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生
金生 父母微 不知其世系. 生於景雲二年 自幼能書 平生不攻他藝 年踰八十 猶操筆不休. 隸書行草皆入神 至今 往往有眞蹟 學者傳寶之.
김생 부모미 부지기세손 생어경운이년 자유능서 평생불공타예 년유팔십 유조필불휴. 예서행서개입신 지금 왕왕유진적 학자전가보지.
김생(金生)은 부모가 미천하여 집안 내력을 알 수 없다. 경운(景雲) 2년(서기 711)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다 평생동안 다른 기예는 닦지 않았으며 나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예서(隸書)와 행서(行書), 초서(草書) 모두 입신의 경지여서 지금까지도 왕왕 진필이 남아 있는데 배우는 이들이 전해오면서 보물로 여긴다.
崇寧中 學士洪灌隨進奉使入宋 館於汴京 時翰林待詔楊球李革 奉帝勅至館 書圖簇 洪灌以金生行草一卷 示之 二人大駭曰 不圖今日得見王右軍手書 洪灌曰 非是 此乃新羅人金生所書也 二人笑曰 天下除右軍 焉有妙筆如此哉.“ 洪灌屢言之 終不信.
숭녕중 학사홍관수지봉사입송 관어변경 시한림대조양구이혁 봉제칙지관 서도족 홍관이김생행초일권 이인대해왈 “부도금일득견왕우군수서.” 홍관왈 “비시 차급신라인김생소서야.” 이인소왈 “천하제우군 언유묘필여차재 홍관누언지 종불신.
숭녕(崇寧, 송 휘종 때의 연호) 연간에 학사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宋)에 들어가서 변경(汴京)에 묵고 있었는데, 이때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 이혁(李革)이 황제의 칙서를 받들고 객관에 와서 족자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홍관이 그들에게 김생이 쓴 행초(行草, 행서(行書)와 초서(草書)) 한 권을 보이니, 두 사람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오늘 왕우군(王右軍, 명필 왕희지)의 친필을 보게 될 줄 몰랐다.” 홍관이 말했다. “아니오. 이것은 신라 사람 김생이 쓴 것이오.” 두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천하에 왕우군 말고 어찌 이런 신묘한 글씨가 있을 수 있겠는가?” 홍관이 여러 번 말하였지만 끝내 믿지 않았다.
又有姚克一者 仕至侍中兼侍書學士 筆力遒勁 得歐陽率更法 雖不及生 亦奇品也.
우유요극일자 사지시중겸시서학사 필력주경 득구양솔경법 수불급생 역기품야.
또 요극일(姚克一)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벼슬이 시중 겸 시서학사(侍書學士)에 이르렀다. 필력이 힘차고 굳세며 구양순(歐陽詢)의 솔경법(率更法)을 체득하였다. 비록 김생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또한 뛰어난 솜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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