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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列傳-大宛列傳





(
大宛列傳)

 

 

大宛之跡, 見自張騫. 張騫, 漢中人. 建元中為郎. 是時天子問匈奴降者, 皆言匈奴破月氏王, 以其頭為飲器, 月氏遁逃而常怨仇匈奴, 無與共撃之.

대원지적 견자장건. 장건 한중인. 건원중위랑. 시시천자문흉노항자 개언흉노파월씨왕 이기두위음기 월씨순도이상원구흉노 무여공격지.

 

대원(大宛)의 사적은 장건(張騫)으로부터 알려지게 되었다. 장건은 한중(漢中) 출신으로 건원(建元) 연간(서기전 140-서기전 135)에 낭관(郎官)이 되었다. 그 때에 황제가 흉노(匈奴)에서 투항해 온 자들을 흉노와 대원의 관계를 물어보니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흉노는 월씨(月氏)를 격파하고 그 왕을 죽여 그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사용했고, 월지 부족은 멀리 도망가 숨어 살면서 항상 흉노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으며 흉노와 서로 상종치 않는다

 

漢方欲事滅胡, 聞此言, 因欲通使. 道必更匈奴中, 乃募能使者. 騫以郎應募, 使月氏, 與堂邑氏()胡奴甘父倶出隴西.

한방욕사멸호 문차언 인욕통사. 도필경흉노중 내모능사자. 건이항응모 사월씨 여당읍씨호노감보구출롱서.

 

그 당시에 한()나라는 흉노를 정벌하려고 했기에 그 말을 듣고 월지에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 그러나 월지로 가려면 반드시 흉노의 땅을 거쳐 가야 했기에 능히 사신의 임무를 수행할 적합한 인물을 모집했다. 장건은 낭관의 신분으로 응모해 월지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당읍씨(堂邑氏)의 흉노족 노예 감보(甘父)와 함께 롱서(隴西)로 떠났다.

 

経匈奴, 匈奴得之, 傳詣単於. 単於留之, :「月氏在吾北, 漢何以得往使 吾欲使越, 漢肯聴我乎?」留騫十餘歳, 與妻, 有子, 然騫持漢節不失.

경흉노 흉노득지 전지선우. 선우유지 왈 월씨재오북 한하이득왕리? 오욕사월 한긍청아호?’ 유건십여세 여처 유자 연건지한절부실.

 

장건의 일행이 흉노의 땅을 지나는데 흉노의 군사들이 그들을 잡아서 선우(單于)에게로 보냈다. 선우는 그를 억류하고 이렇게 말했다. ‘월지는 우리의 북쪽에 있는데, 한나라가 어찌하여 사신을 보냈느냐? 내가 월()나라로 사신을 보내고자 한다면, 한나라는 허락하겠느냐?’ 그리하여 장건은 10여 년 동안 억류되었고 현지 처를 주어 자식까지 낳았다. 그러나 장건은 한나라 사신을 상징하는 부절(符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居匈奴中, 益寛, 騫因與其屬亡郷月氏, 西走數十日至大宛.

거흉노중 익관 건인여시속망향월씨 서주수십일지대완.

 

장건 일행이 흉노에서 장기간 살았더니 점차 그들에 대한 감시도 소홀해졌으므로, 장건은 그 기회를 틈타 일행들과 함께 달아나 월씨국로 떠났다. 서쪽으로 수 십일을 가니 대원국에 도달했다.

 

大宛聞漢之饒財, 欲通不得, 見騫, , 問曰:「若欲何之?」

대완문한지요재 욕통부득 견건 희 문왈 약욕하지

 

대원국에서는 평소 한나라에 물자가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서로 왕래하고자 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차에 장건 일행을 보자 기뻐하며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무얼 바라는가?’

 

騫曰:「為漢使月氏, 而為匈奴所閉道. 今亡, 唯王使人導送我. 誠得至, 反漢, 漢之賂遺王財物不可勝言.

건왈 위한사월씨 이위흉노소폐도. 금망 유왕사인도송아. 성득지 반한 한지뢰유왕재물불가승언.’

 

장건이 대답했다. ‘저희는 월지국으로 가는 한나라 사신단 입니다. 월지국으로 가던 도중에 흉노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지금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나왔습니다. 청컨대 왕께서는 사람을 파견해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진실로 제가 월지국에 도착한 다음 임무를 끝내고 다시 한나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한나라는 황제께 말씀드려 왕께 많은 재물을 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大宛以為然, 遣騫, 為発導繹, 抵康居, 康居傳致大月氏. 大月氏王已為胡所殺, 立其太子為王. 既臣大夏而居, 地肥饒, 少冦, 志安樂, 又自以遠漢, 殊無報胡之心.

대원이위연 견건 위발도역 저강거 강거전치대월씨. 대월씨왕이위호소살 입기태자위왕. 기신대하이거 기비요 소구 지안락 우자이원한 수무보호지심.

 

대원국의 왕은 장건의 말을 믿고 안내인과 통역원을 붙여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장건의 일행은 드디어 강거(康居)에 도착했다. 강거에서는 다시 그들을 대월지(大月氏)로 보냈다. 대월지는 왕이 일찍이 흉노에게 죽음을 당했기에 그의 태자가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대하(大夏)를 정복해 그 땅에 살고 있었는데, 땅이 비옥하여 도둑도 없어서 안락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한나라를 오랑캐로 침략할 마음이 없었다

 

騫従月氏至大夏, 竟不能得月氏要領.

건종월씨지대하 경불능득월씨요령.

 

그래서 장건은 월지에서 대하로 갔으나 역시 월씨국으로부터 승낙을 얻지 못했다.

 

留歳餘, , 並南山, 欲従羌中帰, 複為匈奴所得. 留歳餘, 単於死, 左谷蠡王攻其太子自立, 國內亂, 騫與胡妻及堂邑父倶亡帰漢.

유세여 환 병남산 욕종강중귀 복위흉노소득. 유세여 선우사 좌녹려왕공기태자자립 국내란 건여호처급당읍부구망귀한.

 

장건 일행은 월지국에서 1년 남짓 머물러 있다가 돌아오던 중 남산(南山)을 따라 강족(羌族)의 땅을 거쳐 돌아가려고 했는데, 도중에 또다시 흉노에게 사로 잡혔다. 흉노의 땅에서 1년 남짓 억류되어 있을 때 선우가 죽자 좌녹려왕(左谷蠡王)이 흉노의 태자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 와중에 흉노 내분이 일어나 어수선해지자 장건은 그 기회를 틈타 흉노의 아내와 감보를 데리고 도망쳐 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漢拝騫為太中大夫, 堂邑父為奉使君. 騫為人彊力, 寛大信人, 蠻夷愛之. 堂邑父故胡人, 善射, 窮急射禽獣給食. , 騫行時百餘人, 去十三歳, 唯二人得還.

한배건위태중대부 당읍보위봉사군. 건위인강력 관대신인 만이애지. 당읍부고호인 선사 궁급사슴수급식. 초 건행시백여인 서십삼세 유이인득환.

 

한나라에서는 장건의 노고를 치하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임명하고, 감보를 봉사군(奉使君)으로 임명했다. 장건은 의지가 굳세고 마음이 너그럽고 남에게 성실했기에 서역의 오랑캐들도 모두 그를 좋아했다. 감보는 본래 흉노 출신이었기에 활을 잘 쏘았는데, 곤궁에 처했을 때에는 짐승을 잡아 끼니를 제공했다. 처음에 장건이 길을 떠날 때에는 그 일행이 1백여 명이었는데, 13년 후에는 오로지 두 사람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騫身所至者大宛大月氏大夏康居, 而傳聞其旁大國五六, 具為天子言之.

건신소지자대원 대월씨 대하 강거 이전문기방대국오육 구위천자언지.

 

장건이 직접 가본 곳은 대원(大宛), 대월지(大月氏), 대하(大夏), 강거(康居)등의 나라였지만, 그 밖에도 인접한 5, 6개의 대국(大國)에 대해서도 전해 듣고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소상히 보고했다.

 

大宛在匈奴西南, 在漢正西, 去漢可萬里. 其俗土著, 耕田, 田稲麥. 有蒲陶酒. 多善馬, 馬汗血, 其先天馬子也. 有城郭屋室. 其屬邑大小七十餘城, 衆可數十萬.

왈 대원재흉노서남 재한정남 거한가만리. 기속토저 경전 전도맥. 유포도주. 다선마 마한혈 기선천마자야. 유성곽거실. 기속읍대소칠심여성 중가수십만.

 

대원국은 흉노의 서남쪽, 한나라의 정서(正西)쪽에 있는데, 한나라에서 약 만 리쯤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의 풍습은 한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밭을 갈아 벼와 보리를 심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있고,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고 그 말의 조상은 천마(天馬)의 새끼라고 합니다. 거주지는 외성과 내성으로 된 성곽 안에 가옥을 짓고 사는데, 크고 작은 70여 개의 성읍에 백성은 몇 십만 정도 됩니다.

 

其兵弓矛騎射. 其北則康居, 西則大月氏, 西南則大夏, 東北則烏孫, 東則扜冞於窴. 於窴之西, 則水皆西流, 注西海其東水東流, 注塩沢. 塩沢潛行地下, 其南則河源出焉. 多玉石, 河注中國. 而樓蘭姑師邑有城郭, 臨塩沢. 塩沢去長安可五千里. 匈奴右方居塩沢以東, 至隴西長城, 南接羌, 鬲漢道焉.

기병궁모기사. 기북즉강거 서측대월씨 서남즉대하 동북즉오손 동즉우전. 우전지서즉수개서류 주서해 기동수동류 주염택. 염택잠행지하 기남즉하원출언. 다옥석 하주중국. 이누란 고사읍유성곽 임염택. 염택거장안가오천리. 흉노우방거염택이동 지롱서장성 남접강 격한도언.

 

그들의 무기는 활과 창이며 군사들은 말을 타고 활을 쏩니다. 그 북쪽은 강거, 서쪽은 대월지, 서남쪽은 대하, 동북쪽은 오손(烏孫), 동쪽은 우미, 우전(于窴) 등의 나라가 있습니다. 우전의 서쪽에는 강이 있는데, 그 물길이 모두 서쪽으로 흘러 서해(西海)로 들어가고, 동쪽은 물길이 동쪽으로 흘러 염택(鹽澤)으로 들어갑니다. 염택의 물길은 지하로 흘러들고, 그 남쪽은 바로 황하(黃河)가 발원하는 땅입니다. 옥석(玉石)이 많고 황하는 중국으로 흘러갑니다. 누란(樓蘭)과 고사(姑師)에는 성곽이 있고 염택에 인접해 있습니다. 염택은 장안(長安)에서 약 5천리쯤 떨어져 있습니다. 흉노의 우측이 염택의 동쪽이고, 농서의 장성(長城)에 이르러 남쪽으로 강()과 접해 한나라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烏孫在大宛東北可二千里, 行國, 隨畜, 與匈奴同俗. 控弦者數萬, 敢戦. 故服匈奴, 及盛, 取其羈屬, 不肯往朝會焉.

오손재대원동북가이천리 행국 수축 여흉노동속. 강현자수만 감전. 고복흉노 급성 취기기속 불긍왕조회언.

 

오손국은 대원의 동북쪽 2천리쯤 되는 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정착하지 않고 유목생활을 하는데 흉노와 풍속이 같습니다. 군사가 몇 만 명이나 되며, 용감하게 잘 싸웁니다. 원래 흉노에 복속되어 있었으나 강성해진 뒤로는 흉노에 보낸 인질들을 거두어가고, 조회에도 가려 하지 않습니다.

 

康居在大宛西北可二千里, 行國, 與月氏大同俗. 控弦者八九萬人. 與大宛鄰國. 國小, 南羈事月氏, 東羈事匈奴.

강거재댜원서북가이천리 행국 여월씨대동속. 강현자팔구만인. 여대원린국. 국소 남기사월씨 동기사흉노.

 

강거국는 대원의 서북쪽 2천리쯤 되는 곳에 있습니다. 정착하지 않고 사는데, 월지와 풍속이 매우 비슷합니다. 활을 쏘는 군사가 8~9만 명이며, 대원국의 이웃나라입니다. 나라가 작아서 남쪽은 월지에 복속되어 있고, 동쪽은 흉노에 복속되어 있습니다.

 

奄蔡在康居西北可二千里, 行國, 與康居大同俗. 控弦者十餘萬. 臨大沢, 無崖, 蓋乃北海雲.

엄채재장거서북가이천리 행국 여강거대동속, 강현자십여만. 임대택 무애 개내북해운.

 

엄채국(奄蔡國)는 강거 서북쪽 2천리쯤 되는 곳에 있습니다. 정착하지 않고 사는데 강거와 풍속이 매우 비슷합니다. 활을 쏘는 군사는 10여 만 명입니다. 매우 큰 못에 잇대어 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그곳이 북해(北海)인 것 같습니다. .

 

大月氏在大宛西可二三千里, 居嬀水北. 其南則大夏, 西則安息, 北則康居. 行國也, 隨畜移徙, 與匈奴同俗. 控弦者可一二十萬. 故時彊, 軽匈奴, 及冒頓立, 攻破月氏, 至匈奴老上単於, 殺月氏王, 以其頭為飲器.

대월씨재대원서가이삼천리 거규수북. 기남즉대하 서즉안식 북즉강거. 행국야 수축이사 여흉노동속. 강현자가일이십만. 고시강 경흉노 급목돈립 공파월씨 지흉노상선우 살월씨왕 이기두위음기.

 

대월지국는 대원국의 서쪽 2~3천리쯤 되는 곳에 있으며, 규수(嬀水)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남쪽은 대하, 서쪽은 안식(安息), 북쪽은 강거입니다. 정착하지 않고 유목생활을 하며 옮겨 다니는데, 흉노와 풍속이 같습니다. 활을 쏘는 군사가 10~20만 가량 됩니다. 과거에는 강성해 흉노를 업신여겼는데, 흉노의 묵돌(冒頓)이 즉위한 후에 월지국를 격파하고, 노상선우(老上單于) 때 와서는 월지왕을 죽이고 그 머리뼈로 술잔으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始月氏居敦煌祁連閒, 及為匈奴所敗, 乃遠去, 過宛, 西撃大夏而臣之, 遂都嬀水北, 為王庭. 其餘小衆不能去者, 保南山羌, 號小月氏.

시월씨거돈황 기련간 급위흉노소패 급원거 과원 서격대하이신지 수도규수북 위왕정. 기여소중불능거자 남보산강 호소월씨.

 

본래 월지국는 돈황(敦煌)과 기련산(祁連山) 사이에 있었는데, 흉노에게 패하자 멀리 떠나 대원을 지나서 서쪽으로 대하를 공격해 그들을 신복시키고, 마침내는 규수 북쪽에다 도읍을 세우고 왕정(王庭)으로 삼았습니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지 않고 남은 일부 사람들은 남산과 강족(羌族)이 거주하던 곳을 지키고 살면서 소월지(小月氏)라고 불렀습니다.

 

安息在大月氏西可數千里. 其俗土著, 耕田, 田稲麥, 蒲陶酒. 城邑如大宛. 其屬小大數百城, 地方數千里, 最為大國. 臨嬀水, 有市, 民商賈用車及船, 行旁國或數千里.

안식재대월씨서가수천리. 기속토저 경전 건도맥 포도주. 성읍여대원. 기속소대수백성 지방수천리 최위대국. 임규수 유시 민상매용거급선 행방국혹수천리.

 

안식국(安息國)은 대월지의 서쪽 몇천 리 되는 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풍속은 한곳에 정착해 밭갈이해 보리를 심고 살며, 포도주를 생산합니다. 성읍은 대원과 같은데, 관할하는 크고 작은 읍이 몇 백 개이고, 땅이 사방 몇 천 리나 되는 큰 나라입니다. 규수에 흐르고 있으며, 거래를 위해 백성들은 수레와 배를 이용해 이웃 나라나 때로는 몇 천 리 되는 곳까지 왕래합니다.

 

以銀為銭, 銭如其王面, 王死輒更銭, 效王面焉. 畫革旁行以為書記. 其西則條枝, 北有奄蔡黎軒.

이은위전 전여기왕면 왕사첩경전 효왕면언. 화혁방행이위서기. 기서즉조지 북유엄채 여헌.

 

은으로 동전을 만드는데, 동전에는 그 나라 왕의 얼굴이 있고, 왕이 죽으면 곧 동전을 다시 바꾸어 새 임금의 얼굴을 다시 넣습니다. 가죽에다 글을 적어 기록합니다. 그 나라의 서쪽에는 조지(條枝)가 있으며, 북쪽에는 엄채(奄蔡), 여헌(黎軒)이 있습니다.



條枝在安息西數千里, 臨西海. 暑溼. 耕田, 田稲. 有大鳥, 卵如甕. 人衆甚多, 往往有小君長, 而安息役屬之, 以為外國. 國善眩. 安息長老傳聞條枝有弱水西王母, 而未嘗見.

조지재안식서수천이 임서해. 서습 경전 전도. 유대마 란여옹 인중심다 왕왕유소군장 이안식역속지 이위외국. 국선현. 안식장로전문조지유약수 서왕모 이미상견.


조지국는 안식의 서쪽 몇 천 리 되는 곳에 있고, 서해(西海)에 맞닿아 있습니다. 날씨는 덥고 습기가 많으며, 밭갈이해 벼를 심습니다. 큰 새가 있는데, 알의 크기가 항아리만합니다. 사람은 대단히 많으며 가는 곳마다 소군장(小君長)이 있습니다. 안식국은 이 나라를 복속시켜 속국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라 사람들은 마장마술에 뛰어납니다. 안식의 장로(長老)들은 조지에는 약수(弱水)와 서왕모(西王母)가 있다고 전해 듣기는 했으나 아직 한 번도 본 일은 없다.’라고 합니다.


大夏在大宛西南二千餘里嬀水南. 其俗土著, 有城屋, 與大宛同俗. 無大()[], 往往城邑置小長. 其兵弱, 畏戦. 善賈市.

대하재대완서남이천여리규수남. 기속토저 유성옥 여대원동속. 무대장 왕왕성읍치소장. 기병약 외전 선매시.


대하국는 대원국의 서남쪽 2천여 리, 규수 남쪽에 있습니다. 그들의 풍습은 정착해 살고 있어서 성곽과 집이 있고, 대원국의 풍속은 같습니다. 나라를 통치하는 대군장(大君長)은 없고, 대부분의 성읍마다 소군장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사는 약하고 싸움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사에 능숙합니다.


及大月氏西徙, 攻敗之, 皆臣畜大夏. 大夏民多, 可百餘萬. 其都曰藍市城, 有市販賈諸物. 其東南有身毒國.

급대월씨서사 공패지 개신축대하. 대하이민 가백여만. 기도왈람시성 유시판매제물. 기동남유신독국.


대월지가 서쪽으로 옮겨간 뒤로 그들을 쳐서 깨뜨려 속국으로 만들어 지배하고 있습니다. 대하의 인구는 많아서 1백여 만 명 정도입니다. 그들의 도성은 남시성(藍市城)이라고 부르는데, 시장이 있어 여러 가지 물건을 매매하고 있습니다. 그 동남쪽에 신독국(身毒國)이 있습니다.”


騫曰:「臣在大夏時, 見邛竹杖蜀布. 問曰:『安得此?』大夏國人曰:『吾賈人往市之身毒. 身毒在大夏東南可數千里.

건왈 신재대하시 견공죽장 촉포. 문왈 안득차 대하국인왈 오매인왕시지신독. 신독재댜하동남가수천리.


그리고 장건은 말했다. ‘신이 대하국에 있을 때, () 지역의 대나무 지팡이와 촉() 지역의 옷감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이것을 가지고 왔는가?”고 물었더니, 대하 사람들은 우리 장사꾼들이 신독의 시장에 가서 사 가지고 온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其俗土著, 大與大夏同, 而卑溼暑熱雲. 其人民乗象以戦. 其國臨大水焉.

기속토저 대여대하동 이비습저열운. 기인민승상이전, 기국임대수언


신독은 대하국의 동남쪽에서 약 몇 천 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풍속은 정착해 살며 대하국와 아주 비슷합니다. 그러나 땅은 지세가 안 좋아 습기가 많고 덥다고 합니다. 그 백성들은 코끼리를 타고 싸웁니다. 그 나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以騫度之, 大夏去漢萬二千里, 居漢西南. 今身毒國又居大夏東南數千里, 有蜀物, 此其去蜀不遠矣. 今使大夏, 従羌中, , 羌人悪之少北, 則為匈奴所得従蜀宜徑, 又無冦.

이건도지 대하거한만이천리 거한서남. 금신독국우거대하동남수천리 유촉물 차기거촉불월의. 금사대하 종강중 험 강인악지 소북 즉위흉노소득 종촉의경 우무관


신이 추정컨대, 대하국은 한나라에서 만 2천리 떨어져 있고, 한나라 서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 신독국은 또 대하국의 동남쪽 수 천 리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촉 지역의 물건들이 있으니 이는 즉 촉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하국으로 사신을 보낸다면 강족의 영토를 지나가야 하는데 지세가 험하니 강족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흉노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촉에서 가게 되면 길도 가깝고 도중에 도적도 없을 것입니다.'


天子既聞大宛及大夏安息之屬皆大國, 多奇物, 土著, 頗與中國同業, 而兵弱, 貴漢財物其北有大月氏康居之屬, 兵彊, 可以賂遺設利朝也. 且誠得而以義屬之, 則広地萬里, 重九訳, 致殊俗, 威徳遍於四海.

천자기문대원급대하 안식지속개대숫 다기물 토저 파여중국동업 이병약 귀한재물 기북유대월씨 강거지속 병강 가이회유설이조야. 차성득이이의속지 즉광지만리 중구역 치수속 위덕편어사해.


장건의 보고를 들은 천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대원과 대하, 안식 등이 모두 큰 나라에 이미 진기한 물건들이 많고, 백성들은 정착해서 살고 있다. 또 중국과는 산업도 매우 비슷하나, 군사는 약하고 한나라의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구나. 그 북쪽에는 대월지와 강거 등이 있는데, 군사는 강하지만 물건을 보내주고 이로움을 베풀면, 조회에 들게 할 수도 있겠다. 만약 도의로써 그들을 복속시킨다면, 만 리에 걸쳐 국토를 넓힐 수 있지만 여러 차례 통역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특수한 풍속을 다른 이민족을 입조할 수 있게 되니, 한나라 황제의 위엄과 은덕을 천하에 널리 떨칠 수 있을 것이다.’


天子欣然, 以騫言為然, 乃令騫因蜀犍為発閒使, 四道並出出駹, 出冉, 出徙, 出邛, 皆各行一二千里. 其北方閉氐, 南方閉昆明. 昆明之屬無君長, 善冦盜, 輒殺略漢使, 終莫得通.

천자흔연 이건언위연 내영건인촉건위벌간사 사도병출 출방 출염 출사 출공 북 개각행일이천리 기북방폐저 작 남방폐. 곤명지속무군장 선구도 첩살약한사 종막득통.


천자는 매우 흡족해 장건의 말이 옳다고 여겨, 즉시 장건으로 하여금 촉과 건위(犍爲)에서 밀사를 파견해 네 길로 나누어 동시에 출발하게 했다. 그들은 각기 방(), (), (), ()과 북()에서 출발했는데, 모두 제각기 1~2천리를 갔다. 그런데 북쪽은 저()와 작()에 의해서 막히고, 남쪽은 수()와 곤명(昆明)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곤명의 무리들은 군장이 없고 도둑질을 잘했기에 한나라 사신들을 보기만 하면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 끝내 대하와 통할 수 없었다.


然聞其西可千餘里有乗象國, 名曰滇越, 而蜀賈姦出物者或至焉, 於是漢以求大夏道始通滇國. , 漢欲通西南夷, 費多, 道不通, 罷之.

연문기서가천여리유승상국 명왈전월 이촉매간출물자옥지언 어시한이구대하도시통전국. 초 한욕통서남이 비다 도불통 파지.


그러나 서쪽으로 1천리쯤 떨어진 곳에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나라가 있는데, 이름은 전월(闐越)이라고 했다. 이곳은 촉의 장사꾼들이 몰래 물건을 팔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곳을 왕래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나라는 대하국로 통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전국(闐國)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했다. 과거에 한나라는 서남쪽 이민족들과 통하려고 길을 뚫었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만 둔 적이 있었다.


及張騫言可以通大夏, 乃複事西南夷.

급장건언가이통대하 내복사서남이.


그런데 장건이 대하국과 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또다시 서남이와 왕래하는 길을 뚫으려고 했다.


騫以校尉従大將軍撃匈奴, 知水草処, 軍得以不乏, 乃封騫為博望侯.

건이교위종대장군격흉노 지수초처 군득이불핍 내봉건위박망후.


장건은 교위(校尉)의 신분으로 대장군(大將軍)을 따라 흉노 정벌에 참여했다. 그는 사막 가운데 수초(水草)가 있는 곳(오아시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는 곤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 공으로 장건을 박망후(博望侯)로 봉했다.


是歳元朔六年也. 其明年, 騫為衛尉, 與李將軍倶出右北平撃匈奴.

시세원삭육년. 기명년 건위위위 여이장군구출우북평격흉노.


이해가 원삭(元朔) 6(서기전 123)이다. 그 이듬해에 장건은 위위(衛尉)가 되어 이광 장군과 함께 우북평(右北平)에서 출격했다.


匈奴囲李將軍, 軍失亡多而騫後期當斬, 贖為庶人. 是歳漢遣驃騎破匈奴西域數萬人, 至祁連山. 其明年, 渾邪王率其民降漢, 而金城河西西並南山至塩沢空無匈奴. 匈奴時有候者到, 而希矣. 其後二年, 漢撃走単於於幕北.

흉노위이장군 군실망다 이건후기당참 속위서인. 시세한견표기파흉노서역수만인 지기련산. 기명년 혼야왕솔기민항한 이금성 하서서병남산지염택공무흉노. 흉노시유후자도 이희의. 기후이년 한격도선우어막북.


흉노는 이광 장군의 부대를 포위했고, 그의 장병들은 사상자가 매우 많았다. 더불어 출전한 장건은 약정한 기일에 늦게 도착하여 그 죄는 참형(斬刑)에 해당되었으나 속죄금을 내고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해에 한나라는 표기(驃騎) 장군 곽거병을 파견하여 서쪽 변경에 있는 흉노 수만 명을 격파하고 기련산(祁連山)에 당도했다. 그 다음해에 혼야왕(渾邪王)이 그의 부족백성들을 거느리고 한나라에 투항했다. 그리하여 금성(金城), 하서(河西)의 서쪽에서 남산을 따라 염택에 이르기까지 흉노인이 없게 되었다. 흉노는 때로는 정탐병을 보내기도 했으나,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2년 후에 한나라는 선우를 공격하여 사막 북쪽으로 쫓아냈다.


是後天子數問騫大夏之屬. 騫既失侯, 因言曰

시후천자수문건대하지속. 건기실후 인언왈:


이후로 황제는 자주 장건에게 대하국 등의 나라에 대해서 물었다. 이미 제후의 작위를 잃은 장건은 이렇게 대답했다.


臣居匈奴中, 聞烏孫王號昆莫, 昆莫之父, 匈奴西邊小國也. 匈奴攻殺其父, 而昆莫生棄於野. 烏嗛肉蜚其上, 狼往乳之. 単於怪以為神, 而収長之.

산거흉노중 문오손왕호곤모 곤모지부 흉노서변소국야. 흉노공살기부 이곤막생기어야. 오겸육비기상 랑왕유지. 선우괴이위신 이수장지.


신이 흉노에 억류되어 있을 때 오손(烏孫)의 왕은 곤모(昆莫)이였습니다. 곤모의 부친은 흉노의 서쪽 변경의 작은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흉노는 그의 부친을 공격해 죽였고, 곤모는 태어나자마자 들판에 버려졌습니다. 그러자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오고, 늑대가 와서 그에게 젖을 먹였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선우는 신()이 그를 돕는다고 여겨 거두어 길렀습니다.


及壯, 使將兵, 數有功, 単於複以其父之民予昆莫, 令長守於西域. 昆莫収養其民, 攻旁小邑, 控弦數萬, 習攻戦. 単於死, 昆莫乃率其衆遠徙, 中立, 不肯朝會匈奴. 匈奴遣奇兵撃, 不勝, 以為神而遠之, 因羈屬之, 不大攻.

급장 사장병 수유공 선우복이기부지민여곤모 영장수어서역. 곤모수양기민 공방소읍 강현수만 습공전. 선우사 곤모내솔기중원사 중립 불긍조회흉노. 흉노견기병격 불승 이위신이원지 인패속지 불대공.


장년이 된 곤모에게 군대를 거느리게 했더니 여러 차례 공을 세우자, 선우는 그 부친의 백성들을 다시 곤모에게 주고 장기간 서쪽 변방을 지키게 했습니다. 곤모는 그의 백성들을 잘 거두어 보살피고 가까운 소읍들을 공격했는데, 활을 쏘는 군사가 수만 명이 되었으며, 모두 잘 싸웠습니다. 흉노의 선우가 죽자, 곤모는 그의 무리들을 이끌고 먼 곳으로 옮겨가 독립해 흉노에게 조회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흉노는 군사를 보내 습격했으나 이길 수 없자, 곤막을 신의 아들이라 여기고 그를 멀리하며 그저 견제하기만 하고 대대적으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今単於新困於漢, 而故渾邪地空無人. 蠻夷俗貪漢財物, 今誠以此時而厚幣賂烏孫, 招以益東, 居故渾邪之地, 與漢結昆弟, 其勢宜聴, 聴則是斷匈奴右臂也. 既連烏孫, 自其西大夏之屬皆可招來而為外臣.

금선우어신곤어한 이고혼야지공무인. 만이속탐한재물 금성이차시이후폐뢰오손 초이익동 거고혼야지지 여한결곤제 기세선청 청즉시단흉오우비야. 기연오손 자기서대하지속개가초래이위외신


지금 선우는 한나라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고, 또 원래 혼야왕의 땅이던 곳은 텅 비어 사람이 살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오랑캐들은 한나라의 재물을 탐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으니, 만약 지금 이때에 후한 물건을 오손에게 보내주고, 점차 더 동쪽으로 가까이 불러들여 그 전에 혼야왕의 땅에 살게 하고, 한나라와 형제의 의를 맺게 하면, 오손은 형편상 한나라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흉노의 오른팔을 끊는 형국이 됩니다. 오손과의 연합이 성립되면, 그 서쪽의 대하국 등을 모두 끌어들여 한나라의 속국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天子以為然, 拝騫為中郎將, 將三百人, 馬各二匹, 牛羊以萬數, 齎金幣帛直數千巨萬, 多持節副使, 道可使, 使遺之他旁國.

천자이위연 배건위중랑장 장삼백인 마각이필 우양이만수 제금폐백치수천거만 다지절부사 도가사 사유지타방국.


황제는 장건의 말을 옳다고 여기고, 그를 중랑장(中郎將)으로 삼아 군사 3백 명을 거느리고 오손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 때에 군사마다 말 두 마리씩 주었고, 소와 양은 수만 마리에 해당하는 수백만에 해당되는 금과 비단을 가져가게 하고, 많은 지절부사(持節副使)를 수행시켜서 만약 길이 편리하다면, 그들을 다른 가까운 나라에도 사신을 보낼 수 있게 했다.


騫既至烏孫, 烏孫王昆莫見漢使如単於禮, 騫大慚,

건디지오손 오손왕곤모견한사여선우례 건대참.


장건은 마침내 오손에 도착했는데, 오손왕 곤모가 한나라 사신을 만나는 데 흉노의 선우가 사자를 맞이하는 예법을 행했다. 장건은 이를 매우 치욕스럽게 여겼다.


知蠻夷貪, 乃曰:「天子致賜, 王不拝則還賜.昆莫起拝賜, 其他如故. 騫諭使指曰:「烏孫能東居渾邪地, 則漢遣翁主為昆莫夫人.

지만이탐 내왈 천자치사 왕불뱌즉환사 곤모기배사 기타여고. 건유사지왈 오손능동거혼야지 즉한견옹주위곤모부인


그러나 오랑캐들이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황제께서 하사하신 예물이오니, 왕께서 절을 하지 않으시려면 하사하신 예물을 되돌려주십시오 곤모는 일어나 보내온 예물에 대해서는 절을 하여 경의를 표했으나, 그 나머지 예식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장건은 사신으로 오게 된 이유를 일러주 이렇게 말했다. ‘오손국이 동쪽으로 옮겨와 혼야왕의 옛 땅에 살게 되면, 한나라는 옹주(翁主)를 보내 곤모의 부인으로 삼게 할 것입니다.’


烏孫國分, 王老, 而遠漢, 未知其大小, 素服屬匈奴日久矣, 且又近之, 其大臣皆畏胡, 不欲移徙, 王不能専制. 騫不得其要領.

오손국분 왕노 이원한 미지기대소 소복속흉노일구의 차우근지 기대신외호 불욕이사 오불능전제. 건부득기요령.

이 무렵 오손은 왕이 연로하고 나라가 갈라져있었고 한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한나라가 얼마나 큰지 작은지도 몰랐고, 본래 흉노에게 오래도록 복속해 있었지만 한나라에 가까워지지만 신하들은 흉노를 무서워하며 옮겨가 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건의 제의에 대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昆莫有十餘子, 其中子曰大祿, , 善將衆, 將衆別居萬餘騎. 大祿兄為太子, 太子有子曰岑娶, 而太子蚤死. 臨死謂其父昆莫曰:「必以岑娶為太子, 無令他人代之.昆莫哀而許之, 卒以岑娶為太子.

곤모유십여자 기중자왈대록 강 선장중 장중별거만여기. 대록형위태자 태자유자왈잠취 이태자조사. 임사위기부곤모왈 필이잠취위태자 무령타인대지 곤모애이허지 졸이잠취위태자

 

곤모에게는 1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대록(大祿)이라고 불리는 가운데 아들은 힘이 세고 병사들을 잘 다루었다. 그는 별도로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대록의 형이 태자였는데, 태자에게는 잠취(岑娶)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태자는 일찍 죽었다. 그는 임종 전에 그의 부친 곤모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반드시 잠취를 태자로 삼아주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 세우지 말아주십시오.’ 곤모는 그들을 불쌍히 겨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잠취를 태손으로 삼았다.

 

大祿怒其不得代太子也, 乃収其諸昆弟, 將其衆畔, 謀攻岑娶及昆莫. 昆莫老, 常恐大祿殺岑娶, 予岑娶萬餘騎別居, 而昆莫有萬餘騎自備, 國衆分為三, 而其大総取羈屬昆莫, 昆莫亦以此不敢専約於騫.

대록노기부득대태자야 내수기제곤제 장기중반 모공잠취급곤모. 곤모노 상동대록살잠취 여잠취만여기별거 이곤모유만여기자비 국중분위삼 이기대총취페속곤모 곤모이차불감전약어건.

 

대록은 자신이 태자의 뒤를 잇지 못한 것에 분노하여 다른 형제들과 회유하여 연합해서 잠취와 곤모를 공격할 것을 모의했다. 곤모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대록이 잠취를 살해할 것으로 두려워하여 잠취에게 만여 명의 기병을 주어 다른 곳에서 살게 했다. 그리고 곤모 자신도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스스로를 방비했다. 나라 안의 백성들은 셋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대체로 곤모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곤모도 이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장건과 약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騫因分遣副使使大宛康居大月氏大夏安息身毒於窴扜冞及諸旁國. 烏孫発導訳送騫還, 騫與烏孫遣使數十人, 馬數十匹報謝, 因令窺漢, 知其広大.

건인분견부사사대원 강거 대월씨 대하 안식 신독 우전 우미급제방국. 오손발도역송건환 건여오손견사수십인 마수십피보사 인영규한 지기광대.

 

이에 장건은 데리고 온 부사(副使)들을 대원(大宛), 강거(康居), 대월지(大月氏), 대하(大夏), 안식(安息), 신독(身毒), 우전(于闐), 우미 및 여러 인접한 나라에 사신으로 나누어 보냈다. 오손왕은 안내인과 통역원을 딸려 장건을 환송했다. 장건은 오손왕이 한나라로 보내는 사신 몇 십 명과 말 몇 십 필을 오손왕의 감사의 표시로서 함께 데리고 왔다. 오손왕은 이를 기회로 사신에게 한나라를 살피고 한나라가 얼마나 광대한지 알아보도록 명령했다.

 

騫還到, 拝為大行, 列於九卿. 歳餘, .

건환도 배위대행 열어구경. 세여 졸.

 

장건이 돌아오자 황제는 그를 대행(大行)에 임명하여 구경(九卿)의 반열에 서게 했다. 그로부터 약 1여 년 뒤에 장건은 죽었다.

 

烏孫使既見漢人衆富厚, 帰報其國, 其國乃益重漢.

오손사기견한인중부후 귀보기국 기국내익중한

 

오손의 사신들은 한나라의 인구가 많고 물자가 풍부한 것을 보고, 자기 나라에 돌아가 보고하니, 그들은 더욱 한나라를 존중하게 되었다.

 

其後歳餘, 騫所遣使通大夏之屬者皆頗與其人倶來, 於是西北國始通於漢矣. 然張騫鑿空, 其後使往者皆稱博望侯, 以為質於外國, 外國由此信之.

기후세여 건소견사통대하지속자대파여기인구래 어시서북국시통어한의. 연장건착공 기후사왕자개칭박망후 이위질어외국 외국유차신지.

 

그 후 1여 년이 지나자, 장건이 처음에 대하 등의 나라에 파견했던 사신들이 대부분 그 나라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니, 이때부터 서북쪽의 각국들이 비로소 한나라와 통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건이 처음에 개척한 길이므로 그 후에 사신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박망후'라고 칭하고, 외국에서 신의를 얻고자 했으며, 외국 역시 이러한 까닭에 그들을 신임했다

 

自博望侯騫死後, 匈奴聞漢通烏孫, , 欲撃之. 及漢使烏孫, 若出其南, 抵大宛大月氏相屬, 烏孫乃恐, 使使獻馬, 願得尚漢女翁主為昆弟.

자박망후건사후 흉노문한통오손 노 욕격지. 급한사오손 약출기남 저대원 대월씨상속 오손내공 사사헌마 원득상한녀옹주위곤제.

 

박망후 장건이 죽은 후에, 흉노는 한나라가 오손과 통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하여 오손을 공격하려고 했다. 오손에 도착한 한나라 사신은 그 남쪽을 지나서 대원과 대월지에 이르러 서로 접촉하니, 오손은 비로소 두려워져 사신을 보내어 말을 바치고, 한나라의 옹주를 처로 맞이해 형제국이 되길 청했다.

 

天子問群臣議計, 皆曰必先納聘, 然後乃遣女.

천자문군신의계 개왈 필선납빙 연후내견녀’.

 

황제가 여러 신하들의 의론하여 대책을 세우라고 하니, 모두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먼저 장가들게 한 다음에, 옹주를 시집 보내셔야 합니다.’

 

, 天子発書易, 神馬當従西北來. 得烏孫馬好, 名曰天馬. 及得大宛汗血馬, 益壯, 更名烏孫馬曰西極, 名大宛馬曰天馬. 而漢始築令居以西, 初置酒泉郡以通西北國. 因益発使抵安息奄蔡黎軒條枝身毒國.

초 천자발서역 운 신마당종서북래’. 득오손마호 명왈 천마’. 급득대원한혈마 익장 경명오손마왈 서극 명대원마왈 천마 . 이한시축령거이서 초치주천군이통서북국. 인익발사저안식엄채 려헌 조지 신독국.

 

예전에 황제가 역경(易經)을 보고 점을 쳐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점쾌가 나왔다. ‘신마(神馬)가 서북쪽으로부터 오리라!’ 그 뒤에 오손국의 좋은 말을 얻고 천마(天馬)”라고 불렀다. 그런데 다시 대원의 한혈마(汗血馬)를 얻고 보니, 더욱 건장했기에 오손국의 말 이름을 바꾸어 서극(西極)”이라 하고, 대원의 말을 천마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나라는 영거(令居) 서쪽에 성을 쌓고, 새로 주천군(酒泉郡)을 설치해 서북쪽의 모든 나라들과 통하게 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신들을 안식(安息), 엄채(奄蔡), 여헌(黎軒), 조지(條枝), 신독(身毒) 등을 방문하게 되었다.

 

而天子好宛馬, 使者相望於道. 諸使外國一輩大者數百, 少者百餘人, 人所齎操大放博望侯時. 其後益習而衰少焉.

이천자호원마 사자상망어도. 제사외국일배대자수백 소자백여인 인소제조대방박망후시. 기후익습이쇠소언.

 

그리고 황제가 대원국의 말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신들을 연달아 대원국으로 보냈다. 외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많을 때는 몇 백 명, 적은 경우는 백여 명에 달했다. 이 사신단이 가지고 가는 예물은 대체로 박망후 때와 비슷했다. 그 후 점차 익숙해지자 점차 예물이 적어지게 되었다.

 

漢率一歳中使多者十餘, 少者五六輩, 遠者八九歳, 近者數歳而反.

한솔일세중리다자십여 소자오육배 원자팔구세 근자수세이반.

 

한나라가 대체로 1년 동안에 사신을 파견하는 횟수는 많으면 10여 차례, 적으면 5~6차례 정도였다. 먼 나라로 간 사람은 8~9, 가까운 나라로 간 사람도 몇 해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是時漢既滅越, 而蜀西南夷皆震, 請吏入朝. 於是置益州牂柯沈黎汶山郡, 欲地接以前通大夏. 乃遣使柏始昌呂越人等歳十餘輩, 出此初郡抵大夏, 皆複閉昆明, 為所殺, 奪幣財, 終莫能通至大夏焉.

시시한기멸월 이촉 서남이개진 청리입조. 어시치익주 월 장가 침려 문산군 욕지접이전통대하. 내견사백시창 여월인등세십여배 출차초군저대하 개복폐곤명 위소살 탈폐재 종막능통지대하언.

 

이 무렵에 한나라는 이미 월나라를 멸망시키니, ()과 서남이(西南夷)들은 모두 두려워 떨며 한나라에게 관리를 파견해 관할해 주고 입조하는 것을 청했다. 그래서 한나라는 익주(益州), 월수(越雟), 장가(牂柯), 침려(沈黎), 민산(汶山) 등의 군()을 설치해 한나라의 경계와 연결시켜 대하국과 왕래하기 편리하도록 했다. 이어서 백시창(柏始昌)과 여월인(呂越人) 등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삼아 한 해에 10여 차례 사신을 파견했다. 그들은 새로 설치한 군을 지나서 대하로 향했으나, 모두가 다시 곤명(昆明)에서 저지되어 살해되거나 가지고 간 돈과 물건을 전부 빼앗겨 끝내 대하에 이르지 못했다.

 

於是漢発三輔罪人, 因巴蜀士數萬人, 遣両將軍郭昌衛広等往撃昆明之遮漢使者, 斬首虜數萬人而去. 其後遣使, 昆明複為冦, 竟莫能得通. 而北道酒泉抵大夏, 使者既多, 而外國益厭漢幣, 不貴其物.

어시한발삼보죄인 인파촉사수만인 견양장군곽창 위광등왕격곤명지서한사자 참수노수만인이거. 기후견사 곤명복위구 경막능득통. 이북도주천저대하 사자기다 이외국익염한폐 불귀기물.

 

그러자 한나라는 삼보(三輔)의 죄인들을 징발해 파(), 촉의 군사 몇 만 명과 합류시키고, 곽창(郭昌)과 위광(衛廣) 두 장군을 파견해 한나라 사자를 가로막은 곤명의 도적 무리들을 정벌하게 했다. 그 결과 몇 만 명의 머리를 베거나 사로잡아 철수했다. 그 후에도 사신을 파견하기는 했으나, 곤명의 도적 무리가 다시 습격하여 해 끝끝내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북쪽의 주천(酒泉)을 거쳐 대하국으로 왕래한 사신은 너무 많아서, 외국에서는 차츰 한나라의 폐물을 싫증내고, 그 예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自博望侯開外國道以尊貴, 其後従吏卒皆爭上書言外國奇怪利害, 求使. 天子為其絶遠, 非人所樂往, 聴其言, 予節, 募吏民毋問所従來, 為具備人衆遣之, 以広其道. 

자박망후개외국도이존귀 기후종리졸개쟁상거언외국기괴이해 구사. 천자위기절원 비인소악왕 청기언 여절 모리민무문소종래 위구비인중견지 이광기도.

 

박망후가 외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존귀한 신분이 되자, 그를 따르던 관리와 병사들은 서로 다투어 글을 올려 외국의 진기하고 괴이한 풍속들과, 이로움과 병폐 등을 말하고 사신이 되기를 원했다. 천자는 그 나라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정절(旌節)을 주고, 또 관리나 백성 중에서 모집해 그들의 출신 등도 묻지 않고 수행원을 준비해 주고 그들을 파견하여 통상의 길을 넓혔다.

 

來還不能毋侵盜幣物, 及使失指.

래환불능무침도폐물 급사실지.

 

그러나 외국에 갔다가 돌아온 사자 중에는 재물을 빼돌리는 이도 있었고, 사신으로서 황제의 본뜻을 어기는 자들도 발생했다.

 

天子為其習之, 輒覆案致重罪, 以激怒令贖, 複求使. 使端無窮, 而軽犯法. 其吏卒亦輒複盛推外國所有, 言大者予節, 言小者為副, 故妄言無行之徒皆爭效之.

천자위기습지 첩복안치중죄 이격노영속 복구사. 사단무궁 이경범법. 기리졸역첩복성후외국소유 언대자여절 언소자위부 고망언무랭지사개쟁효지.

 

황제는 그들이 이러한 일에 관습처럼 되었다고 판단하여 조사해 무거운 죄로 다스리고, 그들이 발분해서 다시 공을 세우면 사면하니, 그들은 다시 사신이 되기를 원했다. 사신을 보낼 일은 끝이 없었고, 그들 역시 경솔하게 범법행위를 했다. 수행한 관리와 군졸들은 늘상 외국의 모든 것을 과장하여 찬양했다. 크게 과장한 사람에게는 부절을 주어 정사(正使), 작게 과장한 사람은 부사(副使)로 삼았다. 이 때문에 허황된 말을 지껄이고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자들이 다투어 사신으로 가길 원했다.

 

其使皆貧人子, 私県官齎物, 欲賎市以私其利外國.

기사개빈인자 사현관제물 욕천시이사기리외국.

 

사신으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집 출신이어서 황제가 서역 각국으로 보내는 예물을 함부로 가로채어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고, 싼값으로 현지의 물건을 사들여 이익을 챙겼다.

 

外國亦厭漢使人人有言軽重, 度漢兵遠不能至, 而禁其食物以苦漢使. 漢使乏絶積怨, 至相攻撃.

외국역염한사인인유언경중 도한병원불능지 이금기식물이고한사. 한사필절적원 지상공격.

 

외국 사람들도 한나라 사신들의 주장이 제각기 서로 다른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또 한나라의 군사가 멀리 있어 자기 나라까지 쳐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음식물 제공을 중단하여 한나라의 사신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한나라의 사신들은 먹을 것이 떨어지게 되자, 원한이 쌓이게 되어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而樓蘭姑師小國耳, 當空道, 攻劫漢使王恢等尤甚. 而匈奴奇兵時時遮撃使西國者. 使者爭遍言外國災害, 皆有城邑, 兵弱易撃.

이누란 고사소국이 당공도 공겁한사왕회등후심. 이흉노기병시시서격사서국자. 사자쟁편언외국재해 개유성읍 병약이격.

 

누란(樓蘭)과 고사(姑師)는 작은 나라였지만, 교통의 요지에 있었으므로 한나라의 사신 왕회(王恢) 등을 더욱 심하게 위협했다. 또 흉노의 기병들이 자주 서쪽 나라로 가는 한나라의 사신들을 가로막고 공격했다. 사신들은 대체로 외국에서 받은 재난과 피해에 대해서 심각하게 말하고 서로 다투듯이 이렇게 주장했다. ‘서역의 나라들은 모두 성읍이 있기는 하나, 군대가 약해 격파하기 쉽다.’

 

於是天子以故遣従驃侯破奴將屬國騎及郡兵數萬, 至匈河水, 欲以撃胡, 胡皆去. 其明年, 撃姑師, 破奴與軽騎七百餘先至, 虜樓蘭王, 遂破姑師. 因挙兵威以困烏孫大宛之屬. , 封破奴為浞野侯.

어시천자이고견종표후파노장속국기급군병수만 지흉하수 욕이격호 오개거. 기명년 격고사 파노여경기칠백여선지 노누선왕 수파고사. 인거병위인곤오손 대원지속. 환 봉파노위착야후.

 

그래서 황제는 종표후(從驃侯) 조파노(趙破奴)를 장군으로 삼아 속국의 기습병과 각 군()의 군사 몇 만 명을 거느리고 흉하수(匈河水)까지 가서 흉노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흉노는 모두 달아난 뒤였다. 그 이듬해 고사국을 공격하기 위해 조파노는 날랜 7백여 명의 기병과 함께 먼저 누란에 이르러 그 왕을 포로로 잡고 마침내 고사국을 함락시켰다. 이 군사작전으로 인해 오손과 대원 등 나라에게 한나라의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조파노가 돌아오자 황제는 그를 착야후(浞野侯)에 봉했다.

 

王恢數使, 為樓蘭所苦, 言天子, 天子発兵令恢佐破奴撃破之, 封恢為浩侯. 於是酒泉列亭鄣至玉門矣.

왕회수사 위누선소고 언천자 천자발병영회좌파노격파지 봉회위호후. 어시주천열정장지옥문의.

 

왕회는 여러 차례 사신으로 나가 누란국에게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그 정황을 황제에게 보고하니, 황제는 군사를 징발해 왕회로 하여금 조파노를 도와 누란국을 격파하게 명했다. 왕희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자 호후(浩侯)로 봉했다. 이리하여 주천군에서 옥문관(玉門關)까지 초소와 요새가 즐비하게 늘어서서 열을 잇게 되었다.

 

烏孫以千匹馬聘漢女, 漢遣宗室女江都翁主往妻烏孫, 烏孫王昆莫以為右夫人. 匈奴亦遣女妻昆莫, 昆莫以為左夫人. 昆莫曰我老, 乃令其孫岑娶妻翁主. 烏孫多馬, 其富人至有四五千匹馬.

오손이천필마빙한녀 한견종실녀강도옹주왕처오손 오손왕곤모이위우부인. 흉노역견여첩곤모 곤모이위좌부인. 곤모왈 아노 내영기손짐취처옹주, 오손다마 기부인지유사오천필마.

 

 

오손국은 1천 필의 말을 폐백으로 바치고 한나라 황족의 딸을 맞이하려 했다. 한나라에서는 황족의 딸인 강도옹주(江都翁主)를 오손왕에게 시집보냈다. 오손왕 곤모는 그녀를 우부인(右夫人)으로 삼았다. 이에 흉노의 선우 역시 딸을 곤모에게 시집 보냈는데, 곤모는 그녀를 좌부인(左夫人)으로 삼았다. 갑자기 젊은 부인을 두 명이나 얻은 곤모가 말했다. ‘나는 이미 늙었다.’ 그리고는 , 그의 손자인 잠취에게 강도옹주를 아내로 삼게 했다. 오손국에는 말이 많이 있었는데, 부유한 사람들 중에는 4~5천 필의 말을 가진 자도 있었다.

 

, 漢使至安息, 安息王令將二萬騎迎於東界. 東界去王都數千里. 行比至, 過數十城, 人民相屬甚多. 漢使還, 而後発使隨漢使來観漢広大, 以大鳥卵及黎軒善眩人獻於漢. 及宛西小國驩昆莫有十餘子, 其中子曰大祿, , 善將衆, 將衆別居萬餘騎. 大祿兄為太子, 太子有子曰岑娶, 而太子蚤死. 臨死謂其父昆莫曰:「必以岑娶為太子, 無令他人代之.昆莫哀而許之, 卒以岑娶為太子.

곤모유십여자 기중자왈대록 강 선장중 장중별거만여기. 대록형위태자 태자유자왈잠취 이태자조사. 임사위기부곤모왈 필이잠취위태자 무령타인대지 곤모애이허지 졸이잠취위태자

 

곤모에게는 1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대록(大祿)이라고 불리는 가운데 아들은 힘이 세고 병사들을 잘 다루었다. 그는 별도로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대록의 형이 태자였는데, 태자에게는 잠취(岑娶)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태자는 일찍 죽었다. 그는 임종 전에 그의 부친 곤모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반드시 잠취를 태자로 삼아주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 세우지 말아주십시오.’ 곤모는 그들을 불쌍히 겨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잠취를 태손으로 삼았다.

 

大祿怒其不得代太子也, 乃収其諸昆弟, 將其衆畔, 謀攻岑娶及昆莫. 昆莫老, 常恐大祿殺岑娶, 予岑娶萬餘騎別居, 而昆莫有萬餘騎自備, 國衆分為三, 而其大総取羈屬昆莫, 昆莫亦以此不敢専約於騫.

대록노기부득대태자야 내수기제곤제 장기중반 모공잠취급곤모. 곤모노 상동대록살잠취 여잠취만여기별거 이곤모유만여기자비 국중분위삼 이기대총취페속곤모 곤모이차불감전약어건.

 

대록은 자신이 태자의 뒤를 잇지 못한 것에 분노하여 다른 형제들과 회유하여 연합해서 잠취와 곤모를 공격할 것을 모의했다. 곤모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대록이 잠취를 살해할 것으로 두려워하여 잠취에게 만여 명의 기병을 주어 다른 곳에서 살게 했다. 그리고 곤모 자신도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스스로를 방비했다. 나라 안의 백성들은 셋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대체로 곤모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곤모도 이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장건과 약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騫因分遣副使使大宛康居大月氏大夏安息身毒於窴扜冞及諸旁國. 烏孫発導訳送騫還, 騫與烏孫遣使數十人, 馬數十匹報謝, 因令窺漢, 知其広大.

건인분견부사사대원 강거 대월씨 대하 안식 신독 우전 우미급제방국. 오손발도역송건환 건여오손견사수십인 마수십피보사 인영규한 지기광대.

 

이에 장건은 데리고 온 부사(副使)들을 대원(大宛), 강거(康居), 대월지(大月氏), 대하(大夏), 안식(安息), 신독(身毒), 우전(于闐), 우미 및 여러 인접한 나라에 사신으로 나누어 보냈다. 오손왕은 안내인과 통역원을 딸려 장건을 환송했다. 장건은 오손왕이 한나라로 보내는 사신 몇 십 명과 말 몇 십 필을 오손왕의 감사의 표시로서 함께 데리고 왔다. 오손왕은 이를 기회로 사신에게 한나라를 살피고 한나라가 얼마나 광대한지 알아보도록 명령했다.

 

騫還到, 拝為大行, 列於九卿. 歳餘, .

건환도 배위대행 열어구경. 세여 졸.

 

장건이 돌아오자 황제는 그를 대행(大行)에 임명하여 구경(九卿)의 반열에 서게 했다. 그로부터 약 1여 년 뒤에 장건은 죽었다.

 

烏孫使既見漢人衆富厚, 帰報其國, 其國乃益重漢.

오손사기견한인중부후 귀보기국 기국내익중한

 

오손의 사신들은 한나라의 인구가 많고 물자가 풍부한 것을 보고, 자기 나라에 돌아가 보고하니, 그들은 더욱 한나라를 존중하게 되었다.

 

其後歳餘, 騫所遣使通大夏之屬者皆頗與其人倶來, 於是西北國始通於漢矣. 然張騫鑿空, 其後使往者皆稱博望侯, 以為質於外國, 外國由此信之.

기후세여 건소견사통대하지속자대파여기인구래 어시서북국시통어한의. 연장건착공 기후사왕자개칭박망후 이위질어외국 외국유차신지.

 

그 후 1여 년이 지나자, 장건이 처음에 대하 등의 나라에 파견했던 사신들이 대부분 그 나라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니, 이때부터 서북쪽의 각국들이 비로소 한나라와 통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건이 처음에 개척한 길이므로 그 후에 사신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박망후'라고 칭하고, 외국에서 신의를 얻고자 했으며, 외국 역시 이러한 까닭에 그들을 신임했다

 

自博望侯騫死後, 匈奴聞漢通烏孫, , 欲撃之. 及漢使烏孫, 若出其南, 抵大宛大月氏相屬, 烏孫乃恐, 使使獻馬, 願得尚漢女翁主為昆弟.

자박망후건사후 흉노문한통오손 노 욕격지. 급한사오손 약출기남 저대원 대월씨상속 오손내공 사사헌마 원득상한녀옹주위곤제.

 

박망후 장건이 죽은 후에, 흉노는 한나라가 오손과 통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하여 오손을 공격하려고 했다. 오손에 도착한 한나라 사신은 그 남쪽을 지나서 대원과 대월지에 이르러 서로 접촉하니, 오손은 비로소 두려워져 사신을 보내어 말을 바치고, 한나라의 옹주를 처로 맞이해 형제국이 되길 청했다.

 

天子問群臣議計, 皆曰必先納聘, 然後乃遣女.

천자문군신의계 개왈 필선납빙 연후내견녀’.

 

황제가 여러 신하들의 의론하여 대책을 세우라고 하니, 모두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먼저 장가들게 한 다음에, 옹주를 시집 보내셔야 합니다.’

 

, 天子発書易, 神馬當従西北來. 得烏孫馬好, 名曰天馬. 及得大宛汗血馬, 益壯, 更名烏孫馬曰西極, 名大宛馬曰天馬. 而漢始築令居以西, 初置酒泉郡以通西北國. 因益発使抵安息奄蔡黎軒條枝身毒國.

초 천자발서역 운 신마당종서북래’. 득오손마호 명왈 천마’. 급득대원한혈마 익장 경명오손마왈 서극 명대원마왈 천마 . 이한시축령거이서 초치주천군이통서북국. 인익발사저안식엄채 려헌 조지 신독국.

 

예전에 황제가 역경(易經)을 보고 점을 쳐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점쾌가 나왔다. ‘신마(神馬)가 서북쪽으로부터 오리라!’ 그 뒤에 오손국의 좋은 말을 얻고 천마(天馬)”라고 불렀다. 그런데 다시 대원의 한혈마(汗血馬)를 얻고 보니, 더욱 건장했기에 오손국의 말 이름을 바꾸어 서극(西極)”이라 하고, 대원의 말을 천마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나라는 영거(令居) 서쪽에 성을 쌓고, 새로 주천군(酒泉郡)을 설치해 서북쪽의 모든 나라들과 통하게 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신들을 안식(安息), 엄채(奄蔡), 여헌(黎軒), 조지(條枝), 신독(身毒) 등을 방문하게 되었다.

 

而天子好宛馬, 使者相望於道. 諸使外國一輩大者數百, 少者百餘人, 人所齎操大放博望侯時. 其後益習而衰少焉.

이천자호원마 사자상망어도. 제사외국일배대자수백 소자백여인 인소제조대방박망후시. 기후익습이쇠소언.

 

그리고 황제가 대원국의 말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신들을 연달아 대원국으로 보냈다. 외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많을 때는 몇 백 명, 적은 경우는 백여 명에 달했다. 이 사신단이 가지고 가는 예물은 대체로 박망후 때와 비슷했다. 그 후 점차 익숙해지자 점차 예물이 적어지게 되었다.

 

漢率一歳中使多者十餘, 少者五六輩, 遠者八九歳, 近者數歳而反.

한솔일세중리다자십여 소자오육배 원자팔구세 근자수세이반.

 

한나라가 대체로 1년 동안에 사신을 파견하는 횟수는 많으면 10여 차례, 적으면 5~6차례 정도였다. 먼 나라로 간 사람은 8~9, 가까운 나라로 간 사람도 몇 해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是時漢既滅越, 而蜀西南夷皆震, 請吏入朝. 於是置益州牂柯沈黎汶山郡, 欲地接以前通大夏. 乃遣使柏始昌呂越人等歳十餘輩, 出此初郡抵大夏, 皆複閉昆明, 為所殺, 奪幣財, 終莫能通至大夏焉.

시시한기멸월 이촉 서남이개진 청리입조. 어시치익주 월 장가 침려 문산군 욕지접이전통대하. 내견사백시창 여월인등세십여배 출차초군저대하 개복폐곤명 위소살 탈폐재 종막능통지대하언.

 

이 무렵에 한나라는 이미 월나라를 멸망시키니, ()과 서남이(西南夷)들은 모두 두려워 떨며 한나라에게 관리를 파견해 관할해 주고 입조하는 것을 청했다. 그래서 한나라는 익주(益州), 월수(越雟), 장가(牂柯), 침려(沈黎), 민산(汶山) 등의 군()을 설치해 한나라의 경계와 연결시켜 대하국과 왕래하기 편리하도록 했다. 이어서 백시창(柏始昌)과 여월인(呂越人) 등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삼아 한 해에 10여 차례 사신을 파견했다. 그들은 새로 설치한 군을 지나서 대하로 향했으나, 모두가 다시 곤명(昆明)에서 저지되어 살해되거나 가지고 간 돈과 물건을 전부 빼앗겨 끝내 대하에 이르지 못했다.

 

於是漢発三輔罪人, 因巴蜀士數萬人, 遣両將軍郭昌衛広等往撃昆明之遮漢使者, 斬首虜數萬人而去. 其後遣使, 昆明複為冦, 竟莫能得通. 而北道酒泉抵大夏, 使者既多, 而外國益厭漢幣, 不貴其物.

어시한발삼보죄인 인파촉사수만인 견양장군곽창 위광등왕격곤명지서한사자 참수노수만인이거. 기후견사 곤명복위구 경막능득통. 이북도주천저대하 사자기다 이외국익염한폐 불귀기물.

 

그러자 한나라는 삼보(三輔)의 죄인들을 징발해 파(), 촉의 군사 몇 만 명과 합류시키고, 곽창(郭昌)과 위광(衛廣) 두 장군을 파견해 한나라 사자를 가로막은 곤명의 도적 무리들을 정벌하게 했다. 그 결과 몇 만 명의 머리를 베거나 사로잡아 철수했다. 그 후에도 사신을 파견하기는 했으나, 곤명의 도적 무리가 다시 습격하여 해 끝끝내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북쪽의 주천(酒泉)을 거쳐 대하국으로 왕래한 사신은 너무 많아서, 외국에서는 차츰 한나라의 폐물을 싫증내고, 그 예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自博望侯開外國道以尊貴, 其後従吏卒皆爭上書言外國奇怪利害, 求使. 天子為其絶遠, 非人所樂往, 聴其言, 予節, 募吏民毋問所従來, 為具備人衆遣之, 以広其道. 

자박망후개외국도이존귀 기후종리졸개쟁상거언외국기괴이해 구사. 천자위기절원 비인소악왕 청기언 여절 모리민무문소종래 위구비인중견지 이광기도.

 

박망후가 외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존귀한 신분이 되자, 그를 따르던 관리와 병사들은 서로 다투어 글을 올려 외국의 진기하고 괴이한 풍속들과, 이로움과 병폐 등을 말하고 사신이 되기를 원했다. 천자는 그 나라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정절(旌節)을 주고, 또 관리나 백성 중에서 모집해 그들의 출신 등도 묻지 않고 수행원을 준비해 주고 그들을 파견하여 통상의 길을 넓혔다.

 

來還不能毋侵盜幣物, 及使失指.

래환불능무침도폐물 급사실지.

 

그러나 외국에 갔다가 돌아온 사자 중에는 재물을 빼돌리는 이도 있었고, 사신으로서 황제의 본뜻을 어기는 자들도 발생했다.

 

天子為其習之, 輒覆案致重罪, 以激怒令贖, 複求使. 使端無窮, 而軽犯法. 其吏卒亦輒複盛推外國所有, 言大者予節, 言小者為副, 故妄言無行之徒皆爭效之.

천자위기습지 첩복안치중죄 이격노영속 복구사. 사단무궁 이경범법. 기리졸역첩복성후외국소유 언대자여절 언소자위부 고망언무랭지사개쟁효지.

 

황제는 그들이 이러한 일에 관습처럼 되었다고 판단하여 조사해 무거운 죄로 다스리고, 그들이 발분해서 다시 공을 세우면 사면하니, 그들은 다시 사신이 되기를 원했다. 사신을 보낼 일은 끝이 없었고, 그들 역시 경솔하게 범법행위를 했다. 수행한 관리와 군졸들은 늘상 외국의 모든 것을 과장하여 찬양했다. 크게 과장한 사람에게는 부절을 주어 정사(正使), 작게 과장한 사람은 부사(副使)로 삼았다. 이 때문에 허황된 말을 지껄이고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자들이 다투어 사신으로 가길 원했다.

 

其使皆貧人子, 私県官齎物, 欲賎市以私其利外國.

기사개빈인자 사현관제물 욕천시이사기리외국.

 

사신으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집 출신이어서 황제가 서역 각국으로 보내는 예물을 함부로 가로채어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고, 싼값으로 현지의 물건을 사들여 이익을 챙겼다.

 

外國亦厭漢使人人有言軽重, 度漢兵遠不能至, 而禁其食物以苦漢使. 漢使乏絶積怨, 至相攻撃.

외국역염한사인인유언경중 도한병원불능지 이금기식물이고한사. 한사필절적원 지상공격.

 

외국 사람들도 한나라 사신들의 주장이 제각기 서로 다른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또 한나라의 군사가 멀리 있어 자기 나라까지 쳐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음식물 제공을 중단하여 한나라의 사신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한나라의 사신들은 먹을 것이 떨어지게 되자, 원한이 쌓이게 되어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漢使至安息, 安息王令將二萬騎迎於東界. 東界去王都數千里. 行比至, 過數十城, 人民相屬甚多. 漢使還, 而後発使隨漢使來観漢広大, 以大鳥卵及黎軒善眩人獻於漢. 及宛西小國驩潛大益, 宛東姑師扞冞蘇薤之屬, 皆隨漢使獻見天子. 天子大悅.

 

초 한사지안식 안식왕영장이만기영어동계. 동계거왕도수천리. 행차지 과수십성 인민상속심다. 한사환 이후발사수한사래관한광대 이대조란급여헌선현이헌어한. 급원서소국환잠 대익 원동고사 우미 소해지속 개수한사헌견천자 천자대열.

 

처음에 한나라의 사신단이 안식국에 도착했을 때, 안식왕은 2만 명의 기병을 동원시켜 동쪽 변경까지 나와 맞게 했다. 동쪽 변경은 왕도(王都)에서 몇 천 리나 떨어져 있었다. 사신단이 왕도까지 가는 데에는 몇 십 개의 성읍을 지나갔는데,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한나라의 사신단이 돌아갈 때에 그들의 사신도 뒤따르게 하여 한나라의 광대함을 살피고, 큰 새의 알과 여헌(黎軒)의 마술사를 한나라에 바쳤다. 연이어 대원국 서쪽의 작은 나라인 환잠(驩潛), 대익(大益)과 대원국의 동쪽 나라인 고사(姑師), 우미, 소해(蘇薤) 등의 나라도 모두 한나라 사신을 따라와서 황제에게 예물을 올렸다. 이에 황제가 크게 기뻐했다.

 

而漢使窮河源, 河源出於窴, 其山多玉石, 采來, 天子案古図書, 名河所出山曰崑崙雲.

이한사궁하원 하원출어전 기산다옥석 채래 천자안고도서 명하출산왈곤륜운.

 

그리고 한나라 사신들은 황하의 원류를 찾아냈는데, 황하의 발원지를 본래 우전(于窴)이었다. 그 지역의 산에는 옥석(玉石)이 많았기 때문에 사신들이 그것을 캐어 황제에게 바치니, 황제는 옛 도서를 참고해 황하가 시작되는 그 산의 이름을 곤륜(昆侖)이라고 지었다.

 

 

是時上方數巡狩海上, 乃悉従外國客, 大都多人則過之, 散財帛以賞賜, 厚具以饒給之, 以覧示漢富厚焉.

시시상방수순수해상 내실종외국객 대도다인즉과지 산재백이상사 후구이요급지 이함시한부후언.

 

그 무렵에 황제는 자주 바닷가를 순행했는데, 언제나 외국 사신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인구가 많은 큰 도시에 들러서는 재물과 비단 등을 하사품으로 나누어 주었다. 또한 풍성한 술과 안주를 갖추어 그들을 후하게 대접함으로써 한나라의 부유함을 과시했다.


 

於是大觳抵, 出奇戯諸怪物, 多聚観者, 行賞賜, 酒池肉林, 令外國客遍観各倉庫府蔵之積, 見漢之広大, 傾駭之. 及加其眩者之工, 而觳抵奇戯歳増変, 甚盛益興, 自此始.

어시대각저 출기희제괴물 다취관자 행상사 주지육림 영외국객편관각창고부장지적 현한지광대 경해지. 급가기현지공 이각저기희세증변 심성익흥 자차시.

 

그리고 때때로 씨름대회를 열고,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을 전시해 많은 관중들을 끌어 모았으며, 많은 상품들을 하사히며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외국 손님들로 하여금 각 부고에 쌓여있는 재화를 구경시켜 한나라의 광대함을 드러내어, 그들을 놀라게 했다. 마술(馬術)의 기교가 더욱 교묘해지고, 씨름이나 기예도 해마다 변화를 더해 갈수록 매우 성행했는데, 이러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西北外國使, 更來更去. 宛以西, 皆自以遠, 尚驕恣晏然, 未可詘以禮羈縻而使也. 自烏孫以西至安息, 以近匈奴, 匈奴困月氏也, 匈奴使持単於一信, 則國國傳送食, 不敢留苦及至漢使, 非出幣帛不得食, 不市畜不得騎用.

서북외국사 경래경저. 원이서 개자이원 상교자안연 미가촐이예기미이사야. 자로손이서지안식 이근흉노 흉노곤월씨야 흉오사지선우일신 즉국국전송식 불감유고 급지한사 비출폐백부득식 불시축부득기용.

 

서북쪽의 외국 사신들은 빈번히 왕래하여 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원국 서쪽의 여러 나라들은 스스로 한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 여전히 교만하고 안일하게 한나라 사신을 대했다. 한나라도 역시 그들을 예로써 복종시킬 수 없었다. 오손국의 서쪽에서 안식국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흉노에 가까웠는데, 흉노가 월지국를 괴롭히고 나서부터는 흉노의 사신이 선우의 편지를 가지고 있기만 하면, 나라마다 먹을 것을 차례로 보내주며 감히 억류해 놓고 괴롭히지 못했다. 그러나 한나라의 사신이 가면 재물을 그들에게 주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없고, 가축도 사지 않으면 탈 수가 없었다.

 

所以然者, 遠漢, 而漢多財物, 故必市乃得所欲, 然以畏匈奴於漢使焉.

소이연자 원한 이한다재물 고필시내득소욕 연이외흉노어한사언.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까닭은 한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고, 더욱이 한나라는 재물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의 사신은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반드시 사야했다. 이는 그들이 한나라의 사신보다 흉노를 더 두려워한 탓이다.

 

宛左右以蒲陶為酒, 富人蔵酒至萬餘石, 久者數十歳不敗. 俗嗜酒, 馬嗜苜蓿.

원좌우이포도위주 부인장주지만여석 구자수십세불패. 속기주 마기목숙.

 

대원국 주변의 나라에서는 모두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다. 부잣집에서는 만여 석()에 이르는 포도주를 저장해 두었고, 오래된 것은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상하지 않았다. 그곳의 사람들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말은 목숙(苜蓿: 개자리, 콩과에 속한 두해살이풀.)을 좋아했다.

 

漢使取其実來, 於是天子始種苜蓿蒲陶肥饒地. 及天馬多, 外國使來衆, 則離宮別観旁盡種蒲萄苜蓿極望.

한사취기실래 어시천자시종목숙 포도비요지. 급천마다 외국사래중 즉리둥별관방진졸포도 목숙극망.

 

한나라의 사자가 목숙과 포도의 씨앗을 가져와서 황제에게 바치니, 황제는 이를 비옥한 땅에 심으라고 명했다. 천마가 많아지고, 외국의 사신들이 많이 오게 될 무렵에는 이궁(離宮)과 별관(別觀) 주위에 땅에 모두 포도와 목숙이 심어져 있었다.

 

自大宛以西至安息, 國雖頗異言, 然大同俗, 相知言. 其人皆深眼, 多鬚髯, 善市賈, 爭分銖.

자대원이서지안식 국수파이언 연대동속 상지언. 기인개심안 다수염 선시매 쟁분주.

 

대원의 서쪽에서 안식에 이르는 나라들은 비록 언어가 많이 달랐지만, 풍습이 거의 비슷해서 서로가 언어를 이해하고 있었다.그들의 외모는 모두 눈이 움푹 들어가 있고, 턱수염과구레나룻이 난 사람이 많았으며, 장사에 능했고, 돈에 대해선 철저했다.

 

俗貴女子, 女子所言而丈夫乃決正. 其地皆無糸漆, 不知鋳銭器. 及漢使亡卒降, 教鋳作他兵器. 得漢黃白金, 輒以為器, 不用為幣.

 

속귀여자 여자소언이장부내결정. 기지개무사칠 부지주전기. 급한사망졸항 교주작타병기. 득한황백금 첩이위기 불용위폐.

 

풍속은 여자를 귀하게 여겼으므로 남편은 아내의 말에 따랐다. 이곳에서는 명주실과 옻나무가 나지 않았고, 철기를 주조해 쓸 줄 몰랐다. 한나라 사신을 따라간 관리와 병졸들이 그들에게 병기(兵器)를 주조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한나라의 황백금(黃白金)을 얻게 되면 곧 그릇을 만들고 돈으로 쓰지는 않았다.

 

而漢使者往既多, 其少従率多進熟於天子, 言曰:「宛有善馬在弐師城, 匿不肯與漢使.天子既好宛馬, 聞之甘心, 使壯士車令等持千金及金馬以請宛王弐師城善馬. 宛國饒漢物, 相與謀曰

이한사자왕기다 기소종솔다진열어천자 언왈 원유선마재이사성 닉불긍영한가 천자기호원마 문지감심 사장사거령등지천금급금마이청원왕이사성선마, 원국요한물 상여모왈:

 

한나라에서 사자로 외국에 가는 자가 많아지고, 어려서부터 그들을 따라다닌 자들은 귀국한 후에 대부분 황제에게 과장된 말을 하기 좋아했다.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대원국은 좋은 말을 이사성(貳師城)에 감추어두고 한나라 사신에게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원래 대원국의 말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자 기뻐했다. 그래서 장사(壯士)와 거령(車令) 등으로 하여금 천금(千金)과 황금으로 만든 말을 가지고 가서, 대원왕에게서 이사성의 좋은 말을 사오게 했다. 대원국에는 한나라의 재물을 보고 서로 상의해 말했다.

 

 

漢去我遠, 而塩水中數敗, 出其北有胡冦, 出其南乏水草. 又且往往而絶邑, 乏食者多. 漢使數百人為輩來, 而常乏食, 死者過半, 是安能致大軍乎 無柰我何. 且弐師馬, 宛寶馬也.

한거아원 이염수중수패 불기북유호구 출기남핍수초. 우차왕왕이절읍 핍식자다. 한사수백인위배래 이상핍식 사자과반 시안능치대군로? 무내아라. 차이사마 원보마야

 

한나라는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 사신 일행은 자주 염수(鹽水)에 빠져 죽은 일이 있다. 그 북쪽에는 흉노의 도적들이 있어 습격하고, 그 남쪽으로 나가면 오아시스가 없다. 더욱이 도중에 성읍이 없어서 식량이 떨어질 때가 많다. 한나라 사신들은 몇 백 명이 한 무리가 되어 오지만 언제나 식량이 모자라 죽는 사람이 반을 넘는다. 그런데 어떻게 대군을 보낼 수 있겠는가? 결국 한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이사성의 말은 대원국의 보마(寶馬)이다.’

 

遂不肯予漢使. 漢使怒, 妄言, 椎金馬而去. 宛貴人怒曰:「漢使至軽我!

수불긍여한사. 한사노 망언 추금마이거. 원귀인노왈 한사지경아!’

 

그래서 마침내 한나라 사신에게 말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한나라 사신은 화가 나서 욕을 하며 황금으로 만든 말을 망치로 쳐부수고 그곳을 떠났다. 대원국의 귀족들도 노하여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의 사신은 우리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

 

遣漢使去, 令其東邊鬱成遮攻殺漢使, 取其財物. 於是天子大怒. 諸嘗使宛姚定漢等言宛兵弱, 誠以漢兵不過三千人, 彊弩射之, 即盡虜破宛矣.

견한사거 영기동변울성서공살한가 취기재물. 어시천자대노. 재기사원요정한등언원병약 성이한병불과삼천인 강노사지 즉긴노파원의.

 

대원국에서는 먼저 한나라 사신을 돌아가도록 해놓고는 그 동쪽변경에 있는 울성(鬱成)의 군주으로 하여금 가는 길목을 막고 공격하여 한나라 사신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게 했다. 이에 황제가 대노했다. 일찍이 대원국에 사신으로 갔다 온 적이 있는 요정한(姚定漢) 등이 말했다. ‘대원국의 군사는 약하기 때문에 한나라 군사 3천 명만 데리고 가서 센 활을 쏘면서 공격하면 그들 모두를 포로로 잡아올 수 있다.’

 

天子已嘗使浞野侯攻樓蘭, 以七百騎先至, 虜其王, 以定漢等言為然, 而欲侯寵姫李氏, 拝李広利為弐師將軍, 発屬國六千騎, 及郡國悪少年數萬人, 以往伐宛.

천자이상사착야후공누한 이칠백기선지 노기왕 이정한등언위연 이욕후총희이씨 배이광리위이사장군 발속국육천기 급군국악소년수만인 이왕벌원.

 

황제는 일찍이 착야후(浞野侯) 조파노가 누란국을 공격할 때 7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먼저 달려가 누란왕을 포로로 잡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요정한 등이 하는 말이 믿었다. 그 때 황제가 총애했던 이부인의 형제들을 제후로 끌어올려줄 생각으로 이부인의 오라비인 이광리(李廣利)를 이사장군(貳師將軍)에 임명하고 속국의 6천기와 각 군국(郡國)에 있는 불량소년 몇 만 명을 징발해 가서 대원을 정벌하게 했다.

 

期至弐師城取善馬, 故號弐師將軍. 趙始成為軍正, 故浩侯王恢使導軍, 而李哆為校尉, 制軍事. 是歳太初元年也. 而関東蝗大起, 蜚西至敦煌.

기지이사성추선마 고호 이사장군’. 조시성위군정 고호후왕회사도군 이이차위교위 제군사. 시세태초원년야. 이관동황대기 비서지돈황.

 

이사장군이란 호칭은 이사성에 이르러 명마를 가져오라는 뜻에서 붙여준 것이다. 이사장군은. 조시성(趙始成)을 군정(軍正)으로 임명하고, 옛 호후(浩侯) 왕회로 하여금 향도로 삼고, 이차(李哆)를 교위로 임명하여 군대들 통솔하게 하였다. 이 때가 태초(太初) 원년(서기전 104)이었다. 이 해에 관동(關東)에 메뚜기 떼가 크게 일어나 서쪽으로 돈황(敦煌)까지 퍼지고 있었다.

 

弐師將軍軍既西過塩水, 當道小國恐, 各堅城守, 不肯給食. 攻之不能下. 下者得食, 不下者數日則去.

이사장군군기서과염수 당도소국공 각션성수 불긍급식. 공지불능하. 하자득식 불하자수일즉거.

 

이사장군의 군대는 서쪽으로 진격해 염수를 지나게 되었는데, 길목에 있는 작은 나라들은 겁이 나서 각기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며 한나라 군에게 식량을 공급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공격해도 쉽게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만일 함락시키게 되면 식량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면 며칠 머물다가 떠나가야만 했다.

 

比至鬱成, 士至者不過數千, 皆飢罷. 攻鬱成, 鬱成大破之, 所殺傷甚衆. 弐師將軍與哆始成等計

차지울성 사지자불과수천 개기파. 공울성 울성대파지 소살상심중. 이사장군여차 시성등계:

 

이윽고 울성에 도착할 무렵에 남은 군사는 몇 천 명에 불과했고, 모두 굶주리고 지쳐 있었다. 처음에 울성을 공격했으나 도리어 울성이 반격에 사상자가 대단히 많았다. 이사장군은 이차 및 조시성 등과 상의하고 이렇게 말했다.

 

至鬱成尚不能挙, 況至其王都乎?」引兵而還. 往來二歳. 還至敦煌, 士不過什一二. 使使上書言

:‘지울성상불능거 황지기왕도호?’ 인병이환. 왕래이세 환지돈황 사불과십일이. 사사상서언:

 

울성 조차 점령할 수 없는데, 하물며 왕도(王都)를 함락시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는데 그 시간에 2년이나 걸렸다. 그들이 돈황에 당도하니, 군사 수는 출발할 때의 1~2할에 불과했다. 이사장군이 황제에게 사자를 보내 상서문을 올려 이렇게 고했다.

 

道遠多乏食且士卒不患戦, 患飢. 人少, 不足以抜宛. 願且罷兵, 益発而複往.

도원다핍식 차서졸불환전 환기, 인소 부족이발원, 춴차파병 익발이복왕

 

길은 멀고 식량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병졸들은 싸움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 군사가 적어 대원국을 함락시키기에는 부족합니다. 청컨대 잠시 병력을 재정비하고 다시 원정하게 해주시옵소서.’

 

天子聞之, 大怒, 而使使遮玉門, 曰軍有敢入者輒斬之! 弐師恐, 因留敦煌.

천자문지 대노 이사사서차옥문 왈군유감입자첩참지! 이사공 인유돈황.

 

이 상소문을 보고 황제가 대노하여 사자를 보내 옥문관을 막고는 감히 관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명했다. 이사장군은 두려워서 돈황에 머물렀다.

 

其夏, 漢亡浞野之兵二萬餘於匈奴. 公卿及議者皆願罷撃宛軍, 専力攻胡. 天子已業誅宛, 宛小國而不能下, 則大夏之屬軽漢, 而宛善馬絶不來, 烏孫侖頭易苦漢使矣, 為外國笑.

기하 한망착야지병이만여어흉노. 공경급의자개원파격원군 전력공호. 천자이업주원 원소국이불능하 즉대하지속경한 이원선마절불래 오손 윤두역고한사의 위외국소.

 

그해 여름에 한나라는 착야후 조파노가 거느린 군사 2만여 명을 흉노와의 전투에게 잃었다. 공경대신과 담당 관리들은 모두 대원국을 공격했던 군사를 해산하고, 전력을 다해 흉노를 공격할 것을 간했다. 그러나 황제는 이미 대원국을 정벌하기로 결정했는데, 대원국과 같은 작은 나라도 함락하지 못하면 대하국 등의 나라도 한나라를 가볍게 여길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대원국의 명마를 절대로 얻지 못하게 될 것이고, 오손과 윤두(侖頭) 같은 작은 나라도 한나라를 업신여겨 왕래하는 사신들을 괴롭혀 외국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乃案言伐宛尤不便者鄧光等, 赦囚徒材官, 益発悪少年及邊騎, 歳餘而出敦煌者六萬人, 負私従者不與. 牛十萬, 馬三萬餘匹, 驢騾橐它以萬數. 多齎糧, 兵弩甚設, 天下騒動, 傳相奉伐宛, 凡五十餘校尉.

내안언벌원우불편자등광등 사수도재관 익발악소년급변기 세여이풀돈황자육만인 부사종자불여. 우십만 마삼만여필 여나탁타만수. 다제량 병노심설 천하소동 전상봉벌원 범오십여교위.

 

그래서 대원국을 정벌한 반대한 등광(鄧光) 등을 형리에 넘겨 심문하여 처벌했다. 그리고 죄수들 가운데 경미한 형벌을 받은 자의 죄를 사면하고 재관(材官: 궁수로 편성된 부대)로 삼고, 더 많은 악동들과 변경의 기병들을 징발하여 일년 여 동안에 6만여 명의 군사로 돈황으로 보냈다. 개인적으로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짊어지게 했으며 따라가는 사람은 포함하지 않는 숫자였다. 이 부대는 10만 마리의 소, 3만여 필의 말과 몇 만 마리의 나귀와 노새, 낙타를 끌고 갔다. 식량은 풍부했고, 무기와 큰 활도 충분했다. 그 일 천하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대원국을 정벌하기 위해 명령을 전하고 서로 받들며 합류한 교위만도 50여 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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