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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 第三 塔像 第四- 五臺山 文殊寺 石塔記

五臺山 文殊寺 石塔記

 

庭畔石塔 盖新羅人所立也. 制作雖淳朴不巧 然甚有靈響 不可勝記. 就中一事 聞之諸古老 云 昔連谷縣人 具舡沿海而漁 忽見一塔隨逐舟楫. 凡水族見其影者 皆逆散四走 以故漁人 一無所得 不堪憤恚 尋影而至 盖此塔也. 於是共揮斤斫之而去. 今此塔四隅皆缺者以此也.”

정반석탑 개신라인소립야. 제작수순박불교 연심유영향 불가승기. 취중일사 문지제고노 운 석연곡현안 구강연해아어 홀견일탑수축주즙. 범수족견기영자 개역산사주 이고어인 일무소득 불심분에 심영이지 개차탑야. 어시공휘근작지이거. 금차탑사우개결자이차야.”

 

정원에 있는 석탑은 신라 사람이 세운 것 같다. 비록 순박하여 정교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영험이 매우 많아서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그중 여러 옛 노인들에게 들은 한 가지만 기록하면 이러하다. “옛날 연곡현(連谷縣)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탑 하나가 배를 따라 오는 것을 보았다. 그 그림자를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래서 어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그림자를 찾아보니 아마도 이 탑인 것 같았다. 어부는 도끼를 휘둘러 탑을 부셔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지금 탑의 네 모퉁이가 모두 떨어진 것은 이러한 이유때문 일거다.”

 

予驚嘆無已. 然怪其置塔 稍東而不中 於是仰見一懸板云 比丘處玄 曾住此院 輒移置庭心 則二十餘年間 寂無靈應. 及日者求基抵此 乃嘆曰 是中庭地 非安塔之所 胡不移東乎?’ 於是衆僧乃悟 復移舊處 今所立者是也.

여경탄무이. 연괴기치탑 초동이불중 어시앙견일현판운 차구처현 증주차원 첩이치정심 즉이십여년간 적무영응. 금일자구기저차 내탄왈 시중정지 비안탑지소 호불이동호?’ 어시중승내오 복이구처 금소립자시야.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놀라서 한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탑의 위치가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져서 중앙에 있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현판을 우러러보니 이렇게 써 있었다. “승려 처현(處玄)이 일찍이 이 절에 머물러 있다가 문득 탑을 뜰 가운데로 옮겼다. 그러자 20여 년 동안은 적막하니 아무런 영험이 없었다. 풍수를 보는 자가 터를 찾으려 이곳에 왔다가 탄식하기를, ‘이 뜰 가운데는 탑을 세울 자리가 아닌데, 어찌하여 동쪽으로 옮기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승려들이 그제서야 깨닫고 다시 옛 자리로 옮겼는데,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余非好怪者 然見其佛之威神 其急於現迹利物如此 爲佛子者 詎可黙而無言耶? 時正隆元年丙子十月 日 白雲子記.

여비호괴자 연견기불지위신 기급어현적이물여차 위불자자 거가묵이무언야 시정융원년병자시월일 백운자기.

 

나는 괴이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만 부처님의 위엄과 신령함이 자취를 나타내어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이처럼 빠른 것을 보고서, 불자로서 어찌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는 정륭(正隆) 원년 병자(서기 1156) 10월 일, 백운자(白雲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