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 건국>
微子開者, 殷帝乙之首子而帝紂之庶兄也. 紂既立, 不明, 淫亂於政, 微子數諫, 紂不聴.
미자개지 은제을지수자이제주지서형야. 주기립 불명 음란어정 미자수간 주불청
미자(微子) 개(開)는 은(殷)나라 제을(帝乙)의 큰아들이자, 주왕(紂王)의 배다른 형이다. 주왕이 즉위하였으나, 현명하지 못한데다 정치도 음란했다. 미자가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주왕은 듣지 않았다.
及祖伊以周西伯昌之修徳, 滅仇国, 懼禍至, 以告紂. 紂曰:「我生不有命在天乎? 是何能為!」
급조이이주서백창지수덕 멸구국 구화지 이고주. 주왈 ‘아생불유명재천호 시하능위’
주(周)나라의 서백(西伯) 창(昌)이 덕을 닦고 구(仇)라는 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이(祖伊)는 그 화가 미칠까 겁이 나서 이를 주왕에게 일러바쳤다. 주왕은 ‘내가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천명 아닌가? 그가 무얼 어쩌겠는가?’라고 했다.
於是微子度紂終不可諫, 欲死之, 及去, 未能自決, 乃問於太師、少師曰:殷不有治政, 不治四方. 我祖遂陳於上, 紂沈湎於酒, 婦人是用, 亂敗湯徳於下.
어시미자도주종불가산 욕사지 급거 미능자결 내문어태사 소사왈 은불유치정 불치사방 아조수진어상 주침면어주 부인시용 란패탕덕어하.
미자는 주왕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죽이려 하다가,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태사(太師)와 소사(少師)에게 가서 말했다. ‘은나라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해 사방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세상에 공업을 이루었지만 주왕은 술에 빠져 부인 말만 듣다가 탕(湯)의 덕을 어지럽히고 무너뜨렸습니다.
殷既小大好草窃姦宄, 卿士師師非度, 皆有罪辜, 乃無維獲, 小民乃並興, 相為敵讎. 今殷其典喪! 若渉水無津涯. 殷遂喪, 越至于今. 曰:太師, 少師, 我其発出往? 吾家保于喪? 今女無故告予, 顛躋, 如之何其?
은기소대호초절간귀 경사사사비도 개유죄고 내무유획 소민내적수. 금은기전상 약섭수무진애. 은수상 월지우금. 왈 태사 소사 아기발출왕 오가보우상 금녀무고고여 전제 여지하기.
은나라는 높거나 낮거나 할 것 없이 도적질을 하고 법을 어기며 난을 일으키기 좋아했습니다. 왕실의 경사들은 서로를 본받으며 법도를 지키기 않으니 모두가 죄를 짓고도 누구 하나 응분의 대가인 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모두 서로를 적이나 원수처럼 여깁니다. 지금 은나라는 나라의 법과 제도를 상실하여 마치 나루터도 없이 물을 건너려는 것 같습니다. 은나라가 마침내 망할 것 같으니 지금이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묻기를 ‘태사, 소사! 내가 도망쳐야겠소? 아니면 조상제사를 지며야겠소? 남아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겠소? 지금 그대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 잘못된다면 어찌할 셈이오?’라고 했다.
太師若曰:王子, 天篤下菑亡殷国, 乃毋畏畏, 不用老長. 今殷民乃陋淫神祇之祀. 今誠得治国, 国治身死不恨. 為死, 終不得治, 不如去. 遂亡.
태사약왈 왕자 천독하치망은국 내무외외 불용노장. 금은민내루음신기지사. 금성득치국 국치신사불한. 위사 종부득치 불여거 수망.
태사는 이렇게 말했다. ‘왕자시여! 하늘이 엄중한 재앙을 내려 은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데도 (주왕은)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늙은이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 은나라는 인민들조차 하늘과 땅에 대한 제사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실로 나라를 다스려 잘 다스려진다면 몸이 죽어도 여한이 없겠으나, 죽어도 끝내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떠나는 것만 못합니다.’ (미자는) 마침내 도망쳤다.
箕子者, 紂親戚也. 紂始為象箸, 箕子歎曰:「彼為象箸, 必為玉桮;為桮, 則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 輿馬宮室之漸自此始, 不可振也.」
기자자 주친척야. 주시위상저 기자탄왈 ‘피위상저 필위옥배 위배 즉필사원방진괴지물이어지의. 여마궁실지점자차시 불가진야’
기자(箕子)는 주왕의 친척이다.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쓰기 시작하자 기자는 ‘그가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했으니 틀림없이 옥으로 만든 잔을 사용할 것이고, 옥으로 만든 잔을 사용한다면 틀림없이 먼 곳의 진기하고 괴이한 물건들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수레와 말 그리고 궁실의 사치가 이리 시작되어 되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라고 탄식했다.
紂為淫泆, 箕子諫, 不聴. 人或曰:「可以去矣.」箕子曰:「為人臣諫不聴而去, 是彰君之悪而自説於民, 吾不忍為也.」乃被髪詳狂而為奴. 遂隠而鼓琴以自悲, 故傳之曰箕子操.
주왕음일 기자간 불청. 인혹왈 ‘가이거의’ 기자왈 ‘위인신간불청이거 시창순지악이자열어민 오불인위야’ 내피발상광이위노. 수은이고금이자비 고전지왈기자조.
주왕이 제멋대로 굴자, 기자가 충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누군가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기자는 ‘신하된 자가 간언했는데도 듣지 않는다고 떠나면 이는 군주의 잘못은 드러내고 자신은 인민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니 나로서는 차마 그렇게 못하겠소.’라 하고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여 노예가 되었다. 드디어 숨어서 스스로 슬퍼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니, ‘기자조(箕子操)’로 전해지고 있다.
王子比干者, 亦紂之親戚也. 見箕子諫不聴而為奴, 則曰:「君有過而不以死争, 則百姓何辜!」乃直言諫紂. 紂怒曰:「吾聞聖人之心有七竅, 信有諸乎?」乃遂殺王子比干, 刳視其心.
왕자비간자 역주지친척야. 견기자간불청이위노 즉왈 ‘군유과이불이사쟁 즉백성하고’ 내직언간주 주노왈 ‘오문성인지심유칠규 신유제호’ 내수살왕자비간 고시기심.
왕자 비간(比干) 역시 주왕의 친척이다. 기자가 간언해도 듣지 않고, 기자가 노예가 되는 것을 보고는 ‘군주에게 허물이 있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따지지 않는다면 무고한 백성들만 피해를 입지 않겠는가?’라 하고는 주왕에게 바른말로 충고했다. 주왕이 노하여 ‘내가 듣기에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있다던데 정말 그런가?’라며 왕자 비간을 죽여 그 가슴을 열고 심장을 보았다.
微子曰:「父子有骨肉, 而臣主以義属. 故父有過, 子三諫不聴, 則随而号之;人臣三諫不聴, 則其義可以去矣.」於是太師、少師乃勧微子去, 遂行.
미자왈 ‘부자유골육 이신주이의속 고부유과 자삼간불청 즉수이호지 인신삼간불청 즉기의가이거의’ 어시태사 소사내권미자거 수행.
미자가 ‘아비와 자식 사이에는 골육의 정이 있고, 군주와 신하는 의리로 맺어져 있다. 그래서 아비에게 잘못이 있으면 자식은 세 번을 간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자식은 계속 통곡할 따름이다. 신하된 자가 세 번을 충고했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 의리상 떠나도 된다.’라고 했다. 이에 태사와 소사가 미자에게 떠날 것을 권하니 마침내 떠났다.
周武王伐紂克殷, 微子乃持其祭器造於軍門, 肉袒面縛, 左牽羊, 右把茅, 膝行而前以告. 於是武王乃釈微子, 复其位如故.
주무왕벌주극은 미자내지기제기조어군문 육단면박 좌뢰양 우파모 슬행이전이고 어시무왕네석미자 복기위여고.
주 무왕이 주왕을 토벌하여 은나라를 물리치자 미자는 바로 제기를 들고 군문(軍門)으로 가서는 웃통을 벗고 등 뒤로 손을 묶는 다음 (사람을 시켜) 왼편으로는 양을 끌고 오른편으로는 소꼬리로 장식한 깃발을 쥐게 했다. 그리고는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이에 무왕은 미자를 석방하고 전과 같이 자리를 회복시켰다.
武王封紂子武庚祿父以続殷祀, 使管叔、蔡叔傅相之.
무왕봉주자무경녹보이속은사 사관숙 채숙부상지.
무왕은 주왕의 아들 무경녹보(武庚祿父)에게 은나라 왕조의 제사를 잇게 하고,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시켜 그를 가르치도록 했다.
<기자와 ‘홍범구등’>
武王既克殷, 訪問箕子.
무왕기극은 방문기자
무왕이 은을 물리친 다음 기자를 방문했다.
武王曰:於乎! 維天陰定下民, 相和其居, 我不知其常倫所序.
무왕왈 오호 유천음정하민 상화기거 아부지기상윤소서
무왕이 ‘오호! 하늘은 조용히 천하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서로 화목하게 살게 하는데 내 그 이치의 순서도 몰랐다니’
箕子対曰:在昔鯀陻鴻水, 汨陳其五行, 帝乃震怒, 不従鴻範九等, 常倫所斁. 鯀則殛死, 禹乃嗣興. 天乃錫禹鴻範九等, 常倫所序.
기자대왈 새것곤인홍수 골진기오행 제내진노 불종홍범구등 상륜소역 곤즉극사 우내사흥 천내사우홍범구등 상륜소서.
기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 곤(鯀)이 홍수를 막으면서 '홍범구등(鴻範九等)'을 따르지 않고 오행의 질서를 어지럽히자 상제께서 크게 노하여 곤이 죽임을 당하고 우가 그 일을 이어받으니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등을 내려 주어 일상의 이치가 순서를 찾게 된 것입니다.’
初一曰五行;二曰五事;三曰八政;四曰五紀;五曰皇極;六曰三徳;七曰稽疑;八曰庶徴;九曰嚮用五福, 畏用六極.
초일왈오행 이왈오사 삼왈팔정 사왈오기 오왈황극 육왈삼덕 칠왈계의 팔왈서징 구왈향용오복 외용육극.
(홍범구등의) 그 처음을 오행(五行)이라 하고, 두 번째를 오사(五事)라 하며, 세 번째를 팔정(八政), 네 번째를 오기(五紀), 다섯 번째를 황극(皇極)이고, 여섯 번째를 삼덕(三德), 일곱 번째를 계의(稽疑), 여덟 번째를 서징(庶徵), 아홉 번째를 향용오복(嚮用五福)과 외용육극(畏用六極)이라 합니다.
五行: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土.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従革, 土曰稼穡. 潤下作鹹, 炎上作苦, 曲直作酸, 従革作辛, 稼穡作甘.
오행 일왈수 이왈화 삼왈목 사왈금 오왈토. 수왈윤하 화왈재성 목왈곡직 금왈종혁 토왈가색 윤하작함 재상작고 곡직작산 종혁작신 가색작감.
오행은 물, 불, 나무, 쇠, 흙입니다. 물은 아래로 젖어들며, 불은 위로 타오릅니다. 나무는 굽거나 곧으며, 쇠는 모양을 바꿉니다. 흙은 뿌리고 거둘 수 있습니다. 아래로 젖어들면 짠 맛을 내고, 위로 타오르면 쓴맛을 냅니다. 굽거나 곧으면 신맛을 내고, 모양을 바꾸면 매운맛을 내며, 뿌리고 거두면 단맛을 냅니다.
五事:一曰貌, 二曰言, 三曰視, 四曰聴, 五曰思. 貌曰恭, 言曰従, 視曰明, 聴曰聡, 思曰睿. 恭作粛, 従作治, 明作智, 聡作謀, 睿作聖. 八政:一曰食, 二曰貨, 三曰祀, 四曰司空, 五曰司徒, 六曰司冦, 七曰賓, 八曰師.
오사 일왈모 이왈언 삼왈시 사왈청 오왈사. 모왈공 언왈종 시왈명 청왈총 사왈예. 공작국 종작치 먕작지 총작모 예작성. 팔정 일왈식 이왈화 삼왈사 사왈사공 오왈사도 육왈사구 칠왈빈 팔왈사.
오사란 몸가짐, 말, 보기, 듣기, 생각을 말합니다. 몸가짐은 공손해야 하고, 말은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총명해야 하고, 생각은 (사리를) 통달해야 합니다. 공손하면 엄숙해지고, 이치에 맞으면 다스릴 수 있고, 밝으면 지혜로워지고, 총명하면 일을 꾀할 수 있고, 통달하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팔정이란 식(食), 화(貨), 사(祀), 사공(司空), 사도(司徒), 사구(司寇), 빈(賓), 사(師)를 말합니다.
五紀:一曰歳, 二曰月, 三曰日, 四曰星辰, 五曰暦數. 皇極:皇建其有極, 斂時五福, 用傅錫其庶民, 維時其庶民于女極, 錫女保極. 凡厥庶民, 毋有淫朋, 人毋有比徳, 維皇作極.
오기 일왈세 이왈월 삼왈일 사왈성진 오왈역수. 황극 황건기유극 렴시오복 용부석기서민 유시기서민우여극. 석녀보극 범궐서민 무유음붕 인무유비덕 유황작극.
다섯 개의 벼리는 세(歲), 월(月), 일(日), 성신(星辰), 역수(曆數)요. 황극은 제왕이 추구해야 할 지극한 법칙으로, 오복을 추려 서민들에게 가르치고 베풀게 될 때 서민들도 그 극진함을 따라 제왕에게 극진하게 대하게 된다. 무릇 모든 백성들이 극진하면 사악한 패거리를 짓지 않고, 사람들이 서로 덕을 비교하지 않게 되므로 제왕의 극진함과 통하게 됩니다.
凡厥庶民, 有猷有為有守, 女則念之. 不協于極, 不離于咎, 皇則受之. 而安而色, 曰予所好徳, 女則錫之福. 時人斯其維皇之極. 毋侮鰥寡而畏高明.
범궐서민 유유유위유수 여직념지. 불협우극 불리우개 황즉수지. 이안이색 왈여소호덕 여즉석지복 시인사기유황지극 무모환과외고명.
무릇 백성들 중 꾀도 있고, 실행력도 있고, 지조도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왕의 극진함을 따르지도 않고 허물이 있더라도 제왕은 거둘 줄 알아야 합니다. 안색이 평안해야 왕이 덕이 있다 보이고 왕이 복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제왕의 극진함과 통하여 홀아비나 과부를 모욕하지 않으며 높은 지위나 현명한자를 두려워 않습니다.
人之有能有為, 使羞其行, 而国其昌. 凡厥正人, 既富方谷. 女不能使有好于而家, 時人斯其辜. 于其毋好, 女雖錫之福, 其作女用咎.
인지유능유위 사수기행 이국기창. 범궐정인 기부방곡. 여불능사유호우이가 시인사기고. 우기무호 여수석지복 기작여용구.
능력있고 실천력있는 사람들에게 그 처신을 살피게 하면 그 무리가 번창하고, 바른 사람들이 재능을 펼치게 하면 나라는 번창 할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개인의 부를 천하에 베풀어야 합니다. 왕이 장점이 있는 이들을 부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허물을 지을 것이며 선한 이들에게 선히 대해 주어도 그를 빌미로 허물을 지을 것 입니다.
毋偏毋頗, 遵王之義. 毋有作好, 遵王之道. 毋有作悪, 遵王之路. 毋偏毋党, 王道蕩蕩. 毋党毋偏, 王道平平. 毋反毋側, 王道正直. 会其有極, 帰其有極. 曰王極之傅言, 是夷是訓, 于帝其順. 凡厥庶民, 極之傅言, 是順是行, 以近天子之光. 曰天子作民父母, 以為天下王.
무편무파 존왕지의. 무유작호 존왕지도. 무유작오 존왕지로.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 무반무측 왕도정직. 회기유극 귀기유극. 왈왕극지부언 시이시훈 우제기순. 범구러서민 극지부언 시순시행 이근천자지광. 왈천자작민부모 이위천하왕.
편향되어 분열시키지 말고 왕의 올바름을 지키고, 좋고 나쁨을 가려 미움을 쌓지 않는 왕의 길을 걷고, 편갈라 파당을 짓지않아야 왕도가 풍성해집니다. 당파가 없는 것이야 말로 왕도가 고르다는 걸 의미하며 반대나 편향됨이 없는 것이 왕의 정직함입니다. 극진함에 합해야 극진함으로 돌아가는 법이니 말하자면 왕의 말에 극진함이 있는 것이니 이를 큰 가르침이라 하며 선대 임금들이 따르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가르침에 극진하면 순조로이 실행되며 천자의 덕에 가까워 지는 겁니다. 이를 다른 말로 천자가 백성들의 부모가 된다는 말이요 이를 천하왕이라 하는 겁니다.
三徳:一曰正直, 二曰剛克, 三曰柔克. 平康正直, 彊不友剛克, 内友柔克, 沈漸剛克, 高明柔克.
삼덕 일왈정직 이왈강극 삼왈유극. 평강정직 강불우강극 내우유극 침점강극 고명유극.
3덕이란 正直, 굳세게 이겨냄, 부드럽게 이겨냄으로 정직함은 고르고 건강한=고집이 아니어야 하며, 강한 것과 굳건한 것과는 다른 것이며, 안으로 유연하게 상대를 이기며 점점 굳건해지는 것이며 왕보다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을 꺾으려 들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維辟作福, 維辟作威, 維辟玉食. 臣無有作福作威玉食. 臣有作福作威玉食, 其害于而家, 凶于而国, 人用側頗辟, 民用僭忒.
유벽작복 유벽작위 유벽옥식. 신무유작복작위옥식. 신유작복작위옥식 기해우이가 흉우이국 인용측하벽 민용참특.
왕의 역할은 선을 베푸는(=복) 것이며 왕만이 권위를 세울 수 있으며, 제왕 만이 진귀한 음식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신하에게는 복을 지을 권리도 권위를 내세울 권리도 진귀한 음식을 맛 볼 자격이 없습니다. 신하가 그리 된다면 집안 나아가 나라에 해악이요 흉조이니 사람들이 파당과 이간을 제왕의 권리로 생각하면 백성들도 복을 내릴 권한과 죄를 다스릴 위엄과 좋은 음식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면, 그 피해는 집안에 미치고 나라에 해를 가져다 줄 것이며 사람들도 그리 서로 헐뜯고 싸울 것입니다. (=신하들이 사치해선 안됩니다)
修身齊家治國 平天下의 의미 가운데 고르게 대한다고 기준이 없어져선 안된다는 의미....
稽疑:択建立卜筮人. 乃命卜筮, 曰雨, 曰済, 曰涕, 曰霧, 曰克, 曰貞, 曰悔, 凡七. 卜五, 占之用二, 衍貣. 立時人為卜筮, 三人占則従二人之言. 女則有大疑, 謀及女心, 謀及卿士, 謀及庶人, 謀及卜筮.
계의 택간립복무인. 내명복무 왈우 왈제 왈체 왈무 뫌극 왈정 왈회 범칠. 복오 점지용이 연특. 입시인위복무 삼인점즉종이인지언. 여즉유대의 모급여심 모급경사 모급서인 모급복무.
계의란 점복에 능한 사람을 뽑아 점복을 하도록 명하는 것인데 비, 갬, 구름, 안개, 상극, 내괘, 외괘의 일곱 가지를 봅니다. 복(거북점)은 다섯 가지, 점(산가지점)은 두 가지로 점괘를 살핍니다. 점복을 행하는데는 세 사람이 점을 쳤을 경우 결과가 같은 두 사람의 말을 따르고 왕께서 의심이 든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생각하시고 그 다음에 대신들의 마음을 살피고 민의를 살피고 맨 나중 점사나 무당의 의견을 듣습니다.
女則従, 亀従, 筮従, 卿士従, 庶民従, 是之謂大同, 而身其康彊, 而子孫其逢吉. 女則従, 亀従, 筮従, 卿士逆, 庶民逆, 吉. 卿士従, 亀従, 筮従, 女則逆, 庶民逆, 吉. 庶民従, 亀従, 筮従, 女則逆, 卿士逆, 吉. 女則従, 亀従, 筮逆, 卿士逆, 庶民逆, 作内吉, 作外凶. 亀筮共違于人, 用静吉, 用作凶.
여즉종 귀종 무종 경사종 서민종 시지위대동 이신기강강 이자손기봉길. 여즉종 귀종 무종 경사역 서민역 길. 경사종 귀종 무종 여즉종 서민역 길. 서민종 귀종 무종 여즉역 경사역 길. 여즉종 귀종 무역 경사역 서민역 작내길 작외흉. 귀무공위우인 용정길 용작흉.
왕의 마음도 합하고 점복도, 대신들도, 백성들의 마음에도 합하면 이를 대동(大同)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몸도 건강해지고 자손들도 크게 길할 것입니다. 왕과 점복이 같고 대신과 백성들의 반대가 있어도 길상으로 보고 대신들과 점복의 결과가 같다면 왕이나 백성들이 반대해도 길상으로 보고, 백성의 뜻과 점복이 같다면 왕과 대신들이 반대해도 길합니다. 왕께서 하려는 일에 거북점은 좋다고 나왔는데 산가지점과 대신들, 관리들, 백성들이 반대하면 내부 일은 길하지만 외부 일은 흉합니다. 점복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어긋난다면 가만히 있으면 길하지만 뭔가 하려고 하면 흉합니다.
庶徴:曰雨, 曰陽, 曰奥, 曰寒, 曰風, 曰時. 五者來備, 各以其序, 庶草繁廡. 一極備, 凶. 一極亡, 凶. 曰休徴:曰粛, 時雨若, 曰治, 時暘若;曰知, 時奥若;曰謀, 時寒若;曰聖, 時風若.
서징 왈우 왕양 왈오 왈한 왈풍 왈시. 오자래비 각이기서 서초번무. 일극비 흉. 일극 흉. 왈휴징 왈숙 시우약 왈치 시양약 왈지 시오약 왈모 시한약 왈성 시풍약.
서징이란 비, 태양, 따스함 추움, 바람 그리고 시기로서 이 5이 잘 맞아 떨어지면 만물이 무성하고 그중 하나라도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수확이 좋지 않습니다. 좋은 징조란 이렇습니다. 비올 때처럼 정숙하고 다스림이란 태양이 비치듯 해야하며 지식이나 베풂은 따스해야하며 뭔가 도모할 때에는 냉정해야 하고 거룩함이란 바람처럼 모두를 보듬는 것입니다.
曰咎徴:曰狂, 常雨若;曰僭, 常暘若;曰舒, 常奥若;曰急, 常寒若;曰霧, 常風若.
왈구징 왈광 상우약 왈참 상양약 왈서 상오약 왈급 상한약 왈무 상풍약.
나쁜 징조란 이런 것들입니다. 비가 멈추지 않듯 하면 미친 것이요. 너무 해만 비추면 참람한 것이요 따스하기만 하면 느슨해지고 늘 냉랭하면 성급한 것이요 바람이 그치지 않으면 아리송해지는 법입니다.
王眚維歳, 卿士維月, 師尹維日. 歳月日時毋易, 百谷用成, 治用明, 畯民用章, 家用平康. 日月歳時既易, 百谷用不成, 治用昏不明, 畯民用微, 家用不寧.
왕생유세 경사유월 사윤유일 세월일시무역 백곡용성 치용명 준민용장 가용평강. 일월세시시역 백곡용불성 치용혼불명 준민용미 가용불녕.
제왕이 잘못 판단하면 1년이, 대신들이 잘못 판단하면 한 달이, 하급 관리들 잘못 판단하면 하루가 갑니다. 한 해, 한 달, 하루에 거스름이 없으면 백곡이 풍성해지고 정치가 현명하게 되고 가정이 평안하고 그렇듯 판단이 자주 바뀌면 백곡이 익지 않고 정치력도 미미해지고 가정도 편치 못합니다.
庶民維星, 星有好風, 星有好雨. 日月之行, 有冬有夏. 月之従星, 則以風雨.
서민유시 성유호풍 성유호우. 일월지행 유동유하. 월지종성 즉이풍우.
어떤 별은 바람을, 어떤 별은 비를 좋아하듯 백성들은 뭇별들 같읍니다.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습니다(계절이 변합니다). 달(재상)이 별(백성)을 좇으면 시절없이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립니다.
五福:一曰寿,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徳, 五曰考終命. 六極:一曰凶短折, 二曰疾, 三曰憂, 四曰貧, 五曰悪, 六曰弱.
오복 일왈수 이왈부 삼왈강녕 사왈유호덕 오왈고종명. 육극 일왈흉단절 이왈질 삼왈우 사왈빈 오왈오 육왈약.
오복이란 목숨, 부귀, 건강,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함, 제명 대로 편히 죽는 것을 말합니다.
육극은 요절, 질병, 근심, 가난, 추함, 허약함을 말합니다.
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어시무왕내봉기자어조선이불신야.
이에 무왕이 기자를 조선(朝鮮) 제후에 봉하되 신하로 대하지 않았다.
其後箕子朝周, 過故殷虚, 感宮室毀壊, 生禾黍, 箕子傷之, 欲哭則不可, 欲泣為其近婦人, 乃作麦秀之詩以歌詠之.
기후기자조주 과고은헌 감궁실훼괴 생화서 기자상지 욕곡즉불가 욕읍위기근부인 내작맥수지시이가영지
그 뒤 기자가 주나라에 조회를 드리러 은나라의 폐허 은허(殷墟)를 지나다가 궁실이 무너진 자리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기자는 상심하여 통곡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울고도 싶으나 아녀자 같을 까봐 ‘맥수(麥秀)의 시’를 지어 노래를 부르니
其詩曰:麦秀漸漸兮, 禾黍油油. 彼狡僮兮, 不與我好兮! 所謂狡童者, 紂也. 殷民聞之, 皆為流涕.
기시왈 맥수점점혜 화서유유. 피교동혜 불여아호혜 소위교동자 주야. 은민문지 개위류체.
그 시는 이랬다. ‘보리 이삭은 패고, 벼와 기장은 무성하구나! 저 악동아, 나와 가까이 지내긴 글렀구나!’ 이른바 악동이란 주왕을 말한다. 은나라의 유민들이 이를 듣고는 모두 눈물을 흘렸다.
<송의 흥망성쇠>
武王崩, 成王少, 周公旦代行政當国. 管、蔡疑之, 乃與武庚作亂, 欲襲成王、周公. 周公既承成王命誅武庚, 殺管叔, 放蔡叔, 乃命微子開代殷後, 奉其先祀, 作微子之命以申之, 国于宋. 微子故能仁賢, 乃代武庚, 故殷之余民甚戴愛之.
무왕붕 성왕소 주공단대행정당국. 관 채의지 내여무경작란 욕습성왕 주공. 주공기승성왕명주무경 살관숙 방채숙 내명미자개대은후 봉기선사 작미자지명이신지 국우송. 미자고능인현 내대무경 고은지여민심재애지.
무왕이 세상을 떠나고 성왕(成王)이 어렸기에 주공(周公) 단(旦)이 정치를 대행했다.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공의 권력욕을 의심하여 무경(武庚)과 함께 난을 일으켜 성왕과 주공을 습격하려 했다. 주공이 성왕의 명을 받아 무경을 주벌하고 관숙을 죽였으며 채숙은 추방했다. 이어 미자 개로 하여금 은나라의 후손들에게 조상 제사를 받들도록 하고 「미자지명(微子之命)」을 지어 널리 알린 다음 송(宋)에 나라를 세우게 했다. 미자는 원래 어질고 유능했기 때문에 무경을 대신했고, 따라서 은나라의 유민들도 그를 매우 사랑했다.
微子開卒, 立其弟衍, 是為微仲. 微仲卒, 子宋公稽立. 宋公稽卒, 子丁公申立. 丁公申卒, 子湣公共立. 湣公共卒, 弟煬公煕立. 煬公即位, 湣公子鮒祀弑煬公而自立, 曰「我當立」, 是為厲公. 厲公卒, 子釐公挙立.
미자개졸 입기제연 시위미중. 미중졸 자송공계립. 송공계졸 자정공신립. 정공신졸 자민공공립. 민공공졸 제양공희립. 양공즉위 민공자부사살양공이자립 왈 ‘아당립’ 시위여공. 여공졸 자이공권립.
미자 개가 죽고, 그의 동생 연(衍)이 위에 오르니 이가 미중(微仲)이다. 미중이 죽고, 아들 송공(宋公) 계(稽)가, 송공 계가 죽고, 아들 정공(丁公) 신(申)이, 정공 신이 죽고, 아들 민공(湣公) 공(共)이 자리를 이었다. 민공 공이 죽고, 동생 양공(煬公) 희(熙)가 즉위했다. 양공이 즉위하자, 민공의 아들인 부사(鮒祀)가 양공을 죽이고 자립하면서 ‘내가 자리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했다. 이가 여공(厲公)이다. 여공이 죽고, 아들인 리공(釐公)이 즉위했다.
釐公十七年, 周厲王出奔彘.
리공십칙년 주여왕출분체
희공 17년(기원전 842년)에 주(周)나라 여왕(厲王)이 체(彘)나라로 달아났다.
二十八年, 釐公卒, 子恵公覵立. 恵公四年, 周宣王即位. 三十年, 恵公卒, 子哀公立. 哀公元年卒, 子戴公立.
이십팔년 리공졸 자혜공관립. 혜공사년 주선왕즉위. 삼십년 혜공졸 자애공립. 애공원년졸 자대공립.
28년에 리공이 죽고, 아들인 혜공(惠公) 간(覵)이 즉위했다. 혜공 4년에 주나라 선왕(宣王)이 즉위했다. 30년에 혜공이 죽고, 아들 애공(哀公)이 즉위했으나 애공이 원년에 죽자 아들 대공(戴公)이 즉위했다.
戴公二十九年, 周幽王為犬戎所殺, 秦始列為諸侯.
대공이십구년 주유왕위견융소살 진시열위제후
대공 29년(기원전 771년)에 주나라 유왕(幽王)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당하고, 진(秦)나라가 처음으로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三十四年, 戴公卒, 子武公司空立. 武公生女為魯恵公夫人, 生魯桓公. 十八年, 武公卒, 子宣公力立.
삼십사년 대공졸 자무공사공립. 무공생여위노혜공부인 생노환공. 십팔년 무공졸 자선공력립.
34년에 대공이 죽자 아들 무공(武公) 사공(司空)이 즉위했다. 무공의 딸은 노(魯)나라 혜공(惠公)의 부인이 되어 노나라 환공(桓公)을 낳았다. 18년에 무공이 죽고, 아들 선공(宣公) 역(力)이 즉위했다.
宣公有太子與夷. 十九年, 宣公病, 譲其弟和, 曰:「父死子継, 兄死弟及, 天下通義也. 我其立和.」和亦三譲而受之. 宣公卒, 弟和立, 是為穆公.
선공유태자여이. 십구년 선공병 양기제화 왈 ‘부사작계 형사제급 천하통의야 아기립화’ 화역삼양이수지. 선공졸 제화립 시위목공
선공은 태자 여이(與夷)가 있음에도 19년에 선공이 병이 나자 동생 화(和)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하면서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뒤를 잇고, 형이 죽으면 동생에게 (자리가) 돌아가는 것은 천하에 통용되는 이치다. 내가 화에게 양위하겠다.’라고 했다. 화가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결국 받아들였다. 선공이 죽고, 동생인 화(和)가 자리에 오르니 이가 목공(穆公)이다.
穆公九年, 病, 召大司馬孔父謂曰:「先君宣公舎太子與夷而立我, 我不敢忘. 我死, 必立與夷也.」孔父曰:「群臣皆願立公子馮.」穆公曰:「毋立馮, 吾不可以負宣公.」於是穆公使馮出居于鄭.
목공구년 병 소대사마공보위왈 ‘선군선공사태자여이이립아 아불감망 아사 필립여이야’ 공보왈 ‘군신개원립공자풍’ 목공왈 ‘무립풍 오불가이부선공’ 시이목공사풍줄거우정.
목공 9년에 병이 들자 대사마(大司馬) 공보(孔父)를 불러 ‘전 임금 선공께서 태자 여이를 두고도, 나를 세우셨으니 내가 그것을 어찌 잊겠소. 내가 죽거든 반드시 여이를 세우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공보가 ‘신하들은 모두 공자 풍(馮)이 즉위하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목공은 ‘풍을 즉위시켜서는 안 된다. 내가 선공에 죄를 지을수 없다.’라 하며 목공이 아들 풍을 정나라로 옮겨 살게 했다.
八月庚辰, 穆公卒, 兄宣公子與夷立, 是為殤公. 君子聞之, 曰:宋宣公可謂知人矣, 立其弟以成義, 然卒其子复享之.
팔월경진 목공졸 형선공자여이립 시위상공. 군자문지 송선공가위지인의 입기제이성의 연졸기자복향지.
8월 경진일에 목공이 죽고, 형 선공의 아들 여이가 즉위하니 이가 상공(殤公)이다. 군자들이 이를 듣고는 ‘송나라 선공은 사람 볼 줄 아는구나! 그 동생을 세워 (합당한 왕을 세우는) 도리를 이루고, 끝내 그 아들 여이가 다시 자리를 누리게 하였으니!”라고 했다.
殤公元年, 衛公子州吁弑其君完自立, 欲得諸侯, 使告於宋曰:「馮在鄭, 必為亂, 可與我伐之.」宋許之, 與伐鄭, 至東門而還. 二年, 鄭伐宋, 以報東門之役. 其後諸侯數來侵伐.
상공원년 위공자주우시기군완자립 욕득제후 사고어송왈 ‘풍재정 필위란 가여아벌지’ 송허지 여벌정 지동문이환. 이년 정벌송 이보동문지역 기후제루수래침벌.
상공 원년에 위(衛)나라의 공자 주우(州吁)가 그 주군 완(完)을 시해하고 스스로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제후들의 인정을 얻으려고 사람을 송나라에 보내 ‘정나라에 가 있는 풍이 난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으니, 우리와 함께 토벌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알렸다. 송나라가 이를 받아들여 함께 정나라를 정벌하러 나서 동문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2년에 정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하여 동문에서의 싸움을 되갚았다. 그 후 제후들이 여러 차례 (송나라를) 쳐들어왔다.
九年, 大司馬孔父嘉妻好, 出, 道遇太宰華督, 督説, 目而観之. 督利孔父妻, 乃使人宣言国中曰:殤公即位十年耳, 而十一戦, 民苦不堪, 皆孔父為之, 我且殺孔父以寧民. 是歳, 魯弑其君隠公. 十年, 華督攻殺孔父, 取其妻. 殤公怒, 遂弑殤公, 而迎穆公子馮於鄭而立之, 是為荘公.
구년 대사마공보가처호 출 도우태제화독 독열 목이관지. 독리공보처 내사인선언국중왈 상공즉위십년이 이십일전 민고불감 개공보외지 아차살송보이영민. 시세 노시시순은공. 십년 화독공살공보 취기처. 상공노 수시상공 이영목공자풍어정이립지 시위장공.
9년에 대사마 공보가(孔父嘉)의 아내가 아름다웠는데, 외출 길에 태재(太宰) 화독(華督)을 만났다. 화독은 공보가의 아내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독이 공보가의 아내가 탐이 나서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선전하길 ‘상공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열한 차례나 전쟁을 일으켜 인민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모두 공보가가 한 짓이니 내가 공보가를 죽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겠다.’고 했다. 이 해에 노나라는 그 국군 은공(隱公)을 시해했다. 10년 화독이 공보가를 공격해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다. 상공이 분노하자 상공마저 시해하고 정나라에서 목공의 아들인 풍을 맞아들여 옹립하니, 이가 장공(莊公)이다.
荘公元年, 華督為相. 九年, 執鄭之祭仲, 要以立突為鄭君. 祭仲許, 竟立突. 十九年, 荘公卒, 子湣公捷立.
장공원년 화독위상. 구년집정지제중 요이립돌위정군. 제중허 경립돌. 십구년 장공졸 자민공첩립.
장공 원년에 화독이 상(相)이 되었다. 9년에 정나라의 제중(祭仲)을 잡고, 돌(突)을 정나라의 주군으로 옹립하려 했다. 제중이 이를 받아들이자 마침내 돌을 옹립했다. 19년에 장공이 죽고, 아들 민공(湣公) 첩(捷)이 즉위했다.
湣公七年, 斉桓公即位. 九年, 宋水, 魯使臧文仲往弔水. 湣公自罪曰:「寡人以不能事鬼神, 政不脩, 故水.」臧文仲善此言. 此言乃公子子魚教湣公也.
민공칠년 제환공즉위. 구년 송수 노사장문중왕조수. 민공자죄왈 ‘과인이불능사쉬신 정불수 고수’ 장문중선차언. 차언내공자자어교민공야.
민공 7년에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즉위했다. 9년에 송나라에 물난리가 나자, 노나라에서 장문중(藏文仲)을 보내 물난리를 위로했다. 민공은 자책하며 ‘과인이 땅과 하늘의 신명을 섬기지 못하고,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물난리가 났다.’라고 했다. 장문중이 이 말을 칭찬했다. 이 말은 공자(公子) 자어(子魚)가 민공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十年夏, 宋伐魯, 戦於乗丘, 魯生虜宋南宮萬. 宋人請萬, 萬帰宋.
십년하 송벌노 전어승구 노생노송남궁만. 송인청만 만귀송.
10년 여름에 송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승구(乘丘)에서 전투를 벌였다. 노나라가 송나라의 남궁만(南宮萬)을 생포하자 송나라가 남궁만을 (풀어줄 것을) 요청해서 남궁만은 송나라로 돌아왔다.
十一年秋, 湣公與南宮萬猟, 因博争行, 湣公怒, 辱之, 曰:「始吾敬若;今若, 魯虜也.」萬有力, 病此言, 遂以局殺湣公于蒙沢. 大夫仇牧聞之, 以兵造公門. 萬搏牧, 牧歯著門闔死. 因殺太宰華督, 乃更立公子游為君.
십일년초 민공여남궁만렵 인박쟁행 민공노 욕지 왈 ‘시오경약 금약 노노야’ 만유력 병차언 수이국살민공우몽택. 대부구목문지 이병조공문. 만박목 목치저문합사. 인살태제화독 내경립공지유위군.
11년 가을에 민공과 남궁만이 사냥을 나가서 내기하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민공이 화가 나서 남궁만에게 ‘당초 내가 그대를 존경했지만 지금 그대는 노나라의 포로일 뿐이다!’라고 모욕을 주었다. 힘이 셌던 남궁만은 이 말에 원한을 품고는 몽택(蒙澤)에서 민공을 쳐서 죽였다. 대부(大夫) 구목(仇牧)이 이를 전해 듣고는 병사를 이끌고 공문(公門=임금이 다니는 문)에 이르렀다. 남궁만이 구목을 때리니 구목의 이가 뜰 문짝에 부딪치며 죽었다. 그리하여 태재 화독까지 죽이고 바로 공자 유(游)를 주군으로 옹립했다.
諸公子奔蕭, 公子禦説奔亳. 萬弟南宮牛将兵囲亳. 冬, 蕭及宋之諸公子共撃殺南宮牛, 弑宋新君游而立湣公弟禦説, 是為桓公. 宋萬奔陳. 宋人請以賂陳. 陳人使婦人飲之醇酒, 以革裹之, 帰宋. 宋人醢萬也.
제공자분소 공자어열분박 만제남궁우장병위박. 동 소급송지제공자공격살남궁우 시송신군유이립민공제어열 시위환공. 송만분진. 송인청이뢰진. 진인사부인음지순주 이혁과지 귀송송인염만야.
공자(=주군의 아들=왕자)들은 소(蕭)나라로 달아났고, 공자 어열(禦說)은 박(亳)나라으로 도망쳤다. 남궁만의 동생인 남궁우(南宮牛)는 병사를 거느리고 박나라를 포위했다. 겨울에 소나라와 송나라에 있던 공자들이 함께 남궁우를 공격해 죽이고, 송나라의 새로운 주군 유를 시해한 다음 민공의 동생 어열을 세우니, 이가 바로 환공(桓公)이다. 남궁만은 진(陳)나라로 달아났다. 송나라가 진나라에 뇌물을 주고 (남궁만을) 요청하니, 진나라는 여자를 보내 남궁만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가죽으로 남궁만을 싸서 송나라로 돌려보냈다. 송나라는 남궁만을 썰어서 젓갈을 담갔다.
桓公二年, 諸侯伐宋, 至郊而去. 三年, 斉桓公始霸. 二十三年, 迎衛公子燬於斉, 立之, 是為衛文公. 文公女弟為桓公夫人. 秦穆公即位.
환공이년 제후벌송 지교이거. 삼년 제환공시패. 이십삼년 영위공자훼어제 립지 시위위문공. 문공녀제위환공부인. 진목공즉위.
환공 2년에 제후들이 송나라를 토벌하려고 교외까지 왔다가 돌아갔다. 3년(기원전 679년)에 제나라 환공이 패주로 칭하기 시작했다. 23년에 (위<衛>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에서 공자 훼(燬)를 불러 맞아 세우니 이가 위나라 문공(文公)이다. 문공의 여동생은 제나라 환공의 부인이 되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즉위했다.
三十年, 桓公病, 太子茲甫譲其庶兄目夷為嗣. 桓公義太子意, 竟不聴. 三十一年春, 桓公卒, 太子茲甫立, 是為襄公. 以其庶兄目夷為相. 未葬, 而斉桓公会諸侯于葵丘, 襄公往会.
삼십년 환공병 태자자보양기서형목이위사. 환공의태자의 경불청. 삼십일년춘 환공졸 태자자보 시위양공. 이기서형목이위상 미장 이제환공회제후우규구 양공왕회
30년에 환공이 병이 났는데 태자 자보(玆甫)가 배다른 형인 목이(目夷, 자어)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했다. 환공은 태자의 뜻이 도의에 비추어 옳다고 여겼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 31년 봄에 환공이 죽고, 태자 자보가 즉위하니 이가 양공(襄公)이다. 그의 배다른 형 목이를 국상으로 삼았다. 장례를 마치기도 전에 제나라 환공이 규구(葵丘)에서 제후들과 회맹한다 하여 양공이 회맹에 갔다.
襄公七年, 宋地霣星如雨, 與雨偕下;六鶂退蜚, 風疾也.
양공칠년 송지운성여우 여우해하 육예퇴비 풍질야.
양공 7년에 송나라의 하늘에서 유성이 비처럼 떨어졌는데, 비도 함께 떨어졌다. 6예 새가 바람에 날지 못하고 풍병이 돌았다.
*六鶂:
八年, 斉桓公卒, 宋欲為盟会.
팔년 제환공졸 송욕위맹회
8년에 제나라 환공이 죽자, 송나라가 회맹을 소집하고자 했다.(맹주=천자가 되고자)
十二年春, 宋襄公為鹿上之盟, 以求諸侯於楚, 楚人許之. 公子目夷諫曰:「小国争盟, 禍也.」不聴.
십이년춘 송양공위록상지맹 이구제후어초 초인러지. 공자목이간왈 ‘소국쟁맹 화야’ 불청.
12년 봄에 송나라 양공이 녹상(鹿上)에서 회맹하고자 초나라에게 제후들을 소집해달라고 요구하니, 초나라가 이를 허락했다. 공자 목이가 ‘작은 나라가 회맹을 다투면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秋, 諸侯会宋公盟于盂. 目夷曰:「禍其在此乎? 君欲已甚, 何以堪之!」於是楚執宋襄公以伐宋.
추 제후회송공먕우우. 목이왈 ‘화기재차호 군욕이심 하이감지’ 어시초집송양공이벌송.
가을에 제후들이 우(盂)나라에서 송나라 양공과 회맹했다. 목이가 ‘화가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겠는가? 주군의 욕심이 지나치니 어찌 감당할까?’라고 했다. 이에 초나라가 송나라 양공을 붙잡고는 송나라를 정벌했다.
冬, 会于亳, 以釈宋公. 子魚曰:「禍猶未也.」
동 회우박 이석송공. 자어왈 ‘화유미야’
겨울에 (제후들이) 박(亳)나라에서 회맹하여 송나라 양공을 풀어주었다. 자어(목이)가 ‘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十三年夏, 宋伐鄭. 子魚曰:「禍在此矣.」秋, 楚伐宋以救鄭. 襄公将戦, 子魚諫曰:「天之棄商久矣, 不可.」
십삼년하 송벌정. 자어왈 ‘화재차의’ 추 초벌송이구정. 양공장전 자어간왈 ‘천지기상구의 불가’
13년 여름에 송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했다. 자어가 ‘화란 바로 이것이다!’라고 했다. 가을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하여 정나라를 구원하고자 했다. 양공이 맞아 싸우려 하자 자어가 ‘하늘이 상(송나라)을 버린 지 오래니 안 됩니다.’라고 간언했다.
冬, 十一月, 襄公與楚成王戦于泓. 楚人未済, 目夷曰:「彼衆我寡, 及其未済撃之.」公不聴. 已済未陳, 又曰:「可撃.」公曰:「待其已陳.」陳成, 宋人撃之. 宋師大敗, 襄公傷股. 国人皆怨公.
동 십일월 양공여초성왕전우홍. 초인미제 목이왈 ‘피중아과 급기미제격지’ 공불청 이제미진 우왈 ‘가격’ 공왈 ‘대기이진’ 진성 송인격지 송사대패 양공상고 국인개원공.
11월 겨울에 양공은 초나라 성왕(成王)과 홍수(泓水)에서 싸웠다. 초나라의 군대가 강을 다 건너지 않았는데 목이가 ‘상대는 많고 우리는 적습니다. 강을 건너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했으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강을 건넜으나 전열을 미처 갖추지 못하고 있자, 목이가 ‘공격해야 합니다.’해도 양공은 ‘저들이 전열을 갖추기를 기다려라!’라고 했다. 전열을 다 갖춘 다음 송나라가 공격했으나 송나라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양공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양공을 원망했다.
公曰:「君子不困人於阨, 不鼓不成列.」子魚曰:兵以勝為功, 何常言與! 必如公言, 即奴事之耳, 又何戦為?
공왈 ‘군자불곤인어액 불고불성열’ 자어왈 병이승위공 하상언여 필여공언 즉노사지이 우하전위.
양공은 “군자는 남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공격하지 않으며, 전열을 갖추지 않았는데 북을 울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자어가 ‘군대는 승리가 우선이거늘 어찌 격언만 찾습니까 공의 말은 노비의 생각이고 전쟁은 뭐하러 한답니까?’라고 했다.
楚成王已救鄭, 鄭享之;去而取鄭二姫以帰. 叔瞻曰:「成王無礼, 其不没乎? 為礼卒於無別, 有以知其不遂霸也.
초성왕이구정 정향지 거이취정이희이귀 숙첨왈 '성왕무례 기불몰호 위례졸어무별 유이지기불수패야.
초나라 성왕이 정나라를 구하니 정나라가 성왕을 접대했다. 성왕이 정나라 주군의 두 딸을 취하여 돌아갔다. 정나라의 대부 숙첨(叔瞻)이 '성왕의 무례함이 다함이 없어 예의 구분이 안되니 그가 천하 패주가 될 수없음을 알겠노라.'라고 했다.
是年, 晉公子重耳過宋, 襄公以傷於楚, 欲得晉援, 厚礼重耳以馬二十乗. 十四年夏, 襄公病傷於泓而竟卒, 子成公王臣立.
시년 진공자중이과송 양공이상어초 욕득진원 후례중이이마이십승 십사년하 양공병상어홍이경졸 자성왕신립.
그 해(13년)에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송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양공은 진나라의 원조를 얻고 싶어, 말 20승을 선물하는 등 후한 예로 중이를 접대했다. 14년 여름에 양공이 홍수(泓水)에서 당한 부상 때문에 결국 죽었다. 아들 성공(成公) 왕신(王臣)이 즉위했다.
成公元年, 晉文公即位. 三年, 倍楚盟親晉, 以有徳於文公也. 四年, 楚成王伐宋, 宋告急於晉. 五年, 晉文公救宋, 楚兵去. 九年, 晉文公卒. 十一年, 楚太子商臣弑其父成王代立. 十六年, 秦穆公卒.
성공원년 진문공즉위 삼년 배초먕친진 이유덕어문공야. 사년 초성왕벌송 송고급어진. 오년 진문공구송 초병거. 구년 진문공졸. 십일년 초태자상신시기부성왕대립. 십육년 진목공졸.
송나라 성공 원년에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즉위했다. 3년에 송나라가초나라와의 맹약을 저버리고 진나라와 가까이 지냈는데 (이는 양공이) 문공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4년에 초나라 성왕이 송나라를 토벌하자 송나라는 진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 5년에 진나라 문공이 송나라를 구원하자 초나라의 군대는 철수했다. 9년에 진 문공이 죽었다. 11년에 초나라 태자 상신(商臣)이 그 아버지 성왕을 시해하고 뒤를 이었다. 16년에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죽었다.
十七年, 成公卒. 成公弟禦殺太子及大司馬公孫固而自立為君. 宋人共殺君禦而立成公少子杵臼, 是為昭公.
십칠년 성공졸 성공제어살태자급대사마공손고이자립위군 송인공살군어이립성공소자저구 시위소공.
17년에 성공이 죽었다. 성공의 동생인 어(御)가 태자와 대사마 공손고(公孫固)를 죽이고 위에 오르니 송나라 사람들이 함께 주군 어를 죽이고, 성공의 작은 아들 저구(杵臼)를 옹립하니 이가 소공(昭公)이다.
昭公四年, 宋敗長翟縁斯於長丘. 七年, 楚荘王即位.
소공사년 송패장적연사어장구. 칠년 초장왕즉위
소공 4년에 송나라가 장구(長丘)에서 장적(長翟=오랑캐의 하나)의 연사(緣斯)를 물리쳤다. 7년에 초나라 장왕(莊王)이 즉위했다.
九年, 昭公無道, 国人不附. 昭公弟鮑革賢而下士. 先, 襄公夫人欲通於公子鮑, 不可, 乃助之施於国, 因大夫華元為右師. 昭公出猟, 夫人王姫使衛伯攻殺昭公杵臼. 弟鮑革立, 是為文公.
구년 소공무도 국인불부. 소공제포혁현이하사. 선 양공부인욕통어공자포 불가 급조지시어국 인대부화원위우자. 소공출렵 부인왕희사위백공살소공저구. 제포혁립 시위문공.
9년에 소공이 무도(無道)하자 나라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 소공의 동생 포혁(鮑革)은 유능하고 인재를 대우할 줄 알았다. 이보다 앞서 양공의 부인이 공자 포혁과 정을 통하고 싶어 했으나, 포혁이 거절했다. 부인은 그를 도와 나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대부 화원(華元)을 시켜 (포혁을) 우사(右師)로 삼게 했다. 소공이 사냥을 나가자 양공의 부인 왕희(王姬)는 위백(衛伯)을 시켜 소공 저구를 공격하여 죽였다. 동생 포혁이 즉위하니, 이가 문공(文公)이다.
文公元年, 晉率諸侯伐宋, 責以弑君. 聞文公定立, 乃去.
문공원년 진솔제후벌송 책이시군 문문공정립 내거.
문공 원년에 진(晉)나라가 제후들을 이끌고 송나라를 토벌하여 주군 시해(소공을 시해한 것)를 나무랐다. 문공이 정식으로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알고는 물러갔다.
二年, 昭公子因文公母弟須與武、繆、戴、荘、桓之族為亂, 文公尽誅之, 出武、繆之族.
이년 소공자인문공모제수여무 목 대 장 환지족위란 문공진주지 출무 목지족.
2년에 소공의 아들이 문공의 친동생인 수(須)와 함께 무공(武公), 목공(繆公), 대공(戴公), 장공(莊公), 환공(桓公)의 친족들과 난을 일으키자 문공은 이들 모두를 죽이고 무공과 목공의 친족들은 추방했다.
四年春, 楚命鄭伐宋. 宋使華元将, 鄭敗宋, 囚華元. 華元之将戦, 殺羊以食士, 其御羊羹不及, 故怨, 馳入鄭軍, 故宋師敗, 得囚華元. 宋以兵車百乗文馬四百匹贖華元. 未尽入, 華元亡帰宋.
사년춘 초명정벌송 송사화원장 정패송 인화원. 화원지장전 살양이식사 기어양걍불급 고원 치입정군 고송사패 득수화원. 송이병거승문마사백필속화원. 미진입 화원망귀송.
4년 봄에 초나라가 정나라에게 송나라를 정벌하라고 명했다. 송나라는 화원을 장수로 삼아 맞서 싸웠으나, 정나라는 송나라를 패배시키고 화원을 포로로 잡았다. 당초 화원은 전투에 앞서 양을 잡아 병사들을 먹였으나, 자기 마부에게는 양고기국을 주지 않았다. 마부가 원망하여 정나라의 군대로 투항하여 송나라의 군대는 패하고 화원이 포로로 잡힌 것이다. 송나라가 마차 100승, 얼룩말 400필로 화원과 맞바꾸려 했다. 그런데 이것들을 다 보내기도 전에 화원은 도망쳐 송나라로 돌아왔다.
十四年, 楚荘王囲鄭. 鄭伯降楚, 楚复釈之.
십사년 초장왕위정 정백항초 초복석지
14년에 초나라 장왕이 정나라를 포위했다. 정나라의 주군이 초나라에 항복하자, 초나라는 포위를 풀었다.
十六年, 楚使過宋, 宋有前仇, 執楚使. 九月, 楚荘王囲宋.
십육년 초사과송 송유전구 집초사. 구월 초장왕위송.
16년에 초나라의 사신이 송나라를 지나가는데 송나라가 과거 원한 때문에 초나라의 사신을 붙잡았다. 9월에 초나라 장왕이 송나라를 포위했다.
十七年, 楚以囲宋五月不解, 宋城中急, 無食, 華元乃夜私見楚将子反. 子反告荘王. 王問:「城中何如?」曰:析骨而炊, 易子而食. 荘王曰:「誠哉言! 我軍亦有二日糧.」以信故, 遂罷兵去.
십칠년 토이위송오월불해 송성중급 무식 화원내야사견초장자반. 자반고장왕. 왕문 '성중하여' 왈 석골이취 역자이식. 장왕왈 '성재안 아군역유이일량' 이신고 수파병거.
17년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다섯 달이나 포위한 채 풀지 않자, 송나라의 도성은 먹을 것이 바닥나는 등 위기에 처했다. 화원이 밤에 몰래 초나라의 장수 자반(子反)을 만났다. 자반이 장왕에게 보고하자, 장왕은 '성안의 상황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사람 뼈를 쪼개 불쏘시개로 쓰고, 자식을 서로 바꿔 먹고 있다고 합니다.'라 하자 장왕이 '그 말이 정말이었군, 우리 군대도 이틀 분 식량만 남았소.'하고 그 말을 믿고 마침내 군대를 철수시켜 돌아갔다.
二十二年, 文公卒, 子共公瑕立. 始厚葬. 君子譏華元不臣矣.
이십이년 문공졸 자공공하립. 시후정 군자기화원불신의
22년에 문공이 죽고, 아들 공공(共公) 하(瑕)가 즉위했다. 후장(厚葬=성대한 장례)이 시작되었다. 군자들은 화원이 신하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며 나무랐다.
共公(元)[十]年, 華元善楚将子重, 又善晉将欒書, 両盟晉楚.
공공원십년 화원선초장자중 우선진장난서 양맹진초
공공 원년(10년)에 화원이 초나라의 장수 자중(子重)과 잘 지내고 또 진(晉)나라의 장수 난서(欒書)와도 사이가 좋아 진과 초 두 나라와 동맹했다.
十三年, 共公卒. 華元為右師, 魚石為左師. 司馬唐山攻殺太子肥, 欲殺華元, 華元奔晉, 魚石止之, 至河乃還, 誅唐山. 乃立共公少子成, 是為平公.
십삼년 공공졸. 화원위우사 노석위좌사. 사마당산공살태자비 욕살화원 화원분진 어석지지 지하내환 주당산. 내립공공소자성 시위평공
13년에 공공이 죽었다. 화원은 우사(右師)가 되었고, 어석(魚石)은 좌사(左師)가 되었다. 사마(司馬) 당산(唐山)이 태자 비(肥)를 공격하여 죽이고, 화원도 죽이려고 하자 화원은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어석이 그를 막아서자 황하에서 되돌아와 당산을 죽였다. 곧 공공의 작은아들 성(成)을 옹립하니, 이가 평공(平公)이다.
平公三年, 楚共王抜宋之彭城, 以封宋左師魚石. 四年, 諸侯共誅魚石, 而帰彭城於宋. 三十五年, 楚公子囲弑其君自立, 為霊王. 四十四年, 平公卒, 子元公佐立.
평공삼년 초공왕발송지팽성 이봉송좌사어석. 사년 제후공주어석 이귀팽성어송. 삼십오년 초공자위시기군자립 위영왕. 사십사년 평공졸 자원공좌립.
평공 3년에 초나라 공왕(共王)이 송나라의 팽성(彭城)을 탈취하여 송나라의 좌서 어석을 그곳에 봉했다. 4년에 제후들이 모여 어석을 죽이고 팽성을 송나라에 돌려주었다. 35년에 초나라 공자 위(圍)가 그 군주를 죽이고 스스로 위에 오르니, 이가 영왕(靈王)이다. 44년에 평공이 죽고, 아들 원공(元公) 좌(佐)가 즉위했다.
元公三年, 楚公子棄疾弑霊王, 自立為平王.
원공삼년 초공자기질시영왕 자립위평왕
원공 3년에 초나라 공자 기질(棄疾)이 영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자리에 올라 평왕(平王)이 되었다.
八年, 宋火. 十年, 元公毋信, 詐殺諸公子, 大夫華、向氏作亂. 楚平王太子建來奔, 見諸華氏相攻亂, 建去如鄭.
팔년 송화. 십년 원공무신 사살제공자 대부화 향씨작란. 초평왕태자건래분 견제화씨상공란 건거여정.
8년에 송나라에 큰불이 났다. 10년에 원공이 신의없이 속임수로 공자들을 죽였다. 대부 화씨(華氏)와 향씨(向氏)가 난을 일으켰다. 초나라 평왕의 태자 건(建)이 (송나라로) 도망 왔으나, 화씨 등이 난을 일으켜 서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그곳을 떠나 정나라로 갔다.
十五年, 元公為魯昭公避季氏居外, 為之求入魯, 行道卒, 子景公頭曼立.
십오년 원공위노소공피계씨거외 위지구입노 행도졸 자경공두만립.
15년에 원공이 노나라의 소공(昭公)이 계씨(季氏)를 피해 나라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는 그를 노나라로 돌려보내려 애를 쓰다가 죽었다. 아들 경공(景公) 두만(頭曼)이 즉위했다.
景公十六年, 魯陽虎來奔, 已复去. 二十五年, 孔子過宋, 宋司馬桓魋悪之, 欲殺孔子, 孔子微服去. 三十年, 曹倍宋, 又倍晉, 宋伐曹, 晉不救, 遂滅曹有之. 三十六年, 斉田常弑簡公.
경공십육년 노양호래분 이복거. 이십오년 공자과송 송사마환퇴오지 욕살공자 공자미복거. 삼십년 조배송 우배진 송벌조 진불구 수멸조유지. 삼십육년 제전상시간공.
경공 16년에 노나라의 양호(陽虎)가 도망쳐 왔다가 얼마 뒤 다시 떠났다. 25년에 공자(孔子)가 송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송나라의 사마 환퇴(桓魋)가 그를 미워하여 죽이려 하자, 공자가 옷을 갈아입고 떠났다. 30년(기원전 487년)에 조(曹)나라가 송나라를 배반하고, 진(晉)나라도 배반했다. 송나라가 조나라를 토벌했는데 진나라가 구원병을 보내지 않아, 마침내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차지했다. 36년에 제나라의 전상(田常)이 간공(簡公)을 시해했다.
三十七年, 楚恵王滅陳. 熒惑守心. 心, 宋之分野也. 景公憂之. 司星子韋曰:「可移於相.」景公曰:「相, 吾之股肱.」曰:「可移於民.」景公曰:「君者待民.」曰:「可移於歳.」景公曰:「歳饑民困, 吾誰為君!」子韋曰:「天高聴卑. 君有君人之言三, 熒惑宜有動.」於是候之, 果徙三度.
삼십칠년 초혜왕멸진. 형혹수심. 심 송지분야야. 경공우지. 사성자위왈 ‘가이어세’ 경공왈 ‘세기민곤 오수위군’ 자위왈 ‘천고청비 군유군인지언삼 형혹의유동’ 어시후지 과사삼도.
37년에 초나라 혜왕(惠王)이 진(陳)나라를 멸망시켰다. 화성(火星)이 심수(心宿) 자리를 침범했다. 심수 자리는 송나라의 영역이다. 경공은 이를 걱정하자 사성(司星) 자위(子韋)가 ‘재앙의 원인을 재상한테 돌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경공이 ‘재상은 나의 팔다리요.’라 하자 ‘그렇다면 백성들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경공이 ‘군주는 백성을 섬기는 존재’라 하자 ‘그렇다면 한 해의 수확 쪽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라 했다. 경공이 ‘수확이 나빠 백성이 굶주리면 누가 나를 군주라 하겠소?’라 했다. 자위가 ‘높은 하늘도 인간 세상의 일을 두루 살핍니다. 주군께서 군주로서 해야 할 세 마디를 하셨으니 화성(형혹성)은 틀림없이 자리를 옮길 것입니다.’라 했다. 이에 다시 살폈더니 과연 3도 정도 옮겨졌다.
六十四年, 景公卒. 宋公子特攻殺太子而自立, 是為昭公. 昭公者, 元公之曾庶孫也. 昭公父公孫糾, 糾父公子褍秦, 褍秦即元公少子也. 景公殺昭公父糾, 故昭公怨殺太子而自立.
육십사년 경공졸. 송공자특공살태자이자립 시위소공. 소공자 원공지증서손야. 소공부공손규 규부공자단진 단진즉원공소자야. 경공살소공부규 고소공원살태자이자립.
64년에 경공이 죽었다. 송나라의 공자 특(特)이 태자를 죽이고 자립하니 이가 소공(昭公)이다. 소공은 원공(元公)의 증손자이다. 소공의 아버지는 공손규(孔孫糾)이고, 공손규의 아버지는 공자 단진이고, 단진이 바로 원공의 작은아들이다. 경공이 소공의 아버지 공손규를 죽였기에 소공이 원한을 품어 태자를 죽이고 스스로 위에 오른 것이다.
昭公四十七年卒, 子悼公購由立. 悼公八年卒, 子休公田立. 休公田二十三年卒, 子辟公辟兵立. 辟公三年卒, 子剔成立. 剔成四十一年, 剔成弟偃攻襲剔成, 剔成敗奔斉, 偃自立為宋君.
소공사십칠년졸 자도공구유립. 도공팔년졸 자휴공전립. 휴공전이십삼년졸 자벽공벽병립. 벽공삼년졸 자척성립. 척성사십일년 척성제언공습척성 척성패분제 언자립위송군.
소공이 재위 47년 만에 죽고, 아들 도공(悼公) 구유(購由)가 즉위했다. 도공은 재위 8년 만에 죽고, 아들 휴공(休公) 전(田)이 즉위했다. 휴공 전이 재위 23년 만에 죽고, 아들 벽공(辟公) 벽병(辟兵)이 즉위했다. 벽공은 재위 3년 만에 죽고, 아들 척성(剔成)이 즉위했다. 척성 41년에 척성의 동생인 언(偃)이 척성을 기습했다. 척성이 패하여 제나라로 달아나고 언어 송나라의 주군으로 스스로 위에 올랐다.
君偃十一年, 自立為王. 東敗斉, 取五城;南敗楚, 取地三百里;西敗魏軍, 乃與斉、魏為敵国.
군언십일년 자립위왕. 동패제 취석성 남패초 취지삼백리 서패위군 내여제 위위적국.
주군 언은 재위 11년(기원전 318년)에 ‘왕(王)’으로 등극했다. 동으로는 제나라를 물리치고 다섯 개의 성을 취하였고, 남으로는 초나라를 물리치고 300리 땅을 취했다. 서쪽으로는 위(魏)나라의 군대를 패배시키니 이로써 제나라, 위나라와 적국이 되었다.
盛血以韋嚢, 県而射之, 命曰「射天」. 淫於酒婦人. 群臣諫者輒射之. 於是諸侯皆曰「桀宋」. 「宋其复為紂所為, 不可不誅」. 告斉伐宋.
성혈이위낭 현이사지 명왈 ‘사천’. 음어주부인. 군신간자첩사지. 어시제후개왈 ‘걸송’. ‘송기복위주소위 불가불주’ 고제벌송
(언은) 피를 가득 채운 가죽 주머니를 매달아 놓고는 화살로 쏘게 하면서 ‘하늘을 쏜다’고 했고 술과 여자에 빠졌다. 신하들이 바른 말을 하면 바로 활을 쏘았다. 이에 제후들은 모두 ‘걸송(桀宋)’이라 부르며 ‘송나라가 은나라 주왕이 한 짓을 되풀이하니 죽이지 않을 수 없다.’라며 제나라에게 송나라를 토벌하라고 알렸다.
王偃立四十七年, 斉湣王與魏、楚伐宋, 殺王偃, 遂滅宋而三分其地.
왕언립사십칠년 제민뢍여위 초벌송 살왕언 수멸송이삼분기지
송나라 왕 언 47년(기원전 282년)에 제나라 민왕(湣王)과 위(魏)나라, 초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하여 왕 언을 죽이고, 마침내 송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太史公曰:孔子称「微子去之, 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殷有三仁焉」. 春秋譏宋之亂自宣公廃太子而立弟, 国以不寧者十世. 襄公之時, 修行仁義, 欲為盟主. 其大夫正考父美之, 故追道契、湯、高宗, 殷所以興, 作商頌. 襄公既敗於泓, 而君子或以為多, 傷中国闕礼義, 褒之也, 宋襄之有礼譲也
태사공왈 공자칭 ‘미자거지 기자위지노 비간간이사 은유삼인언’ 춘추시송지란자선공폐태자이립제 국이불영자십세. 양공지시 수행인의 욕위맹주. 기대부정고부미지 고추도 설 탕 고종 은소이흥 작상송 영공기패어홍 이군자혹이위다 상중국권예의 포지애 송양지유예양야.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공자께서는 ‘미자는 떠났고, 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바른 말을 하다가 죽으니 은나라에는 세 사람의 어진 이가 있었다.’라고 했다.『춘추(春秋)』에서 말하길 송나라는 내란으로 선공이 태자를 폐하고, 동생을 세우면서 나라가 10세 동안 편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양공 때는 인의를 수행하며 맹주가 되고자 했다. 그 대부 정고보(正考父)가 이를 찬미하고자 설(契), 탕(湯), 고종(高宗)을 추모하고 은나라가 흥성한 이치를 「상송(商頌)」으로 나타내 보였다. 양공이 홍수에서 패했으나 그를 칭찬한 군자도 있었는데, 중국에 예의가 사라진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송나라 양공의 예양을 칭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