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鷲寺
寺中古記云 “新羅眞骨第三十一主神文王代 永淳二年癸未[本文云元年 誤] 宰相忠元公 萇山國[卽東萊縣 亦名萊山國] 溫井沐浴 還城次 到屈井驛桐旨野駐歇. 忽見一人放鷹而逐雉 雉飛過金岳 杳無蹤迹 聞鈴尋之 到屈井縣官北井邊. 鷹坐樹上 雉在井中 水渾血色 雉開兩翅 抱二雛焉. 鷹亦如相惻隱 而不敢攫也. 公見之惻然有感 卜問此地 云可立寺. 歸京啓於王 移其縣於他所 創寺於其地 名靈鷲寺焉.”
사중고기운 “신라진골제삼십일주신문왕대 영순이년계미[본문운원년 오] 재상충원공 장산국[즉동래현 역명래산국] 온정목용 환성차 도축정역동지야주헐. 홀견일인방응이축치 치비과금악 사무종적. 문영심지 도굴정현관북정변. 응좌수상 치재정중 수혼혈색 치개양시 포이추언. 응역여상측은 이불감확야. 공견지측연유감 복문차지 운가입사. 귀경계어왕 이기현어타소 창사어기지 명영취사언.”
절의 옛 기록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신라 진골 제31대 신문왕(神文王) 때인 영순(永淳) 2년 계미(서기 683)에[본문에서 원년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萇山國)[곧 동래현(東萊縣)인데 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한다.]의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성으로 돌아오면서 굴정역(屈井驛) 동지야(桐旨野)에 이르러 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매를 풀어 꿩 사냥을 했는데, 꿩이 날아올라 금악(金岳)을 넘어가서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가다가 굴정역 관청 북쪽 우물가에 이르렀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었고 꿩은 우물 속에 있었는데, 우물물이 온통 핏빛이었고 꿩은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다. 매도 또한 불쌍히 여기는 듯 감히 꿩을 낚아채려 하지 않았다. 공이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감동하여, 그 땅을 점쳐 보았더니 가히 절을 세울 만하다고 하였다. 서울로 돌아와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어, 그 현의 관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절을 짓고는 영취사(靈鷲寺)라고 하였다.”
'三國遺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券 第三 塔像 第四- 五臺山 文殊寺 石塔記 (0) | 2020.06.14 |
---|---|
券 第三 塔像 第四- 有德寺 (0) | 2020.06.13 |
券 第三 塔像 第四- 伯嚴寺 石塔 舍利 (0) | 2020.06.12 |
券 第三 塔像 第四- 鍪藏寺 彌陀殿 (0) | 2020.06.12 |
券 第三 塔像 第四- 天龍寺 (0) | 20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