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列傳-仲尼弟子列傳

白頭翁 2018. 11. 30. 12:54


仲尼弟子列傳

 

<공자의 제자들과 공자가 존경한 사람들>

 

孔子曰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皆異能之士也.

공자왈 수업신통자칠십유칠인개이능지사야.


공자(孔子)가르침을 받고 6예에 통달한 사람이 77명이다.’라고 했고 모두가 남다른 재능의 인재들이다.

 

徳行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政事冉有, 季路. 言語宰我, 子貢. 文學子遊, 子夏.

덕행 안연 민자건 염배구 중궁. 정사 염유 계로. 언어 재아 자공. 문학 자유 자하

 

덕행으로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가 있었고, 정치로는 염유(冉有), 계로(季路), 언변으로는 재아(宰我), 자공(子貢), 문학으로는 자유(子遊), 자하(子夏)가 있었다.

 

師也辟, 參也魯, 柴也愚, 由也喭, 回也屢空. 賜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사야벽 참야노 시야우 유야안 회야누공. 사불수명이화식언 억즉루중.

 

()는 치우친 점이 있고, ()은 느린 점이 있고, ()는 서툰 점이 있고, ()는 거친 점이 있고, ()는 아무 것도 없이 가난했고, ()는 천명에 얽매이지 않고 재산을 불렸는데 예측마다 다 들어맞았다.

 

孔子之所厳事於周則老子於衛, 蘧伯玉於斉, 晏平仲於楚, 老萊子於鄭, 子産於魯, 孟公綽. 數稱臧文仲柳下恵銅鞮伯華介山子然, 孔子皆後之, 不並世.

공자소엄사; 어주즉노자 ;어위 거백옥어제 안평중; 어초 노래자; 어정 자산; 어노 맹공작. 수칭장문중 유하혜 동제백화 공자개후지 불병세.

 

공자가 존경하게 대한 사람들로는 주()의 노자(老子), ()의 거백옥(蘧伯玉), ()의 안평중(晏平仲), ()의 노래자(老萊子), ()의 자산(子産), ()의 맹공작(孟公綽)이 있었다. 자주 칭찬한 사람들로는 장문중(臧文仲), 유하혜(柳下惠), 동제백화(銅鞮伯華), 개산자연(介山子然)이 있었다. 공자는 이들보다 늦어서 같은 세대가 아니었다.

 

 

顔回

 

顔回者, 魯人也, 字子淵. 少孔子三十歳. 顔淵問仁, 孔子曰:「克己複禮, 天下帰仁焉.孔子曰:「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안회자 노인애 자자연. 소공자삼십세. 안연문인 공자왈: ‘극기복례 천하귀인언공자왈 현재회야 일단식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악

 

안회(顔回)는 노 사람으로 자()를 자연(子淵)이라 했고 공자보다 30년 아래였다. 안연이 인()을 묻자 공자는 자신을 통제하고 예로 돌아가면 세상이 인(사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명하도다 회야!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골목에 산다면 사람들은 걱정을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려하지 않는구나.’

 

回也如愚退而省其私, 亦足以発, 回也不愚.

회야여우 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회는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물러난 뒤 그 생활을 살피니 (배운 것을) 충분히 계발하고 있었다. 회는 어리석지 않다.’

 

用之則行, 捨之則蔵, 唯我與爾有是夫!回年二十九, 髪盡白, 蚤死.

용지즉행 사지즉장 유아여이유시부!’ 회년이십구 발진백 조사.

세상이 받아들이면 행동으로 옮기고, 버리면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말하자면 나와 너 만이 할 수 있다!’ 회는 스물아홉에 머리카락이 다 세었고 일찍 죽었다.

 

孔子哭之慟, :「自吾有回, 門人益親.

공자곡지동 왈 자오유회 문인익친

 

공자는 애통하여 내게 회가 있음으로써 문인들이 더욱 가까워졌거늘!’라며 통곡했다.

 

魯哀公問:「弟子孰為好學?」孔子対曰:「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弐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노애공문 제자숙위호학송자대왈 유안회자호학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의 금지즉망

 

노 애공(哀公)제자들 중 누가 배우길 좋아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안회라는 제자가 배우길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와 같은 제자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閔損

 

閔損字子騫. 少孔子十五歳.

민손자자건. 소공자십오세.

 

민손(閔損)은 자를 자건(子騫)이라 했고, 공자보다 15세 아래였다.

 

孔子曰:「孝哉閔子騫! 人不閒於其父母昆弟之言.不仕大夫, 不食汚君之祿. 如有複我者, 必在汶上矣.

공자왈 효재민자건! 인불간어기부모곤제지언불사대부 불식오군지록. ‘여우복아자 필재문상의

 

공자는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그 부모형제의 말에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못하는구나.’라고 했다. (민손은) ‘권세가 밑에서 벼슬하지 않고, 더러운 군주의 녹을 먹지 않았다.’ (민손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나를 다시 찾으면 나는 틀림없이 문수(汶水)에 있을 것이다.’

 

*문수란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나오는 말로 북쪽 멀리 가 있다는 뜻...

 

冉耕

 

冉耕字伯牛. 孔子以為有徳行.

염경자백우. 공자이위유덕행.

 

염경(冉耕)은 자를 백우(伯牛)라 했다. 공자는 덕을 행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伯牛有悪疾, 孔子往問之, 自牖執其手, :「命也夫! 斯人也而有斯疾, 命也夫!

백우유악질 공자왕문지 백유집기수 왈 명야부! 사인야이유사질 명야부!’

 

백우에게 악질(惡疾)이 있어서 공자가 가서 위문을 했는데 창문으로 그의 손을 잡고는 운명이로구나! 이 사람이 이런 질병에 걸리다니, 운명이로다!’라고 했다.

 

冉雍字仲弓.

염옹자중궁.

 

염옹(冉雍)은 자를 중궁(仲弓)이라 했다.

 

仲弓問政, 孔子曰:「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在邦無怨, 在家無怨.

중궁문정 공자왈 출문여견대빈 사민여승대제. 재방무원 재가무원

 

중궁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문을 나서면 큰 손님 만난듯 하고, 백성들은 큰 제사를 드리듯이 하면 나라에서도 집안에서도 원망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孔子以仲弓為有徳行, :「雍也可使南面.

공자이중궁위유덕행 왈 옹야가사남면

 

공자가 중궁에게 덕행이 있다고 여겨서 옹은 남면할 만하다.’고 했다.

 

仲弓父, 賎人. 孔子曰:「犂牛之子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舎諸?」

중궁부 천인. 공자왈 여우지자성차각 수욕물용 산천기사제?’

 

중궁의 아버지는 천한 사람이었다. 공자는 얼룩소의 새끼가 털이 붉고 뿔이 단정하다면 설사 쓰지 않으려 해도 산천의 신들이 그를 버리겠는가?’라고 했다.

 

冉求

 

冉求字子有, 少孔子二十九歳. 為季氏宰.

염구자자유 소공자이십구세. 위계씨재.

 

염구(冉求)는 자를 자유(子有)라 했다. 공자보다 29년 젊고, 계씨의 재()가 되었다.

 

季康子問孔子曰:「冉求仁乎?」:「千室之邑, 百乗之家, 求也可使治其賦. 仁則吾不知也.複問:「子路仁乎?」孔子対曰:「如求.

계강자문공자왈 염구인호?’ 천실지읍 백승지가 구야가사치기부. 인즉오부지야복문 자로인호?’ 공자대왈 여구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염구는 어집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1천 호에 이르는 읍과 1백 대의 전차를 가진 집안이라면 염구는 그 군사와 재정을 맡아 관리할 수는 있겠지만 어진 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다시 자로는 어집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염구와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求問曰:「聞斯行諸?」子曰:「行之.子路問:「聞斯行諸?」子曰:「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구문왈 문사행제자왈 행지자로문; ‘문사행제?’ 자왈 유부형재 여지하기문사행지!’

 

염구가 의로운 일을 들었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했다. 자로가 의로운 일을 들었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부형이 건재하신데 들었다고 어찌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子華怪之, 敢問問同而答異?」孔子曰:「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자회괴지 감문눈공이답리?’ 공자왈 구야퇴 고진지. 유야염인 고퇴지

 

자화(子華)가 괴이하게 여기며 질문은 같은데 답이 달라서 감히 여쭙습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구는 머뭇거리기 때문에 격려한 것이고, 유는 성급하게 남을 이기려하기 때문에 억제한 것이다.’라고 했다.

 

子路

 

仲由字子路, 卞人也. 少孔子九歳.

중유자자로 변하인 소공자구세.

 

중유(仲由)는 자를 자로(子路)라 했고, 노의 변() 사람이다. 공자보다 9년 아래였다.

 

子路性鄙, 好勇力, 志伉直, 冠雄雞, 佩豭豚, 陵暴孔子.

자로성비 호용력 지항직 관웅계 패가돈 릉폭공자.

 

자로는 성격이 거칠고 용맹하게 힘쓰는 것을 좋아하며 의지가 강했다. 수탉의 꼬리로 만든 모자를 쓰고, 수퇘지의 가죽으로 장식한 검을 차고 다녔다. 힘만 믿고 공자를 업신여기기도 했다.

 

孔子設禮稍誘子路, 子路後儒服委質, 因門人請為弟子.

공자설예초유자로 자로후유복위질 인문인청위제자.

 

공자가 예의로 대하며 천천히 자로를 이끌자 자로는 후에 유자의 옷을 입고 스승에게 드릴 예물을 가지고 문인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子路問政, 孔子曰:「先之, 勞之.請益. :「無倦.

자로문정 공자왈 선지 노지청익 왈 무권

 

자로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앞장서고, 수고해라.”라고 했다. 좀 더 듣기를 청하자 싫증내지 마라.”고 했다.

 

子路問:「君子尚勇乎?」孔子曰:「義之為上. 君子好勇而無義則亂, 小人好勇而無義則盜.

자로문 군자상용호공자왈 의지위상. 군자호용이무의즉란 소인호용이무의즉도

 

자로가 군자는 용맹함을 숭상합니까?’라고 물자 공자는 의를 가장 위에 둔다. 군자가 용맹함을 좋아하면서 의가 없으면 난리가 나고, 소인이 용맹함을 좋아하면서 의가 없으면 도둑질을 한다.’라고 했다.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유문 미지능행 유공유문.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실천하지 못했는데 또 좋은 말을 들을까봐 겁을 냈다.

 

孔子曰:「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若由也, 不得其死然.」「衣敝縕袍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 其由也與!」「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季康子問:「仲由仁乎?」孔子曰:「千乗之國可使治其賦, 不知其仁.

공자왈 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유야호용과아 무소취재.’ ‘약유야 부득기사연’ ‘의폐온포여의호학자립이불치자 기유야여!’ ‘유야승당의 미입어실야계강자문 중유인호?’ 공자왈 천승지국가사치기부 부지기인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쪽 말만 듣고 송사를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뿐일 게다.’

유야는 용감함에 있어서는 나보다 낫지만 취할 것이 없다.’ ‘유야처럼 하다가는 제대로 죽지 못할 것이다.’ ‘해지고 낡은 웃옷을 입은 채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나란히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바로 유야일 것이다!’ ‘유의 학문은 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방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계강자가 중유는 현명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전차 1천 대를 가진 나라의 군사와 재정을 맡을 수는 있지만 현명한 지는 모릅니다.’라고 했다.

 

子路喜従遊, 遇長沮桀溺荷蓧丈人.

지로희종유 우장저 걸익 하조장인.

 

자로가 공자를 따라 떠돌기를 좋아 하여 장저(長沮), 걸익(桀溺), 망태기를 든 노인 등을 만났다.

 

 

子路為季氏宰, 季孫問曰:「子路可謂大臣與?」孔子曰:「可謂具臣矣.

자로위계씨재 계손문왈 자로가위대신여?’ 공자왈 가위구신의.’

 

자로가 계씨의 재()가 되자 계손(季孫)자로를 큰 신하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구색만 맞추는 신하라 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子路為蒲大夫, 辭孔子. 孔子曰:「蒲多壯士, 又難治. 然吾語汝恭以敬, 可以執勇寛以正, 可以比衆恭正以靜, 可以報上.

자로위포대부 사공자. 공자왈 포다장사 우난치. 연오어여 공이경 가이집용 관이정 가이비중 공정이정 가이보상

 

자로가 포()의 대부가 되어 공자에게 인사를 드리러 오자 공자는 포에는 장사(壯士)들이 많고 다스리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일러주마. 공경스러우면 용맹한 자를 다룰 수 있고, 너그럽고 공정하면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으며, 공경스럽고 공정함으로 안정시키면 보상받을 수 있다.’고 했다.

 

, 衛霊公有寵姫曰南子. 霊公太子蕢聵得過南子, 懼誅出奔. 及霊公卒而夫人欲立公子郢. 郢不肯, :「亡人太子之子輒在.於是衛立輒為君, 是為出公.

초 위영공유총희왈남자. 영공태자괴외득과남자 구주출분. 급영공졸이부인욕립공자영. 영불긍 왈 망인태자지자첩재어시위립첩위군 시위출공

 

() 영공(靈公)에게 남자(南子)라는 총애하는 부인이 있었다. 영공의 태자 괴외(蒯聵)가 남자에게 잘못하여 죽을까 겁이 나서 도망쳤다. 영공이 죽자 부인은 공자 영()을 세우고 싶어 했으나 영은 망명한 태자의 아들 첩()이 있습니다.’라며 내켜하지 않았다. 이에 위는 첩을 국군으로 세우니 이가 출공(出公)이다.

 

出公立十二年, 其父蕢聵居外, 不得入. 子路為衛大夫孔悝之邑宰. 蕢聵乃與孔悝作亂, 謀入孔悝家, 遂與其徒襲攻出公. 出公奔魯, 而蕢聵入立, 是為荘公.

출공립십이년 기부괴외거외 부득입. 자로위위대부공회지읍재. 괴외내여공회작난 모입공회자 수여기도습공출공. 축공분노 이괴외입입 시위장공.

 

출공 12, 그의 아버지 괴외는 나라 밖에 살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로는 위의 대부 공회(孔悝)의 읍재(邑宰)로 있었다. 괴외는 공회와 난을 일으키려고 모의하여 공회의 집으로 들어가서는 마침내 그 무리와 함께 출공을 습격했다. 출공은 노로 달아났고, 괴외가 들어와 자리에 오르니 이가 장공(莊公)이다.

 

方孔悝作亂, 子路在外, 聞之而馳往. 遇子羔出衛城門, 謂子路曰:「出公去矣, 而門已閉, 子可還矣, 毋空受其禍.子路曰:「食其食者不避其難.

방공회작난 자로재외 문지이치왕. 우자고출위성문 위자로왈 출공거의 이문이폐 자라환의 무공수기화자로왈 식기식자불피기난

 

공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자로는 외부에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달려오다가 위의 성문을 나서는 자고(子羔)와 마주쳤다. (자고가) 자로에게 출공은 떠났고 문은 이미 닫혔으니 괜히 화를 당하지 말고 그대는 돌아가시오.’라고 했다. 자로는 그 집 밥을 먹는 사람은 그 집의 재난을 피하지 않는 법이오.’라고 했다.

 

子羔卒去. 有使者入城, 城門開, 子路隨而入. 造蕢聵, 蕢聵與孔悝登台. 子路曰:「君焉用孔悝請得而殺之.蕢聵弗聴. 於是子路欲燔台, 蕢聵懼, 乃下石乞壷黶攻子路, 撃斷子路之纓. 子路曰:「君子死而冠不免.

자고졸거. 유사자입성 성문개 자로수이입. 조괴외 괴외여공회등대. 지로왈 군언용공회 청득이살지괴외불청. 어시자로욕번대 괴외구 내하석걸 호염공자로 격단자로지영. 자로왈 군자사이관불면

 

자고는 떠났고, 성으로 들어가는 사자가 있어 성문이 열리자 자로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괴외에게 가자 괴외는 공회와 대에 오르고 있었다. 자로가 군께서 어찌 공회를 기용하려 하십니까? 잡아 죽이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괴외는 듣지 않았다. 그러자 자로는 대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괴외가 겁이 나서 석걸(石乞)과 호염(壺黶)에게 자로를 공격하게 하니 자로를 쳐서 갓끈을 끊었다. 자로는 군자는 죽어도 관은 벗지 않는다.’며 갓끈을 매고는 죽었다.

 

遂結纓而死. 孔子聞衛亂, :「嗟乎, 由死矣!已而果死. 故孔子曰:「自吾得由, 悪言不聞於耳.是時子貢為魯使於斉.

수결영이사. 공자문위란 왈 오호 유사의이이과사. 고공자왈 자오득유 악언불문어이 시시자공위노사어제.

 

공자가 위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호라, 유가 죽겠구나!’라고 했는데 얼마 뒤 정말 죽었다. 이에 공자는 내가 유를 얻고부터 귀에 나쁜 말이 들리지 않았는데.’라고 했다. 이때 자공(子貢)은 노를 위해 제에 사신으로 갔다.

 

 

宰予

 

宰予字子我. 利口辯辭. 既受業, :「三年之喪不已久乎君子三年不為禮, 禮必壊三年不為樂, 樂必崩. 舊谷既沒, 新谷既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재여자자아. 이구변사. 기수업 문 삼년지상불이구호? 군자삼년불위례 예필괴; 삼년부위악 악필붕. 구곡기몰 신곡기승 찬수개화 기가이의

 

재여(宰予)는 자를 자아(子我)라 했고, 언변이 뛰어났다. 수업을 마치고는 ‘3년상은 너무 긴 것이 아닙니까?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삼년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도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묵은 곡식을 다 먹고 나면 새 곡식이 창고에 들어오고, 불을 얻는 나무도 바뀌니 1년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子曰:「於汝安乎?」:「.」「汝安則為之. 君子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故弗為也.자왈 ;어여안호‘ ’여안즉위지. 군자거상 식지불감 문악불악 고불위야

 

공자가 그렇게 하면 네 마음이 편안하겠느냐?’라 하자 편안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해라. 군자가 상중에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宰我出, 子曰:「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懐. 夫三年之喪, 天下之通義也.

재아출 자왈 여지불인야! 자생삼년연후면어부모지회. 부삼년지상 천하지통의야

 

재여가 나가자 공자는 재여는 현명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 3년 뒤라야 부모의 품을 면한다. 그래서 3년상이 천하에 통하는 대의인 것이다.’라고 했다.

 

宰予晝寢. 子曰:「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圬也.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는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고, 더러운 흙 담장은 손질할 수없다.’라고 했다.

 

 

宰我

 

宰我問五帝之徳, 子曰:「予非其人也.

재아문오상지덕 자왈 여비기인야

 

재아가 오제(五帝)의 덕을 묻자 공자는 너는 그런 것을 물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宰我為臨菑大夫, 與田常作亂, 以夷其族, 孔子恥之.

재아위임치대부 여전상작란 이이기족 공자치지.

 

재아가 임치(臨菑)의 대부가 되었다가 전상(田常)과 난을 일으켜 멸족을 당하니 공자가 이를 부끄러워했다.

 



子貢

端沐賜, 衛人, 字子貢. 少孔子三十一歳.

단목사 위인 자자공. 소공자삽십일세.

 

단목사(端沐賜)는 위() 사람이고 자를 자공(子貢)이라 했다. 공자보다 31년 어렸다.

 

子貢利口巧辭, 孔子常黜其辯. 問曰:「汝與回也孰愈?」対曰:「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자공리구교사 공자상출기사. 문왈 여여회야숙유?’ 대왈 사야하감망회! 회여문일이지십 사야문일이지리

 

자공은 말을 너무 잘 해서 공자가 늘 그 언변에 대해 억제하곤 했다. 공자가 너와 회 누가 더 나으냐?’라고 물었더니 제가 어찌 감히 회를 넘보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 밖에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子貢既已受業, 問曰:「賜何人也?」孔子曰:「汝器也.:「何器也?」:「瑚璉也.

자공기이수업 문왈 사하인야?’ 공자왈 여기야하기야?’ 호련야

 

자공이 수업을 받고 난 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너는 그릇이니라.’라고 했다. ‘어떤 그릇입니까?’라고 묻자 ‘ (종묘 제사에 오곡을 담던) 호련(瑚璉)이니라.’라고 했다.

 

陳子禽問子貢曰:「仲尼焉學?」子貢曰

진자금문자공왈 중니안힉?’ 자공왈:

 

진자금(陳子禽)이 자공에게 중니(仲尼)는 어디서 배우셨습니까?’라고 묻자 자공은 이렇게 말했다.

 

文武之道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문무지도미타어지 재인 현자식기대자 불현자식기소자 막불유문무지도. 부자언불학 이역하상사지유!’

 

문왕과 무왕의 도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고(버려지지 않고) 인간 사이에 남아있어 현명한 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알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작은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니 문왕과 무왕의 도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는 어디서든 배우실 수 있거늘 어찌 정해진 스승이 있겠습니까?’

 

又問曰:「孔子適是國必聞其政. 求之與抑與之與?」子貢曰:「夫子溫良恭倹譲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也.

우문왈 공자적시국필문기정 구지여? 억여지여?’ 자공왈 부자온량공검양이득지 부자지구지야 기제이호인지구지야

 

공자께서 가시는 나라마다 꼭 그 정치에 대해 들으십니다. 요구하신 것입니까, 그 쪽에서 알려준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자공이 선생님께서는 온화, 선량, 공경, 절제, 겸양으로 알고자 하는 것을 들으십니다. 선생님께서 요청하시더라도 대개는 다른 사람들이 요청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子貢問曰:「富而無驕, 貧而無諂, 何如?」孔子曰:「可也不如貧而樂道, 富而好禮.

자공문왈 부이무교 빈이무함 하여?’ 공자왈 가야; 부지빈이락도 부이호예

 

자공이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괜찮다만 가난하면서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느니만 못하다.’라고 했다.

 

田常欲作亂於斉, 憚高, 故移其兵欲以伐魯. 孔子聞之, 謂門弟子曰:「夫魯, 墳墓所処, 父母之國, 國危如此, 二三子何為莫出?」子路請出, 孔子止之. 子張子石請行, 孔子弗許. 子貢請行, 孔子許之.

전상욕작란어제 탄고 국 포 안 고사기병욕이벌노. 공자문지 위문제자왈 부노 분묘소처 부모지국 국위여차 이삼자하위막출?’ 자로청출 공자지지. 자장 자석청행 공자불허. 자공청행 공자허지.

 

전상(田常)이 제에서 난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고씨(高氏), 국씨(國氏), 포씨(鮑氏), 안씨(顔氏)가 두려워 군대를 옮겨 노를 정벌하려고 했다. 공자가 이를 듣고는 문인 제자들에게 무릇 노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부모의 나라이다.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놓였으니 얘들아 어찌 나서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자로가 나서길 청했으나 공자가 자로를 말렸다. 자장(子張)과 자석(子石)이 나서기를 청했으나 공자는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이 가길 청하자 공자가 허락하여 마침내 가게 되었다.

 

遂行, 至斉, 説田常曰

수행 지제 설전상왈:

 

(자공이) 제에 이르러 전상에게 이렇게 말했다.

 

君之伐魯過矣. 夫魯, 難伐之國, 其城薄以卑, 其地狹以泄, 其君愚而不仁, 大臣偽而無用, 其士民又悪甲兵之事, 此不可與戦. 君不如伐呉. 夫呉, 城高以厚, 地広以深, 甲堅以新, 士選以飽, 重器精兵盡在其中, 又使明大夫守之, 此易伐也.

군지벌노과의. 부노 난벌지국 기성박이비 기지협이설 기군유이불인 대신위이무용 기사민우오갑병지사 차불가여전. 군불여벌오. 부오 성고이후 지광이심 갑견이신 사선이포 중기정병진게기중 우사명대부수지 차이벌야

 

군께서 노를 정벌하려는 것은 지나칩니다. 대저 노나라는 정벌하기 껄끄러운 나라입니다. 그 성벽은 얇고 낮고 그 지형은 협소하고 습니다. 그 해자는 좁고 척박합니다. 그 주군은 어리석고 어질지 못하며, 대신들은 위선적이고 쓸모가 없으며, 그 인민들은 군대와 관련한 일을 싫어합니다. 이런 나라와 싸우느니 군께서는 오를 정벌하느니만 못합니다. 대저 오는 성이 높고 두껍고 땅은 넓고 비옥하고 무기는 예리하고 인재는 넘칩니다. 날카로운 무기와 정예병이 모두 그 안에 있고, 또 현명한 대부가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치는게 전공을 세우는데 쉽습니다.’

 

田常忿然作色曰:「子之所難, 人之所易子之所易, 人之所難而以教常, 何也?」子貢曰

전상분연작색왈 : ‘자지소난 인지소이 자지소이 인지소난: 이이교상 하야?’ 자공왈:

 

전상이 화가 나서 얼굴색을 바꾸며 그대가 어렵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쉽고, 그대가 쉽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렵소. 이런 말로 이 전상을 가르치려드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했다. 자공이 이렇게 말했다.

 

臣聞之, 憂在內者攻彊, 憂在外者攻弱. 今君憂在內. 吾聞君三封而三不成者, 大臣有不聴者也. 今君破魯以広斉, 戦勝以驕主, 破國以尊臣, 而君之功不與焉, 則交日疏於主. 是君上驕主心, 下恣群臣, 求以成大事, 難矣. 夫上驕則恣, 臣驕則爭, 是君上與主有卻, 下與大臣交爭也. 如此, 則君之立於斉危矣. 故曰不如伐呉.

신문지 우재내자공강 우재외자공약. 금순우재냐. 오문군삼봉이삼불성자 대신유불청자야. 금군파노이광제 전승이교주 파국이존신 이군지공불여언 즉교일소어주. 시군상교주심 하자군신 구인성대사 난의. 부상교즉자 신교즉쟁 시군상여주유각 하여대신교쟁야. 여차 즉군지내어제위의. 고왈불여벌오.

 

신이 듣기에 근심이 안에 있으면 강한 공격하고, 걱정이 밖에 있으면 약한 공격한다고 합니다. 지금 군의 근심은 안에 있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께서는 세 번 봉해졌음에도 세 번 다 성사되지 못한 것은 찬성하지 않는 대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께서 노를 격파하고 제의 땅을 넓히려 하시는데, 싸워 이기면 군주를 교만하게 만들고, 나라를 깨면 신하들을 귀하게 만들 뿐 군의 공은 없습니다. 그러면 군주와의 관계는 갈수록 멀어질 것입니다. 군께서 위로 군주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고 아래로 신하들을 방자하게 만들어 놓고 큰일을 이루려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릇 위가 교만해지면 방자해지고, 신하가 교만해지면 다툽니다. 이러면 군은 위로는 군주와 사이가 벌이지고, 아래로는 대신들과 다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제에서의 군의 입지가 위태로워집니다. 그래서 오를 정벌하느니만 못하다고 한 것입니다.

 

伐呉不勝, 民人外死, 大臣內空, 是君上無彊臣之敵, 下無民人之過, 孤主制斉者唯君也.

벌오불승 민인외사 대신내공 시군상무강신지적 하무민인지과 고주제제자유군야

 

또 오를 정벌하여 이기지 못하면 인민들은 밖에서 죽고 대신들은 안에서 텅 비게 되니 군으로서는 위로는 대적할 강력한 신하가 없고, 아래로는 인민들의 책임 추궁이 없게 됩니다. 군주를 고립시키고 제나라를 통제할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田常曰:「. 雖然, 吾兵業已加魯矣, 去而之呉, 大臣疑我, 柰何?」子貢曰:「君按兵無伐, 臣請往使呉王, 令之救魯而伐斉, 君因以兵迎之.

전상왈 선 수연 오병업이가노의 거이지오 대신의아 내하?’ 자공왈 군안병무벌 신청왕사오왕 영지구노이벌제 군인이병영지

 

전상은 그대의 말이 옳소. 하지만 우리 군대가 노로 떠났는데 그곳을 떠나 오로 간다면 대신들이 나를 의심할 것인데 어쩌란 말이오?’라고 했다. 자공은 군께서는 병사들을 멈추고 공격하지 마십시오. 신이 오나라 왕에게 가서 노나라를 구하고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군께서는 그 참에 군대로 맞아 싸우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田常許之, 使子貢南見呉王.

전상허지 사자공남견오왕.

 

전상이 이를 허락했고 자공은 남쪽으로 가서 오왕을 만나 이렇게 유세했다.

 

説曰:「臣聞之, 王者不絶世, 霸者無彊敵, 千鈞之重加銖両而移. 今以萬乗之斉而私千乗之魯, 與呉爭彊, 竊為王危之. 且夫救魯, 顕名也伐斉, 大利也. 以撫泗上諸侯, 誅暴斉以服彊晉, 利莫大焉. 名存亡魯, 実困彊斉. 智者不疑也.

설왈 신문지 왕자부절세 패자무강적 천균지중가주양이이. 굼이만승지제이사천승지노여오쟝강 규위왕위지. 차부구노 현명야; 벌제 대리야. 이무사상제후 주촉제아복강진 이막대언. 명존망노 실곤강제. 지자불의야.’

 

신이 듣기에 왕은 다른 사람의 후대를 끊지 않고, 패주는 강적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천근의 무게도 미세한 무게 때문에 달라집니다. 지금 만승의 제나라가 천승의 노나라를 탐내 오나라와 힘을 겨루려 하니 왕께 위협이 될 듯합니다. 그러니 노나라를 구원하는 것은 명성을 드러내는 일이고, 제나라를 토벌하는 것은 큰 이익입니다. 이로써 사수 주변의 제후들을 안심시키고 포악한 제나라를 토벌하여 강력한 진()나라를 굴복시킨다면 이보다 더 큰 이익은 없을 것입니다. 명분상 망할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실제로는 강력한 제나라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呉王曰:「. 雖然, 吾嘗與越戦, 棲之會稽. 越王苦身養士, 有報我心. 子待我伐越而聴子.子貢曰:「越之勁不過魯, 呉之彊不過斉, 王置斉而伐越, 則斉已平魯矣. 且王方以存亡継絶為名, 夫伐小越而畏彊斉, 非勇也. 夫勇者不避難, 仁者不窮約, 智者不失時, 王者不絶世, 以立其義. 今存越示諸侯以仁, 救魯伐斉, 威加晉國, 諸侯必相率而朝呉, 霸業成矣. 且王必悪越, 臣請東見越王, 令出兵以従, 此実空越, 名従諸侯以伐也.呉王大説, 乃使子貢之越.

오왕왈 . 수연 오상여월전 서지회계. 월왕고신양사 우보아심. 자대아월이청자자공왈 월지경불과노 오지강불과제 왕치제이벌월 즉제이평노의 왕자불절세 이립기의. 금존월시제후이인 구노벌제 위가진국 제후필상솔이조오 패업성의. 차왕필오월 신청동견월왕 금출병이종 차실공월 명종제후이벌야오왕대열 내사자공지월.

 

오왕은 좋소. 하지만 내가 일찍이 월과 싸워 회계(會稽)로 몰아넣은 적이 있소. 월왕이 수고롭게 병사를 기르면서 내게 보복할 마음을 갖고 있소. 그러니 그대는 내가 월을 정벌한 다음 그대 말을 따를 때까지 기다리시오.’라고 했다. 자공은 월나라의 힘은 노나라만 못하고, 오나라가 강해도 제나라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왕이 제나라를 놔두고 월나라를 정벌한다면 제는 이미 노나라를 평정한 다음일 것입니다. 게다가 왕께서는 망할 나라를 구하여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시면서 작은 월을 치려는 것은 강한 제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는 용기가 아닙니다. 무릇 용기있는 자는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으며, 어진 자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시기를 잃지 않습니다. 왕은 남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그 대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 월을 존속시킴으로써 제후들에게 어짊을 보이고, 노나라를 구하고 제나라를 쳐서 진()나라에 위압을 가하면 제후들이 틀림없이 서로를 이끌고 오에 조회하여 패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왕께서 그렇게 월이 걱정된다면 신이 동쪽으로 가서 월왕을 만나 군대를 내어 따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월은 비게 되고 명분상 제후를 거느리고 정벌하는 것이 됩니다.’라고 했다. 오왕이 크게 기뻐하며 바로 자공을 월나라로 보냈다.

 

越王除道郊迎, 身禦至舎而問曰:「此蠻夷之國, 大夫何以儼然辱而臨之?」子貢曰:「今者吾説呉王以救魯伐斉, 其志欲之而畏越, 待我伐越乃可. 如此, 破越必矣. 且夫無報人之志而令人疑之, 拙也有報人之志, 使人知之, 殆也事未発而先聞, 危也. 三者挙事之大患.

월왕제도교영 신어지사이문왈 차만이지국 대부하이엄연욕이임지?’ 자공왈 금자오설왕이구노벌제 기지욕지이외월 왈 욕아벌월내가”. 여차 파월필의. 차부무보인지지이영인의지 졸야; 유보인지지 사인지지 시야; 사미발이선문 위야. 삼자거사지대환

 

(자공이 온다는 소식에) 월왕은 길을 청소하고 교외까지 나와 맞이하고는 몸소 수레를 몰아 객사에 이르러 이 궁벽한 나라에 어찌 대부께서 이렇게 거창하게 왕림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자공은 최근 제가 오왕에게 노를 구원하고 제를 치라고 하였더니 그 뜻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월이 두려워 내가 월을 토벌한 다음이라면 가능하겠소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월이 깨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대개 보복할 마음도 없는데 남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졸렬한 짓이요, 보복할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위태로운 짓이며, 일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앞서 소식이 새어나가면 위험합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큰 걱정거리입니다.’라고 했다.



 

句踐頓首再拝曰:「孤嘗不料力, 乃與呉戦, 困於會稽, 痛入於骨髄, 日夜焦脣乾舌, 徒欲與呉王接踵而死, 孤之願也.遂問子貢. 子貢曰:「呉王為人猛暴, 群臣不堪國家敝以數戦, 士卒弗忍百姓怨上, 大臣內変子胥以諫死, 太宰嚭用事, 順君之過以安其私是殘國之治也. 今王誠発士卒佐之徼其志, 重寶以説其心, 卑辭以尊其禮, 其伐斉必也. 彼戦不勝, 王之福矣. 戦勝, 必以兵臨晉, 臣請北見晉君, 令共攻之, 弱呉必矣. 其鋭兵盡於斉, 重甲困於晉, 而王制其敝, 此滅呉必矣.

구천돈수재배왈 고상불요력 내여오전 곤어회계 통입어골수 일야초순건설 도욕여오왕접종이사 고지원야수문자공. 자공왈: ‘오왕위인맹폭 군신불감 국가폐이수전 사졸불인 백성원상 대신내변; 자서이간사 태재비영사 순순지과이안기사 : 시잔국지치야. 금왕성발사졸좌지요기지 중보이설기심 비사이존기예 기벌제필야. 피전불승 왕지복의. 전승 필이병임진 신청북견진군 영공공지 약오필의. 기예병진어제 중갑곤어진 이왕제기폐 차멸오필의

 

구천이 겸손히 절을 하며 제가 일찍이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나라와 싸웠다가 회계에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 고통이 골수에 사무쳐 낮밤없이 입술과 혀가 바짝바짝 타들어갑니다. 그러니 오왕과 함께 죽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라고 하면서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은 오왕은 위인이 사납고 포악하여 신하들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피폐하고 병사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백성들은 위를 원망하고 대신들은 안에서 다른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오자서는 바른말을 하다가 죽었고, 태재 백비가 일을 주무르며 군주의 잘못에도 순종하여 자신의 사사로움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라를 망치는 통치입니다. 이제 왕께서 군대를 내어 오를 도움으로써 그 뜻에 따르고, 많은 보물로 그 마음을 사고, 몸을 낮추어 겸손한 말로 한껏 예를 차리면 틀림없이 제를 토벌할 것입니다. 오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왕의 복이 됩니다. 싸워 이기면 틀림없이 군대를 진()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 북쪽으로 가서 진의 국군을 만나 함께 오를 공격하게 하면 분명 오를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정예병이 전부 제에 있거나 진에서 곤경을 치르고 있을 때 왕께서 피폐한 오를 제압하면 오의 멸망은 필연적입니다.’라고 했다.

 

越王大説, 許諾. 送子貢金百鎰, 剣一, 良矛二. 子貢不受, 遂行.

월왕대열 허락. 송자공금백일 검일 영모이. 자공불수 수행.

 

월왕이 몹시 기뻐하며 허락했다. 자공에게 금 100(2천 냥)과 검 한 자루, 좋은 창 두 자루를 주었다. 자공이 받지 않고 바로 떠났다.

 

報呉王曰:「臣敬以大王之言告越王, 越王大恐, :『孤不幸, 少失先人, 內不自量, 抵罪於呉, 軍敗身辱, 棲於會稽, 國為虛莽, 頼大王之賜, 使得奉俎豆而修祭祀, 死不敢忘, 何謀之敢慮!』」

보오월왈 신경이대왕지언고월왕 월왕대공 왈: “고불행 소실선인 내불자량 처죄어오 군채신욕 서어회계 국위허망 뢰대왕지사 사득봉조두이수제사 사불감망 하모지감려!”’

 

(자공이 월에서 돌아와) 오왕에게 신이 삼가 대왕의 말씀을 월나라 왕에게 알렸더니 월왕이 몹시 두려워하며 이 몸이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선친을 여인데다 힘도 강하지 못하면서 오나라에 죄를 지었습니다. 군대는 패하고 몸은 욕을 당해 회계에 깃들여 살다보니 나라는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왕의 은혜에 힘입어 제기를 받들어 제사를 드리게 되었으니 감히 죽어도 잊지 못할 일인데 어찌 딴 마음을 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後五日, 越使大夫種頓首言於呉王曰:「東海役臣孤句踐使者臣種, 敢修下吏問於左右. 今竊聞大王將興大義, 誅彊救弱, 困暴斉而撫周室, 請悉起境內士卒三千人, 孤請自被堅執鋭, 以先受矢石. 因越賎臣種奉先人蔵器, 甲二十領, 鈇屈盧之矛, 歩光之剣, 以賀軍吏.

후오일 월사개부종곤수언어오왕왈 동해역신고구천사자신종 감수하리문어좌우. 금규뮨재왕장흥대의 주상구약 곤촉제이무주실 청실기경내사졸삼천인 고청자피견집예 이선수시석. 인월천신종봉선인장기 감이십령 부굴려지모 보광지검 이하군리

 

닷새 뒤 월은 대부 문종(文種)을 오왕에게 보내 절을 하며 이렇게 말하게 했다. ‘동해의 충성스러운 신하 저 구천이 사신 문종을 보내 감히 (대왕의) 신하들과 친분을 맺고 좌우 사람들에게 묻고자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대의를 앞세워 강한 자를 토벌하여 약자를 구하고, 포악한 제를 압박하여 주 왕실의 친족(노나라)을 위로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청하옵건대 나라 안의 병사 3천을 모두 출병시키고자 하오며, 저 또한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 화살과 돌을 앞장서서 받고자 하옵니다. 월의 미천한 신하 문종에게 선조들의 보물과 갑옷 20, 굴려의 창, 보광의 검을 바치게 하오니 이로써 장병들을 치하하옵소서!’라고 했다.

 

呉王大説, 以告子貢曰:「越王欲身従寡人伐斉, 可乎?」子貢曰:「不可. 夫空人之國, 悉人之衆, 又従其君, 不義. 君受其幣, 許其師, 而辭其君.呉王許諾, 乃謝越王. 於是呉王乃遂発九郡兵伐斉.

오왕대열 이고자공왈 월왕욕신종과인벌제 가호?’ 자공왈 불가 부공인지국 실인지중 우종기군 불의. 군수기폐 허기사 이사기군오왕허락 내사월왕, 어시오왕내수발구군병벌제.

 

오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공에게 이 일을 알리면서 월왕이 몸소 과인을 따라 제의 정벌에 나서겠다는 괜찮겠소?’라고 했다. 자공이 안 됩니다. 남의 나라를 텅 비게 하고 사람들을 모두 동원하여 그 군주를 따르게 하는 것은 대의가 아닙니다. 군께서는 예물을 받고 군의 출정을 허락하시되 그 군주는 사양하십시오.’라고 했다. 오왕이 허락하고는 월왕의 출정은 사양했다. 이에 오왕은 아홉 개 군의 병사를 징발하여 마침내 제를 토벌하러 나섰다.

 

子貢因去之晉, 謂晉君曰:「臣聞之, 慮不先定不可以應卒, 兵不先辨不可以勝敵. 今夫斉與呉將戦, 彼戦而不勝, 越亂之必矣與斉戦而勝, 必以其兵臨晉.晉君大恐, :「為之柰何?」子貢曰:「修兵休卒以待之.晉君許諾.

자공인거지진 위진군왈 신문지 려불선정불가이응졸 병불선변불가이승적. 금부제여오장전 피전이불승 월란지필의; 여제전이승 필이기병임진진군대도 왈 위지내하?’ 자공왈 수병휴졸이대지진군하락.

 

자공은 바로 진으로 가서 진의 주군에게 신은 사전에 생각을 정해 놓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일에 대응할 수 없고, 병사를 미리 훈련시켜 놓지 않으면 적에게 승리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오와 싸우려 합니다. 오가 싸워 이기지 못하면 월이 그 틈에 난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고, 제와 싸워 이기면 그 군대가 진으로 쳐들어 올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했다. 진의 국군이 크게 두려워하며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오?’라고 했다. 자공이 무기를 정비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기다립시오.’라고 하자 진의 주군이 받아들였다.

 

子貢去而之魯. 呉王果與斉人戦於艾陵, 大破斉師, 獲七將軍之兵而不帰, 果以兵臨晉, 與晉人相遇黃池之上. 呉晉爭彊. 晉人撃之, 大敗呉師. 越王聞之, 渉江襲呉, 去城七里而軍. 呉王聞之, 去晉而帰, 與越戦於五湖. 三戦不勝, 城門不守, 越遂囲王宮, 殺夫差而戮其相. 破呉三年, 東向而霸.

자공거이지노. 오왕과여제인전어애릉 대파제사 획칠장군지병이불귀 과이병임진 여진인상우황지지상. 오진쟁강. 진인격지 대패오사. 월왕문지 섭강습오 거성칠리이군. 오왕문지 거진이귀 여월전어오호. 삼전불승 성문불수 춸수위왕궁 살부차이육기상. 파오삼년 동향이패.

 

자공은 물러나 노로 돌아왔다. 오왕은 과연 제의 군대와 애릉(艾陵)에서 싸워 제의 군대를 대파하고 장수 일곱의 병사들을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는 군대를 돌리지 않고 과연 진으로 군사를 진격시켜 진과 황지(黃池)에서 서로 만났다. 오와 진은 힘을 겨루었다. 진이 오를 쳐서 오의 군대를 크게 물리쳤다. 월왕이 이를 듣고는 장강을 건너 오를 습격하여 도성 7리 밖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오왕이 이 소식을 듣고는 진을 떠나 돌아와서는 월과 오호(五湖)에서 싸웠으나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이기지 못하여 성을 지키지 못했다. 월이 마침 왕궁을 포위하여 부차를 죽이고 그 재상(백비)도 죽였다. 오를 격파한 지 3년 뒤 월은 동방에서 패주가 되었다.

 

故子貢一出, 存魯, 亂斉, 破呉, 彊晉而霸越. 子貢一使, 使勢相破, 十年之中, 五國各有変.

고자공일출 존노 란제 파오 강진이패월. 자공일사 사세상파 십년지중 오국각유변.

 

자공이 한 번 나서자 노가 보존되고, 제가 혼란에 빠지고, 오가 깨지고, 진이 강해지고, 월이 패주가 되었다. 자공이 한 번 사신으로 나가자 형세가 깨어져 10년 사이에 다섯 개 나라 모두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子貢好廃挙, 與時転貨貲. 喜揚人之美, 不能匿人之過. 常相魯衛, 家累千金, 卒終於斉.

자공호폐거 여시전화자, 희양인지미 불능닉인지과. 상상노위 가루천슴 졸종어제.

 

자공은 사고팔기를 잘 하여 시세의 변동에 따라 물건을 회전시켰다. 남의 좋은 점을 칭찬하길 좋아했지만 남의 잘못을 감출 줄도 몰랐다. 일찍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고, 가산이 천금에 이르렀다. 제나라에서 일생을 마쳤다.

 



子遊

 

言偃, 呉人, 字子遊. 少孔子四十五歳.

언언 오인 자자유. 소공자사십오세.

 

언언(言偃)은 오() 사람으로 자를 자유(子遊)라 했다. 공자보다 45살 어렸다.

 

子遊既已受業, 為武城宰. 孔子過, 聞弦歌之聲. 孔子莞爾而笑曰:「割雞焉用牛刀?」子遊曰:「昔者偃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孔子曰:「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戯之耳.孔子以為子遊習於文學.

자유기이수업 위무성재 공자과 문현가지성. 공자완이이소왈 할계언용우도?’ 자유왈 석자언문제부자왈 군자학도즉애인 소인학도즉이사공자왈 이삼자 언지언시야 전언희지이공자이위자유습어문학.

 

자유가 수업을 끝내고 무성(武城)의 재()가 되었다. 공자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공자가 소리없이 미소지으며 닭 잡는 칼을 어찌 하여 소 잡는 칼로 쓰는가?”라고 했다. 자유가 전에 이 언이 선생님께 듣기에 군자는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고, 소인은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했다. 공자는 얘들아, 언의 말이 맞다.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다.”라고 했다. 공자는 자유를 문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子夏

 

蔔商字子夏. 少孔子四十四歳.

복상자자하. 소공자사십사세.

 

복상(卜商)은 자를 자하(子夏)라 했고, 공자보다 44살 아래였다.

 

子夏問:「『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為絢兮, 何謂也?」子曰:「絵事後素.:「禮後乎?」孔子曰:「商始可與言詩已矣.

자하문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자왈 회사후소예후호공자왈 상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웃을 때 보이는 어여쁜 보조개, 초롱한 눈 곱기도 하여라. 본성을 그 위에 보태니 더욱 아름답구나라고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그림을 그린 뒤 본성을 더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자하가 예가 그 다음이란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복상이 이제야 나와 ()를 말할 수 있겠구나.’라고 했다.

 

子貢問:「師與商孰賢?」子曰:「師也過, 商也不及.」「然則師愈與?」:「過猶不及.

자공문 사여상숙현?’ 자왈 사야과 상야불급’ ‘연즉사유여?’ 과유불급.’

 

자공이 (, 자장)와 상(, 복상) 누가 더 뛰어납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복상은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한 것이나 같다.’라고 했다.

 

子謂子夏曰:「汝為君子儒, 無為小人儒.

자위자하왈 여위군자유 무위소인유

 

공자가 자하에게 너는 군자유(君子儒: 큰 학자)가 되어야지 소인유(小人儒)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孔子既沒, 子夏居西河教授, 為魏文侯師. 其子死, 哭之失明.

공자기몰 자하거서라교수 위위문후사. 기자사 곡지실명.

 

공자가 죽자 자하는 서하(西河)에 머무르며 가르침을 베풀면서 위()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그 아들이 죽자 슬퍼하다가 눈이 멀었다.

 

子張

 

 

顓孫師, 陳人, 字子張. 少孔子四十八歳.

전선사 진인 자자장. 소공자사십팔세.

 

전손사(顓孫師)는 진() 사람이고 자를 자장(子張)이라 했다. 공자보다 48살 아래였다.

 

子張問幹祿, 孔子曰:「多聞闕疑, 慎言其餘, 則寡尤多見闕殆, 慎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장문간록 공자왈 다문궐의 신언디여 즉과우 다견궐시 신행기여 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록재기중의

 

자장이 벼슬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은 보류해두며, 다 아는 일을 신중히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위험한 일을 보류해두며, 다 아는 일을 신중하게 행동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벼슬이 그 안에 있다.’라고 했다.

 

他日従在陳蔡閒, , 問行. 孔子曰

타일종재진채간 곤 문행 공자왈:

 

어느 날 (자장이) 공자를 따르다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처하여 행동(처세)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國行也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6)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 夫然後行.

언충신 행도경 수만맥지국행야; 언불충신 행불독경 수주리행호재! 입즉견기삼어전야 재여즉견기의어형 부연후행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독실하고 공경스럽다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통하겠지만, 말이 충성스럽지 못하고 믿음도 없으며, 행동 또한 독실하지도 공경스럽지도 못하면 자기 고향인들 통하겠느냐? 서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늘 그것이 눈앞에 보여야 행할 수 있느니라.’

 

子張書諸紳.

자장서제신.

 

자장은 諸紳:깊이 명심했다.

 

子張問:「士何如斯可謂之達矣?」孔子曰:「何哉, 爾所謂達者?」子張対曰:「在國必聞, 在家必聞.孔子曰:「是聞也, 非達也. 夫達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観色, 慮以下人, 在國及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國及家必聞.

자장문 사하여사가위지달의?’ 공자왈 하재 이소위달자?’ 자장대왈 재국필문 재가필문공자왈 시문야 비달야. 부달자 질직이호의 찰언이관색 여이하인 재국급가필달. 부문야자 색위인이행위 거지불의 재국급가필문

 

자장이 선비가 어떠해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무엇이냐,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것이?’라고 했다. 자장이 나라에서는 반드시 그 이름이 들려야 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그 이름이 들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그것은 명성이지 통달이 아니다. 무릇 통달이란 바탕이 곧아 의리를 좋아하고, 말을 잘 살피고 표정을 관찰하며, 늘 남보다 낮은 자세로 임하면 나라에서건 집안에서건 통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릇 명성이란 어진 것 같지만 행동은 어긋나는데도 거기에 안주하여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그러면 나라건 집안이건 명성이 나기 마련이다.’

 

 

曾參

 

 

曾參, 南武城人, 字子輿. 少孔子四十六歳.

증삼 남무성인 자자여. 소공자사십육세.

 

증삼(曾參)은 남무성(南武城) 사람으로 자를 자여(子輿)라 했다. 공자보다 46살 아래였다.

 

孔子以為能通孝道, 故授之業. 作孝経. 死於魯.

공자이위능통효도 고수지업. 작효경. 사어노.

 

공자는 그가 효도에 능통하다고 여겨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효경(孝經)을 지었고, 노에서 죽었다.

 

澹台

 

 

澹台滅明, 武城人, 字子羽. 少孔子三十九歳.

담대멸명 무성인 자자우. 소공자삽십구세.

 

담대멸명(澹臺滅明)은 무성(武城) 사람으로 자를 자우(子羽)라 했다. 공자보다 39살 아래였다.

 

狀貌甚悪. 欲事孔子, 孔子以為材薄. 既已受業, 退而修行, 行不由徑, 非公事不見卿大夫.

상모심악. 욕사공자 공자이위재박. 기이수업 퇴이수행 행불유경 비공사불견경대부.

 

얼굴이 아주 못 생겼다. 공자를 모시러 오자 공자는 재능이 보잘 것 없을 것으로 여겼다. 수업을 다 마친 뒤 물러나와 행동을 조심했는데, 행함에 꾀를 내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경대부를 만나지 않았다.

 

南遊至江, 従弟子三百人, 設取予去就, 名施乎諸侯. 孔子聞之, :「吾以言取人, 失之宰予以貌取人, 失之子羽.

남유지강 종제자삼백인 설위여거취 명시호제후 왈 오이언취인 실지재여; 아모취인 실지자우

 

남쪽을 떠돌다 장강에 이르렀을 무렵 따르는 제자가 300인이었다. 주고받는 것, 나아가고 물러남이 분명하여 그 명성이 제후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공자가 이를 듣고는 내가 말로 사람을 평가했다가 재여에게 실수를 범했고, 얼굴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자우에게 실수했다.’라고 했다.

 

 

宓不斉

 

 

宓不斉字子賎. 少孔子三十歳.

복부제자자천. 소공자삽십세.

 

복부제(宓不齊)는 자를 자천(子賤)이라 했고, 공자보다 30살 아래였다.

 

孔子謂子賎君子哉! 魯無君子, 斯焉取斯?」

공자위 자천군자재 노무군자 사언취사?’

 

공자는 자천은 군자로다! 노에 군자가 없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라고 했다.

 

子賎為単父宰, 反命於孔子, :「此國有賢不斉者五人, 教不斉所以治者.

자천위선보재 반명어공자 왈 차국유현부제자오인 교부제소이치자

 

자천이 선보(單父)의 재()로 있다가 돌아와 공자에게 이 나라에는 이 부제보다 뛰어난 다섯 사람이 있어 이 부제에게 다스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라고 보고했다.

 

孔子曰:「惜哉不斉所治者小, 所治者大則庶幾矣.

공자왈 석재부제소치자소 소치자대즉서기의

 

공자가 안타깝구나, 부제가 다스리는 곳이 작아서! 다스리는 곳이 커도 다를 것이 없을텐데!’라고 했다.

 

子思

 

原憲字子思.

원헌자자사.

 

원헌(原憲)은 자를 자사(子思)라 했다.

 

子思問恥. 孔子曰:「國有道, . 國無道, , 恥也.

자사문치. 공자왈 국유도 곡. 국무도 곡 치야

 

자사가 부끄러움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벼슬을 하고 녹봉을 받는다.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고 있는데도 녹봉을 받고 있다면 이것이 부끄러움이다.’라고 했다.

 

* -()

 

子思曰:「克伐怨欲不行焉, 可以為仁乎?」孔子曰:「可以為難矣, 仁則吾弗知也.

자사왈 극벌원욕불행언 가이위인호?’ 공자왈 가이위난의 인즉오불지야

 

자사가 이기길 좋아하고, 떠벌리고, 원망하고, 욕심을 내고하는 이런 것들을 행하지 않으면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참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다.’라고 했다.

 

孔子卒, 原憲遂亡在草沢中. 子貢相衛, 而結駟連騎, 排藜藿入窮閻, 過謝原憲. 憲摂敝衣冠見子貢. 子貢恥之, :「夫子豈病乎?」原憲曰:「吾聞之, 無財者謂之貧, 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 若憲, 貧也, 非病也.子貢慚, 不懌而去, 終身恥其言之過也.

공자졸 원헌수망재택중. 자공상위 이결사련기 배여곽입궁염 과사원헌. 헌섭폐의관견자공. 자공치심 왈 부자기병호?’ 원헌왈 오문지 무제자위지빈 학고이불능행자위지병. 약헌 빈야 비병야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원헌은 초야에 숨었다. 자공이 위()의 재상이 되어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풀숲을 헤치고 궁핍한 골목을 찾아 헌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원헌은 해진 의관을 단정히 여미고 자공을 만났다. 자공이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대는 어찌 하여 이렇게 궁색하게 사시오?’라고 했다. 헌원이 내가 듣기에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 하고, 도를 배워 행하지 않는 것을 궁색하다고 했소. 나 헌은 가난하지만 궁색하지는 않소이다.’라고 했다. 자공이 아프고 편치 못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했던 잘못을 부끄러워했다.

 

*藜藿: 하찮은 음식.

 

 

子長

 

公冶長, 斉人, 字子長.1)

공야장 제인 자자장.

 

공야장(公冶長)은 제 사람으로 자를 자장(子張)이라 했다.

 

孔子曰:「長可妻也, 雖在累紲之中, 非其罪也.以其子妻之.

공자왈 장가처야 수재누설지중 비기죄야이기자처지.

 

공자는 공야장은 딸을 줄 만하다. 묶여 있는 몸이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 累紲: 갖힌 몸. 감옥

 

 

子容

 

南宮括字子容.

남궁괄자자용.

 

남궁괄(南宮括)은 자를 자용(子容)이라 했다.

 

問孔子曰:「羿善射, 奡盪舟, 倶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孔子弗答.

문공자왈 ;예선사 오탕주 수부득기사연: 우직궁가이츄천하?‘ 공자부답.

 

공자에게 (羿)는 활을 잘 쏘았고, ()는 땅에서 배를 움직일 정도였는데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했고, ()와 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얻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었으나 공자는 답하지 않았다.

 

容出, 孔子曰:「君子哉若人! 上徳哉若人!」「國有道, 不廃國無道, 免於刑戮.三複白珪之玷, 以其兄之子妻之.

용출 공자왈 군자재약인 상덕재약인!’ ‘국유도 불폐 국무도 면어형육. 삼복 백규지점이기형지자처지.

 

자용이 나가자 공자는 저런 이가 군자로다! 저런 이가 최고의 덕을 이룬 자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라에는 폐하지 못할 도가 있고,나라가 도가 없으면 형벌로 죽는다라고 했다. (남궁괄이) ‘하얀 옥의 티끌부분을 세 번 반복해서 읽자 공자는 자기 형님의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季次

 

公皙哀字季次.

공석애자자차.

 

공석애(公晢哀)는 자가 계차(季次)이다.

 

孔子曰:「天下無行, 多為家臣, 仕於都唯季次未嘗仕.

공자왈 천하무행 다위가신 사어도 유계차미상사

 

공자는 천하에 한 일도 없이 가신이 되어 그 도성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직 계차는 벼슬을 한 적이 없구나.’라고 했다.

 

曾蒧

 

曾蒧字皙.

증점자석.

 

증점(曾蒧)은 자가 석()이다.

 

侍孔子, 孔子曰:「言爾志.蒧曰:「春服既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帰.孔子喟爾歎曰:「吾與蒧也!

시공자 공자왈 언이지점왈 춘복기성 관자오육인 동자육칠인 욕호기 풀오무우 영이귀공자위이탄왈 오여점야!’

 

공자를 모시고 있는 데 공자가 네 하고픈 걸 말해 보거라.’라고 하자 증점은 화창한 봄날에 같은 또래 대여섯 명과 동자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沂水)에서 몸을 씻고 무우(舞雩)의 대() 위에서 바람을 쐰 다음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내가 하고픈 것이다.’라고 했다.

 

顔無繇

 

顔無繇字路. 路者, 顔回父, 父子嘗各異時事孔子.

안무요자로. 로자 안회부 부자상각이시사공자.

 

안무요(顔無繇)는 자가 노()이다. 노는 안회의 아버지로서 아버지와 아들이 각기 시기를 달리하여 공자를 섬겼다.

 

顔回死, 顔路貧, 請孔子車以葬. 孔子曰:「材不材,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吾不徒行以為之槨, 以吾従大夫之後, 不可以徒行.

안회사 안로빈 청공자거이장. 공자왈 제주재 역각언기자야. 리야사 유관이무곽 오불도행이위지곽 이오종대부지후 불가이도행

 

안회가 죽자 가난했던 안로(顔路)는 공자에게 수레를 팔아 장례를 치르길 청했다. 공자는 재능이 있든 없든 다 자기 자식들이 아닌가. (내 아들) 공리(孔鯉)가 죽었을 때 관으로 널만 쓰고 겉 널은 쓰지 않았다. 우리는 겉 널을 쓰지 않았으니 대부의 자취를 따르기 때문이니 우리 식으로 (겉널)은 안 된다.



 

商瞿, 魯人, 字子木. 少孔子二十九歳.

상구 노인 자자목. 소공자이십구세.

 

상구(商瞿)는 노 사람으로 자를 자목(子木)이라 했다. 공자보다 29년 아래였다.

 

孔子傳易於瞿, 瞿傳楚人馯臂子弘, 弘傳江東人矯子庸疵, 疵傳燕人周子家豎, 豎傳淳於人光子乗羽, 羽傳斉人田子荘何, 何傳東武人王子中同, 同傳菑川人楊何. 何元朔中以治易為漢中大夫.

공자전역어구 구전초인한비자홍 홍전강동인교자용자 자전연인주자가수 수전순우인광자승우 우전제인전자장하 하전동무인왕자중동 동전치천인양하. 하원삭중이치역위한중대부.

 

공자는 역경(易經)을 상구에게 전하고, 구는 초나라 사람 한비자홍(馯臂子弘)에게 전하고, 홍은 강동(江東) 사람 교자용자(矯子庸疵)에게 전하고, 자는 연나라 사람 주자가수(周子家竪)에게 전하고, 수는 순우(淳于) 사람 광자승우(光子乘羽)에게 전하고, 우는 제나라 사람 전자장하(田子莊何)에게 전하며, 하는 동무(東武) 사람 왕자중동(王子中同)에게 전하고, 동은 치천(菑川) 사람 양하(楊何)에게 전했다. 양하는 역경을 연구하여 원삭(元朔) 연간(기원전 128~기원전 123)에 한나라 중대부(中大夫)가 되었다.

 

子羔

 

高柴字子羔. 少孔子三十歳.

고시자자고. 소공자삼십세.

 

고시(高柴)는 자를 자고(子羔)라 했고, 공자보다 30년 연하였다.

 

子羔長不盈五尺, 受業孔子, 孔子以為愚.

자고장불영오척 수업공자 공자이위우.

 

자고는 키가 다섯 자도 안 되었다. 공자에게 수업을 받았는데 공자는 그가 어리석다고 여겼다.

 

子路使子羔為費郈宰, 孔子曰:「賊夫人之子!子路曰:「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読書然後為學!孔子曰:「是故悪夫佞者.

자로사자고위비후재 공자왈 ;적부인지자! 자로왈 유민인언 유사직언 하필독서연후위학!’ 공자왈 시고오부영자

 

자로가 자고를 비읍(費邑)의 재()로 삼자 공자는 남의 자식을 그르치는구나!’라고 했다. 자로가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거늘 꼭 책을 읽어야만 학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공자는 이래서 말 잘하는 자들이 싫다.’라고 했다.

 

 

漆彫開字子開.

칠조개자자개.

 

칠조개(漆雕開)는 자가 자개(子開)이다.

 

孔子使開仕, 対曰:「吾斯之未能信.孔子説.

공자사개사 대왈 오사지미능신공자열.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을 하라고 하자 저는 그 일에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기뻐했다.

 

公伯繚

 

公伯繚字子周.

공백료자자주.

 

공백료(公伯繚)는 자를 자주(子周)라 했다.

 

周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孔子, :「夫子固有惑志, 繚也, 吾力猶能肆諸市朝.孔子曰:「道之將行, 命也道之將廃, 命也. 公伯繚其如命何!

주소자로어계손 자복경백이고공자 왈 부자고유혹지 효야 오력유능사제시조공자왈 도지장행 명야; 도지장폐 명야. 공백료기여명하!’

 

자주가 계손(季孫)에게 자로를 헐뜯었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이를 공자에게 알리면서 그 사람(계손)이 이미 의심을 품었습니다. 공백료라면 제 힘으로도 저자거리에다 조리를 돌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는 도가 실행되려는 것도 천명이고 도가 폐기되려는 것도 천명이다. 공백료 그가 천명을 어찌 하겠느냐?’라고 했다.

 

司馬耕

 

司馬耕字子牛.

사마경자자우.

 

사마경(司馬耕)은 자가 자우(子牛)이다.

 

牛多言而躁. 問仁於孔子, 孔子曰:「仁者其言也訒.:「其言也訒, 斯可謂之仁乎?」子曰:「為之難, 言之得無訒乎!

우다언이조. 문인어공자 공자왈 인자기언야인기언야인 사가위지인호?’ 자왈 위지난 언지득무인호!’

 

자우는 말이 많고 급했다. 공자에게 인()을 물은 적이 있는데 공자는 인덕이 있는 사람은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라고 했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면 인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행하기도 어려운데 말할 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問君子, 子曰:「君子不憂不懼.:「不憂不懼, 斯可謂之君子乎?」子曰:「內省不疚, 夫何憂何懼!

문군자 자왈 군자불우불구불우불구 사가위지군자호?’ 자왈 내성불구 부하우가구!’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군자는 걱정도 두려움도 없다.’라고 했다. ‘걱정도 두려움도 없으면 군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라고 다시 묻자 마음으로 반성하여 잘못이 없으면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겠느냐?’라고 했다.

 

樊須

 

樊須字子遅. 少孔子三十六歳.

번수자자지. 소공자삽십육세.

 

번수(樊須)는 자를 자지(子遲)라 했고, 공자보다 36살 연하였다.

 

樊遅請學稼, 孔子曰:「吾不如老農.請學圃, :「吾不如老圃.樊遅出, 孔子曰:「小人哉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上好義, 則民莫敢不服上好信, 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 則四方之民繈負其子而至矣, 焉用稼!

번지청학가 공자왈 오불여노농청학포 왈 오불여노포번지출 공자왈 소인재변수야! 상호례 즉민막감불경; 상호의 즉민막감불복; 상호신 즉민막감불용정. 부여시 즉사방지민강부기자이지의 언용가!’

 

번지(樊遲)가 농사에 대해 배우길 청하자 공자는 내가 오래 농사지은 사람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 채소 키우는 것을 배우려고 하자 내가 오래 채소를 가꾼 사람만 못하느니라.’라고 했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는 소인이로구나, 번수가! 위에서 예를 좋아하면 공경하지 않을 백성이 없고, 위에서 의리를 좋아하면 복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위에서 믿음이 있으면 진정으로 대하지 않을 백성이 없다. 이렇게만 하면 사방의 백성들이 그 자식을 들쳐 업고라도 찾아 올 것인데 농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라고 했다.

 

樊遅問仁, 子曰:「愛人.問智, :「知人.

번지가 인을 묻자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혜에 대해 묻자 사람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有若

 

有若少孔子四十三歳.

유약소공자사십삼세.

 

유약(有若)은 공자보다 43년 아래였다.

 

有若曰:「禮之用, 和為貴, 先王之道斯為美. 小大由之, 有所不行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약왈 예지용 화위귀 선왕지도사위미. 소대유지 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유약은 이런 말을 했다. ‘예의 쓰임에서 중요한 것은 조화이다. 선왕의 도에서도 이를 가장 앞세웠다. 다만 크든 작든 무조건 이를 따를 경우 안 통하는 경우도 있다. 조화만 알아 조화만 내세우고 예로 조절하지 않아도 안 통할 수 있다.’

 

信近於義, 言可複也恭近於禮, 遠恥辱也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신근어의 언가복야; 공근어례 원치욕야; 인부실기친 역가종야

 

믿음이 의리에 가까우면 말을 반복할 수 있다. 공경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 할 수 있다. 친해야 할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의지할 수 있다.’

 

孔子既沒, 弟子思慕, 有若狀似孔子, 弟子相與共立為師, 師之如夫子時也.

공자기몰 제자사모 유약상사공자 제자상여공립위사 사지여부자시야.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로 제자들은 공자가 그리워 공자를 닮은 유약을 함께 스승으로 모시고는 선생님을 섬길 때처럼 섬겼다.

 

他日, 弟子進問曰:「昔夫子當行, 使弟子持雨具, 已而果雨. 弟子問曰:『夫子何以知之?』夫子曰:『詩不雲乎? 「月離於畢, 俾滂沱矣.昨暮月不宿畢乎?』他日, 月宿畢, 竟不雨. 商瞿年長無子, 其母為取室. 孔子使之斉, 瞿母請之. 孔子曰:『無憂, 瞿年四十後當有五丈夫子.已而果然. 問夫子何以知此?」有若黙然無以應.

타일 제자진문왈 석부자당행 사제자지우구 이이과우. 제자문왈 부자하이지지?” 부자왈 시불운호? 월리어필 비방타의 작모월불숙필호?” 타일 월숙필 경불우. 상구연장무자 기모위취실. 공자사지제 구모청지. 공자왈 무우 구연사십후당유오장부자이이과연, 문부자하이지차?’ 유약묵연무이응.

 

어느 날 한 제자가 와서 옛날 선생님께서 길을 나서시면서 제자에게 우산을 갖추라고 했는데 과연 비가 왔습니다. 제자가 선생님께서는 비가 올 줄 어찌 아셨습니까라 하자 선생님께서 에 달이 필()이란 별과 만나면 큰 비가 온다고 하지 않더냐며 어제 밤 달이 필에 머물러 있지 않았더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날 달이 필에 머물러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상구(商瞿)가 나이가 많은데도 자식이 없어서 그 어머니가 첩실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상구를 제나라로 보내려 하자 상구의 어머니가 보내지 말아달라고 청했습니다. 공자께서는 걱정마십시오. 상구가 40이 넘으면 아들 다섯을 두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감히 묻건대 선생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아셨을까요?”라고 물었다. 유약이 말도 없고 대답도 하지 못했다.

 

弟子起曰:「有子避之, 此非子之座也!

제자기왈; ‘유자피지 차비자지좌야!’

 

그때 질문했던 제자가 일어나면서 당신은 비키시오. 그 자리는 당신 자리가 아니오!’라고 했다.

 

公西赤

 

公西赤字子華. 少孔子四十二歳.

공서적자자화. 소공자사십이세.

 

공서적(公西赤)은 자를 자화(子華)라 했고, 공자보다 42살 연하였다.

 

子華使於斉, 冉有為其母請粟. 孔子曰:「與之釜.請益, :「與之庾.冉子與之粟五秉. 孔子曰:「赤之適斉也, 乗肥馬, 衣軽裘. 吾聞君子周急不継富.

자화사어제 염유위기모청속. 공자왈 여지부청익 왈 여지유염자여지속오승. 공자왈 적지적제야 승비마 의경구. 오문군자주급불계부

 

자화가 제에 사신으로 가자 염유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해 양식을 요청했다. 공자가 ‘1()만 주어라.’라고 하자 더 줄 것을 요청했다. 공자가 ‘1()를 주어라.’라고 했다. 염유가 조 5()을 주었다. 공자가 공서적이 제나라로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듣기에 군자는 급한 사람은 보살피지만 부유한 사람에게는 더 보태주지 않는다.’라 했다.

 

巫馬施

 

巫馬施字子旗. 少孔子三十歳.

무마시자자기. 소공자삼십세.

 

무마시(巫馬施)는 자를 자기(子旗)라 했고, 공자보다 30살 연하였다.

 

陳司敗問孔子曰:「魯昭公知禮乎?」孔子曰:「知禮.退而揖巫馬旗曰:「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魯君娶呉女為夫人, 命之為孟子. 孟子姓姫, 諱稱同姓, 故謂之孟子. 魯君而知禮, 孰不知禮!施以告孔子, 孔子曰:「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臣不可言君親之悪, 為諱者, 禮也.

진사패문공자왈 노소공지례호?’ 공자왈 지례퇴이읍무마기왈 오문군자부당 군자역당호? 노군취오녀위부인 명지위맹자. 먕자성희 위칭동성 고위지맹자. 노군이지례 숙부지례!’ 시이고공자 동자왈 구지행 구유과 인필지지. 신불가언군친지악 위위자 예야

 

진사패(陳司敗)가 공자에게 노나라의 소공이 예를 압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알지.’라고 했다. (진사패가) 물러나와 무마기(巫馬旗)에 절을 하고는 제가 듣기에 군자는 패거리를 짓지 않는다 하던데 군자도 패거리를 짓습니까? 노의 국군이 오의 여자를 부인으로 취하여 맹자(孟子)라 불렀습니다. 맹자의 성이 희()로 서로 같은 성이었기 때문에 맹자라 부른 것입니다. 노의 국군이 예를 안다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습니까?’라고 했다. 마무시가 이를 공자에게 알리자 공자는 이 구는 행운이다. 무엇이든 잘못이 있으면 누군가 반드시 알게 해주는구나. 신하에게는 군주의 잘못을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것이 예다.’라고 했다.

 

<그밖의 제자들>

 

梁鱣字叔魚. 少孔子二十九歳.

양전자숙어. 소공자이십구세.

 

양전(梁鱣)은 자가 숙어(叔魚)이며 공자보다 29살 연하였다.

 

顔幸字子柳. 少孔子四十六歳.

안행자자류 소공자사십육세.

 

안행(顔幸)은 자가 자류(子柳)이며 공자보다 46살 연하였다.

 

冉孺字子魯, 少孔子五十歳.

염유자자노 소공자오십세.

 

염유(冉孺)는 자가 자노(子魯)이며 공자보다 50살 연하였다.

 

曹卹字子循. 少孔子五十歳.

조휼자자순. 소공자오십세.

 

조휼은 자가 자순(子循)이며 공자보다 50살 연하였다.

 

伯虔字子析,7) 少孔子五十歳.

 

백건(伯虔)은 자가 자석(子析)이며 공자보다 50살 연하였다.

 

公孫竜字子石. 少孔子五十三歳.

공손용자자석. 소공자오십삼세.

 

공손룡(公孫龍)은 자가 자석(子石)이며 공자보다 53살 연하였다.

 

自子石已右三十五人, 顕有年名及受業見於書傳.

자자석이우삽십오인 현유연명급수업견어서전.

자석으로부터 위 35명까지는 나이와 이름 그리고 수업을 받고 묻고 들은 것이 책에 보인다.

 

其四十有二人, 無年及不見書傳者紀於左

기사십유이인 연무급불견서전자기어좌:

 

그 나머지 42, 나이와 이름이 책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아래에 기록해 둔다.

 

冉季字子産. 염계(冉季)는 자가 자산(子産)이다.

 

公祖句茲字子之. 공조구자(公祖句玆)는 자가 자지(子之)이다.

 

秦祖字子南. 진조(秦祖)는 자가 자남(子南)이다.

 

漆雕哆字子斂. 칠조차(漆雕哆)는 자가 자렴(子斂)이다.

 

顔高字子驕. 안고(顔高)는 자가 자교(子驕)이다.

 

漆雕徒父. 칠조도보(漆雕徒父). 자문(子文)

 

壌駟赤字子徒. 양사적(壤駟赤)은 자가 자도(子徒)이다.

 

商沢. 상택(商澤).

 

石作蜀字子明. 석작촉(石作蜀)은 자가 자명(子明)이다.

 

任不斉字選. 임부제(任不齊)는 자가 선()이다.

 

公良孺字子正. 공량유(公良孺)는 자가 자정(子正)이다.

 

後処字子裏. 후처(后處)는 자가 자리(子里)이다.

 

秦冉字開. 진염(秦冉)은 자가 개()이다.

 

公夏首字乗. 공하수(公夏首)는 자가 승()이다.

 

奚容箴字子皙. 해용잠(奚容箴)은 자가 자석(子晳)이다.

 

公肩定字子中. 공견정(公堅定)은 자가 자중(子中)이다.

 

顔祖字襄. 안조(顔祖)는 자가 양()이다.

 

鄡単字子家. 교선(鄡單)은 자가 자가(子家)이다.

 

句井疆. 구정강(句井疆).

 

罕父黒字子索. 한보흑(罕父黑)은 자가 자색(子索)이다.

 

秦商字子丕. 진상(秦商)은 자가 자비(子丕)이다.

 

申黨字周. 신당(申黨)은 자가 주()이다.

 

顔之僕字叔.

 

鄭國字子徒. 안지복(顔之僕)은 자가 숙()이다.

 

栄旂字子祈. 영기(榮旂)는 자가 자기(子祈)이다.

 

県成字子祺. 현성(懸成)은 자가 자기(子祺)이다.

 

左人郢字行. 좌인영(左人郢)은 자가 행()이다.

 

燕伋字思. 연급(燕伋)은 자가 사()이다.

 

鄭國字子徒. 정국(鄭國)은 자가 자도(子徒)이다.

 

秦非字子之. 진비(秦非)는 자가 자지(子之)이다.

 

施之常字子恆. 시지상(施之常)은 자가 자항(子恒)이다.

 

顔噲字子聲. 안쾌(顔噲)는 자가 자성(子聲)이다.

 

歩叔乗字子車. 보숙승(步叔乘)은 자가 자거(子車)이다.

 

原亢籍. 원항적(原亢籍).

 

樂欬字子聲. 악해(樂欬)는 자가 자성(子聲)이다.

 

廉絜字庸. 염결(廉絜)은 자가 용()이다.

 

叔仲會字子期. 숙중회(叔仲會)는 자가 자기(子期)이다.

 

顔何字冉. 안하(顔何)는 자가 염()이다.

 

狄黒字皙. 적흑(狄黑)은 자가 석()이다.

 

邦巽字子斂. 방손(邦巽)은 자가 자렴(子斂)이다.

 

孔忠. 공충(孔忠).

 

公西輿如字子上. 공서여여(公西輿如)는 자가 자상(子上)이다.

 

公西葴字子上. 공서겸(公西葴)은 자가 자상(子上)이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學者多稱七十子之徒, 譽者或過其実, 毀者或損其真, 鈞之未睹厥容貌, 則論言弟子籍, 出孔氏古文近是. 餘以弟子名姓文字悉取論語弟子問並次為篇, 疑者闕焉.

태사공왈: 학자다칭칠십자지도 예자혹과기실 훼자혹손기진 균지미도궐용모 즉논어제자적 출공씨고문근시. 여이세자명성문자실취논어제자문병차위편 의자궐언.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학자들은 70여 문도들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칭찬이 실제보다 지나치거나 비방이 진실을 손상시키기도 한다. 모두 전체 모습을 보지 않아서이다. 제자들의 사적을 말하자면 공씨의 고문(논어 등)이 비교적 가까울 것이다. 나는 제자의 이름과 성 그리고 관련된 글들을 논어에서 취하고 제자들의 문답을 함께 순서대로 엮되 의심나는 것은 남겨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