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傳- 淮陰侯列傳
[卷九十二. 淮陰侯列傳]
淮陰侯韓信者, 淮陰人也. 始為布衣時, 貧無行, 不得推択為吏, 又不能治生商賈, 常従人寄食飲, 人多厭之者.
회음후한신자 회음인야. 시위포의시 빈무행 부득추택위리 우불능치생상고 상종인기식음 인다염지자.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평민이었을 때는 가난하고 품행이 단정하지 않아 추천을 받아 관리가 될 수 없었고, 또 장사로 생계를 꾸릴 수도 없어서 늘 남을 따라다니며 빌붙어 먹고 마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싫어했다.
常數従其下郷南昌亭長寄食, 數月, 亭長妻患之, 乃晨炊蓐食. 食時信往, 不為具食. 信亦知其意, 怒, 竟絶去.
상수종기하향남창정장기식 수월 정장처환지 내신취욕식. 식시신왕 불위구식. 신역지기의노 경절거.
일찍이 하향(下鄕)의 남창 정장(南昌亭長)의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먹었다. 여러 달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가 그를 미워해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먹었다. 한신이 식사시간에 갔으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신도 그 뜻을 알고 화가 나서 끝내 가는 것을 끊었다.
信釣於城下, 諸母漂, 有一母見信飢, 飯信, 竟漂數十日. 信喜, 謂漂母曰:「吾必有以重報母.」母怒曰:「大丈夫不能自食, 吾哀王孫而進食, 豈望報乎!」
신조어성하 제모표 유일모견신아 반신 경표수십일. 신희 위표모왈 ‘오필유이중보모’ 모노왈 ‘대장부불능자식 오애왕손이진식 이망보호!’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여러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아낙이 한신이 주린 것을 보고 밥을 주었는데, 빨래를 마치도록 수십일 동안 이렇게 했다. 한신은 기뻐서 빨래하는 아낙에게 ‘내 반드시 은혜에 크게 보답하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아낙이 성을 내며 ‘대장부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해 내가 왕손(王孫)을 불쌍히 여겨 밥을 준 것이니 어찌 보답을 바라리오!’라고 말했다.
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 曰:「若雖長大, 好帯刀剣, 中情怯耳.」衆辱之曰:「信能死, 刺我;不能死, 出我袴下.」於是信孰視之, 俛出袴下, 蒲伏. 一市人皆笑信, 以為怯.
회음시중소년유회신자 왈 ‘약수장대 호대도검 중정겁이’ 중진지왈 ‘신능사 자아; 불능사 불아고하’ 어시신숙시지 면출과하 포복. 일시인개소신 이위겁.
회음 땅의 백정 중에 한신을 멸시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한신에게 말하기를 ‘네가 비록 장대하고 칼 차기를 좋아하나 속은 겁쟁이일 뿐이다.’라고 했다. 또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며 말하기를 ‘네가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용기가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라고 했다. 이에 한신은 그를 자세히 쳐다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시정의 모든 사람들이 한신을 비웃으며 겁쟁이라 했다.
及項梁渡淮, 信杖剣従之, 居戯下, 無所知名. 項梁敗, 又屬項羽, 羽以為郎中.
급항량도회 신장검종지 거희하 무소지명. 항량패 우속항우 우이위낭중.
항량(項梁)이 회수(淮水)를 건너자 한신은 칼을 차고 그를 따랐다. 그의 휘하에 있을 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항량이 패하자 이번에는 항우(項羽)에 귀속하게 되었다. 항우는 그를 낭중(郎中)에 임명했다.
數以策幹項羽, 羽不用. 漢王之入蜀, 信亡楚帰漢, 未得知名, 為連敖. 坐法當斬, 其輩十三人皆已斬, 次至信.
수이책간항우 우불용. 한왕지입촉 신망초귀한 미득지명 위연오. 좌법상참 기배십삼인개이참 차지신.
여러 차례 항우에게 계책을 올렸으나 항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왕(漢王)이 촉(蜀)에 들어오자 한신은 초(楚)에서 도망쳐서 한(漢)으로 귀순했으나 알려지지 못했기에 연오(連敖) 벼슬을 받았다. 법을 어겨 참수 당하게 되었는데, 같은 무리 13명의 목이 이미 모두 베어진 후 한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信乃仰視, 適見滕公, 曰:「上不欲就天下乎? 何為斬壯士!」滕公奇其言, 壯其貌, 釈而不斬. 與語, 大説之. 言於上, 上拝以為治粟都尉, 上未之奇也.
신내앙시 적견등공 왈 ‘상불욕취천하호? 하위참장사!’ 등공기기언 장기모 석이불참. 여어 대열지. 언어상 상배이위치속도위 상미지기야.
한신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다가 등공(滕公)을 발견하고 말하기를 ‘왕께서는 천하를 취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라고 했다. 등공은 그 말을 기특하게 여기고 한신의 모습을 장하게 여겨 풀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등공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기뻐하며 한왕에게 그를 추천을 했다. 한왕은 한신을 치속도위(治粟都尉)로 임명했으나 특이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信數與蕭何語, 何奇之. 至南鄭, 諸將行道亡者數十人, 信度何等已數言上, 上不我用, 即亡.
신수여소하어 하기지. 지남정 제장행도망자수십인 신도하등이수언상 상불아용 즉망.
한신은 자주 소하(蕭何)와 대화를 했는데, 소하는 그를 뛰어나다고 여겼다. 남정(南鄭)에 이르렀을 때 여러 장수들 중에 도망치는 자가 수십 명이었다. 한신은 소하가 이미 여러 차례 자기를 한왕에게 추천했으나 등용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도망쳤다.
何聞信亡, 不及以聞, 自追之. 人有言上曰:「丞相何亡.」上大怒, 如失左右手. 居一二日, 何來謁上, 上且怒且喜, 罵何曰:「若亡, 何也?」何曰:「臣不敢亡也, 臣追亡者.」
하문신망 불급이문 자추지. 인유언상왈 ‘승상하망’ 상대노 여실좌우수. 거일이일 하래알상 상차노차희 매하왈 ‘약망 하야?’ 하왈 ‘신불감망야 신추망자’
소하가 한신이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왕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한신을 추적했다. 어떤 이가 왕에게 승상 소하가 도망쳤다고 아뢰었다. 왕이 양손을 잃은 듯이 크게 성을 냈다. 며칠 뒤에 소하가 돌아와 왕을 배알했다. 왕은 화도 나고 기쁘기도 해 소하를 꾸짖어 ‘그대가 어찌 도망쳤소?’라고 했다. 소하가 대답하기를 ‘신이 감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도망친 자를 쫓았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上曰:「若所追者誰何?」曰:「韓信也.」上複罵曰:「諸將亡者以十數, 公無所追;追信, 詐也.」何曰:「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 王必欲長王漢中, 無所事信;必欲爭天下, 非信無所與計事者. 顧王策安所決耳.」
상왈 ‘약소추자수하?’ 왈 ‘한신야’ 상복매왈: ‘제장망자이십수 공무소추; 추신 사야’ 하왈 ‘제장이득이. 지여신자 국사무쌍. 왕필욕장왕한중 무소사신; 필욕쟁천하 비신무소여계사자. 고왕책안소결이’
왕이 ‘그대가 쫓은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소하는 ‘한신을 쫓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다시 꾸짖어 말하기를 ‘장수들 중에 도망친 자가 수십 명인데 공은 쫓지 않았소. 이제 한신을 쫓아갔다는 것은 거짓말이오.’라고 했다. 소하가 대답하기를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한신과 같은 사람은 나라의 뛰어난 선비로 견줄만한 짝이 없습니다. 왕께서 만약 한중(漢中)에서 계속 왕 노릇을 하시려면 한신을 쓸 곳이 없겠지만, 만일 천하를 취하고자 하신다면 한신 말고는 그 일을 상의할 인물이 없습니다. 다만 왕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했다.
王曰:「吾亦欲東耳, 安能欝欝久居此乎?」何曰:「王計必欲東, 能用信, 信即留;不能用, 信終亡耳.」王曰:「吾為公以為將.」
왕왈 ‘오역욕동이 안능울울구거차호?’ 하왈 ‘왕계필욕돋ㅇ 능용신 신즉유; 불능용 신종망이’ 왕왈 ‘오위공위장’
왕이 ‘나 역시 동쪽으로 가고자 하오. 어찌 답답하게 이곳에 오래 머무르리오!’라고 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왕께서 동쪽으로 가려 하시면 한신을 중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한신은 머무를 것입니다. 그러나 한신을 중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도망칠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공의 뜻을 따라 그를 장군으로 삼겠소.’라고 말했다.
何曰:「雖為將, 信必不留.」王曰:「以為大將.」何曰:「幸甚.」於是王欲召信拝之. 何曰:「王素慢無禮, 今拝大將如呼小児耳, 此乃信所以去也. 王必欲拝之, 択良日, 斎戒, 設壇場, 具禮, 乃可耳.」王許之.
하왈 ‘수위장 신필불유’ 왕왈 ‘이위대장’ 하왈 ‘행심’ 어시왕욕소신배지. 하왈: ‘왕소만무례 금배대장여호소아이 차내신소이거야. 왕필욕배지 택양일 제계 설단장 구례 내가이’ 왕허지.
소하가 대답하기를‘“비록 장군으로 삼는다고 해도 한신은 아마 떠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이 ‘그렇다면 대장으로 삼겠소.’라고 말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은 한신을 불러 임명하고자 했다. 소하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평소 오만무례하셔서 지금 대장을 제수함이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한신이 떠난 것입니다. 왕께서 그를 대장으로 제수하시려 면 좋은 날을 골라 재계(齋戒)하시고, 단장(壇場)을 설치하고 의식을 갖추어야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이를 허락했다.
諸將皆喜, 人人各自以為得大將. 至拝大將, 乃韓信也, 一軍皆驚.
제장개희 인인각자이위득대장. 지배대장 내한신야 일군개경.
여러 장수들이 모두 기뻐하며 서로 자신이 대장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대장으로 제수된 사람이 바로 한신인지라 온 군대가 모두 놀랐다.
信拝禮畢, 上坐. 王曰:「丞相數言將軍, 將軍何以教寡人計策?」信謝, 因問王曰:「今東郷爭権天下, 豈非項王邪?」漢王曰:「然.」曰:「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漢王黙然良久, 曰:「不如也.」
신배예필 상좌. 왕왈 ‘승상수언장군 장군하이교과인계책?’ 신사 인문왕왈 ‘금동향쟁권천하 이비항우야?’ 한왕왈 ‘연’ 왈 ‘대왕자료용한인강숙여항왕?’ 한왕묵연양구 왈 ‘불여야’
한신이 제수의 예를 마치고 자리에 오르자, 한왕이 ‘승상(丞相)이 자주 장군을 이야기 했소. 장군은 과인에게 어떤 계책을 가르치겠소?’라고 물었다. 한신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바로 한왕에게 ‘지금 동쪽으로 향해 천하의 대권을 함께 다툴 자는 어찌 항왕(項王)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한왕은 ‘그렇소.’라고 대답했다. 한신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용감하고 사납고 어질고 굳세기가 항왕과 견주어 누가 낫습니까?’라고 하자, 한왕이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항왕보다 못하오.’라고 했다.
信再拝賀曰:「惟信亦為大王不如也. 然臣嘗事之, 請言項王之為人也. 項王喑噁叱咤, 千人皆廃, 然不能任屬賢將, 此特匹夫之勇耳. 項王見人恭敬慈愛, 言語嘔嘔, 人有疾病, 涕泣分食飲, 至使人有功當封爵者, 印刓敝, 忍不能予, 此所謂婦人之仁也.
신재배하왈 ‘추신역위대왕불여야. 연신상사지 청언항왕지위인야. 항왕음오질타 천인개폐 연불능임속현장 차특필부지용이. 항왕견인공경자애 언어구구 인유질병 체읍분식음 지사인유공당봉작자 인완폐 인불능여 차소위부인지인야.
한신이 두 번 절하고 축하하며 말하기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대왕께서 항왕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이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으니 항왕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성내어 큰 소리로 꾸짖으면 천 사람이 모두 엎드리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서 병권을 맡기지 못하니, 이는 단지 필부의 용기일 뿐입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경스럽고 자애로우며 말씨도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에게 공이 있어 마땅히 봉작해야 할 때에 이르러서는, 그 인장이 닳아 망가질 때까지 차마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아녀자의 인(仁)일 뿐입니다.
項王雖霸天下而臣諸侯, 不居関中而都彭城. 有背義帝之約, 而以親愛王, 諸侯不平. 諸侯之見項王遷逐義帝置江南, 亦皆帰逐其主而自王善地. 項王所過無不殘滅者, 天下多怨, 百姓不親附, 特劫於威彊耳. 名雖為霸, 実失天下心. 故曰其彊易弱.
항왕수패천하이신제후 불거관중이도팽성. 유배의제지약 이이친애왕 제후불평. 제수지견항왕천축의제치강남 역개귀축기주이자왕선지.
항왕소과무불잔멸자 천하다원 백성불친부 특겁어위강이. 명수위패 실실천하심. 고왈기강역약.
항왕이 비록 천하의 패자가 되어 여러 제후들을 신하로 삼았지만, 관중(關中)에 머무르지 않고 팽성(彭城)에 도읍했습니다. 또 의제(義帝)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친애하는 사람을 왕에 봉하니 제후들이 불평합니다. 제후들은 항왕이 의제를 강남(江南)으로 쫓아버린 것을 보고, 또한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그 군주를 쫓아내고 스스로 좋은 땅의 왕이 되었습니다. 항왕의 군대가 지나간 곳은 잔학하게 없애지 않은 것이 없기에 천하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원망하고 백성들이 친하게 따라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강한 위세에 위협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명성은 비록 패자라고 불리나 사실은 천하의 인심을 잃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강대함을 약화시키기 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今大王誠能反其道:任天下武勇, 何所不誅! 以天下城邑封功臣, 何所不服! 以義兵従思東帰之士, 何所不散!
금대왕성능반기도: 임천하무용 하소불주! 이천하성읍봉공신 하소불고! 이의병종사동귀지사 하소불산!
지금 대왕께서 진실로 항왕의 정책과 반대로 천하의 용맹한 자들에게 맡기신다면, 누구를 없애지 못하겠습니까? 천하의 성읍(城邑)을 공신(功臣)들에게 봉한다면 누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의병으로써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병사를 따르게 한다면 누구를 흩어뜨리지 못하겠습니까?
且三秦王為秦將, 將秦子弟數歳矣, 所殺亡不可勝計, 又欺其衆降諸侯, 至新安, 項王詐阬秦降卒二十餘萬.
차삼진왕위진장 장진자제수세의 소살망불가승계 우사기중항제후 지신안 항왕사갱항졸이십여만.
또 삼진(三秦)의 왕은 본래 진(秦)의 장군입니다. 그들이 진의 자제를 거느린 지 여러 해 동안에 죽고 달아난 사람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휘하의 병사들을 속여 제후에게 항복하고 신안(新安)으로 왔는데, 항왕은 진에서 항복해 온 병졸 20만여 명을 속여서 구덩이에 묻어 죽였습니다.
唯獨邯、欣、翳得脫, 秦父兄怨此三人, 痛入骨髄. 今楚彊以威王此三人, 秦民莫愛也.
유독한 흔 예득탈 진부형원차삼인 통입골수. 금초강이위왕차삼인 진민막애야.
이때 오직 장한(章邯)·사마흔(司馬欣)·동예(董翳)만이 죽음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진의 부모 형제들은 이 세 사람을 원망하고 아픔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지금 초가 강해 위엄으로써 이 세 사람을 왕으로 삼았지만 진 백성들 가운데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大王之入武関, 秋豪無所害, 除秦苛法, 與秦民約, 法三章耳, 秦民無不欲得大王王秦者. 於諸侯之約, 大王當王関中, 関中民鹹知之.
대왕지입무관 수호무소해 제진가법 여진민약 법삼장이 진민무불욕득대왕왕진자. 어제후지약 대왕당왕관중 관중민함지지.
대왕께서는 무관(武關)에 들어가셔서 털끝만한 해도 끼치지 않고, 진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진 백성들에게 삼장(三章)의 법을 두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진 백성들 가운데 대왕께서 진의 왕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제후의 약속에 의해 대왕께서 관중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관중의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大王失職入漢中, 秦民無不恨者. 今大王挙而東, 三秦可傳檄而定也.」於是漢王大喜, 自以為得信晩. 遂聴信計, 部署諸將所撃.
대왕실직입한중 진민무불한자 금대왕거이동 삼진가전격이정야‘ 어시한왕대희 자이위득신만. 수청신계 부서제장소격.
대왕께서 직책을 잃고 한중으로 들어가시자 진의 백성들 가운데 한스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신다면, 삼진은 격문을 돌려서 평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한왕이 크게 기뻐했고, 스스로 한신을 너무 늦게 얻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한신의 계책을 듣고 여러 장수들이 공격할 곳을 정했다.
八月, 漢王挙兵東出陳倉, 定三秦. 漢二年, 出関, 収魏、河南, 韓、殷王皆降.
팔월 한왕거병동출진창 정삼진. 한이년 출관 수위 하남 한 은왕개항.
8월에 한왕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창(陳倉)에 나아가 삼진을 평정했다. 한(漢) 2년에 함곡관(函谷關)을 나와서 위(魏)와 황하 이남의 땅을 점령했다. 한왕(韓王)과 은왕(殷王)이 모두 항복했다.
合斉、趙共撃楚. 四月, 至彭城, 漢兵敗散而還. 信複収兵與漢王會滎陽, 複撃破楚京、索之閒, 以故楚兵卒不能西.
합제 조공격초. 사월 지팽성 한병패산이환. 신복구병여한왕회형양 복격파초경 색지간 이고초병졸불능서.
제·조와 연합해 초를 공격했다. 4월에 팽성에 이르렀으나 한 군대가 패하자 모두 흩어져 퇴각했다. 한신이 다시 병사를 모아 한왕과 형양(滎陽)에서 합류해 초의 군대를 경(京)과 색(索) 사이에서 격파했다. 이래서 초 군대는 더 이상 서쪽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漢之敗卻彭城, 塞王欣、翟王翳亡漢降楚, 斉、趙亦反漢與楚和.
한지패각팽성 색왕흔 적왕예망한항초 제 조역반한여초화.
한이 팽성에서 패해 물러나자, 새왕(塞王) 사마흔과 적왕(翟王) 동예가 한에서 도망쳐 초에 항복했다. 제와 조 또한 한을 배신하고 초와 화친했다.
六月, 魏王豹謁帰視親疾, 至國, 即絶河関反漢, 與楚約和. 漢王使酈生説豹, 不下.
유월 위왕표알귀신친질 지국 즉절하관반한 여초약화. 한왕사역생세표 불하.
6월에는 위왕(魏王) 표(豹)가 한왕을 배알하고 어머니의 문병을 핑계로 귀국한 뒤 즉시 하관(河關)을 폐쇄하고 한을 배반하고 초와 화친을 맺었다. 한왕이 역생(酈生)을 시켜 위왕 표를 달랬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其八月, 以信為左丞相, 撃魏. 魏王盛兵蒲阪, 塞臨晉, 信乃益為疑兵, 陳船欲度臨晉, 而伏兵従夏陽以木罌缶渡軍, 襲安邑. 魏王豹驚, 引兵迎信, 信遂虜豹, 定魏為河東郡.
기팔월 이신위좌승상 격위. 위왕성병포판 색임진 신내익위의병 진선욕도임진 이복병종하양이목앵부도군 습안읍. 위왕표경 인병영신 신수노표 정위위하동군.
한왕(漢王)이 그해 8월에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아 위를 공격했다. 위왕이 포판(蒲坂)에서 군대를 강화하고 임진(臨晉)을 막았다. 한신은 대군을 거느린 것처럼 꾸미고 배를 줄지어 임진에서 황하를 건너는 것처럼 했다. 그러나 하양(夏陽)에서 목앵부로 군대를 건너게 한 뒤 안읍(安邑)을 습격했다. 위왕 표가 놀라서 군사를 이끌고 한신을 맞아 싸웠지만 한신이 표를 사로잡고, 위를 평정하여 하동군(河東郡)으로 만들었다.
漢王遣張耳與信倶, 引兵東, 北撃趙、代. 後九月, 破代兵, 禽夏説閼與. 信之下魏破代, 漢輒使人収其精兵, 詣滎陽以距楚.
한왕견장이여신구 인뱡동 북격조 대. 후구월 파대병 금하열알여. 신지하위파대 한첩사인수기정병 지형양이거초.
한왕(漢王)이 장이(張耳)를 파견해 한신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진격해 조(趙)와 대(代)를 치게 했다. 그 뒤 9월에 그들은 대 군대를 격파하고 연여(閼與)에서 하열(夏說)을 사로잡았다. 한신이 위를 항복시키고 대를 격파하자 한왕이 사자를 보내 그의 정예병을 거두어 형양으로 가서 초를 막게 했다.
信與張耳以兵數萬, 欲東下井陘撃趙. 趙王、成安君陳餘聞漢且襲之也, 聚兵井陘口, 號稱二十萬.
신여장이이병수만 욕동하정형격조. 조왕 성안군진여문한차격지야 취병정형구 호칭이십만.
한신이 장이와 함께 병사 수만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해 정형(井陘)에서 내려와 조를 치려고 했다. 조왕(趙王)과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는 한 군대가 장차 습격을 하려고 군사를 정형 어귀에 집결시켰는데, 그 수가 20만 명이라고 들었다.
広武君李左車説成安君曰:「聞漢將韓信渉西河, 虜魏王, 禽夏説, 新喋血閼與, 今乃輔以張耳, 議欲下趙, 此乗勝而去國遠鬥, 其鋒不可當. 臣聞千里餽糧, 士有飢色, 樵蘇後爨, 師不宿飽. 今井陘之道, 車不得方軌, 騎不得成列, 行數百里, 其勢糧食必在其後.
광무군아좌거설성안군왈 ‘문한장한신섭서하 노위왕 금하열 신엽혈연여 금내보이장이 의욕하조 차승승이거국원투 기봉불가당. 신문천이아량 사유기색 초소후찬 사불숙포. 금정형지도 거부즉방궤 기부득성열 행수백리 기세양식필재기후.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성안군에게 ’들리는 바로는 한의 장군 한신은 서하(西河)를 건너서 위왕 표를 사로잡고, 하열(夏說)을 사로잡아, 연여를 피로 물들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장이의 도움을 받아 조를 항복시키려고 의논하고 있다니, 이것은 승세를 타고 고국을 떠나 멀리서 싸우는 것으로 그들의 예봉을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천리 밖에서 군량미를 보내면 운송이 곤란하므로 병사들에게 주린 빛이 돈다고 합니다. 더욱이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야 밥을 지을 수 있게 되므로 군사들이 저녁밥을 배불리 먹어도 아침까지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형의 길이 좁아서 두 대의 수레가 함께 지나갈 수 없으며, 기병도 줄을 지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야 할 곳이 수 백 리나 됩니다. 그렇다면 형세로 보아 군량미는 반드시 그 후방에 있을 것입니다.
願足下仮臣奇兵三萬人, 従閒道絶其輜重;足下深溝高壘, 堅営勿與戦. 彼前不得鬥, 退不得還, 吾奇兵絶其後, 使野無所掠, 不至十日, 而両將之頭可致於戯下. 願君留意臣之計. 否, 必為二子所禽矣.」
원족하가신기병삼만인 종간도절기치중; 족하심구고루 견영물여전. 피전부득투 퇴부득환 오기병절기후 사야무소탈 부지십일 이양장지두가치어희하. 원군유의신지계. 부 필위이자소금의’
당신이 신에게 기습병 3만 명을 빌려준다면 지름길로 가서 그들의 군량미 수송을 끊어놓겠습니다. 당신께서 물길을 깊이 파고 누벽을 높이 쌓고 진영을 굳게 지키며 싸우지 마십시오. 전진해서 싸울 수도 없고, 후퇴하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때 우리 기습 병사가 적의 뒤를 끊고 들판에서 적이 약탈할 만한 식량을 치워버리면, 열흘도 못 되어서 적의 두 장군인 한신과 장이의 머리를 휘하에 바칠 수 있습니다. 군께서는 신의 계책에 유의해주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적의 두 장군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成安君, 儒者也, 常稱義兵不用詐謀奇計, 曰:「吾聞兵法十則囲之, 倍則戦. 今韓信兵號數萬, 其実不過數千. 能千里而襲我, 亦已罷極. 今如此避而不撃, 後有大者, 何以加之! 則諸侯謂吾怯, 而軽來伐我.」不聴広武君策, 広武君策不用.
성안군 유자야 상칭의병불용사모기계 왈 ‘오문병법십즉위지 배즉전. 금한신병호수만 기실불과수천. 능천리이습아 역이파극. 금여차피이불격 후유대자 사이가지! 즉제후위오겁 이경래ㅑ벌아’ 불청광무군책 광무군책불용.
성안군은 유자(儒者)였다. 그래서 언제나 의로운 군대라고 일컬으면서 잔꾀나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았다. 성안군은 ‘내가 들으니 병법에 아군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고 했소. 지금 한신의 병력이 수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천에 지나지 않소. 천리 먼 곳에 와서 우리를 치는 것이니, 역시 벌써 아주 지쳤을 것이오. 지금 이런 적을 피하고 치지 않는다면 나중에 대군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싸우겠소? 그렇게 되면 제후들이 우리를 비겁하게 여기고 쉽게 쳐들어올 것이오.’라고 말하며 광무군의 계책을 듣지 않았다.
韓信使人閒視, 知其不用, 還報, 則大喜, 乃敢引兵遂下. 未至井陘口三十里, 止舎. 夜半傳発, 選軽騎二千人, 人持一赤幟, 従閒道萆山而望趙軍.
한신사인간시 지기불용 환보 즉대희 내감인병수하. 미지정형구삼십리 지사. 야반전발 선경기이천인 인지일적치 종간도비산이망조군.
한신이 첩자를 시켜 염탐하게 했다. 첩자가 광무군의 계책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알고 돌아와 한신에게 보고했다. 한신이 매우 기뻐하며 군대를 이끌고 드디어 정형을 향해 갔다. 정형 어귀에서 약 30리 못 미치는 곳에서 멈추어 쉬었다. 밤중에 군령을 전해 가볍게 무장한 기병 2천 명을 선발하여 사람마다 붉은 깃발 한 개씩을 가지고 들어가 샛길로 해서 산속에 숨어 엎드려 조 군대를 바라보게 했다.
誡曰:「趙見我走, 必空壁逐我, 若疾入趙壁, 抜趙幟, 立漢赤幟.」令其裨將傳飧, 曰:「今日破趙會食!」
계왈 ‘조견아주 필공벽축아 약질입조벽 발조치 입한적치’ 영기비장전손 왈 ‘금일파조회식!’
그러고는 ‘는 우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누벽(壘壁)을 비워놓고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너희들은 그 사이에 빨리 조의 누벽으로 들어가서 조의 깃발을 뽑아버리고 한의 붉은 깃발을 세워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비장(裨將)을 시켜서 간단한 음식을 모든 군사에게 나누어주게 하면서 말하기를 ‘오늘 조를 격파한 뒤에 회식하자.’라고 했다.
諸將皆莫信, 詳應曰:「諾.」謂軍吏曰:「趙已先拠便地為壁, 且彼未見吾大將旗鼓, 未肯撃前行, 恐吾至阻険而還.」
제장개막신 상응왈 ‘락’ 위군리왈 ‘조이선거편지위벽 차피미견오대장기고 미긍격전행 공오지저험이환’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응하며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신이 군리(軍吏)에게 ‘조는 유리한 땅을 차지해 누벽을 구축했다. 또 저들은 우리 대장의 깃발과 북을 보기 전에는 우리의 선봉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좁고 험한 곳에 부딪쳐 돌아가 버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信乃使萬人先行, 出, 背水陳. 趙軍望見而大笑. 平旦, 信建大將之旗鼓, 鼓行出井陘口, 趙開壁撃之, 大戦良久. 於是信、張耳詳棄鼓旗, 走水上軍. 水上軍開入之, 複疾戦. 趙果空壁爭漢鼓旗, 逐韓信、張耳.
신내사만인선행 출 배수진. 조군망이견이대소. 평단 신건대장지기고 고행출정형구 조개벽격지 대전양구. 어시신 장이상기고기 주수상순. 수상군개입지 복질전. 조과공벽쟁한고기 축한신 장이.
한신은 이에 만 명을 먼저 가게하고, 정형 어귀로 나아가 배수진(背水陣, 물을 등지고 치는 진)을 치게 했다. 조의 군대가 바라보고서 크게 웃었다. 날이 샐 무렵에 한신이 대장 깃발을 세우고 북을 치면서 정형 어귀로 나갔다. 조가 누벽을 열고 공격했고, 매우 오랫동안 격렬하게 싸웠다. 이에 한신과 장이가 거짓으로 북과 깃발을 버리고 강가의 진지로 달아났다. 강가의 진지에서 문을 열어 그들을 들어오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격렬하게 싸웠다. 조는 과연 누벽을 비워놓고, 한의 북과 깃발을 빼앗으려고 한신과 장이를 뒤쫓았다.
韓信、張耳已入水上軍, 軍皆殊死戦, 不可敗. 信所出奇兵二千騎, 共候趙空壁逐利, 則馳入趙壁, 皆抜趙旗, 立漢赤幟二千. 趙軍已不勝, 不能得信等, 欲還帰壁, 壁皆漢赤幟, 而大驚, 以為漢皆已得趙王將矣, 兵遂亂, 遁走, 趙將雖斬之, 不能禁也. 於是漢兵夾撃, 大破虜趙軍, 斬成安君泜水上, 禽趙王歇.
한신 장이이입수상군 군개수사전 불가패. 신소출시병이천기 공후조공벽축리 즉치입조벽 개발조기 입한적치이천. 조군이불승 불능득신득 욕환귀벽 벽개한적치 이대경 이위한개이득조왕장의 병수란 둔주 조장수참지 불능금야. 어시한병협격 대파노조군 찬성안군저수상 금조왕헐.
한신과 장이가 이미 강가의 진지로 들어가자 군대가 모두 필사적으로 싸웠으므로 무찌를 수 없었다. 한신이 앞서 보냈던 기습 병사 2천 명은 조가 누벽을 비우고 전리품을 쫓는 틈을 엿보아, 곧 조의 누벽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조의 깃발을 다 뽑아버리고, 한의 붉은 깃발 2천개를 세웠다. 조의 군대는 이기지도 못하고 한신 등을 사로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누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누벽에 모두 한의 붉은 깃발만 세워져 있자 매우 놀랐고 한이 이미 조왕의 장군들을 모두 사로잡았다고 생각하여 어지럽게 달아났다. 조의 장군들이 달아나는 군사를 베어 죽이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이에 한의 군대가 협공해 조의 군대를 크게 깨뜨리고 병사를 사로잡았고, 지수(泜水) 가에서 성안군의 목을 베고, 조왕 헐을 사로잡았다.
信乃令軍中毋殺広武君, 有能生得者購千金. 於是有縛広武君而致戯下者, 信乃解其縛, 東郷対, 西郷対, 師事之.
신내영군중무살광무군 유능생득자구천금. 어시유박광무군이치희하자 신내해기박 동향대 서향대 사사지.
한신이 이에 군중에 명령을 내려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 사로잡는 자가 있으면 천금으로 사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광무군을 결박해 휘하로 끌고 오는 자가 있었다. 한신이 광무군의 결박을 풀어주고 동쪽을 보고 앉게 한 뒤에, 서쪽을 향해 마주 대하며 스승처럼 모셨다.
諸將效首虜, (休)畢賀, 因問信曰:「兵法右倍山陵, 前左水沢, 今者將軍令臣等反背水陳, 曰破趙會食.
제장효수노 필하 인문신왈 ‘병법우배산릉 전좌수택 금자장군영신등반배수진 왈파조회식.
여러 장수들이 수급(首級, 싸움에서 벤 적의 머리)과 포로를 바치며 축하한 뒤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서는 ‘산과 언덕을 오른쪽으로 등지고, 물과 못을 앞과 왼쪽에 둔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장군께서는 저희들에게 도리어 물을 등지는 배수진을 치라고 명령하시고, 조를 깨뜨린 뒤에 잔치하자고 하셨습니다.
臣等不服. 然竟以勝, 此何術也?」信曰:「此在兵法, 顧諸君不察耳. 兵法不曰『陥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 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 此所謂『駆市人而戦之』, 其勢非置之死地, 使人人自為戦;今予之生地, 皆走, 寧尚可得而用之乎!」
신등불복 연경이승 차하술야? 신왈 ‘차재병법 고제군불찰이. 병법불왈 “함지사지이후생 치지망지이후존”? 차신비득색부순사대부야 차소위 “구시인이전지” 기세비치지사지 사인인자위전; 금여지생지 개주 영상가득이용지호!’
저희들은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이겼습니다. 이것이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하기를 ‘이것도 병법에 있는 것이오. 단지 그대들이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오. 병법에서 “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아나고, 절망의 경지에 놓인 뒤에야 생존하다.”라고 말하지 않았소? 또한 내가 평소부터 훈련받은 사대부들을 따르게 한 것이 아니라, 이른 바 “시장 바닥의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 이오. 그 형세가 그들을 죽을 땅에 두어서 사람마다 자신을 위해 싸우도록 하지 않고, 이제 그들에게 살 수 있는 땅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것인데, 어찌 그들을 쓸 수 있겠소?’라고 했다.
諸將皆服曰:「善. 非臣所及也.」
제장개복왈 ‘선 비신소급야’
여러 장수들이 모두 탄복해서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입니다.’라고 말했다.
於是信問広武君曰:「僕欲北攻燕, 東伐斉, 何若而有功?」
어시신문광무군왈 ‘복욕북공연 동벌재 하역이유공?’
이에 한신이 광무군에게 ‘내가 북쪽으로 연을 치고 동쪽으로 제를 치려는데, 어떻게 하면 공을 세우겠습니까?’라고 물었다.
広武君辭謝曰:「臣聞敗軍之將, 不可以言勇, 亡國之大夫, 不可以図存. 今臣敗亡之虜, 何足以権大事乎!」
광무군사사왈 ‘신문패군지장 불가이언용 망국지대부 불가이도존. 금신패망지로 하족이권대사호!’
광무군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패배한 장수는 무용(武勇)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망한 나라의 대부(大夫)는 나라를 존속하는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는 패망한 나라의 포로입니다. 어찌 큰 일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信曰:「僕聞之, 百里奚居虞而虞亡, 在秦而秦霸, 非愚於虞而智於秦也, 用與不用, 聴與不聴也. 誠令成安君聴足下計, 若信者亦已為禽矣. 以不用足下, 故信得侍耳.」
신왈 ‘복문지 백리해거우이노망 재진이진패 비우어우이지어진야 용여불용 청여불청야. 성영성안군청족하계 약신자역이위금의. 이불용족하 고신득시이’
한신은 ‘내가 들으니 백리해(百里奚)가 우(虞)에 있었지만 우는 망했고, 그가 진(秦)에 있을 때에는 진이 패자(覇者)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백리해가 우에 있을 때에는 어리석었다가 진에 있을 때에는 지혜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임금이) 그를 등용했는지 등용하지 않았는지,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만약 성안군이 당신의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나와 같은 사람은 벌써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당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因固問曰:「僕委心帰計, 願足下勿辭.」広武君曰:「臣聞智者千慮, 必有一失;愚者千慮, 必有一得. 故曰『狂夫之言, 聖人択焉』. 顧恐臣計未必足用, 願效愚忠.
인고문왈 ‘복위심귀계 원족하물사’ 광무군왈 ‘신문지자천려 필유일실; 우자천려 필유일득. 고왈 “광부지언 성인택언”. 고공신계미필족용 원효우충.
한신이 단호한 태도로 부탁하며 ‘제가 마음을 기울여 계책을 구하오니 당신께서 사양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광무군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슬기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의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의 말도 성인(聖人)은 가려서 듣는다.”고 했습니다. 단지 저의 계책이 쓰일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만 충심을 다해 아뢰겠습니다.
夫成安君有百戦百勝之計, 一旦而失之, 軍敗鄗下, 身死泜上. 今將軍渉西河, 虜魏王, 禽夏説閼與, 一挙而下井陘, 不終朝破趙二十萬衆, 誅成安君. 名聞海內, 威震天下, 農夫莫不輟耕釈耒, 褕衣甘食, 傾耳以待命者. 若此, 將軍之所長也. 然而衆勞卒罷, 其実難用.
부성안군유백전백승지계 일단이실지 군퍄호하 신사저상. 금장군섭서하 노위왕 금하열알여 일거이하정형 부종조파조지십만중 주성안군. 명문해내 위진천하 농부막하철하석뢰 유의감식 경이이대명자. 약차 장군지소장야. 연이중노졸태 기실난용.
저 성안군은 백전백승의 계책이 있었는데도, 하루아침에 실수해 그 군대가 호(鄗)의 성 밑에서 격파되고 자신은 지수 가에서 죽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서하를 건너 위왕을 사로잡았고, 하열을 연여에서 사로잡았습니다. 단번에 정형을 내려와 하루아침에 조군 20만을 깨뜨리고, 성안군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 이름이 온 나라에 들리고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농부들도 나라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농사를 그치고 쟁기를 내버린 채 아름다운 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귀를 기울여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장군에게 이롭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피로하고 병졸들은 지쳐서 실은 쓰기 어렵습니다.
今將軍欲挙倦獘之兵, 頓之燕堅城之下, 欲戦恐久力不能抜, 情見勢屈, 曠日糧竭.
금장군욕거권폐지병 돈지연견성지하 욕전공구역불능발 정견세굴 광일양갈.
지금 장군께서는 싸움에 지친 군대를 몰아서 갑자기 연의 견고한 성 아래로 쳐들어가려 하지만 싸우려고 해도 아마 시일이 오래 걸려 힘으로써 함락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군의 피폐한 실정을 드러내고 기세가 꺾인 채로 시일만 오래 끌다가 군량미가 다할 것입니다.
而弱燕不服, 斉必距境以自彊也. 燕斉相持而不下, 則劉項之権未有所分也. 若此者, 將軍所短也. 臣愚, 竊以為亦過矣.
이약연불복 제필거경이자강야. 연제상지이불하 즉유항지권미유소분야. 약차자 장군소단야. 신우 절이위역과의.
그러다가 약한 연조차 항복하지 않게 되면 제는 반드시 국경의 방비를 갖추고 자기 나라를 강화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연과 제가 서로 의지해 항복하지 않는다면, 유씨(劉氏)와 항씨(項氏)의 권력은 나누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장군에게 불리합니다. 신이 어리석지만 연과 제를 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故善用兵者不以短撃長, 而以長撃短.」韓信曰:「然則何由?」広武君対曰:「方今為將軍計, 莫如案甲休兵, 鎮趙撫其孤, 百里之內, 牛酒日至, 以饗士大夫醳兵, 北首燕路, 而後遣辯士奉咫尺之書, 暴其所長於燕, 燕必不敢不聴従.
고선용병자불이단격장 이이장격단’ 한신왈 ‘연즉하유?’ 광무군대왈 ‘방금위장군계 막여안갑휴병 진조무기고 백리지내 우주일지 이향사대부역병 북수연로 이후견변사봉지척지서 폭기소장어연 연필불감불청종.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단점으로 장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장점으로 단점을 친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한신이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광무군이 대답해 말하기를 ‘지금 장군을 위한 계책은 싸움을 멈추고 군대를 휴식시키며, 조를 진정시키고 그 전쟁고아들을 어루만지면 1백리 안의 땅에서 쇠고기와 술이 날마다 이르러 사대부들을 대접할 것입니다. 이에 북쪽으로 연을 향한 뒤에 변사(辯士)에게 편지를 받들고 가게 해서 장군의 장점을 연에 알린다면 연은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燕已従, 使諠言者東告斉, 斉必従風而服, 雖有智者, 亦不知為斉計矣. 如是, 則天下事皆可図也.
연이종 사훤언자동고제 제필종풍이복 수유지자 역부지위제제계의. 여시 즉천하사개사도야.
연이 복종하게 되면 변사를 동쪽으로 보내 제에게 이를 알리면, 제는 소문을 듣고 복종할 것입니다. 비록 슬기로운 자가 있더라도 제를 위한 계책을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한다면 천하의 일을 다 도모할 수 있습니다.
兵固有先聲而後実者, 此之謂也.」
병고유선성이후실자 차지위야’
병법에, 먼저 소문을 내고 실전은 뒤에 한다고 했는데 바로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韓信曰:「善.」従其策, 発使使燕, 燕従風而靡. 乃遣使報漢, 因請立張耳為趙王, 以鎮撫其國. 漢王許之, 乃立張耳為趙王.
한신왈 ‘선’ 종기책 발사사연 연종풍이미. 내견사보한 인청입장이위조왕 이진무기국. 한왕허지 내입장이위조왕.
한신은 ‘좋소.’고 말했다. 그의 계책을 따라 사자를 연에 보내니 연은 바람 따라 휩쓸리듯 쉽게 투항했다. 이에 사자를 보내 한왕(漢王)에게 아뢰고, 이 기회에 장이를 세워 조왕(趙王)으로 삼아 그 나라를 진무하기를 청했다. 한왕이 허락하고 장이를 세워서 조왕으로 삼았다.
楚數使奇兵渡河撃趙, 趙王耳、韓信往來救趙, 因行定趙城邑, 発兵詣漢.
초수사기병도하격조 조왕이 한신왕래구조 인행정조성읍 발병지한.
초가 자주 기습 병사를 출동시켜 황하를 건너 조를 공격했다. 조왕 장이와 한신이 오가면서 조를 구원했다. 그 기회에 가는 곳마다 조의 성읍을 평정했으며, 병사를 징발해 한으로 보냈다.
楚方急囲漢王於滎陽, 漢王南出, 之宛、葉閒, 得黥布, 走入成皐, 楚又複急囲之.
초방급위한왕어형양 한왕남축 지완 섭간 득경포 주입성고 초우복급위지.
초가 급습해 한왕(漢王)을 형양에서 포위했다. 한왕이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완(宛)과 섭(葉) 사이에 이르러서 경포(黥布)를 만나 성고(成皐)로 함께 들어갔다. 그러자 초가 또다시 그곳을 급습해 포위했다.
六月, 漢王出成皐, 東渡河, 獨與滕公倶, 従張耳軍脩武. 至, 宿傳舎. 晨自稱漢使, 馳入趙壁. 張耳、韓信未起, 即其臥內上奪其印符, 以麾召諸將, 易置之. 信、耳起, 乃知漢王來, 大驚. 漢王奪両人軍, 即令張耳備守趙地. 拝韓信為相國, 収趙兵未発者撃斉.
유월 한왕출성고 동도하 독여등공구 종장이군수무. 자숙전사. 신자칭한사 치입조벽. 정이 헌신미기 즉기왕내상탈기인부 이휘소제장 역치지. 신 이기 내지한왕래 대경. 한왕탈양인군 즉영장이비수조지. 배한신위상국 수조병미발자격제.
6월에 한왕이 성고를 나와 동쪽으로 황하를 건너 등공(滕公)만 데리고 수무(修武)에 있는 장이의 군대를 찾아갔다. 수무에 이르자 객관(客館)에서 잠을 자고는, 새벽에 자신을 한 사자라고 칭하면서 말을 달려 조의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장이와 한신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침실로 들어가 그들의 인수와 부절을 빼앗고 휘하의 여러 장군들을 소집해 배치를 바꾸어놓았다. 한신과 장이가 일어나 한왕이 와 있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한왕이 두 사람의 군대를 빼앗아 장이를 시켜 조를 지키게 하고, 한신을 상국(相國)에 제수했다. 그러고는 조 병사 가운데 아직도 징발되지 않은 자를 거두어 제를 공격했다.
信引兵東, 未渡平原, 聞漢王使酈食其已説下斉, 韓信欲止.
신인병동 미도평원 문한왕사역이기이세하제 한신욕지.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해 아직 평원(平原)을 건너기 전에 한왕이 역이기(酈食其)를 시켜서 이미 제를 달래어 항복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신은 제나라 치는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範陽辯士蒯通説信曰:「將軍受詔撃斉, 而漢獨発閒使下斉, 寧有詔止將軍乎? 何以得毋行也! 且酈生一士, 伏軾掉三寸之舌, 下斉七十餘城, 將軍將數萬衆, 歳餘乃下趙五十餘, 為將數歳, 反不如一豎儒之功乎?」於是信然之.
범양변사괴통설신왈 ‘장군수조격제 이한독발간사하제 영유조지장군호? 하이득무행야! 차역생일사 복식도삼촌지설 하제칠십여성 장군장수만중 세여냐하조오십여 위장수세 반불여일수유지공호?’ 어시신연지.
이때 범양(範陽)의 변사 괴통(蒯通)이 한신을 설득해 ‘장군이 조칙을 받고 제를 공격하려는데, 한왕이 단독으로 밀사를 보내 제를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장군에게 공격을 그만두라는 조칙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어찌 진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역이기는 한낱 변사입니다. 그렇지만 수레를 타고 세 치 혀를 놀려 제의 70여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는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한 해가 넘도록 겨우 조의 50여 성을 항복시켰을 뿐입니다. 장군이 되신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는데, 보잘 것 없는 한낱 선비의 공보다도 못하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한신도 이 말을 옳다고 생각했다.
従其計, 遂渡河. 斉已聴酈生, 即留縦酒, 罷備漢守禦信因襲斉歴下軍, 遂至臨菑. 斉王田広以酈生売己, 乃亨之, 而走高密, 使使之楚請救. 韓信已定臨菑, 遂東追広至高密西. 楚亦使竜且將, 號稱二十萬, 救斉.
종기계 수도하. 제이청역생 즉우종주 파비한수어신인습제역하군 수지임치. 제왕전광이역생매기 내형지 이도고밀 사사지초청구. 한신이정임치 수동추광지고밀서. 초역사용저장 호칭이십만 구제.
그의 계책에 따라 드디어 황하를 건너갔다. 제는 이미 역이기의 말을 듣고 바로 머물게 한 뒤 술잔치를 벌여, 한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신이 이 틈을 타서 역하(歷下)에 있던 제의 군대를 습격하고, 드디어 임치(臨菑)에 이르렀다. 제왕 전광(田廣)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고 여기고 그를 삶아 죽이고 고밀(高密)로 달아나 초로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한신은 임치를 평정한 뒤에 드디어 전광을 동쪽으로 추격해 고밀 서쪽에 이르렀다. 초도 용저(龍且)를 장군으로 삼고, 20만이라고 일컬으면서 제를 구원했다.
斉王広、竜且並軍與信戦, 未合. 人或説竜且曰:「漢兵遠鬥窮戦, 其鋒不可當. 斉、楚自居其地戦, 兵易敗散. 不如深壁, 令斉王使其信臣招所亡城, 亡城聞其王在, 楚來救, 必反漢.
제왕광 용저병군여신전 미합. 인혹설용저왈 ‘한병원투궁전 기봉불가당. 제 초자거기지전 병역패산. 불여심벽 영제왕사기신신초소망성 망성눔지왕좌 초래구 필반한.
제왕 전광과 용저가 군사를 연합해 한신과 싸우려는데, 미처 싸우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 용저를 설득해 ’한의 군대는 멀리서 싸우러 왔으니 있는 힘을 다해서 싸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예봉을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제와 초는 자기 땅에서 싸우기 때문에 병사들이 패해 흩어지기 쉽습니다. 차라리 성벽을 높이 쌓아 지키면서 제 왕에게 그가 신임하는 신하를 보내 제가 이미 잃어버린 성을 이쪽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함락된 성에서 자기 왕이 건재하고 초가 구원하러 왔다는 것을 들으면 반드시 한을 배반할 것입니다.
漢兵二千里客居, 斉城皆反之, 其勢無所得食, 可無戦而降也.」
한병이천리객거 제성개반지 기세무소득식 사무전이항야’
한 군대는 2천리나 떨어진 곳에서 와 있습니다. 제나라 성들이 모두 배반하면 그 정세로 보아 식량도 얻을 수 없을 테니, 싸우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竜且曰:「吾平生知韓信為人, 易與耳. 且夫救斉不戦而降之, 吾何功? 今戦而勝之, 斉之半可得, 何為止!」遂戦, 與信夾濰水陳.
용저왈 ‘오평생지한신위인 역여이. 저부구제부전이항지 오하공? 금전이승지 제지반가득 하위지!’ 수전 여신협유수진.
용저가 ‘내가 평소부터 한신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데, 그는 상대하기가 쉽소. 게다가 제를 구원한다면서 싸우지도 않고 항복시킨다면 내게 무슨 공이 있겠소? 지금 싸워서 승리하면 제 사람의 절반은 얻을 수 있으니 어찌 그칠 수 있소?’라고 말했다. 드디어 싸우려고 유수(濰水)를 사이에 끼고 한신과 마주해 진을 쳤다.
韓信乃夜令人為萬餘嚢, 満盛沙, 壅水上流, 引軍半渡, 撃竜且, 詳不勝, 還走. 竜且果喜曰:「固知信怯也.」遂追信渡水. 信使人決壅嚢, 水大至. 竜且軍大半不得渡, 即急撃, 殺竜且. 竜且水東軍散走, 斉王広亡去. 信遂追北至城陽, 皆虜楚卒.
한신내야영인위만여랑 만성사 옹수상류 인군반도 격용저 상불승 환주. 용저과희왈 ‘고지신겁야’ 수추신도수. 신사인결옹랑 수대지. 용저군대반부득도 즉급격 살용저. 용저수동군산주 제왕광망거. 신수추지성양 개노초졸.
한신이 밤에 사람을 시켜 만여 개의 주머니를 만들어 모래를 가득 채워서 유수의 상류를 막고 군대를 이끌고 반쯤 건너가서 용저를 공격하다가 지는 척하고 돌아서서 달아났다. 용저가 과연 기뻐하며 ‘한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드디어 한신을 뒤쫓아서 유수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신이 사람을 시켜 막아 놓았던 모래주머니를 터뜨리자 물이 크게 쏟아져 내려왔다. 용저의 군사들은 절반도 건너지 못했다. 한신이 급히 습격해 용저를 죽였다. 유수 동쪽에 남아 있던 용저의 군사들도 흩어져 달아나고 제왕 전광도 도망갔다. 한신은 달아나는 적을 뒤쫓아 성양(城陽)에 이르러 초의 군사를 모두 사로잡았다.
漢四年, 遂皆降平斉. 使人言漢王曰:「斉偽詐多変, 反覆之國也, 南邊楚, 不為仮王以鎮之, 其勢不定. 願為仮王便.」
한사년 수개항평제. 사인언한왕왈 ‘제위사다변 반복지국야 남변초 불위가왕이진지 기세부정 원위가왕변’
한 4년에 마침내 제를 모두 항복시켜 평정하고 사자를 보내어 한왕에게 ‘제는 거짓과 속임수로 변절을 많이 하고 번복하는 나라입니다. 남쪽으로는 초와 변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가왕(假王)을 세워서 진정시키지 않으면, 정세가 안정되지 않겠습니다. 신을 가왕으로 삼아 바꿔주시면 되겠습니다.’고 아뢰었다.
當是時, 楚方急囲漢王於滎陽, 韓信使者至, 発書, 漢王大怒, 罵曰:「吾困於此, 旦暮望若來佐我, 乃欲自立為王!」
당시시 초방급위한왕어형양 한신사자지 발서 한왕대노 매왈 ‘오곤어차 단모망약래좌아 내욕자립위왕!’
이때 초가 형양에서 한왕을 긴급히 포위하고 있었다. 한신의 사자가 오자 그 편지를 보고 한왕이 크게 성을 내며 ‘내가 여기서 곤경에 빠져 아침저녁으로 너희들이 와서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는데, 저는 스스로 왕이 되겠단 말이냐?’라고 꾸짖었다.
張良、陳平躡漢王足, 因附耳語曰:「漢方不利, 寧能禁信之王乎? 不如因而立, 善遇之, 使自為守. 不然, 変生.」漢王亦悟, 因複罵曰:「大丈夫定諸侯, 即為真王耳, 何以仮為!」乃遣張良往立信為斉王, 徴其兵撃楚.
장량 진평섭한왕족 인부이어왈 ‘한방불리 영능금신지왕호? 불여인이립 선우지 사자위수. 불련 변생’ 한왕역오 인복매왈 ‘대장부정제후 즉위진왕이 하위가위!’ 내견장량왕입신위제왕 징기병격초.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한왕의 발을 밟고 사과를 하면서 귓가에 입을 대고 ‘한은 지금 불리하오니 어찌 한신이 왕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왕으로 세우고 잘 대우해 스스로 제를 지키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왕 역시 이를 깨닫고, 이어 다시 꾸짖으며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하면 곧 진짜 왕(眞王)이 될 뿐이지 어찌 가짜 왕이 된다는 말이냐?’라고 하고는 장량을 보내 한신을 세워 제왕(齊王)으로 삼고 그의 군대를 징발해 초를 쳤다.
楚已亡竜且, 項王恐, 使盱眙人武渉往説斉王信曰:
초이망용저 항왕공 사우이인부섭왕설재왕신왈:
초는 용저를 잃자 항왕(項王)도 두려워서 우이(盱眙) 사람 무섭(武涉)에게 제왕(齊王) 한신을 달래게 했다.
「天下共苦秦久矣, 相與戮力撃秦. 秦已破, 計功割地, 分土而王之, 以休士卒. 今漢王複興兵而東, 侵人之分, 奪人之地, 已破三秦, 引兵出関, 収諸侯之兵以東撃楚, 其意非盡呑天下者不休, 其不知厭足如是甚也. 且漢王不可必, 身居項王掌握中數矣, 項王憐而活之, 然得脫, 輒倍約, 複撃項王, 其不可親信如此.
‘천하공고진구의 상여륙역격진. 진이파 계공할지 분토이왕지 이휴사졸. 금한왕부흥병이동 침입지분 탈인지지 이파삼진 인병출관 수제후지병이동격초 기의비진탄천하자불휴 기부지염족여시심야. 차한왕불가필 신거항왕장악중수의 항왕린이활지 연득탈 첩배약 복격항왕 기불가친신여차.
무섭은 한신에게 ‘온 천하 사람들이 함께 진(秦)에 괴로움을 당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힘을 합해 진을 쳤습니다. 진이 격파되자 공을 헤아려 땅을 분할하고 왕을 봉해 사졸들을 쉬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왕(漢王)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진격해 남에게 나누어진 땅을 침범하고 남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그가 삼진(三秦)을 깨뜨리고 군대를 이끌고 함곡관을 나와 제후의 군대를 거두어 동쪽으로 초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의 뜻은 천하를 삼키지 않으면 그치지 않으니, 그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이렇게 심합니다. 게다가 한왕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몸이 항왕의 손에 여러 번 쥐어졌지만, 항왕은 늘 가엾게 여겨 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위기를 벗어나기만 하면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항왕을 공격했습니다. 그를 친히 여기고 믿을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今足下雖自以與漢王為厚交, 為之盡力用兵, 終為之所禽矣. 足下所以得須臾至今者, 以項王尚存也. 當今二王之事, 権在足下. 足下右投則漢王勝, 左投則項王勝. 項王今日亡, 則次取足下. 足下與項王有故, 何不反漢與楚連和, 參分天下王之?
금족하수자이여한왕위후교 위지진력용병 종위지소금의. 족하소이득수유지금자 이항왕상존야. 당금이왕지사 권재족하. 족하우투즉한왕승 좌투즉항왕승. 항왕금일망 즉차취족하. 족하여항왕유고 하불반한여초연화 삼분천하왕지?
지금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왕과 두터운 친교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군대를 지휘하지만 끝내는 그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항왕이 아직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왕과 항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저울추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께서 오른쪽으로 던지면 한항이 이기고, 왼쪽으로 던지면 항왕이 이길 것입니다. 항왕이 오늘 망하면 다음에는 당신을 없앨 것입니다. 당신은 항왕과 교분이 있으신데 왜 한를 배반하고 초와 연합하여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왕이 되지 않으십니까?
今釈此時, 而自必於漢以撃楚, 且為智者固若此乎!」韓信謝曰:「臣事項王, 官不過郎中, 位不過執戟, 言不聴, 畫不用, 故倍楚而帰漢.
금석차시 이자필어한이격초 차위지자고약차호!’ 한신사왈 ‘신사항왕 관불과랑중 배불과집극 언불청 주불용 고배초이귀한.
지금 이 기회를 버리고 스스로 한을 믿고 초를 치니 슬기로운 자는 본래 이와 같은 것입니까?’라고 했다. 한신이 사절하며 ‘제가 예전에 항왕을 섬겼지만, 벼슬은 낭중(郎中)에 지나지 않았고 지위도 집극(執戟)에 불과했습니다. 말해도 들어주지 않고, 계책도 써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초를 배반하고 한으로 갔습니다.
漢王授我上將軍印, 予我數萬衆, 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聴計用, 故吾得以至於此. 夫人深親信我, 我倍之不祥, 雖死不易. 幸為信謝項王!」
한왕수아상장군인 여아수만중 해의의아 추식식아 언청계용 고오득이지어차. 부인심친신아 아배지불상 수사불역. 행위신사항왕!’
한왕(漢王)은 나에게 상장군(上將軍)의 인수(印綬)를 주었으며, 나에게 수만의 무리를 주셨습니다.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혀주고, 밥을 주어 나에게 먹였으며, 말을 받아주고 계책을 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체로 남이 깊이 나를 믿고 가까이 하는데 내가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않습니다.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항왕에게 거절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武渉已去, 斉人蒯通知天下権在韓信, 欲為奇策而感動之, 以相人説韓信曰:「僕嘗受相人之術.」韓信曰:「先生相人何如?」対曰:「貴賎在於骨法, 憂喜在於容色, 成敗在於決斷, 以此參之, 萬不失一.」
무섭기거 제인괴통지천하권제한신 욕위기책이감동지 이상인설한신왈 ‘복상수상인지술’ 한신왈 ‘선생상인하여?’ 대왈 ‘귀천재어골법 우희재어용색 성패재어결단 이차삼지 만불실일’
무섭이 떠난 뒤에 제 사람 괴통이 천하의 대권이 한신에게 달린 것을 알고, 기이한 계책으로 한신을 감동시키려고 했다. 이에 관상을 보는 것으로써 한신을 설득하며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관상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고 했다. 한신이 ‘선생이 관상을 보는 법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귀천은 골상에 달려 있고, 걱정거리가 생기느냐 기쁜 일이 생기느냐는 얼굴모양과 빛깔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참고하면 만의 하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韓信曰:「善. 先生相寡人何如?」対曰:「願少閒.」信曰:「左右去矣.」通曰:「相君之面, 不過封侯, 又危不安. 相君之背, 貴乃不可言.」韓信曰:「何謂也?」蒯通曰:「天下初発難也, 俊雄豪桀建號壱呼, 天下之士雲合霧集, 魚鱗雑遝, 熛至風起. 當此之時, 憂在亡秦而已. 今楚漢分爭, 使天下無罪之人肝膽塗地, 父子暴骸骨於中野, 不可勝數.
한신왈 ‘선 선생상과인하여?’ 대왈 ‘원소간’ 신왈 ‘좌우거의’ 통왈 ‘상군지면 불과봉후 우액불안. 상군지배 귀내불가언’ 한신왈 ‘하위야?’ 괴통왈 ‘천하초발란야 준웅호걸건호일호 천하지사운합무집 어린잡답 표지풍기. 당차지시 우재망진이이. 금초한분쟁 샃펀하무죄지인간담도지 부자폭해골어중야 불가승수.
한신이 말하기를 ’좋소. 선생은 과인의 관상을 어떻게 보시오?‘라고 하니 괴통이 대답하기를 ’잠시 틈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한신은 ’다들 물러가라.‘라고 했다. 괴통이 ’장군의 상을 보니 제후에 봉해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위태로워 안전하지 않습니다. 장군의 등을 보니, 귀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신은 ’무슨 말이오?‘라고 물었다. 괴통이 말하기를 ’천하가 처음 어지러워졌을 때 영웅호걸들이 왕이라고 칭하고 한번 소리치자, 천하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물고기 비늘처럼 겹치고 불길이나 바람처럼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걱정은 오직 진을 멸망시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초와 한이 서로 다투게 되자, 천하의 죄 없는 사람들의 간과 쓸개가 땅바닥에 내깔리고 아비와 자식의 해골이 들판에 나뒹구는 것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楚人起彭城, 転鬥逐北, 至於滎陽, 乗利席巻, 威震天下.
초인기팽성 전투축배 지어형양 승리석권 위운천하.
초 사람 항우가 팽성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달아나는 적을 쫓아다녀 형양(滎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승세를 타고 각지를 석권하니 그 위세가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然兵困於京、索之閒, 迫西山而不能進者, 三年於此矣. 漢王將數十萬之衆, 距鞏、雒, 阻山河之険, 一日數戦, 無尺寸之功, 折北不救, 敗滎陽, 傷成皐, 遂走宛、葉之閒, 此所謂智勇倶困者也.
연병곤어경 삭지간 박서산이불능진자 삼년어차의. 한왕장수십만지중 거공 락 저산하지험 일일수전 무척촌지공 절뱌불구 패형양 상성고 수주완 기섭간 차소위지용구곤자야.
그러나 그의 군대가 경(京)과 삭(索) 사이에서 곤경에 빠지고 서산(西山)에 가로막혀 나아갈 수 없게 된 지가 이제 3년이나 되었습니다. 한왕(漢王)은 수십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공(鞏)과 낙(洛)에서 험준한 산하를 방패삼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싸웠지만 조그만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좌절하고 패배해도 구원해주는 사람이 없어 형양에서 패하고, 성고에서 군사를 잃은 채 드디어 완(宛)과 섭(葉) 사이로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슬기로운 자와 용감한 자가 함께 괴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夫鋭気挫於険塞, 而糧食竭於內府, 百姓罷極怨望, 容容無所倚. 以臣料之, 其勢非天下之賢聖固不能息天下之禍. 當今両主之命県於足下.
부예기좌어험새 이양식갈어내부 백성패극원망 용용무소의. 이신료지 기세비천하지현성고불능식천하지화. 당금양주지명현어족하.
무릇 날카로운 기세는 험준한 요새에서 꺾이고, 양식은 창고에서 바닥나고, 백성들은 매우 피폐해져서 원망합니다. 민심은 동요되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형세는 천하의 성현이 아니라면 참으로 천하의 재앙을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왕과 항왕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足下為漢則漢勝, 與楚則楚勝. 臣願披腹心, 輸肝膽, 效愚計, 恐足下不能用也. 誠能聴臣之計, 莫若両利而倶存之, 參分天下, 鼎足而居, 其勢莫敢先動. 夫以足下之賢聖, 有甲兵之衆, 拠彊斉, 従燕、趙, 出空虛之地而制其後, 因民之欲, 西郷為百姓請命, 則天下風走而響應矣.
족하위한즉한승 여초즉초승. 신원피복심 수간담 효ㅕ우계 공족하불능용야. 성능청신지계 막양양리이구존지 삼분천하 정족이거 기세막감선동. 부이족하지현성 유갑병지중 거강제 종연 조 출공허지지이제기후 인민지욕 서향위백성청명 즉천하풍주이향응의.
당신께서 한을 위하면 한이 이길 것이요, 초와 함께하면 초가 이길 것입니다. 신은 속마음을 터놓고 간과 쓸개를 드러내고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당신께서 써주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진실로 당신께서 저의 계책을 써주신다면, 한과 초를 이롭게 하고 두 임금을 존속시켜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의 발처럼 서 있게 할 것입니다. 그 형세는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처럼 현명한 분이 수많은 무장 병사를 거느리고 강대한 제에 의지해 연과 조를 복종시키고, 주인이 없는 땅으로 나아가 한과 초의 후방을 제압하고, 백성들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진격해서 두 나라의 전쟁을 끝내게 하고 백성들의 생명을 구해준다면, 천하가 바람처럼 달려오고 메아리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孰敢不聴! 割大弱彊, 以立諸侯, 諸侯已立, 天下服聴而帰徳於斉. 案斉之故, 有膠、泗之地, 懐諸侯以徳, 深拱揖譲, 則天下之君王相率而朝於斉矣. 蓋聞天與弗取, 反受其咎;時至不行, 反受其殃. 願足下孰慮之.」
숙삼불청! 할대약강 이립제후 제후이립 천하복청이귀덕어제. 안제지고 유교 사지지 회제후이덕 심공집양 즉천하지군 왕상솔이조어제의. 개문천려불취 반수시구; 시지불행 반수시앙. 원족하수려지’
그런데 누가 감히 당신의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까? 큰 나라를 나누고 강한 나라를 약화시켜 되어 제후를 세우십시오. 제후가 서게 되면 천하가 복종하며 그 은덕을 제에 돌릴 것입니다. 제의 옛 땅인 것을 생각해 교(膠)와 사(泗)의 땅을 보유하고 덕으로써 제후들을 회유하십시오. 궁중 깊은 곳에서 두 손 모아 읍하면서 겸양하면, 천하의 군주들이 서로 와서 제에 입조할 것입니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왔을 때에 단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韓信曰:「漢王遇我甚厚, 載我以其車, 衣我以其衣, 食我以其食. 吾聞之, 乗人之車者載人之患, 衣人之衣者懐人之憂, 食人之食者死人之事, 吾豈可以郷利倍義乎!」
한신왈 ‘한왕우아심후 재아이기거 의아이기의 식아이기식. 오문지 승인지거자재인지환 의인지의자회인지우 식인지식자사인지사 오이가이향리배의호!’
한신이 말하기를 ‘한왕은 나를 후하게 대해줍니다. 자기의 수레로 나를 태워주며, 자기의 옷으로 나를 입혀주며, 자기의 먹을 것으로 나를 먹여주었습니다. 내가 들으니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남의 일을 위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내 어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蒯生曰:「足下自以為善漢王, 欲建萬世之業, 臣竊以為誤矣. 始常山王、成安君為布衣時, 相與為刎頚之交, 後爭張黶、陳沢之事, 二人相怨. 常山王背項王, 奉項嬰頭而竄, 逃帰於漢王. 漢王借兵而東下, 殺成安君泜水之南, 頭足異処, 卒為天下笑. 此二人相與, 天下至驩也. 然而卒相禽者, 何也? 患生於多欲而人心難測也.
괴생왈 ‘족하자이위선한왕 욕건만세지업 신절이위오의. 시상산왕 성안군위초의시 상여위문경지교 후쟁장염 진택지사 이인상원. 상산왕배항왕 봉항영두이찬 도귀어한왕. 한왕사병이동하 살겅안군치수지남 두족이처 졸위천하소. 차이인상여 천하지환야. 연이졸상그자 하야? 환생어다욕이인심난측야.
괴통이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왕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해 만세토록 변치 않는 업적을 세우려고 하시지만, 저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와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가 평민이었을 때, 서로 목을 베어줄 만큼 가깝게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장염(張黶)과 진택(陳澤)의 일 때문에 다투고 두 사람은 서로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상산왕은 항왕을 배반하고 항영(項嬰)의 머리를 들고 달아나 한왕에게 귀순했습니다. 한왕이 장이에게 군대를 주어 동쪽으로 내려가서 성안군을 치수(泜水) 남쪽에서 죽이니, 그의 머리와 다리가 따로 떨어져나가,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천하에서 서로 아주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서로 잡으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근심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今足下欲行忠信以交於漢王, 必不能固於二君之相與也, 而事多大於張黶、陳沢. 故臣以為足下必漢王之不危己, 亦誤矣.
금족하욕행충신교어한왕 필불능고어이군지상여야 이사다대어장염 진택. 고신이위족하필한왕지불위기 역오의.
지금 당신께서는 충성과 신의를 다해 한왕과 친하게 사귀려고 하시지만, 그 사귐이 아무래도 상산왕과 성안군의 사귐보다 든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틀어진 일은 장염과 진석의 일보다 많고 큽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께서 한 왕이 결코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大夫種、範蠡存亡越, 霸句踐, 立功成名而身死亡. 野獣已盡而猟狗亨. 夫以交友言之, 則不如張耳之與成安君者也;以忠信言之, 則不過大夫種、範蠡之於句踐也. 此二人者, 足以観矣. 願足下深慮之.
대부종 범여존망월 패구천 입공성명이신사망. 야수이진이렵구팽. 부이교우신지 즉불여장이지여성안군자야; 이충신언지 즉불과대부종 범여지어구천야. 차이인자 족이관의. 원족하심려지.
대부(大夫) 종(種)과 범려(范蠡)는 망해가는 월(越)을 존속시키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패자(覇者)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렸지만, 자기 몸은 죽게 되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도 삶아지게 됩니다. 교분으로 말한다면 당신과 한왕은 장이와 성안군보다 더 친하지 못하며, 충성과 신의로 말한다면 대부 종과 범려가 구천에게 대한 것만 못합니다. 이 두 가지의 일은 거울로 삼을 만하니, 당신께서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且臣聞勇略震主者身危, 而功蓋天下者不賞.
차신문용략진주자신위 이공개천하자불상.
또 저는 용기와 지략으로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臣請言大王功略:足下渉西河, 虜魏王, 禽夏説, 引兵下井陘, 誅成安君, 徇趙, 脅燕, 定斉, 南摧楚人之兵二十萬, 東殺竜且, 西郷以報, 此所謂功無二於天下, 而略不世出者也.
신청언대왕공략: 족하섭서하 노위왕 금하열 인변하정형 주성안군 순조 협연 정제 남최초인지병이십만 동살용저 서향이보 차소위공무이어천하 이략불세출야.
제가 대왕의 공과 지략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서하(西河)를 건너가서 위왕을 사로잡고 하열을 사로잡으셨으며, 군대를 이끌고 정형으로 내려와서 성안군을 베어 죽이고 조를 항복시키셨습니다. 연을 위협하고 제를 평정하셨으며, 남쪽으로 내려와 초의 군사 20만을 꺾으셨습니다. 동쪽으로 진격해 용저를 죽이고, 서쪽으로 향해 이 사실을 아뢰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지략은 불세출이다라는 것입니다.
今足下戴震主之威, 挾不賞之功, 帰楚, 楚人不信;帰漢, 漢人震恐:足下欲持是安帰乎? 夫勢在人臣之位而有震主之威, 名高天下, 竊為足下危之.」韓信謝曰:「先生且休矣, 吾將念之.」
금족하재진주지위 협불상지공 귀초 초인불신; 귀한 한인진공: 족하욕지시안귀호? 부세제인신지위이유진주지위 명고천하 절위족하위지’ 한신사왈 ‘선생차유의 오장념지’
지금 당신께서는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을 지니셨고, 상을 받을 수 없는 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초로 돌아가면 초나라 사람이 믿지 않고, 한으로 돌아가더라도 한나라 사람이 떨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이러한 위력과 공로를 가지고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무릇 형세는 남의 신하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이 있으시고, 이름은 천하에 드높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신이 사례하며 ‘선생께서는 잠시 쉬십시오. 나도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後數日, 蒯通複説曰:「夫聴者事之候也, 計者事之機也, 聴過計失而能久安者, 鮮矣. 聴不失一二者, 不可亂以言;計不失本末者, 不可紛以辭.
후수일 괴통복설왈 ‘부청자사지후야 계자사지기야 청과계실이능구안자 선의. 청불실이이자 불가난이언; 계부실본말자 불가분이사.
며칠 뒤에 괴통이 다시 한신을 설득하며 ’듣는 것은 일의 조짐이고, 계획하는 것은 일의 기틀입니다. 듣기를 잘못하고 계책에 실패하고도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는 자는 드뭅니다. 듣고서 순서를 알면 말로써 어지럽게 할 수 없습니다. 본말을 잘 가려 세운 계획은 교묘한 말로써는 분란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夫隨廝養之役者, 失萬乗之権;守儋石之祿者, 闕卿相之位. 故知者決之斷也, 疑者事之害也, 審豪氂之小計, 遺天下之大數, 智誠知之, 決弗敢行者, 百事之禍也.
부수시양지역자 실만승지권: 수섬석지록자 궐경상지위. 고지자경지단야 의자사지해야 심호리지소계 유천하지대수 지성지지 결불감행자 백사지화야.
대체로 말을 키우는 자는 천자(天子)가 될 만한 권세가 없고잃고, 한두 섬의 봉록을 지키기에 급급한 자는 경상(卿相)의 지위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혜는 일을 결단하는 힘이 되며, 의심은 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터럭같이 작은 계획에 치중하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잃어버립니다. 지혜로는 그것을 알면서도 결단해서 과감하게 행하지 않는 것이 모든 일의 화근입니다.
故曰『猛虎之猶予, 不若蜂蠆之致螫;騏驥之跼躅, 不如駑馬之安歩;孟賁之狐疑, 不如庸夫之必至也;雖有舜禹之智, 吟而不言, 不如瘖聾之指麾也』.
고왈 “맹호지유예 불약봉채지치석; 기기국촉 불여노마지안보; 맹분지호의 불여용부지필지야; 수유순우지지 음이불언 불여음롱지지휘야”
그래서 “맹호가 머뭇거림은 벌이나 전갈이 쏘는 것만 못하며, 준마의 주춤거림은 노둔한 말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하며, 맹분(孟賁)의 여우같은 의심은 필부가 결행하는 것만 못하다. 비록 순(舜)임금이나 우(禹)임금과 같은 지혜가 있더라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此言貴能行之. 夫功者難成而易敗, 時者難得而易失也. 時乎時, 不再來. 願足下詳察之.」韓信猶予不忍倍漢, 又自以為功多, 漢終不奪我斉, 遂謝蒯通. 蒯通説不聴, 已詳狂為巫.
차언귀능행지. 부공자난성이역패 시자난득이역실야. 시호시 불재래. 원족하상찰지‘ 한신유여불인배한 우자이위공다 한종불탈아제 수사괴통. 괴통설불청 이상광위무.
이것은 실행할 수 있는 것이 귀중하다는 말입니다. 대체로 공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좋은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세히 살피십시오.’라고 했다. 한신은 망설이면서 차마 한을 배반하지 못했다. 또한 스스로 공이 많으니 한이 끝내 제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괴통의 말을 거절했다. 괴통은 말을 듣지 않자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었다.
漢王之困固陵, 用張良計, 召斉王信, 遂將兵會垓下. 項羽已破, 高祖襲奪斉王軍. 漢五年正月, 徙斉王信為楚王, 都下邳.
한왕지곤고릉 용장량지 소제왕신 수장병회해하. 항우이파 고조습탈제왕군, 한오년정월 사제왕신위초왕 도하비.
한왕(漢王)이 고릉(固陵)에서 곤경에 처하자 장량의 계책을 써서 제왕(齊王) 한신을 불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해하(垓下)에서 한왕과 만났다. 항우가 패하자 고조가 제의 군대를 습격해서 빼앗았다. 한 5년 정월에 제왕 한신을 옮겨서 초왕(楚王)으로 삼고 하비(下邳)에 도읍하게 했다.
信至國, 召所従食漂母, 賜千金. 及下郷南昌亭長, 賜百銭, 曰:「公, 小人也, 為徳不卒.」召辱己之少年令出胯下者以為楚中尉. 告諸將相曰:「此壯士也. 方辱我時, 我寧不能殺之邪? 殺之無名, 故忍而就於此.」
신지국 소소종식표모 사천금 급하향남창정장 사백전 왈 ‘공 소인야 위덕불졸’ 소욕이지소년영출과하자이위초중위. 고제장상왈 ‘차장사야 방욕아시 아녕불능살지야? 살지무명 고인이취어차’
한신이 나라에 도착하자, 예전에 밥을 먹여준 빨래하던 아낙을 불러 천금을 하사했다. 하향(下鄕)의 남창정장(南昌亭長)에게도 100전(錢)을 하사하면서 “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기를 욕보이던 젊은이들 가운데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고 한 자를 불러 초의 중위(中尉)로 삼았다. 여러 장군들과 재상들에게 “이 사람은 장사다. 나를 욕보일 때 내가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죽인다하더라도 이름날 것이 없기에 참고 오늘의 일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項王亡將鍾離眛家在伊廬, 素與信善. 項王死後, 亡帰信. 漢王怨眛, 聞其在楚, 詔楚捕眛.
항왕망졸히매가재이려 소여신선. 항왕사후 망귀신. 한왕원매 문기재초 조초포매.
항왕(項王)에게서 도망한 장수 종리매(鐘離眛)의 집이 이려(伊廬)에 있었는데 평소 한신과 사이가 좋았다. 항왕이 죽은 뒤에 도망쳐 한신에게 왔다. 한왕이 종리매에게 원한이 있었으므로 그가 초에 있다는 말을 듣고 초에 조서를 내려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했다.
信初之國, 行県邑, 陳兵出入. 漢六年, 人有上書告楚王信反. 高帝以陳平計, 天子巡狩會諸侯, 南方有雲夢, 発使告諸侯會陳:「吾將遊雲夢.」実欲襲信, 信弗知.
신초지국 행현읍 진병출입. 한육년 인유상서고초왕신반. 고제이진평계 천자순수회제후 남방유운몽 발사고제후회진 ‘오장유운몽’ 실욕습신 신부지.
한신은 초에 처음 왔기 때문에 현과 읍을 순행할 때 병사를 진열하고 드나들었다. 한 6년에 어떤 사람이 상소를 올려 초왕 한신이 모반했다고 아뢰었다. 고조가 진평의 계책을 채용해, 천자가 순수(巡狩)하면서 제후를 회동시키기로 했다. 남방에 운몽(雲夢)이라는 큰 호수가 있어, 사자를 보내어 제후들에게 ‘내가 곧 운몽으로 순행하리라.’라고 하며 진(陳)에 모이라고 통고했다. 실은 한신을 습격하려 한 것이었지만 한신은 알지 못했다.
高祖且至楚, 信欲発兵反, 自度無罪, 欲謁上, 恐見禽. 人或説信曰:「斬眛謁上, 上必喜, 無患.」
고조차지초 신욕발병반 자도무죄 욕알상 공견금, 이녹설신왈 ‘참매알상 상필희 무환’
고조가 곧 초에 도착하려고 할 때 한신이 병사를 일으켜 모반하려고 했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황제를 뵈려고 했으나 사로잡힐까 두려웠다. 어떤 사람이 한신에게 ‘종리매의 목을 베고 황제를 뵙는다면, 황제께서는 반드시 기뻐하실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信見眛計事. 眛曰:「漢所以不撃取楚, 以眛在公所. 若欲捕我以自媚於漢, 吾今日死, 公亦隨手亡矣.」乃罵信曰:「公非長者!」卒自剄. 信持其首, 謁高祖於陳. 上令武士縛信, 載後車.
신견매계사. 매왈 ‘한소이불격취초 이매재공소. 약욕포아이자미어한 오금일사 공역수수망의’ 내매신왈 ‘공비장자!’ 졸자경. 알고조어진. 상영무사박신 재후거.
한신이 종리매를 만나서 일을 의논하자 종리매가 ‘한이 초를 공격해 빼앗지 못하는 까닭은 내가 그대 밑에 있기 때문이오. 만일 그대가 나를 체포해 한에 잘 보이고 싶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죽겠소. 공(公)도 뒤따라서 망할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한신에게 ‘공은 덕행이 있는 사람이 아니오.’라고 욕을 했다. 말을 마치고 자기 목을 찔러서 죽었다. 한신이 그의 수급을 가지고 진(陳)으로 가서 고조를 만나자 고조가 무사를 시켜 한신을 결박하게 하고 뒷수레에 실었다.
信曰:「果若人言, 『狡免死, 良狗亨;高鳥盡, 良弓蔵;敵國破, 謀臣亡.』天下已定, 我固當亨!」
신왈 ‘과약인언 “교토사 양구형; 고조진 양궁장; 적국파 모신망” 천하이정 아고당형!’
그제에서야 한신이 ‘과연 사람들이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훌륭한 활도 쓸모없고 적국을 깨고나면 지모가 있는 신하가 없어진다.”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上曰:「人告公反.」遂械繋信. 至雒陽, 赦信罪, 以為淮陰侯.
상왈 ‘인고공반’ 수계게신. 지락양 사신죄 이위회음후.
고조가 ‘누가 공이 모반했다고 했소.’라고 하며 드디어 한신에게 형틀을 채웠다. 낙양에 도착하자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淮陰侯)로 삼았다.
信知漢王畏悪其能, 常稱病不朝従. 信由此日夜怨望, 居常鞅鞅, 羞與絳、潅等列.
신지한왕외외기능 상칭병불조종. 신유차일야원망 거상앙앙 수여강 관등열.
한신은 고조가 자기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을 알았으므로 늘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아가지 않고 수행하지도 않았다. 한신이 이로부터 밤낮으로 고조를 원망하며 늘 불만을 품고, 강후(絳侯)나 관영(灌嬰) 등과 같은 반열에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信嘗過樊將軍噲, 噲跪拝送迎, 言稱臣, 曰:「大王乃肯臨臣!」信出門, 笑曰:「生乃與噲等為伍!」
신상과번장군쾌 쾌궤배송영 언칭신 왈 ‘대왕내금임신!’ 신출문 소왈 ‘생내여쾌등위오!’
한신이 일찍이 장군 번쾌(樊噲)의 집에 들렀는데 번쾌가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마중하고 배웅했다. 또한 신(臣)이라고 일컬으면서 ‘대왕께서 기꺼이 신의 집에 왕림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신이 문을 나와서 비웃으며 ‘내가 살아서 번쾌 등과 같은 반열이 되었구나.’라고 했다.
上常従容與信言諸將能不, 各有差. 上問曰:「如我能將幾何?」信曰:「陛下不過能將十萬.」上曰:「於君何如?」曰:「臣多多而益善耳.」
상상종용여신언제장불능불 각유차. 상문왈 ‘여아능장기하?’ 신왈 ‘폐하불과능장십만’ 상왈 ‘어군하여?’ 왈 ‘신다다이익선이’
고조가 일찍이 조용히 여러 장수들의 능력을 말하며 각자 등차를 매긴 적이 있었다. 고조가 ‘나와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 군대를 거느릴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한신이 ‘폐하는 그저 10만을 거느릴 수 있을 뿐입니다.’고 했다. 고조가 ‘그대는 어떻소?’라고 물었다. 한신이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뿐입니다.’고 대답했다.
上笑曰:「多多益善, 何為為我禽?」信曰:「陛下不能將兵, 而善將將, 此乃言之所以為陛下禽也. 且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
상소왈 ‘다다익선 하위위아금?’ 신왈 ‘폐하불능장병 이선장장 차내언지소이위폐하금야. 차폐하소위천수 비인역야’
고조가 웃으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혔소?’라고 묻자, 한신은 ‘폐하께서 병사를 거느릴 수는 없으시지만, 장수를 잘 거느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폐하께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이른 바 하늘이 주신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고 했다.
陳豨拝為钜鹿守, 辭於淮陰侯. 淮陰侯挈其手, 辟左右與之歩於庭, 仰天歎曰:「子可與言乎? 欲與子有言也.」豨曰:「唯將軍令之.」
진희배위거록수 사어회음후. 회음후결기수 피좌우여지보어정 앙천탄왈 ‘자하여언호? 욕여자유언야’ 희왈 ‘유장군영지’
진희(陳豨)가 거록(鉅鹿)의 군수(郡守)로 제수되자 회음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회음후가 그의 손을 잡고 좌우를 물리친 뒤에 그와 함께 뜰을 거닐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그대에게는 말할 수 있겠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소.’라고 했다. 진희가 ‘예, 장군께서는 명령만 하십시오.’라고 했다.
淮陰侯曰:「公之所居, 天下精兵処也;而公, 陛下之信幸臣也. 人言公之畔, 陛下必不信;再至, 陛下乃疑矣;三至, 必怒而自將. 吾為公従中起, 天下可図也.」
회음후왈 ‘공지소거 천하정병처야: 이공 폐하지언행신야. 인언공지반 폐하필불신: 재지 폐하내의의; 삼지 필노이자장. 오위공종중기 천하가도야’
회음후는 ‘그대가 사는 곳은 천하의 정예병이 모인 곳이오. 그리고 그대는 폐하께서 신임하는 총신이오. 누군가 그대가 모반했다고 말하더라도 폐하께서는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오. 다시 말하면 폐하께서 비로소 의심하실 테고, 세 번째 말하면 반드시 노하여 친히 정벌할 것일세. 내가 그대를 위해 안에서 일어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陳豨素知其能也, 信之, 曰:「謹奉教!」漢十年, 陳豨果反. 上自將而往, 信病不従. 陰使人至豨所, 曰:「弟挙兵, 吾従此助公.」信乃謀與家臣夜詐詔赦諸官徒奴, 欲発以襲呂後、太子. 部署已定, 待豨報. 其舎人得罪於信, 信囚, 欲殺之.
진희소지기능야 신지 왈 ‘근봉교!’ 한십년 진희과반. 상자장이왕 신병부종. 음사인지희소 왈 ‘제거병 오종차조공’ 신내모여가신야사조사제관도노 욕발이급여후 태자. 부서이정 개희보. 기사인득죄오신 신수 욕살지.
진희는 평소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믿고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고 말했다. 한 10년에 진희가 과연 모반했다. 고조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정벌하러 가자, 한신이 병을 핑계대고 따라가지 않았다. 모르게 진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우가 군사를 일으키면 내가 여기서 공을 돕겠소.’라고 말했다. 한신이 이에 가신과 모의해 밤중에 거짓 조서를 내려 여러 관아의 죄인들과 관노들을 풀어주고, 이들을 동원해 여후(呂后)와 태자(太子)를 습격하려고 했다. 부서가 이미 정해지자 진희의 답을 기다렸다. 그의 사인(舍人)이 한신에게 죄를 지어 한신이 그를 가두고 죽이려고 했다.
舎人弟上変, 告信欲反狀於呂後. 呂後欲召, 恐其黨不就, 乃與蕭相國謀, 詐令人従上所來, 言豨已得死, 列侯群臣皆賀. 相國紿信曰:「雖疾, 彊入賀.」
사인제상변 고신욕반상어여후 여후욕소 공기당불취 내여소상국모 사령인종상소래 언희이득사 열후군신개하. 상국태신왈 ‘수질 강입하’
그 사인의 아우가 변고를 고발하고, 한신이 모반하려는 상황을 여후에게 아뢰었다. 여후가 한신을 불러들이려고 했지만 그가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봐 염려되었다. 이에 상국 소하와 모의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 고조에게서 온 것처럼 ‘진희가 이미 사형을 당했습니다. 여러 제후들과 뭇 신하들이 모두 축하하고 있습니다.’고 말하게 했다. 상국 소하 역시 한신을 속여 ‘병중이기는 하지만, 억지로라도 들어와서 축하하시오.’라고 했다.
信入, 呂後使武士縛信, 斬之長樂鍾室. 信方斬, 曰:「吾悔不用蒯通之計, 乃為児女子所詐, 豈非天哉!」遂夷信三族.
신입 여후사무사박신 참지장락종실. 신방참 왈 ‘오회불용괴통지계 내위아녀자소사 이비천재!’ 수이신삼족.
한신이 들어가자 여후가 무사를 시켜 한신을 포박해 장락궁(長樂宮) 종실(鍾室)에서 목을 베었다. 한신이 죽으면서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녀자에게 속았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랴!’라고 했다. 드디어 한신의 삼족(三族)을 멸했다.
高祖已従豨軍來, 至, 見信死, 且喜且憐之, 問:「信死亦何言?」
고조이종희군래 지 견신사 차희차린지 문 ‘신사역가언?’
고조가 진희의 토벌에서 돌아와 (궁전에) 이르니 한신은 이미 죽은 뒤였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가여워서 ‘한신이 죽을 때 또 무엇이라고 하더이까?’라고 물었다.
呂後曰:「信言恨不用蒯通計.」高祖曰:「是斉辯士也.」乃詔斉捕蒯通. 蒯通至, 上曰:「若教淮陰侯反乎?」対曰:「然, 臣固教之. 豎子不用臣之策, 故令自夷於此. 如彼豎子用臣之計, 陛下安得而夷之乎!」上怒曰:「亨之.」通曰:「嗟乎, 冤哉亨也!」
여후왈 ‘신언한불용괴통지계’ 고조왈 ‘시제변사야’ 내조포괴통. 괴통지 상왈 ‘약교회음후반호?’ 대왈 ‘연 신고교지 수자불용신지책 고영자이어차. 여피수자용신지계 페하안득이이지호!’ 상노왈 ‘형지’ 통왈 ‘차호 원재형야!’
여후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라고 대답했다. 고조가 ‘그는 제 변사요.’라고 하고 이에 제에 조서를 내려 괴통을 체포했다. 괴통이 잡혀오자 고조가 물었다. ‘네가 회음후에게 모반하라고 가르쳤느냐?’ 괴통이 대답해 ‘그렇습니다. 신이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못난이가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자멸했습니다. 만약 그 못난이가 신의 계책을 썼다면 폐하께서 어찌 무찌를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했다. 고조가 노하여 ‘이놈을 삶아 죽여라.’라고 했다. 괴통이 ‘아 ! 원통하구나. 이렇게 죽다니!’라고 했다.
上曰:「若教韓信反, 何冤?」対曰:「秦之綱絶而維弛, 山東大擾, 異姓並起, 英俊烏集. 秦失其鹿, 天下共逐之, 於是高材疾足者先得焉. 蹠之狗吠尭, 尭非不仁, 狗因吠非其主. 當是時, 臣唯獨知韓信, 非知陛下也. 且天下鋭精持鋒欲為陛下所為者甚衆, 顧力不能耳. 又可盡亨之邪?」高帝曰:「置之.」乃釈通之罪. 상왈 ‘약교한신반 하원’ 대왈 ‘봉지강절이유이 산동대후 이성병기 영준오집 진실기록 천하공축지 어시고재질족자선득언. 척지구폐요 요비불인 구인폐비기주. 당시시 신유독지한신 비지폐하야. 차천하예정지봉욕폐하소위자심중 원역불능이 우하진형지야?’
고조가 ‘네가 한신이 반역하게 해놓고는, 무엇이 원통하단 말이냐?’라고 물었다. 괴통이 이렇게 대답했다. ‘진의 기강이 해이해지자 산동(山東)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이성(異姓)이 아울러 일어나 영웅준걸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진이 그 사슴을 잃어버리자, 천하가 모두 그 사슴을 쫓았습니다. 이리하여 재주가 많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그 사슴을 잡았습니다. 도척(盜跖)의 개가 요(堯)임금을 보고 짖는 까닭은 요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은 것입니다. 그때 신은 오직 한신만 알았을 뿐이지,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천하에는 칼끝을 날카롭게 갈아 가지고 폐하께서 하신 일을 자기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힘이 모자랄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시겠습니까?’라고 하자, 고조가 말했다. ‘그를 놓아주어라.’ 드디어 괴통의 죄를 용서했다.
<사마천의 논평>
太史公曰:吾如淮陰, 淮陰人為餘言, 韓信雖為布衣時, 其志與衆異. 其母死, 貧無以葬, 然乃行営高敞地, 令其旁可置萬家. 餘視其母塚, 良然. 仮令韓信學道謙譲, 不伐己功, 不矜其能, 則庶幾哉, 於漢家勳可以比周、召、太公之徒, 後世血食矣.
태사공왈: 오여회음 회음인위여언 한신수위포의시 기지여중이. 기모사 빈무이장 연내행영고창지 영기방가치만가. 여시기모총 양연. 가영한신학도겸양 불벌기공 불긍기능 즉서기재 여한가훈가이차주 소 대공지도 후세혈식의.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회음(淮陰)에 가자 회음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길 한신(韓信)이 평민이었을 때 그 뜻이 여느 사람과 달랐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가난해서 장례도 치룰 수 없었다. 그러나 높고 넓은 땅을 구해 무덤을 만들었고, 그 곁에 만 호의 집이 들어설 수 있게 했다. 내가 그 어머니의 무덤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가령 한신이 도리를 배우고 겸손하게 양보하며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을 뽐내지 않았다면, 한(漢)에 대한 공훈은 거의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太公)의 무리에 견줄 수 있고, 후세에 나라의 제사를 받았을 것이다.
不務出此, 而天下已集, 乃謀畔逆, 夷滅宗族, 不亦宜乎!
불긍출차 이천하이집 내모반역 이멸종족 불역의호!
이렇게 안되도록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종족이 전멸한 것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