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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列傳-黥布列傳


[ 卷九十一. 黥布列傳 ]

 

黥布者, 六人也, 姓英氏. 秦時為布衣. 少年, 有客相之曰:「當刑而王.

경포자 육인야 성영씨. 진시위포의. 소년 유객상지왈 : ‘당형이왕

 

경포(黥布)는 육() 사람으로 성은 영씨(英氏)이고, () 때는 평민이었다.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상을 보고 형벌을 이겨내고 그 뒤에 왕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及壯, 坐法黥. 布欣然笑曰;「人相我當刑而王, 幾是乎?」人有聞者, 共俳笑之. 布已論輸麗山, 麗山之徒數十萬人, 布皆與其徒長豪桀交通, 廼率其曹偶, 亡之江中為群盜.

급장 좌법경. 포흔연소왈; ‘인상아당형이왕 기시호?’ 인유문자 공배소지. 포이론수여산 여산지도수십만인 포개여기도장호걸교통 내솔기조우 망지강중위군도.

 

장년이 되었을 때에 법에 연루되어 경형(黥刑,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 즉 묵형)을 받게 되자 영포가 기쁘게 웃으며 어떤 사람이 나의 상을 보고 형벌을 받아야 되고 그 뒤에 왕이 되겠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이것이겠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놀리며 웃어댔다. 영포는 판결을 받고 여산(麗山)으로 보내졌다. 여산에는 죄수의 무리가 수십만 명이나 있었는데, 영포는 그 무리의 우두머리나 호걸들과 사귀며 내통했다. 그런 뒤에 그 무리를 이끌고 양자강(揚子江) 부근으로 달아나서 떼도둑이 되었다.

 

陳勝之起也, 布廼見番君, 與其衆叛秦, 聚兵數千人. 番君以其女妻之.

진승지기야 초내견파군 여기중반진 취병수천인. 파군이기녀처지.

 

진승(陳勝)이 군사를 일으키자, 영포는 곧 파군(番君)을 만나서, 그의 무리와 함께 진을 배반하고 수천 명의 군사를 모았다. 파군은 자기의 딸을 영포의 아내로 주었다.

 

章邯之滅陳勝, 破呂臣軍, 布乃引兵北撃秦左右校, 破之清波, 引兵而東. 聞項梁定江東會稽, 渉江而西. 陳嬰以項氏世為楚將, 廼以兵屬項梁, 渡淮南, 英布蒲將軍亦以兵屬項梁.

장한지멸진승 파여신군 포내인병북격진좌우교 파지청파 인병이동. 문항량정강동회계 섭강이서. 진영이항씨세위초장 내이병속항량 도회남 영포 포장군역이병속항량.

 

장한(章邯)이 진승을 멸하고 여신(呂臣)의 군사를 격파하자, 영포는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의 좌우 교위(校尉)를 공격해 청파(淸波)에서 격파하고,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갔다. 항량(項梁, 항우의 숙부)이 강동(江東)의 회계(會稽)를 평정하고 양자강을 건너 서쪽으로 온다고 들었다. 진영(陳嬰)은 항씨(項氏) 집안이 대대로 초()의 장군이었음을 알고 군사를 항량에게 귀속시키고 회남(淮南)으로 건너갔다. 영포와 포장군(蒲將軍) 또한 군사를 항량에게 귀속시켰다.

 

項梁渉淮而西, 撃景駒秦嘉等, 布常冠軍. 項梁至薛, 聞陳王定死, 廼立楚懐王. 項梁號為武信君, 英布為當陽君.

항량섭회이서 격경구 진가등 포상관군. 항량지설 문진왕정사 내립초회왕. 항량호위무신군 양포위당양군.

 

항량이 회수(淮水)를 건너 서쪽으로 가서 경구(景駒진가(秦嘉) 등을 공격했는데, 영포는 언제나 선봉에 있었다. 항량이 설()에 이르러 진왕(陳王)이 확실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초회왕(楚懷王)을 세웠다. 그리고 항량의 호를 무신군(武信君)이라고 했고, 영포는 당양군(當陽君)이라고 했다.

 

項梁敗死定陶, 懐王徙都彭城, 諸將英布亦皆保聚彭城. 當是時, 秦急囲趙, 趙數使人請救. 懐王使宋義為上將, 範曾為末將, 項籍為次將.

항량패사정도 회왕사도팽성 제장영포역개보취팽성. 당시시 진급위조 조수사인청구. 회왕사송위위상장 범증위말장 항적위차장.

 

항량이 패해 정도(定陶)에서 죽자, 회왕은 도읍을 팽성(彭城)으로 옮겼다. 여러 장군들과 영포 또한 팽성에 모여 수비했다. 이때 진이 급히 조()를 포위하고 공격하니, 조는 몇 차례나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청했다. 회왕은 송의(宋義)를 상장(上將)으로 삼고, 범증(范曾)을 말장(末將)으로, 항적(項籍)을 차장(次將)으로 삼았다.

 

英在蒲將軍皆為將軍, 悉屬宋義, 北救趙. 及項籍殺宋義於河上, 懐王因立籍為上將軍, 諸將皆屬項籍. 項籍使布先渡河撃秦, 布數有利, 籍廼悉引兵渉河従之, 遂破秦軍, 降章邯等. 楚兵常勝, 功冠諸侯. 諸侯兵皆以服屬楚者, 以布數以少敗衆也.

영재 포장군개위장군 실속송의 북구조. 급항적살송의어하상 회왕인입적위상장군 제장개속항적. 항적사포선도하격진 포수유리 적내실인병섭하종지 수파진군 항장한등. 초병상승 공관제후. 제후병개이복속초자 이포수이소패중야.

 

영포와 포장군도 모두 장군으로 삼아 송의에게 배속시키고, 북쪽으로 가서 조를 구하게 했다. 항적이 황하(黃河) 가에서 송의를 죽이자, 회왕이 항적을 세워 상장군으로 삼고 여러 장군들을 모두 항적에게 배속시켰다. 항적이 영포에게 먼저 황하를 건너 진을 공격하게 했다. 영포가 여러 번 승리하자 항적도 이에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영포를 뒤따라가 마침내 진의 군대를 격파하고, 장한 등을 항복시켰다. 초 군대는 항상 승리해 그 공이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제후들의 군대가 모두 초에 복속하게 된 것은 영포가 여러 차례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군을 깨뜨렸기 때문이었다.

 

項籍之引兵西至新安, 又使布等夜撃阬章邯秦卒二十餘萬人. 至関, 不得入, 又使布等先従閒道破関下軍, 遂得入, 至鹹陽. 布常為軍鋒. 項王封諸將, 立布為九江王, 都六.

항적지인병서지신안 우사포등야격갱장한진졸이십여만인. 지관 부득입 우사포등선종한도파관하군 수득인 지함양. 포상위군봉, 항왕봉제장 입포위구강왕 도육.

 

항적이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신안(新安)에 이르러, 또 영포 등을 시켜 한밤중에 장한의 군대를 습격해 진 병사 20여 만 명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러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또 영포에게 먼저 샛길로 쳐들어가서 함곡관 아래에 있는 진 군대를 깨뜨리게 하여 드디어 함곡관에 들어가 함양(咸陽)에 이르렀다. 영포는 늘 군의 선봉이었다. 항왕(項王, 항우)이 여러 장수들을 봉하면서 영포를 구강왕(九江王)으로 세우고 육()에 도읍하게 했다.

 

漢元年四月, 諸侯皆罷戯下, 各就國. 項氏立懐王為義帝, 徙都長沙, 廼陰令九江王布等行撃之. 其八月, 布使將撃義帝, 追殺之郴県.

한원년사월 제후개파희하 각쉬국, 항씨입회왕위의제 사도장사 내음영구강왕포등행격지.. 기팔월 포사장격의제 추살지참현.

 

() 원년 4월에 제후들이 모두 항왕의 휘하에서 떠나 각자 자기의 봉국으로 갔다. 항씨는 회왕을 세워 의제(義帝)로 삼고, 도읍을 장사(長沙)로 옮기고 은밀히 구강왕 영포 등에게 명해 그를 치게 했다. 그해 8월에 영포가 장수를 시켜 의제를 치고 침현(郴縣)까지 쫓아가 죽였다.

 

漢二年, 斉王田栄畔楚, 項王往撃斉, 徴兵九江, 九江王布稱病不往, 遣將將數千人行. 漢之敗楚彭城, 布又稱病不佐楚.

한이년 제왕전영반초 항왕왕격제 징병구강 구강왕포칭병불왕 견장장수천인행. 한지패토팽성 포우칭병불좌초.

 

2년에 제왕(齊王) 전영(田榮)이 초를 배반하자, 항왕이 제를 치러 가면서 구강에서 군사를 징발했다. 구강왕 영포는 병을 핑계로 따라가지 않고, 장수를 시켜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가게 했다. 한이 팽성에서 초를 격파했을 때에도 영포는 또 병을 핑계대면서 초를 돕지 않았다.

 

項王由此怨布, 數使使者誚譲召布, 布愈恐, 不敢往. 項王方北憂斉, 西患漢, 所與者獨九江王, 又多布材, 欲親用之, 以故未撃.

항왕유차원포 수사사자초양소포 포유공 불감왕. 항왕방북우제 조 사환한 소여자독구강왕 우다포재 욕친용지 이고미격.

 

항왕이 이로 말미암아 영포를 원망하고,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책망하며 영포를 불렀다. 영포는 더욱 두려워하며 감히 가지 못했다. 항왕은 북쪽으로는 제와 조를 우려하고, 서쪽으로는 한을 근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구강왕뿐이었다. 게다가 영포의 재능이 많았기 때문에, 그와 친근하게 기용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포를 치지 않았다.

 

漢三年, 漢王撃楚, 大戦彭城, 不利, 出梁地, 至虞, 謂左右曰:「如彼等者, 無足與計天下事.謁者隨何進曰:「不審陛下所謂.漢王曰

한삼년 한왕격초 대전팽성 불리 출양지 지우 위좌우왈 여피등자 무족여계천하사알자수하진왈: ‘불심폐하소위한왕왈:

 

(3년에) 한왕이 초를 공격해 팽성에서 크게 싸웠지만 불리해 양() 땅에서 퇴각해서 우()에 이르자 좌우의 신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 같은 자들과는 함께 천하의 일을 도모할 수가 없구나.”라고 하자, 알자(謁者, 빈객을 주인에게 안내하는 사람) 수하(隨何)가 나와서 폐하(陸下)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한왕이 말했다.

 

孰能為我使淮南, 令之発兵倍楚, 留項王於斉數月, 我之取天下可以百全.

숙능위아사회남 영지발병배초 유항왕어제수월 아지취천하가이백전

 

누가 나를 위하여 회남(淮南)에 사자로 가서, 영포에게 군대를 일으켜 초를 배반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항왕을 몇 달 동안만 머무르게 한다면, 내가 천하를 얻는 것은 백% 가능할 것이다.’

 

隨何曰:「臣請使之.廼與二十人倶, 使淮南. , 因太宰主之, 三日不得見. 隨何因説太宰曰

수하왈 신청사지내여이십인구 사회남. 지 인태재주지 삼일부득견. 수하인세태재왈;

 

수하가 신이 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수하가 스무 명을 데리고 회남에 사신으로 갔다. 도착한 후 태재(太宰)의 집에 머물렀는데, 사흘이나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수하가 기회를 보아 태재에게 말했다.

 

王之不見何, 必以楚為彊, 以漢為弱, 此臣之所以為使. 使何得見, 言之而是邪, 是大王所欲聞也言之而非邪, 使何等二十人伏斧質淮南市, 以明王倍漢而與楚也.

왕지불견하 필이초위강 이한위약 차신지소이위사. 사하득견 언지이시야 시대왕소욕간야; 언지이비야 사하등이십인복부질회남시 이명왕배한이여초야

 

왕께서 저를 만나주시지 않는 것은 분명히 초가 강하고 한이 약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자로 왔습니다. 제게 왕을 뵙게 해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옳다면 이는 대왕께서 듣고 싶어 하실 바이고, 제가 드리는 말씀이 그르다면 저희 스무 명을 회남의 저자에서 부질(斧質: 도끼자루 같은 형틍에 매이는)의 형벌에 처하면 왕께서 한을 배반하고 초와 함께한다는 것을 밝히십시오.’

 

太宰廼言之王, 王見之. 隨何曰:「漢王使臣敬進書大王禦者, 竊怪大王與楚何親也.淮南王曰:「寡人北郷而臣事之.隨何曰

태재내언지왕 왕견지. 수하왈 한왕사신경진서대왕어자 절괴대왕여초하친야회남왕왈 과인북향이신사지수하왈:

 

태재가 그의 말을 왕께 아뢰자, 왕은 그를 만났다. 수하가 말하기를 한왕께서 저에게 공경히 편지를 대왕의 측근에게 드리게 했습니다. 저는 대왕께서 초와 어떠한 친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했다. 회남왕이 과인은 북쪽을 향해 신하로서 섬기고 있소.’라고 말하니, 수하가 말했다.

 

大王與項王倶列為諸侯, 北郷而臣事之, 必以楚為彊, 可以託國也. 項王伐斉, 身負板築, 以為士卒先, 大王宜悉淮南之衆, 身自將之, 為楚軍前鋒, 今廼発四千人以助楚. 夫北面而臣事人者, 固若是乎

대왕여항왕구열위제후 북향이신사지 필이초위강 가이탁국야. 항왕벌제 신부판축 이위사졸선 대왕의실회남지중 신자장지 위초군전봉 금내발사천인이조초. 부북면이신사인자 고약시호?

 

대왕께서는 항왕과 함께 제후의 항렬에 있으면서도, 북향해 신하로서 섬기는 것은 반드시 초가 강해 나라를 의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항왕이 제를 치면서 친히 성을 쌓기 위한 판자나 공이를 짊어지고 사졸들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대왕께서도 마땅히 회남의 무리를 모두 동원해 몸소 그들을 이끌고 초 군대의 선봉이 되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겨우 사천 명을 보내 초를 돕고 있습니다. 무릇 북쪽을 향해 신하로서 남을 섬기는 사람이 이렇게 해야 되겠는지요?

 

夫漢王戦於彭城, 項王未出斉也, 大王宜騒淮南之兵渡淮, 日夜會戦彭城下, 大王撫萬人之衆, 無一人渡淮者, 垂拱而観其孰勝. 夫託國於人者, 固若是乎

부한왕전어팽성 항왕미출제야 대왕의소회남지병도회 일야회전팽성하 대왕무만인지중 무일인도회자 수공이관기숙승. 부탁국어인자 고약시호?

 

또한 한왕이 팽성에서 싸울 때도 항왕이 제를 떠나기 전에 대왕께서는 마땅히 회남의 군사를 모두 동원해 회수를 건너가 밤낮으로 팽성 아래에서 한왕과 맞붙어 싸웠어야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만여 대군을 거느리시고도 한사람도 회수를 건너게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누가 이기는지를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무릇 나라를 남에게 의탁하셨다면서 진실로 이렇게 할 수 있으십니까?

 

大王提空名以郷楚, 而欲厚自託, 臣竊為大王不取也. 然而大王不背楚者, 以漢為弱也.

대왕제공명이향초 이욕후자탁 신절위대왕불취야. 연이대왕불배초자 이한위약야.

 

대왕께서는 헛된 명분으로 초를 섬기면서 두텁게 자신을 맡기고자 하십니다. 저는 대왕께서 이를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초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한이 약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夫楚兵雖彊, 天下負之以不義之名, 以其背盟約而殺義帝也. 然而楚王恃戦勝自彊, 漢王収諸侯, 還守成皐滎陽, 下蜀漢之粟, 深溝壁壘, 分卒守徼乗塞,

부초병수강 천하부지이불의지명 이기배맹약이살의제야. 연이포왕시전승자강 한왕수제후 환수성고 영양 하촉 한지속 심수벽루 분졸수요승새.

 

저 초 군대가 비록 강하지만 온 천하가 불의(不義)의 오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이는 초왕이 맹약을 저버리고 의제(義帝)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 초왕은 전승을 믿고 스스로 강하다고 하지만, 한왕은 제후들을 거두어 돌아와서는 성고(成皐)와 형양(滎陽)을 지키고 있으며, ()과 한()의 식량을 날라 오고 도랑을 깊이 파고 성벽을 굳게 하며, 군사를 나누어 변경을 지키고 요새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楚人還兵, 閒以梁地, 深入敵國八九百里, 欲戦則不得, 攻城則力不能, 老弱転糧千里之外楚兵至滎陽成皐, 漢堅守而不動, 進則不得攻, 退則不得解. 故曰楚兵不足恃也.

초인환병 간이양지 심입적국팔구백리 욕전즉부득 공성즉역불능 노약전량천리지외; 초병지형양 성고 한견수이부동 진즉부득공 퇴즉부득해. 고왈초병부족시야.

 

초 군대가 제에서 초로 돌아가려면 가운데 있는 양() 땅을 넘어서 적국을 8~9백 리나 깊이 들어가야 하니, 싸우고자 해도 싸울 수가 없고, 성을 공격하려 해도 힘이 모자라며, 노약자들이 천리 밖에서 식량을 날라 와야 합니다. 초 군대가 형양과 성고에 도착하더라도 한이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초 군대는 나아가 공격할 수도 없고 물러나 포위를 풀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초 군대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使楚勝漢, 則諸侯自危懼而相救. 夫楚之彊, 適足以致天下之兵耳. 故楚不如漢, 其勢易見也.

사초승한 즉제후자위구이상구, 부초지강 적족이치천하지병이. 고초불여한 기세이견야.

 

만약 초가 한을 이긴다면 제후들은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두려워서 서로 구원할 것입니다. 무릇 초가 강대해지면 단지 천하의 군대를 불러들이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초가 한만 못하다는 정세를 쉽게 엿볼 수 있습니다.

 

今大王不與萬全之漢而自託於危亡之楚, 臣竊為大王惑之. 臣非以淮南之兵足以亡楚也. 夫大王発兵而倍楚, 項王必留留數月, 漢之取天下可以萬全.

금대왕불여만전지한이자탁어위망지초 신절위대왕혹지. 신비이회남지병족이망초야. 부대왕발병이배초 항왕필유; 유수월 한지취천하가이만전.

 

지금 대왕께서는 모든 것이 안전한 한과 함께 하지 않고, 멸망의 위기에 처한 초에 스스로 의탁하려 하시니, 저는 대왕을 의혹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회남의 병력만으로 초를 멸망시키기에 넉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출병하여 초를 배반하시면, 항왕은 반드시 제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항왕을 몇 달만이 머물게 한다면, 한이 천하를 취하는 것은 만의 하나의 실수도 없을 것입니다.

 

臣請與大王提剣而帰漢, 漢王必裂地而封大王, 又況淮南, 淮南必大王有也. 故漢王敬使使臣進愚計, 願大王之留意也.

신청여대왕제검이귀한 한왕필열지이봉대왕 우황회남 회남필대왕유야. 고한왕경사사신진우계 원대왕지유의야

 

제가 대왕과 함께 칼을 차고 한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한왕은 반드시 땅을 떼어서 대왕을 봉하실 것이니, 하물며 회남 땅뿐이겠습니까? 회남 땅은 반드시 대왕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왕이 공경히 저를 사신으로 보내 어리석은 계책을 드리게 한 것이니, 대왕께서는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淮南王曰:「請奉命.陰許畔楚與漢, 未敢泄也.

회남왕왈 청봉명음허반초여한 미감설야.

 

이에 회남왕은 말씀에 따르겠소.’라고 했다. 회남왕이 은밀히 초를 배반하고 한과 한편이 되겠다고 허락했지만, 감히 발설하지는 않았다.

 

楚使者在, 方急責英布発兵, 舎傳舎. 隨何直入, 坐楚使者上坐, :「九江王已帰漢, 楚何以得発兵?」布愕然.

초사자재 방급책영포발병 사전사, 수하직입 좌초사자상좌 왈 구강왕이귀한 초하이득발병?’ 포악연.

 

초 사자가 회남왕에게 와 있으면서 급히 군대를 출동시키라고 영포에게 독촉하며 객사에 머물고 있었다. 수하는 곧바로 뛰어 들어가서 초 사자의 윗자리에 앉아 구강왕이 이미 한에 귀속했는데, 초가 어떻게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겠소?’라고 말하자, 영포는 깜짝 놀랐다.

 

楚使者起. 何因説布曰:「事已搆, 可遂殺楚使者, 無使帰, 而疾走漢並力.布曰:「如使者教, 因起兵而撃之耳.

초사자기 하인세포왈 : ‘사기구 가수살초사자 무사귀 이질주한병력포왈 여사자교 인기병이격지이

 

초의 사자는 일어났다. 수하가 영포를 설득해 말하기를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초 사자를 죽여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빨리 한나라로 달려가서 힘을 합칩시다.’라고 하자, 영포는 그대가 말한 대로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겠소.’라고 말했다.

 

於是殺使者, 因起兵而攻楚. 楚使項聲竜且攻淮南, 項王留而攻下邑. 數月, 竜且撃淮南, 破布軍. 布欲引兵走漢, 恐楚王殺之, 故閒行與何倶帰漢.

어시살사자 인기병이공초. 초사항성 용저공회남 항왕유이공하읍. 수월 용저격회남 파포군, 초욕인병주한 공초왕살지 고간행여하구뒤한.

 

이리하여 사자를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초를 공격했다. 초에서는 항성(項聲)과 용저(龍且)를 시켜 회남을 치게 하고, 항왕은 그대로 머물면서 하읍(下邑)을 쳤다. 몇 달 걸려 용저가 회남을 쳐서 영포의 군대를 깨뜨렸다. 영포는 군대를 이끌고 한으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초왕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 샛길로 수하와 함께 한으로 돌아갔다.

 

淮南王至, 上方踞床洗, 召布入見, ()大怒, 悔來, 欲自殺.

회남왕지 상방거상세 소포입견 포심대노 회래 욕자살.

 

회남왕이 이르렀을 때에 한왕이 마침 평상에 걸터앉아 발을 씻기고 있다가 영포를 불러들여 만났다. 이에 영포는 너무 화가 나서 한으로 온 것을 후회하고 자살하려고 했다.

 

出就舎, 帳禦飲食従官如漢王居, 布又大喜過望. 於是廼使人入九江. 楚已使項伯収九江兵, 盡殺布妻子.

출취사 장어음식종관여한왕거 포우대희과망. 어시내사인입구강. 초이사항백수구강병 진살포처자.

 

물러나와 숙소로 나아가니 휘장과 의복, 음식이나 시종들이 한왕의 거처와 같았다. 영포는 바라던 것보다도 좋은 대우에 크게 기뻐했다. 이에 사람을 시켜서 구강에 들어가게 했더니, 초는 이미 항백(項伯)에게 구강의 군대를 몰수하고 영포의 아내와 자식을 모조리 죽이게 한 뒤였다.

 

布使者頗得故人幸臣, 將衆數千人帰漢. 漢益分布兵而與倶北, 収兵至成皐. 四年七月, 立布為淮南王, 與撃項籍.

영사자파득고인행신 장중수천인귀한. 한익분포병이여구북 수병지성고. 사년칠월 입포위회남왕 여격항적.

 

영포의 사자는 오랜 친구들과 총신들을 꽤 많이 얻어 수천 명을 거느리고 한으로 돌아왔다. 한은 영포에게 더 많은 군대를 나누어 주고 함께 북쪽으로 가면서, 군대를 거두어 성고에 이르렀다. 47월에 영포를 세워 회남왕으로 삼고, 함께 항우를 공격했다.

 

漢五年, 布使人入九江, 得數県. 六年, 布與劉賈入九江, 誘大司馬周殷, 周殷反楚, 遂挙九江兵與漢撃楚, 破之垓下.

한오년 포사인입구강 득수현. 육년 초여유고입구강 유대사마주은 주은반초 수거구강병여한격초 파지해하.

5년에 영포는 사람을 시켜 구강에 들어가 여러 고을을 획득했다. 6년에 영포가 유고(劉賈, 유방의 사촌형)와 함께 구강에 들어가 초 대사마(大司馬) 주은(周殷)을 설득하니, 주은이 초를 배반하고 드디어 구강의 군대를 동원해 한과 함께 초를 공격해, 해하(垓下)에서 격파했다.



項籍死, 天下定, 上置酒. 上折隨何之功, 謂何為腐儒, 為天下安用腐儒. 隨何跪曰:「夫陛下引兵攻彭城, 楚王未去斉也, 陛下発歩卒五萬人, 騎五千, 能以取淮南乎?」上曰:「不能.隨何曰

항적사 천하정 상치주 . 상적수하지공 위하위부유 위천하안용부유. 수하궤왈 부폐하인병공팽성 초왕미거제야 폐하발보졸오만인 기오천 능이취회남호?’ 상왈 불능수하왈:

 

항우가 죽고 천하가 평정되자, 황상(皇上)이 술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황상이 수하의 공적을 깎아서 수하는 얼치기 학자이니, 천하를 다스리는 데 어찌 쓰겠는가?’라고 말했다. 수하가 꿇어앉아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팽성을 치시고 초 왕이 아직 제를 떠나지 않았을 때, 보병 5만 명과 기병 5천 명으로 회남을 점령할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하자, 황상은 못했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이에 수하가 말했다.

 

陛下使何與二十人使淮南, , 如陛下之意, 是何之功賢於歩卒五萬人騎五千也. 然而陛下謂何腐儒, 為天下安用腐儒, 何也?」

폐하사하여이십인사회남 지 여폐하지의 시하지공현어보졸오만인기오천야. 연이폐하위부유 위천하안용부유 하야?’

 

폐하께서 저에게 스무 명과 함께 회남에 사자로 가게 하셨고, 저는 회남에 이르러 폐하의 뜻대로 했사옵니다. 이는 신의 공이 보병 5만 명과 기병 5천 명보다도 나은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수하는 얼치기니, 천하를 다스리는 데 어찌 쓰겠는가?”라고 말씀하시니, 무슨 까닭이옵니까?’

 

上曰:「吾方図子之功.廼以隨何為護軍中尉. 布遂剖符為淮南王, 都六, 九江廬江衡山予章郡皆屬布.

상왈 오방도자지공내이수하위호군중위. 포수부부위회남왕 도육 구강 여강 형산 예장군개속포.

 

한왕은 내 그대의 공을 생각하리라.’라고 말했다. 한왕이 이에 수하를 호군중위(護軍中尉)로 임명했다. 영포는 드디어 부절(符節)을 나누어 받고 회남왕이 되어 육()에 도읍하니, 구강(九江여강(廬江형산(衡山예장(豫章) 등의 군()이 모두 영포에게 귀속되었다.

 

七年, 朝陳. 八年, 朝雒陽. 九年, 朝長安.

칠년 조진. 팔년 조낙양. 구년 조장안.

 

7년에 영포는 진()나라에 조회를 드렸다. 8년에는 낙양(雒陽: 동주의 주도였던 요충)에서 조회를 드렸으며, 9년에는 장안(長安: 주나라 수도였던 요충)에서 조회를 드렸다.

 

十一年, 高后誅淮陰侯, 布因心恐. , 漢誅梁王彭越, 醢之, 盛其醢遍賜諸侯. 至淮南, 淮南王方猟, 見醢, 因大恐, 陰令人部聚兵, 候伺旁郡警急.

십일년 고후주회남후 포인심공. 하 한주양왕팽월 해지 성기해쳔사제후. 지회남 회남왕방렵 견해 인대공 음령인부취병 후사방군경급.

 

11년에 고후(高后)가 회음후(淮陰侯)를 죽였다. 영포는 이로 인해 마음속으로 두려워졌다. 여름에 한이 양왕(梁王) 팽월(彭越)을 죽여서 소금에 절이고, 소금에 절인 살덩이를 그릇에 담아 제후들에게 두루 하사했다. 그 살덩이가 회남에 도착했을 때에 회남왕은 마침 사냥 중이었는데, 소금에 절인 살덩이를 보고 몹시 두려워서 은밀히 사람을 시켜 병사를 모으고 이웃한 군의 동태를 살펴 위급한 사태를 경계하게 했다.

 

布所幸姫疾, 請就醫, 醫家與中大夫賁赫対門, 姫數如醫家, 賁赫自以為侍中, 廼厚餽遺, 従姫飲醫家.

포소행희질 청취의 의가여중대부비혁대문 희수여의가 비혁자이위시중 내후궤유 종희음의가.

 

영포의 총희(寵姬,특별한 귀염과 사랑을 받는 여자)가 병들어 의사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의 집은 중대부(中大夫) 비혁(賁赫)의 집과 문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총희가 자주 의사의 집에 갔다. 비혁은 자신이 전에 영포의 시중(侍中)이었기에 많은 선물을 주고, 총희를 따라 의사의 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姫侍王, 従容語次, 譽赫長者也. 王怒曰:「汝安従知之?」具説狀. 王疑其與亂.

희시왕 종용어차 예혁장자야. 왕노왈 여안종지지?’ 구세상. 왕의기여란.

 

총희가 회남왕을 모시고 한담을 나누다가, 비혁이 덕행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회남왕이 노하여 너는 어디서 그를 알게 되었느냐?’라고 묻자, 총희가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왕은 그들이 서로 사통(私通)했다고 의심했다.

 

赫恐, 稱病. 王愈怒, 欲捕赫. 赫言変事, 乗傳詣長安.

혁공 칭병. 왕유노 욕포혁. 혁언변사 승전지장안.

 

비혁이 두려워서 병이 들었다고 핑계를 댔다. 왕은 더욱 화가 나서 비혁을 잡아들이려고 했다. 비혁은 영포가 반란을 꾀한다고 고하려고 역마를 타고 장안으로 갔다.

 

布使人追, 不及. 赫至, 上変, 言布謀反有端, 可先未発誅也.

포사인추 불급. 혁지 상변 언폰모반유단 가선미발주야.

 

영포가 사람을 시켜 쫓았지만 미치지 못했다. 비혁이 장안에 이르러 글을 올려 고하기를 영포가 반란을 꾀하려는 단서가 있으니,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목을 베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上読其書, 語蕭相國. 相國曰:「布不宜有此, 恐仇怨妄誣之. 請撃赫, 使人微験淮南王.淮南王布見赫以罪亡, 上変, 固已疑其言國陰事漢使又來, 頗有所験, 遂族赫家, 発兵反. 反書聞, 上廼赦賁赫, 以為將軍.

상독기서 어소상국. 상국왈 포불의유차 공구원망무지. 청격혁 사인미험회남왕회남왕포견혁이죄망 상변 고이의기언국음사; 한사우래 파유소험 수족혁가 발병반. 반서문 상내사비혁.

황상이 그 글을 읽고는 소 상국(蕭相國)에게 말했다. 상국이 영포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도 무슨 원한이 있어 일부러 무고하는 것일 겁니다. 비혁을 붙잡아두고, 사람을 보내어 은밀히 회남왕을 살피게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회남왕 영포는 비혁이 죄를 짓고 달아난 데다 고조에게 변을 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비혁이 자기 나라의 비밀을 말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이때 한의 사자가 와서 두루 증거를 찾아내자 마침내 비혁의 집안사람을 모두 죽이고 군대를 일으켜 한을 배반했다. 영포가 모반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황상은 곧 비혁을 풀어주고 장군으로 삼았다.

 

上召諸將問曰:「布反, 為之柰何?」皆曰;「発兵撃之, 阬豎子耳. 何能為乎!

상소제장문왈 포반 위지내하?’ 개왈 발병격지 갱수자이 하능위호!’

 

황상이 여러 장군들을 불러서 영포가 배반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오?”라고 묻자, 모두들 군대를 보내 쳐서 그놈을 구덩이에 묻어 죽일 뿐, 다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汝陰侯滕公召故楚令尹問之. 令尹曰:「是故當反.滕公曰:「上裂地而王之, 疏爵而貴之, 南面而立萬乗之主, 其反何也?」令尹曰:「往年殺彭越, 前年殺韓信, 此三人者, 同功一體之人也. 自疑禍及身, 故反耳.滕公言之上曰:「臣客故楚令尹薛公者, 其人有籌筴之計, 可問.上廼召見問薛公. 薛公対曰

여음후등공소고초영윤뮨자, 영윤왈 시고당반.’ 등공왈 상열지이왕지 소작이귀지 남면이립만승지주 기반하야?’ 영윤왈 왕년살팽월 전년살한신 차삼인자 동공일체지인야, 자의화급신 고반이.’ 등공언지상왈 신객고초영윤설공자 기인유주책지계 가문상내소견문설공. 설골대왈:

 

여음후(汝陰侯) 등공(滕公)이 이전에 초나라 영윤(令尹)이었던 사람을 불러 물으니, 영윤은 그가 배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등공이 다시 주상께서 땅을 떼 주어 그를 왕으로 봉하셨으며, 벼슬도 나눠 주어 귀하게 대해주셨는데, 남면해 만승(萬乘)의 군주가 되고서도 배반하다니, 무슨 이유입니까?’라고 묻자, 영윤이 주상께서 지난해에 팽월을 죽이고 그 전해에는 한신을 죽였습니다. 이 세 사람들은 같이 공을 세운 한 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화가 제 몸에 미칠 것을 의심해 모반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등공이 이 말을 주상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신의 식객 가운데 이전에 초의 영윤이었던 설공(薛公)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가 대단한 계략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주상이 이에 설공을 불러 물어보니, 설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布反不足怪也. 使布出於上計, 山東非漢之有也出於中計, 勝敗之數未可知也出於下計, 陛下安枕而臥矣.

포반부족괴야. 사포출어상계 산동비한지유야; 출어중계 승패지수미가지야; 출어하계 폐히안침이와의

 

영포가 모반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영포가 최상의 계책을 냈다면 산동(山東)은 한의 소유가 아닐 것이며, 만일 중간의 계책을 썼다면 승패는 알 수 없을 것이고, 낮은 계책을 썼다면 폐하께서는 편안히 주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上曰:「何謂上計?」令尹対曰:「東取呉, 西取楚, 並斉取魯, 傳檄燕, 固守其所, 山東非漢之有也.

상왈 하위상계?’ 영윤대왈 동취오 서취초 병제취노 전격연 조 고수기소 산동비한유지야

 

주상이 무엇을 최상의 계책이라고 하는가?’라고 묻자, 영윤이 대답해 말하기를 영포가 동쪽으로는 오()를 취하고, 서쪽으로는 초()를 취하며, ()를 병합하고 노()를 취한 뒤에, 격문(檄文)을 연()과 조()에 전하고 그곳을 굳게 지킨다면, 산동은 한()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라고 했다.

 

何謂中計?」

하위중계?’

 

무엇을 중간의 계책이라고 하는가?’

 

東取呉, 西取楚, 並韓取魏, 拠敖庾之粟, 塞成皐之口, 勝敗之數未可知也.

동취오 사취초 병한취위 거오유지속 새성고지구 승패지수미가지야

 

동쪽으로 오를 취하고, 서쪽으로 초를 취하며, ()을 병합하고 위()를 취한 후에, 오유(敖庾)의 양곡을 점유해 성고의 어귀를 봉쇄한다면, 승패는 알 수 없습니다.’

 

何謂下計?」

하위하계?’

 

무엇을 낮은 계책이라고 하는가?’

 

東取呉, 西取下蔡,39) 帰重於越, 身帰長沙, 陛下安枕而臥, 漢無事矣.

동취오 서취하채 귀중어월 신귀장사 폐하안침이와 한무사의

 

동쪽으로 오를 취하고, 서쪽으로 하채(下蔡)를 취해 귀중한 물건은 월()에 두고 자신은 장사(長沙)로 돌아간다면, 폐하께서 편안히 주무셔도 한()은 별일이 없을 것입니다.’

 

上曰:「是計將安出?」令尹対曰:「出下計.

상왈 시계장안출?’ 영윤대왈 출하계

 

주상이 그가 장차 어느 계책을 쓸 것 같은가?’라고 묻자, 영윤은 낮은 계책을 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上曰:「何謂廃上中計而出下計?」令尹曰:「布故麗山之徒也, 自致萬乗之主, 此皆為身, 不顧後為百姓萬世慮者也, 故曰出下計.

상왈 하위폐상중계이출하게?’ 영윤왈 포고여산지도야 자치만승지주 차개위신 불원후위백성만세여자야 고왈출하계

 

주상이 어째서 최상의 계책과 중간의 계책을 버리고 낮은 계책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니, 영윤은 영포는 본래 여산(麗山)의 무리로, 자기 힘으로 만승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지 뒷 날을 생각하고 백성 만대를 고려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낮은 계책을 쓸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上曰:「.封薛公千戸. 廼立皇子長為淮南王. 上遂発兵自將東撃布.

상왈 ; 봉설공천호. 내립황자장위회남왕. 상수발병자장동격포.

 

황상은 좋구나!’라고 하고는 설공을 1천 호()에 봉했다. 그리고 황자(皇子) ()을 세워 회남왕으로 삼았다. 황상은 마침내 군사를 동원해 직접 병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영포를 공격했다.

 

布之初反, 謂其將曰:「上老矣, 厭兵, 必不能來. 使諸將, 諸將獨患淮陰彭越, 今皆已死, 餘不足畏也.故遂反. 果如薛公籌之, 東撃荊, 荊王劉賈走死富陵. 盡劫其兵, 渡淮撃楚. 楚発兵與戦徐僮閒, 為三軍, 欲以相救為奇. 或説楚將曰

포지초반 위기장왈 상노의 염병 필불능래. 사제장 제장독환회후 팽월 금개이사 여부족외야고수반. 과여설공주지 동갹형 형왕유고주사부릉. 진각기병 도회격초. 초발병여전서 동한 위삼군 욕이상구위기. 혹설초장왈:

 

영포가 처음에 모반하면서 그 장수들에게 주상은 늙어서 싸움을 싫어하니 반드시 올수 없을 것이다. 여러 장수들을 보내겠지만, 그 여러 장수들 가운데 오직 회음후와 팽월만이 걱정거리였는데, 이제 모두 이미 죽었으니, 나머지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과연 설공이 짐작했던 대로 영포는 동쪽으로는 형()을 쳤다. 형왕 유고(劉賈)는 달아나다가 부릉(富陵)에서 죽었다. 영포는 그의 군대를 모두 빼앗아 거느리고 회수를 건너 초를 쳤다. 초가 군대를 동원해 서()와 동() 사이에서 싸웠는데,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서로 원조하는 기이한 계책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이가 초 장군에게 말했다.

 

布善用兵, 民素畏之. 且兵法, 諸侯戦其地為散地. 今別為三, 彼敗吾一軍, 餘皆走, 安能相救!

포선용병 민소외지. 구병법 제후전기지위산지. 금별위삼 피패오일군 여개주 안능상구!’

 

영포는 용병(用兵)에 뛰어나 백성들이 평소에 그를 두려워합니다. 또 병법에도 제후가 자기 나라 땅에서 싸우는 것을 산지(散地)라고 했는데, 이제 군대를 나누어 셋으로 만들었는데, 저들이 우리의 한 군대를 깨뜨리면 나머지는 모두 달아날 터이니, 어지 서로 원조할 수 있겠습니까?’

 

不聴. 布果破其一軍, 其二軍散走.

불청. 포과피기일군 기이군산주.

 

초 장군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영포가 과연 그중의 한 군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두 군대는 흩어져 달아났다.

 

遂西, 與上兵遇蘄西, 會甀. 布兵精甚, 上廼壁庸城, 望布軍置陳如項籍軍, 上悪之. 與布相望見, 遙謂布曰:「何苦而反?」布曰:「欲為帝耳.上怒罵之, 遂大戦. 布軍敗走, 渡淮, 數止戦, 不利, 與百餘人走江南.

수서 여상병우기서 회추. 포병정심 상내벽용성 망초군치진여항적군 상오지. 여포상망견 요위포왈; ‘하고이반?’ 포왈 욕위제이상노매지 수대전. 포군패주 도회 수지전 불리 여백여인주강남.

 

영포가 드디어 서쪽으로 나아가 주상의 군대와 기()의 서쪽 회추(會甀)에서 만났다. 영포의 군대는 매우 정예로웠다. 주상이 용성(庸城)에 성벽을 쌓고 영포의 군대를 바라보니 진을 친 것이 항우의 군대와 같았다. 주상은 그가 미워졌다. 영포와 서로 바라보다가 멀리서 영포에게 무엇이 아쉬워서 모반했는가?’라고 하니, 영포는 황제가 되고 싶었을 뿐이오.’라고 했다. 황상이 노여워하며 그를 꾸짖고, 드디어 크게 싸움을 벌였다. 영포의 군사가 패해 달아나 회수를 건너고, 여러 번 멈추어 싸웠으나 불리해지자 1백여 명과 함께 강남(江南)으로 달아났다.

 

布故與番君婚, 以故長沙哀王使人紿布, 偽與亡, 誘走越, 故信而隨之番陽. 番陽人殺布茲郷民田舎, 遂滅黥布.

포고야파군혼 이고장사애왕사인태포 위여망 유주월 고신이추지파양. 파양인살포자향민전사 수멸경포.

 

영포는 본래 파군(番君)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 때문에 장사(長沙)의 애왕(哀王)이 사람을 영포에게 보내 거짓으로 함께 도망하여 월로 달아나자고 꾀니, 영포는 그 말을 믿고 파양(番陽)으로 따라갔다. 파양 사람이 영포를 자향(玆鄕)의 농가에서 죽이고 마침내 영포의 일족을 없앴다.

 

立皇子長為淮南王, 封賁赫為期思侯, 諸將率多以功封者.

입황자장위회남왕 봉비혁위기사후 제장솔다이공봉자.

 

황상이 황자 장()을 세워 회남왕으로 삼고, 비혁을 기사후(期思侯)로 봉했으며, 여러 장수들도 대부분 공에 따라 봉해졌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英布者, 其先豈春秋所見楚滅英, 皐陶之後哉身被刑法, 何其抜興之暴也! 項氏之所阬殺人以千萬數, 而布常為首虐. 功冠諸侯, 用此得王, 亦不免於身為世大僇. 禍之興自愛姫殖, 妒媢生患, 竟以滅國!

태사공왈 영포자 기선이춘추소견초명영 육 고요지후재? 신피형법 사기발흥지폭야! 항씨지소갱살인지이천만수 이포상위수학. 공관재후 용차득왕 역불면어신위세대륙. 화지흥자애희식 투모생환 경이멸국!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영포(英布)는 그 조상이 어쩌면 춘추(春秋)에서 ()가 영(()을 멸망시켰다.”라고 되어 있는 영씨일 것이니, 바로 고요(皐陶)의 후예가 아닐까? 몸에 형벌을 받고서도 어떻게 빨리 일어났을까? 항씨(項氏, 항우)가 구덩이에 묻어 죽인 사람은 천만 명이나 되는데, 영포는 언제나 그 포악한 일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공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이 때문에 왕이 되었지만 그의 몸 역시 세상의 치욕을 면하지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시작되었고 질투가 환란을 만들어 마침내 그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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