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道肇麗
[道公之次 亦有法深義淵曇嚴之流 相繼而興敎 然古傳無文 今亦不敢編次 詳見僧傳]
[도공지차 역유법심의연담엄지류 상계이흥교 연고전무문 금역불감편차 상견승전]
[도공(道公) 다음에는 또 법심(法深)ㆍ의연(義淵)ㆍ담엄(曇嚴)의 무리들이 서로 이어서 불교를 일으켰다. 그러나 전해오는 글이 없어서 지금 감히 순서를 매겨서 편찬할 수 없다. 『승전(僧傳)』에 자세히 보인다.]
高麗本記云 小獸林王卽位二年壬申 乃東晉咸安二年 孝武帝卽位之年也 前秦苻堅遣使及僧順道送佛像經文[時堅都關中 卽長安]. 又四年甲戌 阿道來自晉 明年乙亥二月 創肖門寺以置順道. 又創伊弗蘭寺以置阿道 此高麗佛法之始.
고려본기운 “소수림왕즉위이년임심 내동진함안이년 효무제즉위지년야. 전진부견견사급승순도송불상경문[시견도관중 즉장안] 우사년갑술 아도래자진 명년을해이월 창초문사이치순도. 우창이불란사이치아도 차고려불법지시.”
「고구려본기(高句麗本記)」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소수림왕(小獸林王)이 왕위에 오른 지 2년째인 임신년(서기 372)은 곧 동진(東晉) 함안(咸安) 2년으로 효무제(孝武帝)가 왕위에 오른 해이다. 전진(前秦)의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어 불상과 불경을 보냈다.[당시 부견은 관중(關中)에 도읍하였으니 곧 장안(長安)이다.] 또 4년 갑술(서기 374)에는 아도(阿道)가 진(晉)나라에서 왔다. 그 다음해 을해년(서기 375) 2월에는 초문사(肖門寺)를 창건하고 순도(順道)를 있게 하였다. 또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창건하고 아도를 있게 하였다. 이것이 고구려 불법의 시작이다.”
僧傳作二道來自魏云者 誤矣. 實自前秦而來. 又云肖門寺今興國 伊弗蘭寺今興福者 亦誤. 按麗時都安市城 一名安丁忽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淥 今云安民江. 豈有松京之興國寺名.
승전작이도래자위운자 오의. 실자전진이래. 우운소문사금흥국 이불란사슴흥복자 역오. 안려시도안시성 일명안정홀 재요수지북. 요수일명압록 금운안민강. 기유송경지흥국사명.
승전(僧傳)에는 순도와 아도가 위(魏)나라에서 왔다고 하였지만 잘못된 것이다. 사실은 전진(前秦)에서 왔다. 또 초문사가 지금의 흥국사(興國寺)이고 이불란사가 지금의 흥복사(興福寺)라고 한 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살펴보건대 고구려의 수도는 그 당시 안시성(安市城)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안정홀(安丁忽)이었으며 요수(遼水) 북쪽에 있었다. 요수의 다른 이름은 압록(鴨淥)으로 지금의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송경(松京, 개성) 흥국사의 이름이 여기에 있을 수 있겠는가?
讚曰 “鴨淥春深渚草鮮 白沙鷗鷺等閑眠 忽驚柔櫓一聲遠 何處漁舟客到烟.”
찬왈 “압록춘심저초선 백사구로등한면 홀경유로일성원 하처어주개도연.”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압록강에 봄이 되니 모래톱에 물풀이 솟아나고 백사장 한가로이 졸고 있던 백로와 해오라기는 멀리서 노 젓는 소리에 갑자기 놀라고 고깃배의 길손이 안개 속에 배를 대네”
* 順道肇麗: 순도가 고구려에 들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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