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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券第一 奇異 第一- 射琴匣

射琴匣

 

第二十一 毗處王[一作炤智王] 卽位十年戊辰 幸於天泉亭. 時有烏與鼠來鳴 鼠作人語云 此烏去處尋之.”[或云 神德王欲行香興輪寺 路見衆鼠含尾. 怪之而還占之 明日先鳴烏尋之.’云云. 此說非也].

 

제이십일비처왕[일작소지왕] 즉위십년무진 행어천천정. 시유오여서래명 서작인어운 차오거 처심지”[혹운 신덕왕욕행향흥륜사 로견중서함미. 괴지이환점지 명일선명오심지.’운운 차성비야]

 

21대 비처왕(毗處王)[소지왕(炤智王)] 즉위 10년 무진(서기 488)에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는데, 쥐가 사람말로 말하였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시오.”[혹은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예불하러 가는데, 길에서 여러 쥐가 꼬리를 서로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돌아와서 점을 쳐보니, ‘내일 제일 먼저 오는 까마귀를 찾으라.’라고 하였다지만, 이 설은 잘못된 것이다.]

 

王命騎士追之. 南至避村[今壤避寺村 在南山東麓] 兩猪相鬪. 留連見之 忽失烏所在 徘徊路旁 時有老翁 自池中出奉書.

왕명기사추지. 남지피촌[금양피사촌 재남산동록] 양저상투. 유연견지 홀실오소재 배회로방 시유노옹 자지중출봉서.

 

왕은 말을 탄 병사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쫓아가도록 하였다. 병사가 남쪽으로 피촌(避村)[지금의 양피사촌(壤避寺村)으로 남산(南山)동쪽 기슭에 있다.]에 이르렀는데,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병사는 한참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길가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이때 어떤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편지를 주었다.

 

外面題云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使來獻之 王曰 與其二人死 莫若不開 但一人死耳.” 日官奏云 二人者庶民也 一人者王也.”

외면재운 개견이인사 불개일인사.” 사래헌지. 왕왈 여기이인사 막약불개 단일인사이.” 일관주운 이인자서민야 일인자왕야.”

 

편지 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이 편지를 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 그러자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서민을 말하는 것이고, 한 사람이란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王然之開見. 書中云 射琴匣王入宮 見琴匣射之. 乃內殿焚修僧與宮主 潛通而所奸也. 二人伏誅.

왕견지개견. 서중운 사금갑왕입궁 견금감사지. 내내전범수승여궁주 잠통이소간야. 이인복주,

 

왕은 그렇다고 여기고 편지를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편지 속에는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은 궁으로 들어가서 거문고 집을 보고 활을 쏘았다. 그 속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 하던 중이 궁주(宮主)와 몰래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했다.

 

自爾國俗 每正月上亥上子上午等日 忌愼百事 不敢動作. 以十五日爲烏忌之日 以糯飯祭之 至今行之. 俚言怛忉 言悲愁而禁忌百事也. 命其池曰書出池.

자이국속 매정월상해상자상오등일 기신백사 불감동작. 이십오일위오기지일 이나반제지지금행지. 리언달도 언비수이금기백사야. 명기지왈서출지.

 

이로부터 나라의 풍습에 해마다 정월 첫 해일(亥日), 첫 자일(子日), 첫 오일(午日)이 되면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월 보름을 오기일(烏忌日,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 지냈는데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속어로는 달도(怛忉)라고 하는데, 슬퍼하고 근심스러워서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노인이 나와 편지를 바친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한다.