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龍寺鍾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新羅第三十五景德大王 以天寶十三年甲午 鑄皇龍寺鍾 長一丈三寸 厚九寸 入重四十九萬七千五百八十一斤 施主孝貞伊王三毛夫人 匠人里上宅下典. 肅宗朝 重成新鍾 長六尺八寸.
신라제삼십오경덕대왕 이천보십삼년갑오 주황룡사종 장일장삼촌 후구촌 입중사십구만칠천오백팔십일근 시주효정이왕삼모부인 장인리상택하전. 숙종조 중성신종 장육척팔촌.
신라 제35대 경덕대왕(景德大王)이 천보(天寶) 13년 갑오(서기 754)에 황룡사(皇龍寺)의 종을 주조하였다. 길이가 1장 3치였으며, 두께가 9치였고 무게가 497,581근이었다. 시주한 사람은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이었고 장인은 마을 귀족집(里上宅) 여종이다. 당나라 숙종 때 다시 새 종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6자 8치였다.
* 里上宅: 金入宅중 하나로 금입택은 金人入宅으로 보아 金人=부처 곧 절로 보는게 옳다.
글자 그대로 마을 위쪽...
又明年乙未 鑄芬皇藥師銅像 重三十萬六千七百斤. 匠人本彼部强古乃末.
우명년을미 주분황약사동상 중삼십만육천칠백근. 장인본피부강고내말.
또 그 다음해 을미년(서기 755)에 분황사(芬皇寺)의 약사여래동상(藥師如來銅像)을 주조했는데, 무게가 306,700근이었다. 종을 만든 장인은 본피부(本彼部)의 강고내말(强古乃末)이었다.
又捨黃銅一十二萬斤 爲先考聖德王 欲鑄巨鍾一口 未就而崩. 其子惠恭大王乾運 以大曆庚戌十二月 命有司鳩工徒 乃克成之 安於奉德寺. 寺乃孝成王開元二十六年戊寅 爲先考聖德大王 奉福所創也. 故鍾銘曰聖德大王神鍾之銘[聖德乃景德之考 興光大王也. 鍾本景德爲先考所施之金 故稱云聖德鍾爾].
우사황동일십이만근 위선고성덕왕 욕주거조일구 미취이붕. 기자혜공대왕건운 이대력경술십이월 명유사구공도 내극성지 안어봉덕사. 사내효성왕개원이십육년무인 위선고성덕대왕 봉복소창야 고종명왈성덕대왕신종지명[성덕내경덕지고 흥광대왕야. 종본경덕위선고소시지금 고칭운성덕종이.]
또 경덕대왕이 황동 120,000근을 기꺼이 내놓아 돌아가신 아버지인 성덕왕(聖德王)을 위하여 큰 종 하나를 만들려고 했지만 미처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인 혜공대왕(惠恭大王) 건운(乾運)이 대력(大曆) 경술년(서기 770) 12월에 관리에게 명하여 장인들을 모아 마침내 완성하여 봉덕사(奉德寺)에 두었다. 이 절은 바로 효성왕(孝成王)이 개원(開元) 26년 무인(서기 738)에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聖德大王)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것이다. 그래서 종 이름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라고 새겼다.[성덕은 곧 경덕(景德)의 아버지인 흥광대왕(興光大王)이다. 종은 본래 경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시주한 금으로 만들었으므로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부른 것이다.]
朝散大夫兼太子司議郞翰林郞金弼奚 奉敎撰鍾銘 文煩不錄.
조산대부겸태자사의랑한림랑김필혜 봉교찬종명 문번불록.
조산대부(朝散大夫) 겸태자사의랑(兼太子司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해(金弼奚)가 왕의 명을 받들어 종의 글을 지었는데, 글이 번거로우므로 여기에 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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