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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列傳- 袁盎晁錯列傳


<원앙>

 

袁盎者, 楚人也, 字糸. 父故為群盜, 徙処安陵.

원앙자 초인야 자사. 부고위군도 사처안릉.


원앙(袁盎)은 초() 지방 사람으로 자는 사()이다. 그의 부친은 이전에 도둑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뒤에 안릉(安陵)으로 옮겨와서 살았다.

 

高后時, 盎嘗為呂祿舎人. 及孝文帝即位, 盎兄噲任盎為中郎.

고후시 앙상위여록사인. 급효문제즉위 앙형쾌임앙위중랑.

 

여태후(呂太后: 한 고조의 황후인 여치(呂雉)) 시대에 원앙은 여태후의 조카인 여록(呂祿)의 가신(家臣)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효문제(孝文帝)가 즉위하자 원앙의 형 쾌()가 원앙을 추천해 중랑(中郎)이 되었다.

 

絳侯為丞相, 朝罷趨出, 意得甚. 上禮之恭, 常自送之.3)

당시에 강후(絳侯) 주발(周勃)이 승상(丞相)으로 있었는데, 조회를 마친 후에 급히 물러 나오는 모습이 매우 으시대며 만족해 있었다. 황제도 그를 공경하게 예우해 주며 항상 그를 친히 전송해 주곤 하였다.

 

袁盎進曰:「陛下以丞相何如人?」上曰:「社稷臣.

원앙진왈 폐하이상하여인?’ 상왈 사직신

 

원앙이 황제 앞에 나가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승상 강후를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제가 말했다. ‘그는 사직(社稷)의 중신이라고 생각하오.’

 

盎曰:「絳侯所謂功臣, 非社稷臣, 社稷臣主在與在, 主亡與亡. 方呂後時, 諸呂用事, 擅相王, 劉氏不絶如帯. 是時絳侯為太尉, 主兵柄, 弗能正. 呂後崩, 大臣相與共畔諸呂, 太尉主兵, 適會其成功, 所謂功臣, 非社稷臣. 丞相如有驕主色. 陛下謙譲, 臣主失禮, 竊為陛下不取也.

앙왈 록후소위공신 비사직신 사직신주재여재 주망여망. 방여후시 제여용사 천상왕 유씨부절여대. 시시강후위태후 주병병 불능정. 여후붕 대신상여공반제여 태위주병 적회기성공 소위공신 비사직신. 승상여유교주색. 폐하겸양 신주실례 절위폐하불취야

 

원앙이 말했다. ‘강후는 이른바 통상적인 공신일 뿐이지 사직의 중신은 아닙니다. 사직의 중신이란 군주와 생사를 함께 해야 합니다. 여태후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에 여씨(呂氏) 일족이 권력을 쥐고 제멋대로 서로 왕이 되어 유씨(劉氏)의 천하는 한낱 끊어지지 않은 실낱같아서 거의 단절될 뻔했습니다. 이런 때에 강후는 태위(太尉)로서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바로잡고 구하지 못했습니다. 여태후가 서거하자 대신들이 서로 힘을 합해 여씨 일족에게 반기를 들 때 태위는 마침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성공할 기회를 얻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른바 통상적인 공신이나 사직의 중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승상은 폐하에 대해 교만한 기색을 보이고, 폐하께서는 도리어 겸허하게 양보하시니 이는 신하와 군주가 모두 예를 잃은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는 폐하께서 취하실 태도가 아닙니다.’

 

後朝, 上益荘, 丞相益畏. 已而絳侯望袁盎曰:「吾與而兄善, 今児廷毀我!盎遂不謝.

후조 상익장 승상익외. 이이강후망원앙왈 오여이형선 금아정훼아!’ 앙수불사.

 

그 후 조회가 있을 때부터 황제는 점차 위엄을 되찾게 되었고, 승상도 점차 황제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후는 원앙을 원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형과 친한 사이인데, 지금 당신이 조정에서 감히 나를 비방하다니!’ 하지만 원앙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及絳侯免相之國, 國人上書告以為反, 徴繋清室, 宗室諸公莫敢為言.

급강후면상지국 국인상서고이위반 징계청실 종실제공막감위언.

강후가 승상에서 면직되어 자기의 봉국(封國)으로 돌아갔는데, 그곳의 사람들에 상서를 올려 강후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밀고했다. 이에 강후는 경성으로 소환되어 감옥에 구금되었는데, 종실과 대신들 중에 아무도 강후를 위해 변호하지 않았다.

 

唯袁盎明絳侯無罪. 絳侯得釈, 盎頗有力. 絳侯乃大與盎結交.

유원앙명강후무죄. 당후득석 앙파유력. 강후내대여앙결교.

 

오직 원앙만이 강후가 죄가 없다고 증명하였다. 강후가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원앙의 힘썼기 때문이었다. 그 후 강후과 원앙은 크게 친교를 맺었다.

 

淮南厲王朝, 殺辟陽侯, 居処驕甚.

회남여왕조 살벽양후 거처교심.

 

회남여왕(淮南厲王) 유장(劉長: 효문제의 이복동생)이 입조하였을 때에 여태후의 정부였던 벽양후(辟陽侯) 심이기(審食其)를 살해하는 등 행동거지가 매우 교만했다.

 

袁盎諫曰:「諸侯大驕必生患, 可適削地.

원앙간왈 제후대교필생환 가적삭지

 

이에 원앙은 황상에게 이렇게 간언을 올렸다. ‘제후가 지나치게 교만하면 반드시 재난이 생기니, 적당히 봉지를 삭감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上弗用. 淮南王益橫.

상불용. 회남왕익횡.

 

그러나 황제는 원앙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회남여왕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及棘蒲侯柴武太子謀反事覚, , 連淮南王, 淮南王徴, 上因遷之蜀, 轞車傳送.

급극포후시무태자모반사각 치 연회남왕 회남왕징 상인천위촉 함거전송.

 

극포후(棘蒲侯) 시무(柴武)의 태자(太子) 시기(柴奇)의 모반을 준비한 사건이 발각되어 그의 죄를 추적조사를 하다니 회남왕도 연루가 되어 소환조사를 받고 징계하게 되었다. 황제는 회남왕을 촉() 지방으로 귀양을 보내기로 하고 죄수를 호송하는 마차에 실어 보내도록 했다.

 

袁盎時為中郎將, 乃諫曰:「陛下素驕淮南王, 弗稍禁, 以至此, 今又暴摧折之. 淮南王為人剛, 如有遇霧露行道死, 陛下竟為以天下之大弗能容, 有殺弟之名, 柰何?」

원앙시위중랑장 내간왈 폐하소교회남왕 불초금 이지차 금우폭최절지. 회남왕위인강 여유우무로행도사 폐하경위이천하지대불능용 유살제지명 내하?’

 

원앙은 당시에 중랑장(中郎將)을 맡고 있었는데 바로 황제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폐하께서는 평소에 회남왕이 교만방자해도 조금도 금하지 않으셨기에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강경하게 그의 기를 꺾어버리려 하십니다. 회남왕은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난폭한 사람인데, 만일 험한 귀양 도중에 풍한(風寒)에 걸려 죽어 버리면 폐하께서는 결국 천하의 대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우 한 사람을 포용하지 못해 아우를 죽였다는 오명을 듣게 되실 것인데, 그럴 때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上弗聴, 遂行之.

상불청 수행지.

 

황제는 원앙의 간언을 듣지 않고 마침내 회남왕을 촉으로 귀양 보냈다.

 

淮南王至雍, 病死, , 上輟食, 哭甚哀.

회남왕지옹 병사 문 상철식 곡심애.

 

회남왕은 옹() 지방에 이르러 병사했다. 그 소식을 듣고 황제는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면서 매우 슬퍼했다.

 

盎入, 頓首請罪. 上曰:「以不用公言至此.盎曰:「上自寛, 此往事, 豈可悔哉! 且陛下有高世之行者三, 此不足以毀名.

앙입 돈수청죄. 상왈 이불용공언지차앙왈 상자각 차왕사 이가회재! 차페하유고세지행자삼 차부족이훼명

 

원앙이 입조해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며 자신의 죄를 청했다. 황제가 말했다. ‘공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르렀소.’ 원앙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넓게 가지십시오! 이번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설사 후회하신들 어떻게 되돌릴 것입니까? 또한 폐하께서는 세상에서 고결한 세 가지의 행적이 갖추고 계시니, 이번 사건으로 폐하의 명성을 훼손시키진 못할 것입니다.’

 

上曰:「吾高世行三者何事?」

상왈 오고세행삼자하사?’

 

황제가 말했다. ‘짐이 세상에서 고결한 세 가지 행적을 갖추고 있다니,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盎曰:「陛下居代時, 太後嘗病, 三年, 陛下不交睫, 不解衣, 湯薬非陛下口所嘗弗進. 夫曾參以布衣猶難之, 今陛下親以王者脩之, 過曾參孝遠矣.

앙왈 폐하거댓; 태후상병 삼년 폐하불교첩 불해의 탕약비폐하구소상불진. 부회삼이포의유난지 금폐하친이왕자유지 과회삼효원의.

 

원앙이 말했다. ‘폐하께서 대()나라에 계실 때 태후(太后)께서 이미 3년 동안 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그때 폐하께서는 제대로 눈을 붙이지 않으셨고 옷도 벗지 아니하고 대기하고 계셨으며, 탕약도 폐하께서 친히 입으로 맛본 것이 아니면 태후께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저 증삼(曾參)은 평민의 신분으로도 오히려 그렇게 하기 어려워했는데, 지금의 폐하께서는 친히 왕자의 몸으로도 실행하셨으니 증삼의 효도를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夫諸呂用事, 大臣専制, 然陛下従代乗六傳馳不測之淵, 雖賁育之勇不及陛下. 陛下至代邸, 西向譲天子位者再, 南面譲天子位者三.

부제여용사 대신전제 연폐하종대승육전치불측지연 수분육지용불급폐하. 폐하지대저 서향양천자위자재 남면양천자위자삼.

 

여씨 일족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대신들이 독단으로 정치를 통제하고 있을 때 폐하께서는 대나라에서 여섯 대의 수레를 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위험한 장안을 비유함)으로 과감하게 뛰어 들었습니다. 설령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용사라고 할지라도 폐하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경성에 있는 대왕(代王)의 객관(客館)에 이르시어 서쪽을 향해 천자(天子)의 자리를 사양하신 것이 두 번이었고, 남면하여 천자의 자리를 양보하신 것이 세 번이나 되었습니다.

 

夫許由一譲, 而陛下五以天下譲, 過許由四矣. 且陛下遷淮南王, 欲以苦其志, 使改過, 有司衛不謹, 故病死.

부허유일양 이폐하오이천하양 과허유사의. 차폐하천회남왕 욕이고기지 사개과 유사위불근 고병사

 

허유(許由)가 천하를 양보한 것은 단지 한 번뿐인데, 폐하께서는 다섯 번이나 천하를 사양했으니, 허유보다 네 번이나 더 많은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회남왕을 귀양 보낸 것은 그가 마음속의 고통을 감내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려고 하신 것이었는데, 그만 호송하는 관리들이 그를 신중하지 못하게 보살폈기 때문에 병사한 것입니다.’


於是上乃解, :「將柰何?」盎曰:「淮南王有三子, 唯在陛下耳.於是文帝立其三子皆為王. 盎由此名重朝廷.

어시상내해 왈 장내하?’ 앙왈 회남왐유삼자 유재폐하이어시문제립기삼자개위왕. 앙유차명중조정.

 

이에 황제는 곧 마음을 놓고 말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원앙이 말했다. ‘회남왕에게 아들 셋이 있는데, 오직 폐하 하시기 나름입니다.’ 이에 효문제는 그 세 아들을 모두 왕으로 봉했다. 원앙은 이 일로 말미암아 조정에서 명성을 크게 떨쳤다.

 

袁盎常引大體慷慨. 宦者趙同以數幸, 常害袁盎, 袁盎患之.

원앙상인대체강개. 환자조동이수행 상해원앙 원앙환지.

 

원앙은 항상 대국적인 도리를 인용하여 의분에 차서 강개 있게 말했다. 환관 조동(趙同: 조담(趙談))은 자주 황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항상 원앙을 해치려고 했기 때문에 원앙은 그것을 우려했다.

 

盎兄子種為常侍騎, 持節夾乗, 説盎曰

앙형자종위상시기 지절협승 설앙왈:

 

원앙의 조카 원종(袁種)은 상시기(常侍騎)로서 부절(符節)을 들고 황제의 곁에서 시종했는데 그가 원앙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君與鬥, 廷辱之, 使其毀不用.

군여투 정욕지 사기훼불용

 

숙부님께서 조동과 암투를 벌이고 있는데, 왕 앞에서 그를 모욕하여 그의 중상모략이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孝文帝出, 趙同參乗, 袁盎伏車前曰:「臣聞天子所與共六尺輿者, 皆天下豪英. 今漢雖乏人, 陛下獨奈何與刀鋸餘人載!

효문제출 조동참승 원앙복거전왈 신문천자소여공육척여자 개천자호영. 금한수핍인 폐하독내하여도거여인재!’

 

한 번은 효문제가 나갈 때 조동이 황제를 수행하며 수레에 동승했다. 그때 원앙이 수레 앞에 엎드리며 말했다. ‘신은 천자께서 6척의 수레에 함께 태우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천하의 호걸과 영웅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비록 한나라에 인재가 모자란다고 하나 폐하께서 어찌하여 거세한 환관 나부랭이를 함께 수레를 태우십니까?’

 

於是上笑, 下趙同. 趙同泣下車.

어시상소 하조동. 조동읍하차.

 

이에 황제는 웃으면서 조동을 내리게 했다. 조동은 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수레에서 내렸다.

 

文帝従霸陵上, 欲西馳下峻阪. 袁盎騎, 並車擥轡.

효문종패릉상 욕서치하준만. 원앙기 병거남비.

 

효문제가 패릉(霸陵) 위에서 서쪽 변두리의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수레를 몰고 내려가려고 했다. 이 때 원앙은 말을 타고서 황제의 수레에 재빨리 접근하여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上曰:「將軍怯邪?」

상왈 장군겁야?’

 

이에 황제가 말했다. ‘장군은 겁이 나오?’

 

盎曰:「臣聞千金之子坐不垂堂, 百金之子不騎衡, 聖主不乗危而徼幸. 今陛下騁六騑, 馳下峻山, 如有馬驚車敗, 陛下縦自軽, 柰高廟太後何?」上乃止.

앙왈 신문천금지자돠불수당 백금지자불기형 성주불승위이격행. 금폐하빙육비 치하준산 여유마경거패 폐하종자경 내고묘 태후하?’ 상내지.

 

원앙이 말했다. ‘신은 천금 부자는 혹시 처마 끝의 기왓장이 떨어져 다칠지도 모르니 마루 끝에 앉지 아니하고, 백금 부자는 난간에 걸터앉지 않으며, 성군은 위험한 것은 타지 않고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몰아 험준한 산비탈을 내달려 내려가려고 하시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넘어지게 되면 폐하 자신의 몸이야 하찮게 보신 것을 차지하더라도 고조(高祖)의 사당과 태후(太后)를 장차 어찌 대하시겠습니까?’ 이에 황제가 멈추었다.

 

上幸上林, 皇後慎夫人従. 其在禁中, 常同席坐. 及坐, 郎署長布席, 袁盎引卻慎夫人坐. 慎夫人怒, 不肯坐. 上亦怒, , 入禁中.

상행상림 황후 신부인종. 기새금중 상동석좌. 급좌 랑서장포석 원앙인각신부인좌. 신부인노 불긍좌. 상역노 기 입금중.

 

황제가 상림원(上林苑)에 행차했을 때 두황후(竇皇后)와 신부인(愼夫人)도 따라갔다. 그녀들은 궁중에 있을 때에 항상 동석에 앉았다. 이번에 상림원에서 좌석을 마련할 때도 낭서장(郎署長)이 동석의 자리를 만들자 원앙이 일부러 신부인의 좌석을 뒤로 밀어놓았다. 신부인이 노하여 좌석에 앉지 않았고, 황제 또한 노하여 일어나 궁중으로 뒤돌아가 버렸다.

 

盎因前説曰:「臣聞尊卑有序則上下和. 今陛下既已立後, 慎夫人乃妾, 妾主豈可與同坐哉! 適所以失尊卑矣. 且陛下幸之, 即厚賜之. 陛下所以為慎夫人, 適所以禍之. 陛下獨不見人彘?」

앙인전설왈 신문존비유서즉상불화. 금폐하기리립후 신부인내첩 첩주이가여동좌재! 적소이실존비의. 차폐하행지. 폐하소이위신부인 적소이화지. 폐하독불견 인체?’

 

원앙은 이 때문에 황제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존귀함과 비천함에 질서가 있으면 위와 아래가 화목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황후를 책봉하신 후에 신부인은 바로 첩의 신분에 불과합니다. 첩과 정처(正妻)가 어찌 동석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만 존귀함과 비천함의 분별을 잃은 길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신부인을 총애하신다면 그녀에게 후하게 상을 하사하십시오. 폐하께서 방금 하신 행동은 바로 신부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기실 그녀에게 화근이 되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설마 한고조께서 총애했던 척부인을 여태후가 인체(人彘: 사람 돼지)”로 만든 사건을 알지 못하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於是上乃説, 召語慎夫人. 慎夫人賜盎金五十斤.

어시상내열 소어신부인. 신부인사앙금오십근.

 

이 말을 들은 황제는 비로소 기뻐하며 신부인을 불러 원앙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이에 신부인은 원앙에게 황금 50근을 하사했다.

 

然袁盎亦以數直諫, 不得久居中, 調為隴西都尉. 仁愛士卒, 士卒皆爭為死. 遷為斉相. 徙為呉相, 辭行, 種謂盎曰:「呉王驕日久, 國多姦. 今苟欲劾治, 彼不上書告君, 即利剣刺君矣. 南方卑溼, 君能日飲, 毋何, 時説王曰毋反而已. 如此幸得脫.

연원앙역이수직간 부득구거중 조위롱서도위. 인애사졸 사졸개쟁위사. 천위제상. 사위오상 사행 종위앙왈: ‘오왕교일구 국다간. 금가욕핵치 피불상서고군 즉리검자군의,. 남방비습 군능일음 무하 시설왕왈무반이이. 여차행득탈

 

그러나 원앙은 자주 직간(直諫)을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조정에 머물지 못하고 롱서(隴西) 도위(都尉)로 좌천되어갔다. 그는 사졸을 어질고 자애롭게 보살폈기 때문에 사졸들은 모두 그를 위한 일이라면 앞을 다투어 목숨을 돌보지 않을 정도였다. 뒤에 그는 제()나라의 재상으로 승진하였고, 다시 오()나라의 재상으로 이동 배치하게 되었다. 그가 작별인사를 하고 오나라로 떠나려 할 때 조카인 원종(袁種)이 원앙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왕(吳王)은 교만에 빠진지 오래되었고, 그 나라 안에는 간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만약 숙부님이 그들을 죄행을 들추어내 다스리려 한다면 그들은 반대로 폐하께 상서를 올려 숙부님을 고발하거나 날카로운 검으로 숙부님의 목숨을 노릴 것입니다. 남방은 지대가 낮고 습한 곳이니 숙부님께서는 그냥 날마다 술이나 드시고, 다른 일은 일절 거론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끔 왕에게 조정을 배반하지 말라고 권고만 하시면 됩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다행히 화를 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盎用種之計, 呉王厚遇盎.

앙용종지계 오왕후우앙.

 

원앙이 원종의 책략을 받아들여 그대로 따르니, 오왕이 그를 후하게 대접했다.


盎告帰, 道逢丞相申屠嘉, 下車拝謁, 丞相従車上謝袁盎. 袁盎還, 愧其吏, 乃之丞相舎上謁, 求見丞相. 丞相良久而見之. 盎因跪曰:「願請閒.

앙고귀 도봉승상신도가 하거배알 승상종거상사원앙. 원앙환 귀기리 내지승상사상알 구견승상. 승상양구이견지 앙인궤왈 원청한

 

원앙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승상 신도가(申屠嘉)를 만나 바로 수레에서 내려 배알했지만 승상은 단지 수레 위에서 형식적으로 그에게 답례했다. 원앙은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하니 자기의 부하 관리들 앞에게 부끄러웠다. 이에 그는 승상의 관저로 가서 직접 뵙기를 청했다. 승상은 한참 지나서야 그를 접견했다. 원앙은 바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물리쳐주십시오. 단독으로 뵙고 싶습니다.’

 

丞相曰:「使君所言公事, 之曹與長史掾議, 吾且奏之即私邪, 吾不受私語.

승상왈 사군소언공사 지조여장사연의 오차진지; 즉사야 오불수사어

 

그러나 승상이 말했다. ‘만일 공이 하고자 하는 말이 공적인 일이거든 아전에 가서 장사(長史)나 아전들과 상의하시오. 그러면 내가 황제께 보고하겠소. 그러나 사적인 일이면 나는 말을 듣지 않겠소.’

 

袁盎即跪説曰:「君為丞相, 自度孰與陳平絳侯?」丞相曰:「吾不如.

원앙즉궤설왈 군위승상 자도숙여진평 강후?’ 승상왈 오불여

 

원앙은 곧바로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말했다. ‘공께서는 승상으로 계시면서 스스로 헤아려서 진평(陳平), 강후(絳侯)와 견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승상이 말했다. ‘나는 그들 같지는 못합니다.’

 

袁盎曰:「, 君即自謂不如. 夫陳平絳侯輔翼高帝, 定天下, 為將相, 而誅諸呂, 存劉氏君乃為材官蹶張, 遷為隊率, 積功至淮陽守, 非有奇計攻城野戦之功.

원앙왈 선 군즉자위불여 부진평 강후보익고제 정천하 위장상 이주제여 존유씨; 군내위재관궐장 천위대솔 적공지외양수 비유기계공성야전지공.

 

원앙이 말했다. ’좋습니다. 승상께서는 스스로 그들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저 진평과 강후는 고조를 보필하여 천하를 평정했고 승상이 되어서 여씨 일족을 토벌하여 유씨의 왕조를 보전시켰습니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무관출신으로 쇠뇌를 잘 쏘아서 대장으로 승진하셨고, 공을 쌓아 회양(淮陽)의 군수가 되었지 기이한 계책을 낸 것도 아니며 성을 공략하고 야전에서 큰 전공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且陛下従代來, 毎朝, 郎官上書疏, 未嘗不止輦受其言, 言不可用置之, 言可受採之, 未嘗不稱善. 何也則欲以致天下賢士大夫. 上日聞所不聞, 明所不知, 日益聖智君今自閉鉗天下之口而日益愚. 夫以聖主責愚相, 君受禍不久矣.

차폐하종대래 매조 랑관상서소 미상불지련수기언 언불가용치지 언가수채지 미상불칭선. 하야? 즉욕이치천하현사대부. 상일문소불문 명소부지 일익성지; 군금자폐겸천하지구이일익환. 부이성주책우상 군수화불구의

 

또한 폐하께서는 대()나라에서 오신 이래로 매번 조회를 할 때마다 낭관(郎官)들이 상주문을 올리면 폐하께서는 타시던 가마를 멈추게 하시고 그들의 의견을 취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의견 중에서 채용할 만한 것이 아니면 한 곁에 남겨두고 채용할 만한 의견이면 채택하시고, ‘좋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것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천하의 현명한 사대부를 초치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폐하께서는 날마다 아직 듣지 못하신 사정을 들으시고,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명확하게 아시게 되어 날이 갈수록 성스럽고 지혜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스스로 천하 사람들의 입을 가로막고 다물게 하여 날로 더욱 우매해지고 있습니다. 대개 성군이 우매한 재상을 질책할 때가 되면 당신께서 고스란히 그 화를 받을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丞相乃再拝曰:「嘉鄙野人, 乃不知, 將軍幸教.引入與坐, 為上客.

승상내재배왈 가비야인 내부지 장군행교인입여좌 위상객.

 

이에 승상은 원앙에게 정중하게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저는 비루하고 촌스런 사람인지라 아는 것이 없으니 장군께서 애정으로 가르침을 주시면합니다.’ 그리고 원앙을 이끌고 내실로 들어가 자리를 같이하고 상객으로 대우했다.

 

盎素不好晁錯, 晁錯所居坐, 盎去盎坐, 錯亦去両人未嘗同堂語. 及孝文帝崩, 孝景帝即位, 晁錯為禦史大夫, 使吏案袁盎受呉王財物, 抵罪, 詔赦以為庶人.

앙소불로조조 조조서거좌 앙거; 앙좌 조역거: 양인미상동당어. 급효문제붕 효경제즉위 조조위어사대부 사리안원앙수오왕재물 저죄 조사이위서인.

 

원앙은 본래부터 조조(晁錯)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조가 있는 자리에서는 원앙이 떠나고, 원앙이 있는 자리에서는 조조 역시 떠났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한 번도 같은 자리에서 더불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효문제가 붕어하고 효경제(孝景帝)가 즉위하자 조조는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 그는 수하의 관리를 보내 원앙이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재물을 수납한 일을 조사하여 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황제는 조칙을 내려 원앙의 죄를 사면하고 서민으로 강등시키는 선에서 그쳤다.

 

呉楚反, , 晁錯謂丞史曰:「夫袁盎多受呉王金銭, 専為蔽匿, 言不反. 今果反, 欲請治盎宜知計謀.

오초반 문 조조위승사왈 부원앙다수오왕금전 전위폐닉 언불반. 금과반 욕청치앙의지계모

 

()나라와 초()나라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도성에 전해지자 조조가 부하 관리인 승()과 사()에게 말했다. ‘대저 원앙은 오왕에게 많은 뇌물을 받고 제멋대로 오왕의 죄를 숨기고 반란을 꾀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지금 오왕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나는 황제께 원앙을 처벌하게 청하려고 한다. 그는 반드시 사전에 모반의 음모를 알았을 것이다.’

 

丞史曰:「事未発, 治之有絶. 今兵西郷, 治之何益! 且袁盎不宜有謀.晁錯猶與未決.

승사왈 사미발 치지유절. 금병서향 치지하익! 차원앙불의유모조조유여미결.

 

승과 사가 말했다. ‘사건이 발발하지 않았을 때 그를 처벌했으면 반란의 음모를 중단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반란군이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는데 그를 처벌한들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또한 원앙은 부당하게 음모에 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조는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人有告袁盎者, 袁盎恐, 夜見竇嬰, 為言呉所以反者, 願至上前口対狀. 竇嬰入言上, 上乃召袁盎入見. 晁錯在前, 及盎請辟人賜閒, 錯去, 固恨甚.

인유고원앙자 원앙공 야견두영 위언오소이반자 원지상전구대상. 두영입언상 상내소원앙입견. 조조재전 급앙청피인사한 조거 고한심.

 

어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원앙에게 알려주었다. 원앙은 두려워서 야밤에 두영(竇嬰: 두황후(竇皇后)의 조카)을 찾아가서 그에게 오나라가 모반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황제 면전에서 친히 대질하여 진상을 아뢰고 싶다고 했다. 두영이 궁전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원앙의 사연을 보고하자 황제는 곧 원앙을 궁전으로 불러 만나보았다. 이 때에 조조는 황제의 면전에 있었는데 원앙이 다른 사람을 회피하게 하고 단독으로 접견하길 청하자 조조는 물러나면서 대단히 원통하게 생각했다.

 

袁盎具言呉所以反狀, 以錯故, 獨急斬錯以謝呉, 呉兵乃可罷. 其語具在呉事中. 使袁盎為太常, 竇嬰為大將軍. 両人素相與善. 逮呉反. 諸陵長者長安中賢大夫爭附両人, 車隨者日數百乗.

원앙구언오소이반상 이조고 독급참조이사오 오병내가파. 기어구재오사중, 사원앙위태상 두영위대장군. 양인소상여선. 체오반. 제릉장자장안중현대부쟁부양인 거수자일수백승.

 

원앙은 오나라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 진상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그 원인은 조조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오로지 서둘러 조조를 참수하여 오나라에게 사과한다면 오나라의 군대는 곧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황제는 원앙을 태상(太常)으로, 두영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았다. 이 두 사람은 평소 사이가 좋았다. 오나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제릉(諸陵)에 거주하고 있은 덕망이 있는 사람들과 장안(長安)에 현명한 대부들이 모두 다투어 그 두 사람에게 의탁했는데, 그들의 뒤를 따르는 수레가 매일 수백 대가 되었다.


及晁錯已誅, 袁盎以太常使呉. 呉王欲使將, 不肯. 欲殺之, 使一都尉以五百人囲守盎軍中. 袁盎自其為呉相時, ()有従史嘗盜愛盎侍児, 盎知之, 弗泄, 遇之如故.

급조조이주 원앙이태상사오. 오왕욕사장 불긍. 욕살지 사일도위이오백인위수앙군중, 원앙자기위오상시 유종사상도애앙시아 앙지지 불설 우지여고.

 

조조를 이미 죽인 후에 원앙은 태상의 신분으로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왕은 원앙을 장군으로 임명하고자 했으나 그가 승낙하지 하지 않자 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 도위(都尉)에게 5백 명을 거느리고 군대 안에서 원앙을 겹겹이 감시하게 했다. 예전에 원앙이 오나라의 재상으로 재직 시에 그 부하 관리 중의 한 사람이 원앙의 시녀를 좋아하여 몰래 사랑을 나누었는데, 원앙은 이를 알아채고도 누설하지 않고 전과 마찬가지로 대했다.

 

人有告従史, 君知爾與侍者通, 乃亡帰. 袁盎駆自追之, 遂以侍者賜之, 複為従史.

인유고종사 언 군지이여시자통내망귀. 원앙구자추지 수이시자사지 복위종사.

 

어떤 사람이 그 부하 관리에게 재상께서 당신과 시녀가 정을 통한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알리자 그는 문책될 것이 두려워서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에 원앙은 친히 말을 몰아서 그를 쫓아가서 만류하고, 마침내 시녀를 그에게 보내주고 다시 부하 관리로 일하게 했다

 

及袁盎使呉見守, 従史適為守盎校尉司馬, 乃悉以其裝齎置二石醇醪, 會天寒, 士卒飢渇, 飲酒酔, 西南陬卒皆臥.

급원앙오견수 종사적위수앙교위사마 내실이기장제치이석순료 회천한 사졸기갈 음주취 서남취졸개와.

 

원앙이 오나라에 사신으로 나왔다가 붙잡혀 감시를 당하고 있었을 때, 마침 그 부하 관리가 원앙을 감시하는 교위사마(校尉司馬)로 있었다. 그는 원앙을 구원하기 위해서 휴대하고 있던 재물을 모두 팔아서 독한 술 두 섬(이십 말)을 구입했다. 그때 마침 날씨는 몹시 추웠고 원앙을 감시하던 병사들은 굶주리고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교위사마는 그들에게 수고한다고 술을 마시게 하여 모두 취하게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서남쪽을 지키는 병사들은 모두 만취하여 쓰러져 있다.

 

司馬夜引袁盎起, :「君可以去矣, 呉王期旦日斬君.盎弗信, :「公何為者?」司馬曰:「臣故為従史盜君侍児者.

사마야인원앙기 왈 군하이거의 오왕기단일참군원앙신 왈 공하위자?’ 사마왈 신고위종사도군시아자

 

그 교위사마는 밤에 원앙을 찾아가서 그를 일으켜서 이렇게 말했다. ‘공께서는 지금 도피하십시오. 오왕은 내일 아침에 공을 죽이려고 결정했습니다.’ 원앙은 믿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사마가 말했다. ‘소신은 예전에 공의 수하로 일하던 관리로 공의 시녀와 몰래 사통했던 사람입니다.’

 

盎乃驚謝曰;「公幸有親, 吾不足以累公.司馬曰:「君弟去, 臣亦且亡, 辟吾親, 君何患!乃以刀決張, 道従酔卒()[].

앙내경사왈 공행유친 오부족이누공사마왈 군제거 신역차망 벽오친 군가환!’ 내이도결장 도종취졸추출.

 

그제야 원앙은 놀라 사양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운 좋게 양친이 생존해 계시니, 나 때문에 당신까지 연루시킬 생각이 없소.’ 이에 사마교위가 말했다. ‘공께서는 단지 도피하시면 됩니다. 저도 또한 도망가서 저의 양친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겠습니다. 공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칼로 군영의 장막을 갈라서 원앙을 만취해 쓰러져 병사들 사이로 인도하여 도피시켰다.

 

司馬與分背, 袁盎解節毛懐之, , 歩行七八里, , 見梁騎, 騎馳去, 遂帰報.

사마여분배 원앙해절모회지 장 보행칠십리 명 견양기 기치거. 수귀보.

 

원앙은 사마교위와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길을 택하여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도피했다. 원앙은 절모(節毛: 임금이 사신에게 주는 기)를 해체하여 가슴 속에 품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7, 8리를 걸어서 갔다. 다음날 새벽녘에 그는 양()나라 기병을 만나서 그들의 말을 얻어 타고 마침내 도성으로 돌아와서 오나라의 정황을 황제에게 보고할 수 있었다.

 

呉楚已破, 上更以元王子平陸侯禮為楚王, 袁盎為楚相. 嘗上書有所言, 不用.

오초이파 상경이원왕자평륙후예위초왕 원앙위초상. 상상거유소진 불용.

 

오나라와 초나라의 반군을 이미 격파시킨 후에 황제는 다시 초원왕(楚元王)의 아들인 평륙후(平陸侯) 유례(劉禮)를 초왕(楚王)으로 삼고, 원앙을 초나라 재상에 임명했다. 원앙은 일찍이 상서를 올려 진언을 드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袁盎病免居家, 與閭里浮沈, 相隨行, 鬥雞走狗. 雒陽劇孟嘗過袁盎, 盎善待之.

원앙병면거가 여여리부침 상수행 투계주구. 락양극맹상과원앙 앙선대지.

 

원앙은 병을 핑계 삼아 벼슬에서 물러나와 집에서 한가하게 지냈다. 그는 고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서로 따라다니면서 닭싸움이나 개 경주 등과 같은 유희를 즐겼다. 낙양(洛陽)의 극맹(劇孟: 노름꾼)이 일찍이 원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원앙은 그를 잘 대접했다.

 

安陵富人有謂盎曰:「吾聞劇孟博徒, 將軍何自通之?」盎曰:「劇孟雖博徒, 然母死, 客送葬車千餘乗, 此亦有過人者. 且緩急人所有. 夫一旦有急叩門, 不以親為解, 不以存亡為辭, 天下所望者, 獨季心劇孟耳. 今公常従數騎, 一旦有緩急, 寧足恃乎!罵富人, 弗與通. 諸公聞之, 皆多袁盎.

안릉부인유위앙왈 오문극맹박도 장군하자통지?’ 앙왈 극먕수박보 연모사 객송장거천여승 차역유과인자. 차완급인소유. 부일단유급고문 불이친위해 천하소망자 독계심 극맹이. 금공상종수기 일단유완급 영족시호!’ 매부인 불여통. 제공문지 개다원앙.

 

안릉(安陵)의 어떤 부자가 원앙에게 일러서 말했다. ‘나는 극맹을 노름꾼으로 들었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해서 그와 같은 사람과 왕래하며 지내십니까?’ 원앙이 말했다. ‘극맹은 비록 노름꾼이지만 그의 모친이 서거할 때에 장례식에 참석한 손님의 수레가 천여 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가 범인보다 뛰어난 측면이 있기 때문이오. 또 급하고 어려운 사정은 사람마다 모두 생기게 마련이오. 만약 어떤 사람이 급한 일을 당해서 문을 두드리면 양친을 구실 삼아 양해를 구하거나 집에 있으면서도 없다고 핑계를 대지 않으니, 천하의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단지 계심(季心: 계포(季布)의 동생)과 극맹일 따름이오. 지금 당신은 늘 몇 명의 말 탄 시종을 거느리고 다니지만 일단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정녕 그들을 믿을 수 있겠소!’ 원앙은 그 부자를 매섭게 욕한 후에 다시 그와 왕래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원앙을 칭송했다.

 

袁盎雖家居, 景帝時時使人問籌策. 梁王欲求為嗣, 袁盎進説, 其後語塞. 梁王以此怨盎, 曾使人刺盎. 刺者至関中, 問袁盎, 諸君譽之皆不容口.

원앙수가거 경제시시사인문주책. 영왕욕구위사 원앙진설 기후어색. 양왕이차원앙 증사자앙. 자자지관중 문원앙 제군예지개불용구.

 

원앙은 비록 집에 한가하게 거처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자주 사람을 보내어 국정에 관한 책략을 자문하곤 했다. 양왕(梁王: 한경제의 동생)은 두태후의 후원을 업고 경제의 후사가 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원앙이 반대하는 진언한 후 그 논의는 중단되고 말았다. 양왕은 이 일로 원앙을 원한을 가지고 있다가 자객을 보내 원앙을 암살하려고 했다. 자객이 관중(關中)에 와서 원앙에 대해 물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원앙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했다.

 

乃見袁盎曰:「臣受梁王金來刺君, 君長者, 不忍刺君. 然後刺君者十餘曹, 備之!

내견원앙왈 신수양왕금래자군 군장자 불인자군. 연후자군자십여조 비지!’

 

그 자객은 바로 원앙을 찾아뵙고 말했다. ‘소신은 양왕의 금전을 받고서 당신을 암살하려고 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덕망을 갖춘 분인지라 차마 암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당신을 암살하려는 10여 명의 무리가 대기하고 중이니, 잘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袁盎心不樂, 家又多怪, 乃之棓生所問占. , 梁刺客後曹輩果遮刺殺盎安陵郭門外.

원앙심불악 가우다괴 내기배생소문점. 환 양자객후조배과차자살앙안릉곽문외.

 

그의 말을 듣고 원앙은 마음속이 편치 못했다. 또 집안에서 괴기한 일이 많이 발생해 곧바로 배()씨 성을 지닌 점쟁이가 있는 곳에 가서 길흉을 묻고 점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양왕이 보낸 자객들이 안릉의 성문 밖에서 그를 가로막고 암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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