가 사람 손에 죽으니 이 천하가 웃을 일 아니고 뭔가? 


仁義施而攻守之勢.

인의불시이공수지세이야 


인의를 베풀지 않고 나가고 들어오는 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 6국을 합병할 때는 대국 다움이 있었지만 안일함에 빠져 수성에 몰두하다 망한게 아니냐... 


秦幷海 兼諸侯 南面稱帝 以養四海 天下之士斐然鄕風 是者何也?

진병해내 겸제후 남면칭제 이양사해 천하지사비연양풍 약시자하야 


진나라가 세상을 통일하고 제후들을 합병하여 황제로 칭하니 천하의 선비들이 귀의하였는데 왜 그랬을까


曰 : 近古之無王者久矣. 

왈 : 근소지무왕자구의 


답하자면 : 근자에 왕다운 왕이 없은지 오래라서 그렇다


周室卑微 五霸歿 令不行於天下 是以諸侯力政 彊侵弱 衆寡 兵革休 士民罷敝. 

주실비미 오패기몰 영불행어천하 시이제후역정 강침약 중폭과 병혁불휴 사민태폐


주왕실이 쇠약해지고 5패가 죽으니 천하에 명령체계가 없어져 각 제후들이 제각기 다스리고 강한 제후가 약한 제후를 치는 전쟁이 쉬지않으니 선비나 대중들이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今秦南面而王天下 是上有天子也.

금진남면이왕천하 시상유천자야 


당시 진시황이 주나라를 대신해 왕중왕으로 천자가 되었고 


元元之民冀得安其性命 莫虛心而仰上 當此之時 守威定功 安危之本在於此矣.

기원원지민기득안기성명 막불허심이억지 당차지시 수위정공 안위지본재어차의


백성들의 안정을 바라는 한 마음으로 진시황을 우러르니 권위를 지켜 안정을 이뤘으니 안정과 위기 여부는 그 권위에 달린 것.... 


-쌈질에 지친 백성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통한 안정을 바랬기에 진시황의 등장을 반겼던 것.... 

지도자의 역할은 백성들의 안위를 지켜주는 것.....


秦王懷貪鄙之心 自奮之智 信功臣 親士民 廢王道 立私權 禁文書而酷刑法 先詐力而後仁義 虐爲天下始

진왕회탑비지심 행자분지지 불신공신 불친사민 폐왕도 립사권 금문서이혹영법 선사력이루인의 이포학위천하시


진시황이 탐욕과 비루한 마음을 품고 제 생각대로 행하며 공신을 믿지않고 선비와 백성과 친히 지내지 않으며 왕의 도리를 집어치우고 개인을 앞세워 책을 불태우고 형법을 가혹하게 집행하며 먼저 속이고 인의를 뒤로하면서 세상 다스림에 포학해지기 시작했다 


夫幷兼者高詐力 安定者貴順權 此言取與守同術也

부병겸자고사력 안정자귀순권 차언취여수부동술야 


대저 통일하려할 때는 권모술수를 최고로 치지만 안정되면 권위에 순종하기 바라는 법 이래서천하를 얻을때와 지킬 때의 통치술이 다르다하는 것이다. 


秦離戰國而王天下 其道 其政 是其所以取之守之者.

진리전국이왕천하 기도불역 기정불개 시기소이취지수지자리야 


진나라가 전쟁통을 지나 천하의 왕이 되고도 그 통치의 도리를 바꾸질 않고 정책도 바꾸지 않았는데 얻을 때와 지킬때가 다르다는 것이다. 


孤獨而有之 故其亡可立而待.

고독이유지 고기망가립이대 


혼자 고집부렸기에 기다리기도 전에 망한 것이다


借使秦王計上世之事 並殷周之迹 以制御其政 後雖有淫驕之主而未有傾危之患也

차사진왕계상세지사 병은주지적 이제어기정 후수유음교지주이미유경위지환야


만약 진시황이 먼저 시대인 은나라 주나라의 일을 보고 계획하여 정책을 운용했다면 나중에 누군가 음란하고 교만한 왕이 서더라도 경국의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故三王之建天下 名號顯美 功業長久.

고삼왕지건천하 명호현미 공업장구


고로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가 천하를 세워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그 공과 업적이 오래 간 것이다. 

 

今秦二世立 天下莫引領而觀其政.

금진이세립 천하막불인령이관기정 


호해황제가 즉위하자 세상 모두가 목을 빼고 그 다스림을 지켜보았는데 


夫寒者利褐而飢者甘糟糠 天下之嗷嗷 新主之資也.

부한자리수갈이기자감조당 천하지오오 신주지자야 


대저 헐벗고 굶주린 사람은 술 지게미도 단 법이고 천하의 소란은 새로운 임금의 정치에 좋은 자료가 되는 법이다. 


此言民之易爲仁也

차언노민지이위인야


이 말은 힘든 백성에게 어짊을 베풀기 쉽다는 말이다. 


鄕使二世有庸主之 而任忠賢 臣主一心而憂海之患 縞素而正先帝之過 裂地分民以封功臣之後 建國立君以禮天下 虛囹圉而免刑戮 除去收帑汙穢之罪 使各反其鄕里 發倉廩 散財幣 以振孤獨窮困之士 輕賦少事 以佐百姓之急 約法刑以持其後 使天下之人皆得自新 節修 各愼其身 塞萬民之望 而以威德與天下 天下集矣

향리이세유용주지행 이임충현 신주일심이우해내지환 호소이정선제지과 열지분민이봉공신지후 건국입군이예천하 허영위이면형륙 제거수탕오예지죄 사격반기향리 발창름 산재폐 이진고독궁인지사 뎡부소사 이좌백성지급 약법성형이지기후 사천하지인개득자신 경절수행 각신기신 새민지망 이이위덕여천하 천하집의 


호해황제가 평범한 임금의 덕행을 지니고서 충신과 현인을 임용해 신하와 임금이 한마음으로 세상의 걱정거리를 염려하고 간촐히 입고 선왕의 잘못을 선왕의 잘못을 바로잡고 토지를 나누어 백성들에게 주고, 공신들의 후예들에게 식읍을 봉하며, 제후국을 세워 군주를 옹립하고, 천하의 인재들을 예로써 대우하고, 사면령을 내려서 감옥을 비우며 형벌을 면제해주고, 죄인의 처와 딸을 노비로 삼는 난잡한 죄명을 폐지해 각기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창고와 곳간을 열어서 재물과 돈을 나누어주어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과 곤궁한 사람들을 구휼하며, 세금을 가볍게 하고 노역을 줄여서 백성들의 긴급한 사정을 도와주고, 법령을 간략히 하고 형벌을 가볍게 해 죄인이 자신의 후손을 보존하게 하며, 천하의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스스로 새롭게 변화하게 해 자신의 몸가짐을 고치고 품행을 수양하며, 각자 몸을 근신하게 해 만민의 바람을 만족시키고, 위엄과 인덕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대했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卽四海之 然各自安其處 唯恐有變 雖有狡猾之民 無離上之心 軌之臣無以飾其智 暴亂之姦止矣

즉사해지내 개환연각자안락지처 유공유변 수유교활지민 무리상지심 즉불궤지신무이식기지이폭란지간지의


즉, 세상 모든사람들이 각기 안정된 삶을 꾸리면서 변란을 두려워 방지하면 누군가 교활한 사람이 임금의 마음에 벗어나지 않으면 삐딱한 신하라도 간사하게 폭란을 꾸미지 않을 것이다. 


二世不行此術 而重之以無道 壞宗廟與民 始作阿房宮 繁刑嚴誅 吏治刻深 賞罰 賦斂無 天下多事 吏弗能紀 百姓困窮而主弗收恤

이세불행차술 이중지이무도 괴종묘여민 갱시작아방궁 민형엄주 리치각심 상벌부당 부렴무 천하다사 리불능기 백성곤궁이주불수혈


호해황제가 이리 다스리기 보다 잔학 무도한 짓을 거듭하며 종묘와 백성을 뭉개고 아방궁을 짓고 법을 복잡하게 해 엄히 다스리니 관리들의 횡포가 늘고 상벌이 온당치 못하고 과세가 과하고 복잡해지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곤궁한 백성을 구휼하지도 않았다 


然後姦僞並起 而上下相遁 蒙罪者衆 刑戮相望於道 而天下苦之

연후간위병기 이상하상둔 몽죄자중 형륙상망어도 이천하고지 


그러니 간사함과 거짓이 생겨나 상하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죄인들이 늘어나 길마다 넘쳐나게되어 삶이 곤고해졌다. 


自君卿以下至于衆庶 人懷自危之心 親處窮苦之實 安其位 故易動也

자군경이하지우중서 인회자위지심 친처궁고지실 함불안기위 고역동야


제후나 재상부터 가난한 서민까지 늘 불안하고 궁핍과 고통에 젖어있으니 모두 자기 입지를 불안해하며 쉽게 동요되는 것이다.  


是以陳涉用湯武之賢 藉公侯之尊 奮臂於大澤而天下響應者 其民危也

시이진섭불용탕무지현 부자공후지존 분비어대택이천하향응자 기민위야 


그래서 진승이 탕왕이나 무왕의 현명함도 없고 왕족의 존엄함도 없이 대택 민중봉기로 백성들을 위기로 내몰았다. 


故先王見始終之變 知存亡之機 是以牧民之道 務在安之而已

고선왕견시종지변 지존망지기 시이목민지도 무재안지이이


고로 선왕들의 변고의 자초지종을 보아 존망의 기미를 알았는데 이게 백성을 다스리는 길이요 백성들의 안정에 힘쓴다는 말이 이것이다. 


天下雖有逆之臣 必無響應之助矣

천하수유역행지신 필무향응지조의


세상에 삐뚤어진 신하가 있더라도 그를 도우려는 사람이 없게 되고 


故曰“安民可與 而危民易與爲非” 此之謂也

고왈'안민가여행의 이위민역여위비' 차지위야


그래서 이르길 '안정된 백성들과 올바름을 행하고 위기의 백성들과는 그릇됨을 행하게 된다'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貴爲天子 富有天下 免於戮殺者 正傾非也

귀위천자 부유천하 신불면어륙살자 정경비야


천자의 귀한 몸으로 천하를 차지하고도 살륙자 소리를 못 면하는 것은 바름이 그릇됨으로 치우친 탓이다. 


是二世之過也

시이세지과야


이게 호해황제의 과오이다. 


襄公立 享國十二年

양공립 형국십이년 


양공이 즉위하여 12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初爲西畤

초위서치


처음으로 서쪽 제단을 만들었다. 


葬西垂

장서수


죽어 서수에 묻히고  


生文公

생문공


문공을 낳았다. 


-소위 진나라 610년 역사를 일별하기 시작하는데.... 

진나라라는 것의 시작이 어찌보면 서치의 설치부터라 할 것이다. 

즉, 夷족의 제사권이 서쪽으로 옮아간 것이기 때문... 

후일 주나라의 구정을 가져가는 것도 진정한 제사권의 확보... 

제사권이란 장자의 자격이요 권위.... 


文公立 居西垂宮

문공립 거서수궁


문공이 서수궁에서 치리하고 


五十年死 葬西垂

오십년사 장서수


50년 재위후 죽어 서수에 장례하였고 


生靜公.

생정공


정공을 낳았다. 


-여기서 서수란 단어에 주목하면 서쪽 변경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지명으로서 서수란 西犬丘라 하기도 하고 오늘날 감숙성 천수시라고도 하는데... 

천수시는 복희씨와 여와씨의 고향?으로 알려진 고장이다




설화의 특성상....

진나라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 한다. 


아다시피 복희여와씨는 중국 창세신화의 주인공이요 복희씨는 수렵어로의 공로로 5제중 하나로 인정받는 존재.... 

또한 진은 최초 통일제국으로 그 의미를 가진다...

진나라의 공로중 하나가 바로 정전제를 대치한 군현제라는 것도.... 


지금 사기를 읽는 관점은 소위 前代의 회맹제와 봉건제에서 군현제로 전환이요 동시에 천자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통성 확보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지도자론의 관점이다. 


너른 땅에서 각기 발생한 설화들의 취합내지 솎아내는 과정을 추적하는 의미를 둔다.



靜公享國而死

정공불향국이사


정공은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죽었고


生憲公.

헌공을 낳았으며

 

憲公享國十二年 居西新邑

헌공향국십이년 거서신읍


헌공은 12년 통치하며 서신읍에 거했고


 葬衙

사 장아


生武公·德公·出子

생무공 덕공 출자


무공과 덕공 그리고 출자를 낳았다. 


-여기 서신이나 아에 대한 주석?은 명확치 않은데...

西新 말 그대로 새로운 도읍.... 

衙는 마을도 되고 병영도 되고... 


出子享國六年 居西

출자향국육년 거서릉


출자는 6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서릉에 거했으며 


庶長弗忌·威·父三人 賊賊出子鄙衍 葬衙

서장불기 위루 삼보삼인 솔적적출자비연 장아


첩의 맏아들 불기 위루 삼보등 세사람이 역적을 이끌고 출자를 비연에서 죽이고 아에 장사했다. 


武公立

무공립


무공이 즉위했다.


武公享國二十年

무공향국이십년 


무공은 20년 나라를 다스렸고


居平陽封宮

거평양봉궁


평양 봉궁에 거했고


葬宣陽聚東南

장선양취동남


선양취 동남에 장사되었고


三庶長伏其罪

삼서장복기죄


3 서자들이 죄를 아룄고


德公立. 

덕공립


덕공이 즉위하여 

 

德公享國二年

덕공향국이년


2년 다스리고 


居雍大鄭宮

거옹대정궁


옹땅 대정궁에 거했으며 


生宣公·成公·繆公

생선공 성공 목공


선공 성공 목공을 낳았으며 


葬陽

장양


양에 장사되었다. 


初伏 以御蠱.

초복 이어고


복날을 제정해 독기를 다스렸다

 

宣公享國十二年

선공형국이십년


선공은 20년 나라를 다스렸고 


居陽宮

거양궁


양궁에 거했으며 


葬陽

장양


양에 장사되었다. 


初志閏月

초지윤월


처음 윤달을 제정하였으며 

 

成公享國四年 居雍之宮.

성공향국사년 거옹지궁 


성공이 4년 나라를 다스리고 옹땅의 궁에 지냈고 


葬陽

장양


양에 장사되었다


齊伐山戎·孤竹.

제벌산융 고죽


제나라가 산융과 고죽을 정벌하고 

 

繆公享國三十九年

목공향국삼십구년


목공이 39년간 나라를 다스리며 


天子致霸

천자치패


천자로서 패권을 차지했으며 


葬雍

장옹


옹땅에 묻혔다. 


繆公學著人

목공학저인


목공은 학문적이요 책을 저술할 정도였다


生康公

생강공


강공을 낳았다. 


-왜 사마천은 진나라의 世紀를 일일이 적고 있을까?

다른 말로 진 나라 부터가 중국의 실체라는 반증 아닐까? 

여기 陽이니 雍이니 지명들은 그저 추측되는 위치 이름 일 뿐.... 

진의 수도 이전이 여러번이라는 말은 결국 국가가 여러 개라는 반증이요 그걸 묶어내는 키워드가 군현이 아니겠는가? 


왕궁을 장시간 비운다는 일은 예나 제나 위험한 일... 

그걸 알면서 몇 달을 궁을 비우거나 수시로 이전???? 

여러가지로 해명이 필요한 부분....


康公享國十二年

강공향국십이년


강공이 나라를 12년 다스릴때


居雍高寢

거옹고침


옹땅 고침에 거했고


장구사


구사에 장사지냈고 


生共公.

생공공


공공을 낳았으며

 

共公享國五年 居雍高寢

공공형국오년 거옹고침


공공은 고침에 살면서 나라를 5년 다스렸고 


葬康公南

장강공남


강공이 묻힌 구사 남쪽에 묻혔다 


生桓公.

생환공


환공을 낳고 

 

桓公享國二十七年

환공향국이십칠년


환공이 27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居雍太寢

거옹태침


옹땅 태침에 거했고


葬義里丘

장의리구북


의리구 북쪽에 묻혔다


生景公

생경공


경공을 낳았다. 


-반복하거니와 연대기를 세세히 밝힘은 그 정도로 사실이라는 강조요 그럼에도 여기 나오는 고침, 태침, 구사, 의리 언덕등의 지명이 실존하는지 여부도 가늠할 길 없다 다만 옹땅이라고만.... 

모름지기 봉분이 발견되어야 실존이 확인될 것.... 


景公享國四十年

경공향국십사년


경공이 나라를 14년 다스렸는데


居雍高寢 葬丘里南

거옹고침 장구리남


옹땅 고침에서 살았고 죽어 구리 남쪽에 묻혔다.


生畢公

필공을 낳았다. 



畢公享國三十六年

필공향국삼십육년


필공은 36년간 나라를 다스렸으며 


장차리북


차리 북쪽에 장사되었고


生夷公

생이공


이공을 낳았다. 


夷公享國

이공불향국


이공은 왕이 되어보지 못하고 


 葬左宮

사 장좌궁


죽어서 좌궁에 묻혔고 


生惠公

생혜공


혜공을 낳았다. 


-여기 보면 이공이란 이는 왕도 되어보지 못하고 그저 아들 낳았다 한줄 밖에 없다. 

과연 그는 하찮은 인간일까? 

그런데 왜 사마천은 그 이름을 여기 적을까? 


간단한 이치로 밥을 지으려면 당연한듯 하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야만 되는 것...

풀씨같은 쌀이 밥으로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똥되어 나가기까지 상상치 못할 인연으로 얽히어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것... 


세상은 영웅을 이야기 하지만 그 영웅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거쳐간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夷公은 그저 시황제가 나타나기까지의 과정... 


부속품같은 나사 한 개가 아니라 초정밀 로켓의 열기와 압력을 이기게 하는 중요한 나사.... 

 

귀하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惠公享國十年

혜공향국십년


혜공은 10년간 나라를 다스렸고


(康景). 

장거리(강경)


거리 땅에 묻혔고 


生悼公.

생도공


도공을 낳았다 

 

悼公享國十五年

도공향국십오년


도공은 15년을 다스리고 


葬僖公西

장희공서 


희공 서쪽에 묻혔다


城雍

성옹

옹땅에 성을 축조했고


生剌龔公.

생날공공


날공공을 낳았다. 


剌龔公享國三十四年

날공공향국삼십사년


날공공이 나라를 30년 다스렸고 


葬入里

장입리


입리에 묻혔다. 


生躁公·懷公

생조공 회공


조공과 회공을 낳았다 


其十年 彗星見.

기십년 혜성견


10년 되던 해 혜성이 나타났다. 


躁公享國十四年.

조공향국십사년 


조공은 14년 나라를 다스렸고


居受寢

거수침


수침에 거했고


葬悼公南

장도공남


도공의 남쪽에 장사했고 


其元年 彗星見.

기원년 혜성현


즉위 원년에 혜성이 나타났다. 


懷公從晉

회공종진래


회공은 晉나라에서 돌아왔고 


享國四年

향국사년


4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葬櫟圉氏

장역어씨


역어씨들 땅에 묻혔다


生靈公

생영공


영공을 낳았고 


諸臣圍懷公 懷公自殺.

제신위회공 회공자살


신하들이 회공을 제쳐두자 자살하였고 

 

肅靈公 昭子子也.

숙령공 소자자야


숙령공은 소자의 아들로  


居涇陽

거경양


경수 남녁 뜰에 거점했고


享國十年

향국십년


10년 다스렸고 


葬悼公西

장도공서


도공의 묘 서쪽에 묻혔고 


生簡公

생간공


간공을 낳았다. 


簡公從晉

간공종진래


간공이 晉에서 돌아와 


享國十五年

향국십오년


15년 나라를 다스렸고 


葬僖公西

장희공서


희공묘 서쪽에 묻혔고 


生惠公

생혜공


혜공을 낳았고 


其七年

기칠년 


즉위 7년에 


百姓初帶劍

백성초대검


백성들이 검을 휴대하였다  

 

惠公享國十三年

혜공향국십삼년


혜공이 13년 다스리고 


장능어


능어에 묻혔고 


生出公

생출공


출공을 낳았다 

 

出公享國二年

출공향국이년


출공이 12년 다스리고 


出公自殺 葬雍

출공자살 장옹


자살하여 옹땅에 묻혔다.


. . .

헌공향국이십삼년  장효어  생효공


헌공이 20년 나라를 다스리고 효어에 묻혔으며 효공을 낳았다.

. . . ,
효공향국이십사년  장제어  생혜문공  기십삼년  시도함양


효공은 24년 다스리고 제어에 묻혔고 혜문왕을 낳았으며 처음 함양에 도읍하였다


.  . .

혜문왕향국이십칠년   장공릉  생도무왕


혜문왕이 27년을 다스리고 공릉에 묻혔으며 도무왕을 낳았고

.

도무왕향국사년 장영릉


도무왕은 4년 다스리고 영릉에 묻혔다

. . .

소양왕향국오십육년  장채양  생효문왕


소양왕은 56년 나라를 다스리고 채양에 묻혔으며 효문왕을 낳았다.


孝文王享國一年葬壽生莊襄王.

효문왕향국일년  장수릉  생장양왕


효문왕이 1년 다스리고 수릉에 묻혔고 장양왕을 낳았다. 

 

莊襄王享國三年葬茝陽生始皇帝韋相.

장양왕향국삼년  장채양  생시황제  여불위상


장양왕이 3년 다스리고 채양에 묻혔고 시황제를 낳았고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았다. 


. .

헌공립칠년 초행위시  십년  위호적상오 


헌공 즉위 7년에 처음으로 시장이 생기고 10년 차에 5호를 묶어 호적제를 시행했다. 


. .

효공립십육년  시도리동화


효공 즉위 16년에 한 겨울에 복숭아 배꽃이 활짝 폈다



. . 」.

혜문왕생십구년이립  립이년 초행전  유신생영아왈  '진차왕'


혜문왕이 19살에 왕이 되었는데 즉위 2년 돈을 만들었다. 그 때에 갓난 아이가 '장차 진이 왕이 되리라' 하는 일이 생겼다.


. .

도무공생십구년이립  립삼년 위수적삼일


도무왕이 19에 왕이 되었고 3년째 되는 해에 위수가 3일간 벌겋게 물들었다.


. .

소양왕생십구년이립  립사년 초위전개천맥


소양왕이 19살에 왕이 되고 즉위 4년 소위 농로를 만들었다.


효문왕생오십삼년이립


효문왕이 53살이 되어서야 왕이 되었다


-효문왕은 장양왕의 아버지=시황제의 할아버지로서 53살에 즉위하여 1년 왕노릇 하였다.  


. .

장양왕생삼십이년이립  립이년 취태원지


장양왕은 32세에 왕이 되었고 즉위 2년 태원=소위 중원평야를 얻었다


.

장양왕원년 대사 수선왕공신 시덕후골육 포혜어민  


장양왕이 즉위한 해 대사면령을 내리고 선왕들의 공신들을 상주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렸다.


使 .

동주여제후모진 진사상국불위주지 진입기국 


동주가 제후들과 함께 진을 전복하려했으나 진나라가 재상 여불위로 하여금 평정하도록 하고 그 모든 나라들이 하나로 통일 되었다.


.

진부절기사 이양인지사주군 봉기제사


진나라는 자기 조상제사를 막지않고 양인=농민=양인지=농지를 주나라 군주에 주어 천제를 계속하게 했다.


. . . .

시황향국삼십칠년  장여읍  생이세황제  시황생삼십이년이립

시황제가 37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여읍에 묻혔고 호해황제를 낳았는데 시황제는 13살에 왕이 되었다.


二世皇帝享國三年. 葬宜春. 趙高爲丞相安武侯. 二世生十二年而立. 

이세황제향국삼년  장의춘  조고위승상안무후  이세생십이년이립

 

2세 호해황제는 3년 나라를 다스렸고 의춘에 묻혔으며 조고가 승상으로 제후들을 안정시켰다. 2세 호해황제는 12살에 위에 올랐다. 


右秦襄公至二世 六百一十. 

우진양공지이세 육백일십세 


자랑스런 진 양공으로 부터 2세 호해황제까지 610년을 이었다. 


孝明皇帝十七年十月十五日乙丑  :

효명황제십칠년십월십오일을축 왈: 

 

東漢(後漢) 효명황제 17년 10월15일 을축일에 이르노니;

 

周曆已移 代母秦直其位 呂政殘虐

주력이이 인불대모  진직기위 여정잔학


주나라의 운세가 이미 기울었지만 인(=과일의 씨)가 영글지 못하여=때가 이르지 않아 잔학한 여정(여불위의 아들=진시황)이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였고  


然以諸侯十三 幷兼天下 極情縱欲 養育宗親.

연이제후십삼 병겸천하 극정종욕 양육종친 


 13살 된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여 제 맘대로 종친을 주물러(제후로 파송하지 않고)


三十七年 兵無所 制作政令 施於後王.

삼십칠년 병무소불가 제작정령 시어후왕


37년 재위 기간에 무력에 의지하여 법을 만들어 후대에 전했으니  


蓋得聖人之威 河神授圖 ·狐 ·伐 佐政驅除 距之稱始皇

개즉성인지위 하신수도 거랑 호 답삼 벌 좌정구제 거지칭시황


성인의 지위를 덮어쓰고 하신의 계략을 물려받은듯 랑성과 호성(=노인성:지도자 별)의 가호와 삼벌=서쪽 백호의 기운을 받아 관리들을 채찍질하며 스스로 황제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始皇歿 胡亥極愚 酈山未畢 作阿房 以遂前策云“凡所爲貴有天下者 肆意極欲 大臣至欲罷先君所爲”

시황기몰 호해극우 여산미필 복작아방 이수전책 운 '범소위귀유천하자 사의극욕 대신지욕태선군소위'


시황제가 죽었지만 호해가 멍청하게 ' 천하에 귀한 사람은 맘대로 할수 있는데 대신들이 안따나'하며 시황제 묘 공사도 안끝났는데 아방궁 공사를 서둘렀다. 


誅斯·去疾 任用趙高痛哉言乎人頭畜鳴

주사 거질 임용조고  통재언호  인두축명 


이사와 거질같은 명재상을 죽이고 조고를 재상으로 들이니 말이 아니다 사람 머리로 짐승 울음을 우는 꼴...


伐惡 虛亡 距之得留 殘虐以促期 雖居形便之國 得存

불위불벌악 부독불허망 거지부득류 잔학이촉기 수거형편지국 유부득존


권위를 악을 벌하는데 쓰지 않고 허망한 것을 따르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는 법 잔학함이 시기를 재촉했으니 아무리 지형지세가 좋은 곳이라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적어도 사마천 당대의 관점으로 줄국 정통성은 周나라 다음이 秦이 아닌 漢으로 이어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본다. 또한 잔학하고 이기적인 다스림은 소위 지도자의덕이 아니라는 생각이라 본다. 人頭畜鳴이란 표현 羊頭狗肉처럼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라 보는게 사마천의 지도자 론.... 


子嬰度次得嗣 冠玉冠 佩華紱 車黃屋 從百司 謁七廟.

자영도차득사 관옥관 패화붕 거황옥 종백사 알칠묘 


자영이 법도를 어겨 왕위를 잇고 옥관을 쓰고 화려한 띠를 두르고 황옥거를 타고 관리들을 앞세워 7묘를 참배하였다 


小人乘非位 莫不怳忽失守 偸安日日 獨能長念卻慮 父子作權 近取於戶 之閒 竟誅猾臣 爲君討賊.

소인승비위 막불황홀실수 투안일일 독능장념각려 부자작권 근취어호 유지한 경주활신 위군토적


어린 아이로 오를만한 자리가 아님에도 황망하여 자리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는게 아니라 홀로 신중히 생각하여 아들들과 빈틈을 노려 교활한 간신 조고를 주살하여 군주로서 부하를 처벌하였다. 


高死之後 賓婚未得盡相勞 餐未及下咽 酒未及濡脣 楚兵已屠關中 眞人翔霸上 素車嬰組 奉其符璽 以歸帝者

고사지후 빈혼미득진상로 찬미급하연 주미급유순 초병이시관중 진인상패상 소거영조 봉기부새 이귀제자 


조고를 제거하고 미처 노고를 풀자고 잔치를 열었으나 입에 술잔이 닿기도 전에 초나라 병사들이 관중을 시체로 덮고 진인(도리에 바른 사람=항우)가 들이닥치니 목에 새끼를 매고 옥새와 부절을 초나라 왕에게 주었다.  


鄭伯茅旌鸞刀 嚴王退舍

정백모정란도 엄왕퇴사


정나라 우두머리가 풀 벙거지로 칼을 바치니 초장왕이 비켜줌과 같아  


河決不可復壅 魚爛不可復全.

하결불가복옹 어란불가복전 


해자를 메워 길을 내준 꼴이니 물위를 뛰노는 물고기의 반짝임을 다시 못 보는 것과 같다. 


賈誼·司馬遷曰 : “向使嬰有庸主之才 僅得中佐 山東雖亂 云秦之地可全而有 宗廟之祀未當絶也.” 

가의 사마천왈 :'향사영유용주지재 근득중좌 산동수란 운진지지가전이유 종묘지사미상절야'


가의(한나라 시인)와 사마천인 이르길 : '자영이 쓸만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고 제대로 보좌를 얻었다면 산동의 그 누가 란을 일으키든 진나라 땅은 온전히 지켰을 것이요 종묘의 향불이 꺼지지 않았을텐데' 했다만... 


秦之積衰 天下土崩瓦解 雖有周旦之材 無所復陳其巧 而以責一日之孤 誤哉

진지적쇠 천하토붕와해 수유주단지재 무소복진기교 이이책일일지고 오재


진의 패인은 뿌리 깊은 것이라 천하가 무너짐에 비록 주나라 단이 살아돌아와도 어찌할 수 없으니, 이는 단명한 임금의 과오라  


俗傳 秦始皇起罪惡 胡亥極 得其理矣.

속전 진시황기죄악 호해극 득기리의 


세속에 전하길 진시황이 죄악을 일으키고 호해가 심화하였다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다. 


復責小子 秦地可全 所謂不通時變者也.

복책소자 진지가전 소위불통시변자야 


어리지 않았다면 진나라가 망하지 않을수 있었을 거라는 말은 세상 변화의 이치를 모르는 우매한 소리다  


紀季以 春秋不名

기계이휴 춘추불명


휴땅을 제나라에 넘긴 기계가 춘추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듯  


吾讀秦紀 至於子嬰車裂趙高 未嘗不健其決 憐其志

오독진기 지어자영거열조고 미상불건기결 린기지


내가 조고를 찢어죽인 자영을 다룬 진나라 역사를 읽어보니 자영이 결기가 있고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만 


嬰死生之義備矣.

영사생지의비의


자영의 기록은 바로 준비를 가르치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 이는 사마천이 평한 자영의 지도력으로 

자영은 왕으로서의 능력인 결단과 의지는 갖췄으나  

나라의 내실을 다지기 보다 허세를 세운 호해황제의 잘못이 진 나라를 망하게 한 원인이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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