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文皇帝 高祖中子也.
효문황제 고조중자야
효문황제 劉恆은 유방의 가운데 아들이다
高祖十一年春 已破陳豨軍 定代地 立爲代王 都中都.
고조십일년춘 이파진희군 정대지 입위대왕 도중도
유방 치세 11년 봄 진희군을 격파하고 대지역에서 왕으로 서고 중도에 도읍했다
太后薄氏子.
태후박씨자
유방의 부인 박씨의 아들이다.
卽位十七年 高后八年七月 高后崩.
즉위십칠년 고후팔년칠월 고후붕
17년 다스리는 동안 여태후가 치세 8년 7월에 죽으니
九月 諸呂呂産等欲爲亂 以危劉氏 大臣共誅之 謀召立代王 事在呂后語中.
구월 제여여산등욕위란 이위유씨 대신공주지 모소립대왕 사재여후어중
9월에 여씨들이 여산과 반란을 일으키려하니 유씨들에겐 위험이라 대신들이 대 지역의 왕이던 유항을 천자로 세우려 했다. 이는 여태후본기에 기록되어있다.
宋昌
丞相陳平、太尉周勃等使人迎代王.
승상진평 태위주발등사인영대왕
승상 진평과 태위 주발등이 대왕=유항을 영접하매
代王問左右郎中令張武等.
대왕문좌우랑중령장무등
유항이 좌우 대신과 낭중령 장무등에게 물으니
張武等議曰:「漢大臣皆故高帝時大將 習兵 多謀詐 此其屬意非止此也 特畏高帝、呂太后威耳. 今已誅諸呂 新啑血京師 此以迎大王爲名 實不可信. 願大王稱疾毋往 以觀其變.」
장무등의왈 ;한대신개고고제시대장 습병 다모사 차기속의비지차야 특외고제 여태후위이 금이주제여 신 삽혈경사 차이영대왕위명 실불가신 원대왕칭병무왕 이관기변'
장무등이 답하길 '한나라 대신들은 유방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장수들이니 쌈질의 대가로 모략도 잘하니 지금 이 초청은 속내가 따로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유방 여태후의 권위를 두려워 할 뿐입니다. 이제 여씨들을 제거하고 수도의 중앙을 피바다로 만들었으니 지금 대나라 왕=유항을 부르는 것은 명분일 뿐 속내는 믿을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유항께서는 병을 핑계로 가지마시고 추이를 보십시오'하니라
中尉宋昌進曰:「群臣之議皆非也. 夫秦失其政 諸侯豪桀並起 人人自以爲得之者以萬數 然卒踐天子之位者 劉氏也 天下絶望 一矣.
중위송창진왈 '군신지의개비야 부진실기정 제후호걸병기 인인자이위득지자이만수 연졸천천자지위자 유씨야 천하절망 일의
중위인 송창이 나와 말하길 '대신 여러분의 토론은 틀렸읍니다. 대저 진나라가 그 치세를 잃자 호걸들 마다 서로 일어나 제가끔 왕권을 쥘거라는 이가 하 많았읍니다만 결국 그 자리 차지한 사람은 유씨요 다른 이들은 뜻을 접었으니 그게 첫 번째 이유고
高帝封王子弟 地犬牙相制 此所謂盤石之宗也 天下服其彊 二矣.
고제봉왕자제 지견아상제 차소위반석지종야 천하복기강 이의
유방이 왕가를 제후로 봉하여 개 이빨이 물리듯 단단히 했으니 이를 단단함의 으뜸이라 천하가 모두 복종하니 두 번째요
漢興 除秦苛政 約法令 施德惠 人人自安 難動搖 三矣.
한흥 제진가정 약법령 시덕혜 인인자안 난공요 삼의
한나라가 일어나 진나라의 가혹한 정치를 없애고 덕과 은혜를 베푸니 사람마다 편안하니 동요가 일어나기 힘든 것이 세 번째입니다.
夫以呂太后之嚴 立諸呂爲三王 擅權專制 然而太尉以一節入北軍 一呼士皆左袒 爲劉氏 叛諸呂 卒以滅之. 此乃天授 非人力也. 今大臣雖欲爲變 百姓弗爲使 其黨寧能專一邪? 方今內有朱虛、東牟之親 外畏吳、楚、淮南、琅邪、齊、代之彊. 方今高帝子獨淮南王與大王 大王又長 賢聖仁孝 聞於天下 故大臣因天下之心而欲迎立大王 大王勿疑也.」
부이여태후지엄 입제여삼왕 찬권전제 연이태위이일절입북군 일호개좌단 위유씨 반자여 졸이멸지 차내천수 비인력야 금대신수욕위변 백성불위사 기당녕능전일사 방금내유주허 동모지친 외외오 초 회남 랑야 제 대지강 방금고제독회남왕여대왕 대왕우장 현성인효 문ㅇ천하 고대신인천하지심이욕용입대왕 대왕물의야'
대저 여태후가 위엄으로 여씨를 왕으로 셋이나 세워 전권을 휘둘렀지만 태위가 지휘봉 하나로 북군에게 한 마디에 모두 왼쪽 어깨를 보이며 유방에 충성을 보이고 여씨들에 반대하고 종래 여씨를 몰아냈읍니다. 이는 하늘이 주신 것이지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지금 대신들이 반란을 도모하나 지금 대신들이 변란을 일으키려 해도 백성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니 당론이 하나되기 어려운데 지금 안으로는 주허후와 동모후 같은 유씨 종친들이 있고, 밖으로는 강력한 오, 초, 회남, 낭양, 제, 대나라가 유씨 천하입니다. 지금 유방의 아들로는 회남왕과 대왕뿐인데, 대왕께서 나이가 많으신 데다 어질고 인자하고 효성스러움으로 천하에 알려져 있기에 대신들이 천하의 인심에 따라 대왕을 맞이하려는 것이니 대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하더라
대왕보태후계지 유여미정
유항이 태후에게 알리고 태후의 의중을 기다렸으나 뭐 하나 결정되질 않았다.
卜之龜 卦兆得大橫.
복지귀 괘조득대횡
거북 점을 치니 괘가 크게 횡으로 갈라지니
占曰:「大橫庚庚 余爲天王 夏啓以光.」
점왈 '대횡경경 여위천왕 하계이광'
점사 이르길 '대횡은 경괘가 이중으로 나온 것으로 천왕의 괘이니 하나라 계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하더라
代王曰:「寡人固已爲王矣 又何王?」
대왕왈 '과인고이위왕의 우하왕'
유항이 묻길 '내 이미 왕인데 또 무슨 왕이란 말인가'하니
卜人曰:「所謂天王者乃天子.」
복인왈 '소위천왕자내천자'
점사 이르길 '소위 천왕은 천자를 말하는 겁니다'하더라
於是代王乃遣太后弟薄昭往見絳侯 絳侯等具爲昭言所以迎立王意.
어시대왕내견태후재박소왕견강후 강후등구위소언소이영립왕의
그리하여 유항이 외삼촌 박소를 보내 강후를 만나게 하니 강후등이 모두 유항을 왕으로 세우려한다 하더라
薄昭還報曰:「信矣 毋可疑者.」
박소환보왈 '신의 무가의자'
박소가 돌아와 '믿으소서 의심할 것 없읍니다' 하더라
代王乃笑謂宋昌曰:「果如公言.」
대왕내소위송창왈 '과여공언'
유항이 웃으며 송창에게 이르길 '역시 그대의 말대로구려'하며
乃命宋昌參乘 張武等六人乘傳詣長安.
내명송창참승 장무등육인승전지장안
송창에게 왕의 수레를 같이 타게하고 장무등 6사람은 다른 수레로 장안으로 떠났다.
至高陵休止 而使宋昌先馳之長安觀變.
지고릉휴지 이사송창선치지장안관변
고릉에서 잠시 쉬면서 송창에게 먼저 장안의 기미를 보고오라 하였다
-이 이야기는 효문제의 등극 과정에서의 송창의 역할을 기록한 장이다.
昌至渭橋 丞相以下皆迎.
창지위교 승상이하개영
송창이 위교에 도착하니 승상이하 모두 나와 맞이하더라
宋昌還報.
송창환보
송창이 돌아와 그리 보고하니
代王馳至渭橋 群臣拜謁稱臣.
대왕치지위교 군신배알칭신
유항이 말을 달려 위교에 다다르니 군신들이 신하의 예를 갖추더라
代王下車拜.
대왕하거배
유항이 수레에서 내려 인사하니
太尉勃進曰:「願請閒言.」
태위발진왈 '원청한언'
태위 주발이 앞으로 나와 말하길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읍니다'하니
宋昌曰:「所言公 公言之. 所言私 王者不受私.」
송창왈 '소언공 공언지 소언사 왕자불수사'
송창이 말하길 '공적인 일이면 공적으로 사적인 말이면 왕께선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하니
太尉乃跪上天子璽符.
태위내궤상천자새부
태위가 천자의 옥새와 부를 올리더라
代王謝曰:「至代邸而議之.」
대왕사왈 '지대저이의지'
유항이 '내 저택에서 의론합시다'하고
遂馳入代邸.
수치입대저
대나라 왕의 저택으로 바삐 갔다
群臣從至.
군신종지
군신들이 모두 따르니
丞相陳平、太尉周勃、大將軍陳武、御史大夫張蒼、宗正劉郢、朱虛侯劉章、東牟侯劉興居、典客劉揭皆再拜言曰:「子弘等皆非孝惠帝子 不當奉宗廟. 臣謹請(與)陰安侯列侯頃王后與琅邪王、宗室、大臣、列侯、吏二千石議曰:『大王高帝長子 宜爲高帝嗣.』願大王卽天子位.」
승상진평 태위주발 대장군진무 어사대부장창 종정유영 주허후유장 동모후유흥거 전객유게개재배언왈 '자홍등개비효혜제자 부당봉종묘 신근청음안위열후경왕우여낭사왕 종실 대신 열후 이이천석의왈 "대왕고제장자 의위고제사" 원대왕즉천자위'
승상 진평, 태위 주발, 대장군 진무, 어사대부 장창, 종정 유영, 주허후 유장, 동모후 유흥거, 전객 유게등 모두가 다시 절하며 말 하길 '자홍등이 모두 효혜제의 자녀가 아니니 종묘제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저와 음안후, 열후, 경왕후와 낭사왕 종실 대신 열후 그리고 2천석 이상 부자들이 모여 의론하길 "유항 만이 유방의 적자이니 유방의 후사가 됨이 옳다"했으니 원컨대 대왕께서 천자가 되어 주십시오'하더라
代王曰:「奉高帝宗廟 重事也. 寡人不佞 不足以稱宗廟. 願請楚王計宜者 寡人不敢當.」
대왕왈 '봉고제종묘 중사야 과인불녕 부족이칭종묘 원청초왕계의자 과인불감당'
유항이 답하길 '종묘제사권은 중차대한 문제로 제가 합당치 못하니 종묘제사를 감당 못하니 초나라 왕과 상의하길 바랍니다'하더라
群臣皆伏固請.
군신개복고청
군신들 모두 엎드려 청하니
代王西鄕讓者三 南鄕讓者再.
대왕서향양자삼 남향양자재
유항이 서쪽으로 세 번 남쪽으로 두 번 사양하더라
丞相平等皆曰:「臣伏計之 大王奉高帝宗廟最宜稱 雖天下諸侯萬民以爲宜. 臣等爲宗廟社稷計 不敢忽. 願大王幸聽臣等. 臣謹奉天子璽符再拜上.」
승상평등개왈 '신복계지 대왕봉고재종묘최의칭 수천하제후만민이위의 신등종묘사직계 불감홀 원대왕행청신등 신근봉천자새부재배상'
승상진평등이 모두 말하길 '저희가 다시 생각해도 대왕께서 종묘제사에 가장 합당하지 제후 누구도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가 종묘사직 제사건을 홀수히 하지 못하니 대왕께서 저희 말을 기뻐 받아들여주시고 옥새와 부를 받아주시길 다시 청합니다'하니
代王曰:「宗室將相王列侯以爲莫宜寡人 寡人不敢辭.」遂卽天子位.
대왕왈 '종실장상왕열후이위막의과인 과인불감사' 수즉천자위
유항이 답하길 '유씨 종실과 장상열후들이 내가 합당하다 하니 더는 사양 못하겠고 천자위를 받아들이더라
群臣以禮次侍.
군신이례차대
군신들이 차례로 예를 올리고
乃使太僕嬰與東牟侯興居淸宮 奉天子法駕 迎于代邸.
내사태복영여동모후흥거청궁 봉천자법가 영우대저
태복 영과 동모후 유흥거가 궁을 청소하고 천자의 수레로 대나라 왕 저택으로 마중왔다.
皇帝卽日夕入未央宮.
황제즉일석입미앙궁
황제가 그날 저녁으로 미앙궁에 들고
乃夜拜宋昌爲衛將軍 鎭撫南北軍.
내야배송창위위장군 진무남북군
그날 밤으로 송창을 남북군을 총괄하는 위장군으로 임명하고
以張武爲郎中令 行殿中.
이장무위낭중령 행전중
장무는 낭중령으로 궁전 수비를 통괄하도록 하고
還坐前殿.
환좌전전
전전에 와서
於是夜下詔書曰:「閒者諸呂用事擅權 謀爲大逆 欲以危劉氏宗廟 賴將相列侯宗室大臣誅之 皆伏其辜. 朕初卽位 其赦天下 賜民爵一級 女子百戶牛酒 酺五日.」
어시야하소서왈 '한자제여용사찬권 모위재역 욕이위유씨종묘 뢰장상열후종실대신주지 개복기고 짐초즉위 기사천하 사민작일급 여자백호우유 포오일'
교서를 내려 '여씨 일파가 정권을 찬탈하여 유씨 종묘를 위태롭게 했으나 장상 열후 종실 대신들이 그들을 주벌하여 모두 죄를 물었다. 이제 짐이 즉위했으니 천하에 사면령을 내려 백성들을 1계급씩 올리고 100호 마다 여자에겐 우유등을 내려 5일간 잔치를 열어주라'했다
孝文皇帝元年十月庚戌 徙立故琅邪王澤爲燕王.
효문황제원년십월경술 사립고낭야왕택위연왕
효문황제 원년 10월 경술일에 낭야왕 유택을 연나라 왕으로 옮기고
辛亥 皇帝卽阼 謁高廟.
신해 황제즉조 알고묘
신해일에 황제가 종묘를 배알하였다.
右丞相平徙爲左丞相 太尉勃爲右丞相 大將軍灌嬰爲太尉.
우승상평사위좌승상 태위발위우승상 대장군관영위태위
우승상 진평은 좌승상으로 주발은 우승상으로 대장군 관영은 태위로 임명하였다
諸呂所奪齊楚故地 皆復與之.
제여소탈제초고지 개복여지
여씨들이 차지했던 제나라 초나라의 옛 땅을 모두 회복했다.
壬子 遣車騎將軍薄昭迎皇太后于代.
임자 견거기장군박소영황태후우대
임자일 기병대장군 박소를 대지역에 있는 황후를 마중하러 보냈다.
皇帝曰:「呂産自置爲相國 呂祿爲上將軍 擅矯遣灌將軍嬰將兵擊齊 欲代劉氏 嬰留滎陽弗擊 與諸侯合謀以誅呂氏. 呂産欲爲不善 丞相陳平與太尉周勃謀奪呂産等軍. 朱虛侯劉章首先捕呂産等. 太尉身率襄平侯通持節承詔入北軍. 典客劉揭身奪趙王呂祿印. 益封太尉勃萬戶 賜金五千斤. 丞相陳平、灌將軍嬰邑各三千戶 金二千斤. 朱虛侯劉章、襄平侯通、東牟侯劉興居邑各二千戶 金千斤. 封典客揭爲陽信侯 賜金千斤.」
황제왈 '여산자치위상국 여록위상장군 찬교견관장군영장병격제 욕재유씨 영류형양불격 여제후합모이주여씨 여산욕위불선 승상진평여태위주발모탈여산등군 주허후유장수선포여산등 태위신솔양평후지절승소입북군 전객유게신탈조왕여록인 익봉태위주발만호 사금오천근 승상진평 관장군영읍각삼천호 금이천근 주허후유장 양평후통 동모후유흥거읍각이천호 금천근 봉전객게위양신후 사금천근'
황제가 이르길 '여산이 스스로 상국이되고 여록을 상장군으로 세웠고 관영장군을 제나라를 침공하게 하며 유씨를 갈아 엎으려 한 것 관영장군은 형양에 머물며 제후들과 오히려 여씨 무리를 주벌했다. 여산의 의도가 악하니 승상 진평과 태위 주발이 여산의 군사들을 빼앗았고 주허후 유장이 솔선하여 여산을 체포하였으며 태위 주발은 양평후와 함께 사령장을 들고 북군을 되 찾았으며 전객 유게는 조나라 왕이던 여록의 옥새를 빼앗았으니 태위 주발에게는 10000호의 녹읍과 황금 5000근을, 승장 진평과 관영장군에게는 각각 3000호의 녹읍과 황금 2000근을, 주허후 유장과 양평후 유통 동모후 유흥거에게 각 2000호의 녹읍과 금 1000근을 전객 유게는 양신후로 봉하고 금 1000근을 하사하노라'하였다.
-소위 논공행상을 통해 유방의 적통을 밝히는 장면....
十二月 上曰:「法者 治之正也 所以禁暴而率善人也. 今犯法已論 而使毋罪之父母妻子同産坐之 及爲收帑 朕甚不取. 其議之.」
십이월 상왈 '법자 치지정야 소이금폭이솔선인야 금범법이론 이사무죄지부모처자동산좌지 급위수탕 짐김불취 기의지'
12월 초 효문제 이르길 '법이란 바로잡는 일이요 폭력을 금하고 선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법을 따진 뒤 부모처자등을 연좌제로 묶어 자손까지 벌하는데 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를 논의토록 하라'하니
有司皆曰:「民不能自治 故爲法以禁之. 相坐坐收 所以累其心 使重犯法 所從來遠矣. 如故便.」
유사개왈 '민불능자치 고위법이근지 상좌좌수 소이누기심 사중범법 소종래원의 여고편'
모든 관리들이 말하길 '백성들은 스스로 자중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법으로 금하는 것이고 연좌제는 마음에 부담을 주어 범법을 어렵게하는 것으로 그 연원이 오래된 것이니 그 대로 둠이 편할겁니다'하더라
上曰:「朕聞法正則民慤 罪當則民從. 且夫牧民而導之善者 吏也. 其旣不能導 又以不正之法罪之 是反害於民爲暴者也. 何以禁之? 朕未見其便 其孰計之.」
상왈 '짐문법정작민각 죄당직민종 차부목민이도지선자 이야 기기불능도 우이부정지법죄지 시반해어민위폭자야 하이금지 짐미견기편 기숙계지'
효문제 왈 '내 듣자니 법이 바르면 백성들이 깨우치고 죄를 묻는게 정당하다면 백성이 따른다 했소 또한 목만관이란 백성들을 선하도록 이끄는 관리요, 그리 이끌 능력도 없고 법을 부정하게 집행하면 백성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고 또다른 폭력이니 이는 어찌 막겠소 내 보기엔 그를 알지 못하니 깊이 새겨봐주시오'하니
有司皆曰:「陛下加大惠 德甚盛 非臣等所及也. 請奉詔書 除收帑諸相坐律令.
유사개왈 '폐하가대혜 덕심성 비신등소급야 청봉소서 제수탕상좌율령'
모든 관리들이 '폐하의 베푸는 은혜와 덕이 크고 크십니다 소신들은 감히 이를수 없는 경지이니 조서를 받들어 연좌죄를 폐지하도록 하겠읍니다'하더라
正月 有司言曰:「蚤建太子 所以尊宗廟. 請立太子.」
정월 유사언왈 '조건태자 소이존종묘 청입태지'
정월에 관리가 말하길 '서둘러 태자 옹립 하시지요 종묘를 존중하는 것이 될것이니 태자 간택을 청원드립니다'하더라
上曰:「朕旣不德 上帝神明未歆享 天下人民未有嗛志. 今縱不能博求天下賢聖有德之人而禪天下焉 而曰豫建太子 是重吾不德也. 謂天下何? 其安之.」
상왈 '짐기부덕 상제신명미흠향 천하인민미협지 금종불능박구천하현성유덕지인이선천하언 이일예건태자 시중오부덕야 위천하하 기안지'
임금이 답하길 '내 이미 부덕하여 천지신명이 내 제사를 받으시지 않고 천하 백성들이 내 다스림을 좋아하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천하에 현인과 귀인들을 널리 구하여 천하를 보듬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태자부터 옹립하자니 그런 다면 내 부덕이 더 할 것이요 세상이 어찌 편안해 지겠나'하더라
有司曰:「豫建太子 所以重宗廟社稷 不忘天下也.」
유사왈 '예건태자 소이중종묘사직 불망천하'
'태자를 세우는 것이야 말로 종묘사직을 굳건히 하고 천하를 안정하는 일입니다'하더라
上曰:「楚王 季父也 春秋高 閱天下之義理多矣 明於國家之大體. 吳王於朕兄也 惠仁以好德. 淮南王 弟也 秉德以陪朕. 豈爲不豫哉! 諸侯王宗室昆弟有功臣 多賢及有德義者 若擧有德以陪朕之不能終 是社稷之靈 天下之福也. 今不選擧焉 而曰必子 人其以朕爲忘賢有德者而專於子 非所以憂天下也. 朕甚不取也.」
상왈 '초왕 계부야 춘추고 열천하지의리다의 명어국가지대례 오왕어짐형야 혜인이호덕 화남왕 제야 병덕이배짐 이위불예재 제후왕종실곤제유공신 다현급유덕의자 약거유덕이배짐지불능종 시사직지령 천하지복야 금불선거언 이왈필자 인기이짐위망현유덕자이전어자 비소이우천하야 짐심불취야'
임그이 답하길 '초나라 왕이신 작은 아버지는 연세도 드시고 천하의 의리를 이미 잘 아시고 국가의 큰 행사를 잘 아시며 오왕은 내게 형이시며 베푸는 덕이 크시고 회남왕은 내겐 아우 뻘이나 덕스러움으로 나를 도우는데 어찌 이 들을 먼저 살피지 않을 수 있나 이리 제후와 왕실에 공신들이 여럿이요 덕도 깊은데 이 분들을 들어 써도 모자르지 않을 정도니 사직의 조상이 돕는 것이요 나라엔 복이라. 이 분들 가운데 고르는게 아니고 반드시 아들이어야 한다니 저런 인재들을 넘어 아들을 고른다면 찬히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요 난 그러지 않으련다'하니
有司皆固請曰:「古者殷周有國 治安皆千餘歲 古之有天下者莫長焉 用此道也. 立嗣必子 所從來遠矣. 高帝親率士大夫 始平天下 建諸侯 爲帝者太祖. 諸侯王及列侯始受國者皆亦爲其國祖. 子孫繼嗣 世世弗絶 天下之大義也 故高帝設之以撫海內. 今釋宜建而更選於諸侯及宗室 非高帝之志也. 更議不宜. 子某最長 純厚慈仁 請建以爲太子.」
유사개고청왈 '고자은주유국 피안개천여세 고지유천하자막장언 용차도야 입사필자 소종래원의 고재친솔사대부 시평천하건제후 위제자태조 제후왕급열후시수굿자걔역위기국조 자손계사 세세부절 천하지대의 고고제설지이무해내 금석의건이경선제후급종실비고제지지야 경의불의 자모최장 순후자인 청건이위태자'
관리들이 모두 간청하길 '옛날 은나라 주나라가 무리를 1000여년을 다스렸는데 옛날에도 위대한 이들이 없어서 아니고 이리 태자를 두어서 입니다. 아들을 태자로 세움은 오랜 전통이요 유방께서 친히 사대부를 이끌고 천하를 통일하고 제후들을 두어 태조가 되시었으니 그리 분봉된 제후들은 개조를 모시는 법이니 아들로 후사를 이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 천하의 바른 도리니 유방께서도 직접 나라를 다스리신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제후들 중 태자를 고르는 건 유방의 뜻과 다르니 재론할 여지가 없으니 아들 모가 나이도 많고 사람이 후덕하니 태자로 세우십시요'하더라
上乃許之.
임금이 드디어 그러마 하고
임금이 드디어 그러마 하고
因賜天下民當代父後者爵各一級 封將軍薄昭爲軹侯.
인사천하민장대부후자작각일급 봉장군박소위지후
인하여 백성들중 아비를 잇는 아들들을 1급 작위를 올리고 장군 박소를 지후로 봉하였다.
三月 有司請立皇后.
삼월 유사청립황후
3월엔 황후를 고르자 하니
薄太后曰:「諸侯皆同姓 立太子母爲皇后.」
박태후왈 '제후개동성 립태자모위황후'
박태후-효문제의 생모 왈... '모든 제후가 유씨이니 태자의 어미를 황후로 정하면 된다'하니//
皇后姓竇氏.
황후성두씨
두씨가 황후가 되더라
上爲立后故 賜天下寡孤獨窮困及年八十已上孤兒九歲已下布帛米肉各有數.
상위림후고 사천하 환고독궁곤년팔십이상고아구세이하포금미육각유수
황후를 정하고 천하에 홀아비 과부등 어려운 이들 중 80이상인 자들과 9살 이하 고아들에게 일정수의 옷과 쌀 그리고 고기를 내려주었다.
上從代來 初卽位 施德惠天下 塡撫諸侯四夷皆洽驩 乃循從代來功臣.
상종대래 초즉위 시덕혜천하 진무제후사이개흡환 내순종대래공신
왕이 대지역으로 부터 와서 제위에 올라 천하에 덕을 베풀고 오랑캐에 이르기 까지 잘 다스리니 대에서 함께온 이들을 공신으로 인정했다
上曰:「方大臣之誅諸呂迎朕 朕狐疑 皆止朕 唯中尉宋昌勸朕 朕以得保奉宗廟. 已尊昌爲衛將軍 其封昌爲壯武侯. 諸從朕六人 官皆至九卿.」
상왈 '방대신지주제여영짐 짐고의 개지짐 유중위송창권짐 짐이득보봉종묘 이존창위위장군 기봉창위장무후 제종짐율인 관개지구경'
임금이 말하길 '대신들이 여씨들을 토벌하고 짐을 맞이하려 했을 때 짐은 의심했고 모두가 짐을 말렸다. 오로지 중위 송창만이 짐에게 권하여 짐이 종묘를 지키고 받들 수 있었다. 송창을 위장군으로 높였지만 그를 다시 장무후(壯武侯)에 봉한다. 짐을 따른 6인은 모두 관직이 9경에 이르게 하라'라고 했다.
上曰:「列侯從高帝入蜀、漢中者六十八人皆益封各三百戶 故吏二千石以上從高帝潁川守尊等十人食邑六百戶 淮陽守申徒嘉等十人五百戶 衛尉定等十人四百戶. 封淮南王舅父趙兼爲周陽侯 齊王舅父駟鈞爲淸郭侯.」
상왈 '열후종고제입촉 한중자육십팔인개익봉각삼백호 고리이천석이상종고제영천수존등십인식읍육백호 화암수신도가등십인호백호 위위정등십인사백호 봉회남왕구부조병위주양후 제왕구부사균위청곽후'
또 말하길 '제후들 중 고제=유방을 따라 촉(蜀)과 한중(漢中)으로 들어간 68인은 모두 각각 300호를 더해주고, 2천 석 이상의 관리들로서 고제를 따른 영천(潁川) 군수 존(尊) 등 10인은 식읍 600호, 회양(淮陽) 군수 신도가(申徒嘉) 등 10인에게는 500호, 위위(衛尉) 정(定) 등 10인에게는 400호를 더하라. 회남왕의 외숙 조병(趙秉)을 주양후(周陽侯)에, 제왕의 외숙 사균(駟鈞)을 청곽후(淸郭侯)에 봉하라.'하니
秋 封故常山丞相蔡兼爲樊侯.
추 봉고상산승상채겸위번후
가을 상산왕이며 승상이던 채겸을 번후로 삼으니
人或說右丞相曰:「君本誅諸呂 迎代王 今又矜其功 受上賞 處尊位 禍且及身.」
인혹설우승상왈 '군본주제여 영대왕 금우긍기공 수상상 처존위 화차급신'
어떤 사람이 우승상 주발에게 이르길 '지금 승상은 여씨 일파를 몰아내고 대지역 왕이던 효문제를 맞아들인 공으로 임금의 상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화가 미칠 겁니다'하니
右丞相勃乃謝病免罷 左丞相平專爲丞相.
우승상발내사병면태 좌승상평전위승상
주발이 우승상 자리를 병을 핑계로 놓아 버리니 좌승상 진평 홀로 승상노릇 하더라....
二年十月 丞相平卒 復以絳侯勃爲丞相.
이년시월 승상평졸 복이강후발위승상
2년 10월 승상 진평이 죽으니 주발을 다시 승상으로 불렀고
上曰:「朕聞古者諸侯建國千餘 各守其地 以時入貢 民不勞苦 上下驩欣 靡有遺德. 今列侯多居長安 邑遠 吏卒給輸費苦 而列侯亦無由敎馴其民. 其令列侯之國 爲吏及詔所止者 遣太子.」
상왈 '짐문고자제후건국천여 각수기지 이시입공 민불노고 상하향흠 미유유덕 금열후다거장안 이졸급수비고 이열후역무유교훈기민 기영열후지구 위리습소소지자 견태자'
임금이 말하길 '내 듣기론 각기 나라를 가진 지도자가 많았지만 자기 땅을 지키며 다스리니 백성들도 덜 수고로웠고 서로 소통되니 덕스러웠다. 지금 낳은 제후들이 장안에 머무니 영지는 멀고 그 비용을 보내오는데 수고롭고 지도자의 영향력이 영지에 미치지 못하니 마땅히 하릴없는 제후들은 영지로 돌아가고 태자들만 남겨라'하였다.
十一月晦 日有食之.
십일월매 일유식지
11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고
十二月望 日又食.
십이월망 일우식
12월 보름 또 일식이 생기니
上曰:「朕聞之 天生蒸民 爲之置君以養治之. 人主不德 布政不均 則天示之以菑 以誡不治. 乃十一月晦 日有食之 適見于天 菑孰大焉! 朕獲保宗廟 以微眇之身託于兆民君王之上 天下治亂 在朕一人 唯二三執政猶吾股肱也. 朕下不能理育群生 上以累三光之明 其不德大矣 令至. 其悉思朕之過失 及知見思之所不及 匃以告朕. 及擧賢良方正能直言極諫者 以匡朕之不逮. 因各飭其任職 務省繇費以便民. 朕旣不能遠德 故憪然念外人之有非 是以設備未息. 今縱不能罷邊屯戍 而又飭兵厚衛 其罷衛將軍軍. 太僕見馬遺財足 餘皆以給傳置.」
상왈 '짐문지 천생증민 위지치군이양치지 인주부덕 포정불균 즉천시이치 이계불치 내십일월매 일유식지 치수대언 짐획보종묘 이미묘지신탁우조민군왕지상 천하치란 재짐일인 유이삼수정유오고굉야 짐하불능이육군생 상이루삼광지명 기부덕대의 금지 기실사짐지가실 급지견사지소불급 개이고짐급거량방정능직언극간자 이광짐지부체 인각칙기임직 무성요비이편민 짐기불능원덕 고한연념외인지유비 시이설비미식 금종불능태변둔술 이우칙병후위기내위장군군 태복견마유재족 여개이급전치'
임금이 말하길 '내 듣기론 하늘이 백성을 내고 지도자를 두어 다스리게 하셨는데 지도자가 부족하여 고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하늘이 다스리는 법을 보여 통치를 경계하는데 11월 말에 일식이 있어 하늘이 다스림을 보여준 것이니 내 종묘를 보호하고 억조창생을 다스릴 책임을 가진 바 천하가 어지러워 짐은 내 수족이 누구라서 아닌 내 탓이니 내가 백성을 살피지 못하고 위로 해 달 별과 같은 덕을 갖추지 못함을 꾸짖은 것이다. 그 모드 왕인 나의 잘못이요 생각이 모자란 탓이니 그를 내게 알려주고 천하 모든 인재들이 내게 직접 간하여 내 게으름을 고칠수 있게 하라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백성들을 편케하고 내 덕이 미치지 못한다고 다른 이들의 잘못이라 보지 말고 이는 내 대비가 튼튼하지 못함이라 지금 변방 수비를 늦추지 못하니 국왕 수비대를 해산하고 태복은 경비를 줄여 남는 모두를 필요한 곳에 나눠주라'하였다
正月 上曰:「農 天下之本 其開籍田 朕親率耕 以給宗廟粢盛.」
정월 상왈 '농 천하지본 기개적전 짐친솔경 이급종묘자성'
정월에 임금이 말하길 '농사란 천하 기본이니 적전(=종묘 제사을 위한 토지)을 만들어 내 직접 농사지어 종묘의 제물을 드리겠다'하고
三月 有司請立皇子爲諸侯王.
삼월 유사청립황자위제후왕
3월 관리의 청으로 왕자들을 영지를 주어 제후 삼으니
上曰:「趙幽王幽死 朕甚憐之 已立其長子遂爲趙王. 遂弟辟彊及齊悼惠王子朱虛侯章、東牟侯興居有功 可王.
상왈 '조유왕유사 짐심린지 이립기장자수위조왕 수제벽강급제도혜왕자주허후장 동모후흥거유공 가왕'
임금이 '조 유왕(幽王)은 감금되었다 죽었으니 그를 불쌍히 여겨 그 장자 수(遂)를 조왕으로 세운 바 있다. 수의 동생 벽강(辟彊)과 제 도혜왕(悼惠王)의 아들 주허후 유장과 동모후 유흥거는 공이 있어 왕이 될 만하다'라 했다.
乃立趙幽王少子辟彊爲河閒王 以齊劇郡立朱虛侯爲城陽王 立東牟侯爲濟北王 皇子武爲代王 子參爲太原王 子揖爲梁王.
내립조유왕소자벽강위하간왕 이제극군립주허후위성양왕 립동모후위제북왕 황자무위대왕 자삼위태원왕 자읍위양왕
이에 조 유왕의 작은 아들 벽강을 하간왕으로 삼고, 제의 극군을 주허후 유장에게 주어 성양왕으로 세우고, 동모후를 제북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황자 무는 대왕, 삼은 태원왕, 읍은 양왕이 되었다.
上曰:「古之治天下 朝有進善之旌 誹謗之木 所以通治道而來諫者. 今法有誹謗妖言之罪 是使衆臣不敢盡情 而上無由聞過失也. 將何以來遠方之賢良? 其除之. 民或祝詛上以相約結而後相謾 吏以爲大逆 其有他言 而吏又以爲誹謗. 此細民之愚無知抵死 朕甚不取. 自今以來 有犯此者勿聽治.」
상왈 '고지치천하 조유진선지정 비방지목 소지통치도이래간자 금법유비방요언지죄 시사중신불감진청 이상무유문과실야 장하이래원방지현량 기제지 민록축저상이상약결이후상만리이위대역 기유타언 이리우이위비방 차세민지우무지저사 짐심불취 자금이래 우범차자물청치'
'옛날 천하를 다스릴 때 조정에는 좋은 말과 비망을 올리기 위한 깃발과 나무가 있어서 소통을 위한 통치의 방법으로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금 법에는 비방죄와 요언죄가 있어 여러 신하들이 그 마음을 다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황제는 자신의 잘못을 들을 기회가 없어졌다. 어찌 먼 곳이 어질고 선량한 자들을 오게 하겠는가? 그 법령을 없애도록 하라! 백성들이 혹 주상을 저주하고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가 후에 누군가 고발하면 관리들이 대역이라 하고, 다른 말을 하면 관리들이 또 비방이라 한다. 이는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모는 것이니 잠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부터 이 법을 범하는 자가 있어도 처벌하지 말라!' 하더라
九月初 與郡國守相爲銅虎符、竹使符.
구월초 여군국수상위동호부 죽사부
9월초에 군수와 무리들의 수장에게 동으로 만든 호패=병력 동원권과 죽사부= 태수 신분증을 나눠주었고
三年十月丁酉晦 日有食之.
삼년시월정유매 일유식지
3년 차 10월 정유일 저녁 일식이 생겼고
十一月 上曰:「前日(計)[詔]遣列侯之國 或辭未行. 丞相朕之所重 其爲朕率列侯之國.」
십일월 상왈 '전일계소견열후지국 혹사미행 승상짐지소중 기위짐솔열후지국'
11월 임금이 말하길 '전에 각 제후들로 봉토로 돌아가도록 하였으나 가지 않은 사람이 있다. 승상이 내겐 소중한 사람이지만 각 제후들을 통솔하는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하며
絳侯勃免丞相就國 以太尉潁陰侯嬰爲丞相.
강후발면승상취국 이태위영음후영위승상
승상 주발을 봉토로 돌려보내며 영음후 관영을 승상으로 세웠다.
罷太尉官 屬丞相.
태태위관 속승상
태위라는 직책을 없애고 승상 관할로 하였고
四月 城陽王章薨.
사월 성양왕장뭉
4월 성양왕 유장이 죽었고
淮南王長與從者魏敬殺辟陽侯審食其.
회남왕장여종자위경살벽양후심이기
회남왕 유장이 신하 유경과 함께 벽양후 심이기를 살해하였다.
五月 匈奴入北地 居河南爲寇.
오월 흉노입북지 거하남위구
5월 흉노족이ㅣ 북쪽으로 들어와 하남에 거주하며 노략질을 하였다.
帝初幸甘泉.
제초행감천
효문제가 처음으로 감천(진의 이궁이 있던)으로 행차하였다.
六月 帝曰:「漢與匈奴約爲昆弟 毋使害邊境 所以輸遺匈奴甚厚. 今右賢王離其國 將衆居河南降地 非常故 往來近塞 捕殺吏卒 驅保塞蠻夷 令不得居其故 陵轢邊吏 入盜 甚敖無道 非約也. 其發邊吏騎八萬五千詣高奴 遣丞相潁陰侯灌嬰擊匈奴.」
유월 제왈 '한여흉노약위곤제 무사해변경 소이수유흉노심후 금우편왕이기국 장중거하남항지 비상고 왕래근색 포살이졸 구보색만이 영부득거기고 능력변리 입도 심오무도 비약야 기발변리기팔만오천지고노 견승상영음후권영격흉노'
6월 효문제 왈 '한나라와 흉노가 서로 형제의 맹약으로 변경에 해를 끼치지 않기로 했고 흉노에 많은 물자를 보냈다. 지금 우현왕이 자기 무리를 벗어니 하남의 터에 머무는데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며 주변 요새들을 다니며 관리와 병졸을 죽이며 만이를 몰아낸다. 하여 그들이 머무는 것은 불가하고 변경의 관리들을 업수히 여겨 노략질하니 심히 무도한 일이요 약조를 깨는 것이다. 변경의 관리 85천의 기병을 고노로 보내 승상 영음후 권영으로 흉노를 공격하라'하니
匈奴去 發中尉材官屬衛將軍軍長安.
흉노거 발중위제관속위장군군장안
흉노가 물러가니 중위인 재관(상비군)을 위장군(총사령관)에 주어 장안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辛卯 帝自甘泉之高奴 因幸太原 見故群臣 皆賜之.
신묘 제자감천지고노 인행태원 견고순신 개사지
신묘일 효문제가 감천의 고노에서 태원으로 왕림하여 군신들을 만나 모두 상을 주고
擧功行賞 諸民里賜牛酒.
거공행상 제민리사우주
논공행상을 통해 백성들에게 소고기와 술을 내리고
復晉陽中都民三歲.
복진양중도민삼세
진양과 중도 백성들에게 3년간 부역을 면하고
留游太原十餘日.
류려태원십여일
태원에 10여일 머물렀다.
濟北王興居聞帝之代 欲往擊胡 乃反 發兵欲襲滎陽.
제북욍흥거문제지대 욕왕격호 내반 발병욕습형양
제북왕 유흥거가 효문제가 대지역으로 호랑캐를 치러 갔음을 듣고 반역하여 병력을 일으켜 형양을 공격하고자 했다.
於是詔罷丞相兵 遣棘蒲侯陳武爲大將軍 將十萬往擊之.
어시조태승상병 견극포후진무위대장군 장십만왕격지
그때 승상의 병사들을 모아 극포후 진무를 대장군으로 10만 병사를 이끌고 공격하게 하고
祁侯賀爲將軍 軍滎陽.
기후하위장군 군형양
기후 증하를 장군으로 형양에 군영을 펼치게했다.
七月辛亥 帝自太原至長安.
칠월신해 제자태원지장안
7월 신해일에 황제가 태원엣 장안으로 돌아와
迺詔有司曰:「濟北王背德反上 詿誤吏民 爲大逆. 濟北吏民兵未至先自定 及以軍地邑降者 皆赦之 復官爵. 與王興居去來 亦赦之.」
내조유사왈 '제북왕배덕반상 괘오이민 위대역 제북이민병미지선자정 급이군지읍항자개사지 복관직 여왕흥거래 역사지'
관리들에게 조서를 내리길 '제북왕이 배덕하게도 내게 반역하였고 백성들을 호도하니 이야말로 대역죄다 제북의 관리들과 뱍성들 병사들이 먼저 그리 한 것 아니니 투항한 병사들은 모두 사하고 관직을 복위하고 유흥거를 배척한 이들도 사면하라'하니
八月 破濟北軍 虜其王.
팔월 파제북군 노기왕
8월 제북군을 격파하고 유흥거를 잡아들였다.
赦濟北諸吏民與王反者.
사제북제사민여왕반자
유흥거에 협조한 제북의 관리 백성들도 모두 사면하니라.
六年 有司言淮南王長廢先帝法 不聽天子詔 居處毋度 出入擬於天子 擅爲法令 與棘蒲侯太子奇謀反 遣人使閩越及匈奴 發其兵 欲以危宗廟社稷.
육년 유사언회남왕장폐선제법 불청천자조 거처무도 출입의어천자 천위법령 여극포후태자기모반 견인사민월급흉노 발기병 욕이위종묘사직
6년 관리가 말하길 회남왕 유장이 유방의 법을 폐하고 천자=효문제의 권고를 듣지않고 멋대로 살며 천자와 버금가게 굴며 법령을 제 멋대로 하며 극포후의 태자기와 함께 반역을 꾸미며 민월과 흉노에 사람을 보내 병력을 끌어들여 종묘사직을 위험에 빠트리려 한다'하니
群臣議 皆曰「長當棄市」
군신의 개왈 '장당기시'
군신들이 모두 '유장을 내쳐야 합니다'하더라
帝不忍致法於王 赦其罪 廢勿王.
제왕인치법어왕 사기죄 폐물왕
효문제는 유장을 법대로 못하고 죄를 사하는 대신 왕위를 폐하였다.
群臣請處王蜀嚴道、邛都 帝許之.
군신의처왕촉엄도 공도 제허지
군신들이 유장왕을 촉의 엄도와 공도에 가두자하니 효문제가 허락하더라
長未到處所 行病死 上憐之.
장미도처소 행병사 상린지
유장이 도착하기 전에 병사하니 임금이 안스러워하며
後十六年 追尊淮南王長謚爲厲王 立其子三人爲淮南王、衡山王、廬江王.
후십육년 추존회남왕장시위여왕 입자기삼인회남왕 형산왕 여강왕
나중 16년에 회남왕을 여왕으로 추존하고 아들 셋을 회남왕 형산왕 여강왕으로 세웠다
十三年夏 上曰:「蓋聞天道禍自怨起而福繇德興. 百官之非 宜由朕躬. 今袐祝之官移過于下 以彰 吾之不德 朕甚不取. 其除之.」
십삼년하 상왈 '개문천도화자원기이복요덕흥 백관지비 의유짐궁 금비축지관이과우하이 창오지부덕 짐심불취 기제지'
13년 여름 임금이 말하길 '하늘의 이치로 보면 화는 원망에서 나오고 복은 덕이 흥함에서 난다 했으니 아랫사람의 허물은 모두 내 탓이다 지금 비축 관리들이 허물을 아래로 전가함은 나의 부덕함이니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드니 그런 일 없도록 하라'하더라
五月 齊太倉令淳于公有罪當刑 詔獄逮徙繫長安.
오월 제태창령순우공유죄당향 조옥체사계장안
5월 제나라 태창령 순우공이 형을 살러 장안으로 끌려가게 생겼을 때
太倉公無男 有女五人.
태창공무남 유여오인
태창공이 아들이 없고 딸 만 5이라.
太倉公將行會逮 罵其女曰:「生子不生男 有緩急非有益也!」
태창공장행회체 매기녀왈 '생자불생남 유완급비유익야'
태창공이 체포될 때 딸들을 욕하며 말하길 '아들이 없으니 급할때 보탬이 안되는구나'하니
其少女緹縈自傷泣 乃隨其父至長安 上書曰:「妾父爲吏 齊中皆稱其廉平 今坐法當刑. 妾傷夫死者不可復生 刑者不可復屬 雖復欲改過自新 其道無由也. 妾願沒入爲官婢 贖父刑罪 使得自新.」
기소녀제영자상읍 내수기부지장안 상서왈 '첩부위리 제중개칭기염평 금좌법당형 첩상부사자불가복생 형자불가복속 수복욕개솨자신 기도무유야 첩원몰입위관비 속부형죄 사득자신'
그 막내 제영이 슬피울며 아비를 따라 장안까지 가서 상서를 올려 이르길 '소녀의 아버지가 관리가 되어 제 나라 사람 모두 청렴하고 공평하다 했었는데 지금 법에 걸려 형벌을 받는 지경입니다. 소녀가 슬픈 것은 죽은자는 되살릴 수 없고 벌을 받은 자는 다시 소속되지 않으니 누구든 과실을 고쳐 새로이 되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소녀는 스스로 관비가 되어 아비의 죄를 속죄하여 과실을 고칠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하니
書奏天子 天子憐悲其意 乃下詔曰:「蓋聞有虞氏之時 畫衣冠異章服以爲僇 而民不犯. 何則? 至治也. 今法有肉刑三 而姦不止 其咎安在? 非乃朕德薄而敎不明歟? 吾甚自愧. 故夫馴道不純而愚民陷焉. 詩曰『愷悌君子 民之父母』. 今人有過 敎未施而刑加焉? 或欲改行爲善而道毋由也. 朕甚憐之. 夫刑至斷支體 刻肌膚 終身不息 何其楚痛而不德也 豈稱爲民父母之意哉! 其除肉刑.」
서진천자 천자린비기의 내하조왈 '개문유오씨지시 화의관이장복이위륙 이민불범 하즉 지치야 금법유육형삼 이간부지 기구안재 비내짐덕박이교불명여 오심자괴 고부순도불순우민함언 시왈 " 개재군자 민지부모" 금인유과 교미시이형가언 혹욕개행위선이도무유야 짐심린지 부형지단지체 각기부 종신불식 하기초통이부덕야 이칭위민부모지의재 기제육형'
효문제에게 올린 상소로 그를 어여삐여겨 조서를 내려 말하길 '듣자니 유오씨 시절엔 옷이나 모자로 형벌 삼아도 백성들이 범죄하지 않았다느넫 어째서인가? 다스림이 지극해서다. 지금 육형=體刑이 있어도 간사함이 그치지 않으니 그 잘못이 어디 있나? 내 덕이 부족하고 가르침이 밝지 못해서 아닌가 내 심히 부끄럽도다 그러니 도를 따름이 순전하지 않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죄에 바지는 것 시에 이르길 "자상한 지도자가 백성들의 어버이"라 했다. 지금 과실이 있으면 가르쳐야지 형벌을 더하는게 말이 되나 그 행실을 고치려 해도 방법이 없으니 내 마음이 아프다. 형벌로 몸을 절단하고 각을 뜨면 평생가고 태형으로 고통을 준다는 건 덕이 아니라 백성의 어버이의 할 바 아니다 하니 體刑을 금하도록 하라' 하더라
上曰:「農 天下之本 務莫大焉. 今勤身從事而有租稅之賦 是爲本末者毋以異 其於勸農之道未備. 其除田之租稅.」
상왈 '농 천하지본 무막대언 금근신종사이조세지부 시위본말자무이이 기어근농지도미비 기제전지조세'
임금이 말하길 '농사란 세상의 기본이니 힘써야한다 지금 혼신을 다해도 세금이 있으니 본말=천하의 기본이면서도 세금 추징의 근원이니 농지세를 없애라'하였다.
十四年冬 匈奴謀入邊爲寇 攻朝那塞 殺北地都尉卬.
십사년동 흉노모입변위구 공조나새 살북지도위앙
14년 겨울 흉노가 침입하여 노략질 하려 하니 조나 요새를 공격하고 북지의 도위 손앙을 죽였다.
上乃遣三將軍軍隴西、北地、上郡 中尉周舍爲衛將軍 郎中令張武爲車騎將軍 軍渭北 車千乘 騎卒十萬.
상내견삼장군군롱서 북지 상군 중위주사위위장군 낭중령장무위차기장군 북위북 거천승기졸십만
임금이 3장군 롱서,북지,상군에 장군을 파견하고 중위 주사를 위장군으로 임명하고 낭중령 장무를 전차부대 장으로 임명하여 위북에 진을 치고 전차 1000대와 10만 기병을 두었다.
帝親自勞軍 勒兵申敎令 賜軍吏卒.
제친자노군 륵병신교령 사군이졸
효문제가 직접 병사를 사열하며 명을 내리고 군졸들에게 상을 내렸다.
帝欲自將擊匈奴 群臣諫 皆不聽.
제욕자장격흉노 군신간 개불청
황제가 직접 흉노를 치려하니 군신들이 극구 간하여도 듣지 않았다.
皇太后固要帝 帝乃止.
황태후고요제 제내지
황태후가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야 황제가 그 뜻을 꺾었다.
於是以東陽侯張相如爲大將軍 成侯赤爲內史 欒布爲將軍 擊匈奴.
어시이동양후장상여위대장군 성후적위내사 란포위장군 격흉노
그래서 동양후 장상여를 대장군으로 성후 동적을 내사로 란포를 장군으로 삼아 흉노를 공격하였다.
匈奴遁走.
흉노둔주
흉노가 차차 물러갔다.
春 上曰:「朕獲執犠牲珪幣以事上帝宗廟 十四年于今 歷日長 以不敏不明而久撫臨天下 朕甚自愧. 其廣增諸祀墠場珪幣. 昔先王遠施不求其報 望祀不祈其福 右賢左戚 先民後己 至明之極也. 今吾聞祠官祝釐 皆歸福朕躬 不爲百姓 朕甚愧之. 夫以朕不德 而躬享獨美其福 百姓不與焉 是重吾不德. 其令祠官致敬 毋有所祈.」
춘 상왈 '짐획집희생규폐이사 상제종묘 십사년우금 역일장 이불민불명이구무임천하 짐심자괴 기광증제사선장규폐 석선왕원시불구기보 망사불기기복 우현자척 선민후기 지명지극야 금오문사관축리 개귀복짐궁 불위백성 짐심괴지 부이짐부덕 이숭형독미기복 백성부여언 시중오부덕 기영사관치경 무유소기'
봄 임금이 말하길 '내 희생제물로 상제와 종묘를 섬겨온지 지금까지 14년이다. 그 긴 세월 불민하고 어리석으면서도 천하를 주물러 왔다는게 내 심히 부끄럽다. 제 터와 제물을 늘려라. 예전 임금들은 멀리 베풀고 그 보답을 바라지 않으셨고 제를 지내되 자기 복을 구하지 않았고 오른쪽에 현명한 자를 왼쪽에 일가를 두었고 백성을 먼저 자신을 나중으로 생각하셨으니 현명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이제 내듣자니 사관들이 복을 비는게 다 내 한 몸을 위함이지 백성을 위한게 아니라니 내 심히 부끄럽다 내 부덕한데 그 복을 백성과 함께 아니고 혼자 누리니 이게 바로 큰 부덕이라 사관들은 제사만 정성을 다하고 복을 빌지 말도록 아하'하더라
十五年 黃龍見成紀 天子乃復召魯公孫臣 以爲博士 申明土德事.
십오년 황룡현성기 천자내복소노공손신 이위박사 신명토덕사
15년 황룡이 실제로 나타나자 천자가 다시 보공 공손신을 불러 박사로 임명하고 土덕이 무언지 밝히게 하였다.
於是上乃下詔曰:「有異物之神見于成紀 無害於民 歲以有年. 朕親郊祀上帝諸神. 禮官議 毋諱以勞朕.」
어시상내하조왈 '유이물지신현우성기 무해어민 세이유년 짐친교사상제지신 예관의 무위이노짐'
그때 임금이 조서를 내려 이르길 '신이한 황룡이 나타나 백성에겐 해가 없다. 내 친히 상제와 신들게 교제를 드리겠노라 예관들은 상의하여 짐의 노고에 삿된 말이 없도록 하라'하니
*見成: 실지로 되어지다.
有司禮官皆曰:「古者天子夏躬親禮祀上帝於郊 故曰郊.」
유사예관개왈 '고자천자하궁친예사상제어교 고왈교'
예관들이 모두 말하길 '옛날 천자께서 친히 산천에 제사드리니 교제라 하는 겁니다'하니
於是天子始幸雍 郊見五帝 以孟夏四月答禮焉.
어시천자시행옹 교견오제 이맹하사월답예언
그 때 천자가 처음으로 옹땅으로 행차하여 5제에게 제사하고 한 여름 4월에 다시 제를 올렸다.
趙人新垣平以望氣見 因說上設立渭陽五廟 欲出周鼎
조인신원평이망기현 인설상설립위양오묘 욕출주정
조나라 사람 신원평이 천기를 읽는다며 위양에 5제묘를 세워야 주나라 솥을 볼 수있다 했다.
當有玉英見.
당유옥영현
그리고 당연히 옥영(=五常並修=5행의 순환) 도 나타날 겁니다
十六年 上親郊見渭陽五帝廟 亦以夏答禮而尙赤.
십육년 상친교현위양오제묘 역이하답예이상적
16년 임금이 위양에 친히 5제묘에 나아가 제를 지내고 붉은 색을 숭상하니라
十七年 得玉杯 刻曰「人主延壽」.
십칠년 득옥배 각왈 '인주연수'
17년 옥배를 얻으니 새겨있길 '백성들의 어버이가 장수하리라'했다
於是天子始更爲元年 令天下大酺.
어시천자시경위원년 영천하대포
천자가 그 해를 원년으로 정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其歲 新垣平事覺 夷三族.
기세 신원평사각 이삼족
그해 신원평의 농간이 밝혀져 3족을 멸했다.
後二年 上曰:「朕旣不明 不能遠德 是以使方外之國或不寧息. 夫四荒之外不安其生 封畿之內勤勞不處 二者之咎 皆自於朕之德薄而不能遠達也. 閒者累年 匈奴並暴邊境 多殺吏民 邊臣兵吏又不能諭吾內志 以重吾不德也. 夫久結難連兵 中外之國 將何以自寧? 今朕夙興夜寐 勤勞天下 憂苦萬民 爲之怛惕不安 未嘗一日忘於心 故遣使者冠蓋相望 結軼於道 以諭朕意於單于. 今單于反古之道 計社稷之安 便萬民之利 親與朕俱棄細過 偕之大道 結兄弟之義 以全天下元元之民. 和親已定 始于今年.」
후이년 상왈 '짐기불명 불능원덕 이이사방외지국혹불녕식 부사황지외불안기생 봉기지내권노불처 이자지구 개자어짐지덕박이불능원달야 한자누년 흉노병폭변경 다살이민 변신병리우불능유오내지 이중오부덕야 미구결난연병 중외지국 장하이자녕 금짐숙흥야매 권노천하 우고만민 위지달척불안 니상일일망어심 고견사자관개상망 결일어도 이유짐의어선우 금선우반고지도 계사직지안 경만민지리 친여짐구기세과 해지대도 결형제지의 이천하원원지민 화친이정 시우금년'
후원 2년, 주상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이 영명하지 못해 멀리까지 덕이 미치지 않아 주변 다른 나라들이 간혹 편치 못했다. 또 사방 변경 밖이 생업이 불안하고 나라 안의 생활도 편치 않았다. 이 두 가지 잘못은 모두 짐의 덕이 박하여 멀리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계속 흉노가 변경을 침범하여 관리와 인민을 많이 죽인데다, 변방 관리와 장병들이 나의 속뜻을 깨우치지 못해 나의 부덕을 더 무겁게 했다. 오래 병란이 계속되니 나라 밖의 나라가 어찌 편하겠는가? 지금 짐이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천하를 위해 애를 쓰고 만민을 위해 고심하면서 늘 불안하여 하루도 마음에서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사신을 보내되 의관과 수레 지붕이 서로 바라보고 길에 바퀴자국이 가득할 정도로 보내서 선우에게 짐의 뜻을 알렸던 것이다. 이제 선우는 옛날의 길로 돌아가 사직의 안전과 만민의 이익을 따져 짐과 더불어 서로의 잘못을 잊고 화목하게 함께 큰길로 나아가 형제의 의를 맺음으로써 천하의 만민을 보전키로 했다. 화친이 성사되었으나 금년부터 시행하도록 하라.” 하더라
後六年冬 匈奴三萬人入上郡 三萬人入雲中.
후육년동 흉노삼만인입상군 삼만인입운중
후원 6년 흉노가 상군에 3만 운중에 3만 쳐들어왔다
以中大夫令勉爲車騎將軍 軍飛狐;故楚相蘇意爲將軍 軍句注;將軍張武屯北地;河內守周亞夫爲將軍 居細柳;宗正劉禮爲將軍 居霸上;祝茲侯軍棘門:以備胡.
이중대부령일위차기장군 군비호 고초상소의위장군 군구주 장군장무둔북지 하내수주아부위장군 거세류 종정유례위장군 거패상 축자후군극문 이비호
중대부령 면을 전차부대 장수로 임명하여 비호땅에 초나라 재상 소의를 장군으로 구주에 주둔하게 하고 장무장군을 북지에 주둔시키고 하내수 주아부를 장군으로 세류에 종정 유례를 장군으로 패상에 축자후 는 극문에 주둔케하여 오랑캐에 대비하였다.
數月 胡人去 亦罷.
수월 호인거 역태
수 개월후 오랑캐가 물러가니 해산하였다.
天下旱 蝗.
천하한 황
가뭄이 들고 메뚜기가 창궐하니
帝加惠:令諸侯毋入貢 弛山澤 減諸服御狗馬 損郎吏員 發倉庾以振貧民 民得賣爵.
제가혜 영제후무입공 이산택 감제복어구마 손랑이원 발창유이진빈민 민득매작
효문제가 은혜를 베풀어 제후들의 공물을 마다하고 임산물 물고기에 대한 통제를 풀고 신하들 복식제한을 풀어주고 수행원을 줄이고 창고를 열어 빈민들을 아우르고 백성들이 서로 지위를 팔도록 해줬다.
孝文帝從代來 卽位二十三年 宮室苑囿狗馬服御無所增益 有不便 輒弛以利民.
효문제종대래 즉위이십삼년 궁실화유구마복어무소증익 유불편 첩이이이민
효문제가 대지역에서 와 황제에 즉위한지 23년 지나도록 궁궐이나 정원 신하들의 복식에 변함이 없으니 불편함이 있었지만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嘗欲作露臺 召匠計之 直百金.
상욕작노대 소장계지 직백금
노대를 짓자고 장인을 불러 계산해보니 100금이 들더라
上曰:「百金中民十家之産 吾奉先帝宮室 常恐羞之 何以臺爲!」
상왈 '백금중민십가지산 오봉선제궁실 상공수지 하이대위'
주상이 말하길 '백금이면 민간인 10가구의 재산이나 맞먹고 내 선대의 궁실을 받듦에 부끄러움 없기 바랬거늘 어찌 대를 세우리'하더라
上常衣綈衣 所幸愼夫人 令衣不得曳地 幃帳不得文繡 以示敦朴 爲天下先.
상상의제의 소행신부인 영의부득예지 휘장부득문수 이원돈박 위천하선
주상은 옷을 기워입으며 신부인에게도 그리 하도록 하며 치마를 끌고 다니지 말라 하고 휘장에 수를 놓지 못하게 하며 소박하게 살았는데 이게 다 천하를 위함이었다.
治霸陵皆以瓦器 不得以金銀銅錫爲飾 不治墳 欲爲省 毋煩民.
치패릉개이와기 부득이금은동석위식 불치분 욕위성 무번민
패릉에서 다스릴 때에도 구운 도기 사용을 장려하며 금은 구리 주석으로 장식하지 말라 하고 봉분을 높이 세우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의 걱정거리를 덜고자 했다.
南越王尉佗自立爲武帝 然上召貴尉佗兄弟 以德報之 佗遂去帝稱臣.
남월왕위타자립위무제 연상소귀위타형제 이덕보지 타수거제칭신
남 월의 위타 왕이 스스로 무제로 등극하였으나 주상이 그들 형제를 불러 덕스럽게 대하니 위타왕이 돌아가 황제 위를 버리고 신하라 칭하더라
與匈奴和親 匈奴背約入盜 然令邊備守 不發兵深入 惡煩苦百姓.
여흉노화친 흉노배약입도 연영변비수 불발병심입 오번고백성
흉노와 화친 했음에도 흉노가 들어와 노략질 하는데도 국경을 지키기만 힘스고 공격하지 않음은 백성들의 걱정거리를 원치 않아서다.
吳王詐病不朝 就賜几杖.
오왕사병불조 위사궤장
오나라 왕이 병을 핑계로 조례에 참석치 않음에도 궤장; 왕의 지팡이를 하사하고
群臣如袁盎等稱說雖切 常仮借用之.
군신여원앙등칭설수절 상가차용지
원앙같은 신하들이 직언해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群臣如張武等受賂遺金錢 覺 上乃發御府金錢賜之 以愧其心 弗下吏.
군신여장무등수뢰유금전 각 상내발어부금전사지 이괴기심 불하리
장무와 같은 군신들이 뇌물을 받고 발각되어도 오히려 돈을 하사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했지 벌로 다스리지 않았다.
專務以德化民 是以海內殷富 興於禮義.
전무이덕화민 시이해내은부 흥어예식
백성들에게 덕을 베푸니 국내가 부요해지고 예의가 크게 흥했다.
後七年六月己亥 帝崩於未央宮.
후칠년유월기해 제붕어미앙궁
후원 7년 효문제가 미앙궁에서 죽으니
遺詔曰:「朕聞蓋天下萬物之萌生 靡不有死. 死者天地之理 物之自然者 奚可甚哀. 當今之時 世咸嘉生而惡死 厚葬以破業 重服以傷生 吾甚不取. 且朕旣不德 無以佐百姓;今崩 又使重服久臨 以離寒暑之數 哀人之父子 傷長幼之志 損其飮食 絶鬼神之祭祀 以重吾不德也 謂天下何! 朕獲保宗廟 以眇眇之身託于天下君王之上 二十有餘年矣. 賴天地之靈 社稷之福 方內安寧 靡有兵革. 朕旣不敏 常畏過行 以羞先帝之遺德;維年之久長 懼于不終. 今乃幸以天年 得復供養于高廟. 朕之不明與嘉之 其奚哀悲之有! 其令天下吏民 令到出臨三日 皆釋服. 毋禁取婦嫁女祠祀飮酒食肉者. 自當給喪事服臨者 皆無踐. 絰帶無過三寸 毋布車及兵器 毋發民男女哭臨宮殿. 宮殿中當臨者 皆以旦夕各十五擧聲 禮畢罷. 非旦夕臨時 禁毋得擅哭. 已下 服大紅十五日 小紅十四日 纖七日 釋服. 佗不在令中者 皆以此令比率從事. 布告天下 使明知朕意. 霸陵山川因其故 毋有所改. 歸夫人以下至少使.」
유조왈 '짐문개천하만물지맹생 미불유사 사자천지지리 물지자연자 해가심애 당금지시세함가생이악사 후장이파업 중복이상생 오심불취 차짐기부덕 무이좌백성 금붕 우사중복구임 이리한서지수 애인지부자 상장유지지 손기음식 절귀신지제사 이중오부덕야 위천하하 짐획보종묘 이묘묘지신탁우천하군주지상 이십여년의 뢰천지지령 사직지복 방내안녕 이뮤병혁 짐기불민 당외과행 이수선제지유덕 유년지구장 구우부종 금내행이천년 득복공양우고묘 짐지불명여가지 기해애비지유 기령천하이민 영도출림삼일 개석복 무금취부가녀사사음주식육자 자당급상사복임자 개무천 질대무과삼촌 무포거금병기 무발민남여곡임궁전 궁전중당임자 개이단석각십오거성 예필태 비단석임시 금무득찬곡 이하 복대홍십오일 소홍십사일 섬칠일 석복 타부재영중자 개이차영비솔종사 포고천하 사명지짐의 패릉산천인기고 무유소개 부부인이하지소사'
유언을 내리길
'내 듣자니 천하 만물로서 싹이 자라 죽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죽음은 하늘과 땅의 이치요, 사물의 자연스러움이니 어찌 그리 슬퍼할 바냐. 지금 세상은 모두가 삶을 좋다 하고 죽음은 싫어하여 장례를 거창하게 치르느라 생업까지 파괴하고 상복을 너무 오래 입어 산 사람이 상하기까지 한다. 나는 정말 이렇게 할 수 없다. 또한 짐은 부덕하여 백성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지금 죽음을 앞두고 또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상복을 입어 집안의 아비와 아들을 슬프게 하고,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이의 의지를 상하게 하며, 그들 음식에 손상이 가고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가 끊어지게 하여 나의 부덕을 더 무겁게 한다면 천하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 짐이 종묘를 얻어 보전하며 보잘 것 없는 몸을 천하 군왕의 자리에 맡긴 지 20년이 넘었다. 천지 신령과 사직이 복에 힘입어 나라가 안녕을 찾고 군대를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짐이 또 영민하지 못하여 늘 잘못된 행실로 선제께서 남긴 덕을 부끄럽게 만들면 어쩌나 두려웠고, 또 시간이 지날수록 끝이 안 좋으면 어쩌나 겁이 났다. 지금 다행히 천수를 누리고 고조의 사당에서 제사를 받게 되었다. 짐이 영명하지 못한데도 잘되었으니 슬퍼할 일이 무엇인가? 천하의 관리와 인민들은 조령이 내려가면 사흘만 곡을 하고 상복을 벗도록 하라. 며느리를 맞고 딸을 시집보내고,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일을 금하지 말라. 상을 맡고 있거나 상복을 입고 곡을 해야 하는 이들은 맨 발로 땅을 밟지 않도록 하라. 상복의 허리띠는 세 치를 넘지 말 것이며, 수레와 병기를 진열해 놓지 말라. 남녀를 징발하여 궁전에서 곡하지 않도록 하라. 궁전에서 곡을 해야 하는 이들은 모두 아침저녁 열다섯 번만 하고 예가 끝나면 그만해라. 아침저녁으로 곡을 할 때가 아니면 마음대로 곡하지 않도록 하라. 안장이 끝나면 대공은 15일, 소공을 14일, 섬은 7일만 입도록 하라. 조령에 포함되지 않은 일들도 모두 이 조령을 기준으로 삼아 따르도록 하고, 천하에 포고하여 짐의 뜻을 분명하게 알려라. 패릉의 산천은 바꾸지 말고 원래 모습대로 두라. 후궁은 부인 이하 소사까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하였다.
令中尉亞夫爲車騎將軍 屬國悍爲將屯將軍 郎中令武爲復土將軍 發近縣見卒萬六千人 發內史卒萬五千人 藏郭穿復土屬將軍武.
영중위아부위거기장군 속국한위장둔장군 랑중영무위복토장군 발근현현솔만육천인 발내사솔만오천인 장곽천복토속장군무
중위 주아부를 거기장군(전차부대)으로 삼고 속국 서한을 둔장군(주둔 사령관)으로 삼고 낭중령 장무를 복토장군(왕릉 전설 우두머리)로 삼고 가까운 현에서는 병졸 1만 6천, 수도 안에 병졸 1만 5천을 징발하여 땅을 파고 흙을 메우는 일을 장군 장무에게 속하게 하였다.
乙巳 群臣皆頓首上尊號曰孝文皇帝.
을사 군신개돈수상존호왈효문황제
을사일에 모든 군신이 머리조아려 존호를 효문황제로 올리더라
太子卽位于高廟.
태자즉위우고묘
태자가 유방의 묘에서 즉위하여
丁未 襲號曰皇帝.
정미 습호왈황제
정미일에 황제 호칭을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