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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世家-曹相國世家

(曹相國世家)

 

<진나라를 멸망시키기까지 조참의 활약>

 

平陽侯曹參者, 沛人也. 秦時為沛獄掾, 而蕭何為主吏, 居県為豪吏矣.

평양후조참자 패인야. 진시위패옥연 이소하위주리 거현위호리의.

 

평양후(平陽侯) 조참(曹參)은 패()나라 출신이다. 조참은 진()나라 시기 옥연(獄掾)으로 일했고, 소하(蕭何)는 주리(主吏)로 일했는데, 그들은 현()에서 힘 있는 관리였다.

 

高祖為沛公而初起也, 參以中涓従. 将撃胡陵方與, 攻秦監公軍, 大破之. 東下薛, 撃泗水守軍薛郭西. 复攻胡陵, 取之.

고조위패공이초기야 참이중연종. 장격호릉 방여 공진감공군대파지. 동하설 격사수수군설곽서. 복공호릉 취지.

 

고조가 패공(沛公)이 되어 처음 봉기했을 때 조참은 중연(中涓)으로 뒤따르며 호릉(胡陵), 방여(方與)를 공격했고 진나라 감공(監公)의 군대를 쳐서 대파했다. 동쪽으로 설()나라 땅을 함락시켰고 사수(泗水)를 지키는 군대를 설나라의 서쪽에서 공격한 다음 다시 호릉을 공격하여 취했다.

 

徙守方與. 方與反為魏, 撃之. 豊反為魏, 攻之. 賜爵七大夫. 撃秦司馬夷軍碭東, 破之, 取碭狐父祁善置. 又攻下邑以西, 至虞, 撃章邯車騎. 攻爰戚及亢父, 先登. 遷為五大夫.

시수방여. 방여반위휘 격지. 풍반위위 공지. 사자칠대부. 격진사마이군탕동 파지 취탕 호보 기선치. 우공하읍이서 지우 격장한거기. 공원척급항보 선등. 천위오대부.

 

이동하여 방여를 지키려는데 방여가 배반하여 위()나라에 투항하여 방여를 쳤다. ()도 배반하여 위나라의 일부가 되자 풍을 공격했다.(조참에게) 칠대부(七大夫)의 작위를 내렸다. ()나라의 사마이(司馬夷) 군대를 탕()나라의 동쪽에서 공격하여 격파하고 탕나라와 호보(狐父)와 기()나라의 선치(善置:명명)하였다. 또 하읍(下邑) 서쪽을 공격하여 우()나라에 이르러 장한(章邯)의 기병을 공격했다. 원척(爰戚)과 항보(亢父)를 공격할 때는 먼저 성에 올랐다. 오대부(五大夫)로 승진했다.

 

北救阿, 撃章邯軍, 陥陳, 追至濮陽. 攻定陶, 取臨済. 南救雍丘. 撃李由軍, 破之, 殺李由, 虜秦候一人. 秦将章邯破殺項梁也, 沛公與項羽引而東. 楚懐王以沛公為碭郡長, 将碭郡兵. 於是乃封參為執帛, 号曰建成君. 遷為戚公, 属碭郡.

북구아 격장한군 함진 추지복양. 공정도 취임제. 남구옹구. 격이유군 파지 살이유 노진후일인. 진장장한파살항량야 패공여항우인이동. 초회왕이패공위탕군장 장탕군병. 어시내봉참위집백 호왈건성군. 천위척공 속탕군.

 

북으로 아()나라를 구원하고 장한의 군대를 공격하여 진()나라를 함락시키고 복양(濮陽)까지 추격했다. 정도(定陶)를 공격하고 임제(臨濟)를 취했다. 남으로 옹구(雍丘)를 구원하고 이유(李由)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이유를 죽이는 한편 진나라의 군관 한 명을 포로로 잡았다. 진나라의 장수 장한이 항량(項梁)을 격파하여 죽이자 패공은 항우(項羽)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나라 회왕(懷王)은 패공을 탕군(碭郡)의 우두머리로 삼아 탕군의 군대를 이끌게 했다. 이때 조참을 집백(執帛)으로 봉했고 건성군(建成君)이라 불렀다. 다시 척()나라의 현령으로 승진시키고 탕군을 그에게 소속시켰다.

 

其後従攻東郡尉軍, 破之成武南. 撃王離軍成陽南, 复攻之杠里, 大破之. 追北, 西至開封, 撃趙賁軍, 破之, 囲趙賁開封城中. 西撃将楊熊軍於曲遇, 破之, 虜秦司馬及御史各一人. 遷為執珪.

기후종공동군위군 파지성무남. 격왕리순성양남 복공지강리 대파지. 추북 서지개봉 격조분군 파지 위조분개봉성중. 서격장양웅군어곡우 파지 노진사마급어사각일인. 천위집규.

그 뒤 (패공을 따라) 동군(東郡) 군위(郡尉)의 군대를 공격하여 성무(成武)의 남쪽에서 격파했다. 왕리(王離)의 군대를 성양(成陽) 남쪽에서 공격하고 다시 강리(杠里)에서 공격하여 대파했다. 추격하여 서쪽으로 개봉(開封)에 이르러 조분(趙賁)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했는데 조분을 개봉성에서 포위했다. 서쪽으로는 양웅(楊熊)의 군대를 곡우(曲遇)에서 공격하여 격파하고 진나라의 사마(司馬)와 어사(御史)를 각각 한 명씩 포로로 잡았다. 집규(執珪:봉국의 우두머리로 인정함)했다.

 

従攻陽武, 下轘轅緱氏, 絶河津, 還撃趙賁軍尸北, 破之. 従南攻犨, 與南陽守齮戦陽城郭東, 陥陳, 取宛, 虜齮, 尽定南陽郡.

종공양무 하환원 구씨 절하진 환격조분군시북 파지. 종남공주 여남양수의전양성곽동 함진 취완 노의 진정남양군.

 

다시 (패공을 따라) 양무(陽武)를 공격하여 환원(轘轅), 구지(緱氏)를 함락하고, 황하 나루터를 끊어 놓은 다음에 군을 돌려 시향(尸鄕) 북쪽에서 조분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했다.(패공을 따라) 남쪽으로 주()나라를 쳤고, 남양(南陽) 군수 여의(呂齮)와 양성(陽城)의 외곽 동쪽에서 전투를 벌여 진()나라 함락시고 완성(宛城)을 취하는 한편 여의를 포로로 잡음으로써 남양군(南陽郡)을 완전히 평정했다.

 

従西攻武関嶢関, 取之. 前攻秦軍藍田南, 又夜撃其北, 秦軍大破, 遂至咸陽, 滅秦.

종서공무관 요관 취지. 전공진군람전남 우야격기북 진군대파 수지함양 멸진.

 

(패공을 따라) 서쪽으로 무관(武關), 요관(嶢關)을 공격하여 취했다. 이에 앞서 진나라의 군대를 남전(藍田)의 남쪽에서 공격하고, 다시 밤에 그 북쪽을 공격하여 진나라의 군대를 대파했다. 마침내 함양(咸陽)에 이르러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초한쟁패와 한나라 초기까지 조참의 공적>

 

 

項羽至, 以沛公為漢王. 漢王封參為建成侯. 従至漢中, 遷為将軍. 従還定三秦, 初攻下辯故道. 撃章平軍於好畤南, 破之, 囲好畤, 取壌郷. 撃三秦軍壌東及高櫟, 破之. 复囲章平, 章平出好畤走. 因撃趙賁内史保軍, 破之. 東取咸陽, 更名曰新城.

항우지 이패공위한왕. 한왕봉참위건성후. 종지한중 천위장군. 종환정삼진 초공하변 고도 옹 태. 격장평군호치남 파지 위호치 취양향. 격삼진군양동급고력 파지. 복위장평 장평출호치주. 인격조분 내사보군 파지, 동취함영 경명왈신성.

 

항우가 (함양에) 이르러 패공을 한왕(漢王)으로 삼았다. 한왕은 조참을 건성후(建成侯)로 봉했다. (조참은 한왕을) 따라서 한중(漢中)에 이르자 장군(將軍)으로 승진했다.(한왕을 따라 관중으로) 돌아가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처음으로 하변(下辯), 고도(故道), (), ()를 공격했다. 장평(章平)의 군대를 호치(好畤) 남쪽에서 공격하여 격파하고, 호치를 포위해 양향(壤鄕)을 취했다. 양향의 동쪽과 고력(高櫟) 일대에서 삼진의 군대를 쳐서 격파했다. 다시 장평을 포위하자 장평은 호치를 나와 달아났다. 이에 조분과 그의 내사(內史) ()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했다. 동으로 함양을 취하여 신성(新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參将兵守景陵二十日, 三秦使章平等攻參, 參出撃, 大破之. 賜食邑於寧秦. 參以将軍引兵囲章邯於廃丘. 以中尉従漢王出臨晉関. 至河内, 下脩武, 渡囲津, 東撃竜且項他定陶, 破之. 東取碭彭城.

참장병수셩릉이십일 삼진사장평등공참 참출격 대파지. 사식읍어영진. 참이장군인병위장한어폐구, 이중위졸한왕출임진관. 지하내 하수무 도위진 동격용저 항타정도 파지. 동취탕 소 팽성.

조참이 군대를 이끌고 20일 동안 경릉(景陵)을 지키자 삼진은 장평 등에게 조참을 공격하게 했다. 조참이 출격하여 대파했다. 영진(寧秦)(조참에게) 식읍(食邑)으로 내렸다. 조참은 장군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폐구(廢丘)에서 장한을 포위했다. 또 중위(中尉)로서 한왕을 따라 임진관(臨晉關)을 나와 하내(河內)에 이르러 수무(修武)를 공략한 다음 위진(圍津) 나루에서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용저(龍且), 항타(項他)를 정도(定道)에서 공격하여 격파했다. 동쪽으로 탕(), (), 팽성(彭城)을 취했다.

 

撃項籍軍, 漢軍大敗走. 參以中尉囲取雍丘. 王武反於[], 程処反於燕, 往撃, 尽破之. 柱天侯反於衍氏, 又進破取衍氏. 撃羽嬰於昆陽, 追至葉. 還攻武彊, 因至滎陽. 參自漢中為将軍中尉, 従撃諸侯, 及項羽敗, 還至滎陽, 凡二歳.

격항적군 한군대패주. 참이중위취옹구. 왕무반어외황 정처반어연 왕격 진파지. 주천후반어연씨 우진차취연씨. 격우영어곤양 추지기. 환공무강 인지형양. 참자한중위장군중위 종격제후 급항우패 환지형양 범이세.

 

항적(項籍)의 군대를 공격했으나 한의 군대가 대패하여 달아났다. 조참은 중위로서 옹구(雍丘)를 포위하여 취했다. 왕무(王武)가 외황(外黃)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정거(程處)가 연()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가서 공격하여 모두 격파했다. 주천후(柱天侯)가 연지(衍氏)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다시 나가 연지를 격파하고 취했다. 우영(羽嬰)을 곤양(昆陽)에서 공격하고 추격하여 섭()까지 이르렀다가 돌아와 무강(武彊)을 공격한 다음 형양(滎陽)에 이르렀다. 조참은 한중에서부터 장군과 중위로 (한왕을 따라) 제후들을 공격하다가 항우에게 패하여 다시 형양으로 돌아오니 모두 2년이 걸렸다.

 

高祖二年, 拝為仮左丞相, 入屯兵関中. 月余, 魏王豹反, 以仮左丞相別與韓信東攻魏将軍孫遫軍東張, 大破之. 因攻安邑, 得魏将王襄. 撃魏王於曲陽, 追至武垣, 生得魏王豹. 取平陽, 得魏王母妻子, 尽定魏地, 凡五十二城.

고조이년 배위가좌승상 입둔병관중. 월여 위왕표반 이가좌승상별여한신동공위장군손속군동장 대파지. 인공안읍 득위장왕양. 격위왕어곡양 추지무단 샹득위왕표. 취평양 득위왕모처자 진정위지 범오십이성.

 

고조 2(기원전 205)에 임시 좌승상(左丞相)이 되어 관중(關中)에 들어가 군대를 주둔시켰다.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위왕 표(魏王豹)가 반란을 일으켜 임시 좌승상으로 한신(韓信)과 별도로 동쪽으로 위()나라의 장수 손속(孫遫)의 군대를 동장(東張)에서 공격하여 대파했다. 이어 안읍(安邑)을 공격하여 위()나라의 장수 왕양(王襄)을 포로로 잡았다. 곡양(曲陽)에서 위왕(魏王)을 공격하여 무원(武垣)까지 뒤쫓아 위왕 표를 산채로 잡았다. 평양(平陽)을 취하여 위왕의 어머니와 처자들을 잡고 위()나라 땅을 모두 평정하니 모두 52개의 성이었다.

 

賜食邑平陽. 因従韓信撃趙相国夏説軍於鄔東, 大破之, 斬夏説. 韓信與故常山王張耳引兵下井陘, 撃成安君, 而令參還囲趙別将戚将軍於鄔城中. 戚将軍出走, 追斬之. 乃引兵詣敖倉漢王之所.

사식읍평양. 인종한신격조상국하설군어오동 대파지 참하열. 한신여고상산왕장이인병하정경 격성안군 이영참환위조별장척장군어오성중. 척장군출주 추참지. 내인병예오창한왕지소.

 

평양을 식읍으로 내렸다. 이어 한신을 따라 조()나라의 상국(相國) 하열(夏說)의 군대를 오()나라의 동쪽에서 공격하여 대파하고 하열의 목을 베었다. 한신은 옛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와 함께 병사를 이끌고 정경(井陘)으로 내려와 성안군(成安君)을 공격하고, 조참에게 조()의 별장(別將) ()나라 장군의 군대를 오성(鄔城)에서 포위하게 했다. 척나라 장군의 군대가 달아나자 추격하여 목을 베었다. 바로 병사를 이끌고 오창(敖倉)의 한왕이 있는 곳으로 갔다.

 

韓信已破趙, 為相国, 東撃斉. 參以右丞相属韓信, 攻破斉歴下軍, 遂取臨菑. 還定済北郡, 攻著漯陰平原.

한신이파조 위상국 동격제. 참이우승상속한신 공파제역하군 수취임치. 환정제북군 공저 탐음 평원 격 노.

한신이 조를 격파한 다음 상국이 되어 동쪽으로 제를 공격하자 조참은 우승상으로 한신에게 소속되어 제나라 역하(歷下)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마침내 임치(臨菑)를 취했다. 군을 돌려 제북군(濟北郡)을 평정하고, 저현(著縣), 탑음(漯陰), 격현(鬲縣), 노현(盧縣)을 공격했다.

 

已而従韓信撃竜且軍於上仮密, 大破之, 斬竜且, 虜其将軍周蘭. 定斉, 凡得七十余県. 得故斉王田広相田光, 其守相許章, 及故斉膠東将軍田既. 韓信為斉王, 引兵詣陳, 與漢王共破項羽, 而參留平斉未服者.

이이종한신격용저군어상가밀 대파지 참용저 노기장군주란. 정제 범득칠십여현. 득고제왕전광상전광 기수상허장 급고제교동장군전기. 한신위제왕 인병예진 여한왕공파항우 이참류제미복자.

 

얼마 뒤 한신을 따라 상가밀(上假密)에서 용저의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한 다음 용저의 목을 베고 그 장군 주란(周蘭)을 포로로 잡았다. 제나라를 평정하니 모두 70여 개의 현을 획득했다. 옛 제나라의 왕 전광(田廣), () 전광(田光), 수상(守相) 허장(許章) 및 옛 제나라의 교동장군(膠東將軍) 전기(田旣)를 포로로 잡았다. 한신은 제왕(齊王)이 되어 병사를 이끌고 진()에 이르러 한왕과 함께 항우를 격파했고, 조참은 제나라에 머무르며 제나라의 항복하지 않은 자들을 평정했다.

 

項籍已死, 天下定, 漢王為皇帝, 韓信徙為楚王, 斉為郡. 參帰漢相印. 高帝以長子肥為斉王, 而以參為斉相国. 以高祖六年賜爵列侯, 與諸侯剖符, 世世勿絶. 食邑平陽萬六百三十戸, 号曰平陽侯, 除前所食邑.

항적이사 천하정 한왕위황제 한신사위초왕 제위군. 참귀한상인. 고제이장자비위제왕 이이참위제상국. 이고조육년사작열후 여제후부부 세세물절. 식읍평양만육백삼십호 호왈평양후 제전소식읍.

 

항적(項籍, 항우)이 죽고 천하가 평정되자 한왕이 황제가 되었다. 한신은 초왕(楚王)으로 옮겨졌고 제나라는 군()이 되었다. 조참은 한 승상(丞相)의 도장을 반환했다. 고제는 큰아들 유비(劉肥)를 제왕(齊王)으로 삼으면서 조참을 제의 상국으로 삼았다. 고조 6, (조참을) 제후의 반열에 올리고 제후의 신표를 주어 대대로 끊이지 않게 했다. 평양 10,630호를 식읍으로 삼게 하고 평양후로 부르는 한편 전에 받은 식읍은 취소했다.

 

以斉相国撃陳豨将張春軍, 破之. 黥布反, 參以斉相国従悼恵王将兵車騎十二萬人, 與高祖会撃黥布軍, 大破之. 南至蘄, 還定竹邑.

이제상국격진희장장춘군 파지. 경포반 참이제상국종도혜왕장병거기십이만인 여고조회격경포군 대파지. 남지기 환정죽읍 상 소 류.

 

(조참은) 제의 상국으로 진희(陳豨)의 장수 장춘(張春)의 군대를 격파했다. 경포(黥布)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참은 제의 상국으로 도혜왕(悼惠王)을 따라 기병과 보병 12만을 이끌고 고조와 만나 경포의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했다. 남쪽으로 기()에 이르렀고, 회군하여 죽읍(竹邑), (), (), ()를 평정했다. 

 

參功凡下二国, 県一百二十二得王二人, 相三人, 将軍六人, 大莫敖郡守司馬御史各一人.

참공 범하이국 현일백이십이 득왕이인 상삼인 장국육인 재막오 군수 사마 후 어사각일인.

 

조참의 공은 이랬다. 모두 나라 둘, 122개를 함락시켰고, 2, 3, 장군 6인과 대막오(大莫敖), 군수(郡守), 사마(司馬), 군후(軍侯), 어사(御史) 1명을 포로로 잡았다.

 

 

<소하를 이어 상국이 된 조참과 그 활약>

 

孝恵帝元年, 除諸侯相国法, 更以參為斉丞相. 參之相斉, 斉七十城. 天下初定, 悼恵王富於春秋, 參尽召長老諸生, 問所以安集百姓, 如斉故()諸儒以百數, 言人人殊, 參未知所定.

효혜제원년 제제후상국법 경이참위제승상. 참지상제 제칠십성. 천하초정 도혜왕부어춘추 삼진소장로제생 문소이안집백성 여제고속제유이백수 언인인수 참미지소정.

 

혜제(惠帝) 원년(기원전 194), 제후국에 상국을 두는 법을 폐지하자 조참은 다시 제나라의 승상이 되었다. 조참은 제나라의 70개성을 제나라의 상으로 다스렸다. 천하가 처음 평정되었을 때 도혜왕(悼惠王)은 나이가 어렸다. 조참은 장로(長老)와 유생들을 죄다 불러서 제나라의 옛 풍속에 따라 백성을 편안하게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나 백 명이 넘는 유생들은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조참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聞膠西有蓋公, 善治黄老言, 使人厚幣請之. 既見蓋公, 蓋公為言治道貴清静而民自定, 推此類具言之. 參於是避正堂, 舎蓋公焉. 其治要用黄老術, 故相斉九年, 斉国安集, 大称賢相.

문교사유개공 선치황로언 사인후폐청지. 기견개공 개공위언치도귀청정이민자정 추차류구언지. 참어시피정당 사개공언. 기치요용황로술 고상제구면 제국안집 대칭현상.

 

교서(膠西)지역에 개공(蓋公)이란 사람이 황로설(黃老說)에 정통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에게 후한 예물을 딸려 보내 그를 청했다. 이윽고 개공을 만나보니 개공은 다스림의 이치로 청정무위를 중시하면 백성들은 절로 안정된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다 해주었다. 조참은 이에 정당(正堂)을 양보하여 개공이 머물게 했다. 다스림의 요체로 황로술을 채용하여 9년 동안 제나라의 재상으로 일하자 제나라가 안정되었고, 모두들 현명한 재상이라고 크게 칭찬했다.

 

恵帝二年, 蕭何卒. 參聞之, 告舎人趣治行, 吾将入相. 居無何, 使者果召參. 參去, 属其後相曰:「以斉獄市為寄, 慎勿擾也.後相曰:「治無大於此者乎?」參曰:「不然. 夫獄市者, 所以并容也, 今君擾之, 姦人安所容也吾是以先之.

혜제이년 소하졸. 참문지 고사인취치행 오장입상거무하 사자과소참. 참거 속기후상왈 이제옥시위기 신물요야후상왈 치무대어차자호참왈 불연 부옥시자 소이병용야 금군우지 간인안소용야 오시이선지

 

혜제 2년에 소하(蕭何)가 죽었다. 조참은 이 소식을 듣고 사인(舍人)들에게 떠날 채비를 하라고 재촉하면서 내가 들어가 재상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신이 조참을 부르러 왔다. 조참이 떠나면서 그의 후임 재상에게 제나라의 감옥과 시장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소란스럽지 않게 조심하시오.’라고 당부했다. 후임 재상은 다스림에 있어서 그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조참은 그렇지 않소이다. 대저 감옥과 시장은 이런저런 사람이 다 함께 모이는 곳이라 당신이 소란스럽게 하면 간악한 자들을 어디다 수용하겠소이까? 나는 이를 우선시했소.’라고 했다.

 

 

參始微時, 與蕭何善及為将相, 有卻. 至何且死, 所推賢唯參. 參代何為漢相国, 挙事無所変更, 一遵蕭何約束.

참시미시 여소하선 급위장상 유각. 지하차사 소추현유참. 참대하위한상국 거사무소변경 일준소하약속.

 

조참이 처음 별 볼 일 없었을 때는 소하와 잘 지냈으나 장수와 상이 되자 틈이 벌어졌다. 소하가 죽음을 맞이하여 유능하다고 추천한 사람은 다름이 아닌 조참이었다. 조참은 소하를 이어 한나라의 상국이 되어서는 모든 일을 바꾸지 않고 줄곧 소하가 제정한 규정을 따랐다.

 

択郡国吏木詘於文辞, 重厚長者, 即召除為丞相史. 吏之言文刻深, 欲務声名者, 輒斥去之. 日夜飲醇酒. 卿大夫已下吏及賓客見參不事事, 來者皆欲有言. 至者, 參輒飲以醇酒, 閒之, 欲有所言, 复飲之, 酔而後去, 終莫得開説, 以為常.

택군국이목굴어문사 중후장자 즉소제위승상사. 리지언문각심 역무성명자 첩척거지. 일야음순주. 경댜부이하리급빈갹견참불사사 래지개욕유언. 지자 참첩음이순주 간지 욕유소언 복음지 취이후거 종막득개설 이위상.

 

(조참은) 군과 제후국에서 말과 문장이 어눌하고 질박한 관리들과 중후한 장자들을 골라 바로 불러들여 승상부의 관리로 삼았다. 관리로서 말과 문장이 각박하고 명성을 얻는데 힘을 쓰는 자들은 바로 내쳐서 보냈다. 그리고는 낮밤으로 술만 마셨다. 경과 대부 이하 관리 및 빈객들이 조참이 일을 돌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와서 모두 한 마디씩 하려고 했다. 이들이 오자 조참은 바로 술을 마시게 했고, 잠시 뒤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면 다시 마시게 하여 취한 다음 가게 하니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늘 이와 같았다.

 

相舎後園近吏舎, 吏舎日飲歌呼. 従吏悪之, 無如之何, 乃請參游園中, 聞吏酔歌呼, 従吏幸相国召按之. 乃反取酒張坐飲, 亦歌呼與相應和.

상사후원근리사 리사일음가호. 종리오지 무여지하 내청참여원중 문리취가호 종리행상국고안지. 내반취주장가음 역가호여상응화.

 

상국의 집 후원이 관리 숙사와 가까웠는데, 관리 숙사에서 하루 종일 마시고 노래를 불러 대는 바람에 (조참의) 측근 관리들이 이를 싫어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이에 조참을 청하여 후원으로 나와 놀면서 관리들이 술 마시고 떠들며 노래 부르는 것을 듣게 했다. 측근 관리들은 상국이 그들을 불러 조치를 취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술을 가져오게 하여 자리를 벌여 마시게 하니 함께 어울려 마시고 노래를 불러댔다.

 

參見人之有細過, 専掩匿覆蓋之, 府中無事.

참견인지유세과 전엄익복개지 부중무사.

 

조참은 사람들의 작은 잘못을 보면 늘 감추어주거나 덮어주니 승상부에는 일이 없었다.

 

參子窋為中大夫. 恵帝怪相国不治事, 以為豈少朕與」? 乃謂窋曰:「若帰, 試私従容問而父曰:『高帝新棄群臣, 帝富於春秋, 君為相, 日飲, 無所請事, 何以憂天下乎?』然無言吾告若也.

참자줄위중대부. 혜제괴상국불치사 이위 이소짐여내위줄왈 약귀 시사종용문이부왈 고제신기군신 제부어춘추 군위상 일음 무소청사 하이우천하호연무언오고약야

 

조참의 아들 줄()은 중대부(中大夫)였다. 혜제는 상국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어째서 짐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지?’라고 생각했다. 이에 줄에게 돌아가거든 조용히 아버지께 이렇게 한번 물어보시오. “고제(高帝)께서 신하들과 사별하신지 얼마 안 되었고, 황제는 아직 젊은데 그대는 상국이 되어 날마다 술만 마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무슨 수로 천하 대사에 관심을 가지시렵니까?” 다만 내가 했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窋既洗沐帰, 閒侍, 自従其所諫參. 參怒, 而笞窋二百, :「趣入侍, 天下事非若所當言也.

줄기세목귀 간시 자종기소간참. 참노 이태줄이백 왈 취입시 천하사비역고당언야

 

줄이 세목(洗沐)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와 한가한 틈에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혜제가 한) 그 말대로 조참에게 말했다. 조참은 성을 내며 줄에게 곤장 200대를 때리고는 얼른 돌아가서 (황제나) 잘 모시도록 하거라. 천하의 일은 네가 말할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

 

至朝時, 恵帝譲參曰:「與窋胡治乎乃者我使諫君也.參免冠謝曰:「陛下自察聖武孰與高帝?」上曰:「朕乃安敢望先帝乎!:「陛下観臣能孰與蕭何賢?」上曰:「君似不及也.

지조시 혜제양참왈 여줄호치호 내자아사간군야참면관사왈 폐하자찰성무숙여고제상왈 짐내안감망선제호폐하관신능숙여소하현상왈 군사불급야

 

조회 때 혜제가 조참을 나무라며 줄을 어찌 그렇게 혼냈습니까? 그 일은 내가 시켜서 그대에게 이야기하게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참이 관을 벗고 사죄하며 폐하께서 스스로 보시기에 고제에 비해 누가 더 영명하고 용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주상이 짐이 어찌 선제를 바라보겠습니까?’라고 했다. 조참이 폐하께서 보시기에 신과 소하 중 누가 더 능력이 있습니까?’라고 했다. 주상은 그야 그대가 미치지 못할 것 같소만.’라고 했다.

 

參曰:「陛下言之是也. 且高帝與蕭何定天下, 法令既明, 今陛下垂拱, 參等守職, 遵而勿失, 不亦可乎?」恵帝曰:「. 君休矣!

참왈 폐하언지시야. 차고제여소하정천하 법령기명 금폐하수공 참등수직 준이물실 불역가호혜제 선 군휴의

 

조참이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또 고제와 소하가 천하를 평정하여 법령도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팔짱만 끼고 계시고 조참 등은 자리를 지키면서 법령에 따라 빠진 것만 없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혜제가 좋습니다. 그대는 그만 하시오.”라고 했다.

 

 

參為漢相国, 出入三年. , 謚懿侯. 子窋代侯.

참위한상국 출입삼년. 졸 시의후. 자줄대후.

 

조참이 한나라의 상국이 되어 전후 3년을 일했다. 죽은 뒤 시호를 의후(懿侯)라 했다. 아들 줄이 후()의 작위를 이었다.

 

百姓歌之曰:「蕭何為法, 顜若畫一曹參代之, 守而勿失. 載其清浄, 民以寧一.

백성가지왈 소하위법 강약주일 조참대지 수이물실. 재기청정 민이녕일

 

백성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소하가 법을 분명하고 명확했네. 조참이 그를 이어

잘 지켜 실수하지 않았네. 맑고 차분하게 정치하니 백성들이 하나 같이 평안하네.’

 

平陽侯窋, 高后時為御史大夫. 孝文帝立, 免為侯. 立二十九年卒, 謚為静侯. 子奇代侯, 立七年卒, 謚為簡侯. 子時代侯. 時尚平陽公主, 生子襄. 時病癘, 帰国. 立二十三年卒, 謚夷侯.

평양후줄 고후시위어사대부. 효문제립 면위후. 립이십구년졸 시위정후. 자기대후 립칠년졸 시위간후. 자시대후. 시상평양공주 생자양. 시병려 귀국. 립이십삼년졸 시이후.

 

평양후(平陽侯) 조줄(曹窋)은 고후(여태후) 때 어사대부를 지냈다. 효문제가 즉위하자 사직하고 후()가 되어 29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정후(靜侯)라 했다. 아들 조기(曹奇)가 후를 이어 7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간후(簡侯)라 했다. 아들 조시(曹時)가 후를 이었다. 조시는 평양공주(平陽公主)와 결혼하여 아들 조양(曹襄)을 낳았다. 조시는 문둥병에 걸려 봉국으로 돌아가 후가 된 지 23년 만에 죽고 시호는 이후(夷侯)라 했다.

 

子襄代侯. 襄尚衛長公主, 生子宗. 立十六年卒, 謚為共侯. 子宗代侯. 征和二年中, 宗坐太子死, 国除.

자양대후. 양상위장공주 생자종. 립십육년졸 시위공후. 자종대후. 정화이년중 종좌태자사 국제.

 

조양이 뒤를 이었다. 조양은 위장공주(衛長公主)와 결혼하여 아들 조종(曹宗)을 낳았다. 16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공후(共侯)라 했다. 조종이 그 후를 이었다. 정화(征和) 2, 조종은 태자의 일에 연루되어 죽었고, 봉국이 해체되었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曹相国參攻城野戦之功所以能多若此者, 以與淮陰侯倶. 及信已滅, 而列侯成功, 唯独參擅其名. 參為漢相国, 清静極言合道. 然百姓離秦之酷後, 參與休息無為, 故天下倶称其美矣.

태사공왈 조상국참공성야전지공소이능다약차자 이여회음후구. 급신이멸 이열후성공 유독참천기명. 참위한상국 청정극언합도. 연백성이진지혹후 참여휴식무위 고천하구칭기미의.

 

태사공은 말한다. ‘조나라 상국 참이 성을 공격하는 야전에서 공이 이처럼 많은 것은 회음후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한신이 죽은 뒤 전공으로 제후에 봉해진 사람들 중 조참만이 가장 두드러졌다. 그 뒤 조참은 한 왕조의 상국이 되자 청정무위야말로 가장 맞는 길이라 여겼다. 그리고 백성들은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 뒤끝이라 조참은 백성을 쉬게 하고 억지로 일을 만들지 않으니 천하가 모두 그의 미덕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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