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儋列傳]
<전담>
田儋者, 狄人也, 故斉王田氏族也. 儋従弟田栄, 栄弟田橫, 皆豪, 宗彊, 能得人.
전담자 적인야 고제왕잔씨족야. 담종제전영 영제전횡 게호 종강 능득인.
전담(田儋)은 적현(狄縣) 사람으로 옛 제(齊)나라 왕족 전씨(田氏)의 씨족이다. 전담의 사촌 동생 전영(田榮)과 전영의 동생 전횡(田橫)은 모두 호걸이었고 집안 내력이 강건하여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다.
陳渉之初起王楚也, 使周市略定魏地, 北至狄, 狄城守. 田儋詳為縛其奴, 従少年之廷, 欲謁殺奴. 見狄令, 因撃殺令, 而召豪吏子弟曰:「諸侯皆反秦自立, 斉, 古之建國, 儋, 田氏, 當王.」遂自立為斉王, 発兵以撃周市. 周市軍還去, 田儋因率兵東略定斉地.
진섭지초기왕초야 사주불약정위지 북지적 적성수, 전담상위박기노 종소년지정 욕알살노. 견적영 인격살영 이소호리자제왈 ‘재후개반진자립 제 고지건국 담 전씨 당왕’ 수자립위제왕 발병이격주불. 주불군환거 전담인솔병돌약정제지.
진섭(陳涉)은 처음 일어나 초왕(楚王)이 되어서 주불(周巿)에게 위(魏) 땅을 공략하게 하여 북으로 적현에 이르렀는데 적현은 성을 굳게 지켰다. 전담은 거짓으로 자기 노복을 묶고 젊은이들을 따라 관아에 이르러서 노복을 죽이겠다는 말을 아뢰려 하였다. 적현의 현령이 보이자 현령을 때려 죽이고는 호걸과 자제들을 불러 ‘제후들이 모두 진나라에 반대하여 자립하고 있소. 제나라는 오래전에 세워진 나라이고, 나 전담은 전씨이니 왕이 될 수 있소’라 하고는 드디어 제나라왕으로 스스로 옹립하여 병사를 일으켜 주불을 공격했다. 주불의 군대가 돌아가자 전담은 병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제나라 지역을 공략했다.
秦將章邯囲魏王咎於臨済, 急. 魏王請救於斉, 斉王田儋將兵救魏. 章邯夜銜枚撃, 大破斉、魏軍, 殺田儋於臨済下. 儋弟田栄収儋餘兵東走東阿.
진장장한위위왕구어임치 급. 위왕청구어제 제왕전담장병구위. 장한야함매격 대파제 위군 살전담어임제하. 담제전영수담여병동주동아.
진의 장수 장한(章邯)이 위왕 구(咎)를 임제(臨濟)에서 포위했는데 그 형세가 급했다. 위왕이 제에 구원을 요청했고, 제왕 전담은 병사를 이끌고 위를 구하러 나섰다. 장한은 밤에 하무를 물고 공격하여 제와 위의 군대를 대파하고는 임제 아래에서 전담을 죽였다. 전담의 동생 전영이 전담의 병사를 수습하여 동쪽 동아(東阿)로 달아났다.
<전영>
斉人聞王田儋死, 廼立故斉王建之弟田仮為斉王, 田角為相, 田閒為將, 以距諸侯.
제인문왕전담사 내립고제왕건지제전가위제왕 전각위상 전한위장 이거제후.
제나라 사람들은 왕 전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옛 제왕 전건(田建)의 동생인 전가(田假)를 제왕으로, 전각(田角)을 재상으로, 전간(田間)을 장군으로 삼아 제후들에게 대항하게 했다.
田栄之走東阿, 章邯追囲之. 項梁聞田栄之急, 廼引兵撃破章邯軍東阿下. 章邯走而西, 項梁因追之.
전영지주동아 장한추위지. 항양문정영지급 내인병격파장한군동아하. 장한주이서 항량인추지.
전영이 동아 땅으로 달아나자 장한은 추격해 그를 포위했다. 항량(項梁)은 전영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병사를 끌고 장한의 군사를 동아 땅 아래에서 격파했다. 장한이 달아나 서쪽으로 가자 향량이 그를 뒤쫓았다.
而田栄怒斉之立仮, 廼引兵帰, 撃逐斉王仮. 仮亡走楚. 斉相角亡走趙;角弟田閒前求救趙, 因留不敢帰. 田栄乃立田儋子市為斉王. 栄相之, 田橫為將, 平斉地.
이전영노제지입가 내인병귀 격추제왕가. 가망주초. 제상각망주조; 각제전간전구구조 인유불감귀. 전영내입전담자불위제왕. 영상지 전횡위장 평제지.
그리고 전영은 제나라 사람들이 전가를 왕으로 세운 것에 화가 나서 바로 병사를 이끌고 되돌아와서 제왕 전가를 내쫓았다. 전가는 초로 도망갔다. 제나라 재상 전각은 조(趙)로 도망쳤고, 전각의 동생 전간은 이에 앞서 조에 구원을 청하러 갔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며 돌아오지 않았다. 전영은 전담의 아들 전불(田巿)을 제왕으로 세워 그를 보좌했으며, 전횡은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평정했다.
項梁既追章邯, 章邯兵益盛, 項梁使使告趙、斉, 発兵共撃章邯. 田栄曰:「使楚殺田仮, 趙殺田角、田閒, 廼肯出兵.」楚懐王曰:「田仮與國之王, 窮而帰我, 殺之不義.」趙亦不殺田角、田閒以市於斉. 斉曰:「蝮螫手則斬手, 螫足則斬足. 何者? 為害於身也. 今田仮、田角、田閒於楚、趙, 非直手足戚也, 何故不殺? 且秦複得志於天下, 則齮齕用事者墳墓矣.」
항량기추장한 장한병익성 항량사사고조 제 발병공격장한. 전영왈 ‘사초살전가 조살전각 전간 내긍출병’ 초회왕왈 ; ‘전가여국지왕 궁이귀아 살지불의’ 저약불살전각 전간이시어제. 제왈 ‘복석수즉참수 석족즉참족 하자? 위해어신야. 금전가 전각 전간어초 조 비직수족척야 하고불살? 차진복득지어천하 즉기흘용사자분묘의’
항량이 앞서 장한을 추격했지만 장한의 병력이 더욱 강성해지자, 항량은 사신을 보내 조와 제에 알려 군대를 일으켜 장한을 함께 공격하자고 했다. 전영은 ‘초로 하여금 전가를 죽이게 하고, 조로 하여금 전각과 전간을 죽이게 한다면 바로 출병하겠다’고 했다. 초 회왕(懷王)은 ‘전가는 우방국의 왕으로서 궁지에 몰려 우리에게 의지하려는데 그를 죽이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조나라 역시 전각과 전간을 죽이면서까지 제와 거래하려 하지 않았다. 제는 ‘독사가 손을 물면 손을 자르고, 발을 물으면 발을 자른다. 왜 그런가? 몸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전가, 전각, 전간은 초, 조에게 있어서 손과 발처럼 가깝지 않은데 무슨 까닭으로 죽이지 않는가? 그리고 진이 다시 천하에서 뜻을 얻는다면 제멋대로 군 자들의 무덤까지 파헤칠 것이다’라고 했다.
楚、趙不聴, 斉亦怒, 終不肯出兵. 章邯果敗殺項梁, 破楚兵, 楚兵東走, 而章邯渡河囲趙於钜鹿. 項羽往救趙, 由此怨田栄.
초 조불청 제역노 종불긍출병. 장한과패살항량 파초병 초병동주 이장한도하위조어거록. 항우왕구조 유차원전영.
초와 조가 말을 듣지 않자 제 역시 화가 나서 끝까지 출병하려 하지 않았다. 장한은 예상대로 항량을 죽이고 초 군대를 격파했다. 초 군대가 동쪽으로 도주하니 장한은 황하를 건너가 거록(鉅鹿)에서 조를 포위했다. 항우(項羽)가 가서 조를 구했는데 이 때문에 전영을 원망하게 되었다.
項羽既存趙, 降章邯等, 西屠鹹陽, 滅秦而立侯王也, 廼徙斉王田市更王膠東, 治即墨. 斉將田都従共救趙, 因入関, 故立都為斉王, 治臨淄.
항우기존조 항장한등 서도함양 멸진이입후왕야 내사제왕전불경왕교동 치즉묵. 제장전도종공구조 인입관 고립도위제왕 치임치.
항우는 조를 존속시키고 장한 등의 항복을 받은 다음 서쪽으로 함양(咸陽)을 도륙하여 진을 멸망시키고 제후왕들을 세웠다. 제왕 전불을 교동왕(膠東王)으로 바꾸어 옮기고 즉묵(卽墨)을 도읍으로 다스리게 했다. 제위 장군 전도(田都)는 항우를 따라 함께 조를 구원하면서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전도를 제왕으로 세우고 임치를 도읍으로 삼게 했다.
故斉王建孫田安, 項羽方渡河救趙, 田安下済北數城, 引兵降項羽, 項羽立田安為済北王, 治博陽. 田栄以負項梁不肯出兵助楚、趙攻秦, 故不得王;趙將陳餘亦失職, 不得王:二人倶怨項王.
고제왕건손전안 항우방도하구조 전안하제북수성 인병항항우 항우입전안위제북왕 치박양 전영이부항량불긍출병조초 조공진 고하득왕; 조강진여역실직 부득왕: 이이구원항왕.
옛 제왕 전건의 손자 전안(田安)은 항우가 막 황하를 건너 조를 구원했을 때 제수(濟水) 북쪽의 몇 개의 성을 무찌른 뒤 군사를 거느리고 항우에게 항복했다. 항우는 전안을 제북왕(濟北王)으로 세우고 박양(博陽)에 도읍하게 했다. 전영은 항량을 거역하고 출병하여 초와 조를 원조하고 진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되지 못했다. 조의 장군 진여(陳餘) 역시 실각하여 왕이 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항왕(項王)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頊王既帰, 諸侯各就國, 田栄使人將兵助陳餘, 令反趙地, 而栄亦発兵以距撃田都, 田都亡走楚. 田栄留斉王市, 無令之膠東. 市之左右曰:「項王彊暴, 而王當之膠東, 不就國, 必危.」市懼, 廼亡就國. 田栄怒, 追撃殺斉王市於即墨, 還攻殺済北王安. 於是田栄廼自立為斉王, 盡並三斉之地.
현왕기귀 제후각취국 전영사인장병조진여 영반조지 이영역발병이거격전도 전오망주초. 전영유제왕불 무영지교동. 불지좌우왈 ; ‘항우강포 이왕당지교동 불취국 필위’ 불구 내망취국. 전영노 추격살제왕불어즉묵 환공살제북왕안. 어시전영내자립위제왕 진병삼제지지.
항왕이 돌아가고 제후들도 각자 제후국으로 돌아가자 전영은 사람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진여를 도와 조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전영 또한 병사를 징발하여 전도를 맞이하여 공격하자 전도는 초로 도망쳤다. 전영은 제왕 전불을 억류시키고 교동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전불의 측근들은 ‘항왕이 포악하기 때문에 왕께서는 교동으로 가야 합니다. 나라로 가지 못하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전불은 두려워 곧바로 도망쳐 나라로 갔다. 전영은 노하여 제왕 전불을 추격해 즉묵에서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제북왕 전안을 공격하여 죽였다. 이에 전영은 곧바로 스스로 제왕으로 즉위하여 삼제(三齊)의 땅을 모두 병합했다.
項王聞之, 大怒, 廼北伐斉. 斉王田栄兵敗, 走平原, 平原人殺栄. 項王遂焼夷斉城郭, 所過者盡屠之. 斉人相聚畔之. 栄弟橫, 収斉散兵, 得數萬人, 反撃項羽於城陽. 而漢王率諸侯敗楚, 入彭城.
항왕문지 대노 내북벌제. 제왕전영병패 주평원 평원인살영. 항왕수소리제성광 소과자진도지. 제인상취반지. 영제횡 수제산병 득수만인 반격항우어성양. 이한왕솔제후패초 입팽성.
항왕이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바로 북으로 제를 쳤다. 제왕 전영의 군대는 평원(平原)으로 달아났고 평원 사람들이 전영을 죽였다. 항왕은 마침내 제의 성곽에 불을 지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도륙했다. 제나라 사람들이 서로 모여 반발했다. 전영의 동생 전횡은 흩어졌던 병사를 수습하여 수만 명에 이르렀고 성양(城陽)에서 항우에게 반격했다. 한편 한왕(漢王)은 제후들을 이끌고 초를 무찌른 뒤 팽성(彭城)으로 들어갔다.
項羽聞之, 廼醳斉而帰, 撃漢於彭城, 因連與漢戦, 相距滎陽. 以故田橫複得収斉城邑, 立田栄子広為斉王, 而橫相之, 専國政, 政無巨細皆斷於相.
항우문지 내역제이귀 격한어팽성 인연여한전 상거형양. 이고전횡복득수제성읍 입전영자광위제왕 이횡상지 전국정 정무거세개단어상.
항우는 이 소식을 듣자 바로 제를 포기하고 귀국해 팽성에서 한(漢)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한과의 전투가 잇따라 벌어졌고, 형양(滎陽)에서 서로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전횡은 다시 제의 성읍을 수습하여 전영의 아들 전광(田廣)을 제왕으로 옹립했다. 전횡은 재상이 되어 국정을 도맡았는데, 크고 작은 국정 모두를 재상 선에서 결정했다.
<전횡>
橫定斉三年, 漢王使酈生往説下斉王広及其相國橫. 橫以為然, 解其歴下軍. 漢將韓信引兵且東撃斉. 斉初使華無傷、田解軍於歴下以距漢, 漢使至, 廼罷守戦備, 縦酒, 且遣使與漢平.
횡정제삼년 한왕사역생왕설하제왕광급기상국횡. 횡이위연 해기력하군, 한 장한신인병차동격제. 제초사화무상 전해군어역하이거한 한사지 내태수전비 종주 차견사여한평.
전횡이 제나라를 평정한 지 3년, 한왕은 역생(酈生)을 시켜 제왕 전광과 그 상국 전횡에게 가서 항복을 설득하게 했다. 전횡은 그것을 받아들여 역하(歷下)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한나라 장군 한신(韓信)은 병사를 끌고 동쪽으로 제를 공격하려고 했다. 제는 당초 화무상(華毋傷)과 전해(田解)를 시켜 역하 땅에 주둔하여 한에 맞서게 했다. 한의 사신이 이르자 수비를 풀고 술을 내리는 한편 사신을 보내 한과 화평하고자 했다.
漢將韓信已平趙、燕, 用蒯通計, 度平原, 襲破斉歴下軍, 因入臨淄. 斉王広、相橫怒, 以酈生売己, 而亨酈生. 斉王広東走高密, 相橫走博(陽), 守相田光走城陽, 將軍田既軍於膠東.
한 장한신이평조 연 용괴통계 도평원 습파제역하군 인입임치. 제왕광 상횡노 이역생매기 이형역생. 제왕광동주고밀 상횡주박양 수상전광주성양 장군전기군어교동.
한의 장군 한신은 이미 조와 연을 평정했고, 괴통(蒯通)의 계략에 따라 평원(平原) 나루를 건너 제의 역하(歷下) 군대를 습격하고 그 기세로 임치로 들어갔다. 제왕 전광과 국상 전횡은 화가 났고, 역생이 자신들을 팔아넘겼다고 여겨서 역생을 삶아 죽였다. 제왕 전광은 동쪽 고밀(高密)로 달아났고, 국상 전횡은 박(博)으로 달아났으며, 임시 재상 전광(田光)은 성양(城陽)으로 달아났고, 장군 전기(田旣)는 교동(膠東)에 주둔했다.
楚使竜且救斉, 斉王與合軍高密. 漢將韓信與曹參破殺竜且, 虜斉王広. 漢將潅嬰追得斉守相田光. 至博(陽), 而橫聞斉王死, 自立為斉王, 還撃嬰, 嬰敗橫之軍於嬴下. 田橫亡走梁, 帰彭越.
초사용저구제 제왕여합군고밀. 한 장한신여조참파살용저 노제왕광. 한 장관영추득제수상전광. 지박양 이횡문제왕사 자립위제왕 환격영 영패횡지군어영하. 전횡망주양 귀팽월.
초는 용저(龍且)에게 제를 구원하게 하고 제왕과 고밀에서 군을 합쳤다. 한의 장수 한신과 조참(曹參)은 용저를 죽이고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 한의 장군 관영(灌嬰)은 제의 임시 재상 전광을 추격해 사로잡고 박양에 이르렀다. 그리고 전횡은 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왕으로 자립하여 관영에게 반격을 가했다. 관영은 전횡의 군대를 영(嬴) 아래에서 패배시켰다. 전횡은 양(梁)으로 달아나 팽월(彭越)에게로 귀순했다.
彭越是時居梁地, 中立, 且為漢, 且為楚. 韓信已殺竜且, 因令曹參進兵破殺田既於膠東, 使潅嬰破殺斉將田吸於千乗. 韓信遂平斉, 乞自立為斉仮王, 漢因而立之.
팽월시시거양지 중립 차위한 차위초. 한신이살용저 인영조참진병파살전기어교동 사관영파살제장전흡어천승. 한신수평제 걸자립위제가왕 한인이립지.
팽월은 당시에 양 땅을 거점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한을 편들기도 하고 초를 편들기도 했다. 한신이 용저를 죽이고는 조참에게 진군하여 교동에서 전기를 죽이게 했으며, 관영에게는 제의 장군 전흡(田吸)을 천승(千乘)에서 죽이게 했다. 한신은 마침내 제를 평정하고 자신이 제의 임시 왕이 되길 요청하니 한은 그 참에 한신을 세웠다.
後歳餘, 漢滅項籍, 漢王立為皇帝, 以彭越為梁王. 田橫懼誅, 而與其徒屬五百餘人入海, 居島中. 高帝聞之, 以為田橫兄弟本定斉, 斉人賢者多附焉, 今在海中不収, 後恐為亂, 廼使使赦田橫罪而召之. 田橫因謝曰:「臣亨陛下之使酈生, 今聞其弟酈商為漢將而賢, 臣恐懼, 不敢奉詔, 請為庶人, 守海島中.」
후세여 한멸항적 한왕립위황제 이팽월위양왕. 전횡구주 이여기도속오백여인입해 거도중. 고제문지 이위전횡형제본정제 제인현자다부언 금재해중불수 후공위한 내사사사전횡죄이소지. 전횡인사왈: ‘신형폐하지사역생 금문기제역상위한장이현 신공구 불감봉조 청위서인 수해도중’
그로부터 1년여 뒤, 한은 항적(項籍)을 멸망시켰고, 한왕은 황제로 즉위하여 팽월을 양왕으로 삼았다. 전횡은 죽을까 겁이 나서 그 무리 500여 명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 섬에 살았다. 고제가 이를 듣고는 전횡 형제가 본래 제를 평정했고 제의 현자들이 많이 그를 따르는 바 지금 바다에서 두고 수습하지 않으면 나중에 난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고 여겨 사신을 보내 전횡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불러들였다. 이에 전횡은 ‘신은 폐하의 사신 역생을 삶아 죽였고, 지금 듣자하니 그 동생 역상(酈商)이 한의 장수인데다 어질다고 합니다. 신은 두려워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으니 서인이 되어 바다의 섬을 지키게 해주십시오’라며 사양했다.
使還報, 高皇帝廼詔衛尉酈商曰:「斉王田橫即至, 人馬従者敢動揺者致族夷!」廼複使使持節具告以詔商狀, 曰:「田橫來, 大者王, 小者廼侯耳;不來, 且挙兵加誅焉.」田橫廼與其客二人乗傳詣雒陽.
사환보 고황제내조위위역상왈: ‘제왕전횡즉지 인마종자감동요자치족이!’ 내복사사지절구고이조상장 왈 ‘전횡래 대자왕 소자내후이; 불래 차거병가주언’ 잔횡내여기객이인승전지락양.
사신이 돌아와 보고하자 고제는 곧바로 위위(衛尉) 역상에게 ‘제왕 전횡이 왔을 때 그를 따르는 사람과 말을 괴롭히는 자는 일족을 멸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리고 바로 다시 사신에게 부절을 가지고 역상에게 조서를 내린 상황을 알리고는 ‘전횡이 오면 크게는 왕, 작게는 후로 삼을 것이나, 오지 않으면 군대를 일으켜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전횡은 곧 자신의 빈객 두 사람과 함께 역마를 타고 낙양(雒陽)으로 갔다.
未至三十里, 至屍郷廄置, 橫謝使者曰:「人臣見天子當洗沐.」止留.
미지삼십리 지시향구치 횡사사자왈 ‘인신견천자당세목’ 지류.
30리가 채 안 되는 시향(尸鄕)의 역마에 이르러 전횡은 사신에게 ‘신하된 자가 천자를 뵙는데 목욕은 해야지요’라 하고는 머물렀다.
謂其客曰:「橫始與漢王倶南面稱孤, 今漢王為天子, 而橫廼為亡虜而北面事之, 其恥固已甚矣. 且吾亨人之兄, 與其弟並肩而事其主, 縦彼畏天子之詔, 不敢動我, 我獨不愧於心乎? 且陛下所以欲見我者, 不過欲一見吾面貌耳. 今陛下在洛陽, 今斬吾頭, 馳三十里閒, 形容尚未能敗, 猶可観也.」遂自剄, 令客奉其頭, 従使者馳奏之高帝.
위기객왈 ‘횡시여한왕구남면칭고 금한왕위천자 이횡내위망노이북면사지 기치고이심의. 차오형인지형 여기제병견이사기주 종치외천자지조 불감동아 아독불괴어심호? 차폐하하소이욕견아자 불과욕일견오면모이. 금폐하재락양 금참오두 치삼십리간 형용상미능패 유가관야’ 수자경 영객봉기두 종사자치진지고제.
그리고는 그 빈객에게 ‘이 전횡은 처음 한왕과 함께 남면하여 고(孤)로 칭했소.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었고 이 전횡은 도망다니는 포로로서 북면하여 그를 섬겨야 하니 그 수치가 참으로 심하오. 그리고 내가 남의 형을 삶아 죽이기도 그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주인을 섬겨야 하니, 저 무시한 천자의 조서로도 감히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내가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소? 지금 폐하께서 낙양에 계시니 지금 내 목을 잘라 30리를 말로 달리면 모습을 알아볼 만할 것이오’라 하고는 자신의 목을 잘라 빈객에게 그 머리를 들고 사신을 따라 말을 달려 고제에게 아뢰게 했다.
高帝曰:「嗟乎, 有以也夫! 起自布衣, 兄弟三人更王, 豈不賢乎哉!」為之流涕, 而拝其二客為都尉, 発卒二千人, 以王者禮葬田橫.
고제왈 ‘차호 유이야부! 기자포의 형제삼인경왕 이불현호재!’ 위지유체 이배기이객위도위 발졸이천인 이왕자예장전횡.
고제는 ‘오호라, 이유가 있었구나! 평민으로 일어나 형제 셋이 돌아가며 왕이 되었으니 어찌 지혜롭지 않을 것인가’라 하고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전횡의 빈객 두 사람은 도위로 삼고, 군졸 2천 명을 선발하여 왕의 예로 전횡의 장례를 치르게 했다.
既葬, 二客穿其塚旁孔, 皆自剄, 下従之. 高帝聞之, 廼大驚, 大田橫之客皆賢. 吾聞其餘尚五百人在海中, 使使召之. 至則聞田橫死, 亦皆自殺. 於是廼知田橫兄弟能得士也.
기장 이객천기총방공 개자경 하종지. 고제문지 내대경 대전횡지객개현. 오문기여상오백인재해중 사사소지. 지즉문전횡사 역개자살. 어시내지전횡영제능즉사야.
장례가 끝나자 두 빈객은 무덤 옆에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목을 그어 쓰러져 전횡을 따랐다. 고제가 이 소식을 듣고는 크게 놀라며 전횡의 빈객들이 모두 대단히 어질다고 생각했다. 내가 듣기에 그 나머지 5백 명은 바다에 있었는데 사신을 시켜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이르러 전횡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들 역시 모두 자살하니 이로써 전횡의 형제가 인재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甚矣蒯通之謀, 亂斉驕淮陰, 其卒亡此両人! 蒯通者, 善為長短説, 論戦國之権変, 為八十一首. 通善斉人安期生, 安期生嘗幹項羽, 項羽不能用其筴. 已而項羽欲封此両人, 両人終不肯受, 亡去. 田橫之高節, 賓客慕義而従橫死, 豈非至賢! 餘因而列焉. 不無善畫者, 莫能図, 何哉?
태사공욀: 심의괴통지모 난제교회음 기졸망차양인! 괴통자 선위장단설 논전국지권변 위팔십일수, 동선제인안기생 안기생상간항우 항우불능용기책. 이이항우욕봉차양인 양인종불긍수 망거. 전횡지고절 빈객모의이종횡사 이비지현! 여인이열언. 불무선획자 막능도 하재?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괴통(蒯通)의 계략이 괴이하구나! 제를 어지럽히고 회음후를 교만하게 만들어 끝내 두 사람을 망쳤으니! 괴통이란 자는 말솜씨가 뛰어나 전국시대의 권모와 변화를 논하여 81편으로 만들었다. 괴통은 제나라 사람 안기생(安期生)과 잘 지냈는데 안기생은 일찍이 항우에게 벼슬자리를 얻기 바랐지만 항우는 그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얼마 뒤 항우가 이 두 사람을 책봉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받지 않고 달아났다. 전횡은 고상한 절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빈객들이 그의 의리를 흠모해 따라 죽은 것은 어찌 더할 수 없는 현명함이 아니리요! 나는 이런 까닭에 그를 열전에 넣었다. 기획력이 뛰어난 자가 없지 않았을 텐데 왜 이루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