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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百濟本紀 第三 - 阿莘王


 

阿莘王

 

阿莘王(或云阿芳) 枕流王之元子 初 生於漢城別宮 神光炤夜. 及壯 志氣豪邁 好鷹馬. 王薨時 年少 故叔父辰斯繼位 八年薨 卽位.

아신왕(혹운아방) 침류왕지원자 초 생어한성별궁 신광조야 급장 지기호매 호응마. 왕훙시년소 고숙부진사계위 팔년훙 즉위.

 

아신왕(阿莘王 혹은 아방 阿芳)은 침류왕(枕流王)의 맏아들이다. 처음 한성의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밤에 신비로운 광채가 비쳤다. 장성하자 의지가 굳고 호방하여 매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하였다. 침류왕이 돌아가셨을 때, 그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진사(辰斯)가 왕위를 이었는데 진사왕이 재위 8년에 돌아가시자 왕위에 올랐다.

 

二年 春正月 謁東明廟 又祭天地於南壇. 拜眞武爲左將 委以兵馬事. 武 王之親舅 沈毅有大略 時人服之. 秋八月 王謂武曰 關彌城者 我北鄙之襟要也 今爲高句麗所有 此寡人之所痛惜 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 遂謀將兵一萬 伐高句麗南鄙 武身先士卒 以冒矢石. 意復石峴等五城 先圍關彌城 麗人嬰城固守. 武以糧道不繼 引而歸.

이년 춘정월 알동명묘 우제천지어남단. 배진무위좌장 위이병마사. 무 왕지친구 침의유대략 시인복지. 추팔월 왕위무왈 관미성자 아북비지금요야 금위고구려소유 차과인지소통석 이경지소의용심이설치야.” 수모장병일만 벌고구려남비 무신선사졸 이모시석. 의복석현등오성 선위관미성 여인영성고수. 무이양도불계 인이귀.

 

2(서기 393) 봄 정월, 임금이 동명왕의 사당에 참배하고 또한 남쪽 제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다. 진무(眞武)를 좌장으로 삼아 병마에 관한 일을 맡겼다. 진무는 왕의 외삼촌으로서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많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감복하였다.

가을 8, 임금이 진무에게 말하였다. “관미성(關彌城)은 우리나라 북쪽 변경의 옷깃처럼 중요한 곳이다. 지금 그 땅이 고구려의 소유가 되어 있으니, 이것을 과인은 애통해하는 바이다. 경은 마땅히 마음을 기울여 치욕을 갚아야 할 것이다.” 임금은 마침내 병사 1만 명을 동원하여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것을 계획하였다. 진무는 병졸보다 앞에 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면서 싸웠다. 석현(石峴) 5개 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먼저 관미성을 포위했으나, 고구려 사람들이 성을 굳게 지켰다. 진무는 군량미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여 병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三年 春二月 立元子腆支爲太子 大赦 拜庶弟洪爲內臣佐平 秋七月 與高句麗戰於水谷城下 敗績 太白晝見.

삼년 춘이월 입원자건지위태자 대사 배서제홍위내신좌평. 추칠월 여고구려전어수곡성하 패적. 태백주현.

 

3(서기 394) 2, 맏아들 전지(腆支)를 태자로 삼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임금의 이복동생인 홍()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가을 7, 고구려와 수곡성(水谷城) 아래에서 싸워 패배하였다. 태백(금성)이 낮에 나타났다.

 

四年 春二月 星孛于西北 二十日而滅. 秋八月 王命左將眞武等 伐高句麗 麗王談德親帥兵七千 陣於浿水之上 拒戰 我軍大敗 死者八千人. 冬十一月 王欲報浿水之役 親帥兵七千人 過漢水 次於靑木嶺下 會 大雪 士卒多凍死 廻軍至漢山城 勞軍士.

사년 춘이월 성패우서북 이십일이멸. 추팔월 왕명좌장진무등 벌고구려 여왕담덕친수병칠천 진어패수지상 거전 아군태패 사자팔천인. 동십일월 왕욕보패수지역 친수병칠천인 과한수 차어청목령하 회 대설 사졸다동사 회군지한산성 노군사.

 

4(서기 395) 2, 혜성이 서북쪽에 나타났다 20일 만에 사라졌다.

가을 8, 임금이 좌장 진무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니, 고구려왕 담덕이 직접 병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패수(浿水) 가에 진을 치고 대항하여 싸웠다. 우리 병사가 크게 패하여 사망자가 8천 명이나 되었다.

겨울 11, 임금이 패수 전투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하여, 친히 병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청목령 아래에 주둔하였다. 마침 큰 눈이 내려 병졸들 가운데 얼어 죽는 자가 많이 발생하자, 군대를 돌려 한산성(漢山城)에 이르러 병사들을 위로하였다.

 

六年 夏五月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秋七月 大閱於漢水之南.

육년 하오월 왕여왜국결호 이태자전지위질. 추칠월 대열어한수지남.

 

6(서기 397) 여름 5, 임금이 왜국(倭國)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를 볼모로 보냈다.

가을 7,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하였다.

 

七年 春二月 以眞武爲兵官佐平 沙豆爲左將. 三月 築雙峴城. 秋八月 王將伐高句麗 出師至漢山北柵 其夜大星落 營中有聲 王深惡之 乃止. 九月 集都人 習射於西臺.

칠년 춘이월 이진무위병관좌평 사두위좌장. 삼월 축쌍현성. 추팔월 왕장벌고구려 출사지한산북책 기야대성락 영중유성 왕심오지 내지. 구월 집도인 습사어서대.

 

7(서기 398) 2,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삼고 사두(沙豆)를 좌장으로 삼았다.

3, 쌍현성(雙峴城)을 쌓았다.

가을 8, 임금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대를 내어 한산 북쪽 목책에 이르렀다. 그날 밤에 큰 별이 떨어져 진영에서 소리가 났다. 임금은 이를 매우 불안하게 여겨 공격을 중지하였다.

9, 도읍 사람들을 모아 서대(西臺)에서 활쏘기 연습을 시켰다.

 

八年 秋八月 王欲侵高句麗 大徵兵馬 民苦於役 多奔新羅 戶口衰滅減.

팔년 추팔월 왕욕침고구려 대징병마 민고어역 다분신라 호구쇠멸감.

 

8(서기 399) 가을 8, 임금이 고구려를 침범하고자 병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발하였다. 백성들이 병역을 고통스럽게 여겨 신라로 많이 달아나서 가구 수가 줄어들었다.

 

九年 春二月 星孛于奎婁. 夏六月庚辰朔 日有食之.

구년 춘이월 성패우규루. 하유월경진삭 일유식지.

 

9(서기 400) 2, 혜성이 규성(奎星)과 누성(婁星)에 나타났다.

여름 6, 초하루 경진일에 일식이 있었다.

 

十一年 夏 大旱 禾苗焦枯 王親祭橫岳 乃雨. 五月 遣使倭國求大珠.

십일년 하 대한 화묘초고 왕친제횡악 내우. 오월 견사왜국구대주.

 

11(서기 402) 여름, 크게 가물어 벼가 타서 마르므로, 임금이 친히 횡악에서 제사를 지내니 곧 비가 내렸다.

5, 왜국(倭國)에 사신을 보내 큰 구슬을 요구하였다.

 

十二年 春二月 倭國使者至 王迎勞之 特厚. 秋七月 遣兵侵新羅邊境.

십이년 춘이월 왜국사자지 왕영노지 특후. 추칠월 견병침신라변경.

 

12(서기 403) 2, 왜국에서 사신이 왔다. 임금이 이들을 환영하고 위로하였으며 특별히 대우하였다.

가을 7, 병사를 보내 신라 변경을 침범하였다.

 

十四年 春三月 白氣自王宮西起 如匹練. 秋九月 王薨.

십사년 춘삼월 백기자왕궁서기 여필연. 추구월 왕훙.

 

14(서기 405) 3, 흰 기운이 왕궁 서쪽에서 일어났는데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가을 9, 임금이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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